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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1





Out of the Closet and Into Sight

Click here for the original column on taniaderozario.com











"어떤 위험을 감수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무엇을 가치있게 여기는지를 알 수 있다."

- 자넷 윈터슨 <열정>




"커밍아웃"은 아주 흥미로운 개념으로, 다음 두 결과 중 하나로 직행하는 경우가 많다: (1) 상대방이 날 있는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해 준다. (2) 상대방이 날 거부해서 영원히 치유할 수 없는 절망감을 안겨준다.


이 둘 중 어느쪽도 아닌 경우는 없다. 당사자가 아무런 의심도 없이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봤고, 반대로 집에서 쫓겨나는 경우도 봤다. 그  중 한 사람은 아예 외국으로 떠나버렸다. 


하지만 내가 접하는 커밍아웃 스토리 중에서 가장 흔한 경우는 몇 주일, 몇 달, 몇 년씩 길고 지저분한 과정이 이어지는 케이스다. 그 과정에는 불편한 침묵, 어색한 저녁식사, 그리고 고통스런 화제의 귀환 등등이 있다. 부모님은 못 들은 척 하고, 친구들은 온통 자기 얘기 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다. 그리고 직장 동료들은 마치 깨져서는 안 될 계란이 깨진 것마냥 화제를 요리조리 피해간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경험담을 소개하는 것은 나의 "커밍아웃 경험담"이 소위 "일반적"인 커밍아웃에 들어맞지 않는 것 같기 때문이다. 사실 난 내 모습을 숨긴 적이 없기 때문에 커밍아웃을 한 적도 없다. 게다가 어렸을 때 쫓겨났었다. (자세한 설명은 밑에서) 그래서 IndigNation 2013의 일환으로 런치된 Sayoni 커밍아웃 캠페인에 참가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과연 내 경험담이 가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참가를 결심하게 된 것은 바로 캠페인 슬로건 '커밍아웃, 커밍홈(Come Out, Come Home)'이었다.


타니아 디 로자리오 씨. 사진: Fridae

커밍아웃. 커밍홈. "귀환"을 재촉하는 이 문구가 나와도 연관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수많은 이반인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섹슈얼리티와 "집"이라는 단어에 대한 내 경험은 얽히고 섥혀 있다. 원리주의 종교에 대한 내 경험을 알거나 들어본 사람은 내 이야기를 알 것이다: 12 살 때, 엄마가 내 옷차림과 행동거지를 보고 "성적 일탈"을 감지했고, 내 몸에서 '레즈비언 악마'를 내쫓기 위해 퇴마의식까지 감행했다. 정말 길고도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 일 때문에 엄마와의 관계는 악화됐고, 몇 년 동안 한 음절짜리 말만 주고받거나 가끔씩 내가 왜 지옥에 떨어질 건지를 두고 대판 싸우는 게 다였다. 결국 대학교를 졸업한 나는 집을 나왔다. 내 거처와 내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란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말이다. 


그 즉각적인 결과는 이랬다: 모아둔 돈이 없던 나는 밥값을 버는 데 급급했고, 20대 중반을 이집 저집 쫓겨나면서 보냈다. 이사를 일곱 번이나 했고, 전기가 없이도 버티는 법, 인스턴트 라면을 즐기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처음 몇 년 동안은 컴퓨터 살 돈이 없어서 도서관이나 PC방에서 일했다. 그리고 딱 한 번 음식을 훔친 적도 있다. 그런데 가장 힘든 순간에 내게는 특권이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내겐 돌아갈 집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집에 가면,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공간으로 다시 들어가야 되고, 내 본연의 모습을 타협해야만 했기 때문에, 결코 돌아가지는 않았다. 몇 번이고 그 결심을 곱씹은 덕분에 나는 애초에 떠나기로 한 결정을 지켜낼 수 있었고, 또 퀴어인으로서 내 방식대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러 번에 걸쳐 그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혈연 가족들과 살 때부터 내 섹슈얼리티가 더럽고 죄스런 것이 아닌 곳을 찾아 분투했다. 그러면서 이 사회에서 커밍아웃한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일탈행위란 걸 알게 됐다. 그것은 우리 자신과 주변사람들에게 강요된 수많은 위험한 거짓말들을 무시하는 행위였다. 무엇이 용납되고 무엇이 용납되지 않는지, 무엇이 가족을 구성하고, 또 무엇이 가족을 구성할 수 없는지, 무엇이 가치가 있고 무엇이 가치가 없는지 등등에 관한 거짓말 말이다. 이번 캠페인에서 재스민 씨가 나에게 커밍아웃을 통해 얻은 게 뭔지 물었을 때도 내 대답은 일종의 권한부여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내 섹슈얼리티를 사정없이 드러내면서, 사회가 구축한 수많은 것들을 엄청난 속도로 거부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또한 가족은 태어난 곳이 아니라 내가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나는 동성애혐오증을 한치도 용납하지 않으며, 혐오자들한테 아무런 꺼리낌없이 소리친다. 그리고 누가 날 아우팅시킬 걱정 없이 학생들에게 젠더나 섹슈얼리티 같은 주제를 언급한다.   


이렇듯 "사회에서 용납되는 것"에 대한 무시는 내 삶의 다른 부분에도 스며 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몸을 꾸미고, 아름다움과 성공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지지하지 않는다. 한 내 정체성은 내가 소유하는 물질에 기인하지 않는다.


내게 있어서 커밍아웃이 가지는 가장 큰 중요성은 작품을 창작할 때 내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내 작품의 대부분은 내가 경험한 이반적 욕구를 다루고 있다. 가끔 누군가가(특히 젊은 사람이) 내 글 덕분에 마음이 편해졌다고 할 때마다, 가시성의 의미를 되새기곤 한다. 그리고 나 또한 어렸을 적에 너무나도 당당하게 혐동성애적인 이 나라에서 가시성의 단편이 보일 때마다 안정을 찾곤 했던 것을 떠올린다. 자넷 윈터슨의 소설, 멜리사 이서리지의 음악, 시릴 웡의 시, '우리같은 사람들(PLU: People Like Us)', 레드퀸(RedQueen), 커밍아웃을 감행했던 내 주위 이반인들의 뻔뻔함, 그리고 감히 지지자가 되기로 자처한 이성애자들의 맹렬함 등등…


가시성이라는 개념을 생각하면, 예수님이 빵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로 오천 명의 군중을 먹였다는 성경이야기의 한 해석방식이 떠오른다:


날이 저물기 시작할 , 열두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말했습니다. "우리가 있는 곳은 들이니까 사람들을 보내십시오. 그래서 근처 마을과 농가로 가서 잠잘 곳을 찾고, 먹을 것을 얻게 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제자들이 대답했습니다. "우리에겐 단지 다섯 개의 빵과 생선 마리밖에 없습니다. 가서 모든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사지 않으면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을 오십 명씩 무리지어 앉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람들을 앉게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섯 개와 생선 마리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감사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런 후에 제자들에게 떼어 주며 사람들 앞에 내놓도록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먹고 배가 불렀습니다. 또한 남겨진 조각들을 모으니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습니다.


누가복음 제9장 12~17


보통은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셨고, 하나님의 도움으로 군중들이 배를 채운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내가 접한 또다른 해석방식은 내 마음을 깊히 감동시켰다. 이 해석에 따르면, 사람들이 먼 땅으로 여행하면서 먹을 것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한다. 즉, 군중들은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봐 자신의 먹거리를 꺼내놓기 꺼려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나눠먹으면 내가 먹을 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당신의 음식을 내놓자, 그의 이타심에 감명을 받은 사람들이 자기 음식도 내놓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빵과 생선이 불어나 모두가 배를 채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확대해석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내게는 딱 들어맞는 해석이다. 사람들은 눈으로 봐야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누군가가 가시성의 용기를 보인다면, 당연히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될 것이고,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최소한 자신이 왜 커밍아웃할 수 없는지 그 이유를 되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반이라는 이유로 두렵고 외로워하는 이들에게 자긍심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집, 직장,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을 숨기지 않고 살아가는 기쁨과 무모함을 감수할 수 있다면, 죽기 전에 커밍아웃이 더 이상 무모함이 아닌 세상을 보게 될 가능성도 더 커질 것이다. 그 날이 오게 되면 내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철저한 부정이나 사회적 용인에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당연한 일부분이 되어 있을 것이다. 


여기서 "위험"이라는 말은 가볍게 쓴 표현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만천하에 공개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난 내가 큰 역경 없이 커밍아웃할 수 있었던 것도 내게 주어진 수많은 특권 덕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커밍아웃으로 인해서 신체적, 감정적, 정신적 폭력을 당할 것 같으면, 굳이 위험에 처할 일은 하지 말길 바란다. 지금 상황이 부당한 건 내 탓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필요할 때는 싱가폴에도 지원과 공동체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 줬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도 추천한다. 


내가 권장하려는 것은, 현상태에서 얻는 이익 때문에 커밍아웃하지 않는 이들은 자신의 행동이 미치는 영향(또는 그런 영향의 부족함)으로 인해 불평등으로 뒤틀어져버린 사회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기껏 일주일에 한 번 클럽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으로 유지되는 평범한 삶이 당신이 말하는 자유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자신을 드러내는 게 두려운 나머지 혐동성애적 농담을 그냥 놔둔다면, 또 그 농담에 상처받는 사람이 없을 거라 여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내가 현상태를 유지함으로써 특권을 누릴 때마다, 바로 그 현상태 속에서 폭력과 차별을 받는 이반들도 있다. 내 자신을 비판하는 제도에 영합할 때마다, 나를 억압하고 사탄과 범죄자로 내모는 제도를 그대로 이행하는 셈이 된다. 본인은 그 제도의 주인이 되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제도가 나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오르드 로드(Audre Lorde)의 아주 우아한 표현을 빌자면, 주인의 도구로는 주인의 집을 해체할 수 없다(the master’s tools will never dismantle the master’s house)는 것이다. 


내가 권장하고자 하는 것은 커밍아웃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하라는 것이다. 우리 중 수많은 이들이 아직도 두려움과 고통, 외로움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지금 내가 누리는 권리를 위해 싸운 이들의 노력을 헛수고로 만들며 살아가서는 안 된다. 권리란 타인들도 두려움, 폭력, 차별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댓가로 주어져야 하며, 가시성의 댓가로 주어져야 한다. 또한, 권리란 주위사람들에게 우리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실제 인간이라는 사실을 각인시키는 댓가로 주어져야 한다. 


이러한 연대표명은 우리 공동체가 자유를 얻는 데 가장 근본적인 요소이자, 지지 네트워크를 넓히는 데 가장 주된 요소가 되기도 하다. 섹슈얼리티를 이유로 여러분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여러분을 사랑해 주는 이들도 있다. 그러니까 이젠 주인의 집에서 나와서 커밍아웃하고 커밍홈하자. 



원제: "Out of the Closet and Into Sight"
저자: Tania De Rozario
웹사이트: www.taniaderozario.com



- 옮긴이: 이승훈



* This column was translated and shared on this blog with kind permission of artist and writer Tania de Rozario, who does not bear any responsibility over the quality of this translation. (본 칼럼은 작가 겸 예술가인 타니아 디 로자리오 씨의 허락에 의해 본 블로그에 번역, 게재되었으며, 로자리오 씨는 본 번역물의 질에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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