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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8




케이틀린 제너, '브루스를 포기하기란 쉽지 않았어요. 아직도 안에 살아 있죠.'




트랜스젠더 여성이 되기 위한 여정을 책으로 담은 케이틀린 제너. 그런 그녀가 실패한 결혼생활과 카다시안 아이들 그리고 트럼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케이틀린 제너, ‘트랜스젠더로 커밍아웃할 때보다 공화당원으로 커밍아웃하는 게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사진: Taylor Jewell/Invision/AP


케이틀린 제너가 트랜스젠더 여성을 향한 여정The Secrets of My Life 출간을 며칠 앞두고 전부인 크리스 제너와 함께카다시아 따라잡기 출연했다. 프로그램은 올해로 11년째를 맞지만, 2015년까지만 해도 제너는 주변인물에 불과했고 이름도 브루스였다. 이번 회고록에도 언급되어 있듯 “마음은 착하지만 행동이 굼뜬 가장으로 자신의 삶을 살기보다는 주변 여성들에 둘러쌓여 사는그런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런 제너가 지금은 주인공이 되어 전부인 크리스에게 성별 정체성에 대해 설교를 하기도 하고, 그럴 때면 크리스는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길 바라듯이 쓴웃음을 지어 보이곤 한다.  크리스가 제너에게 성별확정 수술을 받을 건지 묻자 제너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숨을 들이쉬었다. “그만 하자. 얘긴 하기 싫으니까.” 


제너의 말은 굳이 카다시안 프로그램에서 얘기를 꺼내면서까지 시청율에 공헌하고 싶진 않다는 거란 뜻일 거다. 지난 2 동안 제너는I Am Cait라는 자신만의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고, 지금은 회고록 출간 기념투어를 앞두고 있다. 필자와 만난 다음날에는 터커 칼슨과의 인터뷰 잡혀 있다. 오릴리에 이어 폭스뉴스 진행을 맡은 터커 칼슨은 몇주전 트랜스젠더가 게스트로 나왔을 공중화장실에서 여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트랜스젠더인 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었다. 제너는 칼슨의 이런 발언이너무 심한 이지만, 그래도 그의 방송에는 나갈 것이라고 한다. 아직 생각을 바꾸지 못한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는 것이다. “아직 트랜스젠더를 만나보지 못한 분들이 좋은 인상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예요. 방송에 나가서 이름이 틀렸다는 , 성별호칭이 틀렸다는 하는 소리는 늘어놓기 싫어요. 칼슨 같은 사람들이 틀렸다는 얼마든지 입증해 보일 있지만, 되도록이면 즐겁게, 농담을 섞어가며 이야기 생각입니다.”


맨하탄의 호텔바에서 만난 제너는 눈에 띄지 않는 구석쪽에 앉아 있었다. 청바지와 스웨터 차림에 화장도 그리 짙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친근하고 사글사글하며, 허심탄회한 모습을 접하고 있자니 필자도 긴장감이 풀렸다. 트랜스젠더들 중에는 제너가 트랜스젠더의 대변인 치고는 너무 개념없다며 싫어하는 이들도 있지만, 바로 이유 때문에 다수 트랜스젠더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들보다 오히려  가치있는 면도 있다. 제너에게는 도널드 트럼프가 권력을 거머쥐기 예전에 가졌던 것과 유사한 매력이 있다. 매력이란 가벼운 우쭐거림과 자신이 내뱉는 말의 명백한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생활 침해를 불평하면서도 10 넘게 이어진 리얼리티쇼의 수혜자였고, 트랜스젠더 인권 옹호가임과 동시에 일찌감치 트랜스젠더의 인권을 폄하하는 대통령을 지지했다. 예전 이야기를 하다가 실수로 자신을남자 지칭할 때면뭐라고 불러야 될지 모르겠다 하면서도, 예전 이름인브루스 철저히 부정하지도, 이름을 쓰는 사람을 비난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소위 데드네이밍[각주:1] 때문에 분개하는 트랜스젠더들도 적지 않다. 일반적으로 트랜스젠더를 예전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그들을 경멸할 쓰는 수법이기 때문이다. 한편 제너는브루스로 65년이나 살았다 항변한다. “괜찮은 사람이었죠. 업적도 많이 남겼구요. 브루스라는 사람은 분명 존재했어요. 아주 근면한 사람이었죠. 올림픽 금메달도 따고, 애들도 키워냈고, 좋은 일도 정말 많이 사람이예요. 그걸 한순간에 부정하고 싶진 않네요.”



가족모임… 클로이 카다시언, 크리스 제너, 켄덜 제너, 코트니 카다시언, 킴 카다시언 웨스트, 노스 웨스트, 케이틀린 제너, 카일리 제너. 사진: Kevin Mazur/Getty Images for Yeezy Season 3



그녀가 배니티 페어 표지 통해 제너로 커밍아웃한지 어느덧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녀가 아직도 자신의 정체성대로 살아가는 신선함 언론노출에 취해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번 회고록을 공동집필한 버즈 비싱어는 퓰리처상 수상자로, 당초 배니티 페어에서 제너를 인터뷰한 것도 바로 그였다. 이번 책은 제너가브루스 영감이라 부르는 과거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 사이의 관계를 좀더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어릴적 그녀는 성별 불쾌감[각주:2]만큼이나 난독증으로 힘들어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가 자란 뉴욕 웨스트체스터 카운티는 보수적인 동네여서, 그런 증상은 물론 난독증이라는 병명조차 아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녀는 언니 팸의 옷이 너무 마음에 들었을 뿐이고, 거울을 때마다 자신의 모습이 너무 싫었다고 한다. “살아오면서 온갖 생각을 봤어요. 이런 내가 의복도착증인지, 의복도착증은 내게 있어 성적 흥분을 주는지, 그럼 나는 자신과 섹스를 즐기고 있는 건 아닌지, 나는 동성애자인지 등등..” 하지만 어느 것도 해답이 되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운동에서 답을 찾기로 했다. “학교에서 제가 제일 달리기가 빨랐거든요. 제가 오랜 세월 그렇게 운동에 매진한 정체성 때문이기도 했어요. 다음으로 출전하는 선수를 보며 결의를 다질 있었으니까요.” 운동선수로 성공하고 명성도 얻으면 이름모를 증상도 고칠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고, 1976 올림픽 10종경기에서 금메달을 따도 달라지는 없었다.


브루스 제너와 큰누나 팸. 1954년. 사진: 제너가족

결혼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첫번째 부인 크리스티와는 아이오와 그레이스 대학교에 다닐 만났는데, 사람 모두 순진하게 자랐었다고 제너는 회상한다. 크리스티는 장관의 딸이었고, 제너는 운동선수였지만 여자와의 경험이 밖에 없었기 때문이. 1972 결혼한 사람은 자녀를 두었지만, 둘째인 케이시가 태어날 즈음 결혼은 파국을 맞는다. “제가 여기서정신산란이라는 표현을 , 아이들을 통해 주의를 분산시키려 했기 때문이예요. 그것 때문에 애들한테 온갖 구박을 받아 왔는데, 제 말은 아이들이 정신산란의 구실이라는 아니라, 아이들 덕분에 정체성 고민을 다소 잊을 있었다는 거죠. 실제로 정말 훌륭하게 자라줬구요.”


하지만 제너는 그로부터 20 동안 자신의 불행에 너무 빠져 나머지 자식들에게는 존재감이 거의 없은 아버지가 되었고, 2007 케이시가 결혼식을 올릴 때는 초대조차 받지 못할 정도로 관계가 악화되었다. 죄책감으로 힘들어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딸과의 관계가 많이 회복되었다고 한다.


흔히 제너를 비난할 그녀가 누리는 부와 명예는 일반 트랜스젠더들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는 점이다. 제너 본인도 지적하듯, 미국 트랜스젠더들이 겪는 빈곤과 폭력 문제는 매우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올해만 아홉 명의 트랜스젠더가 살해 당했는데, 피해자는 모두유색인종 트랜스젠더 여성이었다. 제너의 사례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것이다. 제너의 성전환은 특권에 의해 완충되고, 이윤 추구욕과 타협된 것이기 때문에, 과정의진정성 아무리 운운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데 이번 회고록은 이러한 구분을 없애준다. 제너는 어른이 후로도 불행했고, 플레이보이 맨션에서 만난 배우겸 모델 린다 톰슨과 결혼해 아들 브랜든과 브로디를 얻을 후에도 나아진 건 없었. 크리스 카다시언을 만나기 전까지는말이다. 당시에 촬영된 아주 가슴아픈 영상이 있는데, 제너가 아내 린다와 언니 팸에게 자신이 겪는 성별혼란을 털어놓는 장면이다. 가발과 드레스 차림으로 나타난 제너를 보고 린다는 충격을 받아 입을 다물어버리고, 그나마 동생을 이해하려는 팸도 충격에 말을 잇지 못한다. 제너와 린다 사람은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갔다가 성별 불쾌감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접하게 되고, 제너는 그제야 비로소 자신이 어떤 갈등을 겪어 왔는지 이해하게 된다. 결국 결혼도 파국을 맞는다.



폭스뉴스 출연을 앞둔 케이틀린 제너, “되도록이면 즐겁게, 농담도 섞어가며 이야기 할 생각입니다.” 사진: Fox News



그로부터 30년이 지나서야 제너는 전환을 시작하게 되고, 사람들은 그녀의 정치성향이 문제점으로 작용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작년 공화당 전당대회에 참석 그녀는 농담삼아트랜스젠더로 커밍아웃할 때보다 공화당원으로 커밍아웃하는 힘들었다 했다. 흔히 치명적인 동성애 혐오자들이 알고보면 공화당원인 경우가 많듯, 그녀의 보수주의적인 성향도 위장술의 하나로 작용한 건 아닐?


위장술이요? 흥미로운 표현이네요. 정체성을 부인하기 위한 방법이었다는 거죠? 사실 (제가 공화당원인 ) 50-60년대에 어린시절을 보낸 것과 연관이 깊어. 게다가 2 대전 오마하 해변 상륙작전에 참전한 아버지를 저는 나라를 믿었고, 나라에서 영위하는 모든 자유를 사랑했죠. 거대한 정부를 좋아하지 않아요. 나라를 빚덩이에서 구해낼 있는 미국 국민 밖에 없죠. 정부 따윈 없어져도 돼요.”


그녀는 트럼프를 찍은 것을 후회하고 있을까?


아뇨.” 대답이 너무 빨라서 문맥을 불문하고후회라는 단어는 무조건 부정하라는 조언이라도 들은 아닌지 의심이 정도였다. “트럼프를 찍은 후회 해요트랜스젠더 사안만 두고 본다면, 도널드 트럼프나 공화당을 믿지 않지만, 그래도 그쪽으로 치우친 편이죠. 왜냐구요? 정부의 역할이 제한되어야 하고, 세금과 규정도 적을 수록 좋다고 믿거든요. 그렇다고 공화당 주장에 무조건 동의하는 절대 아니예요. 그리고 바보가 아닌 이상 공화당이 LGBT 사안을 잘못 다룬다는 알죠. 분야에선 민주당이 훨씬 나아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10종 경기 부문에 출전한 브루스 제너. 사진: Wally McNamee/Corbis via Getty Images


하지만 LGBT 아주 근본적인 사안이 아닌가?


가지 사안만 보고 투표하진 않아요. 그러니까 세금을 낮추고 자영업자들의 규정을 줄이기 위해 민주당과 싸우기보다는 차라리 LGBT 사안을 두고 공화당과 싸우는 훨씬 낫다는 거죠.”


얼마전 트럼프는 트랜스젠더 학생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 화장실을 있도록 하는 트랜스젠더 학생 보호 연방법을 폐지시켰다. “너무 실망스러웠어요. 저도 트럼프와 그의 정부를 비난했죠.  취임식 때 잠시 이야기를 나눴고, 선거유세 때도 트랜스젠더 문제를 언급할 기회가 있었는데, ㄱ 때만 해도, 분위기가 좋았거든요. 그런데, 이제 와서 이런 조치를 취하다니 말문이 막히네요.”


제너가 이번 조치를 예상하지 못한 2012 트럼프가 트랜스젠더의 미스 유니버스 출전을 허락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신뢰감도 이젠 완전히 무너 버렸다. “ 번은 트럼프가 함께 골프 치러 가자고 하더군요. 처음엔 마라라고에 가서 시간 정도 함께 골프 치면서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 트랜스젠더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들 말이예요. 게다가 67 트랜스젠더가 트럼프를 이겨서 조금은 콧대를 꺾어주는 것도 괜찮을 같았구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하고 같이 있는 모습이 눈에 띄 아니다 싶더라구요.”


크리스 카다시언이 1990 브루스 제너(수술전의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남자호칭을 써달라고 한다) 처음 만났을 , 그는 희망이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TV 스포츠 해설가로서의 경력도 끝났었고, TV 출연을 한지도 8년이 넘은 상태였다. 소개팅으로 만난 사람은 1 안에 결혼식을 올렸고, 크리스는 곧바로 브루스의 에이전트를 해고시켰다. 그리고 헬스장 기구에 브루스의 이름을 새겨넣으면서 그의 경력도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사람 슬하에는 크리스가 예전 남자친구 사이에서 낳은 코트니, , 클로이 로버트 외에도 켄덜과 카일리 딸이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자라서카다시언 가족 따라잡기 스타로 부상한.


이번 회고록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사람이 만날 무렵 제너는 이미 4 반이나 호르몬 요법을 받고 있는 상태였고, 가슴 사이즈도 36B 되었다는 것이다. 크리스를 만나기 제너는 마흔이 되기 전에 전환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번 회고록을 둘러싼 가장 논란은 크리스가 TV에서 말인데, 제너가 자신과 결혼한 것은 사기였다는 식의 발언이다. 제너는 크리스의 말이 사실이 아니며, 결혼할 이미 젠더 문제를 안고 있음을 밝혔었다고 주장한다. “ 문제를 가볍게 생각했냐구요? 물론 그땐 그랬죠. 6 동안 지옥같은 시간을 보냈었고, 다시 사랑을 하고 싶었으니까요. 25 후에 성전환 과정을 거치게 될지 몰랐기 때문에, 문제를 가볍게 생각한 사실이예요.”


크리스도 자신이 호르몬을 맞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


상대방이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에 경계심을 가지지 않았다니 사뭇 놀라웠다.  


나라면 남자를 고칠 있다는 식의 자신감을 가진 여자들이 많아요. 사실 자신도 고치고 싶었고, 일도 다시 시작하고 싶었죠. 사람이 함께라면 못할 없을 것만 같았어요. 그렇게 23년을 함께 보냈습니다. 아이들도 키웠고, 크리스는 사업감각이 탁월했어요. 제가 이렇게 재기해서 다시 일을 시작할 있게 데에는 크리스의 덕이 커요. 헤어지게 함께 내린 결정이었지, 제가 성전환을 받으려고 떠난 아니었어요.”



브루스 제너와 크리스 카다시언의 결혼식. 1991년. 사진: Wendy Roth



회고록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제너가 걸어온 여정의 진정성을 아무도 의심하지 못할 것이다. 필자가 유일하게 접한 부정적인 반응은 성전환의 시기에 관한 것이었다. ’카다시안 가족 따라잡기에서 제너의 캐릭터는 기승전결도 없는, 철저히 소외받고 가여운 인물이었다. 그런데 집을 떠나 성전환을 결심한 그녀는 카다시안 저택에 지내면서 꿈도 없었던 주목을 받게 된다.


어떤 식의 주목 말인가요?”


본인만의 리얼리티 쇼를 맡게 되셨잖아요.”


, 그런 신경 써요. TV 프로를 하나 맡는 관심도 없고, 생각해 적도 없어요. 제가 가장 신경 썼던 영혼을 진정시키는 거였어요. 전환 과정을 거치는 동안 자신을 잃지 않는 말이예요. 저는 남자 안에서 65년을 살았고, 이제는 본모습으로 살아갈 때가 왔다고 생각했죠. 본모습에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브루스는 일을 했잖아요. 애들도 길렀고, 대회에서도 우승했으니까요. 이젠 안에 살던 여자에게 기회를 차례였죠. 그리고 제가 가진 발판을 이용해 세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있을 거란 생각도 들었구요.”


아내가 받던 관심을 가로채고 싶다는 마음은 전혀 없었을까?


관심이요? 그냥 자신이 되고 싶었을 뿐이예요. 크리스는 좋은 사람이지만, 서로 생각이 많이 달랐어요. 특히 지금이 그렇죠. 그래도 크리스가 구해준 거나 다름없어요. 삶을 송두리째 돌려놨으니까요.”


부인 덕분에 돈도 많이 버셨잖아요.” 인터뷰 중에 제너가 기분 상한 표정을 지은 때가 유일했다. 


그렇죠. 근데 돈은 아무래도 좋아요. 제가 돈을 밝히는 사람도 아니고.”


제너는 이혼한 매니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25 동안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없으니까, 인생 4막에 들어가는 지금부터는 쓰면서 즐길 거야. 제너는몇몇 장난감들 사들이기 시작했다. “말리부 언덕 위에 3500 평방피트짜리 집을 샀어요. 애들이 들어와 살만큼 어마어마 저택은 아니고 그냥 아담한 집이죠. 그리고 소형 비행기도 샀어요. 비행기에 관심이 있었는데, 크리스가 싫어해서 15 동안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았거든요. 레이싱카도 샀구요.” 밝히는 사람이 아니라던 그녀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39 성전환을 하지 않고 25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린 것이 후회스럽진 않을까?


아뇨, 후회는 없어요.”

케이틀린 제너, ‘레이싱카도 몇 대 샀어요.’ 사진: 케이틀린 제너

하긴, 그랬다면 카다시안 패밀리도 없었겠죠.”


그것보다는 영혼과 행복이 관건이죠. 사실 간단해요. 때가 아니었죠. 때만 해도 지금 같지 않았거든요. 그리 많은 하지 않아도 만족감을 느낄 있었구요. 그래도 마흔이 되면 전환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할머니가 되기는 싫었거든요. 그런데 39살이 되어도 엄두가 나더라구요. 그래서 6 동안 집에서 거의 나오지 않고 지냈고, 외출도 데이트도 거의 하지 않았죠. 다시 사람도 만나고 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더라구요. 그렇게 집에서 시들어갔죠. 크리스와 결혼했을 정말 포부도 컸어요.”


카다시안의 아이들도 제너의 전환을 응원해 주었고, 특히 킴이 제너의 결정을 가장 반겨 줬다고 한다. 그런데도 2년전 다이앤 소이어와 처음으로 TV 인터뷰를 했을 아이들을 출연시키지 않아 다들 화가 났었다고 한다. 제너는 카다시안 가족들이 인터뷰에 나오면 모든 농담처럼 비칠 같아서 결혼에서 낳은 자녀만 출연시켰다는 것이다.


때부터 제너의 종횡무진 활약이 시작된다. 일단 그녀는 여성의 인권 문제를 다시 인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성은 자신의 힘을 과소평가하는 경우가 너무 많은 같아요. 다들 주변인물이 되도록 세뇌를 받고 자라죠. 뒤로 물러나 있으려고 여자가 아니예요.” 결과 제너는여성들이 역량을 키우고 자신을 챙길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주고 싶다 한다.


필자는 여성의 이러한 긍정이 부분적으로나마 65 동안 남성의 특권을 누리며 살아온 데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제너도 필자의 생각에 기꺼이 동의했다. “맞는 말인 같아요. 다른쪽 인생이 어떤지 살아봐서 아니까요. 경험을 활용할 있었으면 해요.” 너무 솔직한 대답이라 다소 놀랐다. “트랜스젠더 공동체에는 제가 백인인데다가 돈도 있고, 모든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식의 비난이 많잖아요. 그분들 말도 이해는 해요. 하지만 백인인 어쩔 수가 없죠. 그렇게 태어난 거니까. 물론 특권도 누리고 있어요. 평생을 그만큼 노력해서 얻은 거죠. 가능한 현명하게 살려고 했고, 그렇게 성공을 거머지게 됐어요. 하지만 그게 사과할 일은 전혀 아니잖아요?” 제너는 웃으며 말했다.


제너에게 있어 특권이란 만큼 열심히 노력했다는 것을 뜻한다. 한편 동성애와 이성애의 정의를 둘러싼 논란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동성결혼에 대한 그녀의 애매한 대답(물론 지금은 전적으로 찬성하지만, 몇년 엘런 쇼에 출연했을 “‘결혼이라는 단어가 여러분한테 그렇게 중요하다면, 이해할 있다 애매한 발언으로 많은 논란 불러일으켰었다) 보면, 그녀에게 있어 분야가 그리 간단한 사안이 아니라는 것을 있다.


여자하고만 연애를 봤는데, 책에서도 언급했듯, 성별확정 수술을 받게 된다면,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필자는 레즈비언이라는 표현을 써도 될지 물어보니 (제너는 표현에 거부감이 있는 했다), 제너는 전환을 거치기 전에 남자에게 매력을 느꼈냐는 질문으로 받아들이는 같았다. “성적으로는 이성애자예요. 하지만 대중이 올림픽 선수를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전혀 중요한 아니었어요.”


필자가 이런 질문을 하게 , 인터뷰 후반부터 (제너 자신의 말을 빌자면) 평생을 남자의 입장에서 인간관계를 맺어온 자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인터뷰를 마치고 그녀에게 남자 호칭을 쓰는 실수까지 범했다. (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드린다.) 물론 전까지는 오직 여성호칭만 썼었다. 제너의 여정을, 그리고 다른 트랜스젠더들의 여정을 과소평가하는 아니다. 하지만 제너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그녀가 전환 이전의 외적 기표에서 비롯된 전리품에 귀속되어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쨌든 그녀는 섹스에는 관심이 없다고 한다. “연애보다는 우리 공동체를 위해 투쟁할 생각을 하면 신이 나요.” 가엾은 트랜스젠더 공동체.. 제너가 트랜스젠더 공동체에 이익을 가져다 줄지 피해를 끼칠지는 아직 없지만, 우리가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결정할 있다면, 제너 또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스스로를 정의내릴 권리가 있을 것이다. “브루스를 포기하기란 쉽지 않았어요. 아직도 안에 살아 있죠. 지금도 브루스 했던 많은 일들을 하고 있어요. 비행기도 조종하고 가끔은 레이싱카를 몰러 가기도 하죠. 세계의 좋은 점만 누리며 사는 거죠.” 그녀는 눈부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즐기면서도 충분히 진솔한 삶을 있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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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mma Brockes

- 옮긴이: 이승훈




Caitlyn Jenner on transitioning: ‘It was hard giving old Bruce up. He still lives inside me’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1. dead-naming: 상대방을 비하할 의도로 과거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 [본문으로]
  2. gender dysphoria: 태어날 때의 성과 자신이 가진 성별 정체성의 단절 때문에 생기는 극도의 스트레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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