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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8



종교 지도자 500여 명, 공개서한 통해 결혼평등 요구



“결혼평등은 시민결혼이므로, 그 누구의 신앙, 종교집단 및 의식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오늘 오후 자유당이 결혼평등 사안을 논의하기 위해 회의를 소집하는 가운데, 500 명의 종교 지도자들이 총리 앞으로 보낸 공개서한에서 결혼평등은 사회정의와 연관된 사안이라며 의회내 자유투표로 결혼평등 사안을 결정하도록 요구했다. 


평등캠페인(Equality Campaign) 티어넌 브레이디는결혼평등은 시민결혼이므로, 누구의 신앙, 종교집단 의식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국가가 모든 호주인들을 동등한 존엄성을 가지고 대우하기 위한 이라고 주장했다. 


어제 공개된 2017년도 (혼인의 정의와 신앙의 자유) 혼인법 수정안은 시민결혼의 평등을 현실화함과 동시에 앞으로도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우리는 법안의 상정을 환영하는 바입니다.”


이들 종교 인사가 시민결혼의 평등을 지지하는 다름아닌 그들의 신앙과 종교적 가치 때문이며, 공개서한에도 호주 종교인들의 대부분이 결혼평등의 실현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들 종교인은 시민결혼에 대한 법적 정의를 바꾸어 모든 호주인들에게 적용될 있도록하는 한편, 다른 종교인들에게도 시민결혼 평등을 사회정의 사안으로서 지지하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호주인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이들 종교인은 모든 정치계 인사들이 솔선수범하여 시민결혼의 평등을 실현함으로써 국가를 단합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번 공개서한에는 기독교, 유태교, 불교, 이슬람 힌두교 단체에서 참가했다. 


달링턴-벨뷰 성공회 교구의 크리스 베딩 목사도결혼평등을 실현하면 결혼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제도를 제공하는 한편, 종교인들이 자신의 삶을 신앙에 따라 살아가는 데에는 하등의 지장이 없을 이라고 주장했다. 


결혼은 상대방에 대한 지속적인 사랑과 헌신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결혼의 가치를 높이 사기 때문에 모든 커플이 결혼에 필요한 사랑을 경험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애들레이드에 위치한 베이트 샬롬 시나고그의 쇼샤나 카민스키 랍비는제가 서한에 서명한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졌고 따라서 동등한 법적 권리를 지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성커플만큼 깊고 지속적인 사랑을 나누는 동성커플들과 친분을 쌓게 제게 있어 축복입니다.”




- JESS JONES

- 옮긴이: 이승훈




OVER 500 RELIGIOUS LEADERS CALL FOR MARRIAGE EQUALITY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Star Obser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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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7



ILGA 보고서: 72개국에서 여전히 동성간의 관계 법으로 금지



영국이 동성애를 부분적으로 합법화한지 50년이 지난 지금, 동성애를 사형으로 다스리는 국가가 여전히 8개국에 이른다고 한다.


지지난주 베를린에서 열린 프라이드 축제. 독일에서는 올해중 동성결혼이 합법화될 전망이다. 사진: Carsten Koall/EPA



ILGA(국제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간성인 협회)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는 동성애가 비범죄화된지 50주년을 맞았지만 아직도 동성간의 성교를 범죄로 규정하는 국가  지역은 72곳에 이르며 중에서 여성간의 성행위를 금지하는 곳도 45개국에 이른다. 


또한 동성애를 사형으로 다스리는 곳도 8개국이나 되며징역을   있는 곳도 수십여 개국에 이른다고 한다. 



 

같이 읽기:

'진정한 평등은  오랜 세월이 걸렸죠'

동성애자들은 성추행법을 어떻게 바라볼까 



특히 아프리카 남부  동부중동남아시아 지역이 혹독한 처벌법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가장 관용적인 지역은 서유럽을 비롯한 서양권으로 나타났다. 


 50년전 동성애를 비범죄화한 영국은  분야의 선두주자는 아니었다프랑스벨기에네덜란드브라질아르헨티나  1900년대 이전에 동성애를 합법화한 국가가 20여곳이나 되기 때문이다. 



가디언지 도표. 출처: ILGA

이란수단사우디 아라비아예멘에서는 샤리아 율법에 의해 동성애로 사형에 처해질  있으며소말리아 일부 지역과 나이지리아 북부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한편 시리아와 이라크에서는 ISIS 같은 비정부 조직에 의해 사형이 집행되고 있다. 


이번 보고서에는  밖에 샤리아 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있는 국가로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아랍 에메리트카타르모리타니아를 들었지만 이들 국가에서 지금까지 사적인 공간에서 합의에 의해 이루어지는 동성성교를 사형으로 다스린 사례는 없다고 한다. 


동성간의 관계를 계간죄(sodomy)항문성교(buggery)자연의 섭리에 반하는 행위(acts against nature)  다양한 명칭으로 징역형에 처하는 나라는  71개국에 이르렀다. 


한편 이들 국가에는 이집트가 포함되어 있지 않는데 이집트의 경우 엄밀히 말하면 동성간의 관계가 합법이지만윤리를 이유로 수백여 명이 연행구금되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동성애를 비범죄화한 국가는  120개국이지만게중에는 결코 진보적이지 못한 지역도 있다동성애 홍보 금지법을 도입한 러시아의 경우가 그러한데유럽 인권재판소에서는  얼마전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비전통적인 성관계의 홍보 금지한 러시아의 2013년도 법이 패소하기도 했다.


이번 ILGA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앵거스 캐롤은 “사실 LGBT 차별낙인폭력으로부터 안전한 국가는  어디에도 없다 지적했다. 




같이 읽기:



법개혁의 속도도 느리지만 사회의 인식 중에서도 타부와 연관된 인식은  변화의 속도가 너무나도 느립니다.”


그런가 하면 보츠와나케냐짐바브웨튀니지 등에서는 재판부가 인권활동을 위한 단체 조직의 권리를 인정해 주기도 하는 일부 긍정적인 성과도 있었다. 


또한 세계 각지에서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의 “놀라운 바람 불고 있다. 


독일 의회는 투표를 통해 올해중에 동성결혼을 법제화할 계획이며몰타에서도 결혼평등이 이루어짐으로써현재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국가는  24개국으로 늘어났다또한 시민결합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도 20여개국에 이른다고 한다. 


ILGA 보고서가 발표된 시점에서 동성커플의 공동입양을 허용하는 국가는  26개국이며동성커플의 양부모 입양(동성 파트너의 자녀를 입양하는 ) 허용하는 국가는 27개국에 달했다. 


LGBT 자선단체 스톤월의 매트 호우드 대변인은 영국이 1967 성추행법 제정 이후로 이룩한 발전을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직도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고 한다. 


“72개국에서 동성간의 관계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고사형으로 다스리는 국가도 8개국에 이릅니다. LGBT 배제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역할을 해야 합니다그렇게 해서 50 후에는  많은 성과를 돌이켜볼  있도록 해야  것입니다.”


특히 트랜스젠더들이 많은 법적 장벽에 부딛히고 있지만 LGBT 모두가 일상생활 속에서 차별을 겪고 있습니다. LGBT들은 직장학교스포츠계종교계  지역사회에서 여전히 배제당하거나 언어적 신체적 학대를 겪고 있습니다.”




Pamela Duncan

옮긴이이승훈





Gay relationships are still criminalised in 72 countries, report finds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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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7



퀴어정치는 변화의 원동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이룩한 발전을 자축하자.



1967년 남성 동성성교의 합법화는 평등이 아니라 연민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우리의 투쟁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이룩한 성과에 자부심을 가지자.


자넷 윈터슨은 ‘Oranges Are Not the Only Fruit’의 저자다. 사진: Murdo Macleod for the Guardian

1990 BBC2 "Oranges Are Not the only Fruit" 2화가 방영되면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18세가  되는  소녀가 키스를 나누며 섹스를 나누려는 장면이 나간 것이다. 


영국에서 여성성간의 성행위가 금지된 적은 없다헨리 8세의 항문성교 금지법(Buggery Act: 당시는 항문성교를 buggery 불렀다) 1861 인간에 대한 추행법(Offences Against the Person Act) 대체되었을 때에도 여성간의 성교는 무시되었다. 


 이유는 여성 자체가 무시 당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1870 기혼여성 재산법(Married Women's Propeety Act)이 제정되기 전까지 결혼과 함께 여성의 정체성은 남편에게 흡수되었으며여성은 자신의 신체는 물론  어느것도 소유할  없었다그리고 당시나 지금이나 남자들의 마음 속에는 남근이 등장하는 섹스만이 진정한 섹스라는 개념이 유치한 보루로 남아 있다. 


사회가 동성성교로 받는 고통과 동성성교에 가하는 고통의 (하반신이 아니라중심에는 가부장적 질서의 혼란이 자리잡고 있다구시대적 사고방식에서는 동성 관계에서도 남자역할과 여자역할이 있는 곳으로 받아들여졌다이러한 사회적 규범은 너무 유효한 나머지 퀴어들심지어는 가벼운 섹스를 추구하는 이들마저  규범에 의해 세뇌되었고  그래도 힘든 상황에 혼란과 죄책감을 더해갔다. 


1980년대 나는 가죽 점퍼에 찢어진 청바지나 스커트에 브래지어가 드러나는 차림으로 클럽을 드나들곤 했다하루는 The Well of Loneliness[각주:1]에서 튀어나온 듯한 부치가 다가와 " 빵이야잼이야?"라고 물었다나는 내가 샌드위치라는  깨닫는   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성적 다름에 대한 적대감은  남성들이 자기 입맛대로  세상을 배치하는 이성애주의에 맞선 노골적함축적 도전에 대한 적대감이다페미니즘은 퀴어 정체성과 함께 모든 측면에서 이러한 특권과 추측에 대응해 왔다물론 난처한 상황도 있다게이들도 결국 남자고 트랜스젠더들도 문제가 전혀 없는  아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렇듯 내부를 향한 질문도 지금  세상을 바꾸기 위한 것으로페미니즘처럼 퀴어 정체성도 지금  세상을 바꿀  있는 진정한 원동력이다. 


세상을 바꾸는 데에는 요지부동한 역할에서 벗어나는 것도 포함된다. (페미니즘이 수십년 전부터 부르짖어 왔던 부분이기도 하다.) 남녀 아동들을 성차별 없이도 성적인 인간이   있도록 키우는 것도  예라   있을 것이다성은 결코 무시할  없다인간은 자신의 솔직한 욕구나 성적 표현 방식을 거부당하면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없다성을 통한 자아발견은 고립된 것이 아니라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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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대처 정권이 지자체 정부법 28조를 가결시켜 학교내 동성애 "홍보" 전면 금지시켰다조항에 나오는 "의사(擬似가정"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지만 학교에서 이성애 이외의 성정체성을 긍정적으로 다루면  된다는 것만은 확실했다마침 28살이었던 나는  조항이 증오를 법제화한 거나 다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위 합법화가 이뤄진 1967년부터 성관계 승낙연령이 평준화된 2003년까지 동성간의 성교는 범죄행위가 아니었운에도 불구하고  시기 동안 3 명이 넘는 남성들이 성추행이란 명목으로 처벌받았다성관계 대상이 여성이었다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을 행동으로 말이다. 


1967년의 비범죄화  문제점은 그곳이 경멸과 연민에서 비롯된 진보라는 점이었다당시 의회 보고서나 언론 보도를 보면 이성애의 정상화  가부장적 구조에 대한 의구심성적지향의 평등에 관한 언급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섹슈얼리티와 사회의 대약진이 법에 반영된  2000년대 이후의 일이었다. 2000 토니 블레어 정권이 동성애자의 군복무를 허용했고  뒤로 성관계 승낙연령 평준화와 28조의 폐지가 잇따랐다. 2004년에는 시민결합제도가 실시되었고 2006년에는 입양아동법이 제정되어 동성커플도 공동으로 자녀를 입양할  있게 되었다그리고 2014년에는 많은 논란 속에서 결혼평등법안이 가결되었다. ("이젠 우리 멍멍이나 냉장고랑도 결혼할  있겠네", "종말이 다가왔도다", "이제 기후변화가  일어나는지 알겠지?" 등등) 


지금은 트랜스젠더 관련 법개정이 추진중인 가운데 2019년까지 교과과정에 동성간의 사랑을 의무적으로 언급하도록 하는 계획이 진행중이며여기에는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들에 대한 긍정적인 묘사도 포함된다이건 분명 좋은 소식이다. LGBTQIA라면 영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국가라는 점을 자랑스럽게 여길만도  것이다한편  평등권을 지지해   윗연배의 지인은 “내가 니네 편인  맞는데도대체 알파벳 약자를 얼마나  갖다붙여야 되는 거냐라고 묻곤 한다우리  사람 모두 2014 (Q 대문자로 쓰시는  )께서 40주년을 맞은 레즈비언 게이 교환대(Lesbian and Gay Switchboard) 축하메시지를 보낸 것에 대해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캠페인 단체 스톤월의 루스 헌트 이사장이 지적한 것처럼 영국은 교역국  원조 대상국을 상대로  입장을 확실히 해야  필요성이 있다동성애를 법으로 금지하는 국가가 아직 72개국에 이르고   8개국에서는 사형으로 다스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학교내 집단괴롭힘 문제가 무시 또는 묵인되고 있으며동성애자  양성애자 학생들  절반이 집단괴롭힘과 조롱에 시달린 적이 있다고 한다특히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가진 아이들의 경우는  수치가 64% 달한다동성애자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하다는 끔찍한 선입관은 자기자신(자신의 욕구  ) 대한 두려움그리고 상대방이  연약한 정체성을 보호하기 위해  해치려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어떤 건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자기성찰은 정신건강의 일부고  좋은 것이지만 자기혐오는 백해무익하다 


교회가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실로 유감이 아닐  없다다음 목표는 교육을 통한 종교상의 편견 퇴치가 되어야  것이다하루가 멀다하고 새롭고 참신한 증오방식을 권장하며사랑을 저지하는   많은 노력이 할애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까지 우리가 이룩한 발전을 자축하고 싶다내가 애크링턴에서 유년기를 보내던 시절 신문가게를 운영하는  여성이 있었는데 거기에 가면  공짜로 초콜렛을 얻어먹곤 했다사람들은   여성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실제로    사람은  발라클라바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는데  그냥 수줍음이 많아서 그렇거니 하고 생각했다그런데 하루는 우리집 여사가   사람이 “부자연스런 욕정 사로잡혀 있다며  가게에  가게 했다. 그때 나는  말이 과자에 화학약품을 섞었다는 뜻인 줄로만 알았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내가 사는 코츠월즈라는 마을에는 맨체스터에서   여성이 찻집을 운영하고 있는데 커밍아웃도 했고 아무 문제 없이  지내고 있다지역주민들과도  어울리고 본인들이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기쁘게 생각하기까지 한다  사람은 아이들 그리고 가게를 찾는 손님들그냥 자신의 삶을 살며  세상에 좀더 많은 사랑을 전파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아주 좋은 영감이 되고 있다. 




Jeanette Winterson

옮긴이이승훈 




Queer politics has been a force for change; celebrate how far we've come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출처: http://mitr.tistory.com/3534 [해외 성소수자 소식 블로그 미트르]

  1. '고독의 우물’: 래드클리프 홀(Radclyffe Hall)의 레즈비언 소설. 1928년 재판에서 이 책을 모조리 파기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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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동성애 비범죄화 50주년

유럽/영국 2017.08.04 18:30 Posted by mitr

국가에 의한 증오범죄와 그 희생자들 그리고 과거사 처리문제


50년대 영국을 뒤흔들며 동성애자 인권에 변화를 초래했던 와일드블러드 스캔들


에니그마 암호해독자 앨런 튜링, 군주사면 받아


영국:사후사면조치로 오스카 와일드 무죄 입증되나


로저 케이스먼트: 아일랜드의 순교자는 동성애자였는가, 영국측의 날조였는가?

영국 동성애자 사후사면 조치에 대한 독자들의 생각: 우린 사죄를 원한다’

게이남성들의 삶을 파멸시킨 영국. 사면조치만으로는 부족하다.

아직도 영국사회를 좀먹고 있는 LGBTQ에 대한 증오. 축하는 이르다.


테레사 메이: 동성애자 인권에 대한 토리당의 과거 입장은 잘못된 것




1967년 성추행 금지법 제정과 남성 동성애의 부분적 비범죄화


영화 Victim에 출연했던 피터 맥에너리, ‘게이들로부터 고맙다는 내용의 편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영국 동성애자들의 삶은 1967년 이후 어떻게 바뀌었을까: “우리 세대는 지금도 여전히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영국의 동성애 금지법이 50년 전에 폐지되었다는 근거 없는 주장에 빠져선   


퀴어정치는 변화의 원동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이룩한 발전을 자축하자.


영국: ‘진정한 평등은 더 오랜 세월이 걸렸죠’ 동성애자들은 성추행법을 어떻게 바라볼까


동성애 금지법 폐지 50주년을 맞이해 재조명되는 영국의 동성애사

동성애사 기념에 나선 영국 내셔널 트러스트 


제프리 윅스著 커밍아웃 리뷰 - 영국 동성애 해방사의 고전



향후 과제 


영국: 브렉시트 투표 이후 석달사이 혐동성애 폭행사건 147% 증가


트랜스젠더 아이들: 최전선에  부모와 의사들


영국 트랜스젠더 학생  절반이 '자살 시도한  있다'


테레사 메이가 트랜스젠더들을 위해 긍정적인 정책을 시행하려 하고 있다. 


영국: 트랜스젠더 논쟁의 옳은 편에 선 토리당


동성커플의 연금 평등을 위한 법정투쟁에서 기념비적 승리를 이끌어낸 남성



영국 그리고 세계


ILGA 보고서: 72개국에서 여전히 동성간의 관계 법으로 금지


제국 시절 수출했던 동성애혐오를 되돌리지 못하는 영국





- 옮긴이: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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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30



트랜스젠더 논쟁의 옳은 편에 선 토리당



저스틴 그리닝 교육부 장관이 젠더 인정법을 재검토하기로 한 건 미래를 향한 중요한 한 걸음이지만, 트랜스젠더 평등에 있어 더 중요한 건 문화인식의 변화일 것이다.
* 매튜 단코나는 가디언지의 칼럼니스트입니다.



‘젠더의 유동성이 대두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트랜스젠더들이 학교나 가정, 직장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언급하는 데 예전만큼 부담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조류를 일시적인 현상이나 끔찍한 사회적 질병으로 치부하는 건 그릇된 사고방식이다.’ 사진: Pacific Press/REX/Shutterstock



보수주의자들이 일을 잘 잘할 땐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고, 그렇지 못할 땐 시계를 과거로 되돌리려 한다. 토리당내 진보파 인사들이 현실적으로 변화를 이끌어내려 반대파들은 그대로 상상속의 과거에 향수를 느끼며 역사를 거스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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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당 소속의 수상이 (연립정부기는 했지만) 의회에서 결혼평등을 이끌어냈다는 중요한 것도 바로 때문이다. 데이빗 캐머런의 반대파 누구도 그가 무슨 냉소적인 이념적 계획을 실행하려 한다거나 정치적 올바름에 고개를 숙이려 한다는 주장을 하진 않았다. 결혼평등은 순전히 상식과 시민의 평등권을 인정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같은 이유로 필자는 저스틴 그린 장관이 준비중인 2004년도 젠더 인정법 개정안 대해서도 비교적 낙관적인 편이다. 올가을에 시작되는 논의회에서는 작년 하원 여성 평등 위원회에서 제출한 트랜스젠더 관련 권고사항을 참조하되 권고 내용만을 다루진 않을 것이라고 한다. 


마리아 밀러 위원장은 지난 토요일 타임즈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어떻게 내보일지는 본인의 자유"하고 했다. 정말 옳은말이 아닐 없다. "하지만 결코 쉽게 결정할 있는 사안도 아닙니다." 또한 지당하다. 


토리당 고위층이 관련사안을 논의하고 있다는 사실은 트럼프가 지난주 트위터를 통해 시전한 유치함(“미국정부는 트랜스젠더의 군복무를 수용 허용하지 않을 ”)이나 참모들이 SNS 게시글을 최고 사령관의 공식 명령으로 받아들이길 거부 사실에 비하면 유쾌한 것이다. 


젠더의 유동성 대두하고 있다는 , 그리고 트랜스젠더들이 학교나 가정, 직장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언급하는 예전만큼 부담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는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조류를 일시적인 현상이나 끔찍한 사회적 질병으로 치부하는 잘못되었을 뿐만 아니라 용기를 내서 자신의 처지를 밝힌 이들을 모욕하는 처사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은 부정할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진지한 보수주의자라면생물학적 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주장에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탈진실 시대의 불길한 특색이라 있는 일종의 과학에 대한 과학부정주의라 있다) 극소수에 불과한 간성인 유아 제외하면 우린 신체적으로 남성 아니면 여성의 몸을 가지고 태어나며, 이러한 차이점을 자의적인젠더 재확정이라는 이름으로 기각하는 것은 의료상으로 보면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점을 배제하면 우린 더 중요한 부분에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할 있다. 하원의 여성평등 위원회가 트랜스젠더들의 젠더 전환을비의료화시켜야 한다고 권고한 것은 전적으로 옳은 일이었다. 젠더란 생물학적 성과는 달리 사회적 구조물이다. 따라서 개인의 정체성은 사람의 자치권에 있어 본질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16살짜리 트랜스젠더가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공표하기 위해 굳이 의사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걸까? 국민보험연금의 자원을 이런 모욕적인 절차에 허비해야 하는걸까?


기본적인 원칙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좀더 중요한 질문을 생각해 있다. 논의회에서는 트랜스젠더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두려움에 대응하는 한편, 고용관행이 유동성을 더해가는 사회정세를 반영할 있도록 함으로써 차별과 괴롭힘을 근절하기 위한 방법 검토할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검토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직면하게 현실성의 문제를 회피해서는 것이다. (적어도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이들에게 있어) 원칙은 명백하지만, 변화를 적용하는 데에는 미묘함과 세심함 그리고 예외가 필요할 것이다. 



‘동성결혼의 경우 가장 주된 장애물은 종교적 민감성이었지만, 트랜스젠더 평등의 경우 문제는 더 복잡하다.’ 사진: Marc Mueller/EPA


예를 들어 2010년에 제정된 평등법 합당한 목적에 상응하는 수단일 경우특정성 또는 성별에 따른 서비스를 제공할 있도록 허락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서비스 제공자가 트랜스젠더를 배제할 있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만약 젠더 인정의 비의료화가 진행된다면 (실제로 그렇게 되어야 하지만) 트랜스젠더를 배제할 있는 권리는 사회적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키게 것이다. 


트랜스젠더 여성이 강간 피해자 센터에서 일할 자격이 있는지, 특정 전용 병실이나 여성화장실 이용해도 되는지 여부는 쓸데 없는 질문도, 편견에 질문도 아니다. 예컨대 그리닝 장관의 개혁안은 남성들이 젠더 본인인증 제도를 악용해 직장을 구하거나 여성의 진출을 향상시키기 위한 프로젝트에 응모하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이러한 딜레마를 뚫고 나가는 과정은 혐트랜스젠더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반대라 있다. , 향후 관련 논의는 진보적인 개혁이 동반할 있는 이윤의 대립을 극복해야 한다는 명백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러려면 솔직함과 양심이 필수적이다. 


동성결혼의 경우 주된 장벽은 종교적 민감성이었는데, 장벽은 제정법에 종교단체가 동성결혼식을 거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예외조항을 추가함으로써 단도직입적으로 타결할 있는 것이었다. 트랜스젠더의 평등에 따르는 질문들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지만, 그렇다고 질문에 대한 공정하고 공평한 대답을 모색해선 하등의 이유도 없다. 


필자의 생각에 해결책은 성별 정체성만큼이나 각양각색이 같다. 어쨌든, 많은 경우에 있어서 향후 기반시설들은 예전보다는 이분법적인 사회를 수용할 있어야 것이다. 기존의 시설에도 칸막이를 늘려야 것이고, 보건제도 개편방식도 진화해야 것이며, 교도소 재소자의 분류방식 성별중립 화장실의 설치방식도 재검토를 거쳐야 것이다. 


한편 경험에서 비롯된 기개가 이론적인 주장을 이기는 사례도 있을 것이다. 성별에 따른 호칭법과 트랜스젠더 자신이 호칭법을 직접 결정해야 절대적인 권리에 대한 논쟁이 수도 없이 오갔다. 다원적인 사회에서 절대적인 권리란 없다. 무엇보다, 상사가 자신을 ze, zie, ve 같은 대명사로 불러주길 바라며, 그렇지 못했을 증오발언이라고 주장할 트랜스젠더 직원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필자의 상상력이 부족한 탓 수도 있지만, 솔직히 이런 부분이 문제로 부상할 같지는 않다. 지금 어마어마한 도전으로 보이는 것들은 수천 수만 번에 걸친 인관관계를 통해 스스로 해결될 것이다. 물론 법은 개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중요한 문화인식이라고 하는 신령한 영역 변화일 것이다. 


사실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원하는 존엄성과 가치의 평등이다. 따라서 문명적이고 개방적인 분위기가 유지되는 결코 사명을 추진하기 위한 논의를 두려워해서는 것이다. 앞으로 헤쳐가야 지적 중량화물도 한가득이지만, 인류의 총체적인 행복도를 제고시킬 기회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토리당이 싫다고 해도 이들이 기회를 잡으려 한다는 사실만은 기쁘게 받아들이자. 




- Matthew d'Ancona

- 옮긴이: 이승훈




The Tories are on the right side of the transgender deb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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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8



제국 시절 수출했던 동성애혐오를 되돌리지 못하는 영국



과거 피지배국에게 동성애 금지법을 들이민 것보다 지금 금지법을 폐시시키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 에드워드 아킨톨라 허버드는 위트레흐트 대학교의 대중문화 및 사회학과 조교수입니다.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동성애혐오에 맞선 투쟁은 문명화의 중요한 척도로 작용하고 있다.” 사진: Raul Arboleda/AFP/Getty Images



올해는 영국이 항문성교 금지법(Buggery Act) 폐지한지 50주년을 맞는 해이다. 1533 헨리 8 제정된 법은 동성간의 성교를 사형으로 다스리기 위한 것이었다. 향후 세기에 걸쳐 영국이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제국으로 발돋움하면서 항문성교 금지법도 식민지로 수출되었고, 대부분은 지금도 남아 있다. 영국은 현대적인 민주주의 국가로서 수많은 진보적인 업적을 이루었고 금지법의 철폐 50주년을 기념하고 있다. 반면 일찌기 영국의 식민지였던 자메이카에서 동성간의 성교는 여전히 1861년에 제정된인간에 대한 범죄 금지법(Offenses Against the Person Act) 76조와 77조에 의해 금지되어 있으며, 전자는항문성교 후자는성추행 8 이하의 징역형으로 다스리고 있다. 


영국이 법을 철폐시킨 인권으로 보나 사회의 포용성으로보나 기념비적인 승리였지만, 속에는 아이러니로 가득차 있다. 과거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은 수많은 국가들은 제국주의적 지배의 쇠사슬을 끊고 문화적, 정치적으로 독자성을 추구하고 싶어하면서도 항문성교만은 예외로 두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식민지배의 전초지였던 카리브해의 영어권 국가들은 반동성애법을 적극 시행하는 , 현재 동성애혐오가 가장 극도에 달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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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자메이카의 댄스홀 슈퍼스타 부주 밴턴의 스매시 히트 Boom Bye Bye 발매되자 카리브해 아프리카 문화권에 만연한 동성애혐오 풍조에 전에 없던 관심이 집중되었다. 게이들을 잔인하게 죽이자는 내용의 곡은 북미지역과 영국에서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뉴욕을 거점으로 활동하던 GMAD(아프리카계 게이남성들의 모임) 미국, 캐나다 영국의 기타 LGBTQ 관련단체들은 부주 밴턴의 콘서트장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고, 라디오 방송국과 프로모션사에도 LGBTQ 폭력을 조장하는 댄스홀 음악을 보이콧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하지만 댄스홀 음악계와 자메이카의 일부 지식인들은 이들의 시위가 댄스홀 음악에 대한 검열이며 자메이카의 가치관이 영미권 문화의 제국주의에 의해 공격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영국 식민지배 당시의 법이 갑자기 자메이카 고유의 가치관으로 둔갑해버린 것이다. 해외에서 자메이카의 반동성애적 폭력에 대한 비판이 일자 오히려 국수주의적 움직임을 부추겨 이러한 비판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현재 항문성교 금지법은 자국문화의 보호를 위한 필수요건이자 서양의 진보적인 가치관에 맞서기 위한 장벽 또는 자메이카인들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도덕적 순결성을 보호하기 위한 얼마 남지 않은 수단으로 언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는 동안 자메이카의 댄스홀 아티스트들은 계속해서 동성애혐오를 댄스홀 장르와 공연문화 캐릭터의 개성으로 받아들이고 공공연하게 장려하며 국내외에서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여기엔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영국 , 일찌기 항문성교 금지법을 발명해 전세계에 퍼뜨렸던 제국 지금 이들 국가에 대해 당시와 똑같이 공격적인 태세로 동성애 친화적인 대외정책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데이빗 캐머런 수상의 정권의 이러한 노력은 반발만 샀고, 지배국과 식민지 사이의 문화적, 정치적 전쟁을 유발시켰다. 


반동성애법을 철폐해야 대외원조를 하겠다던 영국의 제안으로 수많은 3세계 국가들은 반제국주의와 문화 보호주의를 내세운 포퓰림즘적인 언설로 무장하기에 이르렀다. 당혹스럽고 아이러니한 영국의 식민지 착취가 얼마나 끔찍했는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는 가운데, 영국이 진보적인 안건을 통해 과거 피지배국들 , 극악한 구시대적 법으로 동성애혐오를 합법화하고 있는 나라들을 대상으로 도덕적, 문화적 우위를 유지하게 됐다는 점이다.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동성애혐오에 맞선 투쟁은 문명화의 중요한 척도로 작용하고 있으며, 동성애혐오는 후진적인 문화와 디스토피아를 보여주는 궁극적인 기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편 독립후 카리브해 지역에서 동성애혐오는 여러가지 목적을 수행해 오고 있다. 첫번째로 동성애혐오는 LGBTQ 인권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전면 기각하고 반대함으로써 포퓰리즘적이고 반제국주의적 슬로건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리고 두번재로는 M 재키 알렉산더(M Jacqui Alexander) 같은 학자들이 지적하듯, 동성애혐오는 빈곤국가들이 LGBTQ 반대 의제를 추진함으로써 시급한 국내사안들로부터 사람들의 주의를 분산시킴과 동시에 강력하고 마초적인 지배권을 굳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동성애혐오는 카리브해 지역의 성관광 관련 지하경제의 활성화하고, 유해한 초남성성을 이용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영국이 젠더와 성의 포용 면에서 진보적인 성과를 이룩하고, LGBTQ 인권가들이 과거 피지배국가들에 만연한 동성애 금지법에 주의를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현재진행 중인 수많은 동성애혐오 외에도 반동성애적 폭력을 법으로 허용해 영국의 역사를 충분히 이해해야 것이다. 




- Edward Akintola Hubbard

- 옮긴이: 이승훈




Britain can’t just reverse the homophobia it exported during the emp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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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7




아직도 영국사회를 좀먹고 있는 LGBTQ에 대한 증오. 축하는 이르다.



동성애의 부분적 비범죄화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동성애자 및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은 여전히 편견 속에서 고통받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적절한 반응은 감사가 아니라 분노여야 할 것이다.
*오웬 존스는 가디언지 칼럼니스트입니다.




동성애 해방 50주년  아웃!  아웃!  아웃!’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동성애가 부분적으로 비범죄화된지 50주년을 기념하는 날을 우리는 감사가 아니라 분노, 타오르는 격분으로 맞아야 것이다. 우리가 나라에서 이상 합법적인 처벌대상이 아니라는 , 그리고 예전보다는 미움받고 비판받는다는 결코 감사할 일이 아니다. 누구나 당연시하는 대우를 받는다는 특별한 선물이 아니다. 평등은 특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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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을 감사로 맞는다는 정부가 LGBTQ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인 마치 박해자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거나 다름없다. 하지만 우리의 법적 권리는 LGBTQ들이 사람들의 침세례를 받고, 언론으로부터 매도당하며, 대다수 국민들로부터 악마 취급을 받고, 법에 의해 처벌받으며, 투옥과 화학적 거세를 당하고 자살을 강요당하며 일궈낸 것이다. 


우리는 날을 맞아 어찌 감히 우리의 권리를 박탈할 있는지, 어찌 감히 아직도 우리를 온전히 평등한 인간으로 받아들이지 않는지 반문해야 한. 그리고 감사는 스스로 부정을 당하며 우리 모두의 권리와 자유를 위해 삶을 헌신한 이들에게 헌정되어 것이다. 


반세기 영국의 사법제도는 부분적인 비범죄화를 기념하면서 예전보다 많은 게이 양성애자 남성들을 체포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필자가 태어나기 4년전인 1980년에야 비범죄화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정부가 유죄선고로 삶을 망친 이들을 사면 거라고 한다. 사면이라... 사면이 아니라 고개 숙여 사죄를 해야 마땅하지 않을? 사면은 LGBTQ들이 무자비한 짓을 저지른 정부에 대해 내릴지 말지 결정해야 하는  맞 것이다. 올해로 81세인 키스 비들컴 옹의 예를 들어보자. 1950년대 그는 동성과 성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투옥되었다. 정부는 그에게 섹스 파트너들의 이름을 대면 형량을 대폭 줄여주겠다고 했고, 그렇게 발각된 사람들 중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이도 있었다. 


물론 영국 사회의 인식도 극적으로 변화했지만, 그건 모두 우리 LGBTQ 덕분이다. 이성 커플들은 길거리를 다닐 아무 생각 없이 손을 잡곤 한다. 하지만 동성커플들에게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애정표현이라 있는 이런 행동마저 정치적 반항행위가 되어야 한다. 올초 페컴에서는 청년이 남자친구와 손을 잡고 퍼브에 들어갔다가 유리잔으로 얼굴을 두들겨 맞은 사건이 있었다. 작년에는 커플이 채어링 크로스에서 손을 잡고 다니며 사람들이 퍼붇는 욕설을 동영상으로 담 공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사랑하는 이에게 애정을 표현했다는 이유로 겪어야 하는 증오를 신고하지 않고 지나간다.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는 동성애혐오와 트랜스젠더혐오는 성별규범을 규제하고 강화하기 위한 잔혹한 도구로 쓰이고 있으며, 아이들은 그로 인한 편견을 아주 어린 나이 때부터 내면화시키며 자라고 있다. 게이, 퀴어, 호모이반이든 일반이든남자답지 못한 행동 보일 때는 어김없이 이런 말들이 날라온다. 운동신경이 부족한 아이들, 치고박고 싸우지 않는 아이들, 여자애들에 대해 경멸하는 투로 말하지 않는 아이들 등등.. 아이러니한 이성애자들도 똑같이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국에서 50 이하 남성의 가장 사인은 자살인데, 이유 중에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뭐랄까.. 게이틱한 행동으로 치부된다는 것도 있다. 하지만 LGBTQ 청소년들의 경우 상황은 훨씬 심각하다. 열등감, 자신이 잘못됐다는 생각 또는 더럽다는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성장하다보니 이로 헤아릴 없는 피해가 초래되는 것이다. 


(최근에 진척이 있긴 하지만) 트랜스젠더들의 경우 위기감은 크다. 작년에는 트랜스젠더혐오에 의한 증오범죄가 폭증했지만, 처벌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스톤월 측에서 공개한 수치에 따르면, 트랜스젠더 청소년 10 8명이 자해를 적이 있고,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는 청소년도 절반에 가까운 것으로 드러났다. 모든 내면화된 수치심 때문이지만, 수치심은 우리가 아니라 그들이 느껴야 한다. , 청소년들(트랜스젠더, 동성애자, 양성애자 등등) 두려움과 자기혐오 속에서 자신이 잘못됐다는 생각, 자신은 더럽고 고장났다는 생각을 하며 자라도록 내버려둔 사회가 수치심을 느껴야 옳은 것이다. 어릴 받은 손상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다. 어릴 심어진 시한폭탄은 10, 20, 30 후에 폭발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러한 위기 앞에서 대책을 세우긴 커녕, 이론을 운운하며 프로그램을 축소시킴으로써 LGBTQ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피해를 줄일 있는 정신건강 서비스를 폐쇄시키고 있다. 


부분적인 비범죄화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영국정부에는 단도직입적으로말해 LGBTQ들의 존재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는 정당이 부상하고 있다. 끔찍하기 그지 없는 민주연합당(DUP) 북아일랜드에서 동성커플의 결혼할 권리를 부인해 왔고, 설립자는울스터를 계간죄로부터 구하자 캠페인을 이끌기도 했던 인물이다. 당수의 아내이자 하원의원 출신인 아이리스 로빈슨도 동성애는역겹고 혐오스러우며, 구역질나고 사악한 이라는 말을 내뱉었다. 이언 패슬리 주니어 민주연합당 의원게이와 레즈비언 행위는 정말 역겹다 했다. 결혼평등에 반대표를 던졌던 토리당의 마이클 팰런이우리당과 가장 공통점이 많은 정당은 바로 민주연합당이라고 발언을 LGBTQ 시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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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정부는 동성애자들을 교수형으로 다스리고, LGBTQ들을 위협하는 극단적인 이론을 퍼뜨리는 사우디 아라비아 같은 나라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해 안달이 나 있. 테레사 메이 자신도 LGBT들의 시민권에 반대표를 이끌어내기 위해 부단히 로비활동을 인물이다. 메이는 내무부 장관이던 시절, 동성애자 난민들은 돌아가면 처형, 고문, 심지어는 사형을 당할지도 모르는 나라로 강제출국 당하지 않기 위해 성교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제출해야 했다. 



이렇듯 지난 50년을 돌이켜 봤을 감사란 결코 있을 없다. 이미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우리 사회는 적어도 앞으로 이런 피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힘써야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나라를 좀먹고 있는 편견의 자취를 모두 근절해내야 것이다. 이번 50주년은 축하를 위한 날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투쟁한 이들을 기억하고, 그들이 이루려 했던 승리를 되새김하는 날이 되어야 것이다. 




- Owen Jones

- 옮긴이: 이승훈




Hatred of LGBTQ people still infects society. It's no time to celebr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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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3



영국 동성애자들의 삶은 1967년 이후 어떻게 바뀌었을까: “우리 세대는 지금도 여전히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1967년 가결된 성추행법(Sexual Offences Act)는 하나의 전환점이었지만, 그 영향은 복합적이고 느린 것이었다. 사이먼 캘로우, 모린 더피 등의 인사들이 동성애 비범죄화를 전후로 한 삶을 회상한다.



동성애자 해방전선 시위. 1972년 런던. 사진: Clive Dixon/REX/Shutterstock



1967 6 14 11 30. BBC2에선 Late Nigh Line-Up 시작되고 있었다. 색서폰 소리와 함께 카메라가 진지한 표정의 토론 참가자들의 얼굴을 비췄다. 패널은 의사, 사회심리학자, 보수당 의원과 작가로 구성되어 있었다. 당시 가장 뜨거웠던 주제 , 동성애에 대해 토론하며 당일 저녁에 방영되었던 다큐멘터리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말하는 자리였다. 사회자 마이클 딘의 말을 빌자면 “ 어떠한 비판이나 의견 없이 동성애자들이 스스로 처한 상황을 직접 말하는 방송이었다. 


토론 참가자들 중에서 공통된상황 처해 있는 사람은 모린 더피 뿐이었다. 영국에서 가장 초창기에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이었던 더피는 레즈비언들의 삶을 다룬 소설 ‘The Microcosm’ 작가로, 책은 그보다 앞서 출판되었었다. 올해로 83세인 더피는 그날 저녁이 동성애자의 가시성에 있어 중요한 순간임은 분명하지만, 자신은 다른 동성애자들에 특권적인 위치에 있었다고 한다. “프리랜서 작가였으니까, 동성애자임이 발각되어서 직장을 잃을 염려도 없었어요. 숨길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의견을 피력하기 수월한 위치에 있었다고 있죠.” 게다가 여성이었던 더피는 사생활이 범죄로 내몰릴 우려도 없었다. 당시 법은 남성간의 동성애만을항문성교라는 용어하에 종신형으로 다스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을 드러내길 꺼려했던 남성들이 많았고, “여건이 되는 여성들이 대신 일어나 법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운동을 펼쳤다 한다. 


지금으로부터 50년전, 그러니까 Late Night Line-Up 방영된지 성추행법(Sexual Offenses Act 1967) 여왕의 승인을 받았다. 법에는사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동성애 행위는 당사자들의 나이가 21 이상이고, 합의에 의해 이루어질 경우 범법행위가 아니다 되어 있다. 영국 역사상 법이 남성간의 성행위를 대대적으로 허용 사례였다. 


성추행법의 제정은 1954 구시대적인 법제도를 현대화시키기 위한 목적하에 설립된 울픈든 위원회의 연구결과를 시행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기에 가능했다. 지그문트 프로이드, 알프레드 킨제이를 비롯한 학자들의 업적과 개인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 덕분에 동성애에 대한 인식도 서서히 변화하고 있었고, 1957 울픈든이 사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동성애 행위를 범죄화해서는 안된다는 결론 내렸을 때는 캔터버리 대주교마저일반적으로 법도 개입해서는 안되는 신성한 사생활의 영역이 있다 이에 동의하는 입장을 내비쳤다. 


리오 앱세이(Leo Abse). 1969년. 사진: Evening Standard/Getty Images

울픈든 위원회에서 결론이 공개되 동성애 법개정 협회(Homosexual Law Reform Society) 등의 압력단체들이 결성되어 기세를 더했다. 런던에서 열린 동성애 법개정 협회의 1 회의에는 저널리스트들과 정신분석학자 주교의 호소를 듣기 위해  수천여 명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의회는 계속해서 사안을 미루다가 1966년에야 해럴드 윌슨 수상의 정권이 애런 보수당 상원의원과 리오 앱세이 노동당 하원의원의 평의원 법안을 저지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법안은 101 16으로 하원을 통과하게 된다. 하지만 법안은 사적인 행위에 대한 규제 완화의 대가로 "공공질서" "품위" 중점을 두고 있는데 따라서 일부 성추행에 대한 처벌은 2년에서 5년으로 형량이 늘어났다.


이들의 노력은 자긍심과는 거리가 것이었는데, 애런 경은과거 감금된 경험이 있거나 앞으로 교도소에 입성할 이들은 차분하고 품위있게 처신하길 바란다 말을 남겼다. , 괜한 분란을 일으키지 말란 소리였다. 


당시 17살이었던 카터는 법안 가결에 관한 기억이 희미하다고 한다. 그가 법안의 의의를 깨달은 시간이 지나서였다. 70년대 커밍아웃의 계기가 되었던 대학교 동성애자 협회도 비범죄화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덕분에 자유롭게 만나 모임을 결성할 있게 되었죠.“ 그것이 중요한 이유는모일 만한 장소가 없으면 결국 크루징이나 묻지마 섹스로 치닫게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곁눈질하며 긴장하던 사람들이 섹스를 위한 목적이나 타협, 두려움 없이 적절한 방법으로 대인관계를 맺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1967 당시 18살이었던 배우 사이먼 캘로우 또한 비범죄화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다고 한다. “법안이 가결되기를 고대하며 TV 앞에 앉아 있진 않았어요. 당시 법적 상황이란 동성애자들을 감싸고 있던 전반적인 우울함의 일부분이었죠. 동성애자라고 하면 범죄자 아니면 끔찍한 변태로 받아들여지던 시대였으니까요.” 학교를 마치고 서점에 취직한 캘로우는 Old Vic 극장에서 활동하던 로렌스 올리비에에게 팬레터를 보냈다. 편지를 받아본 올리비에는 캘로우에게연기가 그렇게 좋으면 직접 와서 보라 했고 마디가 캘로우의 삶을 바꿔놓았다고 한다. “극장에 가보니 지금까지와는 수많은 게이들이 굳이 자신의 성향을 입밖에 내진 않았지만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도 완벽하지만은 않았다. “(극작가) 오튼이 케네스 할리웰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매표소 직원이 오튼과 절친한 사이였어요. 그곳에서도 게이들의 삶은 폭력, 범죄, 절박함과 무관하지 않았죠.”


동성애자들의 삶을 우울하게 하는 뿐만이 아니었다. “ 매표소 직원한테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라는 책이 있었는데, 당시만 해도 굉장히 충격적인 소설이었죠. 크로스드레서와 매춘부들의 삶이 그대로 드러난 책을 읽으며, 이렇게 되긴 싫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식으로 말하면동성애의 긍정적인 묘사 결여되어 있었죠.”


하지만 희망이 전혀 없었던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호크니 축복이나 다름없었습니다. 60년대에 등장한 그는 게이들의 삶을 위트와 재미, 가벼움과 기쁨으로 훌륭하게 그려냄으로써 정말 힘을 준 것 같아요.”



사이먼 캘로우. 1979년. 사진: Alastair Muir/Getty Images



캘로우도 법개정이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이 과대평가되고 있다는 동의한다. 연극계와 같은 서브컬쳐 밖에서 게이들의 삶은 여전히 매우 고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혼자 성욕을 해결하거나 21 세 이상인 상대와 성관계를 맺는 건 문제 없었지만, 만약 집안에 제삼자가 있다면 법에 저촉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이상한 법이 아닐 없죠.” 뿐만 아니다. “ 2~3 동안은 경찰이 마치 동성애가 더이상 불법이 아니라는 사실이 못마땅하기라도 법이 미치는 한도내에서 작정하고 사람들을 잡아들였습니다.” 실제로 동성애 행위에 대한 처벌은 예전보다 증가했다. 캘로우는 여건이 되는 사람들은 동성애자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 영국을 떠났고, 수많은 영국인들이 개방적인 분위기를 찾아 무슬림 국가 모로코의 탕헤르 같은 곳에 모여들었다고 회상한다. 


1968 런던을 떠나 벨파스트 대학교에 들어간 캘로우는 마치 타임머신을 기분이었다고 한다. (북아일랜드에서는 1967년도 제정법이 적용되지 않았으며, 동성애는 1982년까지 불법이었다.) “하지만 삶이 그리 단순하지만도 않은 , 거기서도 다들 법의 망을 피해다니며 아무 문제 없이 성생활을 누리더라구요.” 북아일랜드에서도 잘만 찾아보면 런던이나 탕헤르와 같은 자유분방한 삶을 즐길 곳은 있었다고 한다. “ 묵던 B&B 숙소에서 일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잉글랜드 출신이었고 끼가 굉장히 많았어요. 남자친구는 벨파스트 사람이었는데, 다른 남자들이 있을 자기 엄마로 분장하는 즐겼죠. 다들 서로를 무슨무슨 부인이라고 불렀어요. 번은 저녁 식사에 초대 받아 갔는데 다들 여장 차림으로 브릿지 게임을 하더라구요.”


비슷한 시기 벨파스트 서부에는 테리 스튜어트라는 청소년이 있었다. 카톨릭계 노동자 가정 출신인 스튜어트는당시 북아일랜드에선 엄격한 윤리관 때문에 동성애자는 고사하고 이성애자로 살기도 힘든 이었다고 한다. 겨우 13살이었던 그는 Late Night Line-Up 시청하거나, 데이빗 호크니의 작품을 감상하기보다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스캇 맥켄지의 San Francisco 들으며 다른 삶을 꿈꾸곤 했다고 한다. 당시 그는 자신이 학교에서 그렇게 따돌림을 당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동성애혐오였던 같다고 한다. 스튜어트는 18 자신의 섹슈얼리티에 눈을 뜨기 시작했지만, 세상에 자기 같은 사람은 없을 거라는 생각에그냥 혼자서 끙끙 앓기만 했다 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구원이 찾아왔다. 앨런 위커의 세계여행 다큐 Whicker’s World에서 미국 동성애자들의 결혼식을 다룬 것이다. “그걸 보며, 나만 이런 아니었구나싶었죠. 물론 형은 아일랜드 카톨릭 신자가 그런 보면 된다며 당장 TV 끄라고 했구요.”


스튜어트는 동성애가 불법인 곳에서는 떳떳하게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샌프란시스코는 못가지만 적어도 런던에서 자신의 삶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는 런던에서 게이바를 두어번 드나들다가 아는 얼굴과 마주치게 된다. “아일랜드 알고 지내던 친구가 거기 있더라구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이다가여기 기네스 정말 맛있네라고 하니까 친구가기네스는 무슨 지랄. 기네스 마시러 여기 오냐? 게이지?’라고 하더군요. 그래서그런가?’ 하고 얼버무렸죠.”



동성애자 해방전선 배너. 1971년. 사진: Clive Dixon/Rex/Shutterstock



70년대 중반에 이르자 법개혁에 힘입어 새로운 형태의 동성애자 모임이 대두하게 된다. 고향 친구로부터 런던 남부의 브릭스턴에 있는 불법 점거 건물에 대해 얘기를 들은 스튜어트는 그곳에 가보기로 한다. 스튜어트는 그곳에서 동안 40 명의 게이들과 함께 생활했고, 도로 청소부로 일하며 쓰레기 수거통을 뒤져 쓸만한 가구를 찾아내곤 했다. 한편 경찰은 이들을흑인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동성애자들이 원하는 삶을 살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았다 한다. 


스튜어트가 그곳에서 지낼 때도 경찰의 습격을 당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