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rss 아이콘 이미지
2017-07-14


“두렵지만 사진 전시는 이어가야죠.” 자넬레 무홀리의 저항사진 365점.



집에는 강도가 들고, 작품을 도난 당하기도 하지만, 남아프리카 출신의 사진작가 무홀리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학살과 동성애혐오, 증오범죄와 강간 사건을 사진에 담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 그녀가 1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찍은 초상화들을 선보인다.



심문, 침해, 그리고 폄하… 무홀리의 자화상. 사진: Zanele Muholi



남아프리카 출신의 사진작가 자넬레 무홀리(Zanele Muholi) 작년 뉴욕의 호텔에 체크인하려다불필요한 실랑이 벌여야 했다. 회의에 초청받았고, 호텔비도 추최측에서 이미 지했는데도, 호텔 매니저가 신용카드나 현금이 없으면 (마침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 체크인할 없다고 우겼기 때문이다. 매니저의 말투에서는뭔가 다른 의도 느껴졌다고 한다. 무홀리가 손님이 아니라 무단침입자 내지는 잘못 찾아온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의심 말이다. 이런 상황은 다른 호텔에서도 겪은 적이 있었다. 결국 실랑이 끝에 이튿날 아침에야 체크인할 있었다. 무홀리는 당시 상황을 엄청난 실을 뒤집어 자화상으로 표현해냈다. “마구 엉키고 구속당하는 느낌, 혼란과 분노를 느꼈어요.”


사진은 이번 영국 전시회에서 다른 작품 수십여 점과 함께 공개되었다. 2012 자화상을 찍은 적이 있었지만, ‘Somnyama Ngonyama’(검은 암사자 만세)라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365 점의 자화상을 찍기 시작한 2014년부터였다. “일년 365 흑인으로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건과 경험을 거치는데, 소중하고 특별한 순간들을 사진으로 연결해 보고 싶었습니다.” 게중에는 호텔 해프닝 때와 같은 자신의 경험을 다룬 작품도 있고,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증오범죄나 탄압 기사를 모티브로 작품도 있다. 



자넬레 무홀리. 최근 전시회에서. 사진: Sarah Lee for the Guardian



지난 동안 작품을 찍지 않은 무홀리는 오늘특별한 일을 담기 위해사진을 찍을 것이라고 한다. 얼마전 암스테르담 전시회를 마치고 돌아온 그녀는 자신의 팀원이자 지인인 시바흘레 은쿰비가 에어비앤비 집주인에게 떠밀려 계단을 굴러 떨어지는 충격적인 동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무홀리는 자신의 작품이 벽면에 올라가 보며 말했다. “행사를 즐기고 싶었는데, 사건 때문에 그럴 기분이 아니예요. 정말 끝이 없네요.”


이렇듯 자기 자신은 물론 남들이 겪은 일을 되돌아보며 감정을 파워풀한 사진으로 재창조해내는 작업은 극도로 고통스런 과정이라고 한다. 광부 모자와 고글을 쓰고 충격받은 표정으로 찍은 사진은 2012 발생했던 마리카나 학살 기억하기 위한 작품이다. 마리카나 학살이란 파업중이던 광부 34 명이 경찰에 의해 살해당한 사건이다. 그런가 하면 여행용 트렁크를 포장할 썼던 랩으로 머리를 감싼 사진도 있다. “입국할 인종을 표적으로 심문이 이뤄지곤 하는데, 세관이 던지는 질문은 상대방의 정체성과 피부색와 연관된 거죠.” 지난주 지인이 유럽을 찾았을 때에도 세관에서 시간이나 심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나면 마치 쓰레기가 느낌도 들고,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항상 이런 일이 일어날까 싶기도 하죠.”





자신이 겪은 일을 소재로 작품도 있다. 전신 초상화에서는 잔뜩 부풀린 비닐봉지를 껴안고 나체로 누워 있는데, 비닐봉지는 작년에 수술로 제거한 자궁 근종을 표현한 것으로, 당시 수술을 살아남을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한편 사진 속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남아프리카의 역사에 대한 지식이 필요한 작품도 있는데, 무홀리가 고무 타이어를 목에 두르고 찍은 사진은 네크레이싱 표현한 것으로, 네크레이싱이란 아파르트헤이트 동조자들을 벌하던 끔찍한 방식이었다고 한다. 담요 속에서 얼굴만 내밀고 있는 사진은 매력적이면서도 방어적인 분위기를 풍기는데, 담요가 남아프리카의 구치소에서 나눠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아늑한 느낌은 사라져 버린다. 그녀의 시선에서는 반항이 느껴지지만, 이들 작품은 하나같이 고통의 인내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 


Zamile, 2016년 콰테마에서 - 0100 자넬레 무홀리: (‘검은 암사자 만세’ 2017년 7월 14일 - 10월 28일) 사진: Zanele Muholi

사진 소재들(무홀리는 ‘material’이라는 표현을 썼다) 다중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플라스틱 튜브 조형물은 환경파괴를 상징하고, 안전핀은 연대를 표현한다. 가사노동자였던 어머니에게 바치는 초상화에서는 빨래집게로 머리장식을 연출했는데, 백여년간 이어진 (백인) 민족지 학자들의 이국적인 사진을 통해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미지다. 하지만 무홀리는 심문받고, 침해받으며, 폄하되는 흑인의 자체가 소재라고 한다. 


무홀리는 자신이 아티스트가 아니라비주얼 행동주의자라고 한다. (그녀는 여성 신장 포럼(Forum of Empowerment of Women) 공동설립자이자 퀴어 비주얼 행동주의 모임 Inkanyiso 창립자이기도 하다.) 일곱 명의 남매들과 함께 더번에서 자란 무홀리는 여러 직업을 전전한 끝에 사진을 접하게 되었고, 사진은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고 한다. “굉장히 지쳐 있었어요. 자살충동까지 느길 때였죠. 사진이 목숨을 구해준 거나 다름 없어요. 제게 유일하게 다가온 사진이었으니까요. 나름대로의 표현방식으로 예술을 사용하는데, 과정에서 치유도 되는 같아요. 상담치료가 필요한 시절이 있었는데, 의사 앞에 가만히 앉아있을 자신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그대신 사진을 시작했죠.”

 


목숨이 위태로웠던 수술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 ‘검은 암사자 만세’에서. 사진: © Zanele Muholi. Courtesy of Stevenson, Cape Town/Johannesburg and Yancey Richardson, New York



남아프리카 흑인 레즈비언들의 초상화를 담은 Faces and Phases(얼굴과 단계들)’이라는 프로젝트는 11년째 이어지고 있는 일생일대의 작품집이기도 하다. 혐동성애적 사회 속에서 동성애자로서 끔찍한 폭력으로 상처받으며 자란 그녀는 자신이 어릴 때에는 이런 프로젝트가 없었다고 한다. 남아프리카의 평등법은 세계에서도 가장 진보적인 편이지만, 그렇다고 LGBT들이 안심하고 살아가는 아니다. 폭행, 살해, 레즈비언들에게 자행되는 교정강간 , 현실은 잔혹하다. 그런 환경 속에서 무홀리의 프로젝트는 매우 소중하다. 그녀가 사진에 담은 여성들 중에는 이미 목숨을 잃은 이들도 몇몇 있는데, 프로젝트에 영감을 주었던 작가 시인 부시 시가사도 명이다. “이런 위험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어요.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과 주변 활동가들, 그리고 친구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없는 상황인 거죠.”


Bayephi I. 2017년 요하네스버그, 컨스티튜션 힐에서. 사진: © Zanele Muholi

무홀리의 삶은 노출되어 있고, 그녀의 작품도 표적이 되고 있다. 집에 강도가 적도 있고, 여성들의 초상화가 담긴 하드 디스크를 도난당한 적도 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자 신변의 위협을 느낄 때도 있다고 한다. “물론 두렵지만, 딱히 대책이 없어요. 사람들이 보고 배우며 희망을 가질 있도록 사진 전시는 이어가야 해요. 제가 속한 공동체가 보이지 않을 직접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명심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마냥 남들이 해주기만 바라며 살아갈 없으니까. 우리 존재를 부정당할 없으니까, 저항을 이어가야 합니다. 작품은 우리의 삶을 담고 있어요. 퀴어의 역사, 트랜스젠더의 역사, 흑인 정치와 자신의 가시성이 정말 중요한 거라면, 아무 기록도 하지 않고 바라기만 하고 있을 없잖아요.“  


무홀리는 자신의 작품이사람들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존중받으며 인정받을 있는 공간, 그리고 무엇보다 기억될 있는 공간이라고 한다. 


* ‘Zanele Muholi: Somnyama Ngonyama, Hail the Dark Lioness’ Autograph ABP, London EC2A에서 전시중입니다autograph-abp.co.uk.




- Emine Saner
- 옮긴이: 이승훈




‘I'm scared. But this work needs to be shown’: Zanele Muholi's 365 protest photographs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2017-07-14




사진: 검은 암사자로 산 1년






남아프리카의 사진작가 자넬레 무홀리가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겪는 증오범죄, 동성애혐오, 부당함을 담기 위해 일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화상을 찍었다. 사진전 Somnyama Ngonyama(검은 암사자 만세)는 런던 오토그래프(Autograph)에서 10월 28일까지 개최된다.


* “두렵지만 사진 전시는 이어가야죠.” - 자넬레 무홀리의 저항사진 365점.





Phila I, 2016년 파크타운에서.

자넬레 무홀리(Zanele Muholi), "제 예술은 정치적입니다. 쇼를 위한 것도, 유희를 위한 것도 아니예요." 이하 모든 사진: Zanele Muholi /. Courtesy of Stevenson, Cape Town and Johannesburg and Yancey Richardson, New York





Ntozakhe II, 2016년 파크타운에서.

더번에서 자란 무홀리는 사진이 자신을 배운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제게 유일하게 다가온 게 사진이었으니까요. 제 나름대로의 표현방식으로 예술을 사용하는데, 그 과정에서 치유도 되는 것 같아요."





Somnyama Ngonyama II, 2015년 오슬로에서.

초창기에는 "남아프리카의 사진작가로서, 남아프리카의 여성으로서, 그리고 흑인이자 레즈비언의 정체성을 가진 남아프리카인으로서 확고한 지위를 주장하기 위해" 작품을 제작했다고 한다.





Nomalandi Wenda, 2016년 파크타운에서.

"일년 동안 수많은 사건과 경험을 거치는데, 그 소중하고 특별한 순간들을 사진으로 연결해 보고 싶었습니다."





Kwanele, 2016년 파크타운에서.

여행용 트렁크를 포장할 때 썼던 랩으로 머리를 감싸고 찍은 사진. "입국할 때 인종을 표적으로 심문이 이뤄지곤 하는데, 세관이 던지는 질문은 상대방의 정체성과 피부색와 연관된 거죠.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나면 마치 쓰레기가 된 느낌도 들고, 왜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항상 이런 일이 일어날까 싶기도 하죠."





Sebenzile, Parktown, 2016.


환경파괴와 조상들의 전통을 표현하기 위해 플라스틱 튜브를 이용했다.





Somnyama I, 2014년 파리에서.

"늘 심문받고, 침해받으며, 폄하되는 흑인의 몸 자체가 소재죠."





Zamile, 2016년 콰테마에서.

남아프리카 경찰소에서 나눠주는 담요를 쓰고 잔인함과 안락함을 동시에 표현한 작품.





Sibusiso, 2015년 이탈리아 사르디나 칼리아리에서.

레즈비언 인권가이기도 한 무홀리는 집에 강도가 드는 등, 늘 폭행의 표적이 되어 왔다고 한다. "두렵지만, 딱히 대책이 없잖아요?"




Bester I, 2015년 마요테에서.

가사 노동자였던 어머니에게 바치는 작품. 빨래집게로 우리에게 친숙한 아프리카의 이국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Thulani II, 201년 파크타운에서.

2012년 파업 광부 34명이 경찰에 의해 살해당한 마리카나 학살 사건을 추모하기 위한 작품. 






Vile, 2015년,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무홀리는 자신이 예술가가 아니라 ‘비주얼 행동주의자’라고 한다.



- 옮긴이: 이승훈




My year as a dark lioness – in pictures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2015-08-10



FORMER MR GAY WORLD DIES AGED 33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Outmost.









암투병하던 2010년도 미스터 게이월드 찰 밴 덴 버그(CHARL VAN DEN BERG) 결국 사망.




모델 겸 활동가이자 2010년도 미스터 게이 남아프리카였던 찰 밴 덴 버그 씨가 임파선암으로 사망했다. 향년 33세였다.밴 덴 버그 씨는 미스터 게이월드였던 당시 필리핀의 HIV 의식고취 캠페인 ‘레드리번’에 참가했으며, 세계각지의 프라이드 행사에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미스터 게이월드측의 대변인은 성명문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밴 덴 버그 씨의 죽음을 애도했다: “찰이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처음으로 버스를 내리던 모습이 선합니다. 그 때 디렉터 중 한 명이 “주목할 후보”라고 했고, 그 말은 적중했습니다. 그는 동료 후보들과 심사의원, 관객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선사했고, 호주대표, 홍콩대표와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2010년도 미스터 게이월드를 차지했습니다.”


찰은 전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미스터 게이월드의 메시지와 정신을 전파했습니다.”


“또한, 늘 친절하고 다가가기 쉬우며 모범적인 모습을 보였고, 자만하는 일 없이 자신이 맡은 일에 현실적으로 임했습니다. 전염성 있는 웃음과 따스한 성격을 가졌던 그와 함께 일한다는 것은 크나큰 기쁨이었습니다. 임기가 끝난 후에도 미스터 게이월드 주최측과 머물며 많은 도움을 주었고, 2014년도까지 요하네스버그와 안트베르펜 결승전에 참가하는 한편, 미스터 게이 남아프리카 대회를 돕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가족이자 영웅, 친구였던 그를 잃었습니다. 찰 밴 덴 버그는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우상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 Jane Casey


- 옮긴이: 이승훈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지난 2월 14일, 국제 인터섹슈얼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 샐리 그로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파르트헤이트 종식을 위해서, 그리고 인터섹슈얼의 인권을 위해서 평생을 바친 그녀의 삶을 통해 많은 분들이 희망과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2014-03-04



SALLY GROSS REMEMBERED AS FEARLESS INTERSEX LEADER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Sydney Star Observer.






국제 인터섹슈얼(간성)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 남아프리카 활동가 샐리 그로스(Sally Gross)는 인권 옹호와 인종 차별 종식을 향한 용감한 개척자로 기억되고 있다.


그로스는 지난 2월 14일, 케이프타운에 위치한 자신의 집에서 6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1953년 8월 22일에 유대인 부모 아래서 인터섹슈얼로 태어났다. 나중에는 기독교로 개종하고 도미니코회 사제가 된다.


호주 국제 인터섹스 협회(OII: Organisation Intersex International Australia) 회장 모건 카펜터(Morgan Carpenter)가 ‘스타 옵서버(the Star Observer)’에 전한 바에 의하면 그로스는 인터섹슈얼 운동과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운동 모두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었으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에 있어서도 활발히 활동했다고 한다.


카펜터는 “샐리는 그녀가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교회로부터 배제를 겪어야 했던 용감한 개척자와도 같다. 그녀의 따뜻함, 관대함과 정력이 그리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성별이 분명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출생 시 남성으로 규정된 그로스는 셀윈(Selwyn)이라는 이름을 받았지만, 일생 동안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40세가 되어서야 공식적으로 인터섹슈얼이라는 진단을 받고 1992~1995년 사이에 여성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거쳤다.


남아프리카의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운동의 주요 활동가였던 그로스는 아프리카 민족 회의(ANC) 동료들의 조언으로 1977년에 망명을 떠났다. 아프리카 민족 회의는 나중에 대통령이 되는 넬슨 만델라가 이끄는 조직이었다.


그로스는 결국 그녀의 부모가 정착한 이스라엘로 떠나 시민권을 획득한다. 그 후 영국으로 이주해 도미니코회에 입회하고, 옥스포드 블랙프라이어스의 사제로 임명된다. 옥스포드에서 석사 학위도 취득하여 윤리 신학과 윤리학을 가르친다.


1987년, 그로스는 아프리카 민족 회의 사절단의 일원으로 타보 음베키 전 남아공 대통령과 함께 세네갈을 방문하여 남아공에서 아파르트헤이트를 종식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90년, 도미니코회가 그로스에게 남아공으로 다시 돌아와 강의할 것을 요청했지만, 그로스는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을 밝히면서 모든 성직을 박탈당하고, 종교적 서약이 무효화됐다.


교회에 의한 박해를 계기로 그로스는 남아공에서 인터섹슈얼 인권 투쟁을 위한 선구자가 됐다.


2000년, 그로스가 남아프리카에서 제정된 차별금지법의 ‘성별’이라는 개념 안에 ‘인터섹스’도 포함시키면서 사상 최초로 간성이 법률적으로 다뤄지게 됐다.


그 이후로 샐리 그로스는 성별 표기 변경, 평등권 옹호를 위한 법률 입안을 위해 힘썼다. 호주 국제 인터섹스 협회(OII)의 제휴 단체인 남아프리카 인터섹스(Intersex South Africa)를 창립하는 데에도 힘썼다. 2011년에 벨기에 브뤼셀에서 개최된 제1회 국제 인터섹스 포럼(The International Intersex Forum)에 참가했고, 생애 마지막 날까지 온라인을 통해 인터섹슈얼 지원 및 변호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카펜터는 “어떤 의미에서는 인터섹슈얼 커뮤니티가 그녀의 회당이 됐다.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의 소명을 다했고, 마지막 날까지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우리가 그녀를 알게 된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샐리는 자기 자신보다 타인들을 먼저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녀는 모든 일들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도움과 지지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에게 늘 고마워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또는 온라인으로 그녀를 알고 지냈던 인터섹슈얼 커뮤니티의 많은 사람들에게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정말 슬픈 것이었다. 그녀는 관대하면서도 강인한 사람이었고, 위대한 인물이었으며, 남을 심판하지 않고 선(善)을 찾았던 굉장히 종교적인 인간으로서 늘 자기 자신보다 타인에게 더 주의를 기울였다. 어떤 계기로든 이런 귀한 사람을 알게 되는 것은 영광이다. 우리 커뮤니티의 일부로서 그녀와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에게 큰 축복이었다. 우리는 그녀를 평생의 보배로 몹시 그리워할 것이다.”


- 세르칸 오즈투르크


- 옮긴이 종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2014-02-02

 

 


В ЮАР создана политическая партия для борьбы за права ЛГБТ-людей
Перейти к оригинальной статье на GayRussia.Ru.

 

 


당원들, 오는 4월 총선에 출마

 

 

 

 

성소수자 인권 보호를 위해 새로 결성된 정당이 오는 4월로 예정된 남아프리카공화국 총선에 참여한다.

 

평등권당의 결성 목적 중 하나는 동성애를 ‘치료’하겠다는 명목으로 남성들이 레즈비언들을 강간하는 ‘교정 강간’의 희생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또 이 정당은 성적 지향으로 인해 동료들의 괴롭힘을 받는 아이들도 도울 것이라고 정당 대변인이 밝혔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헌법은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있으며, 동성 결혼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동성 관계, 특히 여성 간 관계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 옮긴이 종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2013-12-06



Mandela - a leader in LGBTI rights & AIDS awareness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Sydney Star Observer.



넬슨 만델라 (사진: http://worldnews.nbcnews.com)



제이콥 주마 남아프리카 대통령이 넬슨 만델라 씨(향년 95 세)의 사망을 발표하자, 각계 지도자와 소셜미디어 이용자들로부터 추모와 헌정이 쇄도하고 있다. 


넬슨 만델라 씨는 남아프리카의 인종편견 및 증오에 맞서 희생을 치뤘고, 대통령으로 재직할 때에는 악명높은 아파르트헤이트를 폐지시키는 등의 쾌거로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아프리카에서 LGBT 인권 투쟁 및  HIV/에이즈 의식을 고취시킨 지도자로서도 기억된다.


만델라 씨는 1998 년 아프리카에서 처음으로 동성애자 차별을 금지시켰으며, 20 년전부터 결혼평등을 지지해 오기도 했다. 


또한 남아프리카 정치계 고위직에 동성애자들을 임명하기도 했고, 게중에서도 에드윈 캐머런 씨는 최고 법원의 재판관이 되었다. 


남아프리카에서는 아직도 동성애혐오증이 만연하지만, 평등과 차별철폐를 위한 만델라 씨의 투쟁이 없었다면 남아프리카는 지금처럼 아프리카는 물론 전세계에 모범을 보이지 못했을 것이다.


HIV/에이즈 문제에 있어서 만델라 씨는 다소 늦게 투쟁에 참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5 년에는 자신의 아들이 에이즈로 인해 54 세의 나이로 사망했음을 밝혔고, 그후 아프리카 전역에 걸쳐 에이즈와 관련된 스티그마 및 수치심에 맞서고,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현재 아프리카에는 2600만여 명이 HIV 및 에이즈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남아프리카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한 만델라 씨는 오랫동안 폐질환을 앓아왔으며, 요하네스버그 자택에서 평화롭게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를 기리기 위해 국장이 치뤄질 예정이다.



- 엘리아스 자샨


- 옮긴이: 이승훈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2013-11-27



South Africa: Lesbian's attacker sentenced to 22 years in jail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Daily Xtra.




2010 년 레즈비언에게 폭행을 가한 남성이 22년형을 선고받았다. 사진: SADC.INT



피해 여성, '가해자 내가 바라던 대로 처벌 받았다'




2010 년 한 레즈비언을 강간했던 앤딜 은코자라는 남성이 죄상을 뉘우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22년형을 선고 받았다고 <Cape Times>지가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은코자 씨는 2011 년 케이프타운 근처 굴룰레투 군의 한 오두막에서 밀리센트 가이카 씨에게 폭행을 가하면서 '니가 여자라는 걸 보여주겠다'고 했다.  


가이카 씨는 케이프 타임스지와의 인터뷰에서 가해자에게 본인이 바라던 대로 형량이 내려졌다고 말했다. 


레즈비언에 대한 이러한 폭행은 소위 "교정강간"으로 알려져 있으며, 국제사회에서도 비중있게 보도되고 있다. 


국제 암네스티 캐나다지부에서 LGBT 사안을 담당하고 있는 재클린 핸슨 씨는 6 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남아프리카에는 1996 년 헌법수정을 통해 성적지향에 근거한 차별을 명백히 금지하고 있고, 2006 년에는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정책과 현실 사이에는 격차가 있다고 말했다. 


극제 암네스티는 보고서 <사랑의 범죄화(Making Love a Crime)>를 통해 "전통적인 여성성과 남성성에 부합되지 않는 레즈비언과 LGBTI들은 남성들로부터 폭행, 강간, 살인을 당할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며 "2012 년 6 월에서 11 월 사이 7 명 이상이 성적지향 및 성별 정체성 때문에 살해된 것으로 보인다. 그 중 다섯 명이 레즈비언이었고, 나머지 두 명은 젠더 불순응 게이 남성이었다"고 밝혔다. 



- 타샤 바소티


- 옮긴이: 이승훈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2013-10-18



South Africa: Man arrested in connection with lesbian's murder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Daily Xtra.





두두질레 조조 씨의 살해 사건 용의자로 22 세의 남성이 체포되었다. FACEBOOK.COM




용의자, 다음주에 법정 출두 


레즈비언 살해 사건과 관련하여 체포된 22 세 남성이 다음주 법정에 설 것이라고 <핑크뉴스>지가 전했다. 


두두질레 조조 씨(26)는 지난 6 월말 요하네스버그 동부 토코자에서 시체로 발견되었었다. 선술집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조조 씨는 화장실에서 자궁에 솔이 박힌 채 발견되었다고 경찰측은 밝혔었다. 


어머니 투지웨 조조 씨는 <The Daily Sun>지를 통해 딸이 섹슈얼리티 때문에 살해당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레즈비언이었지만 한 번도 말썽을 일으켜 본 적이 없는 애였어요. 다들 그 애를 사랑하고 아꼈었는데."


작년 6 월에서 11 월 사이 살해된 레즈비언은 총 다섯명으로, 이는 모두 성적지향 및 성별 정체성에 근거한 차별이 범죄동기인 것으로 보인다고 <The Daily Sun>지는 전했다. 



- 나타샤 바소티


- 옮긴이: 이승훈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2013-09-25



South Africa: Johannesburg Pride head reportedly threatened and attacked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Daily Xtra. 





수차례 협박과 폭행 당한 요하네스버그 프라이드 케이 앨리 위원장. MAMBAONLINE.COM



케이 앨리 위원장, '하찮은 범죄사건 때문에 프라이드에 대한 열정 접지 않을 것'


9 월 28 일 이번 주말 요하네스버그 프라이드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위원장이 행사 취소를 요구하는 이들로부터 수차례 협박을 받았다고 밝혔다. 


케이 앨리 위원장은 Mamba Online지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8 월 복면을 한 세 명의 남성이 잠자고 있는 그녀의 집에 난입했다고 했다. 이들 남성은 앨리 씨에게 권총을 겨눴으며, 프라이드 행사와 연관된 물품을 훔쳐갔다. 


이들은 앨리 씨에게 전기충격과 구타를 가하며, 그녀가 동성애자인 것을 알지만, 강간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최근에는 이와 비슷한 사건이 두 차례 더 있었으며, 한 번은 가해자가 차 안에서 칼을 들이대고 행사 취소를 요구했으며, 다른 한 번은 자신의 차 옆에서 꼼짝 못 하도록 압류 당했다고 한다. 


"제게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 같다며, 요하네스버그 프라이드를 취소하지 않으면, 다음엔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했어요."


앨리 위원장은 가해자들이 모두 남성이었지만,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했다. 또한, 근무중에는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언급하는 이상한 전화를 수 차례 받기도 했다고 했다. 


그녀는 프라이드 준비위원회가 행사의 위섬성에 대해 회의를 열 것이라고 했다. 


"이 모든 협박건들을 살펴보고,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이며, 위원회의 안전을 최우선시 할 것입니다. 저의 행사 참가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지만, 차후의 결정은 제 혼자서 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이러한 협박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요하네스버그 프라이드는 24 년간 치뤄져 왔습니다. 왜 이런 행사를 멈추려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희는 지역사회를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Mambo Online지는 지난 6 년 동안 행사를 맡아왔던 회사가 문을 닫자, 올초부터 몇 차례 수정을 거쳤다고 전했다. 


이로써 앨리 씨의 위원회를 포함한 두 단체가 프라이드 주최를 맡게 되었다. 다른 단체는 10 월 5 일 피플즈 프라이드(People's Pride)를 개최한다. 


피플즈 프라이드의 퀘질롬소 음반다자요 위원장은 앨리 씨에 가해진 협박을 비판하며, 자신의 단체는 이번 사건과 연관이 없다고 덧붙였다. 


"저희 단체는 비폭력과 표현의 자유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누구도 탄압하는 일이 없습니다."



- 나타샤 바소티


- 옮긴이: 이승훈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2013-09-03




Unilever apologises for 'homophobic advert' in South Africa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한 마가린 광고가 자식의 커밍아웃을 심장에 총 맞는 것에 비유했다. 







유리 심장에 '저… 아빠, 나 게이야'라고 쓰인 총알탄이 날아가는 플로라 마가린 광고. 유니레버사는 이 광고를 즉각 내렸다고 한다.





남아프리카의 플로라 마가린 광고에서 아이의 커밍아웃은 심장에 총을 맞는 것만큼 고통스럽다고 암시한 다국적 식품기업 유니레버(Unilever)가 사과를 명령받았다. 


요하네스버그 지사에서 만든 이 광고에서는 총알탄이 "저… 아빠, 나 게이야"라는 말과 함께 도자기 심장으로 향하고, 곧 핑크색 플로라 로고 근처에 "오늘은 강심장이 필요하시겠군요"라는 문구가 뜬다. 


이에 플로라 마가린을 소유하고 있는 유니레버사가 동성애혐오증 비난을 받았다. 동성애자 작가이자 라디오 사회자인 유세비우스 맥카이저 씨는 "#flora가 날 싫어하는 게 분명하군. 근데 왜?"라는 트윗을 올렸고, "강심장이 필요하시다구요? #flora를 멀리하세요. 러시아 보드카처럼 형편없답니다!"라는 글을 덧붙였다. 


유니레버사는 서둘러 광고를 내렸고, 광고로부터 거리를 두었다. "남아프리카의 외부 에이전트에서 제작한 광고이며, 유니레버사의 그 누구도 이 광고를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이 광고는 모욕적이고 용납될 수 없는 것으로, 즉각 방영을 중지했습니다. 유니레버사는 최근 벤&제리의 결혼평등 캠페인을 포함하여,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들을 지지해 온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지난달 유니레버사의 벤&제리 아이스크림은 호주의 동성결혼을 지지하며 쿠키반죽맛 아이스크림 이름을 "I Dough, I Dough"(맹세합니다, 맹세합니다)로 바꿨었다.


플로라 마가린 광고를 제작한 국제 광고회사 Lowe and Partners 요하네스버그 지부는 "대단히 죄송하다"고 했다. 사라 덱스터 상무이사는 "이 광고로 인해 의도치 않게 야기된 불쾌함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전적으로 사과드리는 바입니다. 저희는 모든 매체에서 이 광고의 방영을 중지하도록 요청했습니다"라고 말했다. 


Lowe and Partners사의 케이프타운 지사도 7 월 수산시장 광고에서 흑인얼굴을 쓴 백인 배우를 내보내 물의를 일으켰었다. 


이에 영국의 동성애자 인권단체 스톤월은 플로라 광고가 "모욕적이고 부적절하다"고 비판했으며, 광고철회를 밝혔다. "플로라는 21 세기에 친동성애적 광고를 제작하는 방법을 같은 회사의 벤&제리측과 미리 이야기를 나누지 그랬습니까?" 


남아프리카는 2006 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아프리카에서는 처음으로 동성간의 합법적인 결혼을 인정했지만, 동성애혐오증이 만연하며, 수많은 레즈비언들이 소위 "교정강간"을 당하고 있다. 


플로라측은 예전부터 마가린이 심장에 좋다고 홍보해 왔으며, 두번째 광고에는 유리심장이 총알에 맞는 장면과 함께 "카마수트라 48 페이지"라는 문구가 뜬다. 






- 데이빗 스미스 




- 옮긴이: 이승훈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