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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0.23 서아프리카의 여전사들

2010-07-05




서아프리카의 여전사들




18세기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미노 부대는 다호메 왕국에서 젠더로 보나 성적으로 보나 독특한 지위를 차지했다. 전세계에서 최근까지 정기적으로 전투에 임한 여성부대는 미노 밖에 없다. 사진t. Stephen McDermott/Daily Xtra





다호메 왕국의 여전사 부대는 독특한 성별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18세기 다호메 왕국의 여성군단 미노는 픽션보다도 더 흥미로운 인물들이다. 미노는 너무 난폭하고 전투적이어서 왕좌의 게임 따윈 유치원생이 모래상자를 가지고 옥신각신하는 것으로 보일 정도다. 


미노 전사들은 머스킷총을 능란하게 다뤘지만 맨몸으로 싸우는 것을 선호했다. 면도날같은 가시로 덮힌 아카시아 나뭇가지 아래를 포복으로 기어가기 같은 훈련을 받았고, 그 중에서도 가장 용감한 여성은 가시로 난 상처에도 끄떡없다는 증표로 아카시아 나무로 된 벨트를 하사받았다. 


훈련을 받다가 죽음에 노출되는 일도 있었고, 죄수처형에 참가하는 경우도 있었다. 프랑스의 한 해군 장교가 미노의 죄수처형을 목격한 적이 있는데, 아직 경험이 부족한 전사였는지 칼을 세 번 휘둘러서 죄수의 목을 베었고, 칼에 묻은 죄수의 피를 빨아 마셨다고 한다. 미노 전사가 지나갈 때는 여자 노예들이 그 뒤를 따르며 종을 울리며 사람들에게 경고를 보냈고, 사람들 또한 그들을 죽음의 화신으로 여겼기 때문에 눈조차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다호메는 지금의 베냉의 전신이 된 왕국이다. 베냉은 사하라 남쪽에 위치한 나라로 나이지리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다호메는 1600년경 네 개의 부족이 합쳐 세워진 왕국이었다. 전투적이고 영역확장의 야욕에 찬 다호메 왕국은 영국, 네덜란드 포르투갈의 노예무역 중심지가 되었고, 다호메 왕국은 전쟁포로를 노예로 팔아 수익을 채웠다. 인근지역을 상대로 한 영토확장 전쟁이 지속되면서 남자로 구성된 병력이 고갈되자, 그 빈 자리를 미노 전사들이 채운 것이다. 미노 전사들은 폰어로 '은논미톤' 즉, ‘우리의 어머니’라 불리기도 했다. 이들은 젠더로 보나 성적으로 보나 다호메 왕국에서 독특한 지위를 차지했다. 전세계에서 최근까지 정기적으로 전투에 임한 여성부대는 미노 밖에 없다.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들이 그러했듯, 다호메 왕국에서도 유럽인들이 침략해 오기 전까지는 동성애가 일반적이었다. 남녀가 어릴 때부터 격리되었기 때문에, 사춘기에 접어든 청소년들은 아주 친밀한 우정을 나누기도 했다. 이렇듯 동성애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여겨졌지만 평생 동안 지속되는 경우도 있었다. 블로거이자 아프리카 역사 전문가인 아넹기예파는 다호메인들이 성인남성의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동성간의 관계는 비밀리에 이루어졌다고 한다. “다호메인들 사이에는 ‘절친한 우정’이라는 전통이 체계적으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절친한 우정은 대개 젊을 때 서로 동성애적 감정을 품었던 사이끼리 맺는 경우가 많았는데, 절친한 우정을 나누고 나면 서로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도 동성애적 관계를 유지하는 데 절호의 수단이 되었습니다.”


20세기초 인류학자 멜빌 J 허스코비츠는 “동성애가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들 사이에서도 존재하며, 일각에서는 여성간의 동성애가 훨씬 더 빈번하다는 주장도 있다”고 지적했었다.


미노 여전사 군단은 1729년 다호메 왕국 초대왕의 손자였던 아가자왕 대에 창립되었다. 해가 지면 남성은 성 안에 머물 수 없었으므로, 성내 경비를 여성에게 서도록 했던 것이다. 그러다 이 경비대는 당시의 기준으로 봐서 죄를 범한 여성들, 즉 간통한 아내, 잔소리가 심한 아내, 고집이 센 아내 및 왜장녀 등을 묶어 두는 곳으로 그 성격이 변해갔다. 


이들 여성은 법대로라면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었지만, 그 대신 왕에게 헌납되었고, 왕은 이들을 군사로 변모시켰다. 그렇게 미노 부대는 자진입대든 아니든 천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게 되었다. 이들은 왕의 여자로 간주되었다. 물론 그밖에도 하렘에 여자를 잔뜩 거느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외부 사람들은 미노 전사들이 처녀이거나 금욕을 하고 있는 것으로 여겼다. 19세기 영국 해군 지휘관 프레데릭 포브스는 이 여전사들이 “결혼을 할 수 없는 몸이며, 스스로 성을 바꿨다고 자칭한다. 다들 ‘우린 여자가 아니라 남자’라고 했고, 군복도, 먹는 것도 남자 병사들과 같았다. 이들은 남자병사들과 어울리며 남자가 하는 거라면 무조건 더 잘해내려고 악을 썼다”고 기록했다. 


미노 여전사 부대의 규모는 다호메의 군법이 바뀔 때마다 최고 600명에서 6000명까지 경감을 반복했다. 이들은 1890년대 프랑스와 다호메 왕국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면서 끝을 맞이했다. 이 전쟁으로 미노 여전사 수는 50명 정도로 줄어들었지만, 승전국 프랑스는 미노 여전사들이 “극도로 용맹했고, 늘 다른 부대보다 앞섰으며, 전투에 익숙했음은 물론 기강도 확실했다”고 평했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일부 어린 여전사들은 백성들 사이에 섞여 일반 여성의 삶으로 되돌아갔고, 그 중 일부는 1960년 베냉의 독립까지 지켜봤을 것이다. 스미스소니언 잡지에는 1930년대에 코토누 해변가에 살던 한 다호메인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 남성은 어릴 때 친구들과 함께 어떤 할머니를 괴롭힌 적이 있다고 한다. 친구들과 돌을 던지며 놀고 있었는데, 돌과 돌이 부딛히면서 총소리를 냈다. 그러자 할머니는 마치 신이 내리기라도 한 듯 군대훈련 동작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치 한 손으로 (가공의 피해자를) 땅에 짓누르고, 다른 한 손으로 계속 찔러대는 것 같았습니다. 비명을 지르며 속살까지 잘라내는 시늉을 했고, 마치 뭔가를 도려내서 쥔 것처럼 일어섰습니다.”


그렇게 승전가를 흥얼거리며 춤을 추다가 갑자기 멈추더니 멍해졌습니다. 그리곤 다시 몸이 굽어졌죠. 할머니는 조금 전보다도 더 늙어보였습니다. 주저하며 걸음을 내딛는 그 할머니를 보며 한 어른이 옛날에 여전사였던 사람이라고 귀띔해 주더군요. 전쟁은 옛날에 끝났지만, 그 할머니 머릿속에서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던 거죠.”



- Michael Lyons

- 옮긴이: 이승훈



Warrior women of West Africa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Daily X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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