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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0.18 행복의 나라 부탄의 동성애자들


행복의 나라 부탄의 동성애자들





부탄의 형법 213조와 214조에는 동성애가 자연에 어긋나는 것이며 처벌대상이 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비록 이 구식 법으로 인해 처벌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동성애가 그릇된 것이라는 대중의 생각은 더욱더 굳어지고 있다.


부탄의 LGBT 운동은 사실상 20081219일 대중매체 부탄 옵저버가 부탄의 동성애자들은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기사를 내고, 같은 해 트랜스젠더 유명인사 데첸 셀돈이 커밍아웃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후 보건부는 전국 HIV/에이즈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LGBT 공동체에 접근을 시도해 오고 있다. 하지만 부탄은 아직 해당 인구군의 수요와 경험에 관한 적절한 데이터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 프로그램은 HIV 예방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이는 수치심, 공포심 및 차별 조장 등, HIV를 안고 살아가는 LGBT들에게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실시된 몇몇 조사도 MSM(동성과 성접촉을 가지는 남성), 트랜스젠더 및 약물복용자에게 다가가는 일이 쉽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학삼(Lhaksam: HIV를 안고 살아가는 부탄인들의 네트워크)가 비공식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만인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공통된 목표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학삼 네트워크는 2014년 12월 부탄에서 최초로 LGBT 정보책자를 발간하기도 했다. 


나는 티베트 색채가 강한 전형적인 시골마을에서 불교적 가치관을 배우며 자랐다. 그곳 사람들에게 있어 유일한 윤리지침은 바로 종교이다. 동성애가 공공연하게 거론되는 일은 없지만, 사람들은 ‘폴레몰레’, 또는 ‘풀루물루’에 대해 숙덕거리곤 했다. 폴레몰레는 현지말로 양성유구자를 뜻하는 말이다. 나는 학교를 다니던 십대 때부터 성적 정체성에 혼란을 느꼈다. 나는 다른 친구들은 여자이야기를 하는 다른 친구들 사이에서 대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내가 겪는 성적 혼란을 아무에게도 밝히지 못했다. 그러던 나는 팀푸에 있는 의대에서 간호보건과 수업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내 섹슈얼리티를 밝혔다.


부탄에서 게이로 자란다는 건 시련이었다. 같이 어울릴 게이 친구도 없었고 내 속마음을 털어놓을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심한 우울증을 겪으며 자살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종종 밤에 ‘친구’를 만나는 일도 있었지만, 그 친구들은 그냥 섹스파트너일 뿐이었다. 그 친구들 대부분은 본인을 이성애자라 여겼기 때문에, 내가 그 친구들과 성관계를 가졌다고 하면 내게 해가 미칠까봐 두려웠다. 가끔 성추행을 당하는 일도 있었지만, 난 그런 사실조차 입밖에 낼 수가 없었다. 나는 섹스 파트너와 게이 친구들이 안전하다고 하는 여관, 기숙사, 차 안 등에서 성교를 가졌다. 그게 내가 섹슈얼리티를 안고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성병, 콘돔, 러브젤, 섹스토이에 대해 아는 것도 전혀 없었다.


제시할 만한 자료는 없지만, 부탄에서 HIV 및 기타 성병에 가장 취약한 부류는 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내 주위의 게이친구들만 해도 성병에 걸렸다며 수치심과 차별을 겪지 않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이 어딘지 내게 묻는 경우가 많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게이친구’란 대부분 자신을 양성애자라 여기기 때문에, 이 친구들의 성병은 이성에게도 전염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2011년 간호보건학과 졸업을 앞두고 있던 나는 상담사를 찾아가 내 신앙심과 행위를 털어놓고 상담을 받았다. 그렇게 나는 자존감을 가지고 새 삶을 살게 됐고, 진정한 친구도 사귀게 되었다. 딴딘은 내가 처음으로 사귄 진정한 친구였다. 딴딘을 통해 나의 삶에 대한 관점을 바뀌었다. 딴딘은 내가 내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줬고, 내게 잊지못할 애정을 쏟아부어 줬다. 국립불탑에서 딴딘과 처음 만난 날의 기억은 지금도 나로 하여금 더 나은 삶을 살도록 힘을 실어준다. 


학교를 졸업하고 경제적으로 자립한 나는 친구들이 나의 커밍아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아보기로 했다. 한 친구에게 “만약 알고 지내던 사람이 동성애자였다면 어떨것 같아?”하고 물으니 그 친구는 “두 팔 벌려 받아줄거야”라고 했다. 친구의 반응이 너무 좋아서 나도 사실 동성애자라고 고백했더니 친구는 정말로 나를 꼭 안아줬다. 그해 나는 알고 지내던 보건계 종사자 중에서 “우호적인” 사람들에게 커밍아웃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대상은 척 봐도 동성애혐오자가 아닐 것 같은 사람들에 국한되어 있었다.


2013년 나는 부탄 남부에 있는 삼쩨라는 곳으로 발령을 받았다. 삼쩨에는 아는 사람도 없었고, 팀푸의 ‘게이친구들’을 만날 기회도 줄어들었지만, 그 대신 휴가가 생길 때마다인도의 웨스트 벵갈주와 시킴에 가서 새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2015년은 내게 있어서 축복으로 가득한 한 해였다. 학삼 네트워크의 도움을 받아 네팔로 연수를 가게 된 것이다. 네팔에서 나는 블루 다이아몬드 협회 사람들과 친해졌다. 다들 활기차고 상냥했다. 나는 블루 다이아몬드 협회에서 진행하는 FM 프로그램 우잘로 네트워크에 출연해서 인터뷰에 응하기도 했다. 





고국으로 돌아온 나는 오랜 침묵을 깨고 부탄에도 동성애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기로 결심했다. 먼저 어머니께 커밍아웃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직까지도 다른 여느 어머니들과 마찬가지로 내가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계신다. 2015년 3월 11일, 잔뜩 긴장한 나는 보건부 장관을 찾아가 국영 TV에서 커밍아웃하고 싶다고 밝혔다. 내 결정은 지지를 얻었고, 저녁 7시 BBC(부탄방송서비스) 채널의 인기프로그램에서 나는 커밍아웃을 하게 됐다. 이튿날 국영신문사 뀐셀에서 나를 인터뷰하러 찾아왔고, 사람들이 동성애에 대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정말로 침묵이 깨진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예전부터 커밍아웃은 하고 싶었지만, 결심이 서지 않았고, 노출후에 겪을 차별도 두려웠다. 그렇게 일 년 동안 고민과 계획을 거듭했다. 자신의 성적 지향을 받아들인 후에 곧바로 커밍아웃하는 사람도 있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커밍아웃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평생 커밍아웃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커밍아웃은 의무가 아니라 개개인이 내려야 하는 선택이다. 벽장속에서도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나는 벽장속에서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밤이면 밤마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가장 감동적이었던 순간은 한 게이친구가 내게 “부럽다. 나도 커밍아웃하고 싶은데 넌 해냈잖아. 존경한다.”라는 문자를 받았을 때였다.


대중은 날 받아주고 관용을 배푸는 듯하지만, 아직도 내 뒤에서 소곤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지나가면 뒤에서 수군거리는 것이다. 친구들 중에는 나와 함께 다니거나 식당에 가는 걸 꺼리는 애들도 있다. 아직도 대부분의 부탄인들이 동성애가 ‘부자여운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부탄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자애롭기 때문에 수용도도 다른 나라에 비해 더 빠른 속도로 올라갈 것이다. 자기 자식이 아닌 이상 받아들여 주는 날도 오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이룩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부탄에는 아직도 혼자서 힘들어하는 LGBT들이 많다. “방안에서는 게이지만, 밖에선 ‘남자’”라는 말이 있다. 이렇듯 우리 트랜스젠더들도 사회의 대우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얼마전 보건부에서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트랜스젠더들은 보건관계자들이 프라이버시를 전혀 존중해 주지 않는다고 토로했었다. 그리고 얼마전 일부 학교 당국과 교사가 동성애자 청소년들이 ‘여성스럽게’ 행동하다가 집단괴롭힘을 당해 여자화장실을 쓰도록 강요당하는 건 본인들 탓이라고 한 일도 있었다.


부탄은 불교국가다. 그렇기 때문에 섹슈얼리티의 다양성이 언급되는 일도 거의 없고, 성행위 자체도 ‘죄악’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나는 종사 켄쩨 린포체께서 LGBT에 대해 하신 말씀을 인용하고 싶다: “진실을 이해하고 말고는 성적지향과 어떠한 관련도 없습니다. 게이, 레즈비언, 이성애자 등등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누가 먼저 깨달음에 이르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불교는 인과응보의 종교다. 좋은 씨앗을 심으면 좋은 결과를 얻고, 그렇게 선업을 싸아가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자비와 배려, 마음 알아차림을 통해 악업을 쌓지 말라고 가르친다. 


LGBT가 언급되는 일도 없고, 가족들 사이에서도 우리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행복지수의 나라, 신나고 관용으로 넘치는 나라, 부탄에서 더 많은 LGBT들이 두려움과 걱정을 털어놓고, 꿈과 행복한 미래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꿈꿔 본다. 



- 빠상 도르지 

- 옮긴이: 이승훈



Gay in the Land of Happiness, Bhu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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