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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3

 

 


Узбекистан. Закон держит в страхе геев и обогащает милици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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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shutterstock

 

 

우즈베키스탄에서 동성애에 관한 주제는 가정 폭력과 마찬가지로 언론과 사회적 논의에서 사실상 배제되고 있다. 게다가 우즈베키스탄은 동성 간 성관계를 엄격하게 처벌하는 국가 중 하나다. 이 법이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페르가나 통신사 타슈켄트 특파원이 이 상황을 아주 잘 알고 있는 현지 동성애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스칸데르는 자혼기르라는 이름의 말쑥하고 늘씬한 짙은 머리색의 남자와의 만남이 굴욕적인 악몽과 공갈로 끝난 일을 회상하면 지금도 공포와 혐오감으로 괴로워한다.


이스칸데르는 자혼기르와 처음 알게 됐을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의심을 품었다. 대머리, 매부리코에 등이 굽은 39세의 이스칸데르는 자기 외모에 자신이 없었는데, 젊고 섹시한 훈남이 보여주는 관심이 갑작스러우면서도 기분 좋은 것이었다.


그들은 유명한 데이팅 사이트 Mamba.Ru에서 처음 알게 됐다. 별 내용 없는 쪽지를 몇 번 주고받은 후 자혼기르는 이스칸데르와 타슈켄트의 한 카페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이스칸데르는 자혼기르의 외모가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과 다르지 않은 것에 기뻐했다. 이스칸데르는 “타인의 사진을 도용하는 동성애자들이 많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커피를 다 마시자마자 자혼기르는 이스칸데르의 집에 놀러 가자고 제안했다. 유누사바드(유누소보드) 구역에 위치한 이스칸데르의 방 2개짜리 아파트는 그가 자라난 곳으로, 그는 이웃, 동창, 지인들에게 평생 자신의 성적 지향을 숨겨 왔다. 이스칸데르에게는 본능이 되어 버린 조심성이 자혼기르의 제안에 둔해지고 말았다.


이스칸데르는 “나사가 좀 풀렸었어요.”라며 해명했다.


이스칸데르가 코트를 입고 커피값을 계산하는 사이 자혼기르가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며 속삭이는 모습을 보고 이스칸데르의 의심이 깊어졌다. 그는 신속한 감정 표현은 자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스칸데르가 자혼기르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온 지 30분이 지난 뒤 경찰관들이 현관문을 두드렸을 때 두 남자는 옷을 입고 있었고, 아무런 위법 행위는 하지 않고 있었다. 여전히 남성 간 성관계를 처벌하는 우즈베키스탄 법률에 따른 위법 행위 말이다. 우즈베키스탄 형법 제120조는 소련 시절부터 남아 있으며, ‘남색’에 대해 3년형의 처벌을 규정한다. 구소련 공화국들 중 13개국은 이 조항을 철폐했지만,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만은 남성 동성애를 여전히 범죄로 간주하고 있다.


러시아의 반동성애법, 우크라이나와 조지아(그루지야)의 게이 프라이드 해산과 구타가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우즈베키스탄의 동성애자들은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서방 국가들의 신문 1면을 장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동성애 처벌 조항이 거의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수천 명의 우즈베키스탄 동성애자들과 자기가 동성애자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정치적 망명을 위해 서방으로 밀려들었을 것이라고 경찰 관계자들과 타슈켄트 게이 커뮤니티 일원들이 입을 모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법에 이 조항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우즈베키스탄 경찰관들에게는 돈벌이 수단이 되는 동시에 우즈벡 동성애자들에게는 두통의 원인이 되었다. 지금은 변호사로 일하는 전 수사관은 “누군가를 곤경에 처하게 하거나 압박하려면 동성애 처벌 조항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또 호모들을 협박해서 돈을 뜯어낸다. 돈으로 처벌하고, 수사로 위협한다.” 3명의 경찰관들에게 현관문을 열어 준 이스칸데르 역시 똑같은 협박을 받았다. 이스칸데르와 자혼기르가 옷을 입고 있고, 그저 코냑을 마시고 있는 모습을 본 경찰관들은 굉장히 실망한 표정이었다. 자혼기르는 당황하고 공포에 질린 것처럼 연기를 하려 노력했지만, 이스칸데르는 이 잘생긴 청년이 경찰들과 한패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수사의 일환으로 성관계 여부를 가리기 위한 항문 검사는 의료진이 진행하지만, 경찰 조서 작성을 위해서는 증인들의 출석이 필요하다. 성관계에 대한 증인이 없다면, 두 남자가 한 집에 같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 줄 증인이라도 있어야 한다.


법과 정의의 여신 테미스가 앞을 보지 못하고 돈으로 좌우되는 우즈베키스탄에서 그런 증인을 구하는 것은 아주 저렴하고 손쉬운 일이지만, 우즈베키스탄의 게이에게 그것은 사회적 자살과 마찬가지다. 게다가 경찰관들에게는 아주 결정적인 증거가 있었다. 이스칸데르가 자혼기르와 인터넷 채팅을 하면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노골적으로 썼던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이스칸데르는 경찰관들에게 ‘합의’를 보자고 제안했다. 경찰은 3천 달러를 불렀지만, 이스칸데르는 도저히 그런 돈은 구할 수 없다며 팔을 벌렸다. 10분 동안 흥정, 협박, 애원이 반복된 끝에 경찰관들과 자혼기르는 1100달러와 수십만 솜을 가지고 떠났다.


이스칸데르는 “나는 그나마 싸게 해결된 것이라고 해요. 차 키, 금, 보물까지 넘겨야 한 사람들도 있었다네요. 가족, 직장, 사회적 지위 문제가 달려 있는 문제니까요.”라고 말했다.


나중에 이스칸데르가 지인들로부터 알게 된 사실에 의하면 자혼기르는 동성애자들을 협박하는 데 종종 타슈켄트 경찰을 돕는 유명한 스파이였다. 그의 사진들은 이름과 프로필만 바뀐 채 데이팅 사이트에 자주 출몰한다.


이스칸데르가 겪은 사건이 결코 유일한 것은 아니다. 타슈켄트의 게이들과 위에서 언급됐던 전 수사관에 의하면 동성애자 ‘사냥’은 오래 전부터 우즈베키스탄 경찰들의 짭짤한 부수입원으로, 경찰관들은 동성애자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미행하기도 하고, 데이팅 사이트에서 미끼를 이용하는 방법도 벌써 수년째 이용하고 있다.


소련 해체 후 20여 년 동안 구소련 공화국들의 성소수자 정책은 민주화 개혁과 자유 보장의 수준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동성애 혐오자, 극우주의자, 종교적 극단주의자들에게 이런 상황이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말이다. 따라서 구소련 공화국들 중 가장 독재적인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에서 동성애를 형사 처벌한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 나머지 중앙아시아 ‘스탄’ 3개국은 90년대 말까지 동성애 처벌법을 철폐했다. 하지만 타지키스탄에서도 경찰이 동성애자들을 협박하여 돈을 뜯어내며, 순순히 응하지 않을 경우 아웃팅(타인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에 대해 본인의 동의 없이 밝히는 행위)을 하겠다고 위협한다.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에만 대도시를 중심으로 게이 클럽이라는 ‘동성애자 자유 지대’가 존재한다.

 


역사 속 동성애


가장 놀라운 사실은 정확히 100년 전에는 오늘날 이스칸데르가 겪어야 했던 사건과 같은 일이 불가능했으리라는 점이다. 인터넷이나 핸드폰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동성애가 투르케스탄 남성들의 떼어 낼 수 없는(종종 의무적이기도 한) 삶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2년 전 2월에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발렌타인데이 기념을 금지했을 때, 지나치게 ‘서구적인’ 이 기념일은 공식적으로 바부르의 시를 낭독하는 것으로 대체됐다. 바부르는 티무르와 칭기즈칸의 후예로, 안디잔 태생의 가장 유명한 인물이다. 우즈벡 샤이바니드 왕조와의 전쟁에서 수차례 패배한 그는 수년에 걸친 여러 차례의 모험 끝에 인도의 일부를 정복하여 무굴 제국을 건국했다.


바부르는 지휘관과 통치자로서 명예를 높였을 뿐만 아니라 이슬람 문학 역사상 첫 자서전을 쓴 작가이자 중요한 시인으로도 역사에 남았다. 그는 자서전 ‘바부르나마(바부르나메)’에서 바부리라는 이름의 청년에게 느꼈던, 자신의 첫 연애 감정을 묘사했다.


“그때 수송대의 한 사람에게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의 이름은 바부리였다. 그의 이름은 아주 어울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특별한 호감을 느꼈고, 뿐만 아니라 그 때문에 슬퍼하고 미치기도 했다. 그 전까지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호감을 느끼지 않았으며, 심지어 사랑이나 열정에 관해 듣거나 말하지도 않았다. 가끔 바부리가 나를 찾아왔는데, 나는 너무 부끄럽고 당황한 나머지 그를 바라볼 수조차 없었다. 그러니 어찌 그와 교류하거나 대화할 수 있었겠는가!” (『바부르나마』, 백과사전 출판사, 타슈켄트, 1992년)


바부르의 고백은 터번을 쓴 사드 후작으로 묘사될 수 있는 퇴폐적인 귀족의 이상한 발언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이슬람교도인 투르케스탄과 이란의 ‘동성애’ 문화의 일부였다.


호모에로티시즘은 페르시아어, 아랍어, 튀르크어족 언어들로 적힌 이슬람 고전 문학에서 발견된다. 사디(페르시아의 시인 — 역주)부터, 20세기 초에 타슈켄트에서 기록된, 바치(에로틱한 노래를 부르던 가수들 — 역주) 소년들이 ‘코가 긴 사람’에게 바치는 노래까지. “당신은 너무 많이 사냥의 먹잇감이 되었다네. 당신의 심장은 비탄의 단검으로 찔렸다네. 그런데 그들의 심장은!? 이런, 산산조각이 났다네! 그런데 그들의 코를 보라! 너무나 매혹적인 그것! 코로 내 올가미에 걸린 그들, 완전히 뒤얽혔다네! 다른 종류의 부드러움, 다른 종류의 포즈라네!” (출처: 동방 문학)


 

바치의 춤. 사마르칸트. 1905~1915년 사이. 사진: 세르게이 프로쿠딘-고르스키

 

 

비록 코란과 하디스는 동성 간 성관계를 비난하지만, 아랍어 단어 ‘루티(남색자)’는 성경의 롯이라는 이름에서 비롯된 것으로, 소돔과 고모라의 파괴에 관한 잠언과 관계된다. 동성애는 수 세기 동안 이슬람교도 남성들의 삶의 일부였던 것이다. 값비싼 결혼 비용, 혼전 관계의 불허, 여성들의 ‘폐쇄성’이 가난한 남성들로 하여금 서로 껴안게 하였고, 귀족들과 부자들은 ‘수염이 없는’ 바치들의 봉사를 구매했다.


바치(오스만 터키에서는 ‘쾨첵’이라는 이름으로, 이집트에서는 ‘카왈’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들은 사실상 어린 남창들로, 가난한 부모들에게 돈을 주고 구매해 어렸을 때부터 연회(‘바즘’)에서 선보일 춤과 노래를 가르쳤다. 이런 연회는 종종 난교의 서곡이기도 했고, 가장 손이 큰 관객에게 ‘인기 품목’을 선사하는 경매가 펼쳐지기도 했다.


부하라 에미리트, 코칸드 한국, 히바 한국을 방문한 러시아와 유럽의 여행자들은 현지의 풍습을 묘사하면서 바치들이 참가하는 연회나 부유한 이슬람교도들의 손님맞이 풍경도 기록했다. 이 부유한 이슬람교도들은 종종 청년들을 애인으로 두었는데, 그 애인들도 ‘바차’라고 불리었다.


이 청년들은 높은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표식이었으며,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주인의 명령에 따라 가장 중요한 손님들과 노닥거리는 등 ‘살롱의 안주인’ 역할을 수행했다.


중앙아시아 역사학자 아흐마드 도니쉬에 의하면 부하라의 에미르(군주)였던 나스룰라(1826~1860년 통치)는 양성의 애인들, 특히 어린 애인들과 섹스를 매우 즐겼는데, 궁정 내 울라마(이슬람 사회의 법학자, 신학자 — 역주)로 하여금 동성애의 ‘순결함’을 인정할 것을 명령하기도 했다. “나스룰라는 법학자 나만가니와 같은 울라마의 파트와(이슬람 학자가 이슬람 법에 대하여 내놓는 의견 — 역주)에 따라 소도미를 허용했으며, 남색을 죄악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문서로 공고히 했다.”


역사학자 도니쉬는 나스룰라의 아들인 무자파르(1860~1885년 통치)의 원정군을 묘사할 때에는 에미리트 군인 계층 내에 만연한 동성애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 지역의 여자들과 아이들(의 모습)에 흥분한 1만 명의 군인들, 그리고 그들을 봉사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2만 명은 남색과 소도미에 열중했다.”


평화로운 일상의 풍경은 원정군의 혹독한 삶과는 달랐다. “여기 시장에서는 방종, 도박, 음란한 대화, 소도미가 절정에 이르렀다. 모든 담장과 도랑에서 사랑에 빠진 이들, 사랑을 주는 이와 사랑을 받는 이가 자신들의 욕망을 실현했다. 시장을 감독하는 자는 노름꾼들과 남색자들을 관찰하며 묵인했다.”


종교인들이 종종 이런 풍조의 선두로 나서기도 했는데, 일부 수피즘 공동체에서는 아름다운 청년의 이미지가 기도 명상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런 명상의 목적은 종교적 최면, 신과의 합일이었다.


차르 정권은 바즘(연회)과 바치들의 춤을 금지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울레마의 주장에 따르면 주민들의 타락이 원인이었던 콜레라가 유행한 1886년에 와서야 타슈켄트에서 이들이 금지됐다. 문화적 현상으로서의 ‘동성애’를 근절할 수 있었던 것은 공산주의자들이었다. 스탈린 형법의 동성애 처벌 조항은 1934년에 제정되어 투르케스탄 공산주의자들 사이의 남색을 퇴치하기 위해 이용됐다.


소련 해체 후 투르케스탄의 동성애자 하위 문화에 대해서는 거의 회상하지 않았다. 타슈켄트의 극장 ‘일홈’에서 상연된 ‘하얗고 하얗고 검은 황새’라는 작품만이 예외였다. 이는 압둘라 코드리의 자전적 산문을 바탕으로 한 극이다.

 


게이로 사는 것은 쉬운가, 또는 타슈켄트 동성애자의 독백


어떻게 만나나


예전에는 지인들을 통해 소개받았다. 집에서 벌이는 파티도 주요한 통로였다. 아미르 티무르 동상 근처나 쭘 백화점(중앙 백화점) 근처 오솔길도 동성애자들이 모이는 장소로서 누군가를 사거나 교제할 수 있었다.


인터넷 시대에 접어든 오늘날, 핸드폰을 통해서도 저렴하게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만난다. 대부분의 동성애자들은 맘바(데이팅 사이트) 또는 오드노클라스니키에 있다.

 

 

사진: shutterstock

 


남색 처벌을 규정하는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형법 제120조


경찰에는 이 조항에 따라 아무도 처벌하지 말라는 비공식적인 지시가 있다. 인구 유출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조항을 적용하여 사람들을 구속하기 시작하면 모든 동성애자들과 이성애자들조차도 성적 지향을 이유로 서방으로 정치적 망명을 할 것이다.


이 조항은 그저 행동을 위한 근거일 뿐이며, 그 행동의 목적은 돈을 뜯어내는 것이다. 협박의 수법은 주로 이웃들과 직장 동료들 앞에서 수치를 준다는 것이다.


우즈벡 독립 후 24년 동안 이 조항으로 인한 사건은 딱 한 건 발생했다. 어떤 기자에 관한 이 사건은 그 본질이 완전히 다른 것이었지만, 유죄로 인정된 혐의는 오로지 동성애 금지법 위반뿐이었다.


동성애자들이 모이는 장소에서는 몰이사냥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장소도 이제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인터넷이나 아파트에서 만나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경찰은 덤불 속에 숨어 있는다. 당신과 당신의 남자친구가 달빛 아래에서 낭만을 즐기는 현장을 적발하기 위해서.


‘짭새’들은 어떻게 협박하나


경찰은 데이팅 사이트에서 사람을 찾아 작전을 개시한다. 이 과정에서 경찰에 정보를 누설하는 사람이 이용된다. 그들은 당신으로부터 돈을 빼앗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 행동한다.


보통 경찰서까지 가는 일은 드물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빼앗아 가는 것이 보통이다. 카메라로 촬영까지 했다면 앞으로도 더 많은 것을 강탈당할 수 있다.


이런 협박을 두려워한 모든 지인들에게 나는 사건을 공식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방법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강간 혐의를 뒤집어씌울 수도 있지만... 결국은 재판에서 따져야 한다.


돈으로 사는 사랑


홍등가는 없다. 돈을 받고 섹스하는 청년들은 있다. 이것도 역시 모두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진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


타슈켄트에서는 동성애자들을 관용적으로 대하는 편인 것 같다. 동성애자들은 특별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서로를 거슬리게 하는 요소는 없다.


어린이나 청소년과 성관계를 가지는 것이 우즈벡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적은 없으며, 우즈벡 민족의 정서의 일부도 아니다.


그러나 부자들은 이런 풍습을 누려 왔고, 이것이 많은 가족을 먹여 살렸기 때문에 사람들은 눈을 감아 왔다.


사람들의 위선


그런 풍습은 오늘날에도 존재한다. 지방에서 타슈켄트로 공부하러 온 청소년이 돈 많은 타슈켄트 ‘형’의 보호를 받는다면 부모는 문제없는 척할 것이다.


물론 그가 왜 20살이나 더 많은지 의문을 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직접적인 질문은 아무도 던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든 아무런 상관도 없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하는 게이일 리는 없다.

 

- 올렉 일리인

 

- 옮긴이 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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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2



ЮНЭЙДС приветствует отмену Узбекистаном ограничений на въезд ВИЧ-инфицированны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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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UNAIDS(유엔 에이즈 계획)가 최근 HIV 감염인들의 입국, 체류, 거주에 관한 모든 제한을 철회한 우즈베키스탄 당국의 결정을 환영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새로운 법안은 2013년 8월에 우즈베키스탄 하원 통과 후 상원에서도 승인을 얻었고, 2013년 가을에는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의 서명을 받았다.


UNAIDS의 미셸 시디베 총재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우즈베키스탄의 일보를 환영하며, 다른 나라들도 이러한 선례를 따라 유사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HIV와 관련된 낙인과 차별이 사라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UNAIDS는 HIV 감염 여부와 관계 없이 모든 사람들의 이동 및 주거지 선택의 자유에 대한 권리 보호를 위해 오랜 기간 동안 노력하고 있다. 공중 보건을 명분으로 HIV 감염인들의 입국, 체류, 거주 제한이 합리적이거나 필요하다는 증거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우즈베키스탄이 HIV 감염인의 여행 제한을 해제하고, 안도라와 슬로바키아에도 그러한 제한 조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확인됨으로써 HIV 감염 여부에 따른 입국, 체류, 거주 제한이 적용되는 국가는 41개국(자치령 포함)으로 줄었다. 안타깝게도 이 목록에는 구소련 국가가 다섯(러시아, 벨라루스, 리투아니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이나 포함되어 있다.


- 링크

UNAIDS(유엔 에이즈 계획)


- 옮긴이 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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