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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1




파키스탄 최초의 트랜스젠더 모델: '사람들은 우리가 성노동자라고만 생각하지만, 우리라고 의사가 되지 말란 법은 없어요."




협박, 편견, 가족의 우려 무릅쓰고 파키스탄의 소외 받는 트랜스젠더들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는 카미 시드.




카미 시드, ‘전 그런 컨셉들을 바꿔버리고 싶어요.’ 사진: Haseeb Siddiqui


성은 무릎과 무릎 사이에 있는 거고, 성별은 머릿속에 있는 겁니다.” 카미 시드(Kami Sid) 말이다. 시드는 모든 파키스탄 사람들의 머릿속에 말을 각인시키고 싶어 한다. 올해로 26살인 트랜스젠더 활동가 시드는 파키스탄의 트랜스젠더 혐오증을 규탄하는 한편, 사리 차림의 모델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파키스탄과 트랜스젠더 활동주의를 함께 연상하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남아시아에는 카와자 시라(히즈라라고도 )라는 트랜스젠더 공동체가 있는데, 오래전부터 현지 사회 문화의 일부로 자리잡아 왔다. 그러나 지난 세월 동안 카와자 시라들은 저소득층으로 인식되어 왔으며, 고용과 출세의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2009 파키스탄 대법원은 기념비적 판결을 통해 트랜스젠더를 동등한 시민으로 인전했다. 그렇지만 추행과 차별은 여전히 만연하다. 카와자 시라들은 구걸과 매춘에 의지해서 연명하거나, 춤이나 노래로 돈을 벌도록 강요받고 있으며, 트랜스젠더들도 미용실에서 일하는 여성스런 사람들이라는 선입관이 뿌리깊다. 뿐만 아니라 최근 몇년 사이에는 살해사건도 수차례 발생하기도 했다.


시드는우린 3 성이 아니다 한다. “1 성과 2 성은 누구죠? 여자는 1 성인가요, 2 성인가요?”


카라치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시드는 남자 이름으로 불리며 일곱 명의 형제와 함게 자랐다. “ 어렸을 때부터 아주 여성스러웠어요.” 가족들은 행여나 시드가 추행을 당하기라도 할까봐 밖에 내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사춘기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시드를 홀로 키운 어머니는 그런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여 주셨다고 한다. 시드는 어머니께 어떻게 커밍아웃했을까? “당신 배로 낳고 키운 자식인데 어떻게 모르겠어요…”


카미는 19 때까지 자신이 게이인 알았다고 한다. “게이라는 말은 들은 적이 있었는데, 어쨌든 남들과 다르고,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죠.”


대학에서 경영학을 수료한 그녀는 영국유학을 생각했지만 비자를 받지 못했다. 오빠가 그런 그녀에게 운수회사의 일자리를 소개시켜줬고, 얼마후에는 비자 대행업체에 취직하게 된다. 그러다 2012 페이스북에서 다양한 발언을 해오던 그녀는 트랜스젠더와 MSM(동성과 성접촉이 있는 남성) 위주로 활동하는 단체의 눈에 띄게 된다. 그해 카미는 트랜스젠더 네트워크 컨퍼런스에 참가하기 위해 태국을 찾는다. 생애 최초의 해외여행이었고, 경험을 계기로 활동주의에 눈을 뜨게 된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주목을 받게 작년 패션 모델로 데뷔하면서였다. (카미는 파키스탄 최초의 트랜스젠더 모델이기도 하다.) 오빠들은 물론 다른 가족들의 반발도 있었지만, 시드는 가족이 자신의 공개적인 커밍아웃 때문에 화가 났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주말 오후  카미는 호텔 정원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몸에 받게 된다. 카라치 문학 축제가 열리고 있던 그곳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8년차 애인을자아니’(우르두어로자기’) 부른 것이다. 


시드의 진솔함을 접하면 누구나 긴장을 풀게 된다. 그녀는 사진 촬영 후에 머리를 닦기 위해 등유를 썼던 경험부터 파트너 얘기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 털어놓는 성격이다. “처음 사귈 때는 그이도 게이였고, 저도 게이였죠. 제가 여성스러워졌을 남친이 떠났냐고들 많이 물으시는데, 사람은 아직도 사랑해요. 정체성을 사랑하죠.”


사람이 사는 아파트는 친구들의 아지트이기도 하다. “ 쇼핑몰 같아요.” 시드는 옷정리를 싫어하기 때문에 옷이 여기저기 널러져 있다고 한다. 시드는 사리 입는 좋아하고, 슬래셔 영화를 즐겨보며, 90년대 볼리우드 스타인 마두리 딕시트 춤을 즐겨 따라춘다. 파티에서도 춤으로 주목을 몸에 받는 그녀는 얼마전 가사의 이중적 의미로 유명한 파키스탄 카수 나시보 랄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놀라서 입을 다물더라구요.”


카미는 안드레아 페이치, 하리 네프, 케이틀린 제너 세계적으로 트랜스젠더 모델과 유명인사들이 주목을 받는 시기에 모델로 데뷔했다. 인도에서는 이웃나라 네팔 출신의 모델 안잘리 라마 트랜스젠더로는 최초로 패션위크의 모델로 뽑히기도 했다.


트랜스젠더로 아우팅 당하면 더이상 캣워크에 없었던 때도 있었다. 트레이시 노먼 어빙 펜에 사진이 실렸고, 발렌시아가의 캣워크에도 섰던 흑인계 미국 모델이다. 하지만 트랜스젠더로 밝혀지자 그의 모델 커리어도 시들어갔다. 파키스탄에는 트랜스젠더 모델이 시드 이외에 전무하지만, 그렇다고 외국 스타들로부터 영감을 받은 아니라고 한다. (“케이틀린은 머리가 어떻게 같아요. 아직도 자신을 트랜스젠더라고 생각 하는 같더라구요.”) 지나 로세로나 래번 콕스 같은 미국 모델들은 존경한다는 그녀는 얼마전 파키스탄 패션 잡지인 Libas 사진이 실렸고, 덴마크에서 촬영했던 이야기를 하며 웃음을 보였다. “사리 차림으론 정말 추운 곳이었죠.”


패션계에 살아남으려면 나만의 스페이스를 만들어가야 해요. 로비를 정말 많이 해야 하는데 그런 컨셉들을 바꿔버리고 싶어요.” 시드는 앞선 촬영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사진작가의 의뢰를 거절했던 때를 회상하며 즐거워하는 했다. “남이 자신을 업신여기지 못하도록 해야 해요.”


시드 본인은 사회계급이 그렇게 협소한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녀의 경력이 다른 트랜스젠더 활동가들과 확연히 다른 것도 사실이다. 거기에는 시드가 중산층 출신이라는 점도 작용했다고 있다. 카와자 시라들의 참여는 대개 현지 행사에만 국한되지만, 시드는 국제 만찬회나 상류층이 다니는 미용실에서도 환영받는다. 이번 달에는 런던 사우스뱅크 센터에서 열린 카라치 문학축제 순회이벤트 초청받아 연설하는 , 그녀는 높은 교육수준과 우아함 덕분에 소외받는 다른 트랜스젠더에겐 닫힌 문을 열고 들어갈 있었다.


하지만 시드 본인도 이런 형식주의를 의식하고 이에 맞서고 있다. 시드의 활동은 수용이 중심 테마로 자리잡고 있다. 트랜스젠더 보호법 제정을 위해 신드주 정부와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만, 그런 그녀에게 신중함을 잃지 말라고 조언하는 이들도 많으며, 어머니도 그녀의 신변을 걱정한 나머지 TV 출연을 자제하도록 당부하고 있다고 한다. 


어머니와 통화를 하는 시드는 조심스레 남자 호칭을 썼다. 시드는 오빠가 없을 때만 집에 들른다고 한다. 손에는울엄마 아들이라는 문신이 세겨져 있는데, ‘울아빠 이라는 문신을 새긴 인도 배우 프리양카 초프라로부터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우리 엄마한테 저는 아들로 태어난 자식이니까요.”


올해 5 27살이 시드는 자신이 전형적인 황소자리 성격을 가졌다고 한다. “황소기 때문에 한번 화가 나면 겉잡을 수가 없어요. 심리학 용어로 그런 뭐라 하는지는 몰랐지만 어렸을 많은 분노를 품고 있었죠. 그냥 무작정 사람들을 때리곤 했어요. 일을 시작하면서 평정심도 찾게 됐는데, 아마 나보다 많은 문제점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는 깨달은 도움이 됐던 같아요.”


시드는 앞으로도 파키스탄에서 활동할 것이라고 한다. “제가 고정관념 부수는 하는 편이거든요. 어제는 모델이 됐고, 내일은 엄마가 거예요. 다들 우리가 성노동자 아니면 거지 아니면 춤꾼이라고만 생각하는데, 모델일을 하는 동안 우리도 의사, 기술자, 교사 없이 뭐든 원하는 대로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 왔거든요. 기회가 필요할 뿐이죠.”



5 20 런던 사우스뱅크 센터에서 카미 시드의 강연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기사는 인터내셔널 리포팅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사바 임티아즈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 Saba Imtiaz

- 옮긴이: 이승훈




Pakistan’s first trans model: ‘People think we’re sex workers but we can be doctors’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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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5




파키스탄 트랜스젠더 활동가, '구루 문화는 없어져야'




나딤 카시시는 버려진 아이들이 구루의 손에 들어가면 성적학대와 금전착취에 시달린다고 한다.



라왈핀디의 히즈라들. 대부분은 결혼식에서 춤을 추거나 축복을 주며 생계를 유지한다. 사진: Declan Walsh



오랜 역사를 지닌 파키스탄 트랜스젠더 공동체의 활동가가구루문화의 철폐를 호소하고 나섰다. 여기서 구루란 버림 받은 아이들을 거둬들이는 트랜스젠더들을 말한다. 


쉬메일 기본권 협회의 나딤 카시시 회장은 이들 구루가 아이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성노동으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한다. “어린 트랜스젠더들을 구루에게 맡기는 문화를 근절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성적 학대를 받으며 구걸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히즈라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들 집단에는 트랜스젠더, 크로스드레서, 고자 등이 포함된다. 이들은 남아시아 지역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공동체로, 카마수트라에도 등장하며, 17세기부터 18세기에는 무갈의 조신으로 등용되기도 했다.


파키스탄의 트랜스젠더 공동체는 50만여 명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대부분은 결혼식 무용수나 축복[각주:1] 주는 대신 현금을 받으며, 교통체증으로 정차한 오토바이에 다가가 구걸하는 ,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위치에 있다. 


매우 보수적인 종교국가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학대와 차별에 시달리기도 한다. 지난달에는 남자들이 히지라를 무참하게 구타하는 2 분량의 동영상이 SNS에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지난 5월에는 페샤와르에서 알리샤라는 히지라 인권가가 수차례 총을 맞고 목숨을 잃는 사건도 있었다. 지인들은 병원이 응급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건 알리샤를 여성 병동에 들여놓지 않기 위해서였다 주장했다.


카시시도트랜스젠더로 살아가는 쉽지 않다성적 학대와, 금전 신체 착취에 시달려야 한다 말했다.


한편, 최근에는 대법원에서 일련의 역사적인 판결이 나면서 히즈라들의 입지도 향상되었으며, 신분증에 이들의 성별을 중성으로 표기할 있도록 해야 한다 법원의 명령도 있었다. 예로부터 히즈라들은 자신을 남성으로도 여성으로도 보지 않았기 때문에 신분증 발급이 거부되었고, 따라서 투표권도 공직에 출마할 권리도 없었다.


한변 법원은 지자체에도 히지라들을 위해 일자리를 마련하도록 명령했다. 이에 신드주에서는 소수의 히즈라를 지방채 수령인으로 고용했다. 체납자 집앞에서 춤을 추며 무안을 줘서 부채를 돌려 받도록 하는 것이다.[각주:2]


한편 카시시는 히즈라 공동체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심지어는 수많은 히즈라들이 바라는 성재확정 수술까지 금지해야 한다고 호소한.


그러나구루제도 철폐 호소는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라왈핀디에서 구루로 있는 시자는 (성은 없고 시자라는 이름만 쓴다고 한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어린 트랜스젠더들을 위해 필요한 안전망을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제가 자식이 없으니까 애처럼 대해 줘요. 어릴 찾아 오면 먹을 주곤 했는데 지금은 컸으니 각자 알아서 앞가림 하라고 했죠.”


시자 밑에는 여섯 명의 히즈라가 생활하고 있다. 명인 베질리(30) 집에서 쫓겨 났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고 한다. “구루가 부모님보다 아껴줬어요. 이젠 나이가 드셨으니 제가 챙겨드려야죠.“ 


한편 이슬라마바드 교외 빈민촌에서는 히즈라들이 모스크 건립을 위해 모금하고 있다. 카시시는우린 다른 사람들하고 똑같이 모스크에서 예배를 올릴 수가 없다 한다. “마울비스(이슬람 율법 전문가)들도 히즈라 장례기도는 꺼려하고, 우린 시체도 제대로 묻지 못해요. 하지만 새로 짓는 모스크는 우리도 사회의 일원이라는 전세계에 보여주게 겁니다.” 카시시는 다음 대선 소수자 위해 마련된 의석을 목표로 출마할 계획이다.


당선되면 트랜스젠더들이 생활하고 교육도 받고 건강검진도 받을 있는 건물을 지을 겁니다. 그리고 부모들에게는 아이를 구루에게 맞기지 말도록 캠페인을 벌일 거예요.”




- Jon Boone

- 옮긴이: 이승훈



Pakistan transgender leader calls for end to culture of 'gurus'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1. 이사, 출산 등 [본문으로]
  2. 히즈라에게는 신통력이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이들은 사회적 약자임과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특히 히즈라가 저주를 내리면 실제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이들의 구걸을 노골적으로 거부하는 일은 드물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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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9




파키스탄 지방의회, 트랜스젠더 인권보장 요구 






파키스탄의 북서부 지역에서 연방정부를 상대로 트랜스젠더 여성들의 투표권 인정 요구에 나섰다 인권감시단 전했다. 



이하 인권감시단(HRW)에서 전한 현지상황:



파키스탄 지방정부, 트랜스젠더 인권향상에 나서

지방의회, 연방정부측에 트랜스젠더 투표권 보장 요구


- Kyle Knight


카이베르파크툰크와주 사진: 위키백과

파키스탄 북서부의 지방의회가 연방정부를 대상으로 트랜스젠더 여성들의 투표권 보장을 요구하는 결의안 만장일치로 가결시켰다.


 결의안은 2016 폭행사건의 증가로 고통받고 있는 카이베르파크툰크와 지역의 트랜스젠더 여성들에게 중요한 지지의 메시지가 것으로 예상된다. 


결의안은 트랜스젠더 여성들이권리를 박탈당하고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부류”에 속하 이들이존중받으며 살아갈 있도록 해야 한다 요구하고 있다. 현재 카이베르파크툰크와에서는 트랜스젠더 인권활동가 네트워크인 트랜스액션-KP 현지 트랜스젠더 간성인 여성들이 겪는 폭력에 관심을 모으기 위해 지속적인 활동 전개하고 있다.


트랜스액션-KP 로고

폭력사건 자체도 심각하지만 사건 처리과정도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인권가들이 부상자의 보호 치료를 요구해도 병원 경찰 측은 피해자를 돕기는 커녕, 가해자를 처벌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 8에는 한 트랜스젠더 여성이 유괴 강간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복부에 총을 발이나 맞 사건이 일어났다. 그러나 현지 병원은 여성병동과 남성병동 밖에 없다며 피해자의 치료를 거절했고, 경찰도 인권가들이 병원 밖에서 시위를 벌일 때까지 사건을 접수하지 않았다고 한다. 


파키스탄 법에는 트랜스젠더들의 인권보호 조항 명시되어 있다. 2009년에는 파키스탄 대법원에서도 남아시아[각주:1] 다른 국가들 이어 모든 지방정부가 트랜스젠더 인권 인정하도록 요구하기도 했다. 대법원의 판결은 트랜스젠더 연관된 사건에 대한 경찰의 신속한 대응을 요구하는 한편, 트랜스젠더들의 인권을 보장하도록 지시했다. 


지난 9 파키스탄 전국 인권위원회는 폭력사건의 증가를 지적하며, 정부차원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권고했으며, 트랜스액션도 오는 전국 인구조사에 3 성을 포함시키기 위해 소송 준비중이라고 한다. 


트랜스젠더들의 신변안정, 존엄성 정치참여를 위한 기본권 지지 뒤에는 인권활동가들의 노고가 있었다. 정부가 트랜스젠더 간성인을 겨냥한 폭행 가해자를 법으로 다스리는 , 명확한 조치를 취할 때까지 이들 공동체는 계속해서 소외받고 폭력의 대상이 것이다. 



관련기사:

파키스탄 지방의회, 트랜스젠더 인권향상에 나서 (2016 9, 76crimes.com)

파키스탄: 폭행당한 트랜스젠더 피해자, 경찰과 병원에서도 학대 받아 (2016 8, 76crimes.com)

파키스탄, 이라크: 이슬람 지도자들의 작은 걸음 (2016 7, 76crimes.com)

파키스탄 트랜스젠더 인권가, 총에 맞아 사망, 병원측 치료거부 (2016 5, 76crimes.com)

파키스탄: 트랜스젠더 윤간당해, 사망자 2 (2015 4, 76crimes.com)

업데이트: 파키스탄 LGBTI, 연쇄살인 피해자 6 애도 (2014 6, 76crimes.com)

본블로그 파키스탄 기사




- COLIN STEWART

- 옮긴이: 이승훈




Local officials urge Pakistan to ensure trans rights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76 Crimes.









  1. 파키스탄, 인도, 네팔,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등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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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ing gay in Pakistan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Pink Pages.




동성애가 죄악시되고 여성스런 남성이 지탄받는 보수적인 종교국가, 파키스탄에서 동성애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누바스 만토 씨가 들려주는 감동적인 이야기.




파키스탄에서는 게이’와 ‘고자(eunuch)’가 동의어로 쓰인다. 성기가 있고 없고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내 친구는 나의 성적지향을 확인하기 위해 발기한 상태에서 사정을 하는지 꽤 진지하게 질문한 적이 있다. 그렇다고 답하자, 친구는 그러면 게이일 리가 없다고 했다. 물론, 게이 야동을 보고 발기하는지, 일반 야동을 보고 발기하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섹슈얼리티와도 전혀 상관이 없다. 불쌍한 킨제이 박사. 전통적인 방법을 쓰면 섹슈얼리티를 이렇게 쉽게 가늠할 수 있는데, 연구에 몇 년씩 허비하다니.


하지만 인간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비과학적인 접근방식은 비단 내 친구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다., 대부분의 파키스탄인들이 이슬람과 동성애는 결코 공존할 수 없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성적지향의 다양성에 관해서는 과학이 뭐라하든 알 바가 아니며, 절대신 알라께서 하신 말씀만이 진실이라고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종교에 반기를 들겠다는 것이 아니라 비성적인 사고방식에 반기를 들겠다는 것이다. 20년 전만 해도 라호르에서 여자가 운전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파키스탄 어디를 가든 여자가 운전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여자가 이혼을 당하는 건 수치로 여겨지고 있고, 이혼을 요구하는 것은 창녀로 치부된다. 게다가 우리 가족과 친하게 지내 온 한 사람은 여자가 집안일을 잘 못 하면 좋은 여자가 될 수 없다고 한다. 그럼 좋은 남편이 될 수 없는 남자는 좋은 남자가 아니라는 건가? 그러면 아마도 파키스탄에 좋은 남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남자는 어떻게 해도 남자다. 일반 남성이 추잡한 게이들의 뒤로 삽입을 한다 해도 문제가 될 게 없다. 결국 그네들은 삽입을 당하는 쪽이 아니라 삽입을 하는 쪽이니까. 파키스탄에는 ‘탑’, ‘바텀’, ‘올’과 같은 동성애의 다양성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 게이는 무조건 바텀이다. 나 자신도 그렇지 않은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 줄곧 그렇게 믿어 왔었다. 인간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다들 동성애는 사랑이 아닌 욕망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이성애 주의자들이 접하는 정보란 것도 전부 이런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 파키스탄에서는 ‘고자(히즈라)’와 ‘동성애자 남성(동성애자 여성은 제외)’의 차이는 없다. 그래서 게이와 싸울 때 최고의 모욕감을 줄 수 있는 욕설이 있다. 그건 바로 우르두어 창시자들이 만들어 낸 가장 놀라운 단어 ‘쿠스라!’이다. 난 쿠스라라는 말을 듣는 데 익숙하다. 학교 다닐 때 여성스럽다는 이유로 놀림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도 좀 더 남자답게 굴으라는 소리를 예전부터 해 왔고, 내가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 종용할 것이다. 말투, 걸음걸이, 밥 먹는 자세, 컵 쥐는 자세, 일일이 대자면 끝도 없다. 게다가 남이 우리 가족을 흉보기 때문에 내 성적지향을 입밖에 내면 안 된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하지만 커밍아웃을 하고, 페이스북에 내 성적지향과 무신론에 대해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영국에 있던 형한테서 분노에 찬 메시지를 받았다. 당장 그만두지 않으면 아버지의 이름을 욕되게 한 죄로 날 죽이겠다는 거다. 물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동성애자들은 많다. 가족이 내 편에 서 주지 않을 때, 친구들이 날 버리진 않지만 동성애가 고쳐야 할 병이라는 생각을 고수할 때, 서로 좋게 알아가던 사람들이 내가 커밍아웃한 순간부터 말을 섞으려 들지 않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외에 달리 벗어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모욕감은 적대적인 사람들 뿐만 아니라 바로 내 가족으로부터도 느끼게 된다. 누나들과 싸울 때면 늘 내게 내뱉는 말이 있다. 바로 ‘게이’이다. 파키스탄 게이들의 하위문화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은 나의 이런 경험들이 결코 드문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동성애자 인권이 뭔지도 알고, 이 세상에서 내가 원하는 게 뭔지도 잘 알고 있다. 동성애자로 사는 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고, 비록 지금은 무신론자이지만 동성애자도 무슬림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슬람과 동성애에 대해 알아본 결과, 롯 백성의 이야기를 증오와 편견 없이 해석하기만 한다면, 이슬람권의 동성애자들도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하지만 많은 동성애자들이 그 사실을 모른다. 혐동성애적 어조든 지지적인 어조든, 동성애와 이슬람을 함께 언급하지 않는 한, 동성애자들도 하루에 다섯 번씩 예배를 올리면서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고 있다. 동성애와 이슬람 문제를 언급하게 되면, 다들 섹슈얼리티와 신앙심 사이에서 갈등을 하게 된다. 남자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둘 다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동성애자들이 내가 꾸란을 다시 번역해서 이슬람과 동성애의 화해를 꾀해야 한다고 했을 때, 그 말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 했던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울레마가 어떻게 틀릴 수 있냐는 것이다. 무엇보다 꾸란에는 동성애가 죄악이라고 분명히 나와 있을 것만 같다. 그런데 꾸란에는 동성애라는 표현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다른 표현 방식은 있을지 몰라도 ‘동성애’라는 단어는 결코 나오지 않는다. 그나마 가장 유사한 표현이 롯의 백성에 대한 구절에 나오는데, 롯이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여자를 포기하고 남자들를 취하겠냐고 묻는 장면이다. (사실 그 남자들은 파괴가 가까워졌음을 알리기 위해 찾아온 천사들이었다.) 이 이야기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동성애로 혼란스러워 하는 친구들에게 꾸란 어디에 동성애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지 찾아보라고 하지만, 동성애가 언급을 찾아내지 못 해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 한다. 물론 이해할 수 있다. 20년에 걸친 극단적인 반동성애 세뇌교육이 하루 이틀만에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진짜 불쾌한 것은 파키스탄인들이 종교에서 비롯된 동성애혐오증을 옹호하기 위해 과학적 증거마저 거역하려 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비록 아직 소수에 지나지 않지만, 동성애자들 또한 어엿한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리고 동성애와 종교가 대치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한, 다들 동성애를 인내하곤 한다. 하지만, 동성애를 이슬람과 연관지어 거론하게 되면, 명백한 방어행위가 이어진다. 정말 웃긴 건, 알라의 그 성스런 반동성애 구절엔 구강성교에 대한 언급도 있는데, 그 부분은 다들 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알라는 동성애자를 증오한다며 떠벌리던 두 남자를 대상으로 시험을 한 적이 있다. 그 남자들에게 내가 함께 자 주겠다고 하니까, 단 일초의 주저도 없이 승낙했다. (물론 같이 자진 않았다. 나에게도 자존감이란 게 있으니까!)


한편, 여성 동성애자들의 하위문화는 거의 전무에 가깝다. 마치 레즈비언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남자처럼 옷을 입고 행동해도 사회 전반의 분노를 면할 수가 있다. 모든 여성스런 남성은 게이이고, 모든 게이는 여성스럽다는 개념(나도 한 때는 그렇게 믿었던 적이 있다)이 뿌리깊은 반면, 톰보이라고 해서 모두 레즈비언이라고 하는 사고방식은 없다. 어쨌든, 파키스탄의 동성애자 여성들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나는 내 주위에 레즈비언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고, 떳떳하게 커밍아웃한 레즈비언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가련한 나의 레즈비언 자매들은 성별과 성적지향이라고 하는 두 가지 차별 속에서 고통받고 있다. 


인도 여러분은 파키스탄 게이의 하위문화가 인도와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심지어는 두려움도 희망도 고통도.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향한 사랑과 존중으로 국경선을 지워가야 하며, 국적과 섹슈얼리티, 종교와 인종을 불문하고 모든 형제자매들이 축복받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 누바스 만토 


- 옮긴이: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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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1





Pakistan gets flustered over Facebook's gay rights meme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동성애자 인권 지지자. 사진: Raul Arboleda/AFP/Getty Images




미연방 대법원의 동성부부 인정판결을 지지했다간 비난 사기 일쑤 



나빌 칼리드 씨는 전세계 2600만 명과 함께 페이스북에 무지개 프로필 사진을 설정할 때만 해도 동성결혼에 지지를 표명한다는 비난이 빗발칠 거라 예사하지 못했다. 


지난주 미연방 대법원의 동성부부 합헌 판결이 나면서 무지개깃발이 페이스북을 휩쓸었지만, 파키스탄에서는 그리 널리 퍼지지 못했다.


라호르에서 IT관련 회사에 다니는 칼리드 씨는 절친, 동료, 예전 동료들의 반응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극도로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결혼까지 한 제가 우리 문화와 종교에서 동떨어진 일에 지지를 보인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하더군요.”

 

인터넷에서는 페이스북 무지개 프로필을 두고 논란이 벌어졌고 결혼평등 지지자들은 이슬람을 버렸다며 비난을 샀다. 또한 동성애 다음은 수간이 합법화될 것이라며, 동성애를 규탄하는 코란 구절이 나돌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파키스탄 사회의 관용도가 예전에 비해 높아졌다고 하지만 보수적인 종교국가인 파키스탄에서는 지난 수십년간 급진세력들이 이슬람 신앙의 공격적인 해석을 전파하고자 애써 오고 있다.


각종 설문조사에서도 젊은층의 대부분이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한 여론조사에서는 젊은이의 40%가 샤리아 율법으로 통치되는 국가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사회활동가인 마르비 시르메드 씨는 진보적인 사람들도 늘고 있으며, 특히 동성애자 인권에 관해서는 더 그렇다고 한다. 


소셜미디어에서 동성애자 인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서 정말 정말 기쁩니다. 5년전만 해도 상황이 완전히 달랐거든요.”


시르메드 씨는 2011년 한 TV프로그램에서 파키스탄 성소수자 인권가들을 초청한 미국대사관을 옹호했다가 엄청난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


아직 성소수자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어렵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주요언론은 미연방 대법원 소식을 거의 다루지 않고 있지만, 인터넷상에서는 상당한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다. 


아내와 함께 라호르에 거주하고 있는 칼리드 씨는인터넷과 함께 자라나는 세대들은 바깥세상과 소통할 길이 더 많다”고 한다. 


전 해외에 나가 있는 시간이 많은데, 페이스북을 보면 사람들이 제 생각을 잘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파키스탄에서는 인구 2억명 중 3200만여 명만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인터넷 사용자가 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현재 파키스탄의 인터넷 사용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런던대 경제학부의 엠리스 쇼메이커 씨는 페이스북 이용을 무료로 제공하는 통신사들 덕분에 가입자수가 늘고 있다고 한다. 


무지개깃발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요. 한 노동자는 친구의 무지개깃발 프로필에 좋아요를 눌렀다가 나중에 그 의미를 알고 속았다며 화를 내기도 했죠.”


지난 수요일 파키스탄에서는 진보언론인 <Express Tribune>지가 문을 닫아야 한다는 요구가 트위터상에서 가장 큰 화제를 모았다.


<Express Tribune>지가 온라인상의 공분을 산 이유는 ‘우리 남편이 게이예요 - 힘겨운 진실’이라는 기사 때문이었다. 


페이스북에 6만명의 팬을 거느리고 있는 영화배우 함자 알리 압바시 씨는 “파키스탄 사람들이 짐승도 금기시하는 행동을 축하하는 것에 실망했다”며 빨간색 사선이 그어진 무지개깃발을 프로필 사진으로 지정했다.


그는 나중에 먼 나라에서 통과된 법이 상관도 없는 파키스탄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건 왜일까라는 글을 올렸다.


또한, 자신의 입장에 반대하는 이들에게 “서양옷 입고, 외국물 좀 마시고 온 편협한 홧병꾼들이 영어는 고상하게 쓰시네”라며 반박했다.


파키스탄에서 동성애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성소수자들의 가시성은 높은 편이다. 상당수의 트랜스젠더들이 길거리에서 구걸과 매춘으로 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9 년 대법원은 트랜스젠더들이 신분증에 제3의 성으로 기입될 수 있도록 허락했으며, 이들의 고용을 돕도록 정부에 명령했었다.


라호르에 거주하는 작가 모흐신 하미드 씨는 “파키스탄에 동성애는 많지만 입에는 담지 않는다”고 한다.


파키스탄 사회에서 동성애 주제는 일종의 긴장감 있는 웃음을 유발합니다. 그냥 키득거리고 웃어넘길 주제일 뿐, 좀더 심각한 공공토론이 이루어질 발판은 그리 많지 않죠.



- Jon Boone



- 옮긴이: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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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6

 

 


Власти Пакистана заблокировали едва начавший работу первый гей-сайт в стране
Перейти к оригинальной статье на GayRussia.Ru.

 

 


성소수자들에게 도움과 지지를 제공하기 위해 사이트 제작

 

 

 

 

BBC의 보도에 의하면, 파키스탄 정부는 파키스탄 최초의 동성애자 사이트를 폐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포털 사이트는 지난 7월 “우리를 혐오하지 말고 우리의 존재를 인지하세요”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서비스를 시작했었다.


포털 사이트 제작자들은 성소수자들에게 도움과 지지를 제공해왔다.


파키스탄에서 동성 간 성관계는 법적으로 처벌받을 수 있으나, 실제로 재판까지 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파키스탄 정보통신부는 동성애자 사이트를 폐쇄한 이유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지는 않았다.

 

- 옮긴이 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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