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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




레이 선생님께: 항문섹스할 탑역할도 바텀역할도 힘들어서 7년째 연애를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레이 선생님께


저는 34 남성인데, 7 동안 연애를 피해 왔습니다. 항문성교를 받는 역할을 하면 너무 아프고, 삽입 역할을 발기가 되거든요. 20  진지하게 사귄 사람이 있었는데,  땐 굳이 삽입을 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에, 섹스로 문제를 겪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내다 보니 평생을 함께 하 싶은 사람은 아니더라구요. 후로 만난 남자들은 삽입으로 이어지는 아니면 아예 관심 자체를 가지더군요. 그러다보니 저도 남자와 때면 혹시 이번에도 못하는 아닌가 하고 자존감이 점점 줄어갔습니다. 어플에서 채팅을 하면 처음부터 탑인지 바텀인지 알고 싶어들 하더라구요. 거기서 다른 성행위를 좋아한다고 하면 그걸로 대화가 끝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저한테 해결책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정말 다시 연애를 하고 싶은데 어디서 시작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올림






님께



아담과 스티브 이래로 게이와 항문성교는 거의 동의어처럼 쓰여왔습니다. 종교와 법률, 사회관습 등이 남성의 사랑행위를 계간이라 범죄적 변태행위로만 왔죠. 그런데 통계를 보면 실제로 게이들이 어플에서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은탑이냐 바텀이냐 것입니다. 이건 인간의 복잡성, 특히 게이라는 섹슈얼리티의 복잡성을 간과하는 이분법이라 있죠. 


그래서 간편하고 쉬운 어플 시장에서의만남 저항하는 편입니다. 인간을 뽀샵한 제품과 250 설명으로 비약시켜 버리니까요. 사람을 사진, 라벨, 카테고리, 마디 글로 정리한다는 불가능합니다. 크루징, 데이트, 구애와 같은 지난날의 의식이 훨씬 두근거리면서도 긴장도 되고 실감났죠. 거부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성적인 실수에서 오는 초조함도 생생한 긴장감으로 다가왔습니다. 어플로는 결코 뽀샵해낼 없는 욕구죠. 


님이 항문성교에 대해 가진 문제점이 정확히 어떤 건가요? 받는 역할을 너무 아프다고 하셨는데, 정확히 어떤 부분이 문제죠? 얼마나 많이 시도해 보셨고, 상대는 어떤 사람들이었나요? 먼저 본인이 원하지 않는다면 굳이 성행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강조 드리고 싶지만, 남성에게 있어 항문성교는 욕망과 격한 쾌감의 유기적인 결정과도 같기 때문에, 부디 두려움 때문에 포기하지는 말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성적 쾌감의 비결은 뭐니뭐니 해도 마음가짐입니다. 선입관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을 수도 있고, 너무 남의 눈을 의식하거나 자신을 억제해도 마음의 문이 닫힐 있습니다. 반면, 상호교감과 흥분은 우리로 하여금 마음의 문을 열고 어떤 경험도 즐길 있게 도와줍니다.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생리적/생물적 규칙이 있는데, 그건 항문내 5~8cm 남자들의 쾌감스팟이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생리적인 규칙은 개인적인 겁니다. 가장 먼저 신경 쓰고 흥분시켜야 하는 부위는 바로 마음이죠. 문제는 항문성교에 관심이 없는 아니라 마음이 항문성교를 너무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이려 한다는 겁니다. 마음을 편하게 먹으 나머지는 저절로 풀릴 겁니다. 


7 동안 연애를 회피해 오셨다고 했는데, 그러면서 본인의 욕구도 회피해 오신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거부와 체념이 만연한 세상에서 자신을 거부하고 체념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앞으로도 내게 맞는 찾지 못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게 어떤 욕구가 있는지 파악하고 그걸 것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본인이 원하는 , 필요한 , 그리고 본인에게 맞는 어떤 건지 확실하다면, 그걸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지 곰곰히 생각해 보세요. 누구도 성을 섹스와데이트 상품화를 막을 없지만, 또한 문제의 일부분이 될지 아니면 해결책이 될지는 스스로 선택 있습니다. 다른 원한다면 본인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문자만 보내지 말고 직접 말을 거세요. 자신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표현할 알아야 합니다. 




레이 박사는 개인 연애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정신분석 심리치료사입니다. 

전화: 086 828 0033

이메일: ray@gcn.ie




 연애팁



항문성교에  알아둘 여덟가지 포인트 



1. 전립선  항문 안으로 5-8cm 들어간 지점에 있는 말초신경은 지스팟 해당하는 남자들만의 쾌감스팟입니다. 남성 오르가즘의 제로지점이기도 하죠.


2. 항문성교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만큼 불결하지 않습니다. 항문과 직장 하단에는 사실 대변물질이 거의 없거든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마음을 편하게 가지는 겁니다. 가끔은 샤워만으로도 긴장감을   있어요.


3. 조깅을 마라톤부터 시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단계별로 진도를 나가세요. 처음엔 혀로 말초신경을 깨운 , 손가락이나 다른 항문용 섹스토이를 쓰는 것도 좋습니다.  풀고 수용성 러브젤을 많이 사용하세요.


4. 너무 깊이 어가는  금물! 항문 테두리에 집중해 있는 쾌락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려면 옅은 곳에 머무는 것이 좋아요. 그러면 바텀도 아프지 않을 거라는 안도감에 긴장을   있습니다. 


5. 긴장을 풀어야 하는  괄약근이 아니라 바로 마음이란  잊지 마세요. 핥기, 젖꼭지 애무, 키스 등등 다른 행위로 주의를 분산시키거나 흥분시키는 것도 도움이 돼요.


6. 속사포 행위는 금물입니다. 사정없이 당해보고 싶다는 환상과 현실은 분명 다른 것이니까요.


7. 교감이 무엇부다 중요해요. 나한테 뭐가 맞고 맞지 않는지 알려면 몸과 몸으로 교감하며, 철저히 솔직해지고 표현할  알아야 해요.


8. 회음(음낭과 항문 중간부위) 마사지하면 외부에서 전립선을 간접적으로 자극할  있어요. 가끔은 문을 따고 들어가는 것보다 집에 누가 있는지 노크부터 해보는   흥분될 수도 있답니다.




- 옮긴이: 이승훈




Dear Dr. Ray; I HAVEN’T HAD A RELATIONSHIP FOR SEVEN YEARS BECAUSE I AM UNABLE TO BE EITHER TOP OR BOTTOM FOR ANAL S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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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




데이트어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나체사진 교환은 익숙한 것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가면 영원히 돌이킬 다.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에 솔직해진다는 LGBT들의 삶에 주춧돌이자, 살면서 부단히 직면하는 화두기도 하다. 벽장에서 커밍아웃한다는 애초에 벽장 속에 숨어 있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비밀을 품고 산다는 어떤 건지 알고 있다. 그런가 하면 보이는 곳에 숨어서 자신을 보호하며 상황에 적응하기도 한다. 


삶은 표피를 하나하나 벗어가며 자신을 드러내 과정이었다. 쉽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존재의  깊숙한 곳을 드러내며, 나의 진실에 닿기 위해  노력해 왔다. 약점을 드러낸다는 것이 고통스러워도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 마음의 문을 열려고 했다. 섹슈얼리티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게 상대방에게 선입관을 있는 상황에서도 퀴어로서 삶을 숨기지 않았고, 그건 Scruff에서 프사를 때도 마찬가지였다. 


기술의 발전 덕에 벗은 사진도 우리 세상의 일부가 되었고, 2 천성이 되었으며, 대화의 일부로 자리잡았다. 이런 사진을 수치스러워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가 몸에 대해 개방적이면 개방적일수록 상대방이 우리를 제재하려는 힘도 줄어드는 것 같다. 누드 덕분에 우리 몸의 공통점을 있다. 피부란 정직한 법이다. 옷을 벗은 우리 모습은 크게 다를 없고, 피부 속은 더욱더 그렇다. 우린 감정을 몸안에 쌓아둔다. 그래서 자신을 몸으로 표현하면 본모습 그대로를 인정받는 같은 기분이 든다.


텀블러에서 친구의 나체와 마주치는 (본인이 원해서 올린 사진들, 자기 사진을 자진해서 공개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으니까) 부정적인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두려움 없이 자신을 내보이고, 자신의 몸을 도구로 사용할 아는 사람들을 보면 대단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진보다는 웹캠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지금까지 여러 번에 걸쳐 몸을 세상에 공개해 왔다. 그렇게 내보이는 변태스럽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내겐 그게 고리타분한 사회에 맞서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 침범행위와도 같다.


하지만 나도 자제를 때는 있다. 몸을 편하게 받아들이, 디지털 세상에 드러내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 행위가 부메랑이 되어 내게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원래 너무 많은 노출은 두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만, 인터넷은 반영구적인 곳이라 올린 사진을 되돌리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그렇다고 숨기기만 하기보다는 자신을 노출하는 데서 오는 수치심을 해체해 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전부터 나는 자신을 드러내 보인다는 것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왔다. 돌이켜 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눈에 띄는 좋아했다. 다들 답이 틀렸을까봐 조마조마하고 있을 제일 먼저 손을 드는 그런 아이 말이다. 나는 10 부끄러워 하지 않기로, 그런 감정을 극복해서 삶을 조금이라도 허비하기로 결심을 적이 있다. 그런데 내가 정말 아끼던 사람이 면전에서 내가 수치스럽다는 말을 했다. 말을 들은 나는 무너져 버렸고, 자신감을 쌓기 위해 평색을 쏟아온 노력도 무너져 버렸다. 마치 내가 나체 사진을 보여줬는데 상대방이 그걸 역이용해서 조종하려는 것만 같은 심정이었다.


평생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살기로 했었는데, 사실은 남들의 웃음거리면서 내 자신만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 한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다. 마치 20 동안 쌓 수치심이 무너지듯 쏟아져 내리는 같았다. 갑자기 치부를 드러내 보이는 같았고, 남들이  오해하는 것만 같은 심정이 들었다. 아예 처음부터 적당히 부끄러워 하면 그랬나? 몸을 내보이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살아왔지만 갑자기 나라는 사람을 남들에게 드러내 보이는 두려워졌다. 


그럼 자신을 구속하지 않고 살아가면서 내게도 냐약한 감정이 있다는 편하게 받아들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극단적인 잡년이 되는 것도 좋지만, 자신에 대해 감정적으로 솔직하고 진솔해지는 , 그리고 용감하게 약점을 드러낼 아는 다른 사람들을 응원하고 감쌀 아는 것도 중요한 같다. 


자기수용은 전반에 걸쳐 위력을 발휘한다. 목표는 감정적으로,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그리고 성적으로 자신에 철저히 진솔해지는 것이다. 조종할 있는 오직 진솔함 뿐이기에.




- Andy Kane

- 옮긴이: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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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5




스코틀랜드교회, 동성결혼식 거행 허용하나 




스코틀랜드 교회가 과거 동성애자 차별에 대한 사과와 함게 관료들에게 동성결혼식 거행안을 고려하도록 권고했다. 



총회에 참석한 이언 토랜스 교수: “지금 우리 중에 성경해석을 둘러싼 이 논쟁에서 어느쪽으로든 극단에 치우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사진: Jane Barlow/PA



스코틀랜드교회가 목사들에게 동성결혼식을 거행할 있도록 허용함과 동시에 과거 동성애자들에게 이루어진 차별을 사과하는 등의 매우 중요한 걸음을 내딛었다. 에딘버러에서 열린 스코틀랜드 교회 총회는 목사들이 동성결혼식을 주관할 있도록 교회법 개정을 고려하도록 관료들에게 지시했다. 


하지만 교회 관리부의 강력한 지지에도 불구하고 스코틀랜드 교회 목사가 동성결혼식을 거행하게 되기까지는 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개정법이 먼저 내년 총회에 상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 성공회에서는 보름후 동성결혼식 거행을 위한 교회법 개정 여부를 두고 투표가 치뤄질 예정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잉글랜드 성공회와는 다른 것으로, 국제 성공회연합으로부터 제재를 받을 수도 있다. 작년에도 미국 성공회가 성직자에게 동성결혼식 거행을 허용했다가 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 


한편, 스코틀랜드 교회 총회는 지도자들에게과거 동성애자들에게 자행된 차별을 다방면으로 조사하는 한편 개인 단체 명의로 사죄하도록요구했다. 이날 총회에서 사과안에 대한 반대의견은 나오지 않았다. 


작년 총회에서 의뢰된 신학포럼 측의 보고서도선출된 목사 집사에게 동성결혼식 거행권을 거부할만한 신학적 사유가 불충분하다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보고서는 동성결혼식 거행을 양심거부하는 다른 성직자 집사들도 보호받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한 교회내에는 기본교리를 유지하면서도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분열이 깊다며, 이러한 “부득이한 차이 대해서도 언급되어 있다. 


예컨대 우리는 동성인 사람에게 결혼제도를 적용시킨다고 해서 다자연애 관계에까지 적용해야 한다는 인권상의 주장이 대두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로보트와의 결혼도 허용되어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 핵심은 사람이 합의에 의해 계약을 맺는 관계라는 점을 우리는 이해하고 있다.”


신학포럼의 의장이기도 이언 토랜스 교수는 보고서를 공개하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지금 우리 중에 성경해석을 둘러싼 논쟁에서 어느쪽으로든 극단에 치우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다들 드넓은 스펙트럼의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고, 뒤죽박죽인 우리 삶에 성경을 적용하면서 스펙트럼 속에서 이리저리 이동하기도 합니다.”


개신교는 결혼을 성례로 보지 않습니다. 사람이 일련의 서약을 통해 서로에게 구속되기 위해 자의로 맺는 계약일 뿐이죠.”


동성결혼 찬반양측은 시간 동안 이어진 토론을 지켜봤다. 피터 존스턴 목사는 이성애자인 자녀는 물론 레즈비언인 딸의 결혼식도 주관하고 싶지만, 현재로서 스코틀랜드 교회의 문은 굳게 닫혀 있다고 했다. 


반면, 데일 런던 목사는 동성애 행위가하나님 말씀에 반하는 죄악이라며, “하나님이 사악하다고 하신 선한 것이라 수는 없는 이라고 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2014 동성결혼이 허용되었지만, 교회는 교파마다 동성결혼식 거행 여부를 결정할 있도록 되어 있다.




- Harriet Sherwood 

- 옮긴이: 이승훈




Church of Scotland in step towards conducting same-sex marri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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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5




살해협박 시달리던 트랜스젠더 여성, 체첸 상황 증언해




레일라는 모스크바로 거처를 옮긴 후로 폭행에 시달렸으며 2015년에는 체첸인으로부터 칼에 찔리기도 했다.




사진: Dave Frenkel (트위터)


자신이 체첸 최초의 트랜스젠더라고 주장하는 여성이 살해협박에 못이겨 러시아를 탈출한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레일라라는 이름으로 알려지 여성은 2000년대 중반에 전환과정을 거쳤으며, 전에는 아흐마드 카디로프 체첸 대통령 밑에서 일하기도 했다고 <인터내셔널 비지니스 타임스>지는 전했다. 


레일라는 모스크바로 거처를 옮긴 후로 폭행에 시달렸으며 2015년에는 칼에 찔리기도 했다. 당시 체첸인 가해자는언제까지 체첸인들을 부끄럽게 거냐?” 물었다고 한다. 


가족들은 신분을 없는 이들로부터 레일라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으며, 레일라 본인도 문자로 살해협박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 측은 레일라의 우려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체첸으로 돌려보내 버릴 거라며 협박하기도 했다. 


살해협박에 시달리던 레일라는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러시아 TV <Rain>과의 인터뷰에서 체첸내 LGBTI 박해가 람잔 카디로프 취임년도인 2007년부터 이미 시작되었으며, 지인들 중에도 성적지향 때문에 살해당한 사람이 최소한 명이나 된다고 밝혔다. 


체첸 당국은 체첸에 동성애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게이 양성애자 남성을 고문하는 수용소와 체첸 각지에 만연한 박해행위에 대한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한편 미국은 러시아내에 은둔중인 게이 체첸인 40명에게 비자발급을 거부했다고 러시아 LGBT 네트워크 측은 밝혔다. 




- JESS JONES 

- 옮긴이: 이승훈




TRANS WOMAN RECALLS FLEEING CHECHNYA AFTER ATTEMPT ON HER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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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7




맨체스터 폭발사고에서 아리아나 그란데 게이팬 사망




그는 열번째 희생자였다. 






아리아나 그란데의 맨체스터 공연 폭발사고에서 게이 남성의 사망이 확인되었다.


당일 공연에서 자살테러범이 죽인 22 중에는 29살의 마틴 헤트도 있었다. 밖에 부상자도 59명에 달했다. 


콘서트 마틴의 댄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실종된 동생의 사진을 올리고 도움을 청했다.


동생 마틴이 어제 맨체스터 아레나에 갔다가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누구라도 보신 있으면 연락 바랍니다.”


그러나 맨체스터 경찰에 의해 10번째 희생자가 마틴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Queerty> 보도에 따르면 마틴의 파트너 러셀 헤이워드도너무나도 멋지고 아름다운마틴이 목숨을 잃은 소식을 접했다고 밝혔다. 


지금 상황이 너무 안좋으니 답변 못드려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행히도 마틴의 멋진 가족과 친구들이 있어서 서로 위로하고 있습니다. 마틴, 사랑해. 언제까지나마틴은 솔메이트 이상이었습니다. 마틴, 제발 돌아와서 코리 재방송 보자.”


SNS에서는 마틴을 추모하는 메시지가 쏟아졌다. 



"마틴 헤트, 너와 함께한 29년은 하루하루가 의미 있었어. 너무 그리울 거야. 우상."



지금 상황이 너무 안좋으니 답변 못드려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다행히도 마틴의 멋진 가족과 친구들이 있어서 서로 위로하고 있습니다. 마틴, 사랑해, 언제까지나."



"너무나도 재밌고 위트 넘치고 익살맞았던 그여 이젠 안녕. 이 세상은 스타를 잃어버렸어."




- MATTHEW WADE 

- 옮긴이: 이승훈




GAY ARIANA GRANDE FAN CONFIRMED DEAD IN MANCHESTER ATT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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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3




포르투갈, 간성인 유아 성관련 수술 금지키로




전인류의 1.7% 간성인이라고 한다. 






포르투갈이 지난주 간성인 유아의 성관련 수술을 금지했다.


발표는 브뤼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포럼에서 이루어졌다고 <게이스타뉴스>지는 전했다.


ILGA 유럽은 트위터를 통해이건 인권의 문제라고 밝혔다. 


간성인 유아가 수술을 받으면 조직손상, 거세, 성관련 문제 흉터 등의 부작용을 평생 이고 살아가야 수도 있다. 


최근 간성인 유아 아동의 강제수술을 철폐해야 한다는 간성인 활동가들의 요구가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국제 암네스티에서도 관련 사안에 대한 보고서 발표했었다.



포르투갈이 간성인 유아에게 자행되는 불필요한 수술을 금지한다고 합니다. 다른 나라들도 본받으시길. 이건 인권 문제입니다.“




- JESS JONES 

- 옮긴이: 이승훈




PORTUGAL TO BAN SEX-RELATED SURGERY ON INTERSEX BAB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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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3




영국의 동성애 금지법이 50년 전에 폐지되었다는 근거 없는 주장에 빠져선




1967년 제정법의 경축을 앞두고 있는 영국, 하지만 법이 통과한 이후 국가는 반동성애법을 과격하게 적용시켰다. 




테이트의 퀴어 브리티시 아트 때 전시될 헨리 스코트 튜크(1858-1929)의 ‘비평가들(The Critics)’. 1967년 해방 이후로 수십년간 처벌받은 게이 남성은 15000명에 이른다. 사진: Warwick district council (Leamington Spa, UK)



오는 7 1967년도 성범죄법 50주년 맞아 테이트 미술관의 퀴어 브리티시 아트에서 BBC 게이 브리타니아 시즌에 이르기까지 기념 이벤트들이 기획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경축 분위기를 보고 있자면 그와는 상반된 기분이 들기도 한. 1967년은 분명 성과였지만 사실 영국에서 동성애가 합법화된 2013년이었. 1967년의 제정법은 시작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건 헨리 8 재위기간이었던 1533 항문성교가 법으로 금지 이래로 처음으로 이루어진 동성애 관련 법개정이다. 항문성교 이외에 남성간의 다른 성행위는 빅토리아 시대였던 1885 전면 금지되었다.



같이 읽기: 피터 애크로이드가 들려주는 게이 런던 2천년의 비사



최근 필자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1967 해방 이후로도 최소한 15000 명의 게이 남성이 유죄판결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1967 법개정 때는 동성애가 부분적으로만 합법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동성애의 수용과 평등에 반대하던 국가는 다른 반동성애법을 예전보다도 과격하게 적용시켰다. 1885년부터 2013년까지 10만명에 가까운 남성들이 동성간의 성행위로 체포되었다고 한다. 


1967 제정법으로 항문성교 최고형인 종신형이 폐지되었다. 그러나 항문성교는 여전히 차별의 대상이었다. 남녀간의 성관계 승낙연령은 16세였던 데에 반해 남성간의 성관계 승낙연령은 21세로 책정되었다. 이러한 결정은 젊은이들이 연상의 남성들의 꾀임에 넘어가 더럽혀진다는 혐동성애적 개념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21 이상의 남성이 61-21세의 남성과 ()항문성교를 경우 처벌은 2년에서 5년으로 늘어났다.


동성간의 성교는 철저히 사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여전히 기소대상이었다. 철저히 사적인 공간이란 자택에서 문과 창문을 잠그고, 커튼도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어디에도 당사자 외에 다른 사람이 있어서는 된다. 이상의 남성이 성교하거나, 성교 장면을 3자가 사진이나 비디오로 담는 것도 범죄행위였다. 볼튼에서 일곱 명의 남성이 규정을 어겨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명이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이게 1998 일이다. 


1967년의 개혁은 영국과 웨일스에만 적용되었으며, 스코틀랜드는 1980, 북아일랜드는 1982년에 이르러서야 같은 조치가 이루어졌다. 여기에는 군대와 상선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 시설에서 남성간에 성행위는 여전히 불법이었다. 게이 군복무자와 상선 선원들은 민간에서는 이상 불법이 아닌 행위로 인해 1994년까지 처벌 받을 있었다. 동성애 행위로 인한 선원 해고 허용했던 법은 아직도 폐지되지 않고 있다. 


수세기나 반동성애법은 1967 이후로도자연에 어긋나는 범죄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법령집에 남아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동성애 범죄는 항문성교와 성추행이었다. 전자는 법률용어로 buggery라고 했고, 후자는 남성간의 성접촉 전반을 가리키는 것으로 만지거나 키스하는 것까지 포함되었다. 밖에 알선죄도 있었는데, 동성성교를 도모하거나 유인하는 행위가 해당되었다. 유인 간청도 법으로 금지되어 있어서, 실제로 성행위가 일어나지 않았다 해도 동성애적 의도를 가지고 공공장소에서 남성끼리 대화를 나누거나 어슬렁거리는 것만으로도 처벌대상이되었다.


1976 이전에도 이후에도 길거리에서 다른 남자를 보며 웃거나 윙크를 하는 것만으로 처벌받았다. 군경찰 조항법(1847), 교회재판소 재판권 (1860) 같은 구식법에 의한 체포도 여전히 이루어졌다. 



공원과 화장실에는 잠복경찰이 도사렸고, 일명예쁜 경찰 미끼로 이용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1967년의 비범죄화 덕분에 혐동성애적 법이 적용되지 않는 상황도 생겼지만, 게이 남성들의 대부분은 여전히 범죄로 치부되었고, 탄압은 오히려 이전보다 심해졌다.


공원과 화장실에는 잠복경찰이 도사렸고, 게이 남성들로 하여금 성범죄를 저지르게 하기 위해 일명예쁜 경찰 미끼로 이용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게이 사우나도 습격당했다. 동성커플들이 얼굴을 마주보며 춤을 있는 클럽들은매음굴이라는 이름하에 기소되었다. 이렇듯 게이, 양성애자 남성 그리고 일부 레즈비언들은 1990년대에 이르러서도 공공질서 유지라는 명목으로 공공장소에서 키스와 포옹과 같은 애정표시 행위를 하면 평화관련법을 위반했다며 연행되었다. 


부분적인 비범죄화가 이뤄지기 전인 1966 420 명의 남성이 성추행(gross indecency)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필자의 조사에 따르면 1974 해에만 유죄판결 회수가 300% 증가한 1711 건에 이르렀다. 


주택, 고용, 상품 서비스 제공 분야의 혐동성애적 차별도 2003~2007년까지 아무런 법적 보호장치 없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 사람들은 성적지향과 성별 정체성 때문에 취직을 거부당하거나 해고 당했고, 집을 빌리지 못하거나 살던 집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퍼브나 식당에서 쫓겨나는 경우도 있었고, 동성애자 부모는 이혼 소송에서 자녀 양육권을 잃었다. 이런 일을 당해도 법적 보상을 받을 길이 없었다. 


1980년대에 이르자 보수정권의가족의 가치캠페인이 히스테리에 가까운 동성애혐오를 불러일으켰고, 이러한 풍조는 도덕적 공황과 HIV/에이즈로 심화되었다. 1987 보수당 회의에서 기조연설자로 연단에 오른 마가렛 대처는 동성애자도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다는 개념을 공격했다.


이러한 비관용적인 분위기 속에서 게이 남성들의 검거도 대폭 증가했다. 합의에 의한 행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필자는 내무부에서 1989 해만 성범죄 관련 처벌 경고를 1718 건이나 찾아냈다. 기록된 성범죄 사건은 2,022 건으로, 이는 남성의 동성애가 전면 불법이었던 1954년의 2,034 건에 필적하는 수준이다. 


완벽한 개정은 1967년으로부터 36년이 지나서야 이루어졌다. 1885년에 제정된 성범죄법으로 1952 컴퓨터 천재 앨런 튜링에게 유죄가 선고되었고, 그보다 이전인 1895년에는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투옥되기도 했다. 법은 항문성교 금지법과 함께 2003년도 성범죄법 제정되면서 비로소 철폐되었다. 결과 영국과 웨일스는 470년만에 동성간의 성행위를 형법으로 금지하지 않게 되었다. 북아일랜드에서는 항문성교 금지법이 2008년에야 폐지되었고, 스코틀랜드의 반동성애법은 2009년에 철폐되었지만, 계간죄 폐지의 경우 2013년에야 비로소 시행되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영국에서 동성 성교가 범죄행위로 간주되지 않은 이제 겨우 4 밖에 되지 않았다. 




- Peter Tatchell

- 옮긴이: 이승훈




Don’t fall for the myth that it’s 50 years since we decriminalised homosexuality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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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95-23




당신이 화장실 에티켓을 운운하고 있을 때, 비키 톰슨 같은 트랜스젠더 여성들은 어둠속에서 죽어가고 있다. 




남성 교도소에서 죽어가는 트랜스젠더 여성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침묵이 시사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강간 또는 살해를 당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비키 톰슨(오른쪽)과 파트너 로버트 스틸. 로버트는 리즈 왕립교도소에 전화해 비키기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고 경고했었다. 사진: Robert Steele/Social Media


나쁜 짓을  것만 같아나도 그렇고 싶진 않은데 더는  있겠어.”


2015 21세의 나이로 남성 교도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트랜스젠더 여성 비키 톰슨이 남긴 쪽지에 적힌 말이다. 



같이 읽기배심원단, '남성 교도소에 수감됐던 트랜스젠더 여성자살할 의도 없었다'



4년차 애인이었던 로버트 스틸 리즈 왕립 교도소에 전화해 비키가 많이 힘들어 하고 있는 것 같다고 경고했다으레 젊은 트랜스젠더들이 그렇듯 비키도 학대와 자해중독의 경력이 있었고, 12 때는 아는 어른으로부터 강간을 당한 적이 있었지난주에 열린 재판에서 배심원단은 리즈 교도소에서 그녀가 받았던 대우는 부적절하고전문성이 결여된 것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비키는 교도관에게 “아마 관에 실려 나갈  같다 말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교도소에서는 실제로 수차례에 걸쳐 성추행과 혐동성애적 폭력괴롭힘에 시달렸다. 


그런데 왜 아무도 야단을 피우지 않는 걸까라디오에서는  이런 천인공노할 일을 두고 토론회를 열지 않는가 TV 토론회는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논하지 않는가우리 사회가 도움이 절실한 이들을 외면하고 있다는 분노는페미니스트들의 반응은 가련한 여성과 그를 죽음으로 몰고간 환경에 대해 어째서 다들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걸까?


한편 런던의 바비컨 센터가 화장실에 ‘성별중립'이라는 표지'를 내걸자 ‘트랜스젠더 이슈 신문 일면을 장식하기 시작했다제니 머레이는 트랜스젠더 여성이 진짜여성  해서는 안된다 말도 안되는 주장을 시전했고, <선데이 타임스>도 무려  페이지에 걸쳐  문제를 다루었다지난주 필자는 ITV 채널의 ‘디스 모닝 출연해 남자 학생들이 교내에서 치마를 입을 권리가 있는지를 두고 케이티 홉킨스와 토론 벌였다케이티 같은 사람들은  트랜스젠더의 죽음보다 살아 있는 트랜스젠더가  입는지에 대해  분개하는 걸까?


트랜스젠더 사안에 대해 언급해 달라는 요청이 필자에겐  쇄도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전화가 울리지 않는걸까2014 켈리 맬러니가 트랜스젠더로 커밍아웃했을  필자는 영국의 뉴스프로란 뉴스프로에는 죄다 불려 나갔그리고 올초에는 BBC ‘Woman’s Hour’에서 보이스메일이 왔는데들어보니 국민의료보험이 ‘임신여성이라는 표현 대신 ‘임신한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것이 마치 대단한 사건이라도 되는 것마냥 필자의 의견을 묻는 내용이었다. 


그럼 아무도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는 문제에 대해 질문을 해보려 한다여자로 살아온 트랜스젠더 여성이  21살의 나이로 남성 교도소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가그녀는 17  이미 비키로 개명했고고향 키슬리에서도 모두 그녀를 여자로 받아들였다그런 그녀가 전환시술 지원을 받지 못한  의사가 먼저 약물 문제와 음주 문제부터 고쳐야 한다고 조언했기 때문이었다그럼 비키는 애초에  이런 문제를 안고 있었을까필자도 트랜스젠더 여성으로서 여러 상황을 고려해 추측을    있다.


필자가 국민의료보험을 통해 선전환을  필자의 삶을 정말 수월하게   호르몬 요법과 시술을 받기까지 2년이란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기간 동안 필자는 우울증과 자살충동에 시달리며 정말 많은 약물을 복용했고, 그러다 비키처럼 철창신세까지 지게 되었다. 


 스페이드의 저서 ‘Normal Life에는 감옥에서 비참하게 삶을 마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경범죄를 저지른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에게 있어 이런 결말은 너무나도 흔한 일이다비키에게 필요한  남자 교도소가 아니라 정신건강 지원이었다남자교도소는 특히 의료지원이 거부될 경우 잔혹하고 심각한 처벌이   있다지난주 재판에서 배심원단은 비키에겐 남자 교도소가 ‘옳은’ 이었다는 결정을 내렸지만로비단체 프레스  체인지(Press for Change) 공동창시자로트랜스젠더들에게 법률 상담을 제공해  스티븐 휘틀 교수는 비키가 감옥에서도 “다른 젊은 여성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아야 했다 주장했다.



비키 같은 사람들을 돕는  아니라면 트랜스젠더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고취시키는 이유가 대체 뭔가?”



비키가 감옥에서 죽지 않았다면 우린 영영 비키가 처한 상황에 대해 알지 못했을 것이다그런데 영국에는 수많은 비키 톰슨이 존재한다전국 각지에서 수만여 명의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이 편견과 무시차별 때문에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를 노치고 있는 것이다영국 트랜스젠더 청소년들  절반 가까이가 자살을 시도해 봤다 한다그런데   문제는 공개 토론회에서 다뤄지지 않는가?


비키 같은 사람들을 돕는  아니라면 트랜스젠더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고취시키는 목적이 도대체 무엇일까? 우리 트랜스젠더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길 바란  우리가 겪는 편견과 차별을 찾아내 토론하고 종식시키기 위해서였다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무지한 전문가들이 트랜스젠더를 학술토론의 도구로 사용하며 무례하고불필요하며 그릇된 주장을 펼치는 동안 우리는  심한 수치심을 강요당하고 있을 뿐이다.


2017남의  개까지 트랜스젠더에 대해 할말이 있을 정도로 트랜스젠더가 주요 화제로 부상했다그런데 우리가 유행을 좇아 트랜스젠더가 되는 경우 있다는 페이 웰든의 의견에 정신을 팔고 있는 동안, 어린 비키들은 어둠 속에서 죽어가고 있다. 


트랜스젠더와 그들의 삶에 대한 대중의 환상은 언제가 되어야 수그러들까 대답은 이미 나왔다트랜스젠더가 제도적 편견과 차별지지의 결여로 죽어야  관심도 비로소 사그러드는 것이다언론도 트랜스젠더에 집착하지만우리가 강간살해 당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지면 갑자기 아무도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트랜스젠더를 학술연구에 이용해 먹고정체성에 대해 나불대면서 정작 비키 톰슨같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오명과 무관심에 대해선  말이 없는 사람들은 정말 부끄러운  알아야 한다.




Paris Lees

옮긴이이승훈




While you debate toilet etiquette, trans women like Vikki Thompson are dying in the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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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mitr.tistory.com/3249 [해외 성소수자 소식 블로그 미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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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0




피터 애크로이드가 들려주는 게이 런던 2천년의 비사 




왕성한 활동으로 유명한 전기 작가 역사가 소설가 애크로이드가 그에게 가장 친숙한 도시의 동성애사로 다시 돌아왔다.





피터 애크로이드, ‘그냥 별 생각이 없는 거죠.’ 사진: Graeme Robertson for the Guardian



피터 애크로이드는 런던 중심부 나이츠브리지의 아파트를 찾은 필자를 서재로 데리고 들어갔다. 책과 인쇄물이 빽히 들어찬 그곳은 비좁고 다소 단조로운 공간이었다. 창문에도 건물 뒷면이 우울하게 펼쳐져 있었다. 어느덧 60 후반에 접어든 애크로이드는 스타하노프적인 취향으로 유명한 작가다. 그의 작품들은 책장 하나를 채우고도 남을 정도지만, 그건 책이 하나같이 두께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1990년에 발표한 디킨스 전기집 특히 어마어마한데 1,195페이지나 된다.) 필자가 계산해 바로는 지금까지 18편의 픽션과 30편의 전기집과 역사물이 있다. 전설적인 음주 이야기를 봐도 있듯, 애크로이드는 무슨 작업이든 대강대강 하는 법이 없다. 


학계에서는 이를 갈겠지만, 찰리 채플린, 에드가 앨런 , 터너의 수채화 기법, 영국스러움의 기원, 베네치아 역사 등의 주제를 잔잔한 필치로 다뤄온 그는 전문성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런 그가 가장 애착을 가지는 그가 태어났고 생의 대부분을 보낸 , 바로 런던이다. 런던은 그의 작품 전반에 존재가 묻어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의 런던에 대한 집착은 너무 심오한 것이어서 본인도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할지 난감해 했다. “뭐랄까. 런던은 항상 피난처였습니다.” 지정학적 피난처라는 뜻인지 개인적인 피난처라는 뜻인지 확실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다일 것이다.


런던의 동성애사를 다룬 그의 신작 퀴어 시티 그에겐 너무나도 익숙한 영역을 다룬 작품으로, 작품이 이제야 나왔다는 게 오히려 신기할 정도다. 사실 엄연히 말하면 전에도 비슷한 주제를 다룬 적은 있다. 1979 ‘Ackroyd P’라는 필명으로 그의 첫작품은 세상에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의복도착과 드래그를 다루었다. 한편 오스카 와일드의 픽션을 일기 형식으로 다룬 1983년도 작품은 다소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의 서재에는 지금도 토머스 모어와 엘리자베스 시대의 동방박사 디의 초상화 사이에 오스카 와일드의 사진이 걸려 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기록이 전무하다시피 켈트 시대의 런던에서 기독교가 도래한 서기 300년대, (오스카 와일드를 비롯한) 19세기의 초대형 섹스 스캔들들, 그리고 현대의 동성애자 인권투쟁에 이르기까지 훨씬 심오하다. 여느때처럼 이번 신작도 과격할 정도로 수용적이고 라블레적인 특성이 돋보인다. 머리를 현란하게 기르고 콧수염을 기른 켈트인들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소위사나이들간의 열정적인 우정 높이 샀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율리우스 시저의 말을 인용하는가 하면, 곧바로아직도 런던 시내를 활보하는 그들을 있다 풍자적인 문장을 던지기도 한다.


유행이란 바뀌는 법이지만 애크로이드에게 있어 역사란 계속해서 반복되는 괴기스런 대상이다. 켈트족이 지금의 기준으로 다소 캠프[각주:1]했다면 (애크로이드는 용어가 1800년대 중반 게이들의 은어 폴라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초서의 켄터베리 이야기에 나오는 면죄부 관리인도 그렇다고 있다. (애크로이드는 그가 전형적인런던 이반이라고 한다.) ‘몰리하우스 모이는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18세기 런던의 클럽 매춘굴이었던 몰리하우스는 멋을 게이들이 서로 어울리며 섹스를 즐기기도 하는 공간이었다.


다른 동성애 문화 연대기와는 달리 애크로이드는 레즈비언 문화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조지 5 시절의 딜도 가게(레스터 광장의 가게는 오직 딜도만을 전문적으로 판매했다고 한다) 케이브 오브 하모니, 오렌지 트리 에드워드 8 시절 시가릴로 연기가 자욱했던 비밀클럽을 소개하는 구절은 정말 유쾌하다. 



"인구대비로 본다면 18세기 런던에도 게이바가 지금만큼 많았죠."



동성애가 일부 합법화된지 50년이 지난 지금, 동성애 문화보다 변동을 겪은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애크로이드는 사실 그렇게 많은 것이 바뀐 아니라고 한다. 


표현방식은 바뀌지만 정수는 그대롭니다. 지금도 여전히 드래그 바가 있고, 의복도착 행위도 찾아볼 있죠. 공원 같은 곳에 가면 만남의 장소도 있고, 남성전용 클럽도 있어요. 인구대비로 본다면 18세기 런던에도 게이바가 지금만큼 많았죠.”


이러한 현실은 도시의 구조에 영향을 미쳤을 아니라 가끔은 은밀하게 가끔은 다소 대범하게 시민들의 삶을 지배하기도 했다. “젠더플루이드라는 용어가 2016에야 옥스포드 영어사전 올랐지만, 애크로이드가 샅샅히 훑어본 사례 중에서도 14세기의 매춘부 라이크너의 경우를 보면 런던 사람들은 예전부터 사전편찬인들의 얼굴을 붉힐 행동을 왔었다고 한다. 


라이크너는 일리노어라는 이름을 쓰며 여장을 하고 다녔습니다. 어떨 때는 남자로서 남자 손님을 받았고, 여자로서 남자 손님을 받는가 하면 여자로서 여자 손님을 받기도 했죠.” 애크로이드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 역할들을 너무 자연스럽게 소화해낸 나머지 아무도 그런 그를 대범한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애크로이드의 작품은 괄목할만한 솔직함이 특색이지만, 자기 자신을 이야기틀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그냥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싫다며(그는아무 생각이 없어요라고 한다.), 자신의 경험을 글로 옮기는 거부반응이 있다고 한다. 


1950년대 이스트 액튼의 공영주택 단지에서 자란 애크로이드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애크로이드가 어릴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고 (후일 아버지를 찾지만 왕래한 기간은 길지 않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어머니 오드리의 신심이 그의 성장과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애크로이드는 독자였다. 나간 아버지가 언급되는 일이 없었듯이,  섹슈얼리티 또한 결코 입에 담을 없는 주제였다고 한다. 어머니는 불과 세상을 떠났는데, 애크로이드는 어머니와 자신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결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고 한다. 만년에도 그랬을까? 애크로이드는 퉁명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 사람은 가까웠을까? “딱히 가까운 사이는 아니습니다.”


장학금을 받고 캠브리지를 다닌 애크로이드는 예일대에서도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원 과정을 다녔다. 그리고 24세가 되던 해부터 <스펙테이터>지에서 문학편집자로 활동하게 된다. 그가 처음으로 출판한 작품은 타자기로 찍은 시집 ‘Ouch’(1971)이었는데, 진솔한 내용이 감탄을 자아낸다. 

시인은 서커스보이를 입으로 줬다

그의 가치는 오직 그만이 알고 있었으니…”


그런데 1987 “The Diversions of Purley”라는 시집을 애크로이드는 이미 명성을 얻은 상태였고, 과거의 대범함이 사라진 그는 시집에 나오는 모두그녀 바꿔버렸다. “가족들을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때만 해도 다들 살아 있었으니까요. 가족들이 이런쪽으로는 전혀 몰랐기 때문에 너무 과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겁장이가 되는 길을 택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후회도 되지만, 어쩔 없죠.”


시집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뮤즈가 떠나 버린 느낌이었습니다. 그게 끝이었죠.”


당시 그는 예일에서 만난 브라이언 이라는 무용수와 만나고 있었다. 사람은 1994 쿤이 에이즈 관련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함께 했다. (애크로이드는 뒤로 연애를 했지만 지금은 독신이다.) 때의 경험은퀴어 시티에서 에이즈 도래와 납득할 없는 입원조치 그리고 사망을 다룬 파워풀한 묘사에도 녹아 있다. “현실은 도저히 감당하기에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증상이란 발열, 떨림, 오한, 식은땀, 시력저하, 심한 설사, 일반적인 무기력증 등등이었다. 처방이라곤 진통제, 자가주사, 효능을 없지만 끊임없이 먹어야 하는 알약, 튜브, 주사가 고작이었다. 병원에 간다는 자체가 모욕적인 경험이었지만, 때는 병동에 누워 있으면 침대에서 젊은이가 웅크리고 누워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었다.”



자기 이야기를 쓰고 싶은 마음이  번도 일어나지 않은 걸까?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전두엽 수술이라도 받고 나면 속에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지도 모르지만."



필자는 구절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비통하기도 했지만 평소의 애크로이드답지 않게 자서전적인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부분을 넣을지 말지 고민했을까? 그는 걸걸한 목소리로가능한 자신을 포함시키지 않고 산뜻하게 표현하려 했다 한다. “저는 서술에 작가 자신이 들어간 책을 별로 믿지 않습니다. 저속하죠.”


자기 이야기를 쓰고 싶은 마음이 번도 일어나지 않은 걸까?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전두엽 수술이라도 받고 나면 속에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지도 모르지만.”


사실 지난 20년간 그의 작업은 다채로운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연구조수(요즘은 명이다) 정기 간행물과 자료집을 훑어보고 상자와 파일집에 정리하면, 애크로이드가 그걸 보며 메모를 하고, 토픽 별로 묵직한 더미로 정리하는 전부다. 계속과 우연에 대한 그의 심리지리학적 관심은 성격에서 비롯된 부분도 있지만, 이러한 작업방식에서 비롯되기도 했다. “자료들을 모으다 보면, 평소에는 눈에 띄지 않는 연결고리와 패턴이 보이곤 합니다.”


팩트를 향한 그의 무미건조한 열정은 지금도 여전하지만, 요즘은 예전같지 않다고 한다. 때는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한 적도 있었다. 하루를 깔끔하게 등분해서 역사서와 전기집, 소설을 집필하는 것이다. ‘퀴어 시티 마친 지금 그에게 남은 유일한 작업은 6부작으로 영국사 마지막 권을 완성하는 일이다. 보통인간이라면 당해내기 어려운 분량이지만 애크로이드의 기준으로 보면 웃어넘길 정도로 대수롭지 않은 작업이라고 한다.


필자는 다소 놀랐다. 정말 그것 외에는 미완성 작업이 전혀 없냐고 묻자, 그는 무뚝뚝한 말투로 원래는 소설을 계획이었지만 포기했다고 한다. “중간에 막혀버려서 지치더라구요. 언젠가 천사가 나머지 스토리를 속사여주길 바래야죠.”


전에는 글길이 막힌 적이 번도 없었다는 걸까? “ 쓰는 멈춰야 하는 상황은 번도 없었습니다.”


요즘은 무슨 일을 하든 자신의 기력에 조금 신경을 쓰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블룸스베리에 있던 아파트도 팔아버렸고, 근처에 있는 다른 집도 팔아버렸다고 한다. (“ 고생을 하면서 굳이 갖고 있을 필욘 없더라구요.”) 다리를 다친 후로는 걷는 예전같지 않다. 지금도 외출은 하지만 쉽지는 않다고 한다. 런던의 정령들을 깨우며 거리를 누비고 다니던 날은 이제 지나갔다. 지금도 약주를 하지만 저녁에만 마시고 양도 줄었다. (그는 애써 웃으며 의사가 시킨 아니라 그냥 자기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지금도 저녁은 밖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지만, TV 앞에 앉아 있는 날도 늘었다. “그냥 아무거나 보는 거죠. 정말 아무거나.”


작가가 아닌 삶을 상상할 있는지 물어 보며, 예전처럼차라리 팔을 잘라버리겠다 답을 기대했지만 그는 망설였다. “ 지금도 그런 심정이지만 사실 모르겠어요. 그냥 하고 싶은 말과 하고 싶은 일을 후엔 멈추는 시점이 있는 같아요.” 약간 성가신 듯한 말투였다. “하던 관두는 사람도 많잖아요.”


필자는 그가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니며 가벼운 글이나 읽으며 지내는 그를 상상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자 그의 말투는 다시 강경해졌다. “ 그렇게 살란 법은 없잖아요. 같으면 뭐든 그냥 해치우고 말죠.”




- Andrew Dickson

- 옮긴이: 이승훈




Peter Ackroyd: A secret history – 2,000 years of gay life in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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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amp: 문학, 예술, 패션 등의 분야에서 그 악취미로 인해 오히려 일종의 매력을 띄게 되는 미학. 게이 남성의 여성스런 행동거지를 가리키기도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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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2




체첸 조사관들: 2017년에만 26 불법처형돼






2017 현재까지 체첸에서 재판없이 살해당한 피해자 26명의 이름이 체첸 인권학대 실태를 예비 조사중인 러시아 당국 전달되었다고 모스크바의 <노바야 가제타>지가 오늘 전했다. 


이들이 살해당한 동기와 피해자의 성적지향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크라임 러시아> 프로젝트의 영문 보고 별도로 간략하게 영역된 <노바야 가제타> 기사에 따르면 상황은 다음과 :


러시아 수사위원회(ICR) 의해 한달째 예비조사가 진행중이다. 조사를 이끌고 있는 이고르 소볼은 북코카서스 연방지구의 ICR 부지국장으로, 체첸은 러시아 공화국의 준자치 지역이다. 


일부 경찰관들이 체첸의 비밀 교도소에 불법으로 감금된 이들의 명단을 넘기는 , 비밀리에 조사를 돕고 있다고 한다. 


반면 체첸 치안부대는 위협 하에서만 조사관들의 인터뷰에 응할 . 


그로즈니 경찰국장은 동성애자들의 박해를 부인했을 뿐만 아니라, “그로즈니 한복판에 퍼레이드가 벌어진다 해도 아무도 건드릴 이라며 갑자기 동성애자들에 대한 관용을 과시하기까지 했다.


피해자의 유가족들은 피해자들이 2월말 모스크바에 일하러 갔다는 진술서에 서명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조사관들은 체첸 수도 그로즈니 교외 아르군에 위치한 일명 게이 교도소도 방문했다. 건물 구조는 생존자가 증언한 것과 일치했지만, 게이와 약물 중독자들이 불법으로 구류되어 있었다던 막사는 공사 잔해물로 완전히 파묻혀버린 상태였다.


아르군 교도소에 감금된 재소자의 보도가 처음으로 나가자마자, 이들은 곧바로 러시아 특수경찰 본부로 이송되었으나, 이곳은훈련이 진행중이라는 이유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편 체첸 관료들도 상태가 좋지 않다며 조사에 응하지 않은 이들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