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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2


셀린 디옹이 보그의 쿠튀르 모델로 등장하자 게이들이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디옹 르네상스를 접한 인터넷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게이아이콘인 가수 셀린 디옹이 최근 미국 보그와 함께 파리 쿠튀르 2017 위한 룩을 선보였는데, 동영상이 압권이다. 


파리 인근에서 촬영된 동영상에서 캐나다 출신의 디바 셀린 디옹은 크리스찬 디올, 발렌티노, 샤넬 의상을 선보인다. 세느강의 유람선에서 거니는 모습, 레스토랑 키친에서 드라마틱한 포즈로 프렌치 후라이를 먹는 모습, 마네킨 머리를 물어뜯는 모습 등등을 보고 있노라면 의상이 팔릴 수가 없을 같다. 


디옹 르네상스를 접한 인터넷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중에서도 게이들의 반응이 가장 열렬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가히 예술작품이라 있는 동영상은 전세계 퀴어남들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위터에서는 이름은 셀린 디옹, 감정표현과 변환의 여왕, 시저스 팰러스의 칼리시, 카약 선수이자 게이들의 대모!”, “셀린은 프렌치 후라이 하나 먹는 것도 하나의 여정이구나”, “ 셀린 몽타쥬가 선사하는 연기의 레벨은 우리에겐 너무 과분해 다양한 반응이 이어졌고, 유저는 또다른 게이 아이콘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교묘하게 빗대어이건 셀린이라는 배고픈 소녀의 이야기라는 트윗글을 올리기도 했다. 


다음은 트위터의 다양한 반응과 셀린 디옹의 동영상:



셀린의 파리 도영상 보고 나서 체내 산소공급중.



이름은 셀린 디옹, 감정표현과 변환의 여왕, 시저스 팰러스의 칼리시, 카약 선수이자 게이들의 대모!



셀린은 프렌치 후라이 하나 먹는 것도 하나의 여정이구나.



썅년들 세느강(Seine) 스펠링도 모르냐?



이건 셀린이라는 배고픈 소녀의 이야기



(게이비명)



: 오늘 하루는 생산적으로 보내야징

5 후의 :



점심 먹으러 나가는 나의 모습




셀린이 니네들보다  잘하



 셀린 몽타쥬가 선사하는 연기의 레벨은 우리에겐 너무 과분해




- MATTHEW WADE

- 옮긴이: 이승훈 




CÉLINE DION MODELLED COUTURE FOR VOGUE AND GAY MEN ARE LOSING THEIR MINDS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Star Obser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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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9



보고서: 러시아 동성애 선전금지법, 오히려 아동들에게 유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왼쪽)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오른쪽)을 게이 커플로 희화한 초상화 작품. 사진: The Washington Post



러시아는 아동을 보호하려면 동성애 선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인권감시단(HWR)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실제로 금지법은 “LGBT 아동은 물론 LGBT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정보를 차단하고 낙인을 강요하는 , 직접적인 피해를 끼치고 있다 한다. 


이번 보고서에는 외에도 러시아의 발언의 자유 제재 현황에 관한 다양한 결론 언급되어 있다.




러시아: 표현의 자유 침해 



온라인상의 표현 제재하고 비판적인 목소리 옥죄는 탄압적인



이하 보고서 내용 중에서동성애 선전관련 부문에 이해를 돕기 위해 부제를 달아서 소개한다:



법 135-FZ호, '동성애 선전' 금지법의 기본내용


러시아 대통령을 ‘게이 광대’로 분장시킨 스페인의 反푸틴 시위자들. 사진: The Telegraph

135-FZ호는 특히아동을 보호하고, 특히비전통적인 성관계 홍보를 통해전통적인 가족 가치관의 부정을 목적으로 한 선전활동을 금지하기 위한 것으로, 러시아에서 비전통적인 성관계”라고 하면 대개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LGBT)들의 성관계로 인식되고 있다. 


법에 따르면, 아동을 대상으로 비전통적인 성행위선전활동에는아동을 대상으로 비전통적인 성관계 , 그러한 성관계의 매력,  전통적인 성관계와 비전통적인 성관계에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는 왜곡된 관점을 주입하기 위한 정보 공유, 비전통적인 성관계를 흥미로운 것으로 보이기 위한 정보 배포등의 행위가 포함된다고 한다: 


또한 법에는건강과 발육 행정위반법에 유해한 정보로부터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법에 일련의 수정을 포함하고 있으며, “비전통적인 성관계 선전으로 간주되는 온라인 정보를인터넷 블랙리스트 추가하도록 하고 있다. 


커밍아웃 협회의 시위자. 체포가 시작되기 직전인 2016년 7월 12일 상크트페테르부르그 마르소보 폴례에서.

선전금지법은 언론, TV, 라디오, 인터넷을 통해 제공되는 각종 정보가 해당되며, LGBT들의 사랑을 평범하고 건전한 것으로 묘사한 모든 내용물에 적용된다. 법에 의거해 개인이 18 미만 아동를 대상으로 비전통적인 성관계 홍보 책임이 있을 경우, 행정위반으로 5000루블(95 ) 벌금을 물게 되며, 정부 관료의 경우 40,000-50,000 루블(76~95 ), 단체의 경우 백만 루블(9백만 ) 벌금과 함께 최고 90일간 활동정지 처분을 받도록 되어 있다. 인터넷 통신매체를 통해 이와 같은 선전행위를 했을 경우 벌금은 높아진다고 한다. 



동성애 혐오 vs. 동성애


비탈리 밀로노프. 사진: Wikipedia

이번 보고서의 동성애 선전금지법 항목 서두에는 동성애 혐오에 찬성하는  러시아 관료의 발언이 실려 있다. 


"누구든 동성애혐오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그들이 동성애 혐오에 반대하는 날을 제정한다면, 우리도 동성애에 반대하는 날을 제정할 있다. 동성애 혐오는 동성애보다 훨씬 유해하기 때문이다."


- 비탈리 밀로노프 러시아 연방 하원의원



법의 적용방식


비전통적인 성관계 긍정적으로 다룬 정보는 무조건 러시아 내의 공개 토론장에서 금지된다. 러시아는 연방차원에서 동성애 홍보를 금지하는 근거로 만약 동성간의 성관계를 사회적으로 수용가능한 것으로 묘사하고, 이성간의 성관계와 동등한 가치관을 부여할 경우 아동들의 지적, 윤리적, 정신적 복지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상 금지법은 아동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LGBT 아동 LGBT 가정에서 자라는 아동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차단하고 이들에게 낙인을 강요하기 위한 것이다. 


2014 9 23 러시아 헌법 재판소는 동성애 선전 금지법이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가족 아동등의 가치관을 수호하는 것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또한, 법이 사생활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며, LGBT들의 사랑에 관한 토론을 검열하지도 않는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그러나 아동들을 유해정보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2012년에 제정된 법에 의해비전통적인 성관계의 홍보내용을 담은 것으로 간주되는 정보는 무조건 금지 웹사이트 명단에 올리고 있다. 


한편 2013 6 유럽 법률 사안 자문단체인 베니스 위원회는 견해서를 통해 러시아가 채택한 LGBT 연방법 초안은 유럽 인권협약은 물론 국제 인권 기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으며, 법의 목적은전통적인 가치관과 가족 섹슈얼리티에 대한 인식을 진흥시키고 홍보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전통에 부합되지 않는 이들의 표현과 선전활동을 처벌함으로써 이들에게 제재를 가하기 위한 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유럽 평의회, 유럽 안보 협력 기구, 유엔 인권 고등판무관 사무소 등의 기구도 법을 규탄하고 있다. 


유엔 아동 권리 위원회는 2014 1 정기 검토회에서 러시아 당국은 동성애 홍보 금지법을 철폐하고,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의 평등과 비차별 인식을 제고시킴으로써 LGBT 아동 LGBT 가정에서 자라고 있는 아동들이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도록 해야 이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러한 권고에 부응하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고 있지 않으며, 본기사를 작성하는 시점에서 여섯 명이 LGBT적인 선전 금지법에 의해 처벌되었다. 



사례1 : 엘레나 클리모바 (니즈니 타길 시)


엘레나 클리모바. 사진: Amnesty International

2014 11 로스콤나조르(러시아 방송통신주관부처) 온라인 모임 Deti-404비전통적인 성관계 홍보내용 담고 있다며, 설립자 관리자인 엘레나 클리모바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로스콤나조르는 Deti-404에서 발행하는 정보는아동들로 하여금 동성애자가 용감하고 강인하며, 자신만만하고 의지가 강한 사람이자 존엄성과 자존감을 겸비한 사람이라고 믿도록 우려가 있다 주장했다. 


2015 1 23 니즈니 타길 시의 법원은 클리모바가비전통적인 성관계 홍보 내용이 담긴 정보를 유통했다며 5 루블의 벌금을 선고했다. 2015 3 25 항소법원은 재판 과정에서 절차상의 문제가 다수 있었다며 재심을 명령했지만,니즈니 타길 법원은 재심에서도 유죄를 선고하며 벌금 납부를 명령했다. 



사례 2: 세르게이 알렉세옝코 (무르만스크 시)


세르게이 알렉세옝코. 사진: TowleRoad

2016 1 18 러시아 북서부 무르만스크 시의 법원은 LGBT 인권가인 세르게이 알렉세옝코가 동성애 선전금지법을 위배했다며 벌금형을 선고했다. 


알렉세옝코는 LGBT들을 상대로 법률 심리사회적 지원을 제공해 오던 Maximum라는 현지단체의 회장으로, 법원은 단체의 웹사이트에 실린 일부 내용이 LGBT들의 사랑을 긍정적으로 다루고 있다며 벌금 10 루블을 선고했다. 지난 10 Maximum 외국 단체로 등록하라는 압력에 못이겨 문을 닫은 직후에 내려진 판결에 따르면 단체장인 알렉세옝코는 단체의 공식 브콘탁테(VK) 계정에 정보를 게시한 책임이 있으며, 알렉세옝코 본인도 아동들이 사이트에 접근할 있음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다고 했다. 4 1 무르만스크 법원도 지방법원의 원심 판결에 동의했다. 


경찰 측은 신원미상의 제보자들로부터 Maximum 브콘탁테 계정에서 이뤄지는불법행위 대한 신고가 있었다며, 경찰 측이 지난 5 의뢰한 심리언어학 감정에 따르면 일부 게시물에비전통적 성관계의 홍보 성격을 띄는 언어 심리학적 요인이 발견되었다 밝혔다. 


이에 알렉세옝코는 인권감시단 측에 소위동성애 홍보 간주된 게시물 중에는어린이 여러분! 동성애자란 용감하고 강인하며, 자신만만하고 의지가 강한 사람이자 존엄성과 자존감을 겸비한 사람입니다라는 다른 유저의 게시글을 공유한 것이며, 다른 게시물은 청년간의 성교 장면을 묘사한 19세기 러시아 작가 미하일 레르몬토프 시였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러시아 반동성애법, 유럽 재판소에서 패소 (2017 6, 76crimes.com) * 가디언지 관련기사 

체첸의 게이 인권: 모스크바에서 활동가들 서명운동 펼쳐 (2017 5 11, BBC)

용감한 러시아 단체 덕분에 체첸 게이 남성 수십 목숨 구해 (2017 5 9, PinkNews)

체첸 박해 종식 요구하는 시위 (2017 5 6, 76crimes.com)

벨라루스, 러시아식 동성애 선전금지법 도입하나 (2016 1, 76crimes.com)

러시아 법원, 동성애 선전금지법은 합헌 (2014 10, 76crimes.com)

혹독한 동성애 금지법 채택 목전에 키르기즈스탄 (2014 6, 76crimes.com) * 미트르 관련기사 

러시아 동성애 선전금지법 처벌 케이스 (2013 12, 76crimes.com)

76 Crimes 러시아 동성애 선전금지법 관련 기사 모음 





- COLIN STEWART

- 옮긴이: 이승훈 




Report: Russia’s anti-‘gay propaganda’ law hurts kids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76 Cr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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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9


로마 제국의 성노동과 여성 동성애, 그 자극적인 서술



루키아노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 동성애에 관한 대화는 강렬하지만, 등장인물들은 해피앤딩을 맞지 못했다.



삽화: Alexander Barattin/Xtra



루키아노스 저작 'Dialogues of the Courtesans(창녀들의 대화)에는 성스러운 창녀와 사랑에 빠진 남성 클로나리온이레아이나, 그대에 대한 이상한 소문을 들었소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레스보스 섬에서 부유한 여성 메길라가 마치 사내처럼 당신과 사랑을 나눈다고들 하잖소. 뭐라 해야 하나, 당신과 메길라가 그러니까 한 쌍의 남녀처럼...


레아이나가 무안해 하며 대답을 하지 못하자 클로나리온은 대강 짐작하고 다음과 같이 묻는다. “ 그러시오? 얼굴이 붉어졌구먼. 그럼 소문이 진짜란 말이오?”


, 맞아요 클로나리온. 부끄러워요. 너무 이상한 일이라...


그러자 연인 클로나리온은아드라스테이아에 이름을 걸고 모든 털어놓으라 울부짖는다. “ 여자가 그대에게 요구했소? 그리고 잠자리에선 무슨 짓을 하는지 정확히 말해보시오.”


서기 2세기에 활동했던 아테네 풍자가 루키아노스는 사모사타(오늘날 터키의 삼사트) 출신으로, 당시 이곳은 로마제국의 영토였다. 인류 최초의 공상과학 픽션으로 여겨지는 진실한 이야기 신화가 등장하는 구전을 마치 실제 역사 자료인냥 풍자하고 있다. 반면창녀들의 대화 스케일은 작지만 사회적 규범에 대한 비판은 어느 작품에 뒤지지 않을만큼 유머러스하고 통렬하다. ‘창녀들의 대화 창녀들 간의 대화 창녀들이 고객, 가족, 연인들과 나눈 이야기를 모은 소품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고급 매춘부로 때때로 추앙이 대상이 되기까지 했던 헤타에라의 사랑과 질투, 정치놀음을 다룬 작품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봐도 충분히 더티하다. 서문에는당시 지중해 동부에 퍼져 있던 이교도 신전들은 성스러운 창녀를 두었으며, 이들을 찾는 것은 성스런 행위로 여겨졌으니, 이들 헤타이라는 그리스 사회의 다른 여성들, 특히 억눌려 사는 아내들보다 훨씬 많은 자유를 누리고 살았다 나온다. 


ALH라는 필명으로만 알려진 역자에 의해 The Lesbians(레즈비언들)이라는 제목으로 사비출판된 책은 1928 재판이 나오면서 훌륭한 작식과 함께 초판에서 삭제되었던 창녀들 관련 대목 군데 대목이 실리게 되었다. 대목에서 레아이나의 연인 클로나리온은 그녀가 어쩌다가 레스보스의 부유한 여인 메길라와 사랑을 나누게 되었는지 소상히 알려 달라고 애원한다. 그러자 창녀 레아이나는 데모나사라는 코린트인과 함께 나타난 메길라가 가발을 벗고는젊은 선수처럼 메끄럽게 머리 보여주었다고 한다. 


모습을 보고는 너무 두려웠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메길라가 물었죠.”


레아이나, 나보다 잘생긴 청년을 적이 있소?”


저는 여기 청년이 어디 있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어이, 여자 취급하지 마시오라며, ‘ 이름은 메길로스, 데모나사는 아내요라고 하는 아니겠어요.”


흥분과 희열, 혼돈이 레아이나를 덮쳤다. 메길로스는 이야기 아킬레우스처럼 여장한 남자인 걸까? 메길라는 자신이 남자가 아니라, 마술처럼 변신한 남녀한몸이라고 밝힌다. “온전히 여자의 몸을 하고 태어났지만, 남자의 취향과 욕망을 가지고 있소.” 메길라는 레스보스에서 레즈비언이었던 것이다. 


레아이나는 여장을 했던 아킬레우 고대 그리스 예언자 테이레시아스 일화를 언급하지만, 메길라라는 캐릭터는 제우스와 가니메데스, 아폴로와 히아킨토스 등의 구전에 등장하는 젠더벤딩 여성 동성애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들 신화는 수세기에 걸쳐 동성간의 사랑에 영향을 끼쳐 왔. 


루키아노스보다 세기 앞서 출판된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에는 이피스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딸이 태어나면 짐이 것이라고 생각한 이피스의 아버지는 아내에게 딸이 태어나면 죽여버릴 것이라고 맹세한다. 하지만 이피스가 태어나자 아버지는 딸에게 할아버지의 이름을 붙이는데 이유는 할아버지의 이름이 성별중립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비디우스는 이피스가여자아이든 남자아이든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이런 이름을 붙이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고 한. 


13세가 되던 이피스는 이안테와 정혼을 맺고 그때부터 남자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사람은 나이도 같았고 외관도 비슷했으며, 삶의 지식을 쌓는 있어서 같은 스승을 사사했다. 때부터 순수한 마음에 사랑이 깃들었으니, 사람이 받은 상처도 같은 것이었지만, 서로가 기대하는 바는 달랐다. 이안테는 이피스가 남자일 줄로만 알았고 그야말로 자신의 남편감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반면, 이피스도 그런 그녀를 사랑했지만, 결코 자신의 것으로 만들 없을 거라 생각했고, 그럴수록 소녀에 대한 소녀의 열정은 더욱더 깊어만 갔다.”


이피스는 자신의이상하고도 기괴한 사랑 결코 실현될 없을 거라 생각하며 절망에 빠졌지만, 이집트 여신 이시스의 힘으로 변신을 거치며 소년으로 거듭난다. 


이피스의 경우 결국 이성애를 통해 구원되는 반면, 루키아노스의 우화는 도착과 성적흥분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물론 작품 속에는 관음증적인 요소도 있지만, 오비디우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동성간의 이끌림보다 훨씬 현실적이며, 로마시대의 여성 동성애에 대한 루키아노스의 이해를 엿볼 있다. 


역자 서문에도로마제국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관중들에게 있어 그리스의 헤타이라들이 나눈 짧은 대화는 전혀 충격적인 것이 아니었다 나와 있다. 작품 속에서 관중의 역을 맡는 클로나리온이 레아이나의 레즈비언 행각을 너무나도 궁금해 하자 레아이나는 말을 이어간다:


“메길라는 제발 가지게 달라고 애원했어요. 게다가 제게 휘황찬란한 목걸이와 최상급 리넨으로 만든 튜닉을 선물해 줬답니다. 그래서 마치 남자를 안듯 그녀를 품안에 안았지요. 그러자 그녀는 온몸에 키스를 퍼부으며 본인이 말 대로 가졌어요. 엄청난 황홀감과 욕정에 사로잡혀 숨을 헐떡거리며 말이죠.”


클로나리온은 너무나도 궁금해 하며그런데 그걸 어떻게 했단 말이오? 레이아나! 부분만은 말해줘야 하오!”라며 다그쳤다. 


바로 다음이 중요한 대목인데, 신전의 창녀 레아이나는 레스보스 출신의 레즈비언이 자신을 어떻게 유혹했는지 세세하게 설명해 놓고는 갑자기 수줍은 척을 한다. “제발 수치스러운 부분은 너무 자세하게 묻지는 말아요. 하늘의 여왕에 이름을 걸고 그것만은 절대로 절대로 말해줄 없어요!”


루키아노스의 ‘The Lesbian’ 이성애자 남성 독자들을 자극하기 위해 쓰여졌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가지 흥미로운 점은 로마제국의 전성기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성 동성애를 다룬 작품 중에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스토리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레아이나도 결국 메길라의 구애를 무시하며 남자의 품을 선택하는데, 아무도 결정을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지난 수천년 동안 몇몇 이야기가 나오긴 했지만, 필자는 얼마전 상영된 2015년도 영화 캐롤 떠올리지 않을 없다. 각본을 맡았던 필리스 나지 파트리시아 하이스미스 원작소설이사상 최초의  해피엔딩 레즈비언 스토리라고 평했었다. 해피엔딩 레즈비언 스토리를 접하기까지 2천년이란 세월이 넘게 걸린 것이다. 




- Michael Lyons

- 옮긴이: 이승훈




The titillating narrative of sex work and lesbianism in the Roman Empire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Daily X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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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9


코빈 노동당 대표, ‘트랜스젠더의 성별 본인확인제 허용해야’


코빈 노동당 대표, ‘의료검진 필수 조항 삭제할 경우 노동당도 지지할 것’



제레미 코빈은 노동당이 지지할 경우 법안 가결은 문제 없을 것이라고 했다. 사진: Finbarr Webster/Rex/Shutterstock



제레미 코빈이 테레사 메이 총리에게 트랜스젠더들이 의료검진 없이도 본인이 직접 성별을 확인 있도록 달라는 요구와 함께, 정부가 법개정에 나설 경우 노동당도 적극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화요일 핑크뉴스가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부분적인 동성애 합법화 50주년을 맞아 기획한 연회에서 제레미 코빈 노당당 당수는 앞으로도 LGBT 인권투쟁이 이어져야 하지만, 특히 트랜스젠더들의 인권향상에 주력해야 것이라고 강조했다. 


메이 총리가 보수파 정당인 민주연합당 거래를 함으로써 야당의 지지 없이 성별인정법 개혁을 추진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코빈 당수는 메이 총리가 트랜스젠더들이 자신의 성별을 직접 확인 있도록 의료검진 조항을 없앨 경우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며, 토리당과 민주연합당이 양시투표를 허용하고 노동당의 지지할 경우 관련법은 통과될 것이라고 밝혔다.  


너무 오랫 동안 차별이 이어져 왔습니다. 현재 성별인정법은 트랜스젠더들이 자신의 성별을 직접 확인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폭력적인 의료검진 과정을 거쳐야만 합니다. 이건 잘못된 관행입니다.”


노동당은 관련법 개정을 공약문에 명시하고 있다. 반면 테레사 메이 총리도 <핑크뉴스>와의 인터뷰에서변화가 필요하다 했지만, 보수당 공약문에 법개정을 싣지는 못했다.


하지만 저희 노동당은 총리가 약속을 지킬 있도록 노동당이 지원할 의사가 있습니다. 트랜스젠더 인권 향상을 위한 법안을 상정하면 노동당도 지지할 것입니다. 토리당과 민주연합당 의원들에게 자유투표를 허락하면 노동당이 법안을 가결시킬 있습니.”

 

메이 총리는 총선전에 관련법을 검토중이라고 했지만, 평등권 활동가들은 오래전부터 법개정을 요구해 왔다. 


버커우 하원의장과 노먼 파울러 상원의장이 주최한 연회에서 연단에 코빈 대표는 트럼프의 불안한 LGBT 인권사안 처리방식과 체첸 게이 남성들에게 자행되는 폭력 규탄하기도 했다. 


버커우 하원의장도 이제는 잉글랜드 성공회도 교회내 동성결혼식 거행을 허용할 라고 했다. 


불균형은 존재합니다. 따라서 목표를 달성했다고 생각해서는 것입니다. 당사자가 원할 경우 교회에서도 결혼식을 올릴 있을 비로소 진정한 결혼평등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한편 작년 여성 각료로는 동성과 연애중임을 밝힌 저스틴 그리닝 교육부 장관도 연설을 통해 LGBT 인권 향상을 위한 결의를 다졌지만 성별인정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닝 장관은아직도 영국에는 LGBT 인권은 잘못된 것이며, 지금도 너무 과하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너무 많다 지적했다. 


그리닝 장관은 LGBT 인권이 향상되려면 정부와 의회가 노력을 이어가야 하겠지만, 앞으로도 길은 멀다고 덧붙였다. 


• 본기사는 2017 7 19 행사의 주최 단체가 핑크뉴스임을 언급하기 위해 수정되었습니다.




- Rowena Mason

- 옮긴이: 이승훈




Let trans people self-identify their gender, Corbyn urges May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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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9



유명인들, 체첸 게이 박해에 관심 호소



타이터스 버제스, 카슨 크레슬리, 주시 스몰렛 등의 셀레브들이 MTV의 동영상 캠페인에 출연했다.





MTV 체첸 퀴어 남성들을 위한 행동을 촉구하고 나섰다. 


MTV 유명인들이 대거 출연하는 동영상 #EyesOnCechnya 통해 체첸에서 자행되고 있는 게이 박해 관심을 호소하고 있다. 


데이트 했다는 이유로 체포되면 어떻겠습니까?”


핸드폰에 게이의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간다면?”


정체성 때문에 고문 당한다면 어떤 심정일까요?”


타이터스 버지스, 카슨 크레슬리, 주시 스몰렛 등이 출연하는 동영상은 체첸의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언급하며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크레슬리는 동영상에서이대로 가만히 있을 없다 호소했다.


동영상에 언급된 웹사이트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다른 세계 지도자들에 이어 체첸의 폭력을 규탄하도록 요구하는 이메일을 보낼 있도록 되어 있다. 


체첸 사태는 작년 연말부터 이어지고 있으며, 이미 수십여 명의 게이 양성애자 남성이 처형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편 LGBTI 단체들은 러시아 연방을 학살 혐의로 고소했다.



"체첸에서 게이 및 양성애자 남성이 박해 받는다는 소식이 전해진지 100일이 훌쩍 넘었습니다. 여러분도 목소리를 내 주시겠습니까?"




- JESS JONES

- 옮긴이: 이승훈




CELEBS HELP DRAW ATTENTION TO GAY CHECHNYA CRISIS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Star Obser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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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7



동성커플의 연금 평등을 위한 법정투쟁에서 기념비적 승리를 이끌어낸 남성



존 워커는 자신의 남편이 이성 배우자와 똑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11년간 투쟁을 이어왔다.




이번 판결로 남편에게 배우자 연금을 남겨줄 수 있게 된 존 워커. 사진: Martin Godwin for the Guardian



워커가 11년에 걸친 법정 투쟁 끝에 대법원이 최종 판결을 내릴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남편과 함께 방콕에서 유람선을 타고 있을 때였다. 


평등을 위한 역사적인 순간을 이루기 위해 고문에 가까울 정도로 느린 투쟁을 이어왔지만, 정년퇴임 이후의 삶을 바쳐온 투쟁의 결과를 접하기 위해 런던으로 돌아가려면 열흘이라는 시간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지난주 수요일 웨스트민스터 법정에 들어선 육군 장교 출신인 워커(66) 자신이 엄청난 승리 거두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성커플에 대한 영국의 마지막 차별법이 철폐된 것이다.


다섯 명의 대법관은 만장일치로 EU 보장하는 고용권이 영국의 예외주의보다 위에 있으며, 따라서 워커가 사망할 경우 올해로 52세인 그의 파트너는 연간 45,700 파운드(67백만 ) 상당의 배우자 연금을 받게 것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워커는 자신이 다니던 화학회사 Innospec 자신의 파트너에게 이성 배우자와 똑같은 혜택을 보장하지 않은 것에 대해 매우 분개했었다. Innospec 측이 말을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노동연금부까지 자신의 입장에 반대한 것은 자신들이 동성애자들을 위해 평등권을 구현했다는 보수당의 주장에 흠집을 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정부측 변호인단은 2010년에 제정된 평등법에 따라 기업은 시민결합법이 도입된 2005 이전의 근무기간에서 파생한 혜택을 제한할 있다고 주장했다.


워커는 대법원 판결이 발표된 이튿날 웨스트 런던의 자택에서 장관과 정당 대변인으로부터 받은 답장들을 훑어보았다. 답장들은 하나같이 워커의 사정을 딱하게 여기면서도 직접적인 해답을 회피하는 것들이었다.


여기 테레사 메이한테서 답장이 있네요. 예비내각 여성평등부 장관으로 있던 2010년에 보낸 서신인데귀하의 상황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업의 연금기금에] 부담이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 조치를 취할 있을지 검토해 보겠습니다라고 되어 있네요.”


그러고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법정에서] 저에게 맞섰죠. 제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아시겠죠. 고위층 인사들을 수도 없이 찾아다녔습니다. 다들 처지에 동정을 보였지만, ‘나중에 답변을 드리겠다고만 하더군요.”


사실 워커는 여러 측면에서 기득권층이라 있다. 윌트셔에서 태어나 해로우에서 학교를 다닌 그는 공화당원으로, 5년간 육군에서 복무했고, 영국 무역사업의 일환으로 중동에서 근무하다 1980 Innospec 입사했다.


워커는 동성애자이기도 하다. 1993 회사는 그를 싱가폴로 파견을 보냈는데, 그는 그곳에 간지 주만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워커는 남편을 굉장히 많이 챙긴다. 자신의 사후를 대비해 십여 년에 걸쳐 법정투쟁을 벌였고, 과정에서 남편의 신분을 절대 노출시키지 않았다. 


그의 이러한 신중함은 2005 첼시 등기소에서 시민결합을 맺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았다. 예식에는 목사인 워커의 형이 증인으로 참석했으며, 사람은 <데일리 텔레그래프>지의출생, 부고, 혼인란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게이 커플이기도 했다.


워커의 파트너는 무슬림이다. 사람의 결합 소식을 접한 싱가폴 언론매체는 파트너의 어머니가 임종을 앞둔 상황에서 앞에 몰려들었다고 한다. “굉장히 화가 났습니다. 싱가폴 신문에 장례식 사진이 실렸는데, 파트너가 굉장히 힘들어했어요.” 싱가폴은 아직 동성커플을 법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2003 파트너와 함께 런던으로 돌아온 워커는 50살의 나이로 퇴임했다. 그는 자신의 사후에 파트너가 연금을 받을 있도록 회사 측으로부터 이미 약속을 받았었다고 한다. 회사 측과 주고받은 팩스에는 그의 요구에 대해 회사가 보낸 보증서도 있었다.




그런데 회사는 갑자기 입장을 바꾸었다. 보증서를 발급했다고 해서 혜택을 보장받는 아니라는 것이다. Innospec 측은 부분에 대해 언급을 회피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법정투쟁은 고용 재판소에서 항소법원으로 그리고 대법원으로까지 이어졌다.


2012 재판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나올 것이며, 그의 주장은비합리적이고 오해에서 비롯된 이라며 협박을 받던 와중에 인권단체 Liberty 협회가 워커의 변호를 지원하겠다며 나섰다. 


Liberty 측의 에마 노튼 변호인은이번 판결은 매우 의의를 가지고 있으며, LGBT들의 평등권을 향한 아주 도약이라고 밝혔다. “가장 확연했던 차별법이 사라졌습니다. 워커의 지속적인 투쟁 덕분에 수만여 쌍의 커플들도 혜택을 받을 있게 되었어요.”


향후 문제점은 브렉시트가 이번 판결을 되돌릴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워커의 승리는 EU 법에 의거한 것인데, 아직 영국 정부는 EU 가입국으로서 쟁취한 평등을 앞으로도 보장하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워커는 자신이 받는 연금 액수가 높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정말 열심히 일했었다 한다. 그는 승리를 거둘 경우 수만 쌍의 동성커플도 혜택을 받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투쟁을 멈출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많았지만, 판결이 너무 늦게 났어요. 수요일 법정에서 어느 남자분이 제게 다가와 지난달에 파트너와 사별했다고 하더군요. 분은 이번 판결의 혜택을 받을 없게 됐죠. 그래서 슬픈 마음도 있습니다. 정부는 옳은 선택을 내리지 못한 걸까요?"


80% 기업이 이미 동성커플에게도 배우자 연금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판결이 사기업에 미칠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고 워커는 말한다. 한편 노동연금부에서는 재정상의 평등을 구현하려면 사기업계의 경우 1 파운드가, 공기업의 경우 2천만 파운드가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워커는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은 보람이 있다고 한다. “제가 알기로 연금은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의 마지막 차별조항이었습니다. 이젠일반 결혼동성 결혼 구분할 필요가 없어졌어요. 사이의 차이가 사라져버렸으니까요.”



- Owen Bowcott

- 옮긴이: 이승훈



The man who won a landmark legal battle for same-sex pension r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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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4




50년대 영국을 뒤흔들며 동성애자 인권에 변화를 초래했던 와일드블러드 스캔들



이 사건에는 귀족, 공군, 잠복근무, 면책 등, 없는 게 없었다. 그리고 피고였던 한 게이 남성이 침묵을 거부하는데... 애덤 마스-존스가 피터 와일드블러드의 대범함이 보다 관용적인 영국을 이끌어낸 과정에 대해 알아보았다.



당시 사건을 보도한 <데일리 미러> 일면기사. 사진: Daily Mirror




와일드블러드 사건은 오스카 와일드 케이스보다는 선정적이었지만, 그만큼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 사건이다. 피터 와일드블러드(Peter Wildeblood). 그의 시련(1954 볼리외 몬태규경마이클 피트-리버스와 함께 유죄판결을 받았었다)은 1895 오스카 와일드의 투옥 사건으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일어난 사건이었고, 또 그만큼 세월이 흘렀. 단, 와일드와 와일드블러드의 치욕적인 삶에 차이가 있다면 출소후 사람의 행보일 것이다. 


와일드블러드는 자신이 출소하면 오스카 와일드가 그랬던 것처럼 자취를 감추거나 외국에 가서 거라는 교도관과 다른 사람들의 악의없는 추측에 화를 내곤 했다. 그는 출소 후로도 예전 삶을 그대로 이어갈 생각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예전삶과 다른 점이 있다면 출소후 개혁주의자가 되었다는 점이다. 와일드블러드는 기자였지만 행동주의에는 관심이 거의 없었다. (체포 당시 그는 <데일리 메일>지의 외교부 특파원이었다.) 그런 그가 새로운 화두 찾았고, 그가 출소한 해인 1955 회고록 ‘Against the Law(법에 맞서다)’ 출판되었다. 제목에는 가지 의미가 숨어 있었는데, 초판 표지에서는희생양이라는 단어에 가려져 숨은 뜻이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는 하드커버를 이용한 마케팅이 후일 재판(再版) 사용되었던 페이퍼백보다 선정적인 때였다. 이중적 의미는 ‘against’라는 단어 숨어 있었는데, 감옥에 가기 그의 활동은 법에 저촉될 만한 것이 없었지만, 출소 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영국 섹스 스캔들이 계급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는 새삼 놀랄 일이 아니지만, 와일드블러드의 경우에서도 여러 측면에서 계급적인 요소가 드러났다. 이 사건의 핵심은 상류층, 그것도 몬태규 경이 단도직입적으로 박해의 표적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사건은 굉장히 선별적이었다. 에드워드 맥낼리와 레이놀즈라는 항공병은 유죄를 입증하는 증언과 함께 스무 명이 넘는 섹스 파트너의 명단을 제공한 덕분에 면책을 받을 있었는데, 명단에 오른 남성들도 기소되지 않았다. (맥낼리와 레이놀즈가 이들 남성으로부터 유혹을 받았다는 암시는 전혀 없었으며 사람도 자의에 의해 성행위에 가담했었다.) 이러한 조치에는 사회적 특권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동성애란 원래 귀족층의 변태행위 여가활동이라는 인식을 재각인시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교도소에서. 동명 회고록을 바탕으로 제작한 BBC 드라마 ‘Against the Law’에서 와일드블러드 역을 맡은 다니엘 메이스. 사진: Dean Rogers/BBC



와일드블러드는 회고록에서 저명한 동성애자를 박해한 들을 정부요직에서 배제시켜야 한다는 미국 측의 강력한 요구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맥카시의 적색공포에라벤더 공포 더해져 동성애자들이 공무원직에서 대거 해고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배경에는 버제스와 맥클린의 사건이 있었는데, 이들 스파이의 배신으로 사회적 특권과 동성애 매국은 땔래야 없는 삼위일체로 여겨지게 되었다. 재판에서는 자신과 다른 계급에서연애상대 찾는 것이 게이들의 특징이며, 맥낼리는 와일드블러드보다 출신배경이 훨씬 낮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와일드블러드는 전시에 자신이 사귄 지인들이 사회적으로 열등하다는 생각은 번도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공군에 복무했었다.) 책에도 나와 있듯, 전쟁은 배타적인 교육을 받아온 그에게 사회적 수용이 어떤 것인지 느낄 있는 기회였다. 동료들은 와일드블러드가 훈련에 소질이 없는 것을 보고 그런 그를 감싸주었다고 한다. 와일드블러드는 누구나 친구를 고를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와일드블러드는 변호인단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었는지, 아더 프로더로에 대해남자에게 있어 최상의 동무는 바로 자신의 변호사라는 말을 남겼다. 아더는 와일드블러드가 법정에서 추위에 떨다가 겁에 질린 것처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내복을 빌려줬다. 권위주의에 반대했던 아더는 결코 평범한 변호사가 아니었고, 1950년대에만 해도 그와 같은 변호사는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더는 필자의 가족과도 알고 지내던 사이(필자가 가깝게 지낸 올해 6 6 101 생일 이튿날에 별세한 그의 동생이었다)였는데, 아더의 성향은 그의 가족환경과 무관하지 않았던 하다. 부친은 런던경시청의 “5대형사 명이었지만, 아더 자신은 못된 짓만 골라 했다고 한다. 소시적 그는 외설적인 나이트클럽에 드나들곤 했는데 직원들에게 자신이 누구 아들인지 알렸고, 현관 바로 좌석에 앉아 음식과 술을 무한대로 대접받았다. 그러다 경찰이 습격해도 그를 보곤 섣불리 소동을 피우지 못했다고 한다. 


한편 부친은 자식들에게 법을 공부하도록 했고, 실제로 아들과 도로시 모두 법조계에 진출했다. 단 아더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변호사가 되었지만 법정에서 경찰이 제시한 증거에 서슴없이 의문을 제기하는   반항끼는 여전했. 피터 롤린슨이라는 변호사는예선로 살인사건 계기로 와일드 블러드의 변호인단에 가담하게 되었는데, 사건에서 허버트 해넘 강력계 형사가 제시한 증거 대부분에 강한 의심을 품고 있던 아더 프로더로는 아직 신참 변호사였던 롤린슨을 설득해 이틀동안 해넘 형사를 철저하게 반대심문하도록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이러한 반대심문은 논란의 소지가 많은 행동이었다. 사건에서는 피고인 알프레드 찰스 화이트웨이의 차에서 피묻은 도끼가 발견되었지만 증거물이 사라져버렸다. ( 경찰이 나무를 베려고 도끼를 집에 가져간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피고인은 유죄판결을 받고 교수형에 처해졌다. 당시 판결에는 오심이 없었지만 와일드블러드는 경찰의 수사과정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변호인단을 원치 않았다. 경찰이 게이들을 불성실하게 다루는 런던에서 비일비재했고, 부주의한 이들이 함정수사에 걸려들곤 했다. 실제로 경찰이 몬태규 경을 위선자로 보이게 하기 위해 그의 여권에 찍힌 날짜를 변경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남자에게 있어 최상의 동무는 바로 자신의 변호사’. (왼쪽부터) 마이클 피트-리버스, 몬태규 경, 피터 와일드블러드가 법정을 나서고 있다. 1954년. 사진: Keystone/Getty



그런데 피터 와일드블러드가 법정에서 자신의 성적지향을 밝히기로 결심한 때문에 대부분의 변호사가 꺼려하던 케이스에 아더 프로더로가 뛰어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또한 부친에 대한 반항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경감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1928 'The Well of Loneliness'[각주:1] 재판 증언대에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는 래드클리프 홀이 소설의 제목 자체가 모욕적이라고 증언했고, 재판관은 책을 모조리 파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만약 아더가 동성애에 대한 세대 인식의 변화를 부각시키고 싶었다면 신문일면감이었던 사건만큼이나 명백하고 공개적인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한편 60년대로 대변되는 또다른 인식 변화가 있었으니, 이러한 인식변화는 재판 마지막날 여실히 드러났다. 유죄판결을 받은 이들의 송치가 지연되었는데 당사자들은 이유를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오스카 와일드가 클래펌 역에서 겪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판결이 나 며칠 낮선 사람(“트위드와 중절모 차림의 점잖아 보이는 중년”) 와일드블러드에게 침을 뱉는 해프닝이 있었다. 그런데 판결 당일 군중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달려들었다. 2백여 명의 군중은 법정을 나서는 맥낼리와 레이놀즈에게 야유와 조롱을 쏟아부은 것이다. 대부분 여성으로 이루어진 이들은 죄인들을 호송하던 차량(구식 롤스로이스) 에워쌌고, 박수를 보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보이는가 하면울지마라는 플래카드를 치켜드는 , 죄수들에게 질타가 아닌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동성애자들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와일드블러드의 케이스에서 새롭게 등장한 요소였는데, 이 점은 와일드블러드의 회고록에도 본문이 시작되기  (대문자로 씌여진) TO MY MOTHER AND FATHER라는 문구에 반영되어 있다 되어 있다. 물론 동성애자라고 무조건 가족의 버림을 받는 아니었으며, 가족의 지지를 받는 이들도 있었다. 새로운 점은 이러한 지지가 대중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이었다. 이는 영국의 윤리관을 영원히 감싸고 있을 것만 같았던 불명예라는 부식성 안개가 옅어지고 있음을, 그리고 언젠가는 완전히 걷힐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시사하는 사건이었다. 


와일드블러드의 회고록Against the Law’ 동성애자 시민권 운동을 선동하는 한편, 감옥 실정을 고발한 책이기도 했다. 실제로 와일드블러드는 출소후 범죄자들의 재활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재범과 옥살이의 악순환을 끊고자 했다. 그의 재활 프로젝트 활동은 성적지향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동성애자가 별개의 인종이 아니라는 새로운 개념이 주는 특권에는 의무가 따른다는 점을 또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하드커버와 페이퍼백의 출판은 거의 별개의 프로젝트로 여겨질 만큼 순조로운 조율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펭귄에서Against the Law 출판할 때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와일드블러드가 아직 감옥에 있을 울픈든 위원회가 설립되었다. 위원회는 동성애와 매춘에 관련된 법을 검토하고 필요할 시에 개정을 권고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이었다. 사실 와일드블러드와 사회적으로 명망이 높았던 다른 피고인들이 유죄판결을 받자 이러한 위원회를 설립할 필요성이 절실해졌고, 와일드블러드도 위원회에 증거를 제시하기도 했다. 'Against the Law' 하드커버는 1957 초에 출판되었는데, 위원회가 보고서를 발표한 같은해 말이었다. 



일각에서는 회고록이 저렴한 가격에 널리 유포된다면 위험성도 높아질 거라는 견해가 끊이지 않았다. 파멜라 핸스포드 존슨의 저서 'On Iniquity(부당성에 대해)' 동성애가 부분적으로나마 인정을 받은 1967년에 출판되었는데, 책에는 "무어스 살인사건 재판을 통한 개인적인 고찰"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다.  책에는 "가디언지에 보낸 서신을 통해 크라프트-에빙(그의 저서 'Psychopathia Sexualis(성적 정신병리)' 진지한 연구서로 나온 서적이었다) 가격을 내려 영국 기차역에서 누구나 있도록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주장을 했다가 소소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대목이 나오는데, 여기서도 계급 의식을 엿볼 있다. 이러한 계급 의식은 1960년에 있었던 채털리 부인의 연인 재판(피고는 펭귄 출판사였다)에서도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배심원들 앞에서 부인이나 하인이 이런 책을 접하는 것을 "여러분" 원치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시되었는데, "여러분" 보호받을 필요가 없지만 다른 사람들은 보호받아 마땅하다는 것이. 


물론 와일드블러드는 자신의 책이 저렴한 가격에 널리 읽히기를 바랐다. 그가 형사판결을 사회적 범주로 분해해 가며 보여주고 싶었던 것도 바로 동성애는 계급간의 경계선을 뛰어넘는다는 점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남들도 자신과 다를 없다는 깨닫게 하려면 기차역에서 누구나 값에 있는 책이 필요했다. 


한편 펭귄 측에 판권을 조지 와이든펠드는 페이퍼백에 초판 발행자로 와이든펠드 & 니콜슨이라는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것을 알고 굴욕감을 느꼈다고 한다. 와이든펠드의 출판사는 1949년부터 영업해 왔지만 펭귄에게 판권을 이번이 처음이었다 때문에 굴욕감도 더했다. ( 회사 간의 서신 교환은 브리스톨 대학의 펭귄 문헌집에 보관되어 있다.) 와이든펠드는 당연히 당시 관행대로 자사의 이름이 실릴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굉장히 상했다" 한다. "명망 높은 펭귄사의 책에 이름이 실린다는 다른 재판 인쇄소들과 차별을 두는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요건입니다." 펭귄사의 평판을 찬양한 후에 등장하는 "재판 인쇄소"라는 표현에는 거만하면서도 어딘가 가시가 돋힌 듯한 어감이 있다. 마치 페이퍼백 출판사가 다른 사람이 책에 너무 과한 언급을 요구한다는 듯이 말이다. 



불명예라는 이름의 안개... 법에 맞서다. 사진: Dean Rogers / BBC



그런데 펭귄사는 책을 캠페인의 소재로 삼을 자원도 의지도 갖추고 있었다. 1958 11 파티석상에서 펭귄사의 사장이던 앨런 레인 경이 와일드블러드에게 마침 의회에서 관련 토론이 예정되어 있다며 현직 의원들 앞으로 'Against the Law' 권씩 보내자고 제안했다. 펭귄 문헌에 따르면 의원들에게 책을 보내는 것도, 그로부터 일년후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출판하기로 것도 전부 레인의 발상이었다고 한다. 와일드블러드는 책을 보낼 자신보다는 레인의 편지를 동봉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했고, 레인도 이에 동의했다. 따라서 와일드블러드는 편지 내용을 최종 승인했을 , 직접 쓰지는 않은 것이다. 클릭 하나로 대량의 메일을 보낼 있는 요즘 시대에서는 600번이나 서명하는 일이 대수롭지 않은 정치적 행동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직접 해보길 바란다. 게다가 당시는 법이 바뀌기 10년전이었다. 


레인은 ‘Against the Law’ 후속작인 ‘A Way of Life’ 예전 소설 편도 보고 싶어했지만, 판권을 얻지는 못했다. 특히 ‘A Way of Life’ 경우 사적인 내용이 전작보다 스스럼없이 공개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쉬움은 했다. 동성애자들의 다양한 삶이 묘사되어 있는 책은 저널리스트로서 와일드블러드의 재능 뿐만 아니라 그의 새로운 사회적 지위가 빛을 발하는 작품으로, 와일드블러드 본인도감옥에 갔다옴으로써 나는 소위 통계학에서 말하는사회적 이동성 지니게 되었는데, 폭은 통계학자들이 상상하는 이상이었다 밝히고 있다. 그는 돈이 목적인 흥미로운 젊은이들과 친분을 쌓았는데, 불평을 달고 다니는 레지도 명이었다: “다들 현금을 내는 대신 발레 같은 곳에 데려가곤 하는데, 결국 나이 들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구식 LP판과불새 나오는 발레리나 마고 폰테인에 대한 기억 밖에 남는 없었다.” 와일드블러드 자신은 단혼(單婚) 미덕을 강력히 옹호했는데, 그는 불공정한 때문에 남성이 집착 없이 가벼운 모험을 즐기는 것보다 함께 사는 편이 위험한 행동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했지만, 그와 상반되는 증언을 철회하지는 않았다.



가벼운 모험... 1950년대 소호의 나이트클럽 겸 바 ‘La Caverne’의 젊은이들. 사진: Joseph McKeown/Getty



와일드블러드는 이성애자 성매매에도 매료되었는데, 관련 분야를 조사하던 울픈든 위원회가 계기를 제공했던 같다. 진지한 측면에서 이성애 성매매에 대한 관심은 동성애자들에게 있어 이성애적 행위의 평범함을 와해시키는 효과가 있었지만, 와일드블러드에게 정보를 제공하던 팸이라는 여성도 굉장히 흥미로운 인물이었다. 팸은 BDSM 심취했던 행상인 소년을 밧줄로 꼼짝 못하게 묶은 하녀에게 다림질하는 동안 지켜보도록 하고 본인은 다른 흥미거리를 찾으러 퍼브에 들렀다고 한다. 그런데 바텐더는 집에서 연락이 왔다며 팸에게 이렇게 말한다: “손님께서 요리용으로 꽁꽁 묶은 닭을 마리 주셨다는데, 시퍼렇게 변해서 못쓰겠다고 하네요.”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A Way of Life에는 제삼자의 경험이 잠깐 등장하는데, 여기서 와일드블러드는 동성에 대한 욕망을 당시로서는 깜짝 놀랄만한 권한과 결부시키고 있다. “그때까지 고든은 남자의 몸을 그런 식으로 적이 없었다. 남자의 몸이 욕망과 두려움의 대상, 용도를 없는 온화함과 전멸의 도구로 보인 그때가 처음이었다.” 


기준에서 와일드블러드의 소설 ‘The Main Chance’(1957) ‘West End People’(1958) 빛을 보지 못했지만, ‘West End People’ 뮤지컬 버젼인 ‘The Crooked Mile’ 흥행에 성공했다. 이들 작품에 생기나 독창성이 부족한 아니었다: “가녀린 기계손이 안을 더듬더니 헛기침과 함께 회전하는 배꼽 위에 레코드를 올려놓았다.” 주크박스를 이런 식으로 묘사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작품들의 진가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캠프한 대화도 등장한다: “자기는 신문도 읽나봐!” “어머, 그걸 누가 읽니? 기사를 쓰는 것만으로도 고된데.” 또한 일종의 제한된 사회적 다양성도 엿볼 있다: “그는 넘어졌지만 이내 몸을 일으켜 샛길을 달려갔고, 에스프레소 바의 스키플 연주가들과 반전주의자, 소매치기, 복음전도사와 매춘부들이 뒤를 쫓아갔다.” 그런데 여기서 동성애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앵거스 윌슨 같은 작가 동성애자 인물과 동성애 소재를 다루어도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 시절이었는데도 말이다. 대신 와일드블러드는 ‘West End People’에서 데이먼 러니언 영역으로 급회전함으로써, 저그 이어스 존스, 핑거스, 비숍, 벅시, 먹시, 호스와 같은 사랑스런 악당들을 등장시켰다. 그렇게 오랫동안 타협과 잠적을 거부해 왔던 사람이 작품에 모든 쏟아부으면서 대범함만 배제했다는 정말 이상한 선택이 아닐 없다. 


*드라마 ‘Against the Law’ 7월말 BBC2에서 방영됩니다. 




- Adam Mars-Jones

- 옮긴이: 이승훈



The Wildeblood scandal: the trial that rocked 1950s Britain – and changed gay r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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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독의 우물’: 래드클리프 홀(Radclyffe Hall)의 레즈비언 소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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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3



영화 Victim에 출연했던 피터 맥에너리, ‘게이들로부터 고맙다는 내용의 편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1961년도 영화 Victim에서 더크 보가드의 연인 역할을 맡았던 피터.
동성애가 비범죄화되기 6년전 이 영화는 동성애에 대한 시선을 어떻게 바꾸었을까?



Victim에 출연한 피터 맥에너리: ‘조연들은 대부분 이성애자였다. 아마 게이 배우들은 이런 영화에 출연했다가 범죄자로 몰릴 걸 우려했을 것이다.’ 사진: Alamy Stock Photo



Victim(희생자)은 실제로 사회에 변화를 가져다 준 몇 안되는 영화 중 한 작품이다. 1960년대 동성애를 동정어린 시선으로 담아낸 이 영화는 그로부터 6년 후인 1967년 성추행법 제정을 통해 동성애가 비범죄화되는 데 기여했고, 법안 작성을 주도한 애런 의원은 주연을 맡았던 더크 보가드에게 직접 감사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Victim은 누구나 즐길 만한 런던 미스테리 스릴러라는 도구를 통해 영국 영화계에 과감한 행동주의를 도입한 영화다. 보가드가 맡은 주인공은 존경받는 기혼 변호사지만, 젊은 게이 건설 노동자인 바레트는 그와 함께 찍은 사진을 빌미로 협박을 가해 온다. 바레트 역을 맡았던 피터 맥에너리가 당시를 회상했다. - 스티브 로즈



나는 배역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무런 거부감도 없다. 좋은 배역이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더크 보가드 같은 대형 스타와 함께 출연하게 되어 신이 있었다. 신참내기였던 나는 런던으로 이사와서 여자친구와 동거하고 있었다. 전에 알렉 기네스, 밀스 같은 배우들과 함께 Tunes of Glory라는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었고, 당시 피터홀에서 창단한지 얼마 되던 왕립 셰익스피어 컴퍼니의 오디션을 참이었다.


게이씬에 대해서는 무지에 가까웠다. 사실 사고방식이 그다지 진보적이지는 않은 편이었는데, 어릴 버밍엄 교외에서 자라 브라이턴으로 이사를 갔기 때문에 아는 거의 없었다. 그나마 아는 거라곤 게이라고 하면 여성적라는 , 케네스 윌리엄스가 흉내내던 것처럼 손목을 꺾는 시늉 자주한다는 것 정도였.


그래도 배우라는 직업에 동성애자가 많다는 알고 있었고, 주변에서도 조심하라는 말을 듣곤 했다. 사람을 가려가며 사귀라는 말에는 자칫 잘못하다간 평판에 금이 수도 있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Victim’ 조연들은 대부분 이성애자 배우들이었다. 아마 게이 배우들은 이런 영화에 출연했다가 범죄자로 몰릴 우려했을 것이다. 물론 그때만 해도 6 후에 동성애가 합법화될 거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암흑기였던 같다. 영화에는마녀 같은 거야. 태워죽이진 않지만.”이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당시 동성애란 그런 것이었다.



‘Victim’에 출연한 더크 보가드(Dirk Bogarde)와 실비아 심스(Sylvia Syms). 사진: Alamy Stock Photo



내게 게이처럼 연기하라고 지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배질 디어든 감독도 특별한 지시를 주진 않았지만, 사실 공중전화를 찾아 런던 시내를 돌아다니는 역할이라 그리 도움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보가드와 함께 작업한 소감이 어떻냐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우리 사람이 함께 나온 씬은 없었지만, 보가드는 항상 세트장에 나왔기 때문에 매일 마주치긴 했다. 그는 대사를 잊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