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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3




'항문성교를 가르치자는 게 아닙니다': 사랑과 평등, LGBT 사안을 탐구하는 독일 학교들




독일에서 성교육 수업은 필수다. 하지만 꼭 성교육 시간에만 다양성을 언급할 필요는 없다. 독일 학교에서는 수업 전반에서 LGBT 주제가 다뤄진다.




교과과정에 성의 다양성이 추가되었을 때 수만여 명의 학부모들이 반발했다. 학교는 어떻게 학부모들의 지지를 얻었을까? 사진: Raul Arboleda/AFP/Getty Images


독일은 비스바덴은 샴페인과 온천으로 유명한 아름다운 고장이다. 지난달 이곳에서 2천여 명의 학부모 교과편성에 맞선 시위가 있었다. 학부모들이 분개한 이유가 뭐냐고? 항문성교와 딜도, 다크룸 수업이 쏟아지게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부모들의 우려와는 달리 교과과정에 항문성교는 없다. 단지 다양한 삶의 방식과 정체성의 수용을 장려하도록 각 학교에 지시가 내려질 뿐이다. 헤센주 교육부는 올해가을부터 성교육뿐만 아니라 영어나 수학 시간에도 성과 젠더의 다양성을 언급해야 한다고 밝혔다. 성교육 시간에 이러한 주제를 다루는 이미 독일에서 의무화되어 있다.


독일 LGBT 인권단체 레즈비언 게이 협회(LSVD) 마르쿠스 울리히는 이번 정책이아이들에게 다양한 사랑과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이라고 한다. 관련 주제는 평소 수업시간에 다뤄진다.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수학문제를 낼 때 동성커플 가정도 언급하고, 영어 수업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공부하면서, 반대에 부딛히기 쉬운 사랑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학생들에게 묻는 거죠.”


독일은 16 주마다 다른 교과과정을 채택하고 있는데, 헤센주는 베를린과 브란덴부르크에 이어 번째로 교과과정에 LGBT 수용했다. 하지만 정책이 도입될 때마다시위가 잇따르는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라고 울리히는 말한다.



"학교 임원들이 학부모의 불만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제대로  정보를 제공해야 학부모들의 지지를 받을  있을 것"

- 레진 블라시차우 (프로 파밀리아)



그럼 교사들은 실제로 어떤 식으로 수업을 가르치게 될까? 베를린 인근 포츠담에서 생물 교사로 재직중인 커밍아웃 동성애자 귀 마이우스는 성교육 시간과 생물 수업에서 성과 젠더의 다양성을 가르치고 있다. 


성과 젠더의 차이, 그리고 다양한 삶의 방식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성차별의 대부분이 고정관념에서 비롯된다는 배워가는 거죠.”


마이우스는 성교육 시간에 앞서 익명질문을 낸다고 한다. “정말 간단한 질문을 통해 아이들이 모르는 지식이 많다는 보여주는 겁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동성애자인지 어떻게 있는지, 커밍아웃은 어떻게 하는지를 묻죠.” 


마이우스는 아이들이 성별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 있도록, 여자의 장점과 남자의 장점에 대해 묻곤 한다. ( 수업에서는 여자의 장점이 울고 싶을 언제든지 있다는 것이고 남자의 장점은 머리가 짧아서 금방 감을 있다는 답이 나왔다.) 다음으로는 젠더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토론을 나눈다고 한다. “남자는 운동을 좋아하고 힘이 세지만, 여자는 그렇지 않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주입 당하기 때문에 아이들 마음에는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이 많이 자리잡고 있어요.”


귀도 마이우스는 수업시간에 ‘대박! 우리 선생님 게이래’라고 적힌 풍선을 활용한다. 사진: 기도 마유스

마이우스는 생물 시간에도 성의 다양성에 대해 언급한다. 그리고 베를린 LGBT 행에서는 ‘대박! 우리 선생님 게이래라고 적힌 풍선을 사와서 수업시간에 쓴다고 한다. 폐활량에 대해 가르칠 아이들에게 풍선을 불게 하는데, 아이들은 풍선을 불다가 그 위에 적힌 글을 보고 웃음을 터뜨린다고 한다.


아이들은 성과 다양성에 대해 배우는 좋아한다고 한다. “전에는 번도 이야기해 적이 없는 주제니까요. 재밌게 하려다 보니 정말 많이 웃게 돼요.”


하지만 모든 교사가 주제를 능숙하게 다루는 아니다. 따라서 학교 임원들과 독일교육노조(GEW)에서는 교사를 상대로 트레이닝을 요구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교사로 재직중인 마라이케 클라우엔플뤼겔은 현재 교육노조 LGBT 교사들의 대변인을 맡고 있는데, 교사들 중에는 성과 다양성을 다룰 자신감이 없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또한 난민사태로 인한 중압감 때문에 성과 다양성까지 다룰 짬이 없다고 토로하는 교사도 있다. 클라우엔플뤼겔은 그럴수록동료와 상의하고, 교재를 공유하는 서로 협력해야 하지만, “이런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지는 관리직에서 확인할 필요가 있는데, 그렇게 하는 곳도 있는 반면, 챙기지 않는 학교도 있다 덧붙였다.


클라우엔플뤼겔은 성과 젠더가 교사연수 과정에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한다. “교육부 지침이 필요합니다. 교사연수를 전국적으로 시행되어야 하구요.” 그래야만 교사들도 자신감을 가지고 관련 주제를 다룰 있다는 것이다.


한편, '프로 파밀리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레진 블라시차우는 이런 정책이 학교 임원들이 학부모의 불만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제대로 정보를 제공해야 학부모들의 지지를 받을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프로 파밀리아는 독일에서 섹슈얼리티, 파트너 가족계획 관련 사업을 이끌 있는 단체. “학부모를 성교육에 참여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해야 자기가 가지고 있던 우려를 표현할 있으니까요.” 울리히도 다양성 수용을 교칙에 포함시키고 홈페이지에서도 언급하는 , 다양성 수용이 학교 정책의 일부분임을 학교 임원들이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지적한다.


청년 자원봉사자들도 주제를 다루는 도움을 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 의대에 재학중인 루카스 친체브스키(22) 안전한 사랑이라는 성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안전한 사랑에서는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학교에 가서 성교육의 모든 측면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다양성의 수용도 반드시 언급한다고 한다. “성교육 하는 놀이가 하나 있는데, 커밍아웃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유명인을 보여주고 사람들의 성적지향을 알아맞춰 보라고 하거든요. 그러면 대부분 사람은 완전 게이틱하다 식의 발언을 많이 해요. 그렇게 해서 고정관념이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로 이어가 거죠.”



"하지만 극우적인 입장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주정부가 다양성 교육을 실시하려  때마다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뤼벡 대학교에 재학중인 프레데리케 부케(21) 프로 파밀리아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저한테 남자친구가 있는지 묻는 애들이 있어요. 그러면여자친구는 없어 보이니?’라고 되물으면서 생각할 거리를 주는 거예요.” 


이들 대학생 자원봉사자는 교사를 위해 워크숍을 열기도 하는데, 교사가 직접 수업에 들어와 성관련 주제를 어떻게 다루는지 지켜볼 기회를 준다고 한다. 친체브스키 부케는 이런 훈련이 도움이 된다며 감사하는 교사들이 많다고 한다. 


학교 임원들도 교사가 다양성이라는 주제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이런 교육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교육노조의 자 클리만은교사가 수업할 항상 주제를 염두에 둬야 한다 강조한다. “엄마, 아빠, 아이로 구성된 이성애규범적 가정만 예로 들어선 돼요. 영향이 미묘해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정말 큰 거거든요.”


특히 요즘의 정치적 류를 감안할 아이들에게 수용을 가르치는 것은 어느때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슈테파니 피히터(28) 수용성 교육을 통해 “LGBT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적인 학교환경을 만들 있다 한다. 피히터가 몸담고 있는 ABqueer 청년 LGBT 자원봉사자들이 학교에서 차별반대 커밍아웃경험에 대해 토론할 있도록 자리를 주선하는 비정부 단체이다.


하지만 극우적인 입장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주정부가 다양성 교육을 실시하려 때마다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다양성 교육을 둘러싼 분노는 2년전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서 20 명이 탄원서에 서명하면서 붉어졌. 이들은 학교가 동성애적 생활방식을 조장함으로써 아이들을 성애화시킨다며 우려했고, 이러한 시위는 바라이아와 헤센에서도 이어졌다.


올해 지방선거에서 승승장구 극우파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학교내 동성애, 트랜스젠더, 양성애 교육의 대부분을 철폐시키고전통적인 가족의 가치관삶의 주목적으로써 남녀간의 결합에 초점을 맞추자는 법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클라우엔플뤼겔은 절대로 그렇게 되어서는 된다고 주장한다. “LGBT 수용을 밖의 다양한 삶의 방식에 대한 수용으로 이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은 학교에서 다양성을 가르치는 것이 시급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인권 문제이자, 다양한 삶의 방식, 종교, 성적지향, 성별 배경을 받아들이기 위한 거예요. 다양성 증진은 지금 우리 사회에 절실한 사안입니다.”




- Abby Young-Powell

- 옮긴이: 이승훈





'It's not all anal sex': the German schools exploring love, equality and LGBT issues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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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6



ANGELA MERKEL DOESN’T BELIEVE IN SAME-SEX MARRIAGE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Outmost.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결혼은 남녀가 함께 사는 것

 


기독교 민주당 당수인 메르켈 총리가 동성커플의 동등한 혜택을 지지하면서도 동성애자들이 온전한 민간결혼을 누려서는 안 된다고 발언했다.


독일 유투브 스타 LeFloid와의 인터뷰에서 메르켈 총리는 결혼평등에 반대입장을 밝혔다. 


저는 모든 차별을 철폐하는 데 매우 지지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독일은 큰 발전을 이루었어요. 제가 25 살 때만 해도 커밍아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죠.


하지만 결혼은 남녀가 함께 사는 것이라는 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하지만 시민결합에는 찬성해요.


독실한 기독교 신자지만 두 번의 결혼 경험이 있는 메르켈 총리는 동성커플도 시민연대를 통해 세금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전 시민결합을 지지합니다. 세금제도에서 모든 차별을 철폐하는 데에도 찬성하구요. 앞으로 다른 차별사항이 발견된다면 계속해서 철폐해 갈 것입니다.”


전 차별에 반대하고 평등을 지지합니다.”




독일어를 할 줄 아는 분들은 아래 동영상을 클릭:



- Jane Casey


- 옮긴이: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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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6

 
Magnus Hirschfeld:
The Einstein of sex who braved Nazi genocide to wage LGBT crusade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Peter Tatchell Foundation.


 
 
80
년전 5 월 어느날, 성과학의 위대한 선구자이자 동성애자 인권 옹호가가 찬사도 애도도 없이 숨을 거두었습니다
 
마그누스 히르슈펠트 박사. 그는 매우 적대적인 환경속에서 인간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이해와 LGBTI(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간성인) 권리를 향상시키고자 했던 천재적인 선구자였습니다. 용기와 각오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가 레딩 감옥에서 고생하던 히르슈펠트 박사는 베를린에서 세계 최초로 동성애자 인권단체를 설립했습니다. 와일드가 LGBTI들의 박해를 한탄한 일이 거의 없는 반면, 히르슈펠트 박사는 이에 맞서 싸우고자 했습니다.


그가 1897 베를린에 설립한 과학 인도주의 위원회(Scientific Humanitarian Committee) 동성애자 해방 투쟁을 개척했습니다. 영국의 경우, 반세기나 지난 1960년대에서 이와 같은 운동이 부상하기 시작한 것을 보더라도 그가 진정 시대를 앞서간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히슈펠트는 1868 당시 프러시아였던 지역의 보수적인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유년기 때부터 성에 대한 호기심과 환상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어릴 때부터 시대의 인습과 어른들의 윤리관에 맞서 섹슈얼리티를 전적으로 자연스럽고 건전한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그런 그는 의대에 진학해 '성의 퇴보'라는 강의를 듣다가 트라우마에 빠지게 됩니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무려 30년간 수감된 남성이 마치 짐승처럼 벌거벗은 채로 학생들 앞에 전시된 것입니다. 하지만 히르슈펠트만이 이같은 처우에 반발했을 , 그의 절친들마저 이를 당연하고 정당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에게 트라우마를 안겨 사건은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1893 베를린에서 개업한 그는 어느날 근처에서 군인을 마주치게 됩니다. 동성애자라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하던 군인은 상담을 요청했지만, 히르슈펠트는 그런 그에게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다음날 치료를 받으러 오라고 권합니다. 그런데  군인은 그날밤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맙니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던 그는 급기야 동성애를 연구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동성애 금지법 철폐를 요구하는 책자를 쓰게 됩니다. 당시 독일에서 동성성교는 형법 175항에 의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가족친지들이 동성애를 연구해서 찬사받을 일도 행복해질 일도 없으니 콜레라처럼 좀더 가치 있고 존경받는 분야를 연구하라고 권고하자 그는 "무슨 소리! 그럼 콜레라가 섹슈얼리티보다 행복을 가져다 준단 말입니까?"하고 반박했다고 합니다
 
그가 친동성애자라는 소문이 퍼지자, 섹슈얼리티로 고민하다가 치료를 받기 위해 그를 만나러 오는 남성들도 늘어갔습니다. 히르슈펠트는 그들에게 어떤 처방을 내렸을까요? 바로 "게이 파티를 실컷 즐기고 남자친구도 실컷 사귀세요!"입니다
 
그런 히르슈펠트가 가장 힘들어 했던 것은 다른 동성애자 남녀들의 적개심이었습니다. 이미 이등시민이라는 지위를 받아들인 마당에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히르슈펠트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겁니다. 이들은 그를 골칫거리로 취급하며 성관련 설문조사와 법개혁 캠페인에도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혼자서는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그가 1897 설립한 것이 바로 과학 인도주의 위원회(SHC: Scientific Humanitarian Committee)입니다. SHC 목표는 성과 관련된 모든 사안의 연구와 교육을 장려하고, 특히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타파해 동성애 금지법 철폐의 정당함을 입증하는 것이었습니다.  
 
영국 이반 로비 단체 스톤월의 1890년대판이라 있는 SHC 좌우명은 "과학을 통한 정의"였습니다. 일부 과격한 지지자들은 프랑스혁명의 구호를 모방해 "자유! 평등! 박애! 동성애!"라고 외치기도 했습니다
 
다른 동성애자들의 안일함과 경멸에 맞서던 그는 아돌프 브란트가 이끄는 OutRage!식의 과격단체의 공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직접적인 행동과 동성애 혐오자의 공개를 주장하던 브란트는 히슈펠트의 위원회를 "고귀한 중산층 동성애주의자들의 수다방"이라며 비난했습니다
 
저도 브란트의 저돌적이고 확신에 동성애자 행동주의를 존경하지만, SHC 비난했던 것만은 다소 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편견과 무지의 시절, 스톤월과 유사한 단체가 있었다는 것은 실로 혁신적이고 혁명적인 일이었습니다. 이는 히르슈펠트와 위원회 임원들이 반동분자로 몰려 경찰의 감시를 받고 끊임없이 추행에 시달렸다는 것만 봐도 있습니다
  
히르슈펠트의 지칠 모르는 활동 덕분에 1898 독일 의회는 형법 175 폐지여부를 놓고 논의를 벌이게 됩니다. 폐지 움직임을 이끈 것은 좌파 사회민주당의 지도자 아우구스트 베벨 의원이었습니다.(히르슈펠트 자신도 사회민주당의 저명한 당원이었습니다.)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일을 계기로 동성애자 평등 논쟁이 처음으로 주요 정치의제로 부상하게 됩니다

히르슈펠트는 실패에 굴하지 않고 경찰측에 부당한 동성애 금지법을 시행하지 말도록 호소합니다. 그는 베를린 경찰국장을 모시고 게이바와 게이클럽 시찰에 나섭니다. 경찰국장은 자신이 예상했던 음란한 소굴이 아니라 재치있고 멋드러지고 예의바른 성소수자들을 만나게 되어 즐거운 시간을 가졌고, 다소 실망스러운 어투로 "소돔과 고모라를 보게 알았는데"라고 불평했다고 합니다
 
히르슈펠트는 이상적이고 과학적인 입증을 통해 법개혁을 꾀하고자 동성애의 원인과 본질을 의학적으로 연구했습니다. 사실을 이해함으로써 편견을 없애고 수용을 장려하고자 했습니다

누구나 양성을 지니고 있다는 그의 결론은 시대를 훨씬 앞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통칠력있는 분석에도 불구하고 그는 동성애가 태어날 때부터 생물학적으로 결정되는 '중등성(intermediate sex)'라는 그릇된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는 동성애자 남성들을 '남자 몸에 같힌 여성의 영혼'으로 간주했습니다
 
이렇듯 그는 선의의 오판을 내리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옳은 결정을 내렸고 따라서 우리는 그를 용서할 있고 용서해야만 합니다
 
동성애자들의 복지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열렬히 옹호하기도 했는데, 또한 시대를 수십 년이나 앞선 발상이었습니다. 또한 세계최초로 성별 재확정 수술을 때는 어마어마한 금액의 보조금을 받기도 했습니다. 1919 , 자금으로 성과학 연구소(ISS: Institute for Sexual Science) 창립했는데 이는 알프레드 킨지 박사가 미국에서 성연구센터를 설립하기 무려 30 전의 일입니다

 
기관은 연구활동 외에도 성교육, 피임, 결혼 관련 상담,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상담, 성병 예방 치료, 동성애 관련법 개정과 여성인권 분야에도 힘을 썼고, 연간 곳을 찾는 방문자는 2 명에 달했습니다
 

이들이 하던 일은 당시로써는 진기한 발상이었기 때문에 히르슈펠트는 전세계로부터 찬사와 비난을 한 몸에 받게 되었습니다. 미국 언론에서 그를 “성의 아인슈타인”이라 부른다고 하자 그는 재치있게 “아인슈타인을 물리학계의 히르슈펠트라 불렀더라면 더 기뻤을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치가 그의 작업을 문제삼기 시작했습니다. 나치는 히르슈펠트의 “변태행각”을 신랄하게 규탄했고, 회의를 습격하여 그와 조수겸 애인이었던 카를 기저 씨를 구타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1933 년 강연투어차 미국을 방문할 때 나치의 돌격대원이 성과학 연구소를 습격하여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연구문헌들을 파괴해 버렸습니다. 방대한 도서관은 “적들의 서적”이라는 이유로 모조리 태워졌습니다. 나치 관련 다큐멘터리와 주요 역사서적들은 이러한 분서갱유를 다룬 극장뉴스 장면을 빠지지 않고 다루지만, 이들 돌격대원의 주요대상이 바로 히르슈펠트의 성과학 연구소와 독일 동성애자 인권운동 본부였다는 사실은 그리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나치는 연구소가 보관하던 방대한 수의 고객 이름과 주소도 확보했는데, 이 자료는 게슈타포가 그 악명높은 “핑크리스트”를 작성하는 데 이용되었습니다. 핑크리스트란 동성애자를 식별해 내어 체포하고 강제수용소로 이송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나치는 히르슈펠트를 독일내 “유태인 범죄자” 중에서도 지도급이라고 공개선언했습니다. 이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지인은 그에게 독일로 돌아오지 말 것을 권고합니다. 그렇게 프랑스 남부로 향한 그는 1935 년 갑작스런 발작으로 그만 세상을 뜨고 맙니다. 그의 조수이자 애인이었던 카를 기저 씨도 1938 년 나치를 피해 도망다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두 사람 모두 그 방대한 인류애적 공헌과 어울리지 않는 슬프고 외로운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히르슈펠트의 생애와 업적이 제대로 기록되고 그가 사회의 찬사를 받게 된 것은 수십 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그의 어마어마한 노고가 영화 The Einstein of Sex(Rosa von Praunheim, 1999)와 전기집 Magnus Hirschfeld (Charlotte Wolff, 1986)로 기록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입니다. 이들 작품은 히르슈펠트의 정치운동, 성연구 및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던 개인삶의 우여곡절을 담고 있습니다. 다른 수많은 인권 운동가들이 그렇듯, 히르슈펠트 또한 타인의 사랑과 안락을 위해 자신의 행복과 안락을 희생했습니다. 성의 권리와 이반 해방에 있어 진정한 선구자이자 영웅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15
5 26International Business Times 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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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터 태첼


- 옮긴이: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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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인디펜던트


독일 드레스덴에서 극우 성향의 반이슬람 단체인 ‘페기다(PEGIDA)’가 주도하는 ‘월요 시위’가 매주 신기록을 달성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어제 1월 5일 저녁 집회에는 사상 최대 규모인 1만 8천여 명이 참가했다고 주요 외신들이 전했다.



‘서양의 이슬람화에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PEGIDA)’의 약자인 ‘페기다’ 단체가 지난 10월 첫 집회를 가졌을 때만 해도 참가자는 수백 명에 불과했다. 그러다 12월 중순 15,000여 명이 모였고, 크리스마스를 앞두고는 17,000여 명이 모였다. 2015년 새해를 맞고 처음 개최된 어제 집회에는 18,000여 명이 모였다.



독일의 진보적 시민들은 “나치 없는 드레스덴”을 외치며 이에 저항하고 있다. 어제 같은 시각 드레스덴에서는 진보적 시민 3천 여명이 모여 독일의 우경화와 인종주의, 혐오 선동에 반대하고 나섰다.


베를린, 쾰른, 슈투트가르트, 뮌스터, 함부르크 등에서도 시민 약 3만 명이 극우 세력의 혐오 선동에 저항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독일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커뮤니티도 베를린과 쾰른에서 극우 세력의 혐오 선동에 맞서 함께 투쟁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쾰른 프라이드(Cologne Pride), 독일 레즈비언 게이 연맹(Lesben- und Schwulenverband in Deutschland·LSVD), Enough is Enough는 독일 성소수자들과 함께 거리로 나와 혐오 선동과 인종주의에 맞섰다. 극우 세력의 혐오 선동이 동성애자들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종교, 출신, 사회적 지위가 다르다는 이유로 혐오와 차별과 폭력을 조장하는 행동에 눈을 감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독일의 주요 성소수자 웹사이트 Queer.De에서 “LGBT 단체들이 페기다 반대 집회에 동참해야 하는가?”라는 설문 조사에 지금까지 76.8%는 “그렇다”고 응답했다.


쾰른에서는 시 정부가 쾰른 대성당과 주변 광장, 대로의 조명을 꺼 극우 세력에 항의를 표명했다. 또 모든 관공서의 조명도 꺼 버렸다. 또 “여기에 나치가 설 자리는 없다”는 플래카드도 내걸었다. 쾰른 시 정부는 페기다가 극단주의 세력으로 폭력을 조장하고 있기 때문에 지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쾰른 대성당의 주임 신부 노르베르트 펠트호프(Norbert Feldhoff)는 “이것은 항의가 아니다. 그러나 보수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 신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깊이 고민할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페기다의 행동이 나치주의적, 인종주의적이고 극단주의적이라고 지적했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도 시 정부가 조명을 꺼 버렸다. 또 진보적 시민 5천여 명이 거리로 나와 페기다 추종자들의 행진을 봉쇄했다.


그러나 페기다 추종자들은 자신들은 나치가 아니며 기독교에 뿌리를 둔 문화와 전통이 “희석되는 것”을 걱정하는 애국자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페기다의 창립자이자 지도자인 루츠 바흐만은 “독일은 이민자들의 나라가 아니다”고 말하며 독일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은 “기독교-유대교에 바탕한 문화” 가치와 “인본주의”를 고수해야 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페기다 추종자들은 지난 12월 22일 드레스덴에서 집회가 끝난 직후 무장한 50여 명이 백화점을 급습, 이주민 청년 30명을 공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최근 독일에서는 인종 및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공격하는 혐오 범죄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독일 잡지 <슈테른(Stern)>이 실시한 설문 조사에 의하면, 독일인 8명 중 1명은 페기다의 극우 집회에 참여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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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2일 독일 드레스덴에서 극우 성향의 반이슬람 단체인 ‘페기다(PEGIDA)’가 주도한 시위에 17,500명이 참여했다.



어제 12월 22일 독일 드레스덴에서 극우 성향의 반이슬람 단체인 ‘페기다(PEGIDA)’가 주도한 시위에 17,500명(경찰 추산)이 참여해 독일의 주요 정치인과 시민들이 극우 확산 저지 움직임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시사포커스가 전했다.


‘서양의 이슬람화에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PEGIDA)’의 약자인 ‘페기다’ 단체가 지난 10월 첫 집회를 가졌을 때만 해도 참가자는 수백 명에 불과했다. 그러다 지난주 15,000여명이 모였고 이번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젬퍼 오페라 하우스 바깥에 17,500명이 모여 크리스마스 송가를 불렀다고 주요 외신이 전했다. 이는 지난 10월 열기 시작한 이래 10번째로 개최된 ‘월요 시위’의 사상 최대 규모다.


페기다에 맞서 4,500명의 시위대가 ‘나치 없는 드레스덴’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도시를 행진했다. 이들은 인종 차별과 외국인 혐오(제노포비아)는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를 범한 나라에서 설 자리가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페기다 추종자들은 자신들은 나치가 아니며 기독교에 뿌리를 둔 문화와 전통이 “희석되는 것”을 걱정하는 애국자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주류 정당들이 자신들을 배반하고 언론은 거짓말만 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이민법과 망명 제도가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페기다의 창립자이자 지도자인 루츠 바흐만은 “독일은 이민자들의 나라가 아니다”고 말하며 독일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은 “기독교-유대교에 바탕한 문화” 가치와 “인본주의”를 고수해야 할 것을 요구했다. 


드레스덴뿐 아니라 소규모의 페기다 유사 단체들도 22일 본, 캇셀, 뷔르츠부르그, 로스토크, 뒤셀도르프에서 집회를 가졌다.





한편 중도 좌파 사회민주당 계열의 게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는 극우의 준동을 우려하는 시민들이 이 외국인 혐오증(제노포비아)에 대해 “품위 있는 사람들의 반란”을 시작해야 할 때라며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대중들의 대응책이다”고 말했다. 


페기다에 반대한 가장 큰 시위는 독일 남부 뮌헨에서 열렸다. 적어도 12,000명이 모여 “자리를 만들어라, 난민(망명자)들을 환영한다”는 플래카드를 들어올렸다.


뮌헨의 디터 라이터 시장은 “우리에게는 다른 피부색, 인종 기원과 언어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있다”며 “우리는 금요일에 모스크(이슬람 사원)에 가는 사람들, 토요일에 시나고그(유대교 사원)에 가는 사람들, 일요일에 교회에 가는 사람들, 또한 그냥 집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모두를 위한 공간이 있다”고 시위대를 향해 말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제국이 전쟁을 벌이고 있는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과 여러 아프리카와 발칸 국가들로부터 온 이주자들의 유입으로 독일에서는 지자체 정부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있다.



2014년 12월 15일 개최된 드레스덴 페기다 극우 집회에 등장한 무지개 깃발. 사진: https://www.flickr.com/photos/hinkelstone/



한편 지난주 월요일인 12월 15일 개최된 드레스덴 페기다 집회에는 무지개 깃발도 등장해 화제가 됐다. <알자지라>에 의하면, 한 남성이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커뮤니티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들고 집회에 참석했다. 무지개 깃발 위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마크가 그려져 있고, 검은색으로 PEGIDA(페기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 남성은 다른 시위자들로부터 환영받았다고 말했다. 페기다는 성명서를 통해 성적 자기 결정권을 존중한다고 주장했다.


무지개 깃발이 등장한 대열은 제3의 위치(또는 제3의 수단) 세력으로 보인다. 제3의 위치(Third Position)는 1920년 바이마르 공화국의 혁명적 보수주의 분파 학자들에 의해 처음으로 용어화, 정립된 이론이며,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모두 반대하는 과격 민족주의 사상을 총칭하는 정치 운동 및 정치 이론이다. 제3의 위치와 관련된 모든 이론은 보수적인 사회 관념을 가지고 있으면서 한편으론, 과격한 민족주의에 의존한 정치적 변화를 요구한다. 현재 독일에서는 독일 민족민주당이 제3의 위치를 주장한다. 


참고로, 평화 깃발은 빨주노초파남보의 7색깔을 다 쓰고 있으며 빨간색이 맨 아래에 있고 보라색이 맨 위에 있다. 반면 LGBT의 깃발은 빨주노초파보의 6색이 쓰이며 빨간색이 맨 위에 있고 보라색이 맨 아래에 있어 분명히 구분된다.


- 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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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식으로 남성의 육체를 그려 내는 독일 출신의 화가 로베르트 C. 로레에 관한 글입니다.


2014-03-03



Секс ходячи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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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트 C. 로레(Robert C. Rore)는 1954년에 베르히테스가덴에서 태어났다. 그는 화학 공학 기술 교육을 받고, 과학 연구소에서 근무했다. 그 후 뮌헨에서 학업을 계속했는데, 처음에는 화학 공부를 하다가 나중에는 예술사 공부를 시작했다. 1982년에 이미 첫 개인전을 열었다. 같은 해에 로베르트는 시각 예술가 협회에 가입됐다.





로베르트는 유화보다 수채화, 연필화를 더 자주 그린다. 남성 누드화 외에 정물화도 자주 그리고, 여러 유럽 도시들의 가이드 앨범도 출간한다.





모델들의 진부한 포즈, 완벽한 신체, 스토리의 부재 등으로 특징되는 그의 누드화들은 성인 잡지의 가장 ‘저렴한’ 사진들을 연상시킨다. 사진을 놓고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로베르트는 늘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델을 직접 보고 그린다.





로베르트 로레의 유일한 특징이라면 바로 그만의 명암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 속 청년들은 수정 같이 맑고 투명한 공간 속에 위치해 있으며, 부드러운 빛이 그 공간의 1센티마다 굴절되고 있다.





로베르트는 평범한 포즈뿐 아니라 에로틱한 소재 중 특이한 것들도 좋아한다. 발가벗은 웨이터, 축구 선수, 군인, 벌목꾼, 사도마조히스트, 구슬치기를 하는 남자들, 해변의 맥주 애호가 등등.





로베르트는 피상적인 스케치와 상세한 디테일 묘사 사이의 가느다란 경계를 오가며 그림을 그리기를 즐긴다. 이런 특징은 그의 정물화와 풍경화에 잘 나타난다. 남성의 육체를 묘사한 작품들은 독일의 전통, 더 정확히 말하면 독일의 전체주의적 전통을 잘 드러내고 있다. 로베르트는 그런 전통을 풍자하고 있는데, 바이에른 전통 의상 레더호젠(가죽 바지)이라든가 올림픽 성화를 들고 있는 운동 선수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특히 그러하다. 굉장히 익숙한 고전 작품 같으면서도 전체적으로 보면 그리 진지해 보이지 않는다.





로베르트가 사용하는 모든 스케치 및 회화 기술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깨지기 쉬운 부드러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아무 것도 새로 고안해 내지 않는다. 새로운 스토리를 지어 내지도 않는다. 그는 그저 순수한 육체를 가지고 그 익숙한 이미지를 자기만의 공간으로 전이시켜 뛰어난 살롱화들을 창조해 낸다.








- 링크

로베르트 C. 로레의 공식 홈페이지(독일어)


- 로라 레데르


- 옮긴이 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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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8

 

 

Герой-любовник-натурал вышел из шкаф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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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인기 TV 드라마 ‘Unter uns(Among Us)’에서 활약하고 있는 미남 배우 라르스 스타인호펠(Lars Steinhöfel)이 자신의 28세 생일날 남자를 좋아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드라마에서는 여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이성애자 남성을 굉장히 사실적으로 연기하고, 여성 팬들의 숫자로는 그를 따라갈 남자 주인공들이 없지만 말이다. 라르스 스타인호펠은 2008년에 나온 ‘다리(Die Brücke)’라는 영화로도 유명하다. 이 영화에서 라르스는 히틀러 유겐트의 청년을 묘사한 주인공 역을 맡았다. 그래서 화면 밖 사생활에서는 라르스 스타인호펠이 독일인들이 말하듯 반대편 강가에서 온 사람, 즉 동성애자일 거라는 생각을 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일부 눈치 빠른 게이들은 이미 눈을 부릅뜨고 라르스가 이성애자 역할 치고는 너무 반반한 게 아니냐는 지적을 하긴 했다. 이제 모든 것이 분명해져 제자리를 찾은 셈이다.

 

 

 


쉽지 않은 결정


라르스 스타인호펠은 커밍아웃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팬들에게 고백했다. “언론은 종종 동성애자들을 외향적인 사람들로 묘사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다. 내 성격은 오히려 내향적이다. 나는 꽤 내성적이고 냉정한 사람이다. 28살이 되어서야 커밍아웃을 할 수 있었다.”

 

청소년 시절 라르스는 동갑내기 친구들이 단체로 괴롭힐까 봐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히지 못했다고 한다. 나중에는 자신이 맡고 싶은 역할을 못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생겼다고 한다.


라르스는 관용적인 독일에서조차도 성적 지향이 경력에 있어 장애물이 될 수 있으며, 특히 아직 인기를 많이 얻지 못한 경우에는 더욱 심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라르스 스타인호펠은 자신의 행동을 통해 아직 커밍아웃을 결심하지 못한 이들에게 자극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중생활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에 종종 정신력과 인성을 파괴하기도 한다.

 

 

 

 

여자친구들은 알리바이


리키 마틴이 한때 자신의 음악을 통해 여성들에 대한 사랑을 찬미했듯이 라르스 스타인호펠도 이성애자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허구의 여자친구들과 함께 사람들 앞에 나타나야 했다. 그는 “인터뷰를 할 때마다 기자들은 나의 여자친구와 가족, 자녀 계획에 대해 묻곤 했다. 나는 거짓을 말해야 했다.”고 고백했다. 라르스도 다른 많은 동성애자들과 마찬가지로 자녀를 꿈꾸지만, 사랑하는 남자가 생기는 것이 첫 번째 조건이다. 라르스의 첫 번째 남자친구는 23살 때 생겼다. 지금 그는 28세. 다시 솔로다. 지난해 6월에 남자친구와 헤어졌는데, 그 남자친구는 친구들과 동료들에게 관계를 숨겨야 하는 이중생활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커밍아웃을 지지한 고용주와 팬들

 

라르스 스타인호펠은 자신의 생일 파티를 처음으로 베를린 게이 클럽에서 열었다. 그는 “가장 큰 선물은 내가 나 자신에게 한 것이다. 벽장에서 나온 이후로 이제 나 자신과의 조화 속에서 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드라마에서 거의 9년 동안 많은 여자들을 현혹하게 했던 라르스 스타인호펠이 사생활에선 남자들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고용주인 TV 방송국 RTL을 전혀 난처하게 하지 않았다. RTL 방송국의 편집장 카타리나 카젠버거는 “우리는 라르스 스타인호펠의 커밍아웃을 환영하고 지지하며, 드라마에서 그가 맡은 역할을 수정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라르스 스타인호펠 배우 자신과 팬들에게 아주 좋은 소식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눈에 띈 반응은 라르스 스타인호펠을 좋아하는 한 소녀가 남긴 글이다.


“사람들이 오빠의 행동을 ‘용감한 것’이라고 부르는 게 너무 슬퍼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라고 밝히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슬퍼요.”

 

 

 

 

- 톰 바이츠


- 옮긴이 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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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7



GROUP PROTEST RUSSIAN EMBASSY WITH LIGHT GRAFFI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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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의 성소수자 인권 단체가 독일 주재 러시아 대사관 건물에 빛으로 된 플래카드를 내걸어 러시아의 ‘동성애 선전’ 금지법에 항의했다.

 

GayFolksMovement.org는 러시아 대사관 건물 정면에 자신들의 홈페이지 주소와 함께 “모두를 위한 정의와 평등”이라는 모토를 빛으로 쏘았다.


이 주소를 입력하면 이 단체의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할 수 있다. 홈페이지는 다음을 언명하고 있다.


우리는 러시아에서의 폭력의 지배에 저항한다.

우리는 독재에 반대하는 신조 아래 단결한다.

우리는 한 목소리로 인권을 지지한다.

정의와 평등. 모두를 위하여.


굉장히 독창적인 항의 방법이네요!





- 옮긴이 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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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09



Сенсация в Германии: геи играют в большой футбо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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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 올림픽을 앞두고, 그리고 러시아에서는 국가 차원에서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가 조장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 세계의 점점 더 많은 유명한 운동 선수들이 커밍아웃을 하고 있다.



사진: AP



전 독일 축구 국가 대표팀 선수인 독일의 축구 스타 토마스 히츨슈페르거(Thomas Hitzlsperger)도 어제 커밍아웃을 했다. 그의 커밍아웃은 독일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독일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독일 축구계도 진보하기 시작했다! 다들 오랫동안 이 사건을 기다려 왔다. 31세의 히츨슈페르거는 독일 주간지 <디 차이트>와의 인터뷰에서 본인이 동성애자임을 밝혔다. 그의 고백에 따르면 커밍아웃을 결심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는 프로 스포츠에서 은퇴한 후에야 소치 올림픽을 앞둔 시점에 고의적으로 커밍아웃을 하게 됐다. 토마스 히츨슈페르거는 파트너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2007년에 오랜 여자친구와 헤어진 이유가 바로 자신의 동성애적 성적 지향임을 고백했다. 단지 ‘보여 주기 위해’, 그리고 축구팬들의 입맛에 맞으려고 그녀와 결혼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프로 스포츠의 동료들이 곧바로 히츨슈페르거를 지지하고 나섰다. 독일 축구 스타 루카스 포돌스키(Lukas Podolski)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히츨슈페르거의 행동이 “용감하고 올바른 것”이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


프로 스포츠계 관료들도 동성애자 축구 스타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볼프강 니어스바흐(Wolfgang Niersbach) 독일 축구 협회(DFB) 회장은 “독일 국가 대표팀 선수로서 토마스 히츨슈페르거는 모방의 대상이었고, 축구팬들로부터 무한한 존경을 받았다. 이제 그가 동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이후 이 존경심은 더욱 커졌다. 우리는 늘 그를 지지할 것임을 보증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상황이 늘 이랬던 것은 아니다. 독일의 많은 유명 운동 선수들은 이러한 용기와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토마스 히츨슈페르거가 커밍아웃을 함으로써 아직도 벽장에서 나올 결심을 하지 못한 동료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독일의 운동 선수들은 왜 커밍아웃을 두려워하는가?


독일의 TV는 부모들이 자녀들을 재우기 훨씬 전부터 동성애자들의 삶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준다. 심지어 분데스베어(독일 연방군)에는 이른바 동성애자 군인 위원회가 오래 전부터 존재하고 있다. 독일 정치계에서는 보베라이트 베를린 시장부터 베스터벨레 외무장관까지 커밍아웃은 거의 유행이 되다시피 했다. 유명한 운동 선수들만은 커밍아웃을 서두르지 않고 있다. 특히 축구와 같은 마초 스포츠에서는 더더욱.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첫째, 프로 스포츠계에서 커밍아웃하지 않은 동성애자들은 축구 실력이 프로인 만큼 공식적으로는 아내와 생활하면서 남자 애인들을 비밀리에 만나는 이성애자 연기도 프로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나서 거액의 스폰서 및 광고 계약을 잃게 될까 봐 두려워한다. 둘째, 대부분이 호전적인 이성애자들인 팬들의 불만을 두려워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축구와 같은 대중적인 운동 종목은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심판은 누구?


몇 년 전 독일 축구 협회에서 두 심판, 즉 만프레드 아메렐과 미하엘 켐프터 사이에서 일어난 스캔들은 순식간에 눈덩이로 불어난 첫수였다. 나이가 더 어린 미하엘 켐프터가 만프레드 아메렐에 의한 성희롱을 고발한 것이다. 독일 축구계에서 동성애라는 주제가 처음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필드 위에서의 판정이 아니라 진짜 법정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말이다. 켐프터는 자신의 동성애 또는 양성애적 성적 지향을 극구 부인했다. 아메렐은 켐프터가 자신에게 추파를 던졌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은밀한 내용이 포함된 260통의 전자 우편과 150통의 문자 메시지를 법원에 제출했다.


FC 샬케 04 축구 클럽의 전 감독인 루디 아사우어는 타는 불에다 기름을 끼얹었다. 아사우어는 쾰른의 한 지방지와의 인터뷰에서 “이것이 다른 운동 종목에서는 가능할지 몰라도 축구계에서만큼은 안 된다.”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이것’이란 순수하게 ‘남성적’인 운동 종목에서의 동성애를 뜻한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동성애자들에게 축구계 진출을 꿈꾸지 말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팬들이 동성애자들을 적대시할 거라는 거다.



아사우어 전 감독의 이런 언행이 상황을 더욱 조심스럽게 만들어


언론은 즉시 축구 관료들이 경기장의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를 근절하기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를 장려하고 있다며 비난했다. 프로 축구계는 일말의 자유화도 허용하지 않으며 끈질기게 이 주제를 터부시하고 있다.


유명 선수들의 커밍아웃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독일의 축구팬들이 흑인 선수들을 조소했던 것처럼 커밍아웃하는 선수들도 마찬가지 일을 겪을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전 독일 축구 국가 대표팀 선수 옌스 토트는 커밍아웃을 결심하는 선수는 본인이 소속한 축구 클럽에서뿐만 아니라 홈 그라운드나 원정 경기에서도 모욕당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토트는 프로 스포츠계에서 뛰었던 13년동안 동료들 중 누가 게이인지 알아차리기는 어려웠다고 했다. 그러나 동료들이 오랫동안 파티에 여자친구나 아내를 데려오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의심하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옌스 토트는 “하지만 이건 모두 추측일 뿐이며, 대중들의 인식과는 달리 국가 대표팀 선수들 대부분은 경기나 훈련 외 자유 시간에 개인적으로 가깝게 접촉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혼자서는 싸울 수도, 게이일 수도 없다!


<디 벨트>지의 유명한 스포츠 기자 카이 보게나는 독일 WDR 방송국의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국가 대표팀을 포함하여 동성애자인 여러 선수들과 감독들을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이들은 거액의 광고 계약을 잃는 것이 두려워 커밍아웃을 결심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 스포츠 기자는 이 축구 선수들에게 여자친구, 아내, 심지어 자녀도 있으며, 이들이 축구팬들의 입맛에 맞기 위해 은밀한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들은 유명한 축구 선수 중 누군가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하기로 결심하면 그 반대의 상황, 그러니까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게이 커뮤니티와 독일 사회 전체의 우상이 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많은 정치인들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카이 보게나 같은 사람들은 축구 선수들이 커밍아웃을 하게 되면 혼자서 할 것이 아니라 여럿이 같이 할 것을 조언한다. 서로가 서로를 정신적으로 지지해 주기 위해서 말이다.



돈과 공포의 힘 앞에서 불안한 차별금지법


2006년 8월 18일부터 성에 따른 차별 금지를 포함한 차별금지법이 시행되고 있는 독일 사회는 순수하게 ‘남성적’인 운동 종목이라는 축구의 이미지가 위에서 언급된 스캔들들로 인해 점차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게 됐다.


독일 최초의 분데스리가 공식 동성애자 축구 팬클럽을 창설한 베를린의 경찰관인 게르트 아이저베크는 “예술인들이 종종 겪는 강제적인 커밍아웃은 축구 선수들의 경우 비참한 결과에 이를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 자신도 커밍아웃, 그리고 팬클럽 창설 후 축구팬들과 심지어 축구 관료들로부터도 적지 않은 모욕을 당해야 했다.


아이저베크는 “용감하게 동성애자임을 처음으로 밝히는 자는 실험 대상이 되어 그의 운명은 예측할 수 없을 수도 있다.”고 경고하며, 영국의 프로 축구 선수 저스틴 파샤누가 커밍아웃 후 8년이 지난 1998년에 친구들, 축구팬들, 그리고 사회 전체의 압력을 견디지 못한 채 자살한 사실을 상기시켰다. 저스틴은 3부 리그로 강등됐고, 친형제는 공개적으로 그와의 연을 끊었다. 저스틴의 가까운 친구 중 한 명은 영국의 프로 축구 선수들 중에서만 최소 10명의 선수들이 자신들의 진짜 성적 지향을 숨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 AP



낙관론을 잃지 않는 보베라이트, 그리고 ‘첫 결실’을 본 독일인들


“I’m gay, and that’s ok!(나는 게이야, 그게 뭐?)”라는 말로 역사게 남게 된 베를린 시장 클라우스 보베라이트는 3년 전 쾰른에서 게이 올림픽이 개막되기 직전 베를린 시청에서 ‘반칙: 스포츠계의 레즈비언과 게이’라는 타이틀의 전시회를 개최했다. 전시회 주최 측은 37개의 전시대를 통해 스포츠의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 문제를 드러내고자 했다. 보베라이트는 이 행사가 동성애자들은 스포츠계에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교육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시회에서는 독일 축구 협회가 1995년 게이 올림픽에 참가하는 여자 축구 대표팀 선수들을 제명하겠다고 위협했던 머지않은 과거의 사례도 소개됐다. 마르쿠스 우어반이 1990년대 게이 축구 선수로서 겪어야 했던 힘겨운 이중생활을 묘사하여 화제를 일으킨 책도 전시됐다.


전 독일 축구 국가 대표팀 선수 토마스 히츨슈페르거가 은퇴 후 커밍아웃을 감행했다. 다른 많은 유명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그 또한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적 러시아의 올림픽 개최 직전이라는 중요한 순간에 커밍아웃을 했다.


축구는 소치 동계 올림픽과 관계없는 종목이기는 하지만, 대신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인기 있는 종목으로, 축구 스타들 중에는 동성애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는 시간이 증명해 줄 것이며, 중요한 사실은 소치 올림픽 직전에 변화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 톰 바이츠


- 옮긴이 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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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08



FOOTBALL STAR COMES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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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 로저스 다음으로 우리가 애착을 느낄 새로운 게이 축구 스타





아스톤 빌라 FC와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에서 미드필더로 활약했던 토마스 히츨슈페르거가 동성애자임을 밝히며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부끄러워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31세의 독일인 히츨슈페르거는 오늘 <디 차이트>지와의 인터뷰에서 커밍아웃을 하고, 지금 커밍아웃을 하는 이유는 “앞으로 운동 선수들 사이에서 동성애에 관한 논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히츨슈페르거는 라커룸에서 여전히 만연한 일상적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에 대해 이야기하며, 부정적인 말들로 인해 괴로워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어떤 노력을 했는지도 말했다.


그는 <디 차이트>지에 “테이블에 둘러 앉아 함께 술을 마시는 20명의 남자들을 상상해 보십시오. 농담이 조금이라도 웃기거나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가 너무 모욕적이지 않은 이상 당신은 다수인 사람들을 내버려 둘 수 밖에 없다. 잉글랜드, 독일, 이탈리아에서 동성애는 하나의 사안으로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적어도 라커룸에서는 말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스포츠 스타들은 히츨슈페르거의 커밍아웃을 환영했다. 전 축구 선수이자 지금은 TV 스포츠 해설가인 게리 리네커는 이런 트윗을 남겼다.


@GaryLineker

프리미어리그 선수 출신으로서는 최초로 ‘커밍아웃’한 용감한 토마스 히츨슈페르거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한다.

2014년 1월 8일 오후 9:10(한국 시간)


축구 팬들도 히츨슈페르거를 지지하는 트윗들을 남겼다.


@CalumSPlath

게이로 커밍아웃하여 엄청난 관심을 받게 된 축구 스타 토마스 히츨슈페르거, 축하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용기입니다. #LGBT

2014년 1월 8일 오후 8:46(한국 시간)

 

@TomChivers

토마스 히츨슈페르거에게 박수를! 하지만 여전히 축구 선수들이 은퇴하기 전에 커밍아웃하지 못하는 것은 정말 유감이다.

2014년 1월 8일 오후 8:36(한국 시간)


이 소식이 보도되자마자 히츨슈페르거도 곧바로 트윗을 남겼다. 


@ThomasHitzl

여러분, 안녕하세요! 제 뉴스를 접하고 남겨 주신 모든 메시지들에 저는 압도되어 버렸습니다. 정말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2014년 1월 8일 오후 9:42(한국 시간)


@ThomasHitzl

지금이야말로 이 사실을 알리기에 알맞은 때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진실을 털어놓게 되는 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토마스 히츨슈페르거


히츨슈페르거는 13년간의 경력 기간 동안 52차례 독일을 대표하여 뛰었다. 2006년에는 독일 국가 대표팀으로 월드컵에 출전하기도 했다.


지난해 히츨슈페르거는 부상이 겹치면서 은퇴했다.


- 옮긴이 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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