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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30




드디어 독일에서도 동성커플을 위한 종이 울리게 되었다.




이제 동성커플들도 남들과 똑같이 결혼을 있게 되었다. 

그리고 가족들도 이젠 자신을 2 시민이라 여기지 않아도 된다.


* 안드레아 볼커는 가족법 전문 변호사입니다.




‘축제의 분위기’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게이트 앞에서 동성결혼 법제화를 축하하는 사람들. 사진: Tobias Schwarz/AFP/Getty Images


금요일 분데스탁(독일하원)에서 동성커플에게 동등한 결혼의 권리를 부여하는 법안이 가결되었다. 법안은 분데스라트(광역자치단체의회) , 상원에서 발의된 법안이다. 이로써 현재 (북아일랜드는 빼고) 스위스, 이태리와 독일의 국경에 머물고 있는 결혼평등의 무지개 커튼이 연말에는 동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런데 독일이 결혼평등을 이룩하는 데에는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걸까? 


독일은 2001년부터 동성커플도 동반자로 등록할 있도록 허용해 왔지만, 처음에는 권리가 결혼커플보다 훨씬 적었다. 예컨대 동성커플은 공동세금보고서를 제출할 없었기 때문에, 재정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소송과 법개혁으로 이러한 권리가 정비되었지만, 공동입양의 경우는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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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동성결혼 입장 바꿔



이는 독일 LGBT 가족들의 삶을 현실적으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독일에서는 베를린이나 다른 대도시 뿐만 아니라 소도시나 시골에서도 LGBT 가족들이 수양자녀를 데리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얼마전 자신의 선거구에서 레즈비언 커플의 초청을 받으면서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이들이 복지기관의 신뢰를 받으며 오랫동안 수양자녀를 데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는 것이다.


권리에 차이가 없다 해도다르지만 동등한제도를 운영한다는 것은 인종에 따라 학교나 버스좌석도 달라야 한다는 것처럼 자체만으로 차별이다. 결혼이 남성과 여성(순서도 같다) 간의 결합이라고 주장하는 독일의 기독교계 보수파 정치인들은 결혼이 계속해서 변화해 왔다는 사실은 무시한다. 결혼은 예로부터 여성 소유권의 형태였으며, 불과 82 전만 해도 독일에선 유태인과 비유태인 시민간의 결혼은 범죄행위였다. 여론을 봐도 이러한 보수주의가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있는데, 국민의 80%(기독교계 진보파 유권자들의 경우 62%) 평등권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면 독일이 결혼평등을 이루기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걸까? 상원의 법안이 분데스탁에 발의된지 2년이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진보당과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메르켈의 정권이 심층토론이 필요하다며 계속해서 휴회를 반복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LGBT 가족들은 일상적인 차별을 겪어야 했고, 아이들도 법률상보통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가족에서 자라야 했다. 반복되는 휴회 조치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그마저도 소용없었다. 메르켈 총리는 최근 선거구 주민과 만나면서 깨달은 바가 컸다면서도 정작 결혼평등 투표 때는 찬성은 커녕 기권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월요일 기민련 의원들에게 양심투표를 허용함으로써, 법안을 다루는 시기가 이상 연립정당간에 상의해야 사안이 아님을 시사했다. 그렇게 해서 진보당이 법안을 추진해 가결로 이끌게 것이다.


메르켈은 양심투표를 허용하면, 하기 휴회가 시작되는 이번주 또는 늦어도 가을 총선 전에는 사안이 다뤄질 거라는 알고 있었다. 때문에 당내에서 긴장감이 형성되기도 했지만, 현재 여론조사에 따르면 총선 후에도 메르켈의 주도하에 대연정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결혼 문제를 해결한 이상 연정 협약이 수월해짐과 동시에 여당내 각후보들이 평등에 대한 충성을 주장할 있게 되었다. 메르켈이배앓이 고백할 때까지 LGBT 가족들은 다년간 평등을 고대해 반면, 메르켈은 다시 자신이 교활한 정치꾼임을 증명해 보였다. 


물론, 축제의 분위기도 있다. 필자도 벌써부터 청첩장이 쏟아질 것에 대비해 입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번주 주변에도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수년 아니, 수십년을 함게 해 온 끝에 드디어 남들과 똑같이 결혼을 있게 되었고, 아이들도 이젠 자기 가족을 2등급이라고 여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 Andrea Woelke

- 옮긴이: 이승훈



At long last, Germany’s bells are ringing for same-sex marriage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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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30




독일 하원, 동성결혼 합법화 찬성




독일 하원, 동성커플에게도 입양권 포함한 모든 권리 인정하기로




동성결혼 합법화 투표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의회 청사 앞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사진: Hannibal Hanschke/Reuters



독일 의회가 다수 서방 민주국가들에 이어 동성결혼 합법화에 찬성함으로써 동성커플에게도 입양권을 포함한 모든 권리를 인정하기로 했다. 


노르베르트 라메르트 하원의장은 찬성표가 393, 반대표가 226, 기권이 4표였다고 밝혔다. 


한편,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결혼은 남녀간의 단혼이라는 믿음 때문에 반대표를 던졌다고 밝혔다. 총리는 이러한 결정이 자신의 개인적인 의견이라며, 이번 투표 결과가 사회에 더 큰 안정을 가져다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올해는 총선이 예정되어 있는 가운데 지난 월요일 메르켈 총리가 수많은 보수파 정치인들의 분개를 사며 입장을 철회하자 메르켈의 좌파 경쟁당인 사민당은 재빨리 법안을 추진했다. 


하원은 금요일 하기휴회가 시작되기 불과 시간 전에 법안을 승인했다독일에서는 2001 시민결합이 합법화되었으며, 이번 투표에 앞서 독일의 동성애자 단체들은 결혼평등 추진에 환호했다. 


파트너 티모 슈트로벨(51) 함께 베를린에 거주하고 있는 프랑스인 기술자 크리스토프 테튀는진정한 인정을 받은 것 같다"며 "가슴이 따스해진다 소감을 밝혔다. 


파티를 열고 결혼식을 올릴 겁니다. 새로 쟁취한 권리로 우리의 사랑을 지킬 겁니다.”


슈트로벨도너무 기쁘다, 이젠 가족과 주변 지인들에게우리가 서로에게 헌신적이라는 , 앞으로도 함께 삶을 공유할 거라는 보여줄 있게 되었다고 했다.


법은 올해말에는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동성결혼 합법화 투표가 진행중인 독일 하원. 사진: Fabrizio Bensch/Reuters



수십년 전부터 LGBT 인권을 추진해온 레나테 퀴나스트 녹색당 원내총무는전국 등기소는 직원을 늘려야 이라며 위트 있는 반응을 보였다. 


동성결혼 합법화는 메르켈 총리가 여성잡지 <Brigitte> 행사에서 응한 무대 인터뷰 계기로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이날 행사에서 청중은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고 싶은데 언제쯤 남자친구를 남편으로 부를 있게 될 총리에게 물었다.


오래전부터 동성결혼과 입양권에 반대해 메르켈 총리는아이들의 복지 언급하며, 최근 수양자녀 여덟 명을 돌보고 있는 레즈비언 커플을 만나면서 생각을 고치게 되었다고 밝혔다. 


9 24 총선이 예정되어 있는 가운데, 메르켈의 뜻밖의 발언은 야당의 강력한 선거공약을 막기 위한 움직임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 


메르켈은 생방송으로 진행된 질의응답코너에서 자신의 선거구 메클렌부르그-포르포메른에서 군둘라 칠름과 파트너를 만나면서 수년간 갈등해 왔던 자녀양육 문제에 대해 생각을 고치게 되었다고 밝혔다.


메르켈은 이란 방송에서 선거구를 방문했을 일생일대의 경험을 하게 되었다, 레즈비언 유권자와 만난 자리에서 동성결혼에 대해 자신이 가장 갈등하는 부분은 바로 자녀의 복지라고 털어놓았었다고 밝혔다.


이에 파트너와 함께 다년간 문제가정의 아동을 돌보고 있는 칠름은저희 집에 와보세요. 동성파트너와 함께 수양자녀 여덟 명을 데리고 있거든요. 다들 오래전부터 데리고 있던 아이들인데, 문제 없이 크고 있어요.”라고 답했다. 


메르켈은 아직 칠름의 초대에 응하지는 않았지만 언젠가는 방문해 보고 싶다고 했다.


메르켈의 정당과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사민당(SPD) 외에 녹색당 극좌파인 좌파당, 친기업 성향의 자민당은 모두 연정의 조건으로 동성결혼 합법화를 내세웠었다.


지난 화요일 SNS에서 기대감이 고조되자 마르틴 슐츠 사민당 총리후보가 메르켈 총리의 발언을 그대로 받아들여 연정협약을 깨고 즉각적인 투표 실시를 요구하자, 기민련은 사민당의 입장이 오랜 “신뢰를 위반하는 행위라며 규탄했다. 


메르켈 총리도 이는 정치적 매복행위라며 이렇게 중대한 사안의 투표를 서두르는 것은슬픈 일이자 전혀 불필요한 조치라고 했다. 하지만 총리가 입장을 바꿈으로써 우익대중주의 정당인독일을 위한 대안외의 모든 정당이 동성결혼을 지지하게 되었다. 


보수성향의 일간지 <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앙겔라 메르켈이 이번에도 총선후 연정 논의에 대한 장애물을 피해갔다는 평을 받게 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FAZ>는 “이로써 기민련도 이젠 보수당이라고 자칭할 권리를 잃게 되었으며, 시대에 영합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보수적인 가치관도 내던질 의향이 있는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


독일 레즈비언 게이 연맹의 마르쿠스 울리히는 메르켈 총리가 오래전부터동성결혼에 감정적으로 반대해 왔으며, 진정한 토론이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했다.


시간을 들여 동성커플과 가족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시간을 들인 잘한 일입니다. 총선을 앞두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런 중요하지 않습니다.”




- Kate Connolly

- 옮긴이: 이승훈




German parliament votes to legalise same-sex marri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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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3




독일 하원, 메르켈 총리의 입장변화로 동성결혼 투표 실시 




메르켈 총리가 동성결혼에 대한 입장을 바꾸자, 동성커플에게 혼인상의 권리를 온전히 인정하는 법안이 곧바로 상정되었다.




베를린 수상관저 앞을 휘날리는 거대한 무지개 배너. 동성결혼 법안은 가결이 확실시되고 있다. 사진: John Macdougall/AFP/Getty Images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가 동성결혼에 대한 입장을 완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던 레즈비언 커플이 동성결혼 합법화 법안이 가결된다면 총리를 결혼식에 초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지난 수요일 소수당 연정파트너인 사민당이 서둘러 투표를 상정하면서, 하원에서는 하기 휴회가 시작되기 하루 전인 오는 금요일 양심투표가 실시될 예정이라고 한다. 사민당은 지난주 동성결혼에 대한 합의가 향후 연정을 위한 주요 조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밝혔었다.

대부분의 정당도 찬성하고 있고, 메르켈도 중도우파인 여당 기민련의 의원들에게 양심투표를 허용한 가운데, 법안은 가결될 것으로 널리 예상되고 있다. 


레나테 퀴나스트 녹색당 하원 원내대표도 지난 수요일평등을 향한 길이 열렸다 트윗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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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 동성결혼 입장 바꿔



하원에 상정된 법안은 동성커플에게도 온전한 결혼의 권리를 부여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공동입양의 가능성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현재 독일의 동성커플은 시민결합만 허용되고 있다. 


이번 투표는 메르켈이 지난 월요일 베를린의 토론회에서 동성결혼에 대한 입장을 완화하면서 가능해졌다. 잡지사 <Brigitte> 주최한 질의응답 생방송에서 메르켈은 자신의 선거구 메클렌부르그-포르포메른을 들렀을 때 군둘라 칠름과 파트너와 만나면서 수년간 갈등해 오던 동성결혼에 대한 입장을 바꾸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날 방송에서 메르켈은 선거구를 방문했을 일생일대의 경험을 하게 되었다 털어놓았다. 당시 메르켈은 레즈비언 유권자에게 동성결혼에 대해 자신이 가장 갈등하는 부분은 바로 자녀의 복지라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이에 파트너와 함께 다년간 문제가정의 아동을 돌보고 있는 칠름은저희 집에 와보세요. 동성파트너와 함께 수양자녀 여덟 명을 데리고 있거든요. 다들 오래전부터 데리고 있던 아이들인데, 문제 없이 크고 있어요.”라고 답했다. 메르켈은 아직 칠름의 초대에 응하지는 않았지만 언젠가는 방문해 보고 싶다고 했다.


메르켈은 이날 방송에서아이가 폭력적인 부모 밑에 있는 것보다 동성커플 밑에서 자라는 편이 훨씬 낫다고 국가가 판단한다면, 또한 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결정을 내려야 이라고 했다.


메르켈의 발언을 접한 칠름과 파트너 크리스틴은우리 덕분에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니 무척 기쁘다 소감을 밝혔다. <Ostsee-Zeitung>지의 인터뷰에 응한 크리스틴 칠름은 바르트시의 시장에서 메르켈과 만났을 때 “지금 시대에서까지 중세시대적인 사고방식으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했다며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동성애가 전염되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은 자라면 다들 길을 텐데, 동성커플이 아이를 기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 법개혁을 호소했다는 칠름은총리가 우리의 부탁을 기억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했다. 


메르켈은 사안이매우 개인적인 이기 때문에 양심에 따른 결정을 지지한다며 자유투표를 선호한다고 밝혔다.


한편 기민련과 자매당인 바이에른 기독교사회연합의 일부 보수주의자들과 투표를 저지할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메르켈의 발언으로 SNS상에서도 논쟁이 가열되고 있으며, 트위터에서는 #Ehefüralle(만인을 위한 결혼)이라는 해시태그가 유행하고 있다. 


독일은 사민당-녹색당 연정이 집권한 2001 당시 유럽에서는 거의 최초로 동성파트너를 합법화했었다. 그러나 2005년부터 집권한 메르켈의 기사련은 동성커플에게도 입양권을 포함한 혼인상의 권리를 전면 인정하면서도 동성결혼에 대해서는 보수파 연맹의 강한 반대로 인해 매번 반대해 왔었다.


그러는 동안 유럽에서는 벨기에,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 북아일랜드를 제외한 영국 등이 동성결혼을 합법화시켰다.


메르켈은 9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동성결혼 사안이 정치화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밝혔지만, 만약 법안이 가결될 경우 메르켈이 이끄는 보수파는 야당 사민당, 녹색당 친기업 성향의 진보주의자들의 강력한 찬성에 맞서 다년간 동성결혼에 반대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공을 차지하게 것이다. 현재 독일인의 2/3 동성결혼의 법제화를 찬성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이미 시민결합을 맺고 있는 칠름과 파트너는 결혼이 합법화되면 결혼식을 올릴 것이라며,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게도 청첩장을 보낼 이라고 밝혔다.




- Kate Connolly 

- 옮긴이: 이승훈




Germany to vote on same-sex marriage after Merkel drops oppos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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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7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 동성결혼 입장 바꿔 




법개정 반대해 왔던 여당 기민련, 

메르켈 총리, '양심투표 통한 가결 바란다'




독일 잡지사가 개최한 행사에서 연설하는 앙겔라 메르켈. 사진: Alexander Koerner/Getty Images for Brigitte



앙겔라 메르켈이 의원들의 자유투표를 허용해야 한다고 발언함으로써 기민련의 동성결혼 반대입장에 변화를 시사했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여성잡지 <Brigitte> 주최한 행사에서 동성결혼을 둘러싼 논쟁이 정당 방침의 일환으로만 이루어지는 분노를 느낀다며, 관련 논쟁이양심투표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밝혔다.


현재 하원에서 양심투표가 허용되면 동성결혼이 합법화될 거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독일은 서구권에서 동성결혼이 여전히 법으로 인정되지 않는 일부 국가 하나, 2001 시민결합이 허용되었지만, 메르켈 총리의 기민련은 동성결혼 허용 요구에 저항해 왔다.


중도우파인 기민련은 2013년부터 중도좌파 사민당과 연정을 구성해 오고 있으며, 시민결합 제도를 강화해 동성커플도 결혼부부와 똑같은 세금혜택과 입양권을 누릴 있도록 하는 방안을 선호해 왔다.


연방총선을 석달 남겨둔 가운데 메르켈의 이번 발언으로 기민련은 반대파의 예상을 꺾고 총선후 연정구성의 폭넓은 가능성에 문을 열게 되었다. 


사민당, 독일 녹색당 최근 다시 기세를 얻고 있는 자민당도 연정 논의에서 동성결혼 사안을 쟁점으로 삼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기민련 내에서도 동성결혼을 둘러싼 진보파와 보수파의 갈등은 이어지고 있으며, 메르켈의 주요 라이벌인 마르틴 슐츠 사민당 당수는 이러한 분열을 기회로 이용하려 하고 있다. 화요일 오전 메르켈 총리의 발언이 알려지자 슐츠 당수는 이번주 내에 양심투표를 실시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미하엘 그로세-브뢰머 기민련 원내 수석총무는 화요일 오전 총선 이전에 양심투표가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결정을 서두르는 위험합니다. 또한 서두르는 건 사안을 다루는 적절하지도 않습니다.”


메르켈의 이번 개입은 2013 연방총선 전에 비슷한 자리에서 자신이 했던 발언을 반영하는 것이다. 당시 메르켈은 자신의 생각이 구시대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동성커플에게 입양권을 허용하는 곤란하다 했었다. “아이에게 무엇이 최선인지 모르겠습니다. 누구도 차별할 의사 없이 불확실성을 여러분께 피력하고 싶습니다.“


메르켈은 이번주 자신의 선거구인 메클렌부르그-포르포메른에서 수양자녀 여덟 명을 돌보고 있는 레즈비언 커플을 방문한 자신의 입장을 재고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청소년 복지 단체가 동성커플이 아이들을 돌보는 문제가 없다면, 국가가 아이의 복지를 이유로 LGBT 입양에 반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Brigitte> 편집장과의 인터뷰에서 사생활 정치 이슈 등에 대해 언급한 메르켈은하루에 번은 웃도록 하고 있는데, 그러면 일을 해내기가 어렵다휴일만큼은 누구의 방해도 허용하지 않는다 덧붙였다. 




- Philip Oltermann 

- 옮긴이: 이승훈




Angela Merkel signals U-turn on gay marriage in Germ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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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2




독일, 나치시절 유죄판결 받은 게이남성 5만명 전과 말소한다 




의회, 전과말소 생존자 500 명에게 배상급 지급키로 




해당법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았던 게이 남성들에게는 3000 유로(380만원)가 일시불로 지급되고, 징역을 산 경우에는 1년당 1500유로(190만원)를 추가로 지급하게 된다. 사진: Raul Arboleda/AFP/Getty Images


독일 의회가 나치 시절 동성애로 유죄선고를 받은 게이남성 5만명의 판결을 기각하기로 했다. 법은 2 세계대전 이후에도 시행되었다.


수십년에 걸쳐 로비활동을 벌여온 피해자와 인권가들은 형법 175조에 의해 전과기록을 안고 살아온 게이 남성들의 기록을 말소하기 위한 투쟁에서 드디어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현재 법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은 이들 5 여명이 생존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번 결의안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연립당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하원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가결되었다.


이번 결의안이 가결됨으로써 해당법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았던 게이 남성들에게는 3000 유로(380만원) 일시불로 지급되고, 징역을 경우에는 1년당 1500유로(190만원) 추가로 지급하게 된다. 


독일 형법 175조는 남성간에 이루어진 행위든, 인간과 동물 간에 이루어진 행위든, 자연에 어긋나는 성행위 금지한 반면, 여성간의 성행위는 금지사항에 명시되지는 않았다.


법은 1871년에 제정되었지만, 나치가 정권을 장악하기 전에는 거의 시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 나치는 1935 강제징역 10년형으로 처벌을 강화했었다. 


3제국 당시 42000 이상의 남성이 법에 의해 감옥이나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독일 정부는 2002 당시 판결을 기각하는 법을 도입했지만, 2 세계대전 이후에 처벌된 이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조항은 1968 동독에서 먼저 폐지되었고, 서독에서는 1969 나치 이전의 조항으로 복구되었다가 1994년에야 완전히 폐지되었다.


독일 차별철폐국의 제바스티안 비커리히는 성명문을 통해 “175조가 폐지된지 20여년이 지나서야 민주독일의 법률사에 남은 오점이 씻겨졌다 밝혔다. 


프리츠 슈멜링(74) 십대였던 1957 법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았었다고 AFP 통해 밝혔다. “그땐 하나를 감옥에 들여놓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십대였던 1957년 동성애 금지법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았던 흐리츠 슈멜링. 사진: Tobias Schwarz/AFP/Getty Images



슈멜링은 2011 타계한 오랜 연인 베른트과 함께 날을 맞고 싶었다고 한다. 


베른트는 죽기 전에 전과를 지우긴 어려울 같다고 적이 있습니다. 살아 있었다면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만큼이나 기뻐했을 거예요.”


한편, 자신을하인츠 슈미츠라고 밝힌 74세의 남성도 이번 결의안의 수혜자이다. 그는 19살의 나이로 유죄판결을 받고 가족들 앞에서 수치심 견뎌야 했던 탓에 실명을 밝히지 못했다. 그는 175 때문에 삶의 황금기를 노쳐버렸다고 한다. 


슈미츠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 젊은 신만큼 아름다웠습니다. 남자들이 끊이질 않았죠. 하지만 감옥에 끌려갈 두려워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한편, 이번 결의안 가결은 총선을 3개월 앞두고 메르켈의 보수당보다 동성애자 인권에 진보적인 입장에서 캠페인을 준비중인 사민당에게도 승리라 있다.


독일은 2001 시민결합 등록법을 가결시켰지만, EU 수많은 가입국처럼 자녀입양을 포함한 결혼평등 인정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 AFP

- 옮긴이: 이승훈




Germany to quash convictions of 50,000 gay men under Nazi-era l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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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3




'항문성교를 가르치자는 게 아닙니다': 사랑과 평등, LGBT 사안을 탐구하는 독일 학교들




독일에서 성교육 수업은 필수다. 하지만 꼭 성교육 시간에만 다양성을 언급할 필요는 없다. 독일 학교에서는 수업 전반에서 LGBT 주제가 다뤄진다.




교과과정에 성의 다양성이 추가되었을 때 수만여 명의 학부모들이 반발했다. 학교는 어떻게 학부모들의 지지를 얻었을까? 사진: Raul Arboleda/AFP/Getty Images


독일은 비스바덴은 샴페인과 온천으로 유명한 아름다운 고장이다. 지난달 이곳에서 2천여 명의 학부모 교과편성에 맞선 시위가 있었다. 학부모들이 분개한 이유가 뭐냐고? 항문성교와 딜도, 다크룸 수업이 쏟아지게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부모들의 우려와는 달리 교과과정에 항문성교는 없다. 단지 다양한 삶의 방식과 정체성의 수용을 장려하도록 각 학교에 지시가 내려질 뿐이다. 헤센주 교육부는 올해가을부터 성교육뿐만 아니라 영어나 수학 시간에도 성과 젠더의 다양성을 언급해야 한다고 밝혔다. 성교육 시간에 이러한 주제를 다루는 이미 독일에서 의무화되어 있다.


독일 LGBT 인권단체 레즈비언 게이 협회(LSVD) 마르쿠스 울리히는 이번 정책이아이들에게 다양한 사랑과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이라고 한다. 관련 주제는 평소 수업시간에 다뤄진다.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수학문제를 낼 때 동성커플 가정도 언급하고, 영어 수업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공부하면서, 반대에 부딛히기 쉬운 사랑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학생들에게 묻는 거죠.”


독일은 16 주마다 다른 교과과정을 채택하고 있는데, 헤센주는 베를린과 브란덴부르크에 이어 번째로 교과과정에 LGBT 수용했다. 하지만 정책이 도입될 때마다시위가 잇따르는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라고 울리히는 말한다.



"학교 임원들이 학부모의 불만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제대로  정보를 제공해야 학부모들의 지지를 받을  있을 것"

- 레진 블라시차우 (프로 파밀리아)



그럼 교사들은 실제로 어떤 식으로 수업을 가르치게 될까? 베를린 인근 포츠담에서 생물 교사로 재직중인 커밍아웃 동성애자 귀 마이우스는 성교육 시간과 생물 수업에서 성과 젠더의 다양성을 가르치고 있다. 


성과 젠더의 차이, 그리고 다양한 삶의 방식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성차별의 대부분이 고정관념에서 비롯된다는 배워가는 거죠.”


마이우스는 성교육 시간에 앞서 익명질문을 낸다고 한다. “정말 간단한 질문을 통해 아이들이 모르는 지식이 많다는 보여주는 겁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동성애자인지 어떻게 있는지, 커밍아웃은 어떻게 하는지를 묻죠.” 


마이우스는 아이들이 성별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 있도록, 여자의 장점과 남자의 장점에 대해 묻곤 한다. ( 수업에서는 여자의 장점이 울고 싶을 언제든지 있다는 것이고 남자의 장점은 머리가 짧아서 금방 감을 있다는 답이 나왔다.) 다음으로는 젠더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토론을 나눈다고 한다. “남자는 운동을 좋아하고 힘이 세지만, 여자는 그렇지 않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주입 당하기 때문에 아이들 마음에는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이 많이 자리잡고 있어요.”


귀도 마이우스는 수업시간에 ‘대박! 우리 선생님 게이래’라고 적힌 풍선을 활용한다. 사진: 기도 마유스

마이우스는 생물 시간에도 성의 다양성에 대해 언급한다. 그리고 베를린 LGBT 행에서는 ‘대박! 우리 선생님 게이래라고 적힌 풍선을 사와서 수업시간에 쓴다고 한다. 폐활량에 대해 가르칠 아이들에게 풍선을 불게 하는데, 아이들은 풍선을 불다가 그 위에 적힌 글을 보고 웃음을 터뜨린다고 한다.


아이들은 성과 다양성에 대해 배우는 좋아한다고 한다. “전에는 번도 이야기해 적이 없는 주제니까요. 재밌게 하려다 보니 정말 많이 웃게 돼요.”


하지만 모든 교사가 주제를 능숙하게 다루는 아니다. 따라서 학교 임원들과 독일교육노조(GEW)에서는 교사를 상대로 트레이닝을 요구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교사로 재직중인 마라이케 클라우엔플뤼겔은 현재 교육노조 LGBT 교사들의 대변인을 맡고 있는데, 교사들 중에는 성과 다양성을 다룰 자신감이 없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또한 난민사태로 인한 중압감 때문에 성과 다양성까지 다룰 짬이 없다고 토로하는 교사도 있다. 클라우엔플뤼겔은 그럴수록동료와 상의하고, 교재를 공유하는 서로 협력해야 하지만, “이런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지는 관리직에서 확인할 필요가 있는데, 그렇게 하는 곳도 있는 반면, 챙기지 않는 학교도 있다 덧붙였다.


클라우엔플뤼겔은 성과 젠더가 교사연수 과정에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한다. “교육부 지침이 필요합니다. 교사연수를 전국적으로 시행되어야 하구요.” 그래야만 교사들도 자신감을 가지고 관련 주제를 다룰 있다는 것이다.


한편, '프로 파밀리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레진 블라시차우는 이런 정책이 학교 임원들이 학부모의 불만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제대로 정보를 제공해야 학부모들의 지지를 받을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프로 파밀리아는 독일에서 섹슈얼리티, 파트너 가족계획 관련 사업을 이끌 있는 단체. “학부모를 성교육에 참여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해야 자기가 가지고 있던 우려를 표현할 있으니까요.” 울리히도 다양성 수용을 교칙에 포함시키고 홈페이지에서도 언급하는 , 다양성 수용이 학교 정책의 일부분임을 학교 임원들이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지적한다.


청년 자원봉사자들도 주제를 다루는 도움을 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 의대에 재학중인 루카스 친체브스키(22) 안전한 사랑이라는 성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안전한 사랑에서는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학교에 가서 성교육의 모든 측면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다양성의 수용도 반드시 언급한다고 한다. “성교육 하는 놀이가 하나 있는데, 커밍아웃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유명인을 보여주고 사람들의 성적지향을 알아맞춰 보라고 하거든요. 그러면 대부분 사람은 완전 게이틱하다 식의 발언을 많이 해요. 그렇게 해서 고정관념이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로 이어가 거죠.”



"하지만 극우적인 입장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주정부가 다양성 교육을 실시하려  때마다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뤼벡 대학교에 재학중인 프레데리케 부케(21) 프로 파밀리아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저한테 남자친구가 있는지 묻는 애들이 있어요. 그러면여자친구는 없어 보이니?’라고 되물으면서 생각할 거리를 주는 거예요.” 


이들 대학생 자원봉사자는 교사를 위해 워크숍을 열기도 하는데, 교사가 직접 수업에 들어와 성관련 주제를 어떻게 다루는지 지켜볼 기회를 준다고 한다. 친체브스키 부케는 이런 훈련이 도움이 된다며 감사하는 교사들이 많다고 한다. 


학교 임원들도 교사가 다양성이라는 주제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이런 교육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교육노조의 자 클리만은교사가 수업할 항상 주제를 염두에 둬야 한다 강조한다. “엄마, 아빠, 아이로 구성된 이성애규범적 가정만 예로 들어선 돼요. 영향이 미묘해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정말 큰 거거든요.”


특히 요즘의 정치적 류를 감안할 아이들에게 수용을 가르치는 것은 어느때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슈테파니 피히터(28) 수용성 교육을 통해 “LGBT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적인 학교환경을 만들 있다 한다. 피히터가 몸담고 있는 ABqueer 청년 LGBT 자원봉사자들이 학교에서 차별반대 커밍아웃경험에 대해 토론할 있도록 자리를 주선하는 비정부 단체이다.


하지만 극우적인 입장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주정부가 다양성 교육을 실시하려 때마다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다양성 교육을 둘러싼 분노는 2년전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서 20 명이 탄원서에 서명하면서 붉어졌. 이들은 학교가 동성애적 생활방식을 조장함으로써 아이들을 성애화시킨다며 우려했고, 이러한 시위는 바라이아와 헤센에서도 이어졌다.


올해 지방선거에서 승승장구 극우파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학교내 동성애, 트랜스젠더, 양성애 교육의 대부분을 철폐시키고전통적인 가족의 가치관삶의 주목적으로써 남녀간의 결합에 초점을 맞추자는 법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클라우엔플뤼겔은 절대로 그렇게 되어서는 된다고 주장한다. “LGBT 수용을 밖의 다양한 삶의 방식에 대한 수용으로 이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은 학교에서 다양성을 가르치는 것이 시급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인권 문제이자, 다양한 삶의 방식, 종교, 성적지향, 성별 배경을 받아들이기 위한 거예요. 다양성 증진은 지금 우리 사회에 절실한 사안입니다.”




- Abby Young-Powell

- 옮긴이: 이승훈





'It's not all anal sex': the German schools exploring love, equality and LGBT iss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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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6



ANGELA MERKEL DOESN’T BELIEVE IN SAME-SEX MARRIAGE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Outmost.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결혼은 남녀가 함께 사는 것

 


기독교 민주당 당수인 메르켈 총리가 동성커플의 동등한 혜택을 지지하면서도 동성애자들이 온전한 민간결혼을 누려서는 안 된다고 발언했다.


독일 유투브 스타 LeFloid와의 인터뷰에서 메르켈 총리는 결혼평등에 반대입장을 밝혔다. 


저는 모든 차별을 철폐하는 데 매우 지지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독일은 큰 발전을 이루었어요. 제가 25 살 때만 해도 커밍아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죠.


하지만 결혼은 남녀가 함께 사는 것이라는 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하지만 시민결합에는 찬성해요.


독실한 기독교 신자지만 두 번의 결혼 경험이 있는 메르켈 총리는 동성커플도 시민연대를 통해 세금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전 시민결합을 지지합니다. 세금제도에서 모든 차별을 철폐하는 데에도 찬성하구요. 앞으로 다른 차별사항이 발견된다면 계속해서 철폐해 갈 것입니다.”


전 차별에 반대하고 평등을 지지합니다.”




독일어를 할 줄 아는 분들은 아래 동영상을 클릭:



- Jane Casey


- 옮긴이: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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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6

 

마그누스 히르슈펠트: 나치의 학살에 맞서 LGBT 투쟁을 벌였던 성과학의 아인슈타인
 

 
80
년전  월 어느날, 성과학의 위대한 선구자이자 동성애자 인권 옹호가가 찬사도 애도도 없이 숨을 거두었습니다
 
마그누스 히르슈펠트 박사. 그는 매우 적대적인 환경속에서 인간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이해와 LGBTI(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간성인) 권리를 향상시키고자 했던 천재적인 선구자였습니다. 용기와 각오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가 레딩 감옥에서 고생하던 히르슈펠트 박사는 베를린에서 세계 최초로 동성애자 인권단체를 설립했습니다. 와일드가 LGBTI들의 박해를 한탄한 일이 거의 없는 반면, 히르슈펠트 박사는 이에 맞서 싸우고자 했습니다.


그가 1897 베를린에 설립한 과학 인도주의 위원회(Scientific Humanitarian Committee) 동성애자 해방 투쟁을 개척했습니다. 영국의 경우, 반세기나 지난 1960년대에서 이와 같은 운동이 부상하기 시작한 것을 보더라도 그가 진정 시대를 앞서간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히슈펠트는 1868 당시 프러시아였던 지역의 보수적인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유년기 때부터 성에 대한 호기심과 환상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어릴 때부터 시대의 인습과 어른들의 윤리관에 맞서 섹슈얼리티를 전적으로 자연스럽고 건전한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그런 그는 의대에 진학해 '성의 퇴보'라는 강의를 듣다가 트라우마에 빠지게 됩니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무려 30년간 수감된 남성이 마치 짐승처럼 벌거벗은 채로 학생들 앞에 전시된 것입니다. 하지만 히르슈펠트만이 이같은 처우에 반발했을 , 그의 절친들마저 이를 당연하고 정당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에게 트라우마를 안겨 사건은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1893 베를린에서 개업한 그는 어느날 근처에서 군인을 마주치게 됩니다. 동성애자라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하던 군인은 상담을 요청했지만, 히르슈펠트는 그런 그에게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다음날 치료를 받으러 오라고 권합니다. 그런데  군인은 그날밤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맙니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던 그는 급기야 동성애를 연구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동성애 금지법 철폐를 요구하는 책자를 쓰게 됩니다. 당시 독일에서 동성성교는 형법 175항에 의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가족친지들이 동성애를 연구해서 찬사받을 일도 행복해질 일도 없으니 콜레라처럼 좀더 가치 있고 존경받는 분야를 연구하라고 권고하자 그는 "무슨 소리! 그럼 콜레라가 섹슈얼리티보다 행복을 가져다 준단 말입니까?"하고 반박했다고 합니다
 
그가 친동성애자라는 소문이 퍼지자, 섹슈얼리티로 고민하다가 치료를 받기 위해 그를 만나러 오는 남성들도 늘어갔습니다. 히르슈펠트는 그들에게 어떤 처방을 내렸을까요? 바로 "게이 파티를 실컷 즐기고 남자친구도 실컷 사귀세요!"입니다
 
그런 히르슈펠트가 가장 힘들어 했던 것은 다른 동성애자 남녀들의 적개심이었습니다. 이미 이등시민이라는 지위를 받아들인 마당에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히르슈펠트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겁니다. 이들은 그를 골칫거리로 취급하며 성관련 설문조사와 법개혁 캠페인에도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혼자서는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그가 1897 설립한 것이 바로 과학 인도주의 위원회(SHC: Scientific Humanitarian Committee)입니. SHC 목표는 성과 관련된 모든 사안의 연구와 교육을 장려하고, 특히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타파해 동성애 금지법 철폐의 정당함을 입증하는 것이었습니다.  
 
영국 이반 로비 단체 스톤월의 1890년대판이라 있는 SHC 좌우명은 "과학을 통한 정의"였습니다. 일부 과격한 지지자들은 프랑스혁명의 구호를 모방해 "자유! 평등! 박애! 동성애!"라고 외치기도 했습니다
 
다른 동성애자들의 안일함과 경멸에 맞서던 그는 아돌프 브란트가 이끄는 OutRage!식의 과격단체의 공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직접적인 행동과 동성애 혐오자의 공개를 주장하던 브란트는 히슈펠트의 위원회를 "고귀한 중산층 동성애주의자들의 수다방"이라며 비난했습니다
 
저도 브란트의 저돌적이고 확신에 동성애자 행동주의를 존경하지만, SHC 비난했던 것만은 다소 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편견과 무지의 시절, 스톤월과 유사한 단체가 있었다는 것은 실로 혁신적이고 혁명적인 일이었습니다. 이는 히르슈펠트와 위원회 임원들이 반동분자로 몰려 경찰의 감시를 받고 끊임없이 추행에 시달렸다는 것만 봐도 있습니다
  
히르슈펠트의 지칠 모르는 활동 덕분에 1898 독일 의회는 형법 175 폐지여부를 놓고 논의를 벌이게 됩니다. 폐지 움직임을 이끈 것은 좌파 사회민주당의 지도자 아우구스트 베벨 의원이었습니다.(히르슈펠트 자신도 사회민주당의 저명한 당원이었습니다.)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일을 계기로 동성애자 평등 논쟁이 처음으로 주요 정치의제로 부상하게 됩니다

히르슈펠트는 실패에 굴하지 않고 경찰측에 부당한 동성애 금지법을 시행하지 말도록 호소합니다. 그는 베를린 경찰국장을 모시고 게이바와 게이클럽 시찰에 나섭니다. 경찰국장은 자신이 예상했던 음란한 소굴이 아니라 재치있고 멋드러지고 예의바른 성소수자들을 만나게 되어 즐거운 시간을 가졌고, 다소 실망스러운 어투로 "소돔과 고모라를 보게 알았는데"라고 불평했다고 합니다
 
히르슈펠트는 이상적이고 과학적인 입증을 통해 법개혁을 꾀하고자 동성애의 원인과 본질을 의학적으로 연구했습니다. 사실을 이해함으로써 편견을 없애고 수용을 장려하고자 했습니다

누구나 양성을 지니고 있다는 그의 결론은 시대를 훨씬 앞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통칠력있는 분석에도 불구하고 그는 동성애가 태어날 때부터 생물학적으로 결정되는 '중등성(intermediate sex)'라는 그릇된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는 동성애자 남성들을 '남자 몸에 같힌 여성의 영혼'으로 간주했습니다
 
이렇듯 그는 선의의 오판을 내리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옳은 결정을 내렸고 따라서 우리는 그를 용서할 있고 용서해야만 합니다
 
동성애자들의 복지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열렬히 옹호하기도 했는데, 또한 시대를 수십 년이나 앞선 발상이었습니다. 또한 세계최초로 성별 재확정 수술을 때는 어마어마한 금액의 보조금을 받기도 했습니다. 1919 , 자금으로 성과학 연구소(ISS: Institute for Sexual Science) 창립했는데 이는 알프레드 킨지 박사가 미국에서 성연구센터를 설립하기 무려 30 전의 일입니다

 
기관은 연구활동 외에도 성교육, 피임, 결혼 관련 상담,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상담, 성병 예방 치료, 동성애 관련법 개정과 여성인권 분야에도 힘을 썼고, 연간 곳을 찾는 방문자는 2 명에 달했습니다
 

이들이 하던 일은 당시로써는 진기한 발상이었기 때문에 히르슈펠트는 전세계로부터 찬사와 비난을 한 몸에 받게 되었습니다. 미국 언론에서 그를 “성의 아인슈타인”이라 부른다고 하자 그는 재치있게 “아인슈타인을 물리학계의 히르슈펠트라 불렀더라면 더 기뻤을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치가 그의 작업을 문제삼기 시작했습니다. 나치는 히르슈펠트의 “변태행각”을 신랄하게 규탄했고, 회의를 습격하여 그와 조수겸 애인이었던 카를 기저 씨를 구타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1933 년 강연투어차 미국을 방문할 때 나치의 돌격대원이 성과학 연구소를 습격하여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연구문헌들을 파괴해 버렸습니다. 방대한 도서관은 “적들의 서적”이라는 이유로 모조리 태워졌습니다. 나치 관련 다큐멘터리와 주요 역사서적들은 이러한 분서갱유를 다룬 극장뉴스 장면을 빠지지 않고 다루지만, 이들 돌격대원의 주요대상이 바로 히르슈펠트의 성과학 연구소와 독일 동성애자 인권운동 본부였다는 사실은 그리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나치는 연구소가 보관하던 방대한 수의 고객 이름과 주소도 확보했는데, 이 자료는 게슈타포가 그 악명높은 “핑크리스트”를 작성하는 데 이용되었습니다. 핑크리스트란 동성애자를 식별해 내어 체포하고 강제수용소로 이송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나치는 히르슈펠트를 독일내 “유태인 범죄자” 중에서도 지도급이라고 공개선언했습니다. 이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지인은 그에게 독일로 돌아오지 말 것을 권고합니다. 그렇게 프랑스 남부로 향한 그는 1935 년 갑작스런 발작으로 그만 세상을 뜨고 맙니다. 그의 조수이자 애인이었던 카를 기저 씨도 1938 년 나치를 피해 도망다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두 사람 모두 그 방대한 인류애적 공헌과 어울리지 않는 슬프고 외로운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히르슈펠트의 생애와 업적이 제대로 기록되고 그가 사회의 찬사를 받게 된 것은 수십 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그의 어마어마한 노고가 영화 The Einstein of Sex(Rosa von Praunheim, 1999)와 전기집 Magnus Hirschfeld (Charlotte Wolff, 1986)로 기록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입니다. 이들 작품은 히르슈펠트의 정치운동, 성연구 및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던 개인삶의 우여곡절을 담고 있습니다. 다른 수많은 인권 운동가들이 그렇듯, 히르슈펠트 또한 타인의 사랑과 안락을 위해 자신의 행복과 안락을 희생했습니다. 성의 권리와 이반 해방에 있어 진정한 선구자이자 영웅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15
5 26International Business Times 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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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터 태첼

- 옮긴이: 이승훈




Magnus Hirschfeld:
The Einstein of sex who braved Nazi genocide to wage LGBT crusade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Peter Tatchell Foun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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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인디펜던트


독일 드레스덴에서 극우 성향의 반이슬람 단체인 ‘페기다(PEGIDA)’가 주도하는 ‘월요 시위’가 매주 신기록을 달성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어제 1월 5일 저녁 집회에는 사상 최대 규모인 1만 8천여 명이 참가했다고 주요 외신들이 전했다.



‘서양의 이슬람화에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PEGIDA)’의 약자인 ‘페기다’ 단체가 지난 10월 첫 집회를 가졌을 때만 해도 참가자는 수백 명에 불과했다. 그러다 12월 중순 15,000여 명이 모였고, 크리스마스를 앞두고는 17,000여 명이 모였다. 2015년 새해를 맞고 처음 개최된 어제 집회에는 18,000여 명이 모였다.



독일의 진보적 시민들은 “나치 없는 드레스덴”을 외치며 이에 저항하고 있다. 어제 같은 시각 드레스덴에서는 진보적 시민 3천 여명이 모여 독일의 우경화와 인종주의, 혐오 선동에 반대하고 나섰다.


베를린, 쾰른, 슈투트가르트, 뮌스터, 함부르크 등에서도 시민 약 3만 명이 극우 세력의 혐오 선동에 저항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독일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커뮤니티도 베를린과 쾰른에서 극우 세력의 혐오 선동에 맞서 함께 투쟁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쾰른 프라이드(Cologne Pride), 독일 레즈비언 게이 연맹(Lesben- und Schwulenverband in Deutschland·LSVD), Enough is Enough는 독일 성소수자들과 함께 거리로 나와 혐오 선동과 인종주의에 맞섰다. 극우 세력의 혐오 선동이 동성애자들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종교, 출신, 사회적 지위가 다르다는 이유로 혐오와 차별과 폭력을 조장하는 행동에 눈을 감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독일의 주요 성소수자 웹사이트 Queer.De에서 “LGBT 단체들이 페기다 반대 집회에 동참해야 하는가?”라는 설문 조사에 지금까지 76.8%는 “그렇다”고 응답했다.


쾰른에서는 시 정부가 쾰른 대성당과 주변 광장, 대로의 조명을 꺼 극우 세력에 항의를 표명했다. 또 모든 관공서의 조명도 꺼 버렸다. 또 “여기에 나치가 설 자리는 없다”는 플래카드도 내걸었다. 쾰른 시 정부는 페기다가 극단주의 세력으로 폭력을 조장하고 있기 때문에 지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쾰른 대성당의 주임 신부 노르베르트 펠트호프(Norbert Feldhoff)는 “이것은 항의가 아니다. 그러나 보수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 신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깊이 고민할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페기다의 행동이 나치주의적, 인종주의적이고 극단주의적이라고 지적했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도 시 정부가 조명을 꺼 버렸다. 또 진보적 시민 5천여 명이 거리로 나와 페기다 추종자들의 행진을 봉쇄했다.


그러나 페기다 추종자들은 자신들은 나치가 아니며 기독교에 뿌리를 둔 문화와 전통이 “희석되는 것”을 걱정하는 애국자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페기다의 창립자이자 지도자인 루츠 바흐만은 “독일은 이민자들의 나라가 아니다”고 말하며 독일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은 “기독교-유대교에 바탕한 문화” 가치와 “인본주의”를 고수해야 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페기다 추종자들은 지난 12월 22일 드레스덴에서 집회가 끝난 직후 무장한 50여 명이 백화점을 급습, 이주민 청년 30명을 공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최근 독일에서는 인종 및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공격하는 혐오 범죄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독일 잡지 <슈테른(Stern)>이 실시한 설문 조사에 의하면, 독일인 8명 중 1명은 페기다의 극우 집회에 참여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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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2일 독일 드레스덴에서 극우 성향의 반이슬람 단체인 ‘페기다(PEGIDA)’가 주도한 시위에 17,500명이 참여했다.



어제 12월 22일 독일 드레스덴에서 극우 성향의 반이슬람 단체인 ‘페기다(PEGIDA)’가 주도한 시위에 17,500명(경찰 추산)이 참여해 독일의 주요 정치인과 시민들이 극우 확산 저지 움직임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시사포커스가 전했다.


‘서양의 이슬람화에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PEGIDA)’의 약자인 ‘페기다’ 단체가 지난 10월 첫 집회를 가졌을 때만 해도 참가자는 수백 명에 불과했다. 그러다 지난주 15,000여명이 모였고 이번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젬퍼 오페라 하우스 바깥에 17,500명이 모여 크리스마스 송가를 불렀다고 주요 외신이 전했다. 이는 지난 10월 열기 시작한 이래 10번째로 개최된 ‘월요 시위’의 사상 최대 규모다.


페기다에 맞서 4,500명의 시위대가 ‘나치 없는 드레스덴’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도시를 행진했다. 이들은 인종 차별과 외국인 혐오(제노포비아)는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를 범한 나라에서 설 자리가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페기다 추종자들은 자신들은 나치가 아니며 기독교에 뿌리를 둔 문화와 전통이 “희석되는 것”을 걱정하는 애국자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주류 정당들이 자신들을 배반하고 언론은 거짓말만 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이민법과 망명 제도가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페기다의 창립자이자 지도자인 루츠 바흐만은 “독일은 이민자들의 나라가 아니다”고 말하며 독일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은 “기독교-유대교에 바탕한 문화” 가치와 “인본주의”를 고수해야 할 것을 요구했다. 


드레스덴뿐 아니라 소규모의 페기다 유사 단체들도 22일 본, 캇셀, 뷔르츠부르그, 로스토크, 뒤셀도르프에서 집회를 가졌다.





한편 중도 좌파 사회민주당 계열의 게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는 극우의 준동을 우려하는 시민들이 이 외국인 혐오증(제노포비아)에 대해 “품위 있는 사람들의 반란”을 시작해야 할 때라며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대중들의 대응책이다”고 말했다. 


페기다에 반대한 가장 큰 시위는 독일 남부 뮌헨에서 열렸다. 적어도 12,000명이 모여 “자리를 만들어라, 난민(망명자)들을 환영한다”는 플래카드를 들어올렸다.


뮌헨의 디터 라이터 시장은 “우리에게는 다른 피부색, 인종 기원과 언어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있다”며 “우리는 금요일에 모스크(이슬람 사원)에 가는 사람들, 토요일에 시나고그(유대교 사원)에 가는 사람들, 일요일에 교회에 가는 사람들, 또한 그냥 집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모두를 위한 공간이 있다”고 시위대를 향해 말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제국이 전쟁을 벌이고 있는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과 여러 아프리카와 발칸 국가들로부터 온 이주자들의 유입으로 독일에서는 지자체 정부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있다.



2014년 12월 15일 개최된 드레스덴 페기다 극우 집회에 등장한 무지개 깃발. 사진: https://www.flickr.com/photos/hinkelstone/



한편 지난주 월요일인 12월 15일 개최된 드레스덴 페기다 집회에는 무지개 깃발도 등장해 화제가 됐다. <알자지라>에 의하면, 한 남성이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커뮤니티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들고 집회에 참석했다. 무지개 깃발 위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마크가 그려져 있고, 검은색으로 PEGIDA(페기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 남성은 다른 시위자들로부터 환영받았다고 말했다. 페기다는 성명서를 통해 성적 자기 결정권을 존중한다고 주장했다.


무지개 깃발이 등장한 대열은 제3의 위치(또는 제3의 수단) 세력으로 보인다. 제3의 위치(Third Position)는 1920년 바이마르 공화국의 혁명적 보수주의 분파 학자들에 의해 처음으로 용어화, 정립된 이론이며,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모두 반대하는 과격 민족주의 사상을 총칭하는 정치 운동 및 정치 이론이다. 제3의 위치와 관련된 모든 이론은 보수적인 사회 관념을 가지고 있으면서 한편으론, 과격한 민족주의에 의존한 정치적 변화를 요구한다. 현재 독일에서는 독일 민족민주당이 제3의 위치를 주장한다. 


참고로, 평화 깃발은 빨주노초파남보의 7색깔을 다 쓰고 있으며 빨간색이 맨 아래에 있고 보라색이 맨 위에 있다. 반면 LGBT의 깃발은 빨주노초파보의 6색이 쓰이며 빨간색이 맨 위에 있고 보라색이 맨 아래에 있어 분명히 구분된다.


- 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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