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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9


코빈 노동당 대표, ‘트랜스젠더의 성별 본인확인제 허용해야’


코빈 노동당 대표, ‘의료검진 필수 조항 삭제할 경우 노동당도 지지할 것’



제레미 코빈은 노동당이 지지할 경우 법안 가결은 문제 없을 것이라고 했다. 사진: Finbarr Webster/Rex/Shutterstock



제레미 코빈이 테레사 메이 총리에게 트랜스젠더들이 의료검진 없이도 본인이 직접 성별을 확인 있도록 달라는 요구와 함께, 정부가 법개정에 나설 경우 노동당도 적극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화요일 핑크뉴스가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부분적인 동성애 합법화 50주년을 맞아 기획한 연회에서 제레미 코빈 노당당 당수는 앞으로도 LGBT 인권투쟁이 이어져야 하지만, 특히 트랜스젠더들의 인권향상에 주력해야 것이라고 강조했다. 


메이 총리가 보수파 정당인 민주연합당 거래를 함으로써 야당의 지지 없이 성별인정법 개혁을 추진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코빈 당수는 메이 총리가 트랜스젠더들이 자신의 성별을 직접 확인 있도록 의료검진 조항을 없앨 경우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며, 토리당과 민주연합당이 양시투표를 허용하고 노동당의 지지할 경우 관련법은 통과될 것이라고 밝혔다.  


너무 오랫 동안 차별이 이어져 왔습니다. 현재 성별인정법은 트랜스젠더들이 자신의 성별을 직접 확인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폭력적인 의료검진 과정을 거쳐야만 합니다. 이건 잘못된 관행입니다.”


노동당은 관련법 개정을 공약문에 명시하고 있다. 반면 테레사 메이 총리도 <핑크뉴스>와의 인터뷰에서변화가 필요하다 했지만, 보수당 공약문에 법개정을 싣지는 못했다.


하지만 저희 노동당은 총리가 약속을 지킬 있도록 노동당이 지원할 의사가 있습니다. 트랜스젠더 인권 향상을 위한 법안을 상정하면 노동당도 지지할 것입니다. 토리당과 민주연합당 의원들에게 자유투표를 허락하면 노동당이 법안을 가결시킬 있습니.”

 

메이 총리는 총선전에 관련법을 검토중이라고 했지만, 평등권 활동가들은 오래전부터 법개정을 요구해 왔다. 


버커우 하원의장과 노먼 파울러 상원의장이 주최한 연회에서 연단에 코빈 대표는 트럼프의 불안한 LGBT 인권사안 처리방식과 체첸 게이 남성들에게 자행되는 폭력 규탄하기도 했다. 


버커우 하원의장도 이제는 잉글랜드 성공회도 교회내 동성결혼식 거행을 허용할 라고 했다. 


불균형은 존재합니다. 따라서 목표를 달성했다고 생각해서는 것입니다. 당사자가 원할 경우 교회에서도 결혼식을 올릴 있을 비로소 진정한 결혼평등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한편 작년 여성 각료로는 동성과 연애중임을 밝힌 저스틴 그리닝 교육부 장관도 연설을 통해 LGBT 인권 향상을 위한 결의를 다졌지만 성별인정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닝 장관은아직도 영국에는 LGBT 인권은 잘못된 것이며, 지금도 너무 과하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너무 많다 지적했다. 


그리닝 장관은 LGBT 인권이 향상되려면 정부와 의회가 노력을 이어가야 하겠지만, 앞으로도 길은 멀다고 덧붙였다. 


• 본기사는 2017 7 19 행사의 주최 단체가 핑크뉴스임을 언급하기 위해 수정되었습니다.




- Rowena Mason

- 옮긴이: 이승훈




Let trans people self-identify their gender, Corbyn urges May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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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7



동성커플의 연금 평등을 위한 법정투쟁에서 기념비적 승리를 이끌어낸 남성



존 워커는 자신의 남편이 이성 배우자와 똑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11년간 투쟁을 이어왔다.




이번 판결로 남편에게 배우자 연금을 남겨줄 수 있게 된 존 워커. 사진: Martin Godwin for the Guardian



워커가 11년에 걸친 법정 투쟁 끝에 대법원이 최종 판결을 내릴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남편과 함께 방콕에서 유람선을 타고 있을 때였다. 


평등을 위한 역사적인 순간을 이루기 위해 고문에 가까울 정도로 느린 투쟁을 이어왔지만, 정년퇴임 이후의 삶을 바쳐온 투쟁의 결과를 접하기 위해 런던으로 돌아가려면 열흘이라는 시간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지난주 수요일 웨스트민스터 법정에 들어선 육군 장교 출신인 워커(66) 자신이 엄청난 승리 거두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성커플에 대한 영국의 마지막 차별법이 철폐된 것이다.


다섯 명의 대법관은 만장일치로 EU 보장하는 고용권이 영국의 예외주의보다 위에 있으며, 따라서 워커가 사망할 경우 올해로 52세인 그의 파트너는 연간 45,700 파운드(67백만 ) 상당의 배우자 연금을 받게 것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워커는 자신이 다니던 화학회사 Innospec 자신의 파트너에게 이성 배우자와 똑같은 혜택을 보장하지 않은 것에 대해 매우 분개했었다. Innospec 측이 말을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노동연금부까지 자신의 입장에 반대한 것은 자신들이 동성애자들을 위해 평등권을 구현했다는 보수당의 주장에 흠집을 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정부측 변호인단은 2010년에 제정된 평등법에 따라 기업은 시민결합법이 도입된 2005 이전의 근무기간에서 파생한 혜택을 제한할 있다고 주장했다.


워커는 대법원 판결이 발표된 이튿날 웨스트 런던의 자택에서 장관과 정당 대변인으로부터 받은 답장들을 훑어보았다. 답장들은 하나같이 워커의 사정을 딱하게 여기면서도 직접적인 해답을 회피하는 것들이었다.


여기 테레사 메이한테서 답장이 있네요. 예비내각 여성평등부 장관으로 있던 2010년에 보낸 서신인데귀하의 상황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업의 연금기금에] 부담이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 조치를 취할 있을지 검토해 보겠습니다라고 되어 있네요.”


그러고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법정에서] 저에게 맞섰죠. 제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아시겠죠. 고위층 인사들을 수도 없이 찾아다녔습니다. 다들 처지에 동정을 보였지만, ‘나중에 답변을 드리겠다고만 하더군요.”


사실 워커는 여러 측면에서 기득권층이라 있다. 윌트셔에서 태어나 해로우에서 학교를 다닌 그는 공화당원으로, 5년간 육군에서 복무했고, 영국 무역사업의 일환으로 중동에서 근무하다 1980 Innospec 입사했다.


워커는 동성애자이기도 하다. 1993 회사는 그를 싱가폴로 파견을 보냈는데, 그는 그곳에 간지 주만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워커는 남편을 굉장히 많이 챙긴다. 자신의 사후를 대비해 십여 년에 걸쳐 법정투쟁을 벌였고, 과정에서 남편의 신분을 절대 노출시키지 않았다. 


그의 이러한 신중함은 2005 첼시 등기소에서 시민결합을 맺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았다. 예식에는 목사인 워커의 형이 증인으로 참석했으며, 사람은 <데일리 텔레그래프>지의출생, 부고, 혼인란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게이 커플이기도 했다.


워커의 파트너는 무슬림이다. 사람의 결합 소식을 접한 싱가폴 언론매체는 파트너의 어머니가 임종을 앞둔 상황에서 앞에 몰려들었다고 한다. “굉장히 화가 났습니다. 싱가폴 신문에 장례식 사진이 실렸는데, 파트너가 굉장히 힘들어했어요.” 싱가폴은 아직 동성커플을 법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2003 파트너와 함께 런던으로 돌아온 워커는 50살의 나이로 퇴임했다. 그는 자신의 사후에 파트너가 연금을 받을 있도록 회사 측으로부터 이미 약속을 받았었다고 한다. 회사 측과 주고받은 팩스에는 그의 요구에 대해 회사가 보낸 보증서도 있었다.




그런데 회사는 갑자기 입장을 바꾸었다. 보증서를 발급했다고 해서 혜택을 보장받는 아니라는 것이다. Innospec 측은 부분에 대해 언급을 회피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법정투쟁은 고용 재판소에서 항소법원으로 그리고 대법원으로까지 이어졌다.


2012 재판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나올 것이며, 그의 주장은비합리적이고 오해에서 비롯된 이라며 협박을 받던 와중에 인권단체 Liberty 협회가 워커의 변호를 지원하겠다며 나섰다. 


Liberty 측의 에마 노튼 변호인은이번 판결은 매우 의의를 가지고 있으며, LGBT들의 평등권을 향한 아주 도약이라고 밝혔다. “가장 확연했던 차별법이 사라졌습니다. 워커의 지속적인 투쟁 덕분에 수만여 쌍의 커플들도 혜택을 받을 있게 되었어요.”


향후 문제점은 브렉시트가 이번 판결을 되돌릴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워커의 승리는 EU 법에 의거한 것인데, 아직 영국 정부는 EU 가입국으로서 쟁취한 평등을 앞으로도 보장하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워커는 자신이 받는 연금 액수가 높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정말 열심히 일했었다 한다. 그는 승리를 거둘 경우 수만 쌍의 동성커플도 혜택을 받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투쟁을 멈출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많았지만, 판결이 너무 늦게 났어요. 수요일 법정에서 어느 남자분이 제게 다가와 지난달에 파트너와 사별했다고 하더군요. 분은 이번 판결의 혜택을 받을 없게 됐죠. 그래서 슬픈 마음도 있습니다. 정부는 옳은 선택을 내리지 못한 걸까요?"


80% 기업이 이미 동성커플에게도 배우자 연금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판결이 사기업에 미칠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고 워커는 말한다. 한편 노동연금부에서는 재정상의 평등을 구현하려면 사기업계의 경우 1 파운드가, 공기업의 경우 2천만 파운드가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워커는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은 보람이 있다고 한다. “제가 알기로 연금은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의 마지막 차별조항이었습니다. 이젠일반 결혼동성 결혼 구분할 필요가 없어졌어요. 사이의 차이가 사라져버렸으니까요.”



- Owen Bowcott

- 옮긴이: 이승훈



The man who won a landmark legal battle for same-sex pension r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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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4




50년대 영국을 뒤흔들며 동성애자 인권에 변화를 초래했던 와일드블러드 스캔들



이 사건에는 귀족, 공군, 잠복근무, 면책 등, 없는 게 없었다. 그리고 피고였던 한 게이 남성이 침묵을 거부하는데... 애덤 마스-존스가 피터 와일드블러드의 대범함이 보다 관용적인 영국을 이끌어낸 과정에 대해 알아보았다.



당시 사건을 보도한 <데일리 미러> 일면기사. 사진: Daily Mirror




와일드블러드 사건은 오스카 와일드 케이스보다는 선정적이었지만, 그만큼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 사건이다. 피터 와일드블러드(Peter Wildeblood). 그의 시련(1954 볼리외 몬태규경마이클 피트-리버스와 함께 유죄판결을 받았었다)은 1895 오스카 와일드의 투옥 사건으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일어난 사건이었고, 또 그만큼 세월이 흘렀. 단, 와일드와 와일드블러드의 치욕적인 삶에 차이가 있다면 출소후 사람의 행보일 것이다. 


와일드블러드는 자신이 출소하면 오스카 와일드가 그랬던 것처럼 자취를 감추거나 외국에 가서 거라는 교도관과 다른 사람들의 악의없는 추측에 화를 내곤 했다. 그는 출소 후로도 예전 삶을 그대로 이어갈 생각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예전삶과 다른 점이 있다면 출소후 개혁주의자가 되었다는 점이다. 와일드블러드는 기자였지만 행동주의에는 관심이 거의 없었다. (체포 당시 그는 <데일리 메일>지의 외교부 특파원이었다.) 그런 그가 새로운 화두 찾았고, 그가 출소한 해인 1955 회고록 ‘Against the Law(법에 맞서다)’ 출판되었다. 제목에는 가지 의미가 숨어 있었는데, 초판 표지에서는희생양이라는 단어에 가려져 숨은 뜻이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는 하드커버를 이용한 마케팅이 후일 재판(再版) 사용되었던 페이퍼백보다 선정적인 때였다. 이중적 의미는 ‘against’라는 단어 숨어 있었는데, 감옥에 가기 그의 활동은 법에 저촉될 만한 것이 없었지만, 출소 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영국 섹스 스캔들이 계급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는 새삼 놀랄 일이 아니지만, 와일드블러드의 경우에서도 여러 측면에서 계급적인 요소가 드러났다. 이 사건의 핵심은 상류층, 그것도 몬태규 경이 단도직입적으로 박해의 표적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사건은 굉장히 선별적이었다. 에드워드 맥낼리와 레이놀즈라는 항공병은 유죄를 입증하는 증언과 함께 스무 명이 넘는 섹스 파트너의 명단을 제공한 덕분에 면책을 받을 있었는데, 명단에 오른 남성들도 기소되지 않았다. (맥낼리와 레이놀즈가 이들 남성으로부터 유혹을 받았다는 암시는 전혀 없었으며 사람도 자의에 의해 성행위에 가담했었다.) 이러한 조치에는 사회적 특권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동성애란 원래 귀족층의 변태행위 여가활동이라는 인식을 재각인시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교도소에서. 동명 회고록을 바탕으로 제작한 BBC 드라마 ‘Against the Law’에서 와일드블러드 역을 맡은 다니엘 메이스. 사진: Dean Rogers/BBC



와일드블러드는 회고록에서 저명한 동성애자를 박해한 들을 정부요직에서 배제시켜야 한다는 미국 측의 강력한 요구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맥카시의 적색공포에라벤더 공포 더해져 동성애자들이 공무원직에서 대거 해고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배경에는 버제스와 맥클린의 사건이 있었는데, 이들 스파이의 배신으로 사회적 특권과 동성애 매국은 땔래야 없는 삼위일체로 여겨지게 되었다. 재판에서는 자신과 다른 계급에서연애상대 찾는 것이 게이들의 특징이며, 맥낼리는 와일드블러드보다 출신배경이 훨씬 낮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와일드블러드는 전시에 자신이 사귄 지인들이 사회적으로 열등하다는 생각은 번도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공군에 복무했었다.) 책에도 나와 있듯, 전쟁은 배타적인 교육을 받아온 그에게 사회적 수용이 어떤 것인지 느낄 있는 기회였다. 동료들은 와일드블러드가 훈련에 소질이 없는 것을 보고 그런 그를 감싸주었다고 한다. 와일드블러드는 누구나 친구를 고를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와일드블러드는 변호인단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었는지, 아더 프로더로에 대해남자에게 있어 최상의 동무는 바로 자신의 변호사라는 말을 남겼다. 아더는 와일드블러드가 법정에서 추위에 떨다가 겁에 질린 것처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내복을 빌려줬다. 권위주의에 반대했던 아더는 결코 평범한 변호사가 아니었고, 1950년대에만 해도 그와 같은 변호사는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더는 필자의 가족과도 알고 지내던 사이(필자가 가깝게 지낸 올해 6 6 101 생일 이튿날에 별세한 그의 동생이었다)였는데, 아더의 성향은 그의 가족환경과 무관하지 않았던 하다. 부친은 런던경시청의 “5대형사 명이었지만, 아더 자신은 못된 짓만 골라 했다고 한다. 소시적 그는 외설적인 나이트클럽에 드나들곤 했는데 직원들에게 자신이 누구 아들인지 알렸고, 현관 바로 좌석에 앉아 음식과 술을 무한대로 대접받았다. 그러다 경찰이 습격해도 그를 보곤 섣불리 소동을 피우지 못했다고 한다. 


한편 부친은 자식들에게 법을 공부하도록 했고, 실제로 아들과 도로시 모두 법조계에 진출했다. 단 아더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변호사가 되었지만 법정에서 경찰이 제시한 증거에 서슴없이 의문을 제기하는   반항끼는 여전했. 피터 롤린슨이라는 변호사는예선로 살인사건 계기로 와일드 블러드의 변호인단에 가담하게 되었는데, 사건에서 허버트 해넘 강력계 형사가 제시한 증거 대부분에 강한 의심을 품고 있던 아더 프로더로는 아직 신참 변호사였던 롤린슨을 설득해 이틀동안 해넘 형사를 철저하게 반대심문하도록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이러한 반대심문은 논란의 소지가 많은 행동이었다. 사건에서는 피고인 알프레드 찰스 화이트웨이의 차에서 피묻은 도끼가 발견되었지만 증거물이 사라져버렸다. ( 경찰이 나무를 베려고 도끼를 집에 가져간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피고인은 유죄판결을 받고 교수형에 처해졌다. 당시 판결에는 오심이 없었지만 와일드블러드는 경찰의 수사과정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변호인단을 원치 않았다. 경찰이 게이들을 불성실하게 다루는 런던에서 비일비재했고, 부주의한 이들이 함정수사에 걸려들곤 했다. 실제로 경찰이 몬태규 경을 위선자로 보이게 하기 위해 그의 여권에 찍힌 날짜를 변경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남자에게 있어 최상의 동무는 바로 자신의 변호사’. (왼쪽부터) 마이클 피트-리버스, 몬태규 경, 피터 와일드블러드가 법정을 나서고 있다. 1954년. 사진: Keystone/Getty



그런데 피터 와일드블러드가 법정에서 자신의 성적지향을 밝히기로 결심한 때문에 대부분의 변호사가 꺼려하던 케이스에 아더 프로더로가 뛰어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또한 부친에 대한 반항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경감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1928 'The Well of Loneliness'[각주:1] 재판 증언대에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는 래드클리프 홀이 소설의 제목 자체가 모욕적이라고 증언했고, 재판관은 책을 모조리 파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만약 아더가 동성애에 대한 세대 인식의 변화를 부각시키고 싶었다면 신문일면감이었던 사건만큼이나 명백하고 공개적인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한편 60년대로 대변되는 또다른 인식 변화가 있었으니, 이러한 인식변화는 재판 마지막날 여실히 드러났다. 유죄판결을 받은 이들의 송치가 지연되었는데 당사자들은 이유를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오스카 와일드가 클래펌 역에서 겪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판결이 나 며칠 낮선 사람(“트위드와 중절모 차림의 점잖아 보이는 중년”) 와일드블러드에게 침을 뱉는 해프닝이 있었다. 그런데 판결 당일 군중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달려들었다. 2백여 명의 군중은 법정을 나서는 맥낼리와 레이놀즈에게 야유와 조롱을 쏟아부은 것이다. 대부분 여성으로 이루어진 이들은 죄인들을 호송하던 차량(구식 롤스로이스) 에워쌌고, 박수를 보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보이는가 하면울지마라는 플래카드를 치켜드는 , 죄수들에게 질타가 아닌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동성애자들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와일드블러드의 케이스에서 새롭게 등장한 요소였는데, 이 점은 와일드블러드의 회고록에도 본문이 시작되기  (대문자로 씌여진) TO MY MOTHER AND FATHER라는 문구에 반영되어 있다 되어 있다. 물론 동성애자라고 무조건 가족의 버림을 받는 아니었으며, 가족의 지지를 받는 이들도 있었다. 새로운 점은 이러한 지지가 대중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이었다. 이는 영국의 윤리관을 영원히 감싸고 있을 것만 같았던 불명예라는 부식성 안개가 옅어지고 있음을, 그리고 언젠가는 완전히 걷힐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시사하는 사건이었다. 


와일드블러드의 회고록Against the Law’ 동성애자 시민권 운동을 선동하는 한편, 감옥 실정을 고발한 책이기도 했다. 실제로 와일드블러드는 출소후 범죄자들의 재활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재범과 옥살이의 악순환을 끊고자 했다. 그의 재활 프로젝트 활동은 성적지향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동성애자가 별개의 인종이 아니라는 새로운 개념이 주는 특권에는 의무가 따른다는 점을 또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하드커버와 페이퍼백의 출판은 거의 별개의 프로젝트로 여겨질 만큼 순조로운 조율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펭귄에서Against the Law 출판할 때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와일드블러드가 아직 감옥에 있을 울픈든 위원회가 설립되었다. 위원회는 동성애와 매춘에 관련된 법을 검토하고 필요할 시에 개정을 권고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이었다. 사실 와일드블러드와 사회적으로 명망이 높았던 다른 피고인들이 유죄판결을 받자 이러한 위원회를 설립할 필요성이 절실해졌고, 와일드블러드도 위원회에 증거를 제시하기도 했다. 'Against the Law' 하드커버는 1957 초에 출판되었는데, 위원회가 보고서를 발표한 같은해 말이었다. 



일각에서는 회고록이 저렴한 가격에 널리 유포된다면 위험성도 높아질 거라는 견해가 끊이지 않았다. 파멜라 핸스포드 존슨의 저서 'On Iniquity(부당성에 대해)' 동성애가 부분적으로나마 인정을 받은 1967년에 출판되었는데, 책에는 "무어스 살인사건 재판을 통한 개인적인 고찰"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다.  책에는 "가디언지에 보낸 서신을 통해 크라프트-에빙(그의 저서 'Psychopathia Sexualis(성적 정신병리)' 진지한 연구서로 나온 서적이었다) 가격을 내려 영국 기차역에서 누구나 있도록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주장을 했다가 소소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대목이 나오는데, 여기서도 계급 의식을 엿볼 있다. 이러한 계급 의식은 1960년에 있었던 채털리 부인의 연인 재판(피고는 펭귄 출판사였다)에서도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배심원들 앞에서 부인이나 하인이 이런 책을 접하는 것을 "여러분" 원치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시되었는데, "여러분" 보호받을 필요가 없지만 다른 사람들은 보호받아 마땅하다는 것이. 


물론 와일드블러드는 자신의 책이 저렴한 가격에 널리 읽히기를 바랐다. 그가 형사판결을 사회적 범주로 분해해 가며 보여주고 싶었던 것도 바로 동성애는 계급간의 경계선을 뛰어넘는다는 점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남들도 자신과 다를 없다는 깨닫게 하려면 기차역에서 누구나 값에 있는 책이 필요했다. 


한편 펭귄 측에 판권을 조지 와이든펠드는 페이퍼백에 초판 발행자로 와이든펠드 & 니콜슨이라는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것을 알고 굴욕감을 느꼈다고 한다. 와이든펠드의 출판사는 1949년부터 영업해 왔지만 펭귄에게 판권을 이번이 처음이었다 때문에 굴욕감도 더했다. ( 회사 간의 서신 교환은 브리스톨 대학의 펭귄 문헌집에 보관되어 있다.) 와이든펠드는 당연히 당시 관행대로 자사의 이름이 실릴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굉장히 상했다" 한다. "명망 높은 펭귄사의 책에 이름이 실린다는 다른 재판 인쇄소들과 차별을 두는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요건입니다." 펭귄사의 평판을 찬양한 후에 등장하는 "재판 인쇄소"라는 표현에는 거만하면서도 어딘가 가시가 돋힌 듯한 어감이 있다. 마치 페이퍼백 출판사가 다른 사람이 책에 너무 과한 언급을 요구한다는 듯이 말이다. 



불명예라는 이름의 안개... 법에 맞서다. 사진: Dean Rogers / BBC



그런데 펭귄사는 책을 캠페인의 소재로 삼을 자원도 의지도 갖추고 있었다. 1958 11 파티석상에서 펭귄사의 사장이던 앨런 레인 경이 와일드블러드에게 마침 의회에서 관련 토론이 예정되어 있다며 현직 의원들 앞으로 'Against the Law' 권씩 보내자고 제안했다. 펭귄 문헌에 따르면 의원들에게 책을 보내는 것도, 그로부터 일년후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출판하기로 것도 전부 레인의 발상이었다고 한다. 와일드블러드는 책을 보낼 자신보다는 레인의 편지를 동봉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했고, 레인도 이에 동의했다. 따라서 와일드블러드는 편지 내용을 최종 승인했을 , 직접 쓰지는 않은 것이다. 클릭 하나로 대량의 메일을 보낼 있는 요즘 시대에서는 600번이나 서명하는 일이 대수롭지 않은 정치적 행동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직접 해보길 바란다. 게다가 당시는 법이 바뀌기 10년전이었다. 


레인은 ‘Against the Law’ 후속작인 ‘A Way of Life’ 예전 소설 편도 보고 싶어했지만, 판권을 얻지는 못했다. 특히 ‘A Way of Life’ 경우 사적인 내용이 전작보다 스스럼없이 공개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쉬움은 했다. 동성애자들의 다양한 삶이 묘사되어 있는 책은 저널리스트로서 와일드블러드의 재능 뿐만 아니라 그의 새로운 사회적 지위가 빛을 발하는 작품으로, 와일드블러드 본인도감옥에 갔다옴으로써 나는 소위 통계학에서 말하는사회적 이동성 지니게 되었는데, 폭은 통계학자들이 상상하는 이상이었다 밝히고 있다. 그는 돈이 목적인 흥미로운 젊은이들과 친분을 쌓았는데, 불평을 달고 다니는 레지도 명이었다: “다들 현금을 내는 대신 발레 같은 곳에 데려가곤 하는데, 결국 나이 들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구식 LP판과불새 나오는 발레리나 마고 폰테인에 대한 기억 밖에 남는 없었다.” 와일드블러드 자신은 단혼(單婚) 미덕을 강력히 옹호했는데, 그는 불공정한 때문에 남성이 집착 없이 가벼운 모험을 즐기는 것보다 함께 사는 편이 위험한 행동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했지만, 그와 상반되는 증언을 철회하지는 않았다.



가벼운 모험... 1950년대 소호의 나이트클럽 겸 바 ‘La Caverne’의 젊은이들. 사진: Joseph McKeown/Getty



와일드블러드는 이성애자 성매매에도 매료되었는데, 관련 분야를 조사하던 울픈든 위원회가 계기를 제공했던 같다. 진지한 측면에서 이성애 성매매에 대한 관심은 동성애자들에게 있어 이성애적 행위의 평범함을 와해시키는 효과가 있었지만, 와일드블러드에게 정보를 제공하던 팸이라는 여성도 굉장히 흥미로운 인물이었다. 팸은 BDSM 심취했던 행상인 소년을 밧줄로 꼼짝 못하게 묶은 하녀에게 다림질하는 동안 지켜보도록 하고 본인은 다른 흥미거리를 찾으러 퍼브에 들렀다고 한다. 그런데 바텐더는 집에서 연락이 왔다며 팸에게 이렇게 말한다: “손님께서 요리용으로 꽁꽁 묶은 닭을 마리 주셨다는데, 시퍼렇게 변해서 못쓰겠다고 하네요.”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A Way of Life에는 제삼자의 경험이 잠깐 등장하는데, 여기서 와일드블러드는 동성에 대한 욕망을 당시로서는 깜짝 놀랄만한 권한과 결부시키고 있다. “그때까지 고든은 남자의 몸을 그런 식으로 적이 없었다. 남자의 몸이 욕망과 두려움의 대상, 용도를 없는 온화함과 전멸의 도구로 보인 그때가 처음이었다.” 


기준에서 와일드블러드의 소설 ‘The Main Chance’(1957) ‘West End People’(1958) 빛을 보지 못했지만, ‘West End People’ 뮤지컬 버젼인 ‘The Crooked Mile’ 흥행에 성공했다. 이들 작품에 생기나 독창성이 부족한 아니었다: “가녀린 기계손이 안을 더듬더니 헛기침과 함께 회전하는 배꼽 위에 레코드를 올려놓았다.” 주크박스를 이런 식으로 묘사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작품들의 진가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캠프한 대화도 등장한다: “자기는 신문도 읽나봐!” “어머, 그걸 누가 읽니? 기사를 쓰는 것만으로도 고된데.” 또한 일종의 제한된 사회적 다양성도 엿볼 있다: “그는 넘어졌지만 이내 몸을 일으켜 샛길을 달려갔고, 에스프레소 바의 스키플 연주가들과 반전주의자, 소매치기, 복음전도사와 매춘부들이 뒤를 쫓아갔다.” 그런데 여기서 동성애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앵거스 윌슨 같은 작가 동성애자 인물과 동성애 소재를 다루어도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 시절이었는데도 말이다. 대신 와일드블러드는 ‘West End People’에서 데이먼 러니언 영역으로 급회전함으로써, 저그 이어스 존스, 핑거스, 비숍, 벅시, 먹시, 호스와 같은 사랑스런 악당들을 등장시켰다. 그렇게 오랫동안 타협과 잠적을 거부해 왔던 사람이 작품에 모든 쏟아부으면서 대범함만 배제했다는 정말 이상한 선택이 아닐 없다. 


*드라마 ‘Against the Law’ 7월말 BBC2에서 방영됩니다. 




- Adam Mars-Jones

- 옮긴이: 이승훈



The Wildeblood scandal: the trial that rocked 1950s Britain – and changed gay rights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1. '고독의 우물’: 래드클리프 홀(Radclyffe Hall)의 레즈비언 소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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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3



영화 Victim에 출연했던 피터 맥에너리, ‘게이들로부터 고맙다는 내용의 편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1961년도 영화 Victim에서 더크 보가드의 연인 역할을 맡았던 피터.
동성애가 비범죄화되기 6년전 이 영화는 동성애에 대한 시선을 어떻게 바꾸었을까?



Victim에 출연한 피터 맥에너리: ‘조연들은 대부분 이성애자였다. 아마 게이 배우들은 이런 영화에 출연했다가 범죄자로 몰릴 걸 우려했을 것이다.’ 사진: Alamy Stock Photo



Victim(희생자)은 실제로 사회에 변화를 가져다 준 몇 안되는 영화 중 한 작품이다. 1960년대 동성애를 동정어린 시선으로 담아낸 이 영화는 그로부터 6년 후인 1967년 성추행법 제정을 통해 동성애가 비범죄화되는 데 기여했고, 법안 작성을 주도한 애런 의원은 주연을 맡았던 더크 보가드에게 직접 감사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Victim은 누구나 즐길 만한 런던 미스테리 스릴러라는 도구를 통해 영국 영화계에 과감한 행동주의를 도입한 영화다. 보가드가 맡은 주인공은 존경받는 기혼 변호사지만, 젊은 게이 건설 노동자인 바레트는 그와 함께 찍은 사진을 빌미로 협박을 가해 온다. 바레트 역을 맡았던 피터 맥에너리가 당시를 회상했다. - 스티브 로즈



나는 배역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무런 거부감도 없다. 좋은 배역이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더크 보가드 같은 대형 스타와 함께 출연하게 되어 신이 있었다. 신참내기였던 나는 런던으로 이사와서 여자친구와 동거하고 있었다. 전에 알렉 기네스, 밀스 같은 배우들과 함께 Tunes of Glory라는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었고, 당시 피터홀에서 창단한지 얼마 되던 왕립 셰익스피어 컴퍼니의 오디션을 참이었다.


게이씬에 대해서는 무지에 가까웠다. 사실 사고방식이 그다지 진보적이지는 않은 편이었는데, 어릴 버밍엄 교외에서 자라 브라이턴으로 이사를 갔기 때문에 아는 거의 없었다. 그나마 아는 거라곤 게이라고 하면 여성적라는 , 케네스 윌리엄스가 흉내내던 것처럼 손목을 꺾는 시늉 자주한다는 것 정도였.


그래도 배우라는 직업에 동성애자가 많다는 알고 있었고, 주변에서도 조심하라는 말을 듣곤 했다. 사람을 가려가며 사귀라는 말에는 자칫 잘못하다간 평판에 금이 수도 있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Victim’ 조연들은 대부분 이성애자 배우들이었다. 아마 게이 배우들은 이런 영화에 출연했다가 범죄자로 몰릴 우려했을 것이다. 물론 그때만 해도 6 후에 동성애가 합법화될 거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암흑기였던 같다. 영화에는마녀 같은 거야. 태워죽이진 않지만.”이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당시 동성애란 그런 것이었다.



‘Victim’에 출연한 더크 보가드(Dirk Bogarde)와 실비아 심스(Sylvia Syms). 사진: Alamy Stock Photo



내게 게이처럼 연기하라고 지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배질 디어든 감독도 특별한 지시를 주진 않았지만, 사실 공중전화를 찾아 런던 시내를 돌아다니는 역할이라 그리 도움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보가드와 함께 작업한 소감이 어떻냐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우리 사람이 함께 나온 씬은 없었지만, 보가드는 항상 세트장에 나왔기 때문에 매일 마주치긴 했다. 그는 대사를 잊지 않았고, 시간약속을 어기지 않는 , 세세한 부분에서까지 프로정신을 보였다. 이런 대수롭지 않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영화를 만들 이런 정말 중요하다. 보가드는 관찰력이 뛰어났고, 항상 주변을 돌아보며 모든 스탭들을 챙겼다.


보가드와 함께 영화에서 증거물로 쓰일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에는 뒷모습만 찍혀서 우리 사람의 얼굴이 나오지 않는다. 영화에서는 사람들이 사진을 보고세상에..”, “음...”, “근데 울고 있지?” 등의 반응을 보인다. 사진은 보가드와 내가 파인우드 주차장의 안에 앉아 있는 모습이었는데뒷모습만 보고 우는지 어떻게 아냐 물으니, 사진사는손을 볼에 대고 눈물을 닦아내는 시늉을 하면 어떨까요?”라고 제안했다. 그런데 보가드와 나는 웃음이 멈추지 않았고, 결국 우리는 웃는 모습으로 사진을 찍었다. 


한번은 일요일 점심식사 초대를 받고 보가드의 집에 적이 있었는데, 거기 모인 사람들은 영화 스탭이 아닌, 나와는 면식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스튜디오 근처에 있던 그의 집은 수영장이 딸린 거대한 저택이었는데, 스타들과 함께 하는 아주 이색적인 자리였다. 데이빗 프로스트도 있었고, [배우] 노엘 해리슨과 조지아 브라운도 있었다. 브라운이 당시 출연하던 Oliver!라는 뮤지컬의 포스터는 영화 속 뉴시어터(지금의 노엘 카워드 시어터) 장면에도 잠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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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보가드의 섹슈얼리티가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는 매니저 연인이었던 토니 포우드와 동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도 사람의 관계를 전혀 문제시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영화사에서는 보가드를 이성애자로 포장하기 위해 인기 여배우와 엮으려 했던 같다. 



힐튼 에드워즈, 피터 맥에너리, 더크 보가드. Victim 촬영장에서. 사진: ITV/Rex/Shutterstock



그랬기 때문에 그가 아이돌로서 경력을 내걸고 Victim 출연하기로 결정은 너무나도 용감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40대에 접어든 그는 Doctor in the House류의 영화로부터 전환점이 필요하던 시기였다. Victim 출연으로 역효과를 수도 있었지만, 그는 오히려 해방감을 느꼈고 뒤로도 The Servant 같은 영화에 출연했다. The Servant에서 매정한 배역을 맡은 것도 과감한 결정이라 있는데, 그는 배역이 자신의 이기적인 성격을 많이 반영한 캐릭터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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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을 마치고 나는 곧바로 왕립 셰익스피어 컴퍼니의 활동에 매진했기 때문에 Victim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게이들로부터 수많은 편지를 받았는데, 대부분은너무 감사하다 내용의 아주 감동적인 것들이었다. 


보가드는 내가 왕립 셰익스피어 컴퍼니에서 활동하는 막으려 했다. 그는연극만 하지 말고 영화도 해야 한다 자신은 무대 공포증이 있다고 했다. 연극에 출연했다가 무대에서 얼어붙어버린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게도 위험한 직업에 뛰어들지 마라 했던 같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왕립 셰익스피어 컴퍼니에 몸담고 있다. 따라서 Victim 경력에 어떠한 해도 끼치지 못했다. 



* Victim 8 30일까지 이어지는 스크린 동성애 이벤트 ‘Gross Indecency(성추행)’ 일환으로 7 21 BFI Southbank에서 상영됩니다. 




- Peter McEnery, Steve Rose

- 옮긴이: 이승훈 




Peter McEnery on Victim: 'I got a lot of letters from the gay community saying: We all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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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2




대법, 동성커플 남편에게도 동등한 연급수급권 인정




기념비적인 판결로 기병대 출신인 워커의 남편도 배우자 사후 이성애자와 동등한 연금을 받을 있게 되었다. 





존 워커, ‘이번 판결은 기본적인 공평함과 품위의 승리’ 사진: David Mirzoeff/PA



기병대 출신의 동성애자가 남편에게 동등한 연급수급권을 제공하기 위한 소송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만장일치로 내려진 대법원의 기념비적인 판결로 수만여 커플이 혜택을 누리게 것으로 보이며, 워커가 먼저 사망한다 해도 파트너는 한해당 45 파운드의 금액을 지급받을 있게 되었으며, 예상외 부채도 연금기금에 부과될 있다.


법정에서 워커를 대변한 인권단체 Liberty 협회의 변호인단은 동성커플도 남편이 사별할 경우 똑같은 연금수급권을 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워커의 남편은 일년에 파운드 밖에 받을 없도록 되어 있다. 


워커(65) 컴퓨터 임원으로 일했던 남편(52) 1993년부터 함께해 왔다. 2005 12 시민결합법이 시행되자 사람은 이듬해 1 시민결합을 맺었고, 결혼으로 변경했다. 


대법관은 판결문을 읽으며워커가 평생 근무하며 받은 봉급은 이성애자 남성과 액수가 정확히 같았다. 따라서 회사 측이 워커의 합법적인 배우자에게 생존자 연금을 지불할 책임이 없다고 여길 하등의 이유가 없다 밝혔다. 


이어 연금수급권이 시민결합법 시행 이전에 취득되었다 해도 파트너에게 연금을 지불하지 않는 것은 성적지향에 기인한 차별이라며, 따라서워커의 사망 때까지 사람의 결혼이 유지될 경우 남편은 워커가 Innospec(워커가 일했던 화학업체) 근무했던 연도수로 계산한 배우자 연금을 받을 자격이 있다 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2000년에 고용법 하에 성평등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구상지령을 바탕으로 것이다. 고용재판소와 항소법원에서는 2010년도에 제정된 평등법에 의해 회사 측은 2005 이전의 근무기간에서 파생되는 혜택을 제한할 있도록 하는 판결을 내린 적이 있다. 


워커는 이번 판결을 반기며 다음과 같이 소감을 밝혔다. “너무나도 가슴이 벅찹니다. 오늘 판결은 기본적인 공평함과 품위의 승리라 있습니다. 이젠 우리 커플도 말도 안되는 불평등을 과거로 돌리고 여생을 즐길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을 해결하는 이렇게 시간과 어마어마한 세금을 들여가며 21세기에 이르러서야 영국 최고 법원이 판결을 내렸다는 정부에 있어 크나큰 수치거리입니다. 소송을 제기한 이래로 사랑하는 사람이 여생을 보장받을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파트너와 사별한 이후로 아무런 보장도 받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요?”


지금 제가 테레사 메이 수상과 각료 여러분께 바라는 브렉시트 이후에도 법개정이 유지될 있도록 보장하는 것입니다.”


리버티 협회 측의 에마 노튼 변호사는대법원으로부터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 이외의 무엇도 아닌 조항의 치명성을 인정받게 되어 정말 기쁘다 밝혔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유럽연합법에 의한 것으로, EU 부여하는 권리보장의 직접적인 결과라 있기 때문에 보장을 상실할 위험에 처해 있다고 있습니다. 정부는 브렉시트 이후에도 LGBT 인권에 후퇴가 없도록 보장하고, 영국법으로 이들 권리를 온전히 보호하도록 노력해야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워커는 물론 그와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이 영구적인 정의를 실현했다고 어떻게 확신할 있겠습니까?”


한편 고용연금부는 EU 구조지침을 소급적용하는 것은 연금제도에 부담을 안겨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정부 대변인은동성커플의 권리는 2010 이후로 동성결혼의 법제화, 모든 파트너관계에 대한 연금제도의 동등한 적용 , 꾸준히 향상되어 왔다이번 판결이 시사하는 바를 상세히 검토 중이며 차후 대응책을 발표할 이라고 했다.




- Owen Bowcott 

- 옮긴이: 이승훈




Man wins equal pension rights for husband at supreme cou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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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8




사진으로 보는 2017년도 런던 프라이드 행진







올해 LGBT+ 프라이드 행진에도 수만여 명이 몰려들었다. 



퍼레이드 행렬을 향해 무지개 깃발을 흔드는 사람들. 사진: Jonathan Brady/PA



장식 차량 위에서 천사날개를 달고 등장한 톰 데일리. 사진: Guy Bell/Rex/Shutterstock

 


눈부신 퍼레이드 참가자. 사진: Frank Augstein/AP



런던 프라이드 참가자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는 사디크 칸 런던시장. 사진: Pete Maclaine/EPA



트라팔가 광장에 다다른 퍼레이드 행렬. 사진: Matthew Chattle/Rex/Shutterstock



동성애 비범죄화 50주년 기념 컨셉. 사진: Jonathan Brady/PA



올해 행진 참가자는 26,500 명이었지만, 퍼레이드에는 백만여 명의 인파가 몰린 가운데, 런던 퍼레이드는 단일 행사로는 런던 최대 규모이자 세계적으로도 가장 규모가 큰 LGBT+ 축하 이벤트이다. 사진: Frank Augstein/AP



트라팔가 광장에 출현한 대형 무지개. 사진: Pete Maclaine/EPA



미니언도 프라이드에 참가했다. 사진: Dinendra Haria/Rex/Shutterstock



퍼레이드를 구경하기 위해 수만여 명이 옥스퍼드 서커스와 리전트 스트리트에 몰려들었다. 사진: Amer Ghazzal/Rex/Shutterstock



나이트 차르 에이미 라메(왼쪽), 사디크 칸 런던시장(왼쪽에서 세 번째), 저스틴 그리닝 교육부 장관 (오른쪽에서 세 번째) 사진: Jonathan Brady/PA



무지개 풍선을 단 경찰차량이 행진을 이끌고 있다. 사진: Amer Ghazzal/Rex/Shutterstock



꽃으로 무지개를 만드는 사람들. 사진: Amer Ghazzal/Rex/Shutterstock



행진에 참가할 버스를 체크하는 경찰관과 경찰견 베일리. 사진: Barcroft Images



2층버스에서 관중들에게 손을 흔드는 퍼레이드 참가자들. 사진: Neil Hall/Reuters



유튜브 코미디언 마완 리즈완(중앙)과 친구들. 사진: Matt Alexander/PA



멜라니아와 트럼프로 변장한 파티꾼들. 사진: Amer Ghazzal/REX/Shutterstock



올드 컴튼 스트리트에서 열린 뒷풀이 축제. 사진: Matthew Chattle/REX/Shutterstock




- Josy Forsdike

- 옮긴이: 이승훈




Thousand of people join the annual LGBT+ parade through the cap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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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9




트랜스젠더들에게 특별 예배 거행하기로 영국 성공회 




소외받아온 트랜스젠더 공동체를 받아들이고 인정하기 위한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요크 대학교에서 열린 잉글랜드 성공회 총회. 사진: Danny Lawson/PA



잉글랜드 성공회가 특별 예배를 통해 트랜스젠더들을 환영하기로 했다. 총회가 지지한 결의안은 종종 소외받아온 공동체를 받아들이겠다는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요크에서 열린 총회는 투표(284 78) 통해 이번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틀 동안 번에 걸쳐 LGBT들에게 긍정적인 결의안이 압도적인 지지를 얻음으로써, 향후 교회내에도 중대한 변화가 것으로 전망된다. 



함께 읽기:

영국 성공회, 

‘트랜스젠더 신도 환영’ 여부 투표 실시 




이번 결의안에는 트랜스젠더들이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서 환영받고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하며, 주교 의회는 성전환 과정을 기념하기 위한 특별 의식의 준비 여부를 고려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결의안을 상정한 랭커셔 블랙번 교구의 크리스 뉴랜즈 목사는트랜스젠더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들 삶의 모든 질곡을 함께 하시며 그들을 아끼고 사랑하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할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뉴랜즈 목사는 총회에서 대형 복음주의 교회 신도의 아들 이야기를 소개했다. 네이던이라는 이름의 아이는 다섯 의료진의 조언으로 나탈리가 되었으며, 학교에 복학했을 때는예전보다 훨씬 밝아졌고, 반친구, 교직원, 학부모들과도 아무 마찰이 없었다”는 것이. 


그러나 모든 신도들이 이번 결의안에 찬성한 것은 아니며, 게중에는어쩔 없이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었다 한다. 뉴랜즈 목사는 이번 총회의 토론회를 통해성별 불쾌감을 안고 있는 아이들의 고충을 나탈리가 다니는 교회는 물론 다른 모든 교회에도 알릴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덧붙였다. 


그는 태비스톡 클리닉과 포트먼 국민보험연금 재단의 자료를 인용해 2010년만 해도 영국에서 97 명의 아이들이 성별정체성 클리닉을 찾았지만, 2016년에는 수치가 1400 명으로 늘어났다 했다. 


세계각지에서 트랜스젠더들에게 끔찍한 폭력이 가해지고 있으며, 영국의 경우 트랜스젠더를 겨냥한 증오범죄가 작년 한해 동안 170% 증가했다고 합니다.”


LGBT 활동단체 스톤월 측의 통계에 따르면 26 미만 트랜스젠더 48%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한다. 


토론에서는 결의안 가결이 전파할 상징적인 메시지를 언급하는 이들도 있었으며, 요크에서 루시 고먼은너무나도 자주 소외 받아온 트랜스젠더 공동체를 벌여 안아주는 것과도 같을 이라고 했다.


우스터 교구의 인지 주교는우리는 사랑과 개방, 환영의 메시지를 전파해야 한다, “그러려면 결의안 가결이 아주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이라고 했다. 


결의안의 참고 서류에는 주교의회가전국적인 의식 교재를 작성해서  교구의 교회  예배당이 고되고 복잡한 전환과정 속에서 긍정이 필요한 트랜스젠더들에 대응할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되어 있다.


또한 성직자가 “양심상 성전환 기념 의식에 지지하지 못한다면, 관련 의식을 제공하는 다른 교회로 친절하게 인도해 주길 바란다 되어 있다. 


일부 전통주의 교인들은 성별(남성 또는 여성) 하나님이 부여한 것이므로 바뀔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75분에 이른 이번 토론회에서는 이러한 주장이 나오지 않았으며, 성직자가 트랜스젠더 공동체 전환과정을 거치는 이들을 긍정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총회는 불과 하루 전인 토요일 전환치료를 비윤리적이고 해로운 것으로 규정하고 정부 측에 금지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총회는 회원이 겪은 영적 학대 사례를 접한 이러한 치료는현대사회에 자리가 없다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사람의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을 바꾸려는 시도를 흔히 전환치료라고 하는데일부 잉글랜드 성공회와 다른 교파의 교회에서는 LGBT 신도들에게 “죄악 몰아내기 위해 기도회를 비롯한 다양한 활동에 참가할 것을 권장해 왔다.


이번 결의안을 발의한 제인 오잔 전환치료 때문에  차례에 걸쳐 신경쇠약을 앓으며병원에도  번이나 입원했다고 한다그는 전환치료가 “학대나 다름없으며이러한 관행으로부터 성인 약자들을 보호해야 한다 주장했다


오잔은 “국민의료보험왕립 정신과의사 학회왕립 일반의사 학회  수많은 주요보건단체가 전환치료의 효과를 믿지 않는다 덧붙였다. 


그러나 일부 총회 회원들은 이번 결의안으로 성욕  성적지향으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목회자로서 보살핌과 기도를 제공할 여지가 제한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지만이번 투표결과가 총회가 LGBT 향한 광범위한 수용의 징표로 보는 의견도 있었다.


세인트폴 성당의 데이빗 아이슨 사제는  반대의견이 없었다는 전반적인 총회 분위기가 종전 교회가 끼친 피해를 깨닫고 받아들이는 쪽으로 바뀌고 있음을 반영하는 이라고 했다.


한편, 동성결혼 사안의 경우 의견이 분분했으며, 총회는 조사 위원회를 조직해 2020년초까지 결혼에 관한 교리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힌 가운데, 일부 총회 회원들은 주교 의회가 해당사안을 좌초시키려 한다며 비난하기도 했다.




- Harriet Sherwood

- 옮긴이: 이승훈




Anglican church set to offer special services for transgender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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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9




영국 성공회, ‘트랜스젠더 신도 환영여부 투표 실시




총회에서는 기독교인 동성애자를 대상으로 유해한전환치료를 금지하는 결의안이 압도적인 지지로 가결되기도 했다. 




총회가 열리는 런던 처치 하우스 앞에서 한 대표자가 레즈비언 게이 기독교 운동연합(Lesbian and Gay Christian Movement) 회원들 앞을 지나가고 있다. 사진: Dominic Lipinski/PA



잉글랜드 성공회의 최고 결정기관이 성전환 기간 동안 트랜스젠더들을 위해 특별 예배를 제공할지 여부를 두고 투표를 실시한다. 


잉글랜드 성공회 총회에 “길고도 복잡한성전환 과정을 거치는 트랜스젠더들을 교구의 교회가 반기고 긍정해야 한다"는 결의안이 상정되었. 


토요일에는 주교의회에서 동성애자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비윤리적인전환치료를 금지하는 결의안이 압도적인 표차로 가결되기도 했다.


 


  읽기: 

잉글랜드 성공회 주교들, 

성애자 평등사안 또 연기



총회는 동성애 비범죄화 50주년을 맞아 백만여 명이 런던 프라이드에 몰린 지난 토요일 평신도 결의안의 투표를 실시했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요크에서 블랙번의 크리스 뉴랜즈 목사가 상정한트랜스젠더 환영교구청 결의안을 두고 투표가 실시된다. 


성공회는 침례는 오직 번만 받을 있다는원칙적인 믿음 언급하며, 따라서 총회가 다른 성별로 전환한 개인을 다시 침례하는 방안을 허용할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뉴랜즈 목사의 결의안에는잉글랜드 성공회가 트랜스젠더들에게 교구 성직자들의 지원을 적절하게 전달하기 위해 성공회 측에서 전적으로 승인한 의식을 통해 성전환을 기념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되어 있다. 


그러나 성직자가양심상 성전환 기념 의식에 지지하지 못한다면관련 의식을 행하지 안아도 되지만, 성직자가 동의하지 않을 경우, “관련 의식을 제공하는 다른 교회로 친절하게 인도해 주길 바란다 되어 있다. 


결의안은 주교 의회가전국적인 의식 교재를 작성해서 교구의 교회 예배당이 고되고 복잡한 전환과정 속에서 긍정이 필요한 트랜스젠더들에 대응할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 주도록 요청하고 있다. 


지난 토요일에는 기독교인 동성애자 인권가 제인 오잔이 결의안을 통해 잉글랜드 성공회 측에 전환치료를유해한 잠재력 지녔으며, “현대사회에 자리가 없는 관행으로 규정하도록 요청했었다. 오잔의 결의안은 왕립 일반의사 학회, 영국심리침료 위원회 등의 전문단체들의 지지를 받았다. 


 센타무 요크 대주교는 전환치료가 “신학적으로도 건전하지 못기 때문에일찍 금지되면  수록  또한 편하게 발을 뻗고   있을 이라고 했다. 


또한  베이스 리버풀 주교는 “아픈 것도 아닌데 사람들을 치료로 내몰 필요는 없다 LGBT+들의 지향은 질병도죄악도 아니라고 했다. 


잉글랜드 성공회 총회는 전부터 동성애에 대한 진보파와 보수파의 상반된 견해 사이에서 갈등을 겪으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번 결정에 대해 일부 보수파 기독교 단체들은기독교 인으로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살아가기 위해 치료를 원하는 이들도 있다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오잔의 결의안은 성직자 의회 평신도 의회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고, 주교 의회에서도 명만 제외한 전원이 찬성표를 던졌다.


BBC Breakfast 인터뷰에 응한 LGBT 인권 활동가 뉴랜즈 목사는 토요일 투표에 대해아무도 예상치 못한 크나큰 진전이라며 “LGBTI 평등권을 위해 활동해온 이들이 정말 힘을 얻었다 밝혔다.


정말 희망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오후 트랜스젠더 사안 토론회 때도 좋은 반응이 기대됩니다.”




- PA 통신

- 옮긴이: 이승훈




Anglican church to vote on 'welcoming transgender people'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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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8




잉글랜드 성공회, 전환치료 금지 촉구




잉글랜드 성공회 총회, '영적학대' 대한 증언 등, 감정적인 토론 끝에 정부측에 성적지향 전환치료 금지 요구하기로 




잉글랜드 성공회 총회에서 전환치료는 ‘현대사회에 설 자리가 없다’는 취지의 결의안이 압도적인 표차로 채택되었다. 사진: Daniel Leal-Olivas/AFP/Getty Images



잉글랜드 성공회가 성적지향을 바꾸려는 전환치료는 비윤리적이고 해를 끼칠 우려가 있다며 정부 측에 금지를 요구했다. 


잉글랜드 성공회 총회에서는 회원 명이 자신이 겪은 영적 학대를 증언하는 등, 감정적인 토론이 오간 끝에, 전환치료는현대사회에 자리가 없다 취지 결의안이 압도적인 표차로 채택되었다.


사람의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을 바꾸려는 시도를 흔히 전환치료라고 하는데, 일부 잉글랜드 성공회와 다른 교파의 교회에서는 LGBT 신도들에게죄악 몰아내기 위해 기도회를 비롯한 다양한 활동에 참가할 것을 권장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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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자 평등사안  연기  



이번 결의안을 발의한 제인 오잔 전환치료 때문에 차례에 걸쳐 신경쇠약을 앓으며, 병원에도 번이나 입원했다고 한다. 그는 전환치료가학대나 다름없으며, 이러한 관행으로부터 성인 약자들을 보호해야 한다 주장했다.  


오잔은국민의료보험, 왕립 정신과의사 학회, 왕립 일반의사 학회 수많은 주요보건단체가 전환치료의 효과를 믿지 않는다 덧붙였다. 


오잔은 올초 영국심리침료 위원회 기타 단체들이 발행한 공동성명문을 인용해이러한 학대를 당하는 사람은 누구나 배타, 낙인, 선입관으로 인해 정신적인 문제를 안을 있다 했다. 


이어 그는 최근 LGBTI들을 상대로 본인이 직접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하며, 응답자 553 40% 어떤 형태로든 전환치료를 받아본 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또한 전환치료를 받기로 이유로는 자신의 성적지향이죄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답한 이들도 2/3 넘었으며, 스무세 미만일 전환치료를 시작했다는 응답자도 75% 육박했다. 


잉글랜드 성공회 청년위원회의 에드 콕스도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며 자신의 성적지향은 본인이 선택한 것으로 일시적인 현상이고 기도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을 당시를 회상했다. 


한마디로 제가 잘못된 인간이라는 소리였습니다.” 콕스는 이러한 영적 학대 때문에 심각한 우울증에 빠졌다고 한다. 


센타무 요크 대주교는 전환치료가신학적으로도 건전하지 못기 때문에, 일찍 금지되면 수록 또한 편하게 발을 뻗고 있을 이라고 했다. 


베이스 리버풀 주교는아픈 것도 아닌데 사람들을 치료로 내몰 필요는 없다 LGBT들의 지향은 범죄도, 죄악도 아니라고 했다. 


더햄 대학교에 재학중인 페넬라 캐닝스-저드는지금 시대에 아직도 전환치료의 장단점을 운운하고 있다는 믿기지 않는다며, 전환치료의대부분은 기본인권의 침해로 봐야 한다 주장했다.


그러나 일부 총회 회원들은 이번 결의안으로 성욕 성적지향으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목회자로서 보살핌과 기도를 제공할 여지가 제한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결의안은 복잡한 수정과정을 거쳤으며, 최종투표 결과는 찬성 298, 반대 74, 기권 26표로, 결의안은 총회, 주교, 성직자 평신도 의회 전체에서 지지를 받았다. 


토론에 앞서 오잔은 오잔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