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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5




스코틀랜드교회, 동성결혼식 거행 허용하나 




스코틀랜드 교회가 과거 동성애자 차별에 대한 사과와 함게 관료들에게 동성결혼식 거행안을 고려하도록 권고했다. 



총회에 참석한 이언 토랜스 교수: “지금 우리 중에 성경해석을 둘러싼 이 논쟁에서 어느쪽으로든 극단에 치우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사진: Jane Barlow/PA



스코틀랜드교회가 목사들에게 동성결혼식을 거행할 있도록 허용함과 동시에 과거 동성애자들에게 이루어진 차별을 사과하는 등의 매우 중요한 걸음을 내딛었다. 에딘버러에서 열린 스코틀랜드 교회 총회는 목사들이 동성결혼식을 주관할 있도록 교회법 개정을 고려하도록 관료들에게 지시했다. 


하지만 교회 관리부의 강력한 지지에도 불구하고 스코틀랜드 교회 목사가 동성결혼식을 거행하게 되기까지는 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개정법이 먼저 내년 총회에 상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 성공회에서는 보름후 동성결혼식 거행을 위한 교회법 개정 여부를 두고 투표가 치뤄질 예정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잉글랜드 성공회와는 다른 것으로, 국제 성공회연합으로부터 제재를 받을 수도 있다. 작년에도 미국 성공회가 성직자에게 동성결혼식 거행을 허용했다가 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 


한편, 스코틀랜드 교회 총회는 지도자들에게과거 동성애자들에게 자행된 차별을 다방면으로 조사하는 한편 개인 단체 명의로 사죄하도록요구했다. 이날 총회에서 사과안에 대한 반대의견은 나오지 않았다. 


작년 총회에서 의뢰된 신학포럼 측의 보고서도선출된 목사 집사에게 동성결혼식 거행권을 거부할만한 신학적 사유가 불충분하다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보고서는 동성결혼식 거행을 양심거부하는 다른 성직자 집사들도 보호받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한 교회내에는 기본교리를 유지하면서도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분열이 깊다며, 이러한 “부득이한 차이 대해서도 언급되어 있다. 


예컨대 우리는 동성인 사람에게 결혼제도를 적용시킨다고 해서 다자연애 관계에까지 적용해야 한다는 인권상의 주장이 대두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로보트와의 결혼도 허용되어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 핵심은 사람이 합의에 의해 계약을 맺는 관계라는 점을 우리는 이해하고 있다.”


신학포럼의 의장이기도 이언 토랜스 교수는 보고서를 공개하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지금 우리 중에 성경해석을 둘러싼 논쟁에서 어느쪽으로든 극단에 치우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다들 드넓은 스펙트럼의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고, 뒤죽박죽인 우리 삶에 성경을 적용하면서 스펙트럼 속에서 이리저리 이동하기도 합니다.”


개신교는 결혼을 성례로 보지 않습니다. 사람이 일련의 서약을 통해 서로에게 구속되기 위해 자의로 맺는 계약일 뿐이죠.”


동성결혼 찬반양측은 시간 동안 이어진 토론을 지켜봤다. 피터 존스턴 목사는 이성애자인 자녀는 물론 레즈비언인 딸의 결혼식도 주관하고 싶지만, 현재로서 스코틀랜드 교회의 문은 굳게 닫혀 있다고 했다. 


반면, 데일 런던 목사는 동성애 행위가하나님 말씀에 반하는 죄악이라며, “하나님이 사악하다고 하신 선한 것이라 수는 없는 이라고 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2014 동성결혼이 허용되었지만, 교회는 교파마다 동성결혼식 거행 여부를 결정할 있도록 되어 있다.




- Harriet Sherwood 

- 옮긴이: 이승훈




Church of Scotland in step towards conducting same-sex marriages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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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7




맨체스터 폭발사고에서 아리아나 그란데 게이팬 사망




그는 열번째 희생자였다. 






아리아나 그란데의 맨체스터 공연 폭발사고에서 게이 남성의 사망이 확인되었다.


당일 공연에서 자살테러범이 죽인 22 중에는 29살의 마틴 헤트도 있었다. 밖에 부상자도 59명에 달했다. 


콘서트 마틴의 댄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실종된 동생의 사진을 올리고 도움을 청했다.


동생 마틴이 어제 맨체스터 아레나에 갔다가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누구라도 보신 있으면 연락 바랍니다.”


그러나 맨체스터 경찰에 의해 10번째 희생자가 마틴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Queerty> 보도에 따르면 마틴의 파트너 러셀 헤이워드도너무나도 멋지고 아름다운마틴이 목숨을 잃은 소식을 접했다고 밝혔다. 


지금 상황이 너무 안좋으니 답변 못드려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행히도 마틴의 멋진 가족과 친구들이 있어서 서로 위로하고 있습니다. 마틴, 사랑해. 언제까지나마틴은 솔메이트 이상이었습니다. 마틴, 제발 돌아와서 코리 재방송 보자.”


SNS에서는 마틴을 추모하는 메시지가 쏟아졌다. 



"마틴 헤트, 너와 함께한 29년은 하루하루가 의미 있었어. 너무 그리울 거야. 우상."



지금 상황이 너무 안좋으니 답변 못드려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다행히도 마틴의 멋진 가족과 친구들이 있어서 서로 위로하고 있습니다. 마틴, 사랑해, 언제까지나."



"너무나도 재밌고 위트 넘치고 익살맞았던 그여 이젠 안녕. 이 세상은 스타를 잃어버렸어."




- MATTHEW WADE 

- 옮긴이: 이승훈




GAY ARIANA GRANDE FAN CONFIRMED DEAD IN MANCHESTER ATTACK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Star Obser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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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3




영국의 동성애 금지법이 50년 전에 폐지되었다는 근거 없는 주장에 빠져선




1967년 제정법의 경축을 앞두고 있는 영국, 하지만 법이 통과한 이후 국가는 반동성애법을 과격하게 적용시켰다. 




테이트의 퀴어 브리티시 아트 때 전시될 헨리 스코트 튜크(1858-1929)의 ‘비평가들(The Critics)’. 1967년 해방 이후로 수십년간 처벌받은 게이 남성은 15000명에 이른다. 사진: Warwick district council (Leamington Spa, UK)



오는 7 1967년도 성범죄법 50주년 맞아 테이트 미술관의 퀴어 브리티시 아트에서 BBC 게이 브리타니아 시즌에 이르기까지 기념 이벤트들이 기획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경축 분위기를 보고 있자면 그와는 상반된 기분이 들기도 한. 1967년은 분명 성과였지만 사실 영국에서 동성애가 합법화된 2013년이었. 1967년의 제정법은 시작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건 헨리 8 재위기간이었던 1533 항문성교가 법으로 금지 이래로 처음으로 이루어진 동성애 관련 법개정이다. 항문성교 이외에 남성간의 다른 성행위는 빅토리아 시대였던 1885 전면 금지되었다.



같이 읽기: 피터 애크로이드가 들려주는 게이 런던 2천년의 비사



최근 필자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1967 해방 이후로도 최소한 15000 명의 게이 남성이 유죄판결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1967 법개정 때는 동성애가 부분적으로만 합법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동성애의 수용과 평등에 반대하던 국가는 다른 반동성애법을 예전보다도 과격하게 적용시켰다. 1885년부터 2013년까지 10만명에 가까운 남성들이 동성간의 성행위로 체포되었다고 한다. 


1967 제정법으로 항문성교 최고형인 종신형이 폐지되었다. 그러나 항문성교는 여전히 차별의 대상이었다. 남녀간의 성관계 승낙연령은 16세였던 데에 반해 남성간의 성관계 승낙연령은 21세로 책정되었다. 이러한 결정은 젊은이들이 연상의 남성들의 꾀임에 넘어가 더럽혀진다는 혐동성애적 개념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21 이상의 남성이 61-21세의 남성과 ()항문성교를 경우 처벌은 2년에서 5년으로 늘어났다.


동성간의 성교는 철저히 사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여전히 기소대상이었다. 철저히 사적인 공간이란 자택에서 문과 창문을 잠그고, 커튼도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어디에도 당사자 외에 다른 사람이 있어서는 된다. 이상의 남성이 성교하거나, 성교 장면을 3자가 사진이나 비디오로 담는 것도 범죄행위였다. 볼튼에서 일곱 명의 남성이 규정을 어겨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명이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이게 1998 일이다. 


1967년의 개혁은 영국과 웨일스에만 적용되었으며, 스코틀랜드는 1980, 북아일랜드는 1982년에 이르러서야 같은 조치가 이루어졌다. 여기에는 군대와 상선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 시설에서 남성간에 성행위는 여전히 불법이었다. 게이 군복무자와 상선 선원들은 민간에서는 이상 불법이 아닌 행위로 인해 1994년까지 처벌 받을 있었다. 동성애 행위로 인한 선원 해고 허용했던 법은 아직도 폐지되지 않고 있다. 


수세기나 반동성애법은 1967 이후로도자연에 어긋나는 범죄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법령집에 남아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동성애 범죄는 항문성교와 성추행이었다. 전자는 법률용어로 buggery라고 했고, 후자는 남성간의 성접촉 전반을 가리키는 것으로 만지거나 키스하는 것까지 포함되었다. 밖에 알선죄도 있었는데, 동성성교를 도모하거나 유인하는 행위가 해당되었다. 유인 간청도 법으로 금지되어 있어서, 실제로 성행위가 일어나지 않았다 해도 동성애적 의도를 가지고 공공장소에서 남성끼리 대화를 나누거나 어슬렁거리는 것만으로도 처벌대상이되었다.


1976 이전에도 이후에도 길거리에서 다른 남자를 보며 웃거나 윙크를 하는 것만으로 처벌받았다. 군경찰 조항법(1847), 교회재판소 재판권 (1860) 같은 구식법에 의한 체포도 여전히 이루어졌다. 



공원과 화장실에는 잠복경찰이 도사렸고, 일명예쁜 경찰 미끼로 이용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1967년의 비범죄화 덕분에 혐동성애적 법이 적용되지 않는 상황도 생겼지만, 게이 남성들의 대부분은 여전히 범죄로 치부되었고, 탄압은 오히려 이전보다 심해졌다.


공원과 화장실에는 잠복경찰이 도사렸고, 게이 남성들로 하여금 성범죄를 저지르게 하기 위해 일명예쁜 경찰 미끼로 이용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게이 사우나도 습격당했다. 동성커플들이 얼굴을 마주보며 춤을 있는 클럽들은매음굴이라는 이름하에 기소되었다. 이렇듯 게이, 양성애자 남성 그리고 일부 레즈비언들은 1990년대에 이르러서도 공공질서 유지라는 명목으로 공공장소에서 키스와 포옹과 같은 애정표시 행위를 하면 평화관련법을 위반했다며 연행되었다. 


부분적인 비범죄화가 이뤄지기 전인 1966 420 명의 남성이 성추행(gross indecency)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필자의 조사에 따르면 1974 해에만 유죄판결 회수가 300% 증가한 1711 건에 이르렀다. 


주택, 고용, 상품 서비스 제공 분야의 혐동성애적 차별도 2003~2007년까지 아무런 법적 보호장치 없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 사람들은 성적지향과 성별 정체성 때문에 취직을 거부당하거나 해고 당했고, 집을 빌리지 못하거나 살던 집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퍼브나 식당에서 쫓겨나는 경우도 있었고, 동성애자 부모는 이혼 소송에서 자녀 양육권을 잃었다. 이런 일을 당해도 법적 보상을 받을 길이 없었다. 


1980년대에 이르자 보수정권의가족의 가치캠페인이 히스테리에 가까운 동성애혐오를 불러일으켰고, 이러한 풍조는 도덕적 공황과 HIV/에이즈로 심화되었다. 1987 보수당 회의에서 기조연설자로 연단에 오른 마가렛 대처는 동성애자도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다는 개념을 공격했다.


이러한 비관용적인 분위기 속에서 게이 남성들의 검거도 대폭 증가했다. 합의에 의한 행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필자는 내무부에서 1989 해만 성범죄 관련 처벌 경고를 1718 건이나 찾아냈다. 기록된 성범죄 사건은 2,022 건으로, 이는 남성의 동성애가 전면 불법이었던 1954년의 2,034 건에 필적하는 수준이다. 


완벽한 개정은 1967년으로부터 36년이 지나서야 이루어졌다. 1885년에 제정된 성범죄법으로 1952 컴퓨터 천재 앨런 튜링에게 유죄가 선고되었고, 그보다 이전인 1895년에는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투옥되기도 했다. 법은 항문성교 금지법과 함께 2003년도 성범죄법 제정되면서 비로소 철폐되었다. 결과 영국과 웨일스는 470년만에 동성간의 성행위를 형법으로 금지하지 않게 되었다. 북아일랜드에서는 항문성교 금지법이 2008년에야 폐지되었고, 스코틀랜드의 반동성애법은 2009년에 철폐되었지만, 계간죄 폐지의 경우 2013년에야 비로소 시행되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영국에서 동성 성교가 범죄행위로 간주되지 않은 이제 겨우 4 밖에 되지 않았다. 




- Peter Tatchell

- 옮긴이: 이승훈




Don’t fall for the myth that it’s 50 years since we decriminalised homosexuality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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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95-23




당신이 화장실 에티켓을 운운하고 있을 때, 비키 톰슨 같은 트랜스젠더 여성들은 어둠속에서 죽어가고 있다. 




남성 교도소에서 죽어가는 트랜스젠더 여성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침묵이 시사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강간 또는 살해를 당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비키 톰슨(오른쪽)과 파트너 로버트 스틸. 로버트는 리즈 왕립교도소에 전화해 비키기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고 경고했었다. 사진: Robert Steele/Social Media


나쁜 짓을  것만 같아나도 그렇고 싶진 않은데 더는  있겠어.”


2015 21세의 나이로 남성 교도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트랜스젠더 여성 비키 톰슨이 남긴 쪽지에 적힌 말이다. 



같이 읽기배심원단, '남성 교도소에 수감됐던 트랜스젠더 여성자살할 의도 없었다'



4년차 애인이었던 로버트 스틸 리즈 왕립 교도소에 전화해 비키가 많이 힘들어 하고 있는 것 같다고 경고했다으레 젊은 트랜스젠더들이 그렇듯 비키도 학대와 자해중독의 경력이 있었고, 12 때는 아는 어른으로부터 강간을 당한 적이 있었지난주에 열린 재판에서 배심원단은 리즈 교도소에서 그녀가 받았던 대우는 부적절하고전문성이 결여된 것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비키는 교도관에게 “아마 관에 실려 나갈  같다 말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교도소에서는 실제로 수차례에 걸쳐 성추행과 혐동성애적 폭력괴롭힘에 시달렸다. 


그런데 왜 아무도 야단을 피우지 않는 걸까라디오에서는  이런 천인공노할 일을 두고 토론회를 열지 않는가 TV 토론회는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논하지 않는가우리 사회가 도움이 절실한 이들을 외면하고 있다는 분노는페미니스트들의 반응은 가련한 여성과 그를 죽음으로 몰고간 환경에 대해 어째서 다들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걸까?


한편 런던의 바비컨 센터가 화장실에 ‘성별중립'이라는 표지'를 내걸자 ‘트랜스젠더 이슈 신문 일면을 장식하기 시작했다제니 머레이는 트랜스젠더 여성이 진짜여성  해서는 안된다 말도 안되는 주장을 시전했고, <선데이 타임스>도 무려  페이지에 걸쳐  문제를 다루었다지난주 필자는 ITV 채널의 ‘디스 모닝 출연해 남자 학생들이 교내에서 치마를 입을 권리가 있는지를 두고 케이티 홉킨스와 토론 벌였다케이티 같은 사람들은  트랜스젠더의 죽음보다 살아 있는 트랜스젠더가  입는지에 대해  분개하는 걸까?


트랜스젠더 사안에 대해 언급해 달라는 요청이 필자에겐  쇄도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전화가 울리지 않는걸까2014 켈리 맬러니가 트랜스젠더로 커밍아웃했을  필자는 영국의 뉴스프로란 뉴스프로에는 죄다 불려 나갔그리고 올초에는 BBC ‘Woman’s Hour’에서 보이스메일이 왔는데들어보니 국민의료보험이 ‘임신여성이라는 표현 대신 ‘임신한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것이 마치 대단한 사건이라도 되는 것마냥 필자의 의견을 묻는 내용이었다. 


그럼 아무도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는 문제에 대해 질문을 해보려 한다여자로 살아온 트랜스젠더 여성이  21살의 나이로 남성 교도소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가그녀는 17  이미 비키로 개명했고고향 키슬리에서도 모두 그녀를 여자로 받아들였다그런 그녀가 전환시술 지원을 받지 못한  의사가 먼저 약물 문제와 음주 문제부터 고쳐야 한다고 조언했기 때문이었다그럼 비키는 애초에  이런 문제를 안고 있었을까필자도 트랜스젠더 여성으로서 여러 상황을 고려해 추측을    있다.


필자가 국민의료보험을 통해 선전환을  필자의 삶을 정말 수월하게   호르몬 요법과 시술을 받기까지 2년이란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기간 동안 필자는 우울증과 자살충동에 시달리며 정말 많은 약물을 복용했고, 그러다 비키처럼 철창신세까지 지게 되었다. 


 스페이드의 저서 ‘Normal Life에는 감옥에서 비참하게 삶을 마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경범죄를 저지른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에게 있어 이런 결말은 너무나도 흔한 일이다비키에게 필요한  남자 교도소가 아니라 정신건강 지원이었다남자교도소는 특히 의료지원이 거부될 경우 잔혹하고 심각한 처벌이   있다지난주 재판에서 배심원단은 비키에겐 남자 교도소가 ‘옳은’ 이었다는 결정을 내렸지만로비단체 프레스  체인지(Press for Change) 공동창시자로트랜스젠더들에게 법률 상담을 제공해  스티븐 휘틀 교수는 비키가 감옥에서도 “다른 젊은 여성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아야 했다 주장했다.



비키 같은 사람들을 돕는  아니라면 트랜스젠더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고취시키는 이유가 대체 뭔가?”



비키가 감옥에서 죽지 않았다면 우린 영영 비키가 처한 상황에 대해 알지 못했을 것이다그런데 영국에는 수많은 비키 톰슨이 존재한다전국 각지에서 수만여 명의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이 편견과 무시차별 때문에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를 노치고 있는 것이다영국 트랜스젠더 청소년들  절반 가까이가 자살을 시도해 봤다 한다그런데   문제는 공개 토론회에서 다뤄지지 않는가?


비키 같은 사람들을 돕는  아니라면 트랜스젠더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고취시키는 목적이 도대체 무엇일까? 우리 트랜스젠더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길 바란  우리가 겪는 편견과 차별을 찾아내 토론하고 종식시키기 위해서였다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무지한 전문가들이 트랜스젠더를 학술토론의 도구로 사용하며 무례하고불필요하며 그릇된 주장을 펼치는 동안 우리는  심한 수치심을 강요당하고 있을 뿐이다.


2017남의  개까지 트랜스젠더에 대해 할말이 있을 정도로 트랜스젠더가 주요 화제로 부상했다그런데 우리가 유행을 좇아 트랜스젠더가 되는 경우 있다는 페이 웰든의 의견에 정신을 팔고 있는 동안, 어린 비키들은 어둠 속에서 죽어가고 있다. 


트랜스젠더와 그들의 삶에 대한 대중의 환상은 언제가 되어야 수그러들까 대답은 이미 나왔다트랜스젠더가 제도적 편견과 차별지지의 결여로 죽어야  관심도 비로소 사그러드는 것이다언론도 트랜스젠더에 집착하지만우리가 강간살해 당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지면 갑자기 아무도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트랜스젠더를 학술연구에 이용해 먹고정체성에 대해 나불대면서 정작 비키 톰슨같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오명과 무관심에 대해선  말이 없는 사람들은 정말 부끄러운  알아야 한다.




Paris Lees

옮긴이이승훈




While you debate toilet etiquette, trans women like Vikki Thompson are dying in the dark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출처: http://mitr.tistory.com/3249 [해외 성소수자 소식 블로그 미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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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0




피터 애크로이드가 들려주는 게이 런던 2천년의 비사 




왕성한 활동으로 유명한 전기 작가 역사가 소설가 애크로이드가 그에게 가장 친숙한 도시의 동성애사로 다시 돌아왔다.





피터 애크로이드, ‘그냥 별 생각이 없는 거죠.’ 사진: Graeme Robertson for the Guardian



피터 애크로이드는 런던 중심부 나이츠브리지의 아파트를 찾은 필자를 서재로 데리고 들어갔다. 책과 인쇄물이 빽히 들어찬 그곳은 비좁고 다소 단조로운 공간이었다. 창문에도 건물 뒷면이 우울하게 펼쳐져 있었다. 어느덧 60 후반에 접어든 애크로이드는 스타하노프적인 취향으로 유명한 작가다. 그의 작품들은 책장 하나를 채우고도 남을 정도지만, 그건 책이 하나같이 두께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1990년에 발표한 디킨스 전기집 특히 어마어마한데 1,195페이지나 된다.) 필자가 계산해 바로는 지금까지 18편의 픽션과 30편의 전기집과 역사물이 있다. 전설적인 음주 이야기를 봐도 있듯, 애크로이드는 무슨 작업이든 대강대강 하는 법이 없다. 


학계에서는 이를 갈겠지만, 찰리 채플린, 에드가 앨런 , 터너의 수채화 기법, 영국스러움의 기원, 베네치아 역사 등의 주제를 잔잔한 필치로 다뤄온 그는 전문성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런 그가 가장 애착을 가지는 그가 태어났고 생의 대부분을 보낸 , 바로 런던이다. 런던은 그의 작품 전반에 존재가 묻어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의 런던에 대한 집착은 너무 심오한 것이어서 본인도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할지 난감해 했다. “뭐랄까. 런던은 항상 피난처였습니다.” 지정학적 피난처라는 뜻인지 개인적인 피난처라는 뜻인지 확실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다일 것이다.


런던의 동성애사를 다룬 그의 신작 퀴어 시티 그에겐 너무나도 익숙한 영역을 다룬 작품으로, 작품이 이제야 나왔다는 게 오히려 신기할 정도다. 사실 엄연히 말하면 전에도 비슷한 주제를 다룬 적은 있다. 1979 ‘Ackroyd P’라는 필명으로 그의 첫작품은 세상에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의복도착과 드래그를 다루었다. 한편 오스카 와일드의 픽션을 일기 형식으로 다룬 1983년도 작품은 다소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의 서재에는 지금도 토머스 모어와 엘리자베스 시대의 동방박사 디의 초상화 사이에 오스카 와일드의 사진이 걸려 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기록이 전무하다시피 켈트 시대의 런던에서 기독교가 도래한 서기 300년대, (오스카 와일드를 비롯한) 19세기의 초대형 섹스 스캔들들, 그리고 현대의 동성애자 인권투쟁에 이르기까지 훨씬 심오하다. 여느때처럼 이번 신작도 과격할 정도로 수용적이고 라블레적인 특성이 돋보인다. 머리를 현란하게 기르고 콧수염을 기른 켈트인들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소위사나이들간의 열정적인 우정 높이 샀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율리우스 시저의 말을 인용하는가 하면, 곧바로아직도 런던 시내를 활보하는 그들을 있다 풍자적인 문장을 던지기도 한다.


유행이란 바뀌는 법이지만 애크로이드에게 있어 역사란 계속해서 반복되는 괴기스런 대상이다. 켈트족이 지금의 기준으로 다소 캠프[각주:1]했다면 (애크로이드는 용어가 1800년대 중반 게이들의 은어 폴라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초서의 켄터베리 이야기에 나오는 면죄부 관리인도 그렇다고 있다. (애크로이드는 그가 전형적인런던 이반이라고 한다.) ‘몰리하우스 모이는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18세기 런던의 클럽 매춘굴이었던 몰리하우스는 멋을 게이들이 서로 어울리며 섹스를 즐기기도 하는 공간이었다.


다른 동성애 문화 연대기와는 달리 애크로이드는 레즈비언 문화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조지 5 시절의 딜도 가게(레스터 광장의 가게는 오직 딜도만을 전문적으로 판매했다고 한다) 케이브 오브 하모니, 오렌지 트리 에드워드 8 시절 시가릴로 연기가 자욱했던 비밀클럽을 소개하는 구절은 정말 유쾌하다. 



"인구대비로 본다면 18세기 런던에도 게이바가 지금만큼 많았죠."



동성애가 일부 합법화된지 50년이 지난 지금, 동성애 문화보다 변동을 겪은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애크로이드는 사실 그렇게 많은 것이 바뀐 아니라고 한다. 


표현방식은 바뀌지만 정수는 그대롭니다. 지금도 여전히 드래그 바가 있고, 의복도착 행위도 찾아볼 있죠. 공원 같은 곳에 가면 만남의 장소도 있고, 남성전용 클럽도 있어요. 인구대비로 본다면 18세기 런던에도 게이바가 지금만큼 많았죠.”


이러한 현실은 도시의 구조에 영향을 미쳤을 아니라 가끔은 은밀하게 가끔은 다소 대범하게 시민들의 삶을 지배하기도 했다. “젠더플루이드라는 용어가 2016에야 옥스포드 영어사전 올랐지만, 애크로이드가 샅샅히 훑어본 사례 중에서도 14세기의 매춘부 라이크너의 경우를 보면 런던 사람들은 예전부터 사전편찬인들의 얼굴을 붉힐 행동을 왔었다고 한다. 


라이크너는 일리노어라는 이름을 쓰며 여장을 하고 다녔습니다. 어떨 때는 남자로서 남자 손님을 받았고, 여자로서 남자 손님을 받는가 하면 여자로서 여자 손님을 받기도 했죠.” 애크로이드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 역할들을 너무 자연스럽게 소화해낸 나머지 아무도 그런 그를 대범한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애크로이드의 작품은 괄목할만한 솔직함이 특색이지만, 자기 자신을 이야기틀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그냥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싫다며(그는아무 생각이 없어요라고 한다.), 자신의 경험을 글로 옮기는 거부반응이 있다고 한다. 


1950년대 이스트 액튼의 공영주택 단지에서 자란 애크로이드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애크로이드가 어릴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고 (후일 아버지를 찾지만 왕래한 기간은 길지 않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어머니 오드리의 신심이 그의 성장과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애크로이드는 독자였다. 나간 아버지가 언급되는 일이 없었듯이,  섹슈얼리티 또한 결코 입에 담을 없는 주제였다고 한다. 어머니는 불과 세상을 떠났는데, 애크로이드는 어머니와 자신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결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고 한다. 만년에도 그랬을까? 애크로이드는 퉁명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 사람은 가까웠을까? “딱히 가까운 사이는 아니습니다.”


장학금을 받고 캠브리지를 다닌 애크로이드는 예일대에서도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원 과정을 다녔다. 그리고 24세가 되던 해부터 <스펙테이터>지에서 문학편집자로 활동하게 된다. 그가 처음으로 출판한 작품은 타자기로 찍은 시집 ‘Ouch’(1971)이었는데, 진솔한 내용이 감탄을 자아낸다. 

시인은 서커스보이를 입으로 줬다

그의 가치는 오직 그만이 알고 있었으니…”


그런데 1987 “The Diversions of Purley”라는 시집을 애크로이드는 이미 명성을 얻은 상태였고, 과거의 대범함이 사라진 그는 시집에 나오는 모두그녀 바꿔버렸다. “가족들을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때만 해도 다들 살아 있었으니까요. 가족들이 이런쪽으로는 전혀 몰랐기 때문에 너무 과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겁장이가 되는 길을 택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후회도 되지만, 어쩔 없죠.”


시집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뮤즈가 떠나 버린 느낌이었습니다. 그게 끝이었죠.”


당시 그는 예일에서 만난 브라이언 이라는 무용수와 만나고 있었다. 사람은 1994 쿤이 에이즈 관련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함께 했다. (애크로이드는 뒤로 연애를 했지만 지금은 독신이다.) 때의 경험은퀴어 시티에서 에이즈 도래와 납득할 없는 입원조치 그리고 사망을 다룬 파워풀한 묘사에도 녹아 있다. “현실은 도저히 감당하기에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증상이란 발열, 떨림, 오한, 식은땀, 시력저하, 심한 설사, 일반적인 무기력증 등등이었다. 처방이라곤 진통제, 자가주사, 효능을 없지만 끊임없이 먹어야 하는 알약, 튜브, 주사가 고작이었다. 병원에 간다는 자체가 모욕적인 경험이었지만, 때는 병동에 누워 있으면 침대에서 젊은이가 웅크리고 누워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었다.”



자기 이야기를 쓰고 싶은 마음이  번도 일어나지 않은 걸까?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전두엽 수술이라도 받고 나면 속에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지도 모르지만."



필자는 구절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비통하기도 했지만 평소의 애크로이드답지 않게 자서전적인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부분을 넣을지 말지 고민했을까? 그는 걸걸한 목소리로가능한 자신을 포함시키지 않고 산뜻하게 표현하려 했다 한다. “저는 서술에 작가 자신이 들어간 책을 별로 믿지 않습니다. 저속하죠.”


자기 이야기를 쓰고 싶은 마음이 번도 일어나지 않은 걸까?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전두엽 수술이라도 받고 나면 속에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지도 모르지만.”


사실 지난 20년간 그의 작업은 다채로운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연구조수(요즘은 명이다) 정기 간행물과 자료집을 훑어보고 상자와 파일집에 정리하면, 애크로이드가 그걸 보며 메모를 하고, 토픽 별로 묵직한 더미로 정리하는 전부다. 계속과 우연에 대한 그의 심리지리학적 관심은 성격에서 비롯된 부분도 있지만, 이러한 작업방식에서 비롯되기도 했다. “자료들을 모으다 보면, 평소에는 눈에 띄지 않는 연결고리와 패턴이 보이곤 합니다.”


팩트를 향한 그의 무미건조한 열정은 지금도 여전하지만, 요즘은 예전같지 않다고 한다. 때는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한 적도 있었다. 하루를 깔끔하게 등분해서 역사서와 전기집, 소설을 집필하는 것이다. ‘퀴어 시티 마친 지금 그에게 남은 유일한 작업은 6부작으로 영국사 마지막 권을 완성하는 일이다. 보통인간이라면 당해내기 어려운 분량이지만 애크로이드의 기준으로 보면 웃어넘길 정도로 대수롭지 않은 작업이라고 한다.


필자는 다소 놀랐다. 정말 그것 외에는 미완성 작업이 전혀 없냐고 묻자, 그는 무뚝뚝한 말투로 원래는 소설을 계획이었지만 포기했다고 한다. “중간에 막혀버려서 지치더라구요. 언젠가 천사가 나머지 스토리를 속사여주길 바래야죠.”


전에는 글길이 막힌 적이 번도 없었다는 걸까? “ 쓰는 멈춰야 하는 상황은 번도 없었습니다.”


요즘은 무슨 일을 하든 자신의 기력에 조금 신경을 쓰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블룸스베리에 있던 아파트도 팔아버렸고, 근처에 있는 다른 집도 팔아버렸다고 한다. (“ 고생을 하면서 굳이 갖고 있을 필욘 없더라구요.”) 다리를 다친 후로는 걷는 예전같지 않다. 지금도 외출은 하지만 쉽지는 않다고 한다. 런던의 정령들을 깨우며 거리를 누비고 다니던 날은 이제 지나갔다. 지금도 약주를 하지만 저녁에만 마시고 양도 줄었다. (그는 애써 웃으며 의사가 시킨 아니라 그냥 자기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지금도 저녁은 밖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지만, TV 앞에 앉아 있는 날도 늘었다. “그냥 아무거나 보는 거죠. 정말 아무거나.”


작가가 아닌 삶을 상상할 있는지 물어 보며, 예전처럼차라리 팔을 잘라버리겠다 답을 기대했지만 그는 망설였다. “ 지금도 그런 심정이지만 사실 모르겠어요. 그냥 하고 싶은 말과 하고 싶은 일을 후엔 멈추는 시점이 있는 같아요.” 약간 성가신 듯한 말투였다. “하던 관두는 사람도 많잖아요.”


필자는 그가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니며 가벼운 글이나 읽으며 지내는 그를 상상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자 그의 말투는 다시 강경해졌다. “ 그렇게 살란 법은 없잖아요. 같으면 뭐든 그냥 해치우고 말죠.”




- Andrew Dickson

- 옮긴이: 이승훈




Peter Ackroyd: A secret history – 2,000 years of gay life in London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1. camp: 문학, 예술, 패션 등의 분야에서 그 악취미로 인해 오히려 일종의 매력을 띄게 되는 미학. 게이 남성의 여성스런 행동거지를 가리키기도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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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8




배심원단, '남성 교도소에 수감됐던 트랜스젠더 여성, 자살할 의도 없었다'




'관에 실려 나갈 이라고 경고했던 비키 톰슨(향년 21세) 정말 리즈 교도소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2015년 11월 13일 사망한 채 발견된 비키 톰슨. 사진: SWNS.com



배심원단이 남성 전용 교도소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던 트랜스젠더 여성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마음이 없었으며, 여성 교도소로 이감되지 않은  옳 결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웨스트 요크셔 키슬리라는 곳에서 보호소를 드나들며 자란 21살의 나약한 청소년 비키 톰슨은 2015 11 13 리즈 왕립교도소의 어두운 감방에서 목을 매단 발견되었었다. 웨이크필드 검시관 법원에서는 톰슨이 교도소에 들어가기 여러 사람에게나올 관에 실려 나올 이라 경고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톰슨은 좀도둑질에 관한 법원 명령을 위반해 교도소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보호관찰 면담에도 차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파트너는 밝혔다.


2015 1 웨스트 요크셔 경찰은 사인규명이 끝난 톰슨이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발생한 성범죄 건을 신고한 적이 있다고 밝혔었다. 이에 남성을 상대로 취조가 이루어졌지만 기소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얼마후인 2015 10 19 교도소에 입소한 톰슨은 다른 재소자가 자신과 함께 밤을 보내자며 아래로마누라라고 적은 종이쪽지를 넣는 ,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결국 톰슨은 본인의 요청에 의해 교도소에서 가장 유약한 재소자들이 수감되는 구역으로 이감되었다. 오래전부터 자해와 약물남용 과음 경력이 있던 톰슨은 자살감시 대상자였지만, 사망직전 등급이 내려갔고 감시는 시간에 차례만 이루어졌다고 한다. 


톰슨은 감시가 없는 때를 틈타 목을 매달았다. 사인검사 결과 당일저녁 교도관이 없었다고 한다. 특히, 톰슨이 수감된 구역에는 교도관이 사람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마저 원래는 주간당직이었으나 야간까지 연장근무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저녁 내내 울리던 화재경보음을 다루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한다. 


또한 수많은 재소자들이 스파이스[각주:1] 비롯한 중독성 합성 마리화나를 반입해 복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교도관들은 이를 제재하기 위해 분주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부검 톰슨의 피에서도 약물을 복용한 흔적이 나왔었다. 


사건당일 교도관들은 폭동진압용 작업복을 입고 교도소에서도 가장 위험한 구역의 감방에 들어가 있었다고 한다. 한편, 톰슨의 방은 전구가 고장나 어두웠고, 발견되었을 때는 이미 손을 쓰기엔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배심원단은 톰슨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의사가 없었다는 결론을 만장일치로 내렸다. 그러나 생전의 파트너와 교도소에서 근무하던 약물치료 간호사가 톰슨은 여성 교도소로 이감되고 싶어했다고 증언했지만, 배심원단은 리즈 왕립교도소가 톰슨에게적합한시설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톰슨이 절망한 것은국민의료보험, 리즈 주민 보건 재단, 교도소 체제 자신의 가족 다양한 원인이 있었다 것이다.


또한 배심원단은 교도관들이매우 가혹한 근무상황에서 일손도 부족했기 때문에 중압감이 상황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배심원단은이들 각각 단체가 비키의 상황을 숙지하고 있었지만, 심신의 상태를 전반적으로 조정하기 위한 조직적인 구조가 결여되어 있었다 리즈 왕립교도소내에서 톰슨이 받은 대우는전문성이 결여되어 있었고, 이토록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는 개인에게는 부적절한 이었다고 밝혔다. 


비키의 감정기복과 교도소 적응 여부와는 상관없이 정신상의 문제와 자해 자살협박 경력이 있는 트랜스젠더 여성으로서 많은 관심이 주어져야 했습니다.”


또한 대심원단은 톰슨의 감시 빈도에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했다고 덧붙였다. “비키가 사망한 저녁 이루어진 감시는 부적절한 것이었습니다. 특정 개인에게 책임이 있는 아니지만, 좀더 빈번한 감시와 확고한 노력으로 비키와 연락을 취했더라면 죽음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한편 사법부 대변인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정말 비극적인 사건이며, 비키 톰슨의 유가족과 지인 여러분께 조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톰슨의 관리에 착오가 있었음을 시인하며, 이미 교도소 행정감찰의 조사가 있었고, 리즈 왕립교도소에서도 재소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새로운 조치를 도입했습니다. 향후 사인규명 결과를 신중히 고려해 것입니다.”


한편 인권가들은 톰슨이 남성교도소에 수감된 것이 옳은 결정이었다는 평결이 나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로비단체 프레스 체인지(Press for Change) 공동창시자이자 트랜스젠더들에게 법적 조언을 제공해 스티븐 휘틀 교수는 톰슨이 겪은 처우는 법에 저촉되며, 톰슨은 애초에 여성 교도소에 수감되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비키가 성별확정을 위한 시술을 받았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평등법에 따르면, 재확정이란 사회적인 것이지 의료상의 절차가 아닙니다. 따라서 톰슨은 입소하는 다른 여성들과 똑같이 다루어져야 했습니다. 문제는 재소자 신분으로는 평등법에 입각한 주장을 펼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에서 평등법을 연구하고 있는 휘틀 교수도 40년전 성전환을 거쳤었다.


캠페인 단체 인퀘스트(Inquest) 데보라 콜스 회장은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사망 사건이었다 한다. “나약하고 어린 트랜스젠더 여성이 남성교도소에 보내져 학대와 혹사를 당했으니까 말이죠. 그녀가 반평생을 공개적으로 살아온 성별은 거의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리즈 교도소는 영국에서 자살율이 번째로 높은 교도소입니다.”


톰슨의 생은 짧고도 가혹했다. 1994 2 키슬리에서 태어난 그의 원래 이름은 리스 로버트 리차드 톰슨이었다. 처음 보호소로 보내진 생후 불과 밖에 됐을 때였다. 당시 톰슨의 얼굴에는 멍이 있었고 손에는 손가락 자국이 있었다고 한다.


 사회복지사들은 알콜중독자였던 톰슨의 어머니 리사 해리슨를 학대의 범인으로 의심했지만, 해리슨은 이를 부인했다. 법정에 해리슨은 손에 손가락이 밖에 없기 때문에 자신이 그런 학대를 저지르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도, 톰슨이 10-11 여자 옷을 입히고너는 남자가 아니야라고 하는 , 톰슨에게끔찍한 저질렀다는 점은 시인했다. 


법원에서는 톰슨이 12 이모가 알고 지내던 남성과 첫경험을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때도 사회복지사들이 개입해 톰슨을 뉴어크에 있는 위탁시설에 맡겼다고 한다. 한편 아버지는 일찍 사망했기 때문에 톰슨은 아버지를 전혀 모르고 자랐다고 한다. 해리슨은 친부가술에 취할 때만 비키 소식을 궁금해 했다 증언했다. 


17세가 되던 톰슨은 이름을 비키 루이즈 앤지 제이드 톰슨으로 개명했다. 키슬리 사람이라면 누구나 톰슨이 여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성별 재확정 시술은 받지 않았고, 병원에서도 전환을 시작하기 전에 약물 문제와 음주 문제부터 고치도록 조언했다고 한다. 톰슨이 교도소 지침대로 남성 교도소에 수감된 것도 성별인정 증명서를 신청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톰슨과 연인 사이였던 스틸은톰슨은 자신을 여자로 받아들였다 여성 교도소로 이감되고 싶어했다고 증언했다. 


검시관은 톰슨이 옥중에서 스틸에게 보냈다는 편지를 읽었다. “ 여긴 있을 같아. 언제 내보내줄지도 모르고. 머리속이 온통 뒤죽박죽이라 나쁜 짓을 것만 같아. 나도 그렇고 싶진 않은데 더는 있겠어.”


스틸은 사람이 함께 약물을 복용한 맞지만, 톰슨은 마지막으로 교도소에 들어갈 새롭게 재기할 결심을 했었다 한다. 


한편 증거제출을 요구받은 다른 증인은 톰슨이 남성교도소에 머물고 싶어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리즈 왕립교도소에서 알고 지내던 알랙스 부콕은 톰슨이 남성 교도소에서신과 같은 대우 받았다며, 여성 교도소에 들어가면 이런 대우를 받지 못할 거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당시 평등부에 재직하던 포울 소렌슨도 톰슨에게 이감을 원하는지 물어봤지만, 여성 재소자들은성깔이 사납다 거부했다고 한다.


톰슨은 이감을 원할 경우 교도소장에게 편지를 보내야 한다는 지시를 받았지만 편지를 보내는 일은 없었다. 


한편 리즈 왕립 교도소가 톰슨을 트랜스젠더 여성으로서 수감하려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샤워도 혼자서 했으며, 머리를 말거나 제모도 규칙적으로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죄수복 상의를 배꼽티처럼 입고 다녔을 때는 훈계를 받았다고 한다. 사망한 채로 발견 되었을 때는 양말을 채운 브래지어를 차고 있었다고 한다. 


리즈 왕립교도소에서는 재소자들의 사망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법정에서 톰슨의 유가족을 변호한 민튼 모릴 변호협회는 지난 5년간 14명이, 1993 이후로는 33명의 재소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톰슨이 사망한 이후로도 17개월 동안 다섯 명이나 자살을 택했다. 


영국 사마리탄스 협회(the Samaritans): 116 123, jo@samaritans.org

미국 자살예방 핫라인(National Suicide Prevention Hotline):  1-800-273-8255

호주 위기지원 서비스 라이프라인(Lifeline): 13 11 14


한국:

마음연결:

자살예방센터 핫라인( 24시간 상담전화) : 1577-0199
핸드폰으로 연락하실 경우 (지역번호) 1577-0199 누르시면 됩니다.




- Helen Pidd 

- 옮긴이: 이승훈




Transgender woman at male prison did not mean to kill herself, jury fi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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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pice: 마리화나의 일종. 약물검사에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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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7




나같은 게이 스포츠선수들은 이상 숨어선 된다. 방법은 있다..




나는 레이서 중에서 처음으로 커밍아웃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하지만 스포츠계에는 LGBT평등 이슈를 두려워 다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대니 왓츠: ‘모터 스포츠계에서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밝히는 데에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다.’ 사진: Danny Watts



팀의 일원이 된다는 정말 최고로 기쁜 일이다. 반면 스포츠계의 분위기 때문에 자신을 숨겨야 한다면, 엄청난 고립감을 느끼게 된다. 으레 스포츠계의 동성애혐오 논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축구다. 관중석의 구호와 선수들 사이에 오가는 야유 등등... 하지만 축구만 그런 아니다. 내가 몸담고 있는 모터 스포츠도 마초경향이 매우 심하다. 그래서 또한 올초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하기 전까지 오랜 시간 동안 침묵을 유지해야 했다.



같이 읽기: 그레그 클락 영국 축구연맹 회장, '축구계는 LGBT 수용에 심각한 문제 안고 있다'



그래서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아 진정한 자신을 숨기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알리기로 했다. 사실 내겐 숨는 이상이었다. 사람들에게 내가 행복하고 활달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줘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으로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 했다. 사람들이 알아차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말이다. 커밍아웃을 고려하기 시작할 즈음 (올해초 커밍아웃했다), 정신은 온통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남들이 내게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원치 않았던 나는  행복한 척만 , 실제로 행복할 겨를따윈 없었다. 


다들 말로는 게이든 일반이든 상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모터 스포츠계에는 나처럼 커밍아웃한 선수가 거의 없다.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공개하는 데에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다. 사회의 다른 분야에서는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모든 분야가  그런 아니고 특히 스포츠계는 심하다. 


동료들한테는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동료들한테 일찌감치 털어놓았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스포츠계의 LGBT들은 여전히 눈에 띄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 그건 사람들이 선택한 아니다. 접하는 욕설과 야유를 통해너같은 사람은 환영 못받는다 메시지를 접하는 것이다. 나는 모터 스포츠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오랫동안 다른 사람인 척하며 살아야 했다.


커밍아웃하지 못한 선수들은 일상적으로 이런 비하발언을 접하며나는 남들과 다르다 생각을 굳히게 되고, 결국엔이런 사람은 밖에 없을 라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또한 들키기 싫었고, 그렇게 남들이 내게 부과한 이미지에 맞추며 살아갔다.



"아무말도  하는 것보다 차라리 틀린 말이라도 하는 낫다. 사람을 정말 미치게 만드는 다름아닌 침묵이기 때문이다."



LGBT 평등권에 지지의 뜻을 보이는 것이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큰힘이 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편에 서주는 사람도 있다는 , 누구나 스포츠계의 증오와 상처를 퇴치할 있다는 , 그리고 누구나 스포츠를 관전하고 즐길 있다는 알리기 위해 우리 모두가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스포츠의 수용성을 늘리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쉬운 해결책은 없다. 하지만 후원업체와 관리부는 지금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들의 관할범위와 영향력이 매치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사가정체성을 불문하고 누구나 받아들인다 말하는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가 몸담고 있는 스포츠계도 그렇게 생각할까? 라커룸은 과연 누구나 환영하는 분위기일까? 그리고 팬들은? 이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사 사람의 의견은 의미가 없다. 


이번주 스포츠계 이사들이 모여 레인보우 레이스 회담 열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하지만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진지한 토론이 필요하다. 모든 것을 선수 혼자서만 짊어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미 선수로서 많은 책임감을 이고 있는데, 평등권까지 지지하라는 너무 불공평한 일이다. 


스포츠계 인사들 중에는 사안을 다루기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아예 손을 대지 않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경험을 공개하는 두려움을 타파시키고, 침묵이야 말로 해를 가져다 준다는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아무말도  하는 것보다 차라리 틀린 말이라도 하는 낫다. 사람을 정말 미치게 만드는 다름아닌 침묵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접하고 다른 프로 선수들도 자신 또한 도움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모든 LGBT들이 혼자가 아니란 알아줬으면 좋겠다. 


LGBT들이 온전히 스포츠에 참여하기까지는 아직도 길이 멀다. 하지만 더이상 레이서들이 나와 같은 경험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스포츠가 자신을 숨겨야 하는 곳이 아니라, 최상의 모습을 보여줄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 Danny Watts

- 옮긴이: 이승훈




Gay sportsmen like me shouldn’t have to hide. There is another way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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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5



영국: 120여개 학교에서 성별중립 교복 도입




LGBT 자선단체에 따르면 중학교보다 초등학교의 성별중립 정책 시행율이 높다고 한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유니섹스 교복 정책을 시행하는 등, 교복에 대해 성별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초등학교가 늘고 있다. 사진: Guerilla/Getty Images


교내 LGBT 연수활동을 개발하는 자선단체에 따르면, 성별중립 교복을 도입한 학교가 최소한 120개에 이르며, 중학교보다 초등학교의 도입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별중립 교복 정책은 남학생 여학생 누구나 치마 또는 바지를 입을 있도록 하거나, 성별 관계 없이 유니섹스 교복을 제작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자선단체 교육&존중(Educate & Celebrate) 창립자 엘리 반즈 박사는 120 학교가 모범 프로그램에 가입했으며, 향후 성별중립 정책 시행 학교는 수백 여개로 전망이라고 한다.


저희 경험으로 초등학교가 중학교보다 빨리 도입하는 편이고, 특정 부류의 학교나 지역의 도입율이 많거나 하는 경향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립학교 하이게이트 스쿨은 지난주말 성별중립 교복을 도입해 누구나 치마 또는 바지를 입을 있도록 하는 한편, 유니섹스 화장실 정책 , 남학생 또는 여학생과 같은 용어 대신학생(pupil)’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방안에 대해 학부모들과 논의하면서 화제를 불러모았다.


하지만 없이 이와 유사한 정책을 조용히 시행하고 있는 학교도 수백여 곳에 이른다.


머메이즈(Mermaids) 수지 그린 이사장은아주 조용히 드러나지 않게 이러한 정책을 시행하는 학교도 많다대부분 순조로운 이라고 한다. 머메이즈는 아이들의 성별 정체성 문제와 부모들을 지원하는 자선단체다.


성소수자 집단괴롭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ㅊ부로부터 440 파운드(한화 63 ) 지원을 받는 학교도 많다. 


작년 가디언지에서 실시한 조사 따르면 성별 정체성 때문에 의료시술을 찾는 청소년 아동이 2700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2700명은 상황이 가장 심각한 경우이고, 출생시의 성별에 따라 옷을 입거나 행동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아이들도 많다.


그린 이사장은 전체 인류의 1% 성별 정체성 문제를 안고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며 특히 청소년들에게는 이러한 문제가 영향을 미칠 있다고 한다.


자살율이 평균보다 50% 높다고 합니다. 저희 협회에서 다루는 아이들은 그냥 여성스럽다기보다는 고개를 돌리고 남자가 아니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