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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6.05 크로스 드레서 레즈비언 난봉꾼이 바하마 섬을 통치하게 된 사연

2016-11-15




크로스 드레서 레즈비언 난봉꾼이 바하마 섬을 통치하게 사연




인형을 데리고 다니며 수많은 여자와 염문을 뿌린 골계가 카스테어스를 소개한다. 




당당한 레즈비언이자 즉석해적, 기업가 겸 바람둥이 섬소유자였던 조 카스테어스. 삽화: Alexander Barattin/Daily Xtra



바하마 제도는 해적의 역사 간직한 곳이지만 1940년대 미국인 관광객을 가들 실은 배가 들어올 때만 해도 700개가 넘는 어디든 자유롭게 다닐 있는 시대였다. 그런데 승객들이 웨일 케이에 도착했을 , 섬을 장악하고 있던 레즈비언 영주 카스테어스(Joe Carstairs) 이들을 연행해 버렸다.


사람들 앞에 나타난 카스테어스는 섬의 여신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카스테어스와 칼을 심복들은 영역 침범자들을 포박하고 밤새 겁을 주었다. 


여행객들은 이튿날 아침 풀려났는데, 아마 다들 동요와 혼란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반면  골탕먹이는 좋아했던 카스테어스는 다음 파티 자랑할 무용담을 얻게 되었다. 


저널리스트 케이트 서머스케일이 기묘한 모험꾼 매리언 카스테어스를 처음 <데일리 텔레그래프>에서 기사를 때였다. 1900 영국 런던에 태어난 카스테어스는 1993 타계했다. 당시 서머스케일은 카스테어스의 부고를 맡게 되었는데, 거기서 걸음 나아가 1997년에 전기집 The Queen of Whale Cay(웨일 케이의 여왕) 내게 된다. 


카스테어스는 명실공히 작은 섬의 통치자가 되기 전인 1920년대 세계적인 모터보트 레이서로 이름을 날렸었다. 1 세계대전 구급차를 운전하며 스피드감을 익히게 카스테어스는 종전과 함께 관심거리를 찾게 됐는데 그게 바로 모터보트 레이싱이었다. 모터보트 레이싱은 고가의 신식 스포츠였지만, 미국 석유회사의 상속녀로 태어난 카스테어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여성으로서 보트를 몬다는 굉장히 튀는 일이었지만, 그녀가 정말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전혀 숨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보이시한 캐릭터의 소유자였던 카스테어스는 남자옷을 입고, 시가를 폈으며, 여자 꽁무니를 쫓아다녔다. 그리고 근육질의 팔엔 문신을 새겼고, ‘라는 이름을 선호했다고 한다. (서머스케일은 카스테어스가 트랜스젠더 남성이었을 가능성은 언급하지 않았는데, 여기서도 시스젠더[각주:1] 여성으로 대하기로 하겠다.)


당시 세상은 카스테어스 같은 사람들의 외모나 언행은 물론 그들이 대형 스포츠 시합에 참가하는 것도 받아들였었다. 1 세계대전 동안 여자들은 남자들이 하던 일을 도맡게 되었고, 결과 종전 직후에도 사회는 보이시한 여자들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1930년대부터 언론은 카스테어스로부터 등을 돌리기 시작한다. 


서머스케일에 따르면, 신문사들은 담배를 피거나, 침을 밷거나, 검을 씹고, 문신은 새기는 , 카스테어스의 남성스런 성격을 조롱했고, 카스테어스는 외에도 이런 저런 이유가 겹쳐 영국을 영원히 떠나기로 한다. 


카스테어스가 웨일 케이 사들인 1934년이었다. 길이 14 킬로미터, 너비 6 킬로미터의 섬은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남동쪽으로 불과 150 킬로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지만, 1930년대만 해도 150 킬로미터는 그리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고, 덕분에 카스테어스는 섬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았다. 인구가 그리 많지 않던 바하마 제도는 당시 브리시티 웨스트 인디스라는 이름으로 불리었고, 당시 영국법에 따르면 카스테어스는 섬의 판사이자 배심원이었다. 카스테어스는 섬의 깃발까지 도안하기에 이르렀는데, 파란색 바탕에 노란색 태양이 들어간 문양이었다.


카스테어스는 사람을 고용해 도로, 상점, 라디오국, 학교, 발전소, 박물관 도서관, 항구(대여섯 척의 배를 이곳에 정박시켜 두었다), 저택 등의 시설을 세우기 시작했다. 1936년에 완공된 저택은 스페인풍 빌라였는데, 침실과 화장실이 각각 다섯 개씩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과 미국에서 지인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여자가 끊기는 원치 않았던 카스테어스 자신도 뉴욕, 마이애미, 유럽을 드나들며 여자를 물색해 데려오곤 했다. 손님이 오면 영화, 포커게임, 복싱경기, 사냥, 근처 유람(카스테어스는 웨일 케이 외에도 섬을 여러 소유하고 있었다) 데리고 다녔고 그리고 가끔은 나체파티를 열기도 했다. 


그런 카스테어스 곁을 가장 오래 지킨 친구는 바로 토드 워들리 경이라는 이름의 남자인형이었다. 인형은 1925 스위스 알프스에 갔을 첫사랑 루스 볼드윈으로부터 받은 것인데, 카스테어스는 평생 인형을 끼고 살았다고 한다. 


카스테어스는 늠름한 인형을 위해 소형 정장을 제작해 입히기도 했고, 런던 자택에는매리언 바바라 카스테어스와 토드 워들리 이라는 문패가 달려 있었다.


카스테어스의 첫사랑으로 그녀에게 워들리를 선물했던 볼드윈은 1937 세상을 떠난다. 카스테어스는 그런 그녀를 기리기 위해 섬에 캐서린 교회를 세워, (캐서린은 볼드윈의 이름이었다.) 성직자를 앉혔다. 카스테어스의 말을 빌자면 줄리언 헨쇼라는 목사정말 정말 정말 게이틱했는데, 파티 사람들에게 자신의 알몸을 곧잘 보였다고 한다. 


카스테어스는 평생 수많은 염문을 뿌리고 다녔는데, 그녀가 정복한 여성 중에는 오스카 와일드의 질녀였던 돌리 와일드 있었다. 사람은 1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에서 만났다고 한다. 밖에 독일 출신의 유명 배우 가수 마를렌 디트리히와도 1937 프랑스에서 만났는데, 마를렌은 카스테어스를해적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카스테어스는 여자를 꼬시거나, 손님들을 기쁘게 하지 않을 때는 원대한 꿈을 좇아 다녔다. 잠깐 동안이었지만 운송사업을 했던 적도 있고, 실패로 돌아갔지만 마이애미 근처에 개인 공항을 지으려 적도 있었다. 현지민들을 돕는 일에도 열성이었는데, 대부분은 가난한 노예의 후손들이었다. (물론 좋은 일도 했지만, 식민지배자를 자처한 그녀의 태도는 문제의 소지가 많았다.)


섬에 있을 때는 호주머니에 칼을 넣고 다녔고, (누드 사진을 찍을 때면 칼을 입에 물곤 했다.) 손님, 이웃, 아무 생각이 없는 미국인 관광객 없이 기회만 되면 상대방을 골탕먹이곤 했다. 


그런 그녀가 웨일 케이의 왕국을 매각한 1975년이었다. 플로리다에 정착한 카스테어스는 집을 다양한 소품과 여자친구들의 사진(120장이나 된다)으로 빼곡히 채웠다. 나이가 후에도 카스테어스의 성격은 여전했다. 백내장 수술을 받았을 때는 신이 나서 해적처럼 애꾸눈 안대를 차고 다녔고, “워들리 만큼왜소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즐기기도 했다. 93세의 나이로 길고도 해프닝 많은 삶을 마감한 카스테어스는 워들리와 함게 화장되었다.  




- Jeremy Willard

- 옮긴이: 이승훈




How a cross-dressing lesbian playboy ruled a Bahamian kingdom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Daily Xtra.

  1. Cisgender: 시스젠더란 트랜스젠더에 대응하는 용어로, 신체적 성과 사회적 성이 일치하는 경우를 말한다. 즉 시스 남자라고 하면 신체구조도 남자고 본인의 성별 정체성도 남자인 경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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