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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0



Gay Men's Chorus of Washington to bring LGBT message to Cuba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워싱턴 DC 게이합창단 5월 콘서트 'Born This Way'. 사진: James Dillon O'Rourke and Michael Key/Gay Men's Chorus of Washington DC




합창단 예술감독 “음악으로 국교개선에 이바지하는 대사 되고파”



쿠바 순회공연중인 워싱턴 DC 게이 남성합창단이 턱시도와 캐주얼 의상을 번갈아가며 언어와 정치, 문화의 장벽을 초월한 LGBT 인권을 홍보하고 있다. 


합창단 총인원 300명 중 스무 명이 지난 토요일 하바나로 떠났으며, 이들은 시립도서관, 청소년 센터 및 양로원 등을 돌며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예술감독 시아 카노 씨는 “정치이념을 뛰어넘어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게 되어 무척 신이 납니다. 사람과 사람, 미국인과 쿠바인이 모여 음악과 성소수자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거죠”라며 이번 투어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쿠바도 지난 10년 사이 성소수자 시민들에게 관대해졌지만, 이들에 대한 차별은 아직도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다. 성별 재확정 수술 및 시술은 정부의 원조를 받지만, 동성결혼은 아직 합법화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라울 카스트로 대통령의 딸 마리엘라 카스트로 씨는 지난 5월 제8회 동성애 트랜스젠더 혐오증에 맞선 행진에서 동성커플들의 서약식을 축복하기도 했다. 




라울 카스트로 대통령의 딸 마리엘라 카스트로 씨. 2008년 하바나에서. 사진: Javier Galeano/AP



현재 쿠바와 미국의 관계는 지속적으로 호전되고 있으며, 작년 12월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국교정상화를 선언하기도 했다. 


카노 예술감독은 현지에서 LGBT 평등권을 지지하고 음악으로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음으로써 국교개선에 이바지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만약 LGBT 인권 반대자들과 대면하게 된다 해도, 미국내 보수주의자들에게 썼던 방식이 이곳에서도 통할 것이라며 “말이 통하지 않을 땐 음악이 소통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고 했다. 


이번 투어는 ‘미국 바로알기 청년협회(YFU: Youth For Understanding USA)’라는 비영리단체가 성인교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제안한 것이다. 전국 성교육센터를 이끌 고 있는 마리엘라 카스트로 씨도 이번 투어를 지지하고 있으며, 현지 게이 합창단 ‘Mano a Mano’와의 합동공연도 추진했다. 

 

워싱턴 DC 게이 남성합창단은 투어 첫날, 다섯 명으로 구성된 Mano a Mano와 만남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한다. Mano a Mano는 워싱턴 DC 게이 남성합창단과 미리 연락을 취해 테마곡 ‘Make Them Hear You’의 스페인어 버젼을 녹음했다. 합동공연은 2개국어로 이루어지며, Mano a Mano 측도 공연내용을 영어로 번역하여 워싱턴 합창단에 보냈다고 한다. 카노 감독은 이러한 교류가 음악을 통해 양국 관계의 틈을 매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해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1962년 국교단절 이후로 쿠바는 거의 모든 미국인들에게 있어 금지된 국가였다. 그런 쿠바에 대한 희망과 두려움을 안고 여행짐을 꾸리는 동안 합창단원들은 이번 여행을 통해 성취하고 싶은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카노 씨는 현지 LGBT들의 삶이 어떤지 잘 알지 못한다며, “평등권에 대한 제 생각, 제가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전할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동시에, 현지 친구들로부터 그들의 삶에 대해 듣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는 리허설 중간중간에 짬을 내어 쿠바에 대해 알아보고, 현실적인 투어계획을 짜려고 노력했지만, 쿠바 LGBT인들의 삶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다고 했다.


- Amanda Holpuch


- 옮긴이: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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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시에고드아빌라의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행사. 사진: Jorge Luis Baños


지난달 말 <뉴욕 타임스>에 쿠바의 트랜스젠더 여성 아나 라파엘라 디아스 고메스(Ana Rafaela Díaz Gómez)의 이야기가 게재됐다.


공산주의 국가 쿠바에서 최근 트랜스젠더 인권은 매우 증진되고 있다. 2008년부터 쿠바 당국은 호르몬 대체 요법과 성전환 수술을 지원하고 있다.


아나는 “나는 1979년에 태어났다. 당시에는 사람들이 동성애와 같은 것들을 잘 몰랐고, 사회에서 배척되기까지 했다. 성소수자들은 주변화될 수 밖에 없었다. 경찰을 포함해, 성소수자들을 함부로 대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날 상황은 많이 개선됐다. 쿠바 사회의 성소수자 차별도 현저히 줄었다. 아나의 남편 아벨은 “차별이 아주 많았다. 지금은 훨씬 더 좋아졌다. 아나도 훨씬 더 잘 지내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성소수자 인권의 진보에도 불구하고 아나는 “여전히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가 존재하는 곳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이 커플은 현재 입양을 할 수 없는 현실을 지적했다.


- 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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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멕시코 멕시코시티에서 개최된 ILGA(국제 성소수자 협회) 월드 컨퍼런스에서 LGBT 활동가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마리엘라 카스트로(오른쪽). 사진: http://www.washingtonblade.com/2014/11/25/cuba-come-long-way-lgbt-rights/


미국과 쿠바의 역사적인 관계 정상화 선언 이후, 쿠바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인권 운동가 마리엘라 카스트로 에스핀이 “쿠바-미국 관계 정상화로 인해 쿠바가 자본주의로 되돌아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마리엘라 카스트로는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딸이자, 쿠바 보건부 산하 LGBT 인권 단체인 국립 성교육 센터(Cenesex) 소장이다. 의회 의원이기도 한 마리엘라 카스트로는 “이런 변화로 인해 쿠바가 자본주의로 되돌아가 미국 금융 재벌들의 노예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매우 큰 오산이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미국 정부의 쿠바에 대한 봉쇄 정책 완화에 대해서는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도, 쿠바는 사회주의 원칙을 지킬 것이라고 단언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12월 17일 “쿠바를 고립시키는 미국의 수십년 간의 정책은 쿠바인들에게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나라를 건설하도록 한다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고 밝혔다.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를 전격 선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행정권을 발동해 당장 다음 달부터 쿠바에 대한 각종 봉쇄 조치를 해제할 예정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의 저항에 맞서 광범위한 행정권을 사용해 여행, 무역, 금융 거래 제한 등 쿠바에 대한 지난 54년 간의 금수 조치를 완화할 방침이다.


그러나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은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 조치에 제동을 걸겠다는 강경한 태세여서 공화당과 민주당 간 갈등은 갈수록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외교 관계는 통상적으로 행정부의 재량권에 속하는 사안이어서 의회가 실질적으로 크게 제동을 걸 수 있는 게 없다는 분석도 있다.



위 이미지는 미국이 추구하는 지배주의 정책인 쿠바 제재 및 봉쇄에 반대하는 2013년 유엔 결의안을 찬성한 188개국(녹색), 반대한 2개국(빨간색: 미국과 이스라엘), 기권한 3개국(노란색: 미크로네시아, 마셜군도, 팔라우)을 나타낸 지도다. 왼쪽 지도는 1992년도 표결 결과(찬성 59개국, 반대 3개국, 기권 71개국)다. 지난 2014년 10월 28일 유엔 총회 결의안 표결 결과도 찬성 188개국, 반대 2개국, 기권 3개국으로 지난해와 똑같았다.


쿠바의 성소수자 시민들도 미국의 쿠바 제재 및 봉쇄에 저항의 목소리를 내 왔다. 쿠바 제2의 도시인 산티아고데쿠바의 여성 동성애자 및 양성애자 네트워크 대표 이셀 칼사디야 아코스타와 쿠바 수도 아바나의 여성 동성애자 및 양성애자 네트워크의 아르헬리아 펠로베 에르난데스는 미국의 쿠바 봉쇄가 쿠바의 성소수자 시민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쳐 왔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마리엘라 카스트로와 지지자들이 쿠바 성소수자 인권 보장을 위해 벌이는 투쟁에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쿠바 출생으로 지금은 미국 플로리다 주 하원 의원인 일리애나 로스 래티넌. 미국 공화당 소속인 그녀는 마리엘라 카스트로와 쿠바 정권에 대해 비난을 가해 왔다. 지난해에는 쿠바 에이즈 활동가들을 초청하기도 했다. 일리애나 로스 래티넌 공화당 의원과 만난 쿠바 에이즈 활동가들은 미국을 여행하며 “마리엘라가 쿠바 LGBT 커뮤니티를 조종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블로거이자 사진가인 페드로 루이스 가르시아 마시아스 역시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는 “봉쇄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정신적인 봉쇄이며, 이러한 쿠바인들의 정신적인 봉쇄로 인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쿠바를 떠나고 싶지만, 비용 문제로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성 동성애자 및 양성애자 네트워크의 칼사디야는 쿠바 LGBT의 미래에 대해 훨씬 더 낙관적이다. “나는 수년 간 LGBT 인권 운동을 해 오면서 긍정적인 변화들을 직접 보았기 때문에 매우 낙관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2014년 10월 멕시코 멕시코시티에서 개최된 ILGA(국제 성소수자 협회) 월드 컨퍼런스에서 참석한 쿠바 LGBT 활동가들. 이들은 다음 2016년 ILGA 월드 컨퍼런스 개최지로 쿠바가 선정될 수 있도록 노력했으나, 결국 태국이 최종 선정됐다. 사진: http://www.washingtonblade.com/2014/11/25/cuba-come-long-way-lgbt-rights/


- 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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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30

 

 

 


Дочь лидера Кубы ответила "Альянсу гетеросексуалов...": она рада, что Тесака выслали в Россию
Перейти к оригинальной статье на Gay.Ru.

 

 


 

사진: wikipedia.org/Northside

 

 

마리엘라 카스트로 에스핀(Mariela Castro Espín)이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LGBT 인권을 지지하는 이성애자 연합 단체를 조직한 사실에 저는 매우 기쁩니다.”라며 러시아 인권 운동가들의 서한에 응답했다.


마리엘라 카스트로는 재빨리 답장을 보내 왔다. 현재 쿠바 정상의 딸인 그녀는 이른바 ‘소아성애자 사냥꾼들’의 두목이자 테사크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막심 마르친케비치를 러시아 사법 기관에 인도하는 데에 협조해 달라는 러시아 활동가들의 서한을 받은 지 채 1주도 지나지 않아 답장을 보냈다.

 

나탈리야 침발로바 님께(침발로바는 ‘LGBT 평등을 지지하는 이성애자 연합’의 대표 중 한 명이다.)

 

저희는 모든 과정을 예의 주시했습니다. 쿠바 정부가 그 범죄자를 이미 체포하여 러시아 경찰에 인도했음을 알려 드립니다.

 

편지를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LGBT 인권을 지지하는 이성애자 연합 단체를 조직한 사실에 저는 매우 기쁩니다.

 

저희 홈페이지 www.cenesex.org에 들러 주세요. 전 세계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언젠가 여러분과도 협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리엘라 카스트로 드림


서한 텍스트는 ‘LGBT 평등을 지지하는 이성애자 연합’의 SNS 브콘탁테 공식 페이지에 공표됐다.


아바나 소재 쿠바 보건부 산하 국립 성교육 센터(Cenesex) 소장이자 세계 성건강 협회(WAS)의 정회원인 마리엘라 카스트로 에스핀은 진정한 성소수자 활동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리엘라 카스트로의 답장과 동시에 막심 마르친케비치는 러시아 연방 형법 제282조(혐오 또는 적대감 조장, 타인의 존엄성 훼손)에 따른 혐의로 기소됐다. 오늘 수사 위원회 모스크바 국장 빅토리야 치플렌코바가 기자들에게 전한 바에 따르면 피고인은 진술을 거부했다고 한다. 마르친케비치는 이틀 전 쿠바 정부의 결정에 따라 쿠바 수도에서 추방되어 모스크바에 도착한 직후 공항에서 연행됐다.


하지만 테사크의 혐의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괴롭힘이 아니다. 그가 찍은 영상들은 여전히 러시아 인터넷에 넘치고 있다. 수사 기관에 따르면 지난 9월 마르친케비치는 비률료보의 폭동, 북캅카스(북코카서스) 출신자들, 영화 ‘스탈린그라드’와 ‘오콜로풋볼라(Football Hooligans)’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표명한 극단주의적인 동영상들을 인터넷에 올렸다.


- 옮긴이 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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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4

 


Компартия Кубы призывает бороться с дискриминацией гомосексуалов
Перейти к оригинальной статье на GayRussia.Ru.

 

 

새로 채택된 공산당 규약,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에 저항할 것을 공산주의자들의 의무로 규정

 


쿠바의 공산당이 성적 차별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차별에 반대해 단호히 투쟁할 것을 당원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이 내용은 지난 7월 19일 새로 채택된 공산당 규약의 일부이다.


새로운 규약에서 당원 의무에 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피부색, 성별, 종교적 신념, 성적 지향, 출신지에 따른 편견과 차별적 행동, 그리고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며 국가의 통일을 해치고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는 기타 행위에 반대해 단호히 투쟁해야 한다."


쿠바 공산당 규약의 수정 사항은 소책자에 소개되어 80만 명의 당원에게 배포될 예정이다.


쿠바의 언론인, 블로거, 공산주의자인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는 "시민들이 우리 사회에 현존하는 차별에 맞서 투쟁할 필요성을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한 차례의 명령으로 인식을 바꿀 수는 없다. 쿠바의 시민들과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교육 활동이 요구된다."라고 덧붙였다.


쿠바에서 동성애는 1959년 혁명 초창기에 오랫동안 탄압받았다. 많은 동성애자들은 재교육의 목적으로 노동 수용소에 끌려갔고, 많은 지식인들이 자신의 성적 지향으로 인해 탄압을 받았다.


지난 10년 동안 쿠바에서는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의 딸인 마리엘라 카스트로가 호모포비아에 반대하는 투쟁을 이끌고 있다. 마리엘라 카스트로는 쿠바 보건부 산하 기구인 국립 성교육 센터(Cenesex) 소장이기도 하다.


쿠바 국립 성교육 센터는 벌써 2년째 동성 결혼 허용 법안을 작성하고 있다. 이 법안은 아직 쿠바 의회에 상정되지는 않았다.

 

- 옮긴이 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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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 하바나를 찾아서

중남미/쿠바 2013.05.16 01:11 Posted by mitr

2013-05-09



Finding gay Havana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Xtra.



카스트로가 동성애자 인권에 대한 태도를 완화했지만, 아직도 쿠바는 이에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세 사람이 있었다. 왼쪽은 근육질에 쿨한 헤어스타일의 마초보이였고 그와 팔짱을 끼고 있는 것은 작은 체구의 여성스러운 남자로, 양산을 들고 한껏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이 두 사람 뒤를 따라오는 것이 세번째 남자였는데 중성이었다. 이들이 바로 쿠바의 게이자유전선의 선두주자이다.


나는 게이 하바나를 찾아왔고, 내가 찾은 것은 오후께 재밋거리를 찾아 라 하바나 비에하(구하바나)에 나온 이 20대 청년들이 전부였다. 일부 현지인들은 멈춰서서 이들을 쳐다봤지만 전반적으로 혐동성애 정서와 남성우월사상이 만연한 쿠바 치고는 이 삼인조는 그다지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혁명이 일어나기 전, 쿠바는 마리코네를 수용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었다. 인구가 밀집된 지역에는 게이바가 곳곳에 있었고, 그 이름도 Dirty Dick과 같이 아주 적절했다. 동성애는 매춘 및 조직범죄와 함께 분류되었지만, 아무리 불법이라 해도 이러한 매춘과 조직범죄는 아주 활기를 띈 산업이었다.  


석양 속의 전쟁 기념물. (제프리 라운드)
멜라콘의 라 람파 지구에서 어슬렁거리는 젊은이들. 라 람파는 하바나의 '게이' 지구로 알려져 있다. (제프리 라운드)
하바나 거리에서는 복고풍 미국차를 쉽게 볼 수 있다. (제프리 라운드)
'딸기와 초콜릿'은 쿠바에서 처음으로 동성애자를 긍정적으로 그린 영화라는 평을 받고 있다. (제프리 라운드) 

1950 년대 후반 피델 카스트로와 그 게릴라군이 권력을 장악하자 동성애는 자본주의적 퇴폐로 간주되거나 심하면 반혁명적 일탈로 여겨지기도 했다. 쉽게 말해서 동성애자들은 혁명에 가담할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하긴 쿠바 혁명은 마초이즘의 산물이었고, 역시 동성애자들에게 공공연히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던 소련정권과 긴밀한 연대관계를 유지하게 되었기에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1960년대에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회고록 '해가 지기 전에'로 유명한 쿠바의 작가 레이날도 아레나스가 '쿠바의 야사'를 담은 저서 'Pentagonia'에서 동성애자 쿠바인으로 살아가는 위험함을 그렸다. 그는 뉴욕으로 망명하여 1990 년 에이즈로 사망한다. 카스트로는 1965 년도 인터뷰에서 동성애자는 결코 "진정한 공산주의 전사"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카스트로에게 있어서 동성애는 정치와 충돌되는 자연현상이었던 것이다.

같은 해에 표면적으로는 군복무를 대체하는 듯이 보이는 정부 프로그램이 발족했다. 그러나 사실 이곳은 "일탈자"로 간주된 모든 이들을 개조하기 위한 강제노동수용소였다. 일탈자의 범주에는 동성애자 뿐 아니라 여호와의 증인 신자, 히피 및 양심적 병역거부자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동성애자 남성들이 가장 심한 언어적, 신체적 학대에 시달렸다. 불과 몇 년전만 해도 수많은 동성애자 남녀들이 보다 성적으로 개방적인 이상향을 약속하는 혁명에 매료되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1990 년대에 이르자 카스트로는 동성애자 인권에 대한 태도를 완화했고, 심지어는 카스트로가 쿠바에서의 동성애자 처형은 "엄청난 부정"이었고 개개인의 책임에 맞긴다고까지 말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의 질녀인 마리엘라 카스트로도 성전환자들의 인권을 위해 열성을 기울여 왔다. 합법적인 시민들에게 성확정 수술은 무료로 제공되고 있다. 하지만 일반 쿠바인들은 아직도 이러한 변화에 귀를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것 같다. 


현재 쿠바에는 단 한 곳의 "공식" 게이바가 존재하며, 이곳은 하바나가 아닌 산타 클라라는 곳에 위치해 있다. 산타 클라라는 반세기 전 카스트로가 쿠바의 정권을 잡게 해준 전투가 일어났던 역사적인 곳이다. 그러난 어느덧 산타 클라라는 관광명소가 되어 이 게이바도 트랜스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디즈니 월드가 코파카바나풍의 스톤월쇼를 선보인다고 생각해보라. 즉, 외국인이 아닌 현지인들을 위한 쇼인 것이다.


나는 라 하바나 비에하에서 만난 게이 삼인조에게 "비밀" 게이클럽에 대해 물어봤다. 그들은 몇몇 이름을 댔지만 쿠바인 게이를 찾으려면 라 람파에 가야 한다고 했다. 라 람파는 말레콘 아래에 위치한 조그만 관광구역이다. 그 밖에 올드타운 근처 공원도 밤이 되면 동성애자들이 어슬렁거린다고 알려줬다. 내가 그곳 치안이 "peligroso", 즉 위험한지 묻자, 여성스러운 사내가 웃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했다. "Los Cubanos no son peligrosos. (쿠바 사람들은 위험하지 않아요.)"


코펠리아 근처에 있는 공원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쿠바에서 최초로 동성애자를 긍정적으로 그린 영화 "딸기와 초콜릿(Fresa y chocolate)"으로 유명해진 아이스크림 가게 이름을 댔다. 하지만 그들의 대답은 'no'였다. 'A causa de los gais' 즉, 게이들 때문에 밤에는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하긴, 이 영화가 개봉된 1993 년 이 공원은 성의 지표가 되었고, 영화가 이듬해 아카데미에 후보로 오르면서 그런 경향은 더 가속화되었다. 하지만 이곳은 여전히 하바나 매춘씬의 중심지이다. 

카스트로가 동성애자 공동체를 지지하겠다고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쿠바내에서 활동하는 동성애자 공식 인권단체는 전무한 상황이다. 인터넷 규제가 심하고, 불법적인 성관계를 벌금과 구형으로 처벌하는 나라에서는 쉽지 않을 것이다. 동성애자들과 정부간의 관계가 호전되던 1994 년 쿠바 동성애자협회가 창립되었지만 1997 년 회원들이 체포되면서 협회도 해산되었다. 프라이드 행진과 동성애 관련 출판물도 금지되는 등, '국가가 허용한'이라는 표현에 매우 자의적인 뉘앙스가 가해졌다. 

나는 남자 등장인물이 여장을 하고 나오는 쿠바의 한 시트콤을 봤다. 국영방송에서 방영되는 "La otra cara del la luna(달의 반대편)"은 공공연히 다른 남자와 사귀는 동성애자가 등장한다. 매년 12월에 열리는 하바나 영화제에는 동성애를 주제로 한 많은 영화가 상영되었으며, 그 포스터는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작년에는 쿠바에서 최초로 비야 클라라라는 곳에서 성전환자가 공직에 당선되기도 했다. 


그 밖에 잘 알려진 게이 파티도 있다. 10 페소스(입장료에서 따온 명칭)은 매주 토요일 하바나 및 인근 지역에서 개최되는데 다들 각자 알아서 찾아온다. 경찰의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 매번 장소를 옮기기 때문에 찾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스페인 영화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도 이런 파티에서 체포된 적이 있었고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도 마찬가지이다. 외국인이 현장에서 잡힐 경우 앞으로 동성애를 "과시"하고 다니면 체포될 수도 있다는 경고만 받고 풀려나지만 일부 현지인들은 구타를 당하기도 한다. 


저번에 쿠바에 왔을 때 이성애자들의 클럽을 찾았는데 한 게이 코미디언이 여장쇼를 했었다. 그는 십대 후반에서 20대에 이르는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윗세대에게 동성애자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면 인상을 찌푸린다. 싫어하는 것이다. 그들은 마리엘라 카스트로가 레즈비언이며, 쿠바의 현대통령인 그 아버지 라울도 게이라고 할 것이다. 이것이 동성애자 인권에 대해 수용적인 두 부녀에 대해 이들이 내린 결론인 것이다. 


이들에게 있어 동성애자는 구식이고 반체제('반공산주의'라고 읽는다)적 향락을 상징하며, 캐나다나 미국 같은 나라에나 어울릴 법한 것이다. 특히 쿠바 여성들이 동성애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공공연히 표현하는데, 그러면서도 기꺼이 휴대폰으로 친구사진을 보여주며 누가 진짜 여자고 누가 크로스드레서인지 맞춰보라고 한다. 


결국 이중잣대인 것이다.


라 람파에 가서 멋지고 스타일리쉬한 젊은이들을 보면 과연 그 중에 누가 게이인지 궁금해진다. 핑크색 티셔츠와 금 악세서리로 치장하고 호들갑 떨며 한심한 노래를 불러대는 킹카들은 게이가 아니다. 이들은 그냥 놀러 나온 이성애자들일 뿐이다. 


게이들은 내가 두리번거리고 있는 것을 본 후에야 접근해 온다. 이들은 주로 만약을 대비해서 짝을 지어 다가오며 우리 북미인들의 기준으로 "일반남처럼 보이고 그렇게 행동"한다. 이것도 보호막인 셈이다. 쿠바에서는 보통 자신이 동성애자인 것을 드러내지 않는다.  


"치코(남자) 찾으세요, 치카(여자) 찾으세요?"하고 옆에 다가와서 묻는다. 치코를 찾는다고 하면 이들은 미소를 띄고 서비스를 제공해 준다.  


내가 그냥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싶다고 하자, "에디"는 손님도 드문 터라 맥주 한 잔에 내 질문을 받아주었다. 에디가 관광객과 함께 다니는 모습이 눈에 띄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바를 신중히 골랐다. "경찰이 우리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어떻게 할까"하고 묻자 수갑을 차고 끌려가서 벌금을 물 것이라고 한다.  


"이야기만 해도?" 나는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이야기가 아니라 호객행위를 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것이다. 상대방이 동성애자가 아니라도 말이다. 


나는 에디가 과장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한 번은 저녁에 호세라는 이름의 한 청년과 코펠리아 공원 근처를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 친구가 갑자기 사라졌었다. 나는 그 친구가 내 말 때문에 마음이 상했으려니 생각했었다. 그러다 경찰 두 명이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 모습을 본 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걸어갔다. 다음 블록에 다다르자 호세가 풀숲에서 튀어나왔고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이야기를 이어나갔었다. 


나는 호세와 함께 걸으면서 쿠바 동성애자들의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duro 즉, 고되다는 한 마디로 답했다. '고됨' 이 어떤 것인지 잘 아는 나라 사람이 하는 말이다. 또 한 번은 호세와 그 호객 동료가 영업하는 게이바를 찾아 준다며 나를 데리고 다닌 적이 있다. 우리는 여러 곳을 찾아갔지만 모두 이성 커플들로 가득 차 있었다.   


호세와 그 친구는 "오늘은 날이 아니네"라고 했다.


동성애자 인권 투쟁을 빼고 보더라도 쿠바의 삶은 그리 부러운 것이 못 된다. 그렇기 때문에 에디나 호세와 같은 청년들이 몇 달러라도 더 벌어보고자 애를 쓰는 것이다. 일부 매춘남들은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냥 직업일 뿐이라고 하지만 주위에서는 모두가 그들이 게이라고 말해 줄 것이다. 그들은 손님에게 activo(탑)인지 pasivo(바텀)인지, 아니면 completo('올'을 뜻하는 쿠바속어)인지 물을 것이다. 


에디는 작은 아파트에서 어머니와 그 남자친구, 그리고 남동생,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에디는 혼자서 살 돈이 없다. 그는 캐나다에 오고 싶다고 한다. 영어는 그럭저럭 하는 편이지만 적어도 합법적인 범위내에서 시장성이 있는 기술도 별로 없는데다가 매춘남으로서도 어느 정도 나이가 차 버렸다. 그는 자신의 앞날을 쿠바에서 보낼 생각을 하면 비참해진다. 


물론, 동성애자들의 삶은 계속된다. 많은 청년들이 하바나의 라스베가스바는 공공연하게 운영된는 게이바라고 했다. 그곳 역시 여장쇼를 하는 곳으로 라 람파에서 몇 블록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다. 여행객들은 현지인들을 만나기 위해 그곳을 찾는다. 내가 그곳을 찾은 날 밤은 한산한 편이었다. 어쩌면 내가 너무 일찍 찾아갔을지도 모른다. 

몇몇 드래그퀸과 레즈비언들이 밖에서 서성였다. 이들은 매우 반항적이었고 언제든지 말썽을 일으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금지된 것에 대한 유혹을 느꼈다. 처음 게이바에 발을 들여놓을 때처럼 말이다. 퀴어 네이션 시절의 반항 정신이 떠올랐다. 그 때는 상황이 아무리 나빠도 얻어맏기보다는 참고 견디는 게 상책이었다. 


쿠바의 성적소수자들은 정부가 모든 것을 지배하며 그들이 가진 얼마 안 되는 자유조차도 눈 깜짝할 사이에 빼앗길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나곤 했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근처에 지지단체가 있는지, 없다면 언제 그런 단체가 생길지는 모른다.  




- 제프리 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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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xtra, 여행

First Transgender Politician In Cuba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Identity Kenya.



이번달 쿠바의 한 시의원 선거에서 트랜스젠더 정치인이 당선되었다.  


어릴 때부터 여성으로 살아온 48 세의 아델라 에르난데스(Adela Hernandez) 씨는 280-170의 투표결과로 비야클라라(Villa Clara)주 카이바리엔(Caibarién)의 시의원에 당선되었다. 


에르난데스 씨는 AP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1980 년대 다름아닌 친아버지가 자신을 트랜스젠더로 고발하는 바람에 2 년의 징역을 살아야 했으며, 이번 당선은 LGBT 사안에 대한 쿠바정부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음을 상징한다고 밝혔다. 


에르난데스 씨는 시의원 당선이 "위대한 승리"라며 '언제든지 혐동성애자들은 존재하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은 점점 소수자가 되어가고 있다'고 했다. 


에르난데스 씨는 이번 시의원 당선으로 쿠바 국회의원으로 출마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었다. 


1959 년 쿠바혁명 이후 피델 카스트로의 정권하에서 동성애자들에 대한 정책은 점점 강경화되어 갔고, 성적소수자들은 이성애자로 개조시키기 위해 이슬라 데 피노스(Isla de Pinos)와 같은 노동수용소로 보내졌다.


그러나 쿠바는 최근 라울 카스트로(Raul Castro) 대통령의 딸 마리엘라 카스트로(Mariela Castro)가 정부지원으로 LGBT 인권단체인 전국성교육센터(CENESEX: National Center for Sex Education)을 운영하는 등 큰 전전을 이루어 왔다. 


또한 2008 년 이후 쿠바에서는 무료로 성전환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완전한 성확정수술을 받지 않는 이상 법적 성별 변경은 불가능하다.


에르난데스 씨는 아직 수술을 받지 않았다. 따라서 정부의 눈에 그녀는 여전히 호세 아구스틴 에르난데스(Jose Agustin Hernandez)라는 이름의 남성이다. 


"제 이웃사람들은 저를 간호사 아델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성적소수자라는 사실로] 혁명가이냐 아니냐를 판단할 수는 없어요. 그건 내면에서 나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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