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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0




프란시스 베이컨그리고 이란인 게이 예술인 바흐만 모하세스 작품테헤란에서 전시돼




프란세스 베이컨, 이란인 게이 화가 바흐만 모하세스 등, 1979 이슬람 혁명 이전에 이란에 유입된 작품들 공개돼




프란시스 베이컨의 삼면화 ‘시자와 함께 침대에 누워 있는 인물들(1968)’ 중 왼쪽 작품을 들여다 보고 있는 이란인 여성. 사진: Behrouz Mehri/AFP/Getty Images


테헤란의  미술관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며 유럽 전시의 길이 막혀 있던 서양  이란의 현대 예술품들이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공개됐다.


이번 콜렉션에는 프란시스 베이컨과 바흐만 모하세스(Bahman Mohasses)  저명한 동성애자 예술인  명의 작품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 테헤란 현대미술의 숨은 보물은 1979 혁명 이전 이곳 박물관에 이전된 이래 처음으로 베를린과 로마에서 전시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란 현지 예술가들이 미술품 이전을 둘러싼 투명성 문제  그 귀추  일부 작품이 이란 국내에서조차 공개된 적이 없다는 문제 등을 거론하자 전시회는 취소되었으며 이란과 독일 관계자들의 얼굴에 먹칠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렇게 해서 유럽으로 향할 예정이었던 이들 작품은 테헤란에서 공개되어 이란 국내 예술 애호가들의  환영을 받았다.


또한 해당 박물관의 관장을 지낸 마지드 몰라노루지는 전시회 개막식에서 이들 작품이 “올여름” 베를린과 로마에서 전시될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음을 시사했다.


테헤란 현대미술관은 파블로 피카소잭슨 폴록앤디 워홀 비서구권에서는 최고급의 현대 서양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이들 소장품의 가치는 25 달러(2.8 ) 이른다고 한다. 


 중에서도 현재 서양 예술가의 작품 30 점과 이란 작품 30 점이 베를린-로마 나그네들(Berlin-Rome Travellers)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되고 있다. 


 중에서도 특히 베이컨과 모하세스  사람의 작품이 눈에 띄는데  사람 모두 동성애자였다베이컨의 작품으로는 회화 ‘조각상 옆에 기대눕는 남자(Reclining Man With Sculpture)’ 그의 삼면화 ‘시자와 함께 침대에 누워 있는 인물들(Two Figures Lying on a Bed with Attendant)’ 전시되고 있다. 


한편, 2010 로마에서 별세한 모하세스는 지난 세기 이란의 가장 저명한 예술가로 추앙받고 있으며비록 혁명 이후로는 줄곧 이태리에서 살았지만이란의 커밍아웃 동성애자 예술인 중에서도 단연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테헤란 현대미술관에서 바흐만 모하세스의 작품을 감상중인 방문객. 사진: Gata Ziatabari/Honaronline.ir


이란에서 동성애는 사형에 처해질  있으며사회적인 수치심 또한 상당하다따라서 모하세스의 섹슈얼리티는 자국 이란에서 공식적으로 언급되는 일이 없다. 


얼마전 이란의  미술잡지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이란의 현대예술인  가장 인기 있는 인물로 모하세스가 꼽히기도 했지만 작품 일부가 당국 또는 모하세스 자신에 의해 파괴되는 그의 이러한 명성은 오랜 세월 폄하되기도 했다. 


니키 노주미는 이란 출신의 화가로대영박물관이 그의 작품을 사들이기도 했는데그런 그에 따르면 엘리트층 인사들과 주변 지인들은 모두 모하세스가 동성애자임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노주미는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제가   모하세스가 이란의 현대미술에서 가지는 중요성은 상당한 이라고 밝혔다.


모하세스는 점잖은 이슬람풍의 모티브를 묘사하기보다는 그의 감정에 의지했고본능에 따라 고통받는 인간성을 담아냈습니다그리고 그의 동성애가 작품에 영향을 미친  의심할 여지도 없죠회화작품 대부분이 인물화이고그림의 대상 또한 거의가 난교의 포즈를 취한 나체 남성들이었습니다.”


다양한 방법을 통해 그걸 숨기려 했어요이슬람 사회 속에서 살았으니까요모하세스는 프란시스 베이컨과 비교되는 부분이 많고실제로 베이컨의 영향을 받은  같아요.”


2012 이란인 영화감독 미트라 파라하니는 피피 하울스 프롬 해피니스라는 다큐멘터리에서 바흐만 모하세스의 삶과 예술을 다루도 했다모하세스의  작품 이름에서 제목을 따온  다큐멘터리는 그의 망명생활을 독특한 관점에서 담아내고 있다. 


모하세스는 동성애자라고 해서 세상과 벽을 쌓지는 않았습니다사실 정반대였죠모하세스는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떳떳해 했고 섹슈얼리티에 충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파라하니 감독은 이란 정부가 모하세스의 작품을 회수복원  정리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있지 않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가장 인기 있는 작가로 모하세스를 꼽은 사람들은 그가 얼마나 많은 작품을 남겼는지 이들 작품이 현재 어디에 있는지   있어야 합니다.”


“6미터에 달하는 조각작품 연인들(Les Amants) 원래 키쉬섬에 있는 샤의 저택용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페르시아 시인니마 유시지의  시로부터 영향을 받았습니다지금  조각은 어디에  있죠?”


설령 전시를   없는 상황이라 해도소중히 보관하고그에 대한 자료를 사람들에게 알려야 합니다모하세스의 작품은 바로 국민들의 것이니까요.”


이란의 LGBT 공동체는 억압에도 불구하고 활기를 잃지 않고 있으며마르셀 프루스트앙드레 지드 해외의 저명한 동성애자 작가들의 작품도 페르시아어로 번역되어 출판되고 있다. 


당국에서도 동성애가 노골적으로 언급되지 않거나쉽게 유출해   없는 이들 작품의 출판을 눈감아 주고 있다. 


 밖에이번 ‘베를린-로마 나그네들’ 전시회에서는 소흐랍 세페흐리모흐센 바지리모니르 파르만파르마이안파르비즈 타나볼리 등의 이란 현지 예술가들의 작품이 공개되고 있다.




- Saeed Kamali Dehghan 

옮긴이이승훈




Francis Bacon and gay Iranian artist Bahman Mohasses shown in Teh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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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4



Fabricated claim of links to UK spy agency & Arab terrori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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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라햡>지에서 LGBT 인권운동가 피터 태첼 씨가 영국의 첩보기관 MI6 및 아랍 테러조직들과 연계되어 있다는 이상한 억측을 내놓았다. 또한 <라햡>지는 태첼 씨가 동성애자라는 점, 또 그가 LGBT 인권활동을 벌여 왔다는 점에 주목하며 이란의 박해받는 소수민족 아후아지 아랍족의 실태로부터 눈을 돌리고 이들과 태첼 씨의 관계를 이간질하려고 했다. 


라햡 뉴스 기사(페르시아어)http://goo.gl/IqXIBg
구글 번역기를 돌리면 대략의 내용은 알 수 있습니다.


이에 피터 태첼 재단의 피터 태첼 단장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란인들이 제 노력을 높게 사 주셔서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아후아지 아랍족의 인권활동에 당황한 게 틀림 없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고서야 저나 아후아지족에 대해 언급할 리가 없겠죠. 이란당국과 언론매체들은 다른 주요 언론인과 활동가들에게도 비슷한 중상모략을 일삼고 있습니다. BBC 페르시아어 스탭들도 그 대상이 되고 있죠.”


라햡 뉴스는 지금 아후아지 아랍족과 동성애자 사안 사이에는 연관성이 있다며, 그걸 폭로하겠다고 협박하고 있습니다. 라햡 뉴스에서 제가 동성애자라는 사실과 제가 LGBT 인권에 매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명해도 아랍권 인권가들이 동요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한편 라햡 뉴스는 댄 브레트 씨도 MI6의 비밀요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브렛 씨는 동성애자가 아니며, 아후아지족 인권가들에게 협조하고 있는 영국의 연구가이자 활동가이다. 


이러한 중상모략은 지난달 이란 국영 석유공사(NIOC: National Iranian Oil Company) 런던 지사에서 평화적으로 기획된 시위에 브렛 씨와 태첼 씨가 참여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날 시위는 아후아지인들의 동의 없이 현지에서 석유 채취에 투자하는 것을 반대하는 자리였다고 한다.


이날 시위는 영국-이란 상공회의소가 이란 국영 석유공사에서 마련한 연회를 저지하기 위한 것으로, 이날 행사에는 전 영국 재무장관인 라몬트 경 및 초당파 의회 이란 위원회 회장 리처드 베이컨 토리당 하원의원 등이 참석했다. 


시위 참가자와 촬영사들은 이란 경호원 및 정보국 요원으로 보이는 이들로부터 폭행을 당했으며, 우리가 경찰측에 이들을 신고하자, 이들은 외교관 면책권을 주장했다”고 태첼 씨는 밝혔다. 


이날 시위가 아랍 테러단체들에 의해 조직되었고 제가 플래카드를 들고 테러리스트의 인권을 옹호했다는 라햡 뉴스측의 주장은 말도 안 됩니다. 그쪽에서 내보낸 사진에도 저는 “이란 국영 석유공사 = 환경파괴+인권침해”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이날 시위는 박해받고 있는 이란의 소수민족 아후아지 아랍족들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후아지족들은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차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아후아지족의 영토는 1925년 이란에 합병되었는데, 이 지역은 석유가 풍부하지만, 주민들은 매우 빈곤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맞서 시위하는 아후아지족들은 큰 처벌을 받게 됩니다. 작년 이란 정권은 아후아지인들에게 존경받던 시인이자 문화인사 하솀 샤바니 씨를 날조된 테러혐의로 고문과 불공평한 재판 끝에 교수형에 처했습니다.



- 피터 태첼


- 옮긴이: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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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2



“Your homosexuality killed your m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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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에서 레즈비언으로 살아온 사미라는 모욕과 고립을 견뎌야만 했다. 그녀는 더 이상 그 누구도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하지 않길 바란다고 한다. 



우리 가족은 거의 네 명이었다. 거의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내가 아홉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즈음 나는 내가 친구 하나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린 늘 함께 잤고, 낮에도 항상 붙어다녔다. 나는 그 친구가 너무 좋았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날 그 친구는 다른 동네로 이사가 버렸고, 나는 그 슬픔을 극복하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땐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 그 친구가 날 떠나가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반친구들에 대한 내 감정도 선명해졌다. 일단 학교에 와서 스카프를 벗으면 다들 긴장을 풀었다. 보통 사춘기에 접어든 여자아이들은 몇 시간이고 거울을 들여다보며 연한 화장품을 발라보곤 했지만, 난 치장은 커녕 그 아이들의 아름다움을 마냥 보고만 있고 싶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달콤했던 기억은 교실 창문가에 앉아서 반친구들의 머릿결에 바람에 흩날리던 모습을 바라보곤 했던 것이다. 


그러다 반친구 하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친구와 조금도 떨어져 있기 싫었고, 그 아이만 계속 바라보고 싶었다. 나는 그 친구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우리 관계가 조금 더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해버렸다. 사실 나도 내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어쨌든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 날 일은 내가 예상치 못했던 결과를 불러왔고, 내 인생은 영영 바뀌어 버렸다. 친구가 곧바로 학교에 일러바친 것이다. 


어머니가 불려왔고, 나는 학교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다행히 2주후에 학교에 돌아올 수 있었지만, 모든 게 변해 있었다. 


그동안 어머니는 병을 얻어 입원하셨고, 아버지 대신 우리 가족을 돌보던 삼촌은 내 소문을 듣고 온갖 제재를 가해 오기 시작했다. 나는 밖에 나가지도,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지도 못한 채 엄격한 감시 속에서 지내야만 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학교로 돌아오자, 내겐 무언의 법칙이 끊임없이 적용되었다. 그 법칙이란 나는 다른 학생들과 다르다는 것이었다. 책상도 혼자서 써야 했고, 조별활동에서도 제외되었다. 어쩌다 다른 애들과 눈이 마주칠 때면 “역겨워!”라는 말이 돌아오기 일쑤였다.


시간은 흘렀고, 이런 일상은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어졌다. 6년 동안 내게 학교란 경멸과 고립으로 점철된 고문실이나 다름 없었다. 그나마 집은 나았다. 어머니는 교육을 받았던 덕에 직접 동성애에 대해 알아보셨고, 비록 날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거나, 내 성적 지향을 받아들인다는 말씀은 않으셨지만 “그건 니 삶”이라고 딱 잘라 말씀하셨다. 어머니의 말씀은 내게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고요함을 안겨다 주었다. 실제로 어머니는 날 예전과 다름없이 대해주셨고,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17살 때 어머니는 병으로 돌아가셨다. 난 원하지 않았지만 삼촌 집에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의지할 곳이라곤 그곳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조차 나와 남동생에게 간섭을 일삼았던 삼촌과 함께 살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동생은 새 환경에 곧바로 적응했지만, 난 그나마 누리던 조그만 자유마저도 모욕으로 대체되었다. 가족잔치가 있을 땐 나만 제외되었고, 다같이 저녁식사를 할 때도 나는 같이 앉을 수가 없었다. 내가 옆에 앉으면 축복이 사라진다는 거였다. 심지어는 내 동생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하게 했다. 이런 고독감 외에도, 22-23살이 되면 강제로 시집을 가야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항상 나를 사로잡았다. 



작별인사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난 '엄마가 죽은 건 내가 동성애자기 때문'이라고 계속 되뇌었다. 그건 내가 이란을 떠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고, 그 사랑은 5년간 이어졌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기에 이란을 떠나기가 더욱더 힘들었다. 하지만 22살이 되던 해 나는 고독을 선택했고 이란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내가 떠난다는 사실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한 달 동안 옷을 한 벌씩 들고 나가 친구집에 모아두었고, 그렇게 작은 짐가방을 꾸린 나는 집과 이란을 영원히 떠났다. 나 혼자서. 배웅해 주는 사람 하나 없이.


나는 터키로 넘어갔지만, 말도 몰랐고 돈도 없었다. 2년 동안 내가 겪었던 일을 돌이켜 보면, 그 시련을 어떻게 견뎌냈는지 믿기지가 않는다.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었던 2년도 끝은 있었다. 내가 겪은 일들은 터키의 그 조그만 난민촌에서 함께 살았던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거리를 헤매며 플라스틱 쓰레기를 주워모아 제분기에 넣었다. 그렇게 플라스틱을 새것처럼 만드는 일을 하면서 시간당 20리라(8500원) 밖에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곳 외엔 갈 곳이 없었다. 


내가 터키에 살 때, 여자친구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서로의 감정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결혼소식은 너무나도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 친구를 사귀긴 커녕 다른 사람에게 말도 붙이지 못했고, 아무에게도 내 마음을 털어놓지 못 했다. 터키의 조그만 마을에서 외톨이 레즈비언으로 살아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너같이 더러운 것한테 줄 방은 없어”라며 살던 곳에서 쫓겨나는 일은 예사였다. 


하지만 나는 2년 동안 그 모든 고통과 슬픔을 견디며 언젠가 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꿈꿨다. 어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내 마음을 알아주셨을 것이다.


캐나다에 온지도 어느덧 8개월이 되었다. 지금 나는 행복하고, 여기서 뭘 할지도 확실히 정해 두었다. 앞으로 갈 길이 험난할 것이다. 지금도 내겐 가족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약해진다. 하지만 언젠간 나도 가정을 꾸릴 것이다.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학교도 계속 다녀서, 자격이 갖춰졌을 때는 단체에 들어가 LGBT 인권 일을 하고 싶다. “이게 바로 나”라고 말할 수 있기까지 나는 정말 많은 고통을 인내해 왔다. 더이상 그 누구도, 특히 이란인들이 나와 같은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 한다. 앞으로 오랫동안 이 일을 하면서 언젠가는 “전 가족이 잘해 줘서 그런 일은 겪지 않았어요”라는 말을 들어보고 싶다. 


내가 하는 일이 언젠가는 결실을 맺어서 '엄마가 죽은 건 내가 동성애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길 바란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정말 내가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 사미라


- 옮긴이: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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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3




Iranian actor apologises after tweeting support for US gay marriage ru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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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 파지르 국제영화제 ‘Ice Age’ 시사회에 참가한 이란 배우 바흐람 하단 씨. 사진: Ahmad Halabisaz/Xinhua Press/Corbis




미국 대법원 판결 옹호한 이란 배우, 강경파 언론의 비난과 혐동성애적 비난 이어지자 트윗글 삭제해 




이란의 인기배우가 트위터를 통해 미연방 대법원 판결을 지지했다가 비난이 거세지자 사과했다. 


이란의 브래드 피트로 알려진 바흐란 라단 씨는 동성결혼을 전국적으로 인정한 미연방대법원의 판결에 찬사를 보냈다가 논란에 휩싸였다. 이슬람 공화국인 이란에서 동성애는 금기시되며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


라단 씨는 지난주말 파르시어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미국 대법원의 판결은 노예제도 폐지만큼이나 역사적인 것. 링컨에서 오바마까지라는 트윗글을 올렸다.


하지만 혐동애적 폭언과 강경파 언론의 비난이 빗발치자 라단 씨는 해당트윗을 삭제했다.


극우파 언론사인 <Keyhan>지는 라단 씨를 블랙리스트에 올려야 한다며, 이슬람 규율 문화부에 송환되어 취조를 받았다고 했지만 진실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한편, <Keyhan>지의 사장은 이란의 최고 종교지도자 아야톨라흐 알리 하메네이로부터 직접 임명된다고 한다. 이슬람 규율 문화부는 모든 문화컨텐츠의 심의를 맡고 있으며, 영화도 상영되기 전에 이슬람 규율 문화부를 거치게 된다. 


목요일 <Keyhan>지는 라단 씨의 사과문을 게재했다. 인스타그램에 90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는 라단 씨는 사과문을 통해 동성결혼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이 서한은 호세인 샤리아트마다리 편집장 앞으로 보내졌는데, 샤리아트라마다리 편집장은 반체제 인사 및 반대파를 겨냥해 언론을 조종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라단 씨는 사과문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미연방 대법원의 동성혼 합헌판결에 대한 제 의견으로 인터넷상에 공개된 글은 실수로 인한 것이었으며, 이란인들의 존엄성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에 사과드립니다.”


이란은 예언자의 전통에 따른 결혼을 옹호합니다. 미국의 법은 우리 이슬람 공화국에 어떠한 효력도 가지지 않으며, 동성결혼은 이란의 사회법 및 율법 그리고 가치관에 의해 비난받아야 마땅합니다.


현재 이란에서는 동성애자 인권을 두고 여론이 양극화되어 있다. 전세계에서 수백만 명이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에 무지개깃발을 입힌 가운데 수많은 국내외 이란인들도 이러한 움직임에 동참했다. 이로 인해 인터넷에서는 동성애를 둘러싼 논쟁이 가열됐고, 여론은 전례없이 양극화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다. 


파리에 거주하며 젠더평등 활동을 해 오고 있는 수데흐 라드 씨는 이번 트윗사건의 반응을 볼 때 정부당국은 동성애를 금기사항으로 남겨두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란 사람들이 동성애를 질병이 아닌 성적소수자로 받아들이는 걸 두려워하는 겁니다. 동성애가 규범화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죠. ”


특히, 강경파들은 '함젠스바즈'라는 비어보다 '함젠스가라(동성애)'라는 용어의 사용이 증가하고 있는 것에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고 한다. 이란의 새 형법은 여전히 동성애를 금지하고 있지만 그러한 형법 또한 '함젠스가라'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정부관료들도 동성애를 비난하면서 '함젠스가라'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라드 씨는 무지개 프로필을 둘러싼 논쟁이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활동가들에게는 동성애 사안을 거론할 “더없이 좋은 기회”라고 말한다. 


동성애를 옹호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렇게 진지한 논쟁이 이루어진 건 처음일 것입니다. 전 지금 34살인데 지금 이란국내에 사는 17살짜리 청소년과 59살짜리 중년을 상대로 인터넷 설전을 벌이고 있어요.”


혐동성애적 사고방식이 정부당국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다. 작년 구금당한 저명한 저널리스트 사바 아자르페이크 씨는 페이스북을 통해 동성애를 규탄했다. “롯족[소돔과 고모라의 도시]의 말로가 어땠는지 저는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작년에는 해외에 거주중인 이란의 팝스타 구구시 씨가 인기가수로는 처음으로 레즈비언을 그린 뮤직비디오를 공개하며 동성애혐오증에 맞섰다.  


최근까지 라바트(남성간의 항문성교)를 행할 경우 양쪽 모두 사형에 처해졌지만, 최근 수정된 형법에 따르면 “탑”역할은 채찍 100대에 처해지는 반면 “바텀”역은 여전히 사형에 처해진다. 여성의 경우도 동성간의 성교를 행할 경우 100대의 매질에 처해진다.


이란정부가 운영하는 인권위원회의 모하마드-자바드 라리자니 총비서는 “동성애는 질병이며 치료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세계보건기구는 1990년대에 이미 동성애를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했다.


동성애와는 달리 트랜스젠더는 1987년 아야톨라흐 루홀라흐 호메이니에 의해 합법화되었다. 이란은 태국을 포함한 그 어느 국가보다도 성전환수술을 많이 허용하고 있으며 예전부터 보조금도 지급해 오고 있다.


정부당국은 동성애와 트랜스젠더를 하나로 보고 있으며 때로는 소아성애와 연관짓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고방식에도 변화는 있다. 지난 3월 강압적인 성전환수술을 법으로 금하고 LGBT 전환치료를 금지함으로써 활동가들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 Saeed Kamali Dehghan


- 옮긴이: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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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8





Iran's queen of pop promotes gay rights in new music vi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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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비디오 '베헤쉬트(천국)' 감독 '폭팔적 반응'





구구시 씨. 2000 년도 미국 공연. 사진: Lucy Nicholson/AFP/Getty Images




이란 팝의 여왕 구구시(Googoosh)가 자국내 동성애자 공동체를 지지하는 비디오를 공개하면서, 이란 저명인으로는 처음으로 동성애혐오증에 맞선 인사가 되었다. 


발렌타인 데이 때 자신의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를 공개된 최신곡 베헤쉬트(천국)의 뮤직비디오는 사회와 가족의 반대에 부딛히는 레즈비언 커플을 그리고 있다. 


뮤직비디오를 감독한 나비드 아카반 씨는 수천여 명의 이란인들이 인터넷 및 불법 위성채널을 통해 이 뮤직비디오를 봤다고 전했다. 


"저희가 접한 반응은 정말 엄청난 것들이었습니다. 이란 LGBT 공동체가 인터넷 및 메시지로 보내 온 반응에 눈물이 날 정도입니다."


"처음부터 이 비디오는 이란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부정적인 반응도 각오하고 있었는데, 저는 물론 구구시 씨도 그런 반응에는 크게 개의치 않고 있습니다."


뮤직비디오의 조회수는 120만여 건에 이르고 있다. 아카반 감독은 이란에서 동성애자들이 겪는 처우를 보고 구구시 씨와 함께 작업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란 동성애자들을 용감하게 지지하는 구구시 씨의 선구자적 행동에 정말 뿌듯함을 느낍니다."

 

이란의 일부 보수사이트들은 이 비디오를 둘러싸고 구구시 씨를 비난했다. 엥게랍 뉴스지(Enghelab News)는 구구시 씨가 왕정주의자와 바하이 주의자들에게 매수된 반혁명주의자라고 했으며, 이 뮤직비디오는 이란 사회에 퇴폐주의를 양산시키기 위해 제작된 것이라고 했다. 카바르 온라인지(Khabar Online)는 이 음란한 뮤직비디오가 끔찍한 행동을 양산시킨다고 전했다. 


뮤직비디오에서 커플역은 두 이란 배우 페가흐 페리도니(Pegah Ferydoni) 씨와 야스민 아자디 씨(Yasmine Azadi)가 맡았다. 비디오 도입부에서 페레리도니 씨는 파트너에게 사랑을 표현하지만, 상대역은 마지막 부분에서야 등장한다. 


가사에는 "이 여정의 끝은 알 수 없지만, 너만큼 나도 확신에 차 있어", "사랑을 멈추라고 하지마. 당신이 사랑을 멈출 수 없듯, 나도 사랑을 멈출 수 없으니까'와 같은 구절이 나온다.  


한 팬은 페이스북 페이지에 '구구시 씨, 그 어느 때보다도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긴 반면, 다른 팬은 '이런 노래를 부를지 몰랐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구구시 씨는 최근 몇 년동안 재능발굴 프로그램인 구구시 아카데미로 인기를 모았다. 구구시 아카데미는 X팩터 스타일의 프로그램으로, 이란 망명자들이 런던을 거점으로 운영하는 Manoto1에서 방영되고 있다. 


구구시 씨는 다른 가수들과 달리 1979 년 이슬람 혁명 후에도 조국을 떠나지 않았으며, 이란에서 조용한 삶을 살아 왔다. 그런 그녀는 2000 년에서야 이란을 떠나 21 년간의 침묵을 깨고 활동을 재개했다. 


다른 가수들이 이란의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평을 받는 가운데, 구구시 씨는 이런 경력 때문에 자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은 편이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독일에 거주하는 이란인 레즈비언 인권 활동가 샤디 아민 씨는 이 뮤직비디오가 그 어느때보다도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이 비디오를 보고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서 봤냐고 물었어요. 그리고 이젠 고개를 떳떳이 들고 다닐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어요. 어머니는 이 뮤직비디오가 큰 변화를 불러일으키진 않겠지만, 수많은 이란인들의 침묵을 깼다고 말씀하셨어요."


아민 씨는 구구시 씨가 이런 뮤직비디오를 공개한 데에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고 말한다. "저희가 조사하고 경험한 바로 이란의 동성애자들, 특히 지방에 거주하는 이들은 이 세상에 자기같은 사람은 또 없을 거라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그런데 구구시 씨가 뮤직비디오를 통해 그런 사람들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해 준 거죠."


이란의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들은 정부는 물론 사회 특히, 보수강경파들로부터 심각한 박해를 받고 있으며, 집단괴롭힘 및 망명을 강요당하기도 하고, 사형 및 장기징역에 처해지는 이들도 있다. 



- 사이드 카말리 데흐간 


- 옮긴이: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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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3



ИРАНСКОГО ПРЕЗИДЕНТА ПРИЗВАЛИ ЗАЩИТИТЬ ЛГБТ-ЛЮДЕ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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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국제 인권 단체인 국제 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가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에게 동성애자 탄압 중단을 요청하는 공개 서한을 게재했다. 희망자는 누구나 국제 앰네스티 공식 홈페이지에 게재된 이 메시지에 동참할 수 있다.


인권 운동가들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이란에서는 이미 존재하는 법률과 더불어 상호 합의하의 동성 관계에 대한 형사 처분을 규정하는 일부 이슬람 율법 조항까지 적용해 왔다. 또 Iran.ru에 따르면 이 공개 서한에서는 성소수자 집단이 겪는 다른 유형의 차별에 대해서도 이야기되고 있다.


지난 2013년 8월 하산 로하니가 대통령에 취임하자 이란과 국제 사회는 이란의 정치 체제 및 법률의 완화와 자유화에 대한 희망을 내보였다. 이런 희망은 일부분 현실화되기도 했는데, 나스린 소투데, 자파르 파나히 등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집권 시 감옥에 갇힌 정치범들이 이미 석방됐다. 그러나 로하니는 최고 지도자인 알리 하메네이가 정한 정치 노선과 벨라야테 파키(성직자에 의한 통치 — 역주) 원칙에서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 옮긴이 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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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검사가 "모욕적이고 피곤"하며, 이에는 수동적 항문성교의 증거를 찾기 위한 직장검사도 포함되어 있다고 전했다.

2013-08-13



Gay Iranian men face "humiliating exams" for military exemption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Sydney Star Observer.




이란에서 외과, 정신과 심사과정을 통해 동성애자로 확인된 남성은 징집대상에서 영구히 제외되기 때문에, 일부 남성들이 군복무를 피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커밍아웃하고 있다고 한다.


중동 소식지 Al-Monitor의 보도에 따르면, 이란 남성들은 2 년에 걸친 군복무를 마쳐야만 합법적인 매매활동, 공무원 취직 및 여권발급 대상자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부유한 이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군면제 조치를 받지만, 동성애로 면제를 받게 되면 사회, 경제 활동에서 제외되기 십상이며, 국내에 만연한 혐동성애적 폭력에 노출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자 남성들은 군복무를 피하기 위해 신체검사에서 자신을 동성애자라고 밝힌다고 한다.


검사관과 군의관들은 '이반적인' 예비징후가 나타날 경우 보고해야 하며, 심층조사가 이루어진다. Al-Monitor지는 이란 동성애자 남성들의 말을 빌어 이러한 검사가 "모욕적이고 피곤"하며, 이에는 수동적 항문성교의 증거를 찾기 위한 직장검사도 포함되어 있다고 전했다.


이란 법에서는 항문성교에서 수동역할을 맞는 남성만 동성애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란의 동성애자들은 심각한 사회적, 법률적 탄압을 받고 있다. 그러나 테헤란 정부는 군대의 실상과는 달리 이란에는 동성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 벤자민 릴리 


- 옮긴이: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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