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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점과 단점

아시아/인도네시아 2013.08.29 14:45 Posted by mitr

2013-08-26



A mixed fortune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Daily Xtra.





화장을 잠시 쉬고 담배를 피우는 마미 조이스 씨. GIORGIO TARASCHI




강경파들의 추행이 지속되는 가운데, 자카르타의 트랜스젠더 성노동자들은 현대 인도네시아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싸워 나간다. 




플라자 인도네시아의 조명과 호화스런 호텔, 현란한 쇼핑몰과 분수대에서 몇블럭만 더 가면 사뭇 다른 분위기의 타만라왕이 있다. 자카르타 최고 부자 동네로 이어지는 가로수 거리는 자정이 되면 희미한 불빛과 함께 티아라, 마샤, 비너스 등 화려한 이름을 가진 젊은 미녀들의 차지가 된다. 


손님들은 차를 세운 채 값을 흥정하고, 스쿠터를 탄 십대들은 야릇한 일탈을 상상하며 키득거린다. 거리에 서 있는 미녀들은 트랜스젠더 성노동자들이다. 타만라왕은 오래전부터 트랜스젠더의 대명사였다. 


트랜스젠더 성노동자들이 밤에 거리에 나서는 것은 선택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하다. 2억4천5백만 인구의 자카르타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슬림 인구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인의 86%는 코란을 중도적으로 해석한 이슬람교를 따른다. 열도에 알라의 말씀이 들어오기 전부터 사람들은 애니미즘과 열도의 영향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교는 예로부터 와리아(waria)의 수용을 저지해 왔다. 와리아는 인도네시아어로 '여자(wanita)'와 남자'(pria)'의 합성어로, 널리 쓰인다. 신앙에 입각한 가치관 때문에, 공식적인 채용에 차별이 생겼고, 무수한 부모들이 트랜스젠더 자식과의 인연을 끊는다. 성인이 된 트랜스젠더들은 종종 집에서 쫒겨나기도 한다. 


수많은 트랜스젠더들이 다리 밑에서 산다. 몸을 팔지 않는 트랜스젠더들은 대부분 미용실이나 포장마차에서 일하거나 거리악사가 되는 게 고작이다. 매달 생활비를 버는 것은 고역이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와리아들은 호르몬요법을 받고 가슴확대 주사를 맞지만, 고가의 성전환 수술은 극도로 드물다. 


타만라왕에서 조금 걸어가다 보면 수디르만역 근처에 낮은 집들이 들어선 미로같은 골목길이 있다. "마미" 조이스는 전국각지에서 모인 스무 명의 트랜스젠더 성노동자들을 위해 이곳에 그나마 가정에 가까운 공간을 만들었다. 50대의 인상적인 트랜스젠더인 조이스는 원래 메단지역 출신이다. 낮동안 짧은 스포츠머리는 밤이 되면 금발 가발로 가려진다. 조이스는 윤락업소 겸 공영 연립주택인 이곳에 집을 가지고 있다. 낡은 2층 목조건물은 저녁식사가 끝나면 활기를 띄기 시작하고, 잔뜩 치장한 세입자들은 긴 밤을 맞이하기 위해 길거리로 나선다. 세입자들은 먼지 자욱한 매트리스와 싸구려 TV밖에 없는 월세방을 사흘치 수입에 해당하는 40~50 달러로 빌린다.

 

이곳은 타만라왕이나 다른 고객들로부터 가까울 뿐 아니라, 소외 받기 쉬운 사회에서 일종의 보호와 공동체를 제공해 준다. 최연소는 18 세, 최연장은 32 세. 다들 HIV로 동료와 친구를 잃은 경험을 안고 있다. 2007 년의 한 조사에 따르면, 자카르타의 트랜스젠더 중 3분의 1이 HIV 바이러스에 접촉했다고 한다. 마미 조이스의 집에서는 다들 에이즈의 고통을 목격한 적이 있지만, 아무도 입에 담지 않는다. 조이스의 사명은 스무 명의 소녀들에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고 일러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콘돔사용의 중요성을 주입시키려 해도, 수많은 부자 고객들은 이를 무시하고, 종종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 댓가로 세 배의 금액을 제시하기도 한다.


조이스가 활동하고 있는 스리칸디 세자티(Srikandi Sejati)는 자금난에 허덕이는 HIV 재단으로, 트랜스젠더 성노동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조이스는 세입자들에게 세 달에 한 번씩 검사를 받도록 종용하고 있다. "전 나약한 애들을 보호하는 엄마같은 존재예요." 표범문양의 가죽 위에는 마를린 먼로의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트랜스젠더 인권 전선에는 조이스 외에도 저명한 '엄마'들이 있다. 율리아누스 레토블라우트는 '마미 율리'로 통한다. 그녀는 최근 인도네시아에서 최초로 고령층 트랜스젠더 요양소를 설립해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사실, 독립시설은 아니다. 자카르타 남부의 거대 교외지역인 데폭의 자택을 갈곳 없는 트랜스젠더들에게 개방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시설에 대한 관심은 빠른 속도로 늘어갔다. "시작한지 6개월 밖에 안 됐는데, 대기자 명단에 800 명이나 있어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게중에는 트랜스젠더가 아닌 사람들도 있죠." 전직 성노동자였던 율리 씨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이기도 하다. 그녀는 5 년전 와리아로서는 최초로 인도네시아 이슬람 대학교를 수료했었다. 


자신의 자금과 지역 교회 네트워크의 지원으로 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율리 씨는 뒷뜰에 새 건물을 지어서 "자카르타의 모든 고령층 와리아들"을 받아들이고 싶다고 한다. "결국 모든 건 사랑이예요. 전 모든 사람에게 제 모든 것을 줄 겁니다."


일곱 명의 상주 "할머니"들 중에서도 요티 옥토세아 씨의 사연은 인도네시아의 와리아들이 예전부터 겪어온 전형적인 아픔이지만, 유독 시선을 끈다. 다부진 채격에 쳐진 눈, 상냥한 성격의 요티 씨는 현재 69 세이다. 그녀는 18 세 때 집에서 쫓겨나 성노동자가 되었고, 결국 (남자 옷차림을 하고) 화물선에서 일하게 되었다. "트랜스젠더로 사는 건 항상 힘들었어요. 사회가 만지길 꺼려하는 타부였죠. 요즘엔 부모들이 더 받아들이고, 언론에서도 관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지난 십 년 동안 인도네시아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2 년전까지만 해도 당국은 35,000 명으로 추정되는 트랜스젠더들을 "정신질환자"로 간주했었다. 이제 정부는 트랜스젠더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후원(제한적이긴 하지만)을 제공하고 있고, 마미 율리 씨의 프로젝트도 그 중 하나이다. 일부 와리아들은 가수, 토크쇼 사회자 등, 유명인사가 되었다. 종종 '인도네시아의 오프라'로 불리워지는 도르체 가말라마 씨도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으로 태어났었다. 


2008 년 요갸카르타에서는 한 활동가가 자신의 미용실을 트랜스젠더 전용 이슬람학교로 개조했고, 2006 년에는 인도네시아에서 최초로 미스 와리아 선발대회가 열렸다. 마미 율리 씨도 종종 TV 토론회에 초청된다. 그녀를 비롯한 다른 활동가들은 인도네시아의 트랜스젠더 인구가 7백만 명에 이를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믿기 어려운 수치이긴 하지만 정부가 제시한 수치도 타당성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인도네시아에서 가시성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트랜스젠더들 뿐만이 아니다. 전적으로 LGBT 사안을 다루는 Q! 영화제는 지난 10 년 사이 자카르타의 정기 연례행사가 되었다. "인도네시아의 대도시에는 게이클럽에 갈 때 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거리낌 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요" 최신 트렌드를 좇고 있는 젊은 저널리스트 니코 노비토 씨의 말이다. 


소셜미디어(인도네사이는 인구당 트위터 가입률이 세계최고다)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두 명의 활동가가 운영하고 있는 @nickynmita라는 계정은 "행복하고 건강한 LGBT 삶"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자카르타에는 작고 조심스럽지만 활기찬 이반 밤문화가 있다. Apollo 같은 클럽에는 돈많은 고객들이 몰리는데, 다채로운 드래그쇼와 고고댄스로 유명하다. 하지만 차별은 여전히 만연하며, 관용도도 환경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도심지역에는 커밍아웃하는 동성애자들이 늘고 있지만, 노비토 씨는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고 취직을 시켜주지 않는 고용주가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고 말했다. 

 

많은 와리아들이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기혼남성과 연애관계를 맺는 이들이 늘고 있으며, 부인이 남편의 이중생활에 대해 알고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하지만 트랜스젠더 성노동자들과 동성애자들은 성매매와 동성애가 형법에 의해 인정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중도덕을 지켜야 할 경찰에 의한 추행이 빈번하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한 것은 이슬람 수호전선(FPI: Islamic Defenders Front)의 강경파들이라고 한다. 이슬람 수호전선은 악명높은 급진단체로, 최근에는 인도네시아의 진보개혁에 맞서는 저항운동을 체현하기도 했다. 또한 이들 과격분자는 정기적으로 LGBT들을 위협하고 있으며, 일부 경우는 살해협박을 가하기도 한다. 남성이 여자옷을 입는 것은 하람(금기사항)인 것이다.


정부가 이들의 협박을 단속하길 꺼리기 때문에, 이슬람 수호전선의 영향력은 커지고 있다. 수많은 트랜스젠더 단체들이 부득이하게 사교 이벤트와 교육행사를 취소해야 했다. 지난 4 년 동안 이슬람 수호전선은 미스 와리아 선발대회의 취소를 강요하고 있으며, 트랜스젠더 활동가들의 연수 프로그램에도 몽둥이를 들고 나타났다. 심지어 2010 년에는 이들이 Q! 영화제 장외에서 시위를 벌이는 바람에 일부행사가 방해받기도 했다.


인도네시아의 많은 트랜스젠더들은 여전히 무슬림을 신봉하고 있으며, 정기적으로 모스크에 가기도 한다. 하지만 기도할 때에는 감히 여자옷을 입지 못한다고 한다. 이슬람주의자들의 협박을 받는 것은 고되지만, 이들은 침착하게 견뎌내고 있다. 28 세의 성노동자인 인탄 씨는 마미 율리의 안식처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제 고객들 중에는 이슬람 수호전선 사람들도 있어요"라고 자랑했다.  


한편 떠돌이 가수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다르니 씨는 최근 남자친구가 이슬람 수호전선에 가담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큰 문제는 없고, 종종 남자친구가 수호전선의 활동에 대해 털어놓을 때도 있다고 한다. 남자친구는 강경파 동료들에게 와리아와의 관계를 비밀로 하고 있다.


이렇듯 사랑이 비밀리에 부쳐지기는 하지만, 자신을 트랜스젠더로 인식하는 인도네시아인들이 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든 와리아들이 동의한다. 개방적인 사회에서 환영받는다는 것은 전반적으로 좋은 현상이지만, 일부 성노동자들은 장단점이 있다며 농담조로 말한다. 밤거리 인생에서 은퇴하고 미용실에 취직한 51 세의 토미 씨는 "예전엔 남자들이 우릴 쫓아다녔어요. 하지만, 와리아들이 너무 많아져서, 우리가 젊은 남자들에게 돈을 내고 섹스를 해야할 지경이예요'라며 웃었다.



제인 씨가 침대에 누워 마미로부터 받은 성교육 책을 읽고 있다. GIORGIO TARASCHI


마미 조이스의 집에 사는 아뎬과 다른 두 트랜스젠더 성노동자들. 휴대폰 앱으로 고객들과 채팅하고 있다. GIORGIO TARASCHI


마미 조이스의 세입자 셀비 씨가 일에 나가기에 앞서 치장하고 있는 친구를 돕고 있다. GIORGIO TARASCHI


최연장 세입자인 32 세의 아뎬 씨가 방문을 나오고 있다. GIORGIO TARASCHI


마미 조이스의 집 2층에서 보이는 상업지구. GIORGIO TARASCHI


비좁은 방에서 TV를 보며 졸고 있는 셀비 씨. GIORGIO TARASCHI



- 알렉산드로 어식


- 옮긴이: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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