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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0



Почему Путин всегда выигрывае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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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http://ruleaks.net/



지난해 9월, 내가 러시아로 귀국할 무렵 서방 언론들은 충격과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그들의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는 이미 파시즘의 귀퉁이에 다다랐다는 것이다. 홀로코스트는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악명 높은 ‘동성애 선전 금지법’으로 벌금형을 받거나 구속된 사람은 당시에 한 사람도 없었다.


즉 크렘린은 “공격 개시”라는 명령을 내리기는 했지만, 현실에서 대규모 탄압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후 어떤 이상한 괴짜 의원이 동성 커플들의 친권을 박탈하자고 제안하고 나섰다. 이 법안은 통과되지 않았고, 심지어 러시아 연방 공산당도 그 의원을 비난했다. 하지만 일부 활동가들은 긴급히 짐을 쌌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도 “떠나라”고 촉구했다.


물론 러시아에서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인권이 늘 보장됐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러시아 자유주의 야권 내부에는 놀라운 경향이 목격되는데, 그것은 늘 푸틴(집단적 푸틴, 즉 푸틴파 집권층)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정권은 대대적 탄압을 할 필요가 없다. 시민들, 활동가들을 전부 다 구속할 이유가 없다. 이론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암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면 우리는 즉시 “살려 주세요!”라고 외치며 사방팔방으로 도망치기 바쁜 것이다.


철학자 미셀 푸코가 biopolitics(생명 정치, 생명 관리 정치)라고 묘사한 바 있는 크렘린의 정치는 사실상 시민들에 대한 직접적인 탄압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대신 가장 목소리가 큰 개별적인 시민들만 타깃으로 삼아 탄압을 가한다. 모든 사람들을 감옥에 넣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뿐 아니라 비용도 많이 든다. 그래서 이 정치의 바탕에는 공포가 깔려 있다. 백만 명이 공포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 한 사람만을 구속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아주 빠르게 그런 정치에 적응하여 순종하게 된다. 동성애 선전 금지법 역시 마찬가지로 수백만 명의 시민들을 직접 탄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공포를 조장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지만, 결국엔 우리 모두 겁이 나서 죽을 지경이 되고 말았다. 정권이 바라던 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야!”하고 놀라게 하니까 우리는 두려움 속에 흩어져 달아나거나 철문으로 방어벽을 쌓고 집 안에 숨어버린 것이다.


활동가들 몇몇을 제외하고는 우리 모두 푸틴에게 장단을 맞추고 있는 셈이다. 푸틴은 우리가 공포에 떨기를 바란다. 우리는 나치 독일의 모습을 마음 속으로 그리면서, 그리고 앞으로 화형의 불쏘시개가 활활 타오를지도 모르겠다는 히스테리에 사로잡힌 나머지 마조히스트적인 열정으로 순종하며 두려워하고 있다.


우리는 분노하거나 절망한 나머지 매번 ‘파시즘’에 대해 외치지만, 결국 그런 식으로 본의 아니게 상황을 진단하면서 우리 스스로 푸틴에게 권력을 부여하고 있다. 만약 우리 상황이 진짜 파시즘에 다다랐다면 탈출하는 길밖에 남지 않았다.


절망, 공포, 분별 없는 히스테리, 도피주의. 이것이 바로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의 성공 비결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두려워하는 이들은 자기에게 무슨 짓을 해도 좋다고 타협한 셈이 되어 버렸다. 지난 금요일, 나는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모스크바의 클럽 근처에서 폭력배 20명이 입구를 막아섰다. 그런데 클럽 방문객 중 그 어느 누구도(!!!) 분노하지 않았다. 입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클럽 안의 파티는 계속되고 있었다.


클럽 입구 근처에서 자기 동료가 폭력배에게 얻어맞을 때에도 태평하게 술을 마시며 춤을 추는 화려한 청년들은 푸틴의 승리를 숭배할 뿐이다. 푸틴은 나치 독일 때처럼 우리를 살해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우리에게서 더 중요한 것, 즉 인간의 존엄성을 앗아가 버렸다.


오는 금요일, 러시아 시민 8명이 행하지도 않은 범죄 혐의로 장기간의 금고형을 선고받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또 다시 상황을 받아들이고 노여움을 억누를 것이다. 우리 자신의 내부에는 더 깊은 공포가 자리하게 될 것이다.


누군가 해외 망명을 결심하게 되면 그곳에서 이런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무엇 때문에 여기로 망명하시는 거죠? 아무도 당신을 개인적으로 탄압하거나 억압하지 않았잖아요?”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있기 때문이다.


- 예브게니 벨랴코프


- 옮긴이 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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