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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와 나보코프 家의 운명

세계공통 2014. 9. 26. 23:16 Posted by mitr

나보코프 가 형제들. 맨 왼쪽이 작가가 될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세르게이 나보코프.


블라디미르 나보코프(Vladimir Nabokov, 1899~1977)의 이름은 한국인들에게도 꽤 낯익다. 그의 작품 중 아마 <롤리타>를 가장 많이 알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의 아버지의 이름도 똑같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Владимир Набоков, 1869~1922)였다. 아버지 역시 러시아 저명인사였다. 법학자, 정치인, 평론가로서, 입헌민주당(1917년 2월 혁명 후에 성립한 임시 정부의 중심이 된 정당)을 창당하는 데 큰 기여를 하기도 했다.


그는 20세기 초 러시아 제국의 '남색' 처벌법 폐지 운동에 앞장선 인물이었다. 러시아는 스웨덴, 독일 등 서유럽의 영향을 받아 18~19세기에 동성애를 처벌하는 법을 제정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동성애자들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법학자로서 남성 동성애자들을 처벌하는 법은 폐지되어야 한다는 데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남성 동성애 처벌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러시아에서는 1917년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서야 동성애가 드디어 비범죄화됐다.


흥미로운 사실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남동생 콘스탄틴 나보코프(Константин Набоков, 1872~1927)는 외교관이었는데, 동성애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아내의 남자 형제인 바실리 루카비시니코프(Василий Рукавишников)도 동성애자였다고 한다. <롤리타>를 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에게는 게이 삼촌이 둘 있었던 것이다.


정치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아들이자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남동생인 세르게이 나보코프(Сергей Набоков, 1900~1945)는 1945년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르게이가 15살이 되었을 때 형인 블라디미르가 세르게이의 일기를 우연히 읽고는 가정 교사와 아버지에게도 보여 주었는데, 그 일기 내용은 세르게이가 동성애자임을 강력히 암시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집안에 게이가 둘 있었기 때문에 나보코프 가는 세르게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작가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나중에 양심의 가책에 괴로워했다고 한다.


나보코프 가는 10월 혁명 발발 이후 1919년 러시아를 떠나 서유럽으로 이주했고, 세르게이와 블라미디르 두 형제는 영국에서 대학을 다닌 후 독일 베를린에 있는 가족에게로 이주했다. 세르게이는 1920년대 베를린의 '자유의 향기'를 만끽하며 게이 커뮤니티에 자유롭게 드나들었고, 저명한 마그누스 히르슈펠트(Magnus Hirschfeld, 1868~1935)와도 친분을 쌓는다. 프랑스 파리로 이주하고 나서는 파리 엘리트의 게이들과도 친하게 지냈고, 거기에서 20년대 말에 평생의 연인인 게르만 티메를 만난다.


1936년 독일에서 유대인 탄압이 심해지면서 블라디미르의 아내가 해고당한다. 1937년 나보코프 가는 프랑스로 이주했다. 1940년 5월 나보코프 가는 독일군의 공격을 피해 파리를 벗어나고, 곧 미국으로 이주했다.


세르게이는 처음에 그 사실을 몰랐다. 결국 그는 애인과 함께 프랑스에 남기로 했으나, 파시스트들의 동성애자 탄압 정책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의심을 사지 않으려고 애인과 자주 만나지 않기로 한다. 세르게이는 베를린에서 통역 일을 했는데, 스스로 조심하며 살았지만 결국 1941년 동성애 혐의로 게슈타포에 붙잡힌다.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5개월 후 겨우 풀려나지만, 사회에 나와 그는 평소 대화를 할 때 나치 정권을 혹독히 비판하기 시작했다. 결국 1943년 11월 24일 그는 국가 반역 발언을 이유로 다시 연행되고, 12월 15일 노이엔감메 수용소(The Neuengamme concentration camp)로 보내진다.


수용소에서 그는 28631이라는 번호를 부여받고, 분홍색 삼각형을 달았다. 증인들에 의하면, 수용소의 혹독한 환경 속에서 그는 자기보다 약한 자들을 돕고 음식과 옷을 나누었다고 한다. 1945년 1월 9일 결국 이질과 배고픔에 시달리다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았다.


그의 애인인 게르만 티메도 연행되어 아프리카 전선으로 보내졌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장애인인 여자 형제를 보살피고 살다가 1972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 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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