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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일부터 8일까지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2015년 키예프 프라이드(КиївПрайд2015)가 "인권은 항상 지금의 문제다(Права людини – завжди на часі!)"라는 슬로건 아래 개최됐다. 우크라이나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인권 문제를 알리기 위해 조직된 키예프 프라이드 행사 기간 동안 개막식, 전시회, 영화 상영회, 문학 토론회, 출판회, 활동가 교육 프로그램 등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하이라이트는 6월 6일 토요일 오전 10시에 시작된 평등 행진(Марш рівності)이었다. 성소수자 혐오 세력이 평등 행진을 방해, 공격, 위협하면서 그날 오후 계획됐던 다른 행사들은 안전 문제를 이유로 취소되기도 했다.


지난해 6월 개최될 예정이었던 키예프 평등 행진(국내외 기자들은 자꾸 '게이 퍼레이드'라고 적지만, 키예프 프라이드 조직위는 공식 행사 명칭이 '평등 행진'이라고 강조하고 있다)은 시 당국에 의해 취소된 바 있다.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등에 따른 차별에 반대하고 평등한 세상을 위한 투쟁을 지지하는 의미로 개최되는 평등 행진은 키예프 프라이드 개막 전부터 우크라이나 사회에서 뜨거운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우크라이나 동성애자 연합에 따르면, 5월 말 언론인 출신의 국회 의원 세르히 레셴코(Сергій Лещенко)가 2015년 키예프 프라이드 개최를 지지하는 캠페인에 동참하고 나섰다. 우크라이나 유명 인사 중 국회 의원 스비틀라나 잘리슈크(Світлана Заліщук), 언론인 이리나 슬라빈스카(Ірина Славінська), 작가 라리사 데니센코(Лариса Денисенко), 작가 및 가수 이레나 카르파(Ірена Карпа), 시인 올레스 바를리흐(Олесь Барлиг), 디제이 안나 리(Anna Lee)도 이 캠페인에 참여하여 성소수자들의 평등 행진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2015년 키예프 프라이드 개최를 지지하는 우크라이나 언론인 출신 국회 의원 세르히 레셴코 포스터. 출처


한편 비탈리 클리츠코(Віталій Кличко) 키예프 시장은 평등 행진 이틀 전인 6월 4일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성소수자 권리 옹호 행진 취소를 요구하고 나서 물의를 빚었다. 그는 성소수자 권리 옹호 행진이 도시의 안전을 해칠 수 있다면서 키예프 프라이드 조직위 측에 행사 취소 검토를 요구했다. 이에 앞서 6월 2일 극우 민족주의 단체 프라비 섹토르(우파 진영)가 비탈리 클리츠코 시장에게 평등 행진을 금지시킬 것을 공식적으로 촉구한 바 있다. 한편 국제 앰네스티와 같은 국제 인권 단체는 키예프 시 당국이 평등 행진 참가자들의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우크라이나 LGBT 포털에 따르면,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평등 행진 전날인 6월 5일 다음날 치러질 성소수자 권리 옹호 행진에 반대할 뜻이 없음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포로셴코 대통령은 기자 회견에서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그리고 유럽 국가의 대통령으로서 평등 행진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평등 행진에 참가하지 않을 것이지만, 그런 행사가 방해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모든 우크라이나 시민의 헌법적 권리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종교계는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우크라이나 LGBT 포털에 따르면, 모스크바 총대주교 산하 우크라이나 정교회는 성소수자 권리 옹호 행진인 평등 행진을 비난했으나, 평등 행진에 반대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것에도 반대하고 나섰다. 이들은 우크라이나가 법치 국가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무력이 아니라 시 정부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키예프 총대주교 산하 우크라이나 정교회 역시 평등 행진에 비판적 입장을 취했으나, 그렇다고 극우 민족주의 단체 프라비 섹토르(우파 진영)의 극단적인 입장을 지지하지는 않았다. 이들은 비탈리 클리츠코 키예프 시장의 입장이 가장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 교회 측은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평등 행진은 6월 6일 토요일 오전 키예프 외곽의 오볼론스카(Оболонська) 강변 도로에서 개최됐다. 극우 민족주의 단체들의 방해와 폭력이 우려되어 행진 장소는 끝까지 비밀로 유지됐고, 사전에 행진 참가를 신청한 사람들에게만 행진 시작 1시간 30분 전에 개별적으로 연락해 장소를 공지했으나, 동성애 혐오자들은 버스까지 대절해 제시간에 행진 장소에 도착해 있었다. 평등 행진을 무산시킬 것이라고 선언했던 프라비 섹토르(우파 진영)는 버스 2대를 대절해 행진 장소에 도착했다. 현지 진보적 매체 니힐르스트에 따르면, 스보보다 당에 가까운 C14라는 조직도 평등 행진 방해를 위해 가담했다. 프라비 섹토르(우파 진영)는 현재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교전 중인 조직으로 무기까지 소유하고 있다.


현지 언론 흐로마즈케 TV와 우크라이나 동성애자 연합에 따르면, 이날 동성애 혐오자들의 방해와 폭력으로 경찰관 9명과 행진 참가자 10명 이상이 부상당했다. 특히 그중 두 명은 심각한 목 부상으로 중태에 빠졌다. 포드로브노스티에 따르면, 자원 활동 의료진의 긴급 대응으로 한 경찰관은 생명의 위기를 넘길 수 있었으며, 그는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현재 인공호흡기로 회복 치료를 받고 있다. 연막탄, 최루 가스, 폭죽 등을 이용하여 폭력을 행사한 동성애 혐오자들 중 25명은 경찰에 연행됐다. 프라비 섹토르(우파 진영) 측은 자기 대원들도 경찰에 연행됐음을 밝혔는데, 경찰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대원들을 연행했다며 비판했다. 이날 행진 안전 보장을 위해 경찰 약 1천 명이 동원됐다.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평등 행진 장면. 출처1 출처2 출처3 출처4 출처5


키예프 평등 행진에는 시민 약 300명이 참여했다. LGBT 활동가, 인권 활동가, 좌파 활동가, 아나키즘 활동가, 페미니즘 활동가들이 대오를 이뤘고, 국제 인권 단체인 국제 앰네스티 직원들, 국회 의원 세르히 레셴코와 스비틀라나 잘리슈크, 스웨덴 대사 부부도 행진 대열에 동참했다. 유엔(UN)과 독일 국회 측 인사들도 참석했다. 소츠포르탈에 따르면, 이들은 "Make love, not war", "인권이 가장 중요하다", "저항하라, 사랑하라, 권리를 수호하라"와 같은 구호를 외쳤다. 동성애 혐오자들의 방해와 폭력으로 인해 행진은 500m 지점에서 시작 30분 만에 종료됐다.


 






우크라이나 키예프 평등 행진의 충돌 장면. 출처1 출처2 출처3


평등 행진에 참여한 우크라이나 아나키스트 7개 단체들은 공동 성명을 발표하여 극우 조직에 의한 평등 행진 방해와 폭력을 강력히 규탄했다. 이들은 이번 평등 행진 사태가 증명하듯 이른바 '유럽적 가치'와 우익 세력에 대한 이상화와 영웅화가 파멸적이라고 경고하면서, 우크라이나 사회가 진보, 자유, 평등, 연대의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안전과 자기 방어에 대한 이해 부족과 폐쇄성을 벗어나지 못한 키예프 프라이드 조직위 측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했다.


한편 키예프 프라이드 조직위 측은 6월 11일 공식 성명을 통해 평등 행진 당시 부상당한 활동가가 없었다는 우크라이나 내무부 측의 발언이 거짓이라고 비판했다. 키예프 프라이드 조직위는 최소 10명 이상의 활동가가 부상당했으며, 그중 3명은 즉시 경찰에 신고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내무부 측은 활동가 부상과 관련한 신고가 없다고 주장했으며, 언론 매체들은 사실 관계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내무부의 입장만을 전달하고 있다. 키예프 프라이드 조직위와 현지 성소수자들은 내무부가 극우 민족주의 단체들의 폭력을 덮고 넘어가려 하고 있다며 비난하고 있다.


- 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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