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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 아세안 인권선언의 입장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좋은 소식일까, 나쁜 소식일까? 더글러스 샌더스가 이 문제를 분석해 본다.




먼저 나쁜 소식부터 전하겠다. 우리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반차별법 조항에는 성적지향이나 성적주체성 또는 성의 표현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마치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두 번째로 결혼은 '남녀사이'라고 되어 있다. 마치 남성 혹은 여성끼리는 결혼을 할 수 없다는 듯이 말이다.


이 초안에서 쓰인 표현들은 유엔에서 가장 중요한 두 인권문서, 즉 1948 년 국제연합총회에서 가결된 세계인권선언(UDHR: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그리고 1966 년 여러 국가가 서명함으로써 당사국에 구속력을 가지게 된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ICCPR: 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 이하 ICCPR)으로부터 직접 인용되었다.


모체가 되는 문장은 세계인권선언이다. 따라서, ICCPR은 세계인권선언을 표방했다. 이번 아세안 인권선언 또한 (현재 정치상황을 고려해 볼 때) 마찬가지이다. ICCPR은 아세안의 10 개 회원국 중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필리핀, 태국, 베트남 6개국이 서명했었다. 따라서 이들에게 있어서 아세안 인권선언은 이미 인정한 바 있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셈이다. 그 외의 국가들(브루네이, 말레이시아, 미얀마, 싱가폴)에 있어서는 이번 선언을 진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인권에 있어서 가장 세련된 회의주의자임을 자랑하는 싱가폴은 이번 아세안 선언을 승인함으로써 간접적으로나마 ICCPR에 서명하게 된 셈이다. 이리하여 싱가폴은 동성애 금지법이 국제적 인권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라는 유엔 선언의 계기가 된 글귀를 지지하게 되었다. 판사들이 이 사안이 싱가폴 헌법 377A조와 상반된다고 할 때 정부 변호인들은 과연 법정에서 뭐라고 말할까?


평등과 차별 금지


현재 아세안 회원국 중  ICCPR에 명시된 바에 의거해 정부 및 사기업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는 일반적인 법률을 둔 나라는 없다. 현재 아시아에서 고용인이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해고할 수 없다는 법을 둔 나라는 대만 뿐이다.


세계인권선언과 ICCPR은 모두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혹은 기타 소신, 사회적 출신배경, 재산, 출신을 비롯한 기타 지위로 인한 모든 종류의"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이 조항에서 세 가지 중요한 점이 있는데, 이는 (1) "모든 종류"의 차별을 전반적으로 거부하고 있다는 점, (2) 인종, 성 등과 같이 차별 받아서는 안 될 예가 직접 제시되어 있다는 점, (3) "기타 지위"라는 표현을 추가해 이 조항이 제한적으로 해석되는 일을 막았다는 점이다. 우리도 이에 포함되어 있지만 이번 아세안 선언에는 언급되지 않았다. 


니콜라스 투넌 씨가 언론의 조명을 받으며 로드니 크룸(오른쪽) 씨, 법률고문 웨인 모건(왼쪽)씨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나비 필레이 유엔 인권위원회 위원장은 유엔이 1994 년 소송에서 닉 투넌 씨 편에 서서 이전 타스마니아주의 반동성애법을 비난하였고,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성적지향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어야 함을 처음으로 인정함으로써 전세계에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말한다. 사진tidningenkomut.se



호주 타스마니아주에서 동성애자 인권운동가 니콜라스 투넌 씨가 동성애 금지법에 도전했을 때 (이 소송에 패하고 싶었던) 호주정부는 (ICCPR의 준수를 감독하는) 유엔자유권규약위원회에 '기타 지위'에 '성적지향'도 포함되는지 물었다. 


놀랍게도 (독립적인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는 성적지향에 근거한 차별도 성에 근거한 차별의 일부분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는 정말 크나큰 수확이었다. 위원회에서는 성에 근거한 차별을 금지하는 모든 헌법 및 법률 또는 협약조항은(실제로 이러한 조항은 아주 많다) 여성 뿐 아니라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도 포함한다고 말했다.


1994 년 호주정부 대 투넌 씨의 재판 이후 자유권규약위원회는 ICCPR에 서명한 당사국들에게 동성애를 범죄로 규정하는 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국가별인권실황정기검토가 새로 시작된 이후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설립한 여러 위원회 또한 동성애 금지법의 철를 촉구하고 있다.


브루네이 같은 나라에서도 성에 근거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는 아직도 식민지시절의 동성애 금지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 날도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지만.


결혼


세계인권선언과 ICCPR은 남자든 여자든 성인이면 누구나 결혼하여 가정을 꾸릴 권리를 옹호하고 있다. 여기서 가족은 사회의 핵심 단위이며 정부는 이러한 가족을 보호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뉴질랜드 정부는 법적으로 동성 커플의 평등권을 인정했지만 '결혼'이라는 명칭의 사용은 거부하고 있다. 현재 유보중인 소송 사건(호주와 콜롬비아)에서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동성커플 또한 이성커플과 동등하게 취급되어야 된다고 결정했다. 동성 커플도 동등하게 인정받아 온 것이다.


2002 년 조슬린 씨가 뉴질랜드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뉴질랜드 정부가 '결혼'이라는 명칭을 거부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렸다. 실질적인 권리에서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되지만 공식적인 명칭은 동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사실 2002 년 당시는 자유권규약위원회가 결혼관련 사안을 다루기에는 이른 시기였다. 2001 년 네덜란드가 세계최초로 동성결혼을 허용했었기 때문에 결혼관련 사안은 아직 무르익지 않았었다.


손해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제한되었다. 결혼이라는 명칭을 거부하는 이유가 ICCPR에 나오는 글귀 때문임은 명백했다. ICCPR 문서에서 성과 관련된 단어가 나오는 부분은 '남성과 여성'이라고 특정짓는 결혼관련 조항이 유일하다.


ICCPR은 '결혼'에 대해 보수적이고 특정적인 태도를 취했다. 동성결혼허용의 거부는 차별을 금지하는 ICCPR의 조항에 위반될 수도 있으나, 그 전반적인 조항이 '결혼'에 대한 특정적인 언어 선택으로 인해 제한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자유권규약위원회는 그 외의 어떠한 권리와 혜택도 결혼 조항의 특정 성을 언급하는 글귀에 근거해 부정하지 않는다.


조슬린 씨는 법정에서 패했다. 하지만 그것은 가장 좁은 의미에서의 패배였다. 우리는 명칭을 잃었을 뿐 평등권 그 자체를 잃은 것은 아니다.


요그야카르타 원칙을 보라. 이 원칙은 비교적 새롭지만 여전히 결혼의 확대를 둘러싼 큰 논쟁이 일기 전의 것이다. 이 원칙은 동성 커플의 권리와 혜택을 주창하고 있지만 "결혼"이라는 명칭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다. 만약 조슬린 판결이 무시되었다면 요그야카르타 원칙은 공격당하기 쉬웠을 것이다.


언젠가 조슬린 판정이 뒤바뀌는 날이 오겠지만 당분간은 어려울 것이다. 그 동안 우리는 '결혼' 사안에 있어서 하루하루 승리를 이뤄나가는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아세안 인권선언의 초안은 후퇴가 아니다. 적어도 네 나라(브루네이, 말레이시아, 미얀마, 싱가폴)에서는 21 세기의 현실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Doug Sanders는 캐나다의 법학과 교수로 현재는 은퇴하여 방콕에 거주중이다.  

연락처: sanders_gwb@yahoo.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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