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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er Sexuality and Identity in the Qur'an and Hadith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Born Eunuchs








꾸란에서는 “욕정을 가지고 남성에게 접근하는 것”과 남성의 거세를 비난할 때 통상 롯의 백성이 저지른 죄를 언급한다. (꾸란 7:81, 26:165-166, 27:55, 29:28-29)


7:81 “너희는 여성을 마다하고 남성에게 성욕을 품으니…”
아랍어: اِنكُمْ لَتَاْتُوْنَ الرِّجَالَ شَهْوَةً مِّنْ دُوْنِ النِّسَآءِ


26:165-166 “너희는 우주의 피조물 가운데서 남성에게만 접근하려 하느뇨?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해 창조하신 너희 배우자들을 버려 두려 하느뇨?”
아랍어: آ تَاْتُوْنَ الذُّكْرانَ مِنَ الْعلَميْنَ \ وَتَذَرُوْنَ مَا خَلَقَ لَكُمْ رَبُّكُمْ مِّنَ اَزْوَاجِكُمْ


27:55 “너희는 여자가 아닌 남자들에게 성욕을 갖느뇨?”
아랍어:
آ ئِنكُمْ لَتَاْتُوْنَ الرِّجَالَ شَهْوَةً مِّنْ دُوْنِ النِّسَآءِ


29:28-29 "너희는 일찌기 너희 백성도 그러한 적이 없는 음란한 행위를 저지를 죄인들이라. 너희는 남성에게 성욕을 갖고 여행자의 길(즉 수정관 또는 요도)을 막아 물건을 빼앗으며 너희가 모인 곳에서조차 사악한 행위를 하느뇨?”
아랍어:
اِنكُمْ لَتَاْتُوْنَ الْفَاحِشَةَ مَا سَبَقَكُمْ بِهَا مِنْ اَحَدٍ مِّنْ الْعلَمِيْنَ \ آ ئِنكُمْ لَتَاْتُوْنَ الرِّجَالَ وَتَقْطَعُوْنَ السَّبِيْلَ وَتَاْتُوْنَ فِي نَادِيْكُمْ
 

그러나 꾸란은 당시 여성에 대한 성욕이 선천적으로 결여된 것으로 치부되던 남성을 수동적 성교 파트너로 삼는 것은 금지하지 않았다. 이들은 여성에 대해 성적흥분을 느끼지 못했으므로 ‘남성’으로 간주되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날 이들 남성은 주로 ‘게이’로 알려져 있지만, 고대에는 이들을 해부학적으로 전부 “선천적인 고자”로 간주했다. 비록 꾸란에 고자(خَصِي)라는 표현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율법학자들이 남긴 서적과 하디스에는 이런 표현이 등장한다. 게다가 꾸란에서도 “성인남성의 성욕(및 기술)을 가지지 못한(24:31: غَيْرِ اُولىِ الاِرْبَةِ مِنَ الرِّجَالِ)” 이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따라서 그런 하인들은 여성의 나체를 보는 것이 허락되었다. 이는 선천적인 고자, 즉 (무성애자 내지는) 오직 선천적인 게이남성만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안채에서 하인으로 일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몸에 무관심해야만 했다. 다음 하디스에는 한 하인이 예언자로부터 쫓겨나는 일화가 등장한다. 이 하인은 여성에 관심이 없는 “여성스런 남자(무칸나트,مُخَنَّث )”로 여겨졌지만, 다른 여성에게 음탕한 태도를 취했다가 예언자에게 들키고 만 것이다:


사히흐 알 부하리 62권 (혼인), 114장:
여자의 흉내를 내는 남성이 아내의 시중을 듦에 있어서 금지되는 것
(162) 움무 쌀라마가 말하길, 예언자(그에게 평강이 있기를)께서 집에 계실 때,
집에는 마침 여성스런 남성(مُخَنَّث)도 있었다. 그 여성스런 남성이 움무 쌀라마의 오빠 압둘라흐 빈 아비 우마이야에게 말하길, “하나님이 내일 그대에게 따이프를 점령하라 하시면, 저는 가일란의 딸을 지목하겠습니다. 가일란의 딸은[각주:1] 앞에서 보면 네 명으로 보이고 뒤에서 보면 여덟 명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예언자(그에게 평강이 있기를)께서는 “이 자는 앞으로 너희들의 시중을 들 수 없다”고 하셨다. 


사히흐 무슬림, 26권 (안부), 12장:
(5415) 움무 쌀라마가 말하길 집안에 여성스런 남성(
مُخَنَّث)이 있었다. 마침 하나님의 사자(그에게 평강이 있기를)께서 집에 계신데 그 여성스런 남성이 움무 쌀라마의 오빠 아압둘라흐 빈 아비 우마이야에게 말했다. “하나님께서 내일 그대들에게 따이프를 정복하라 하시면, 저는 가일란의 딸을 지목하겠습니다. 가일란의 딸은 앞에서 보면 네 명으로 보이고 뒤에서 보면 여덟 명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하나님의 사자(그에게 평강이 있기를)께서는 “이 자들은 앞으로 네 시중을 들 수 없다”고 하셨다. 


(5416) 아이샤가 말하길, 여성스런 남성(
مُخَنَّث)이 예언자의 부인을 시중들고 있었는데, 다들 그가 “성욕(또는 성적 기술)을 갖추지 못한 자 (فكانوا يعدونه من غيْر أولى الارة)”라고 여겼다. 하루는 그 자가 부인들과 함께 앉아 있는데 예언자(그에게 평강이 있기를)께서 오셨다. 그 자는 “그 여자는 앞에서 보면 네 명으로 보이고 뒤에서 보면 여덟 명으로 보인다”고 했고, 예언자(그에게 평강이 있기를)께서는 “이 자가 이런 것을 알다니, 앞으로 너희들의 시중을 들 수가 없다”고 하셨다. 이에 아이샤가 말하길, 모두가 그 남자 앞에서 베일로 가렸다.

 

아이샤의 이야기를 보면, 다들 이 하인에게 “성욕/기술”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를 안채에 들여보냈다고 언급하는 부분이 나온다. (여기서 ‘성욕/기술’이라고 표기한 것은 아랍어 단어에 이 두가지 뜻이 다 있으며, 여기서 기술이란 성욕에 의거한 특정 기술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아이샤는 “남자의 성욕/기술이 없는 자”와 관련된 꾸란의 구절을 인용하며, 그 자가 이러한 “성욕/기술”이 없었다면, 꾸란에 의해 안채에 머무는 것이 정당했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무하마드는 이 여성스런 남성이 (어떤 의도였든) 가일란의 딸에 대해 묘사하는 것을 듣고, 그도 성인남성의 성욕과 기술을 지녔고, 여성을 성적대상으로 여길 줄 안다고 생각했다. 이는 당시의 사회기준과 꾸란에 의거해 안채 하인으로 결격사유였다. 하인이 이성에게 무관심해야만 하는 구조 속에서 가장 큰 위험은 바로 이성에 대한 무관심이 가짜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즉, 일반남성이 안채에 들어가기 위해 동성애자인 척 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디스에는 크로스드레서를 지탄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예언자는 특히 여성의 흉내를 내는 “남성”과 남성의 흉내를 내는 여성을 힐책하고 있으며, 이들은 부정행위의 결과로 “집에서 쫓겨나게 된다”. 특히, 당시 남성으로 간주되지 않던 고자 외의 “남성”들이 이런 행동을 일삼는 것에 관해서는 매우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사히흐 알 부하리, 72권 (의복) 61장:
(773) 하나님의 사자
(그에게 평강이 있기를)께서는 남자면서 여성의 흉내를 내는 이들(남성복수형)과 여자면서 남성의 흉내를 내는 이들(여성복수형)을 꾸짖으셨다.  

아랍어: لَعَنَ رَسُولُ اللهِ صلى اللهُ عليهِ وَسلَّمَ المُتَشَبِّهِينَ مِنَ الرِّجَالِ بالنِّساءِ وَالمُتَشَبِّهاتِ مِنَ النِّساءِ بالرِّجالِ


사히흐 알 부하리, 72권 (의복) 62장:
(774)  예언자
(그에게 평강이 있기를)께서는 남자면서 여성스런 남성인 척 하는 이들(남성복수형)과 여자면서 남성인척 하는 이들(여성복수형)을 꾸짖으시며, “이들을 집에서 내보내라”고 하셨다. 이에 예언자(그에게 평강이 있기를)께서는 그러한 자(남성단수)를 내쫓으셨고 ‘우마르도 그러한 자(여성단수)를 내쫓으셨다.”

아랍어: لَعَنَ النَّبِي صلى اللهُ عليهِ وَسلَّمَ المُخَنَّثِينَ مِنَ الرِّجَالِ وَالمُتَرَجِّلاتِ مِنَ النِّساءِ وَ قَالَ: أخْرِجُوهُمْ مِنْ بُيُوتِكُمْ، قالَ: فأخْرَجَ النَّبِيُّ صلى اللهُ عليهِ وَسلَّمَ فُلانا، وأخْرَجَ عُمَرُ فُلانَةَ


여기서 “남자”와 “여자”라는 단어는 강조를 위해 쓰였다. 강조 및 해명의 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문법적으로 쓸 필요가 없는 단어들이기 때문이다. “흉내 내는 이들”과 “여성스런 남성” 뒤에는 이미 남성형 접미사가 쓰였고, 후자의 “흉내를 내는 이들”과 “남성인척 하는 이들”에도 여성 접미사가 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강조형을 썼다는 것은 이러한 지탄이 “남성”과 “여성”만을 향한 것으로, 여자 흉내를 내는 非남성(남자 흉내를 내닌 非여성이라는 개념이 있었다면 이들도 포함)에게는 적용되지 않았음을 뜻한다. 즉, 이성애자 남성이 순진한 남편의 아내 및 순진한 여성에게 접근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드래그퀸도 허용되었다는 것이다.  


꾸란은 생식력이 없는(عَقِيم) 이들도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42:49 하늘과 대지의 주권은 하나님 안에 있어 그분게서 뜻을 두시고 계획한 것을 창조하시며 그분이 뜻한 이에게 남성을 주시고, 그분이 뜻한 이에게 여성을 주시니라.
50 그분은 남성과 여성을 다같이 두시고 또한 그분이 뜻한 이를 불임으로 두시니 실로 그분은 아심과 능력으로 충만하시니라.
아랍어:
لله مُلْكُ السَّموتِ وَالْاَرْضِ يَخْلُقُ مَا يَشَآءُ يَهَبُ لِمَنْ يَّشَآءُ اِنَاثاً وَّيَهَبُ لِمَنْ يَّشَآءُ الذُّكُوْرَ \ اَوْ يُزَوَّجُهُمْ ذُكْرَاناً وَّاِنَاثاً وَيَجْعَلُ مَنْ يَّشَآءُ عَقِيْماً اِنَّهُ عَلِيْمٌ قَدِيْمٌ


마지막 두 구절(42:49-50)은 통상 영어권에서 다르게 해석되는데 즉, 하나님께서 어떤 이들에게는 딸 또는 아들을 주시고, 어떤 이들에게는 아들과 딸을 모두 주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두번째 구절에서 혼인 또는 짝짓기(زَوَّجَ)에 해당하는 표현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보통 한 가정에 아들과 딸이 있을 때, 그 아들과 딸들이 쌍을 이루지는 않는다! 두번째 문제는 꾸란에서 남성과 여성이 함께 언급될 때는 대개 남성이 먼저 언급되고 그 뒤에 여성이 언급된다는 점이다. (예: 3:195[각주:2], 4:12[각주:3], 4:124[각주:4], 6:143[각주:5]-144[각주:6], 16:97[각주:7], 40:40[각주:8], 42:50[각주:9], 49:13[각주:10], 53:21[각주:11], 53:45[각주:12], 75:39[각주:13], 92:3[각주:14]) 필자가 아는 한 꾸란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먼저 언급된 구절은 이곳 밖에 없다. 만약 이 두 구절이 정말 아들과 딸을 일컫는 것이라면, 딸보다 아들이 먼저 언급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남성우선의 원칙”에 의거해 본다면, 이들 구절에 나오는 여성과 남성은 자녀가 아니라 대상 즉,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따른” 욕망의 대상을 가리키는 것이다. 성적대상으로서 여성이 먼저 언급된 것은 이들이 통상 남성이 가지는 욕구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여성을 선사해 주시는 대상이 주로 남성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 구절 또한 남성을 먼저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하는 이는 (누구든지)(whome(ever))”라는 표현이 쓰였다는 것은 하나님이 뜻하실 경우, 여성이 다른 여성에게 욕망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남성이 여성 및 수동적인 非남성에게도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필자는 이 구절이 전지전능하신 알라께서 뜻하신대로 창조하신 성적지향과 성별의 다양성을 아주 간단명료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생식력이 없는 이들에는 금욕중인 여성은 물론 남성도 포함될 수 있다. 실제로 꾸란의 24장 60절에는 “여성 중에서 결혼을 원하지 않고 금욕을 행하는 이들(وَالْقَوَاعِدُ مِنَ النِّسآءِ الّتِي لَا يَرْجُوْنَ نِكَاحاً)”은 “옷을 벗어도 된다”고 나와 있다. 


여성의 다양한 성별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예가 바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다. 생식에 관한 고대의 개념에 따르면 오직 남성만이 씨를 생산할 능력이 있었다. 여성은 남자로부터 씨를 받지 않고는 소년은 물론 그 어떠한 아이도 나을 수 없었다. 기독교의 경우 하나님을 예수님의 남성 아버지로 책정함으로써 문제가 해결됐지만, 꾸란에서 하나님은 생식활동에 임하지 않는다. 즉 장차 예수가 될 씨앗은 마리아 자신에게서 나왔다는 것이다. 마리아가 생식 가능한 씨앗을 스스로 만들어냈다면, 당시의 정의로 볼 때 마리아는 여성의 외모를 하고 있었을지언정 남성이 되는 셈이다. 꾸란에서도 어머니가 마리아를 낳고 여아임을 선언했다고 나오지만, 하나님은 더 많은 것을 알고 계셨다.
 

(꾸란 3:36) 그녀가 분만을 하고서 말하길 주여 저는 여자 아이를 분만하였나이다 하나님은 그녀가 분만한 것을 잘 아시도다 남자가 여자와 같지 아니하니…
아랍어:
رَبِّ اِنِّي وَضَعْتُهَآ اُنْثى وَاللهُ اَعْلَمُ بِمَا وَضَعَت وَلَيْسَ الذَّكَرُ كَالاُنْثى


마리아가 가지는 젠더의 다양성은 다른 전통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필자는 일찌기 마리아의 처녀성은 단순히 남자를 아직 모르는 소녀의 순수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비스타를 섬긴 로마의 처녀들처럼 남성과의 성교를 영구적으로 거부하는 쪽에 가깝다고 주장한 적이 있었다. 이사야 7:14[각주:15]를 보면 처녀가 아들을 잉태할 것이라는 예언이 나오는데, 여기서 처녀에 해당하는 단어는 히브루어 경전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베툴라흐(
בתולה)’가 아니라 ‘알마흐(עלמה)’이다. ‘베툴라흐’가 아직 성경험이 없는 소녀를 가리키는 반면, ‘알마흐’는 소년을 뜻하는 ‘엘렘(עלמ)’의 여성형으로 매우 드물게 쓰이는 단어이다. ‘알마흐’라는 표현이 쓰인 다른 구절을 보면, 이 단어가 톰보이 내지는 남성을 거절하는 이라는 뜻으로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 잠언 30:18-19[각주:16]에서도 알마흐는 남자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로 등장한다.)



이성애자 남성들의 동성애 행위 


꾸란에는 동성애자(고자)들의 동성애 행위는 언급되어 있지 않으며, 이성애자 남성이 다른 이성애자 남성에게 가한 부당한 동성강간만이 언급되어 있다. 롯의 이야기 외에도 이성애자 남성들의 성적착취는 노예상들이 예언자 요셉을 “하찮게 간주했다”는 이야기에서도 암시되어 있다. (12:20[각주:17] 
وَكَانُوْا فِيهِ مِنَ الزَّاهِدِيْنَ


그러나 꾸란과 하디스에는 이성애자 남성들의 동성애적 욕망이 허용되었던 흔적도 보인다. 부하리에는 예언자가 아닌 아부 자파르의 의견을 인용하면서, 만약 삽입이 있었을 경우, 그 소아성애자는 소년의 어머니를 아내로 취할 수 없다고 명시한 하디스가 있다.  

 

사히흐 알 부하리 62권 (혼인), 25장: 

소년과 유희를 즐긴 이는, 만약 그 소년에게 삽입했을 경우, 그 어머니를 아내로 취해서는 아니 되리니.
아랍어:
فِيمَنْ يَلْعَبُ بالصَّبِي: إنْ أدْخَلَهُ فِيهِ فَلا يَتَزَوَّجَنَّ أُمَّهُ


(같은 장에는 남성이 모녀를 한꺼번에 아내로 취할 수 없다는 규칙도 명시되어 있다.) 이 하디스에서 볼 수 있듯이, 소년에게 성기를 삽입하는 것조차 계간죄로 간주되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그것이 계간죄로 간주되었다면, 소년의 모친을 아내로 삼을 수 있을지 여부를 운운하기 전에 불에 타 죽을지, 돌에 맞아 죽을지, 높은 탑에서 떨어져 죽을지를 두고 고심해야 했을 것이다. 이런 형벌은 “롯의 백성”과 같은 죄를 저질렀을 경우 가해지는 것이라고 하디스에는 나와 있다. (한 독자는 이 하디스가 꼭 소년삽입이 계간죄가 아님을 암시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즉, 모든 범죄가 발각되고 처벌을 받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소년에게 성기를 삽입한 자가 어떤 이유에서건 계간죄로 처벌을 받지 않았다 해도, 최소한 그 모친을 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양심적으로 알아야 한다는 뜻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 하디스가 시사하는 바는 여전히 매우 흥미롭다. 즉, 남성이 소년에게 삽입을 하지 않았을 경우, 그 모친을 아내로 취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고대를 통틀어 소년애(소년과의 성교)와 계간(“남성”에게 성기를 삽입하는 것) 사이의 구분은 일괄적이기까지는 않아도 일반적이었으며, 이러한 구분은 (일부 중세학자들의 공허한 반대가 있긴 했지만) 최소한 19세기까지 이슬람 역사 속에 건재했다. 많은 이들이 소년애를 정상으로 여겼던 것만은 확실하다. “선천적 고자”들이 그렇듯, 사춘기 소년들 또한 “성인남성의 성욕/기술(여성과 성교할 능력 및 생식능력)이 전혀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꾸란 자체도 소년성애자들의 편에서 천국을 묘사했다: 
 

52:24 진주처럼 잘 보관된 소년[غِلْمَانٌ]이 그들 주위를 돌며 시중들도다.


56:22-23 검은 눈을 한 이들 [حُوْرٌ عِيْنٌ]이 있으매, 잘 보호된 진주와 같노라.  


76:19 결코 나이들지 않는 소년들[وِلْدَانٌ مُتَخَلَّدُوْنَ]이 그들 주위를 돌리니 너희는 그들이 뿌려논 진주들처럼 생각하리라. 


2:25 [정원에서] 순결한 동반자[اَزْوَاجٌ مُّطَهَّرَةٌ]가 있어…


4:57 그곳에는 순결한 동반자[اَزْوَاجٌ مُّطَهَّرَةٌ]가 있노라…


라비아 알-아다위야 시대의 한 위대한 남성 수피 수행자는 소년애에 대해 신성한 정당화를 제시했고, 이는 위대한 수피여성들을 다룬 10세기 서적에 한치의 부정도 없이 그대로 실렸다. 
 
어느날 라비아는 라바흐(알-카이시)가 어린 소년과 키스하는 장면(
وهو يقبّل صبيا صغيرا)을 목격했다. 라비아가 '그를 사랑하냐'고 묻자, 라바흐는 '그렇다'고 답했다. 이에 라비아가 '그대의 마음 속에 영광되고 전능하신 하나님 외에 다른 사람이 들어갈 자리가 있는지 몰랐다'고 하자, 라바흐는 그 말에 압도되어 기절하고 말았다. 정신을 차린 라바흐는 '이것이야 말로 최상의 하나님께서 그 종에게 심어 주신 은총'이라고 답했다. (초기 수피여성들 앗-술라미(ذكر النّسوة المتعبّدات الصّوفيات)에서 인용. 영역: Rkia E. Cornell, Louisville, KY: Fons Vitae, 1999, pp. 78-79.)



고자들의 성적 용도 


이성애자 무슬림 남성들은 종종 소년 외에 ‘非남성’ 성인에게도 관심을 보였다. 다음 하디스에는 아내와 멀리 떨어져 있는 교우들이 (전쟁포로로 추정되는) 남자들을 고자 삼아 성욕을 충족해도 되는지 묻는 장면이 나온다.
 

사히흐 알 부하리 62권 (혼인), 6장:
(9) 이븐 마수드가 말하길: 우리는 예언자
(그에게 평강이 있기를)와 함께 싸웠었다. 우리 곁에는 여자가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자여, 이들 중 일부를 고자(ألا نَستَخْصِي)로 사용할 수 없을까요?”라고 물었으나, 예언자는 허락하지 않으셨다. 


부하리 62권 Ch. 8:13a에 나오는 바에 따르면, 예언자는 전투에 임하던 교우들에게 “[그들 중 일부를] 고자로 대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대신,
성경험이 있는 미혼여성에게 댓가로 망토를 주고(رَخَّصَ لَنا أنْ نَنكِح المَرأَة بالثَّوْبِ) 성교하는 것을 허락하면서 꾸란의 다음 구절을 읊었다: (5:87) “믿는자들이여 하나님이 너희에게 허락한 것을 금기하지 말며 범주를 벗어나지 말라.” 댓가로 망토를 주었다는 것은 사히흐 알 부하리 혼인장 13, 22, 23 하디스에 나오는 이야기다. 값을 정한 후에 여인과 성교하는 것을 허락했다는 것은 성경험이 있는 미혼여성과 관계를 맺는 것은 간음이 아니며, 기혼여성 및 혼인 적령기의 딸과 성교를 맺을 때만 강간이 성립된다고 하는 당시의 사고방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교우들이 예언자를 찾아와 고자를 지정할 수 있는지 물었다는 것은 합법적인 성욕 돌파구를 찾고 있었다는 것이고, 이들은 고자를 그 대상으로 보았다. 여기서 무하마드가 포로를 고자로 삼거나 고자로 만드는 것에 반대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물론 이성애자 남성을 고자로 삼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롯의 백성들이 저지른 죄악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고자(즉, 여성에게 영구적으로 성욕을 느끼지 못하는 자)를 고자로 삼는 것은 어떨까? 이븐 마수드가 성적 쾌감을 위해 고자를 이용하는 것에 대해 언급했고, 예언자가 그의 말뜻을 이해한 점을 고려할 때, 성적 쾌감을 위해 고자를 이용하는 관행이 아랍권 사회에는 널리 알려져 있었으며, 이는 고자들의 적절한 이용법으로 간주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자는 남성으로 간주되지 않았으므로, 꾸란조차 고자의 이용을 막지 않았다. 


데이빗 아얄론 씨의 ‘고자, 칼리프, 술탄: 역학관계 연구(예루살렘 1999)’에 따르면, 맘룩 왕조(노예왕조) 때에도 고자는 이성애자 남성들의 성적 대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 고자의 역할은 연상의 노예병사들이 어린 훈련병에게 성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막는 것만이 아니었다:
 

고자들은 그 외의 방면에서도 동성애적 성욕에 대한 방패막이 역할을 했던 듯 하다. 그들은 스스로 이러한 욕망의 대상이 됨으로서 그 욕망이 젊은이들에게 향하는 것을 막았다. 그들은 침실에서는 여성스럽고 온순했으며 전시와 같은 상황에서는 남자답고 용맹스러웠던 것으로 기록되었다. (hum nisaa' li-mutma'inn muqeem wa rijaal in kaanat al-asfaar; li-annahum bil-nahaar fawaaris wa-bil-layl 'araa'is)  [아랍어 음사: Ayalon on page 34, from Abu Mansur al-Tha'alibi, Al-Lataa'if wal-Zaraa'if, Cairo 1324/1906-7, p. 79, lines 1-7; and the same quote from Tha'alibi in his Tamtheel wal-Muhaadara, Cairo 1381/1961, p. 224.]



고자 교우(敎友)?


선천적으로 이성애가 불가능한 이들, 즉 선천적인 고자가 있다는 사실을 무하마드 자신이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는지 여부에 관해서는 이하 하디스를 통해 고려해 보길 바란다. 


사히흐 알 부하리 62권 (혼인), 2장: 

예언자(그에게 평강이 있기를)의 진술: “성교가 가능한 자는 누구나 결혼할지어다. 그렇게 함으로써 시선을 낮추고 은밀한 부위를 최상의 방법으로 이용할 수 있을지어니” 그러면 첫날밤을 치를 능력이 없는 자도 결혼을 해야 합니까?


(3) 알카마가 말하기를: ...[압둘라가] [우스만에게] 하는 말을 들었나니, 예언자
(그에게 평강이 있기를)께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젊은이 들이여! 그대들 중 성교가 가능한 자는 누구나 결혼할 지어다. 그리고 성교가 불가능한 자들은 누구든지 결혼을 삼가야 하니, 이는 결혼이 그 자에게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니라.”

마지막 문장은 아랍어로 다음과 같다: يا مَعْشَرَ الشَّبابِ مَن اسْتَطاعَ مِنْكُم الباءَةَ فَلْيَتَزَوَّجْ، وَمَنْ لَمْ يَستَطِيع فَعَلَيْهِ بالصَّوْم، فإنَّهُ لَهُ وِجاءٌ

사히흐 알 부하리 62권 (혼인), 3장:
성교가 불가능한 자들은 누구든지 결혼을 삼가야 하느니.
(4) 압둘라흐가 말하기를: 젊었을 적 우리는 예언자
(그에게 평강이 있기를)와 함께 있었는데, 당시 우리는 아무런 열정도 느끼지 못했다. 그 때 하나님의 사자(그에게 평강이 있기를)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젊은이 들이여! 그대들 중 성교가 가능한 자는 누구나 결혼할 지어다. 그리고 성교가 불가능한 자들은 누구든지 결혼을 삼가야 하니, 이는 결혼이 그 자에게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니라.”


다음 장면에서는 우스만 빈 마둔이라는 남성이 찾아와 금욕의 삶을 살아도 되는지 묻지만, 허락받지 못하는 내용이 나온다:


사히흐 알 부하리 62권 (혼인), 8장:
금욕과 고자의 삶에서 싫어해야 할 것
(11) 사드 빈 아비 와까스가 말하기를: 하나님의 사자
(그에게 평강이 있기를)께서는 우스만 빈 마둔에게 금욕의 삶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만약 예언자께서 허락하셨다면 우리는 고자로 살고 있었을 것이다.

(12) 사드 빈 아비 와까스가 말하기를: 하나님의 사자(그에게 평강이 있기를)께서는 이를 금지하셨다. 그는 우스만 빈 마둔에게 허락을 내리지 않으셨으며, 만약 허락을 하셨다면 우리는 고자로 살고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 문장은 아랍어로 다음과 같다: وَلَوْ أجازَ لَهُ التَّبَتُّلَ لإخْتَصَيْنا


하지만 다음 장면에서는 대답이 다르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사히흐 알 부하리 62권 (혼인), 8장:
(13b)아부 후라이라가 말하기를: 나는 “하나님의 사자시여, 저는 젊은 남자이옵니다. 저는
제 자신이 고통받을 것이 두렵지만, 여인들을 어떻게 아내로 취해야 할지 찾지(또는 느끼지) 못하겠습니다”라고 말씀 올렸다. (إنِّي رَجُلٌ شابٌّ وأنا أخافُ على نَفسِي العَنَتَ وَلا أجِدُ ما أتَزَوَّجُ بِهِ النِّساءَ) 예언자께서는 아무 말씀이 없으셔서 나는 다시 비슷한 말씀을 드렸고, 예언자께서는 계속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래서 다시 비슷한 말씀을 올렸지만 예언자께서는 여전히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러다 하나님의 예언자(그에게 평강이 있기를)께서는 말씀하셨다. “아부 후라이라여, 그대가 경험하는 것에 대해서는 펜이 말라버렸다. 따라서 고자가 되든 말든 알아서 하거라.” (يا أبا هُرَيْرَةَ، جَفَّ القَلَمُ بِمَا أنتَ لاق فاخْتَصِ عَلى ذَلِكَ أوْ ذَرْ)


이 하디스에는 질문거리가 가득하다: ‘젊은 남자’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아부 후라이라가 두려워하는 고통이란 무엇일까? 여성과 짝을 짓는 데 꼭 필요하지만 아부 후라이라에겐 없는 그것이 무엇일까? 그냥 단수형으로 '여인을 아내로 취한다'고 하지 않고 굳이 복수형으로 “여인들을 아내로 취한다”고 한 건 무엇 때문일까? 아부 후라이라가 같은 말을 수차례 반복했지만 예언자(그에게 평강이 있기를)께서는 왜 침묵으로 일괄한 걸까? 왜 아부 후라이라가 네 번째로 물었을 때 대답했을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자가 되든 말든 알아서 하라’는 건 무슨 뜻일까? 뭘 알아서 하라는 거고 뭘 하지 말라는 걸까?


아부 후라이라는 자신을 젊은 남성 또는 청년이라고 소개했다. 따라서 우리는 당시 그가 이제 막 성년이 되려 하거나 성년이 된지 얼마 안 된 나이였을 것이라고 추측해야 할 것이다. 즉, 남성다움이 드러나야 하는 연령이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을 고자로 분류했을 것이다. 남자다움은 바로 여성과의 성행위 가능여부로 가늠되며, 온전한 성인에게 있어 여성과의 성행위 능력은 바로 생식을 뜻한다. 그러한 기술이 없는 이들은 누구나 자동으로 고자가 되는 것이다. 


당시 아부 후라이라는 남자로서 모든 것이 변화하는 중요한 시기를 거치고 있었다. 당시 지중해 일대에서 수염이 없는 사춘기 소년은 성인남성들에게 있어서 찬미와 애정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아랍권에서도 상황이 다르지 않았다는 증거는 있다. 하지만 일단 소년이 남성으로 성장하고 나면, 찬미의 대상으로 적합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온전한 남성으로서 지위를 부여 받았기 때문이며, 여성을 보고 성적흥분을 느끼는 등의 징조를 통해 이제 여성과 생식활동을 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아부 후라이라는 바로 이 문턱을 넘어서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먼저 아부 후라이라는 자신의 나프스(نَفْس: 영혼, 자신, 자아)가 고통을 겪게 될 것이 두렵다고 한다. 여기서 고통의 의미로 쓰인 단어는 ‘아아낫(العَنَتَ)’이다. 꾸란에서 이 단어는 문맥상 성적 금욕으로 인한 고통을 뜻할 때 쓰인다. (수랏 니싸아 4:25[각주:18]) 일부 번역가들은 이 ‘아아낫’이 죄를 범한 데서 비롯되는 괴로움이라고 보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고통이란 어쩔 수 없이 금욕을 어긴 데서 오는 후회를 뜻하는 것이다. 이들 번역가는 알라께서 성적금욕을 치유가 필요한 고통으로 묘사했다고 보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고통은 청년의 성호르몬을 해소할 길 없이 살아가는 데서 오는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이 더 간단하면서도 인간의 본성에도 더 솔직할 것이다. 꾸란 4:25에서 고통을 느끼는 자들은 권력과 지위가 없어서 자유신분을 가지고 신앙심이 독실한 여성과 결혼(또는 성교)하지 못하는 남성을 가리킨다. 이들에게 있어 고통의 치유법은 바로 하녀와 결혼(또는 성교)하는 것인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하녀가 다른 남자와 교제하고 있어서는 안 되며, 하녀측 가족에게 충분한 지참금을 지불하고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아부 후라이라는 꾸란에 등장하는 이들 남성과는 다른 문제점을 안고 있는데, “여인들”과 결혼하기 위해 꼭 필요한 그 무언가가 전혀 없다고 한다. 즉, 여인들의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그 성별을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만약 아부 후라이라가 너무 궁핍한 나머지 하녀조차 아내로 들일 수 없다는 뜻으로 이런 말을 했다면 '여인을 아내로 취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 없다고 말했을 것이다. 즉, 복수의 아내를 취할 수 없다고 불평하기보다 한 명의 아내조차 취할 수가 없다고 해야 맞는 것이다. 하지만 아부 후라이라는 단수형을 쓰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여인들”과 결혼할 능력이 없다고 말한다. 여기서 복수형을 썼다는 것은 그가 일반적으로 여인들과 함께 살 능력이 없다는 선언이 된다. 즉, 아부 후라이라는 여성과의 성교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아부 후라이라가 여성과의 성교가 불가능했다면, 그가 두려워한 고통은 어떤 것일까? ‘아아낫’이라는 단어는 성적 금욕에서 비롯되는 고통을 뜻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호르몬으로 인한 성적욕구를 어떻게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것이다. 물론, 여성을 보고 성적흥분을 느끼지 못한다면, 여성과의 성교를 삼가는 것이 고통은 커녕 문제조차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남성과의 섹스는 어떨까?


아부 후라이라는 자신을 남성이라고 일컬음으로써, 자신을 다른 남성들의 수동적인 파트너 무리와 차별을 두었다. 동시에 여성과의 성교가 불가능하다고 시인함으로써, 자신을 남성 무리로부터 배제시키고 있다. 그의 말이 이렇게 혼란스러운 데에는 이유가 있다. 아부 후라이라가 젊은 남성이었던 만큼, 앞으로 여성에 대한 성적 관심이 생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언자가 곧바로 대답을 내놓지 않고 침묵을 유지한 것도 당연할 것이다. 즉, 정보가 충분하지 않아 정확한 대답을 제시해 주지 못했고, 그의 고민을 해결해 주지 못했던 것이다. 


아부 후라이라가 같은 말을 네 번 반복했을 때 비로소 답을 제시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네 번은 사계절을 뜻한다. 하나피 율법에는 이혼사유로 불능이 언급되어 있는데, 아내가 성관계 부재를 이유로 이혼을 하려면 남편에게 1년의 기한을 주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남편이 일년 내내 최상의 컨디션이 아닐 수도 있고, 따라서 최상의 컨디션을 발휘할 수 있는 계절을 기다려야 하는데 그게 여름이 될 수도, 가을이 될 수도, 겨울 또는 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설령 남편이 고자라 하더라도 아내는 남편이 성관계가 가능한지 판단하기 위해 1년을 기다려야 하지만, 남편이 거세되었을 경우 곧바로 이혼할 수 있다.(알-마르기나니, 히디야, 이혼권, 불능에 관한 장 참조) 


아부 후라이라가 예언자를 찾아와 같은 말을 네 번 반복한 것은, 일년중 어느 계절이라도 자신의 상태는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예언자는 아부 후라이라의 확정된 운명을 다음과 같이 비유하면서 그의 상황이 영구적이라고 말한다: “그대가 경험하는 것에 대해서는 펜이 말라버렸다.” 여기서 예언자는 고자(현대 용어로 말하면 게이남성)가 성적지향을 바꿀 수 없음을 긍정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고자가 되든 말든 알아서 하라”는 대답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예언자가 제시하는 두 선택 즉, (ㄱ) 고자가 되는 것과 (ㄴ) 그렇지 않는 것의 차이는 극명하다. 이제 막 성인이 되려 하는 남성이 고자가 아닌 이상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일까? 성년기를 앞둔 청년이 하는 것 중에 성인 남성이 해서는 안 되지만 고자는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필자의 머리속에 떠오르는 대답은 다음과 같다: 청년은 남성에게 있어 사랑의 대상이며, 특히 수동적 역할 즉, “사랑받는 쪽”의 역할을 맡는다. 그러다가 청년이 성년기에 다다르면 그때까지 연상의 남성연인과 가져온 수동-능동의 성관계는 끝나야 한다. 아부 후라이라가 고자가 아니었을 경우, 그가 그만두어야 하는 것도 바로 이런 관계였을 것이다. 하지만 고자일 경우, 그는 결코 성년기에 다다르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수동적인 역할로서 다른 남성과 관계를 맺는 것을 멈출 이유도 없다. 여기서 “고자가 된다”는 것은 지금까지 해 오던 것을 “멈추는 것”에 상반되는 대안이라는 것에 주목하자. 즉, 고자라면 멈출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답을 얻었다. 


요컨대, 아부 후라이라(‘새끼 고양이의 아버지’라는 뜻)는 성년기를 앞둔 어린 청년으로 예언자를 찾아 왔고, 여인들과 성관계를 맺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털어놨다. 예언자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전에 1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렸지만, 1년 후에도 아부 후라이라의 말은 그대로였다. 거기서 예언자는 아부 후라이라가 겪고 있는 것이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거라며, 두 가지 대안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라고 한다. 두 대안 사이를 왔다갔다 할 수는 없다. 첫번째 대안은 고자가 되어 지금까지 해 오던 것을 계속 하면서 성적 욕구를 충족하는 것인데, 아부 후라이라가 원하는 답도 이쪽이었던 것 같다. 두 번째 대안은 그가 고자가 되고 싶지 않다면, 여태껏 해 오던 것을 그만두고 성인남성의 규칙에 순응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부 후라이라가 결혼도 하지 않고 후사도 없던 것을 볼 때, 그는 고자가 되어 일년에 걸친 증언에 부합되는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설명이 그를 둘러싼 논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공개적 성행위의 금지


마지막으로 성별을 막론하고 간음행위(فَاحِشَة)에 대한 처벌이 언급된 구절이 둘 있다(4:15-16)[각주:19]. 이 두 구절은 종종 동성애 금지의 근거로 언급되는데, 그 첫구절에 (남성이 연루되었다는 암시가 없으므로) 여인들이 범한 간음이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두 구절은 여인들이 저지른 행위를 개별적으로 언급함으로써 모든 경우를 포함시키고 있을 뿐이다. 모든 경우를 포함시키려면 문법적으로 여인들이 저지른 범죄만을 따로 다루어야 했던 것이다. 여기서 어떤 행동을 간음이라 하는지는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간음죄가 확정되려면 네 명의 증인을 세워야 한다고 나와 있다. 따라서 여기서 간음은 일종의 공개적 성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성행위가 사적인 장소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플라톤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쨌든 여기서 ‘간음’은 동성애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며, 이성간의 두 사람도 4:16 구절에 적용될 수 있다. 




수정: 2015년 8월 9일



- Mark Brustman(Faris Malik)



* 이 글의 번역 및 본블로그 게재를 허락해 주신 마크 버스트먼 씨께 감사 드립니다.

(MITR would like to appreciate Mr. Mark Brustman for kindly allowing us to translate and share this article in Korean on this blog.)

 


- 옮긴이: 이승훈







  1. 너무 뚱뚱해서 [본문으로]
  2. 3:195 주님께서 그들에게 응하사 나는 남녀를 불문하고 그들이 행한 어떠한 일도 헛되지 않게 할 것이라 [본문으로]
  3. 4:12 한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상속받을 자손과 부모가 없어 먼 친척이 상속자이거나 또는 여자가 상속자일 때... [본문으로]
  4. 4:12 믿음을 갖고 선을 행하는 남녀가 천국에 들어가나니 그들이 받을 보상은 조금도 부정함이 없노라. [본문으로]
  5. 6:143 불신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금기하심이 두 마리의 수컷인가 아니면 두 마리의 암컷인가... [본문으로]
  6. 6:144 너희에게 금기 하심이 두 마리의 수컷인가 아니면 두 마리의 암컷인가... [본문으로]
  7. 믿음으로 선을 행하는 모든 남녀에게 하나님은 행복한 삶을 부여할 것이며... [본문으로]
  8. 40:40 선을 실천한 남녀는 천국으로 들어가리니... [본문으로]
  9. 42:50 그분은 남성과 여성을 다같이 두시고 또한 그분의 뜻과 계획에 따라 불임으로 두시니 실로 그분은 아심과 능력으로 충만하시니라. [본문으로]
  10. 49:13 사람들이여 하나님이 너희를 창조하사 남성과 여성을 두고 종족과 부족을 두었으되... [본문으로]
  11. 53:21 너희에게는 남자가 있고 하나님에게는 여자가 있단 말이뇨. [본문으로]
  12. 53:45 자웅으로 나성과 여성을 창조하사, [본문으로]
  13. 75:39 남성과 여성으로 자웅을 두셨으매 [본문으로]
  14. 92:3 남녀를 창조하신 주님을 두고 맹세하나니, [본문으로]
  15.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본문으로]
  16. 30:18-19 내가 심히 기이히 여기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공중에 날아 다니는 독수리의 자취와 반석 위로 기어다니는 뱀의 자취와 바다로 지나다니는 배의 자취와 남자가 여자와 함께 한 자취며 [본문으로]
  17. 12:20 그들은 그를 소액의 은전 몇 푼으로 팔아버리니 그를 하찮게 간주하였더라. [본문으로]
  18. 4:25 너희 가운데 부유하고 신앙이 두터운 여성과 결혼할 수 없는 자는 너희들의 오른손이 소유한 자들 가운데서 신앙심이 두터운 하녀들과 결혼함이 나으니라 하나님은 너희들의 믿음을 잘 아시고 계시며 또한 너희는 아담의 한 자손이라 그럼으로 그녀 보호자의 허락을 얻어 결혼하되 적절한 지참금을 지불할 것이라 그들은 순결하니 간음하지 말것이며 정부를 두어서도 아니되거늘 만일 그녀들이 결혼해서 간음을 한다면 그녀들에게는 자유 신분을 가진 여성이 받은 벌의 절반이라 이것은 너희들 가운데 간음을 두려워하는 자를 위함이라 그러니 인내하라 그것이 너희에게 나으리라 하나님은 관용과 자비로 충만하심이라. [본문으로]
  19. 4:15-16 너희 연인들 가운데 간음한 자 있다면 네명의 증인을 세우고 만일 여인들이 인정할 경우 그 여인들은 죽을 때까지 집안에 감금되거나 아니면 하나님께서 다른 방법으로 그 여인들에게 명할 것이라. 너희 가운데 두명이 간음했다면 그 둘을 함께 벌할 것이되 그들이 회개하고 개선한다면 그대로 두라 실로 하나님은 관용과 자비로 충만하시니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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