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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8




‘I’m a bisexual homoromantic’: why young Brits are rejecting old labels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동성애자-이성애자라는 이분법적 분류가 무너지고 있다.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 사진: Guardian design




마일리 사이러스, 크리스틴 스튜어트, 카라 델레빈... 하지만 자신을 이성애자 또는 동성애자로 단정짓기를 거부하는 이들은 비단 연예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무려 절반 가까이의 영국 젊은이들이 자신을 전적으로 이성애자라고 보지 않는 현실은 매우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얼마전 럭비리그의 키건 허스트 선수는 커밍아웃하면서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오랫동안 숨겨왔다고 했다. “내가 어떻게 게이일 수가 있지? 난 배틀리 불독스 소속이라구. 배틀리 불독스에 게이는 있을 수 없어!” 하지만 허스트(27)가 몇 살만 더 젊었더라면 고향 욕셔에서도 섹슈얼리티가 유동적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최근 YouGov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18세 이상 24세 미만의 영국인들 중에 자신을 전적으로 이성애자로 보는 사람은 46%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자신을 오직 동성애자로만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도 6%에 불과했다. 섹슈얼리티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정체성은 유연해지고 유동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동성애자-이성애자라는 이분법이 무너지고 있다. 그것도 빠른 속도로. 유명인들의 성적지향이 태블로이드지를 장식하던 때는 이미 오래전에 지나가 버렸다. 물론 아직도 유명인사들의 커밍아웃과 그들의 동성연인이 언론에 의해 다뤄지곤 하지만, 이런 기사에 늘쌍 따라붙던 자극적인 표현은 사라지고, “근데 이거 아세요?”라는 식의 입소문 어조로 바뀌었다. 엄마가 전화로 옆집 줄리의 최근 근황을 알려줄 때 쓰는 그런 말투 말이다. 뿐만 아니다. 유명인들도 특정 무리로 분류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가는 곳마다 공연장을 가득 매우는 팝스타 마일리 사이러스는 얼마전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을 “젠더퀴어(genderqueer)”라 부르며  그 어떠한 것도 나를 정의내릴 수 없다! 난 원하는 대로 뭐든 될 수 있다!!!고 했다. 몇년 전부터 “여자 친구”와 함께 다니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면서 무성한 추측을 자아냈던 크리스틴 스튜어트도 얼마전 <Nylon magazine>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연애중임을 시인했다. 쿨하게 “구글 돌려보세요. 저 숨기는 거 없어요”라고 말한 그는 이번 여론조사의 응답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동성애자, 이성애자 그 어느쪽으로도 규정짓는 것을 거부했다. “3, 4년만 지나면 굳이 동성애자인지 이성애자인지 구분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사람들이 굉장히 늘어날 거예요. 남 일엔 신경 끄라는 거죠.”



크리스틴 스튜어트 “남 일엔 신경 끄세요.” 사진: Victoria Will/Invision/AP



적어도 서방에서 이런 경계선의 필요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계기가 스튜어트 같은 유명인사들인지는 한 마디로 단정하기 어렵다. 무조건 유명인사들을 보고 우리 사회의 태도를 규정지을 순 없지만 가시성도 무시할 순 없다.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여자친구와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이 충격적이거나 정서에 위배되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은 그런 행동들이 조금이나마 평범해졌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카라 델레빈이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여자친구를 사랑한다고 밝힌 것 또한 한목했다. 커밍아웃하는 사람이 많아질 수록 더 평범해지는 것이다. 시골동네에서 혼란스러워 하며 자라는 아이들이 가십 사이트나 보며 외로움을 달래는 일도 줄어들 것이고, 집에 동성애인을 데리고 오는 자식 때문에 부모가 머리를 싸매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게다가 평등권의 법제화도 더 이상 제지하기 어려운 조류가 되어가고 있다. 아일랜드와 미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자, 동성에게 감정을 느끼고 사랑에 빠지는 것이 한층 덜 “이상해졌고”, 경계선도 조금 더 허물어진 듯 하다.


서섹스 출신의 앨리스(23)는 자신을 동성낭만적인 양성애자라고 부른다.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을 해달라고 부탁하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그러니까 섹스는 남자랑 여자랑 다 하는데 사랑은 여자하고만 하는 거죠. ‘성별이 아니라 사람됨됨이을 본다’는 식의 미지근한 표현은 쓰기 싫어요. 가끔은 그냥 고추가 좋을 때가 있거든요.  앨리스는 주변에 자신과 비슷한 섹슈얼리티를 가졌거나 성에 대해 비슷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꽤 된다고 한다. “섹슈얼리티를 낙인이 아니라 일종의 행동으로 보는 친구들이 많아요. ‘난 게이다, 레즈비언이다, 양성애자다’라기보다는 ‘남자가 좋지만 여자랑도 한다’는 식이죠. ”



모델 프랭키 레이더와 키스를 나누는 마일이 사이러스의 인스타그램 사진: mileycyrus/Instagram



심지어는 동성하고만 만나는 지인들도 자신을 ‘동성애자’라는 단정적인 정체성에 거부감을 느낀다고 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자신의 인격을 단정짓는 요소라고 보지 않아요.”하지만 앨리스는 이런 경향이 현재 살고 있는 런던의 소수 진보적인 사람들 사이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자신을 규정짓지 않는 것은) 런던에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일종의 권리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고향에 살 때는 그런 권리를 느끼지 못 했던 것 같아요. 섹슈얼리티 때문에 차별을 겪은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물론 [이성애자로] 통할 수 있기 때문이지만.”




여자친구를 사랑한다고 밝힌 카라 델레빈. 사진: Rex Features




실제로 영국의 젊은이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지역차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루시(25)는 자신이 이성애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자신의 그런 욕구를 행동에 옮기는지 의심한다. “섹슈얼리티가 유동적이라는 건 특정 운동의 일부분이라는 뜻이고, 생각이 앞선 사람으로 여겨지기 마련이죠.”루시는 자신이 이성애자라고 확정짓지 않는 것은 개방적인 사람이라는 이미지와 결부되어 있다고 한다. 또한 이런 경향이 영국 전체를 대표한다기보다는 대도시에 국한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 고향 미들랜즈에서는 ‘성의 유동성’이 화제에 오르는 일은 없어요. 다이크이면 다이크이고 다이크가 아니면 아닌 거죠. 거긴 레즈비언이라고 하면 다이크 밖에 없거든요.”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같은 사람들을 만나 무리를 이루고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 지방에서 대도시로 올라온다는 건 세대를 거듭해 접해 온 친숙한 이야기다. 하지만 요즘 대도시에서는 非이성애자들이 모이던 바와 퍼브들이 부동산 시장에 의해 무자비하게 사라져 가고 있다. 이들 틈새시장은 근사한 All Bar One만큼 고객수를 유치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얼마전 The Vice 채널은 The Last Lesbian Bars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에서 여성전용 공간이 사라져 가는 이유를 탐구했다. 런던과 마찬가지도 미국에서도 데이트 어플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재정적 가시성이 그 원인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나는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 많던 “레즈비언” 이벤트가 모든 성별을 환영하는 “퀴어”이벤트로 변모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행사들은 다양한 의견을 가진 부적응자들이 모이는 즐거운 자리가 될 수도 있다. 



"이성애자도 동성애자도 아니라는 것: 상자 밖에서 생각하기" (기사읽기)



원래 동성애 비하 욕설에 저항하기 위해 쓰이던 퀴어라는 말은 어느덧 일반적으로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내가 이야기를 나눈 젊은이들은 대개 ‘양성애자’라는 말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남녀 모두와 관계를 가지지만 그들은 간편하고 자유롭게 “퀴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LGBT+ Helpline의 나타샤 워커 이사는 “전화를 걸어오는 분들이나 자원봉사자들 중에 자신을 ‘퀴어’라고 의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층일 수록 더욱더요.” LGBT+ Helpline은 원래 ‘런던 레즈비언&게이 교환대(London Lesbian & Gay Switchboard)라는 이름이었으나,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최근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예전엔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으로 규정되기 위해 투쟁을 벌였었죠. 물론 그런 투쟁은 지금도 변함 없지만, 그런 낙인과 상관 없이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도 확실합니다.”


동성간의 성애가 점점 보편시되어 가고 있는 지금, 퀴어’의 급진적인 근원이 가지는 호소력도 있다. 대중문화에 동화되면서 차별도 줄어들고 있지만, 이러한 경향은 동성애자들이 유지하고자 하는 ‘국외자’라는 정체성이 사라질 위험도 있다. 



아일랜드 동성결혼 국민투표에 앞서 더블린시내에 그려진 ‘찬성표’ 벽화. 사진: NurPhoto/Rex Shutterstock



플리머스 출신의 존(32)동성애자들이 결혼을 할 수 있게 된 것을 결정적인 계기로 많은 부분이 정상으로 여겨지게 된 것 같다”고 한다. “퀴어는 아직도 정치적인 용어입니다. 나이가 들 수록 퀴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쓰게 되는 것 같아요. 20대초반 때보다 그 말뜻을 훨씬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도 있지만, 문화적 변동도 확실히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그는 양성애자라는 표현이 다소 “모호한” 반면, “퀴어”는 광범위한 스펙트럼의 욕구를 다룰 뿐만 아니라 이분법적 성별을 거부하는 이들도 포함된다고 한다.


자신을 특정 부류로 인지하는 것으로부터 초월한다는 것은 많은 의미에서 이상향처럼 느껴질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섹슈얼리티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런 이는 개방적이고 친절한 사회라고 하는 이상적인 비전에 의지하는 것으로, 유명인들의 특권사회라면 몰라도 어디서나 적용될 수 있는 건 아니다. 가벼운 동성애혐오증은 아직도 의미론적 낙관주의에 의해 지워지지 않았다. 존은 얼마전 택시를 예약한 적이 있는데, 존이 남자친구와 키스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운전수가 예약을 취소해 버렸다고 한다. “쫓아갔지만 그냥 내달렸습니다.” 지난달에는 게이바 밖에 서 있던 한 지인에게 지나가던 차 승객이 침을 뱉은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런 해프닝은 비록 사소할지 몰라도 지방과 대도시를 막론하고 학대와 차별, 편견이 여전히 완고하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상기시켜 주고 있다. 그런 만큼 이성애규범성을 거부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하지만 정체성을 주장하는 것은 곧 힘이라는 것, 그리고 자기만족은 낙인 만큼이나 위험하다는 것은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다.




- Rebecca Nicholson


- 옮긴이: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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