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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06



스타트렉 배우 조지 타케이: ‘시사회는 아는 여자친구와 갔다가, 그 뒤 게이바로 향하곤 했습니다.





조지 타케이: 'JJ 에이브럼스 감독한테서 전화가 와서 조찬을 같이 하자길래 '음... 술루 카메오역이 들어오는 건가' 싶었습니다.





한때 미스터 술루였던 타케이, 그는 스타십 엔터프라이즈를 떠난 이후로 그 어느 동료배우보다도 더 큰 인기를 누려왔다. 그런 그가 JJ 에이브럼스 감독의 블록버스터 리메이크작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이유는 뭘까?




몇달 전 조지 타케이가 온 인터넷을 도배한 일이 있었다. 사실 드문 일은 아니다. 반짝이는 눈을 가진 79세의 타케이, 한 때 스타트렉의 미스터 술루로 알려졌었던 그의 존재감을 인터넷에서 찾아보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어떤 때는 온 인터넷이 그의 세상이고 우리는 그 세계에 얹혀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소셜미디어 사이트의 수치(페이스북 ‘좋아요수 천만 개, 트위터 팔로워 180만 명, 인스타그램 팔로워 88만9천 명)만 봐도 그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수치에서 나타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타케이가 이들 채널을 활용해서 수용성을 장려하고, 온정이 베인 위트로 편견과 부당함에 맞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카리스마 넘치고 장난기와 지성을 겸비한 그는 스타트렉의 다른 어떤 배우보다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페이저 권총을 내려놓고 엔터프라이즈 우주선을 떠나 지구로 돌아온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유명세를 타고 있고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인기비결 중 하나는 다양한 분야에 열정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190년대 초반에는 미일 관계개선(2차대전이 한창이던 당시 유년기를 수용소에서 보냈다고 한다)을 위해 정치활동을 폈고 그 뒤로는 LGBT 인권운동에 뛰어들면서도 결코 팬들과 멀어지는 일이 없었다. 정치이벤트에 모습을 드러내는가 싶으면 만화 페스티벌에서도 그를 볼 수 있었다. 물론 2005년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한 이후 그의 철저한 투명성도 빠뜨릴 수 없다. 그의 웹시리즈 It Takeis Two에서는 62세의 남편 브래드 타케이(2008년 결혼할 때 “I feel Takei(타케이가 되고 싶은 기분)”이라는 말과 함께 성을 바꿨다)와 함께 일상생활의 소소한 난관을 헤쳐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2014년에는 장편 다큐멘터리(To Be Takei)가 선댄스 영화제에서 상영되면서 두 사람의 이미지가 부상했다. 조지가 차분하면서도 야한 반면(그가 자신의 캐치프레이즈 “Oh My!(세상에!)를 연발할 때마다 레슬리 필립의 “딩동!”이 떠오른다), 잔걱정이 많은 브래드는 트위터에다 푸념을 늘어놓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운데, #dailygripes(오늘의 불평) 시리즈에서는 “아무개[소중한 반쪽]과 약속했다는 듯이 쌍둥이처럼 옷을 입고 나왔을 때”같은 트윗글이 올라 오곤 한다.



오리지널 스타트렉에서 레너드 니모이, 윌리엄 샤트너와 함께




다행히 오늘은 두 사람 모두 다른 복장을 하고 나왔다. 조지는 샤프한 페르시안 블루톤의 정장에 SS 엔터프라이즈 배지를 달고 나왔고, 브래드는 회색 정장에 빨간 넥타이 차림으로 나왔다. 우리가 찾은 회의실은 나와 타케이를 위한 두 의자 외에는 텅비어 있었다. 창문가에는 홍보담당자 둘(“우린 무시하세요”)이 있었고, 브래드는 따로 벽쪽에 앉았다. 


오늘 타케이를 만난 것은 스타트렉 50주년과 블루레이 박스세트 발매를 기념해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였다. 박스세트는 마치 2001년에서 온 거석과도 같았다. 포장을 뜯는 데만 5분이 걸렸고, 오리지널 에피소드 전편에 영화 여섯 편, 그리고 미공개 스토리까지 수록되어 있었다. 타케이는 스타트렉에 싫증났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정말 많은 의미에서 제 삶과 목소리를 향상시켜 주었습니다. SF라는 비유를 통해 우리 시대를 보여주려 했습니다. 시민권운동에서 흑인들의 평등투쟁, 베트남 전쟁 당시의 평화운동, 냉전 등등 말이죠. 그 때만 해도 TV가 그런 용도로 쓰인다는 건 생소했기 때문에 아주 신나는 경험이었습니다.”


하지만 다뤄지지 않은 소재도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동성애이다. 타케이는 스타트렉 제작자 진 로든베리에게 동성애 소재를 제안한 적이 있다고 한다. “아직 커밍아웃하기 전이라 그냥 진보주의자인 척 하며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 시대의 다양한 사안을 다루고 있는데 동성애는 어떻냐고 말이죠. 하지만 얼마전에 타인종간의 키스신을 내보내 물의를 일으켰던 터라, 한 번만 더 물의를 일으키면 방송을 중단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로든베리가 거절하더군요.”


안그래도 타케이는 올여름 머릿기사를 장식한 일이 있었다. 술루(스타트렉 리부트에서는 존 조가 술루역을 맡았다)가  스타트렉 비욘드에서 동성애자로 그려진다는 소식이 들리자 타케이가 이에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그는 대한 이유가 상상력의 부족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금은 성적지향을 다루는 게 큰 대수도 아니잖아요. 그옛날 진 로든베리 때처럼 창의적이어야 합니다. 차라리 전혀 새로운 게이 등장인물을 선보이든지 말이죠. 진이 굳이 이성애자로 설정했던 인물을 바꿔서는 안 됩니다.”



스타트렉 비욘드에 출연한 사이먼 페그: ‘승무원 모두가 남기를 원했을 것’



사실 나는 그의 말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왜 모든 게 로든베리 때처럼 무조건 새로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갇혀야 하는걸까? 거기서 진화하면 안 되는 건가? “올해가 50주년이잖아요! 로든베리의 비전이 있었기에 스타트렉도 탄생할 수 있었구요.”하지만 로든베리도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 맞춰 선택을 했을 뿐이고, 우리가 굳이 그의 그런 선택을 고수할 필요는 없지 않는가? 게다가 스타트렉 리부트는 평행우주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진 로든베리가 없었다면 리부트 또한 없었을 겁니다. 스타트렉의 기초를 마련한 게 바로 로든베리니까요. 올해는 50주년인만큼, 그런 스타트렉의 유산에 초점을 맞춰야 하고, 진에게 경의를 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하지만 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 스타트렉을 볼 것이다. 예컨대 2025년에 스타트렉 비욘드를 보는 시청자에게 있어 몇 십주년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전 스타트렉이 시작할 때부터 함께했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 사람들은 진을 전혀 모르지만 저는 진을 잘 압니다.”타케이는 결코 평정심을 잃는 사람이 아닌 듯 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분명 분함이 베어나오고 있었다. 일종의 맡지 못한 배역에 대한 질투심 같은 것도 있었으리라. 


만약 2008년 스타트렉 리부트의 JJ 에이브럼스 감독과의 미팅이 성공적이었다면 타케이도 조금더 수용적이었을지도 모른다. “레너드 니모이가 카메오 출연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에이브럼스한테 전화가 와서 조찬을 같이 하자길래 '술루 카메오역이 들어오는 건가’ 싶었죠.” 그런데 카메오 제안은 들어오지 않았다. 에이브럼스 감독은 새로운 술루역에 아시아계 미국인이지만 일본계가 아닌 존 조를 기용하는 것에 대해 타케이의 의견을 묻고 싶었던 것 뿐이었다. “굳이 저한테 물을 것까지 없었는데 말이죠. 술루는 (굳이 일본계가 아니더라도) 아시아를 대표하는 역할이면 되는 건데, 에이브럼스가 진 로든베리를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구나 싶더군요.” 그는 새 스타트렉에 출연하지 못한 것이 아무렇지 않다고 했다. “카메오가 너무 많이 나오면 리부트가 되지 않겠죠.” 그래도 당초에는 카메오역이 오는 게 아닌가 하고 내심 기대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술루의 커밍아웃에 복잡미묘한 반응을 보인 건 소외감 또는 분노에서 오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은 잔혹하다. 드디어 술루가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할 수 있게 됐지만, 타케이는 더 이상 술루역을 맡지 않는다. 



2015년 4월 28일 아베 신조 일본총리 방미 때 백악관 만찬회에 참석한 조지와 브래드. 사진: Andrew Harnik/AP




누구든 약이 오를 만한 상황이긴 하다.  타케이는 동성애자임을 숨기며 힘들게 배우생활을 해 왔다. “늘 들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사는 거죠. 전 일종의 게임을 했습니다. 시사회와 연회석상에는 아는 여자친구와 함께 갔고, 이벤트가 끝나면 여자를 집에 데려다 준 후 곧바로 게이바로 향했습니다. 이중생활이었죠. 우스운 건 게이바에 가면 아는 얼굴이 몇몇 있곤 했다는 겁니다. 바에서는 인사를 했지만, 밖에서는 입을 굳게 닫았죠.”


그는 1980년대 에이즈 공황이 최절정기에 달했던 시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수표를 써가며 동성애자 인권운동을 도왔습니다.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고문과고 같은 시기였어요. 친구가 죽어나가면 나 또한 죽는 거나 다름 없습니다.” 그런 타케이가 커밍아웃한 것은 2004년,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던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결혼평등법안에 서명을 거부한 직후였다. “아놀드가 법안을 거부할 때 너무 화가 났습니다. 젊은이들도 산타모니카 불러바드에 몰려서 분노를 표했죠. 그 때 저는 브래드와 함께 집에 편하게 앉아서 심야뉴스를 보고 있었습니다. 뉴스를 보면서 브래드에게 말했죠. 인기도 누릴만큼 누렸으니, 이젠 완전히 매장되도 상관이 없다구요.” 그런데 그 결과는 정반대였다. 사실 타케이는 그 누구보다도 잃어버린 시절을 효율적이고 열성적으로 매워나갔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에 오니, 아까 회의실에 있던 한 홍보담당자로부터 메일이 와 있었다. “인터뷰의 대부분이 조지 타케이의 섹슈얼리티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데, 이게 인터뷰 주제 맞나요?” 나는 잠시 이 홍보담당자가 조지 타케이를 조금이라도 알기나 하는지 의심이 들었다. 사회의 지탄을 피해 스스로를 숨겨야 하는 심정을 아는 건지, 타케이가 에이즈로 죽어나가는 친구를 보며 비탄해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나 있었던 건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 칼럼의 주제는 단연 타케이의 섹슈얼리티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엔 스타트렉보다도 중요한 것들이 있으니까 말이다. 



* 현재 스타트렉 50주년 드라마+영화 블루레이 박스세트가 발매중입니다.



- Ryan Gilbey

- 옮긴이: 이승훈




Star Trek’s George Takei: ‘I’d take a female friend to premieres. Then go out to a gay bar’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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