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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8




트랜스페어런트의 주연배우가 트랜스젠더가 아닌 게 어때서?




트랜스페어런트 시즌 3에 출연한 제프리 탬버





누가 누구의 이야기를 대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많은 의미에서 우리시대의 정치적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해답을 찾은 사람은 없다. 




요즘 많이 거론되고 있는 TV의 황금기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으레 더 소프라노스, 더 와이어, 웨스트 윙브레이킹 배드 처럼 사나이다운 드라마를 연상하기 나름이다. 괜찮은 프로그램들이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자기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너무 잘 알고 있는데다가 온전히 남성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시대를 정의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시대를 담아내는 프로그램을 말할 때는 이들중 그 어느것도 해당되지 않는다. 내가 추천하고 싶은 드라마는 남성성이 이 시대에 어떻게 부합하는지 따윈 관심도 없는 작품이다. 괜히 주목 받으려고 한시간 이상씩 끌기보다는 매 에피소드가 30분으로 간결하게 끝나며, 오늘날 백인남성들의 저물어가는 포효만큼이나 중요한 주제, 즉 성의 유동성과 그것이 주는 자유, 그리고 어쩌면 나르시시즘까지 다루고 있다. 


최근 시즌 3에 들어간 ’트랜스페어런트’는 직간접적으로 포스트가부장제를 다룬 작품이다. (제작자이자 각본가인 질 솔로웨이는 프로덕션사의 이름을 Topple(타도)라고 짓기까지 했다. 가부장제를 타도한다고 할 때 그 '타도'말이다.) 스토리는 한 유태계 아버지(제프리 탬버)가 성인이 된 세 자식에게 자신이 트랜스젠더임을 커밍아웃하는 내용인데, 세 자식 또한 누가 봐도 전형적인 21세기 서양 스타일로 각자 성적 혼란기를 겪으며 나르시시즘끼까지 있다. 


필자는 2014년 솔로웨이와 탬버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탁월한 재능의 탬버, 그 창작력의 1/10이라도 닮고 싶은 솔로웨이… 정말 어느쪽 팬을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두 사람 모두 매력적이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가지는 헌신은 명백했다. 하지만 2년이라는 시간은 정체성 정치에 있어서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얼마전 솔로웨이는 한 인터뷰에서 “시스젠더 남성이 트랜스젠더 여성 역할을 맡는 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시대가 왔다”며 또 다른 형태의 가부장제를 타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물론 지금 자신의 드라마에서 시스젠더 남성이 트랜스젠더 역할을 맡고 있기는 하지만, “이 드라마가 시작할 때만 해도 분위기가 달랐다”는 것이다. 


누가 누구의 이야기를 대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많은 의미에서 우리시대의 정치적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해답을 찾은 사람은 없다. 조나단 프랜즌은 자신의 작품에 흑인 캐릭터를 등장시키지 않는 이유가 “아직 흑인 여성과 사랑에 빠져 본 경험이 없어서”라고 했고(종종 인터뷰하는 걸 보면 리키 저베이스처럼 프랜즌도 본인 작품에 등장하는 최악의 캐릭터 같아 보일 때가 있다), 라이오넬 슈라이버는 문화적 전유라는 개념을 일축한 일로 비난을 사기도 했다. 프랜즌이든 슈라이버든 세세함이 결여된 사람으로 유명한 만큼, 이 상황에 있어서 논리정연한 견해를 기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사안은 이 시대의 두 관심사와 연관이 있는데, 그 첫번째는 일찌기 발언권이 없었던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때마침 발매된 솔란지 놀스의 새 앨범 타이틀을 빌려 말하자면 ‘테이블에 자리 내주기’)이고 두번째는 개인적인 경험만이 중요하다는 발상이다. 


전자는 트럼프 같은 부류의 인간이 아닌 이상 누구나 지지하는 건데, 후자는 좀더 까다롭다. 이번주  샐리 필립스의 ’다운신드롬 없는 세상?(A World Without Down’s Syndrome?)’이라는 다큐멘터리가 BBC에서 방영되었다. 샐리 필립스는 다운신드롬을 가진 아들이 있는데, 자신의 상황에 대해 지금까지 우리가 거의 접하지 못한 긍정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하지만 선의로 제작되었을 이 다큐멘터리는 중절 반대파라는 괴롭힘에 시달리게 된다. 필립스는 다운증후군 아기를 중절한 한 여성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아들을 떠올리며 힘들어 하는데, 한 태아 전문가가 샐리 필립스의 태도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다. 문제는 이 다큐멘터리가 오직 한 가지 경험만이 보편적이라고 제시한다는 점에 있다. 다큐멘터리에는 나오지 않지만, 현실은 필립스에게 주어진 선택의 여지가 다른 다운증후군 가정에게는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야기를 대변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것보다는 이야기가 잘 대변되고 있냐는 점인데, 사실 이 두가지는 종종 서로 결부되어 있다. 즉 경험한 것을 창의적인 해석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가 꼭 한 사람에서 나올 필요는 없다. ‘트랜스페어런트’는 노년 트랜스젠더 여성의 이야기를 정말 잘 대변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솔로웨이 감독과 탬버가 비슷한 경험이 있는 이들과 함께 작업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탬버 자체가 뛰어난 배우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물이 전부가 아니라고 한다고 해서 다양성에 반대하는 건 아니다. 단, 최상의 이야기가 되려면 통찰력과 객관성, 감수성과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틀전 솔로웨이의 한 인터뷰가 공개됐고, 탬버는 트랜스페어런트로 2년 연속 에미상을 수상했다. 탬버는 수상소감 때 헐리우드를 향해 “재능있는 트랜스젠더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미안해 하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은 “시스젠더 남성”이라고 했다. 이런 말 할 줄 아는 72세 노인도 많지 않다. 트랜스페어런트가 가부장제를 완전히 전복시키지 못했을지는 몰라도, 탬버라는 배우를 통해 그 투쟁에 적합한 사람을 영입해 오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 Hadley Freeman

- 옮긴이: 이승훈




Does it matter that Transparent's Jeffrey Tambor isn't trans?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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