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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2




아테네 민주주의의 동기를 마련했던 한 게이커플




고대 아테네의 참주를 제거하려 했던 두 연인. 삽화: Stephen McDermott/Daily Xtra





아테네 참주들의 사랑




세계최초의 민주주의가 탄생한 과정은 참주와 사랑, 욕망, 피의 복수와 비극, 그리고 두 전설적인 영웅의 부각을 다룬 대서사시다.


기원전 541년 두 번이나 추방경력이 있던 정치가 겸 군사 지도자 페이시스트라토스는 드디어 아테네를 완전히 장악했다. 당시의 참주는 지금과 그 뜻이 조금 달랐다. 페이시스트라토스는 무력으로 아테네를 손에 넣었지만 선군에 속하는 편이었고 아리스토텔레스도 ‘아테네인들의 정치체제’에서 그런 그를 공정하고 용서할 줄 아는 지도자로 묘사했다. 가난한 자를 도울 줄 알았고, “조정의 짐을 가능한 백성들에게 짊어지게 하지 않았으며, 늘 평화를 꾀하고 태평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기원전 527년, 그가 서거하자 그와 정실 사이에 태어난 두 아들 히피아스히파르코스가 아테네를 지배하게 되었다. 두 형제는 고위직에 친족을 앉히는 버릇이 있긴 했지만, 한동안 안정적인 치세가 이어졌다. 


타고난 지도자였던 히피아스는 “교활”하고 정치에 능했던것으로 묘사되는 반면, 히파르코스는 “청년기질을 타고나 색을 밝히고 문학을 선호”해 시인들을 아테네에 초청하곤 했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동생 히파르코스의 이러한 성격이 “앞으로 닥칠 모든 악”의 화근이 되었다고 했다.


문제는 히파르코스가 하르모디오스라는 젊은 청년에게 푹 빠지면서 시작되었다.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생사”에서 하르모디오스를 “젊음의 미가 한창”이었던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히파르코스는 그런 하르모디오스를 유혹했지만, 하르모디오스는 이미 중년의 아네테 시민 아리스토게이톤과 연인관계였기 때문에 히파르코스를 거부했다.


하르모디오스는 연인 아리스토게이톤에게 히파르코스가 자신을 탐하고 있다고 고했고, 아리스토게이톤은 막강한 참주으로부터 연인을 빼앗길 것을 두려워했다. 투키디데스의 기록에 따르면 아리스토게이톤은 “참주를 몰아내기 위해 기회가 닿는 대로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히파르코스는 하르모디오스를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르모디오스도 자신에게 다가오는 아테네 참주를 계속해서 거부했다. 히파르코스는 폭력을 쓰고 싶지 않았지만, 무슨 조치든 취하고 싶었다. 그는 하르모디오스의 여동생에게 파나텐 제전 때 공물이 든 바구니를 들도록 시켰다. 파나텐 제전은 페이시스트라투스 때 시작된 대규모 체육대회 겸 종교행사다.


제전 당일 하르모디오스의 여동생이 바구니를 들고 나타나자, 히파르코스는 그녀를 부른 적이 없다고 했다. 대립되는 주장을 통해 볼 때 히파르코스는 하르모디오스의 여동생을 비천한 여자로 내몰려 했거나, 하르모디오스를 “방만한 생활”로 고발하려 한 것 같다.


방만하다는 건 누군가를 갈보로 몰아세우는 아테네식 방식이었다.


투키디데스의 기록에는, 하르모디오스도 분개했으나, 아리스토게이톤이 그보다 더 분개했다”며 “두 사람은 공모자들과 함께 모든 준비를 마치고, 파나텐 대제전을 기다렸다”고 한다. 또한 거사를 대낮에 치루기로 한 이유는 “행진에 참가하는 시민들로부터 의심 받지 않고 무기를 지닐 수 있기 때문”이었고 한다.


이들은 참주 형제 둘을 모두 살해할 계획이었다. 


약속한 날이 왔다. 두 연인과 공모자들은 아크로폴리스에서 행진이 당도하는 것을 기다리던 형 히피아스를 감시했다. 그런데 하르모디오스와 아리스토게이톤은 공모자 중 한 명이 히피아스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배신 당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두 사람은 서둘러 아크로폴리스로 향해 히파르코스를 죽여버렸지만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하르모디오스는 그 자리에서 즉사해 버렸고 아리스토게이톤도 연행되어 고문을 받았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아리스토게이톤은 혼동을 초래하기 위해 참주의 측근이 거사를 공모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고 한다. 그는 격심한 고문으로 숨이 끊어지려 할 때 모든 걸 털어놓기로 하고 히피아스에게 악수를 청했다.


여기서 두 사람이 나눴을 대화를 상상해 볼테니 독자분들은 양해 바란다. 히피아스가 손을 내밀자 말자 아리스토게이톤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을 것이다. “네 동생을 죽인 손과 악수를 나누려는 거냐?” 히피아스는 화가 치민 나머지 단도를 꺼내 아리스토게이톤을 죽여버린다. 


동생을 잃은 히피아스는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난폭해졌고, 역모를 의심해 수많은 아테네인들을 죽이거나 추방시켰다. 혁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히피아스는 기원전 508년경 스파르타군의 도움으로 퇴위된다.


그 후 페이시스트라투스의 처남 클레이스테네스가 아테네의 실권자로 등극했고, 그는 법을 개혁해 정치부족들이 혈연관계가 아닌 지연관계에 기반하도록 했다. 그에 앞서 클레이스테네스는 참주의 사랑에 희생된 두 사람을 기리기 위해 조각가 안테노르를 시켜 하르모디오스와 아리게스톤을 제작하도록 했다. 




- Michael Lyons

- 옮긴이: 이승훈




How one homosexual couple helped shape Athenian democracy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Daily X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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