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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5




경찰은 정말 포트의 희생자들이 정의를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걸까?




경찰은 게이 연쇄살인마를 조기에 검거할 수도 있었다. 무능함을 탓하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직무태만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도대체 어떤 경찰이 살해된 시체를 쌌던 침대시트의 DNA에 관심을 안 가진단 말인가?’ 사진: Dominic Lipinski/PA



연쇄살인마 스티븐 포트와 경찰, 중에서 어느쪽이 아둔하고 거만할까? 포트는 2014 6 앤서니 월게이트(23) 살해한 그냥 아파트 입구에 내다버렸고, 경찰에 직접 연락해 모르는 사람이 길거리에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다고 신고했다. 포트는 시체발견 과정에 대해 거짓진술을 것으로 드러나 징역형을 받았다.


경찰은 2014 8 인근 묘지에서 두번째 사체(가브리엘 코바리, 22) 발견되었을 때도 사건과 포트를 연관짓지 않았다. 그로부터 3주후 세번째 사체(다니엘 위트워스, 21)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사람에 의해 발견되어도 경찰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포트는 위트워스가 실수로 코바리를 죽인 죄책감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유서를 조작했다. 하지만 경찰은 전문가에게 필체감식조차 의뢰하지 않았고, 검시관이 자살설이 석연지 찮다며 사인불명 판정을 내려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검시관은 경찰이어제 같이 있었던 남자 추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짜유서에는 남성을 추궁하지 말라고 적혀 있었다. 검시관은 사망자의 소지품에서 DNA 검사를 해야 한다고 권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DNA 검사는 2015 9 번째 피해자( 테일러, 25) 발생하고 나서야 이뤄졌다.


테일러의 유가족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압력이 잇따르자 경찰은 겨우 다른 사건의 조사에 착수했다. 코바리의 사체를 싸고 있던 침대시트는 포트의 DNA 뒤덮혀 있었다. 물론 경찰은 포트의 DNA 보유하고 있었다. 그가 테일러를 죽였을 월게이트의 사망사건과 관련해서 구속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경찰이 포트를 기소하고 공개적으로 정보수집에 나선 테일러가 죽은지 1년이 지나서였다. 포트가 살육을 저지르고 다닌 15개월 동안 시민들은 살인마가 런던동부 바킹 인근에서 젊은 게이 남성을 겨냥하고 다닌다는 경고 받지 못했다. 누구도 자신을 보호할 기회를 가지지 못한 것이다. 포트는 다른 남성 일곱 명에게도 약물을 투여했지만 이들은 다행히도 살아남았고, 경찰은 현재 GHB 연관된 미제 사망사건 58건의 재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살인마는 무능했지만 경찰은 무능했다. 포트는 검거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고 밖에 없다. 하지만 경찰이 그런 자신을 추궁할 의지가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았. 현재 관련 경관 17명을 상대로 조사가 진행중이지만, 이미 목숨을 잃은 청년을 되살릴 길은 없다. “실로 유감스런 실수”보다는 제도화된 동성애혐오라고 하는 편이 모든 면에서 훨씬 납득이 간.


도대체 어떤 경찰이 살해된 시체를 쌌던 침대시트의 DNA 관심을 가진단 말인가? 도대체 어떤 경찰이어젯밤을 함께 보낸 남자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라는 유서에서 수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한단 말인가? 도대체 어떤 경찰이 검시관의 권고에 무관심할 수 있다 말인가?


정말 믿기 어려운 부실수사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포트가 살인자라는 몰랐다는 알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는 밖에 된다. 아마 경찰들 눈엔 피해자들이 정의를 누릴 자격도, 관심을 받을 자격도 없는 이로 보였을 것이다. 이것말고 다른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을까?


경찰이 자기들만의 성윤리를 고집한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들이 시체를 골라가며 정의를 부여한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명백하고 고집스러울 만큼 노골적인 경찰의 실수, 그로 인해 어린 아이나 다름없는 이들이 목숨으로 치뤄야 했던 댓가는 너무나도 사악하고 개탄스럽기까지 하다. 영국 시민 여러분, 런던 시민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까지 직무를 유기하고, 젊은이들의 삶을 가치없는 소모용으로 취급하는 법집행관들을 그대로 두어서는 된다.


포트의 유죄판결과 같은 시기에 <Mum>이라는 단편영화가 개봉되었다. 매춘 금지법의 철폐를 호소하는 영화는 여성의 매춘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포트가 첫번째 희생자에게 돈을 주겠다며 유인한 만큼, 만약 비난받거나 처벌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없이 신고를 있었다면 포트의 악행이 끔찍해지기 전에 경찰도 그의 검거에 나설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번 사건이 경찰이 합의에 의한 성행위에 얼마나 사적인 감정을 적용시켜가며 특정 사건을 우선시하거나 무시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동성애자도 합법적인 시민이지만, 그게 마음에 드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법에는 이렇게 사적이고 개인적인 행위를 처벌하도록 되어 있다. 사람들은 남의 몸을 고용해서 온갖 방식으로 쓰면서 전혀 개의치 않지만, 금전을 목적으로 성적 호객행위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는 것이다.


몸의 자치권을 주장하는 목소리에 일부 멍청하고 잔혹한 도덕주의자들은 혼란스러워한다. 그리고 게중에는 자칭 경찰이라고 하는 이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은 상대를 불문하고 포트와 같은 가해자로부터 사람들의 성적 자치를 보호해 줘야만 한다. 경찰에게 사건을 고르고 말고 권리는 없다.




- Deborah Orr, 필자 연락처

- 옮긴이: 이승훈




Did the police not believe Stephen Port’s victims deserved justice?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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