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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이번주 호주 의사당에서 일어난 접착제 시위, 시위의 역사는 끝이 없다.




수많은 시위가 오랜 세월 동안 아무런 결실도 맺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변화는 일어난다. 




지난 수요일 호주 이민정책에 반대하는 시위자들이 의회에 난입해 질의응답 시간이 중단되었다.



지난 수요일 의회 앞에서 열린 망명 신청자 구금 반대시위 특기할 만한 점으로 딱히 특기할 만한 점이 없었다는 사실을 들 수 있을 것이. 시위의 역사를 통틀어 이날 시위는 정말 소소했고, 파급력도 적었으며 새로울 것도 없었다.


이날 시위가 언론의 주목을 받은 보도해야 사건이라서기보다는 기자석의 지루함을 떼우기 위해서였고, 마침 카메라를 돌리고 있을 시위가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치안당국이 이들을 처벌하도록 지시한 것도 그냥 대본에 충실한 조치였다. 


호주의 사회사와 정치사는 유리카 성채 사건[각주:1]에서 1916 징집 반대집회[각주:2]에서 1932 시드니 하버 브리지 개통식 캡틴 드그루트이 절차를 무시하고 리본을 끊었던 사건[각주:3]에 이르기까지 시위를 빼놓고 논할 수 없다


하지만 호주의 시위사를 논할  우리가 주로 떠올리는 1960년대와 1970년대다. 저항의 강력한 물결이 호주 전국을 휩쓸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때였기 때문이다. 시위 운동들로 우리 사회는 종전까지만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변화를 이루었지만, 지금 젊은 세대들은 사실을 잊고 산다.


이들 시위는 전후 정권을 잡은 귀족출신의 수상, 로버트 멘지스의 그늘 아래서 여전히 보수주의를 고수하던 정부의 격렬한 저항에 부딛혔다. 하지만 느긋하게 살아가던 호주인들도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밑에서 일어나는 지각변동을 느끼기 시작했다.


진전은 그냥 일어나는 아니다. 진전은 소수의 개인들이 변화를 요구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진전을 이끌어내려면 완강하고 고집불통이어야 하며 고통까지 감수해 한다. 변화에 반대하는 이들은 훨씬 막강하고, 반대자들을 조롱과 분노 심지어는 폭력으로 대하기 때문이다.



이틀째 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벌인 망명 신청자들


지금은 달라졌지만, 1960년대와 1970년대만 해도 사회변화에 가장 강력하게 맞서던 단체는 호주 재향군인연맹(RSL)이었고, 어떤 사회운동이든 재향군인과 대면해야만 했.


1960년대 월게트의 재향군인연맹이 타인종의 입단금지 정책을 원주민 광부들에게도 적용하기로 했다. 1965 자유의 기수 활동가들[각주:4] 월게트에 몰려토브루크 격전 때는 되는데 재향군인 모임엔 안되는가?”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고, 시골 동네의 한가한 재향군인 모임은 전국적인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때도 재향군인들은 앤잭 전통[각주:5] 수호자였다. 하지만 이들 군대세력이 받드는 획일화, 규율, 순응 등의 가치관들은 반체제가 거부하고 젊은이들이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이었. 


호주의 베트남전쟁 참전과 베트남인들에게 가해진 끔찍한 만행은 지난 수십년간 군대세력에 불명예를 안겨줬지만, 오명도 최근에는 베트남 참전용사의 재활 서비스와 앤잭 데이를 둘러싼 감성 속에서 말끔히 잊혀져버렸다.


앤잭은 호주 남성성의 상징이기도 하다. 1977 젊은 페미니스트들이 시드니의 앤잭 데이 행진에 난입해 플래카드를 흔들며 강간을 전쟁무기로 삼았던 이들을 비난했을 때에는 이해부족과 분노에 반응이 이어졌다. 


플래카드는 미군이 베트남에서 대대적으로 강간을 자행했다고 시인했는데, 이날 행진 참가자들도 그런 미군부대와 하나가 되어 싸웠다며 규탄했다. 


동성애 해방전선도 재향군인들과 대항해야 했다. 1982 싸움꾼 기질이 다분했던 재향군인 연맹의 빅토리아 지부장 브루스 럭스턴이 전쟁기념관에 화환을 올리려던 동성애자 퇴역군인 협회원들을 가로막고 것이다. 


럭스턴은세계대전에서 똥쟁이는 한 마리 봤다 으르렁댔다.


재향군인 연맹이 구시대적 동성애혐오와 인종차별, 남성특권주의의 유일한 수호자였던 아니다. 경찰세력도 죄가 많기는 마찬가지였다. 정치권에서 시위자들에게 본때를 보여주려면 경찰의 고삐만 풀면 됐다.


당시 경찰의 잔혹함과 퀸스랜드주는 거의 동의어나 마찬가지였지만 다른 지역에서도실상 다르지 않았. 1970 9 시드니에서 열린 베트남 참전중지 행진은 경찰이 시위자들에게 무차별적인 폭행을 가하면서 난장판으로 끝났다.


동성애자 인권 투쟁도 대부분 경찰과의 투쟁이었다. 중에서도 가장 악명높았던 1978 경찰이 1 마디그라를 습격한 사건이다. 올해 뉴사우스웨일스 경찰청과 주의회가 당시 사건에 대해 사죄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 시위운동에서 낭만적인 오로라를 느낄지도 모르지만, 시위 당시엔 애들의 주먹다짐 같은 추악한 감정이 드러나곤 했다. 베트남 반전운동 초창기부터 시위에 참가했던 < 에이지> 시사만화가 마이클 류닉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한다:


사악함과 환멸이 만연한 시절이었어요. 너무나도 추악한 일이 일어났고, 지금도 일을 잊을 수가 없어요(중략) 우리 문화가 얼마나 편집증적이고 보수적이며 무감각한지 절감했죠. 


당시 위반행위는 아주 강력한 정치도구였다. 게이들은 공공장소에서 키스시위를 벌이며 법체계에 맞섰고,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전용 술집의 마루 발걸이에 자기 몸을 꽁공 묶었다. 원주민 투쟁가들은 의사당 잔디밭에 철거해 보란 듯이 텐트 대사관을 세웠다. 


그리고 이번주에 감행된 접착제 농성[각주:6] 이르기까지 시위 이야기는 끝이 없다. 시위자들은 절박함의 최절정에 달했고, 여야의 잔혹한 정책에 너무나도 환멸을 느꼈던 것이다.


의회를 방해한다고 해서 현실이 바뀔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없. 수많은 시위 운동이 오랜 세월 동안 아무런 결실도 맺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역사가 움직일 모든 노력이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 클라이브 해밀턴은 호주 시위사를 다룬 ‘What Do We Want?’(출판: National Library of Australia)의 저자입니다.




- Clive Hamilton

- 옮긴이: 이승훈




As this week’s 'glue-in' in parliament shows, the story of protest has no end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1. 854년 오스트레일리아의 Ballarat에서 채광 종사자가 농성하여 정부의 산금(產金) 단속에 반항한 사건; 동국(同國) 노동 운동의 단서 [본문으로]
  2. 1차세계대전 때 영국정부의 징집정책에 반대해 일어난 시위. 노조, 아일랜드 민족주의자, 카톨릭 성직자들을 중심으로 확대되었다. [본문으로]
  3. 원래 뉴사우스웨일스주 주지사가 리본을 끊기로 했으나, 의회내 극우파 모임의 회원이었던 드그루트는 영국 왕실의 일원이 리본을 끊지 않는 데 반항해 먼저 리본을 끊어버렸다. [본문으로]
  4. Freedom Ride: 미국 시민권 운동 때 동명의 활동가들에 자극을 받은 시드니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모임. 원주민들의 인권옹호를 위해 활동했다. [본문으로]
  5. 앤잭(ANZAC)은 호주 뉴질랜드 군단(Australia New Zealand Army Corps)의 약자. 호주와 뉴질랜드의 공휴일이다. 매년 4월 25일, 제1차 세계 대전의 갈리폴리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운 호주 뉴질랜드 군단(ANZAC, Australia New Zealand Army Corps)의 군인들과 당시 나라를 위해 힘쓴 사람들을 위해 추모한다. 새벽에는 전사한 사람들을 추모하며 용사들이 먹었던 앤잭 쿠키를 먹은다. 대한민국의 현충일과 같은 날. - 위키백과 [본문으로]
  6. 망명신청자 구금에 반대하는 시위자들이 자신의 의사당 난간에 접착제로 자신의 손을 붙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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