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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6




반항적인 게이 아이콘이었던 조지 마이클. 그의 삶을 세척하지 말자.




반동성애 정서가 만연했던 시절, 자신의 성생활을 떳떳이 밝히고 LGBT 인권을 옹호했던 팝스타 조지 마이클. 수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그는 구명보트와도 같았다. 




조지 마이클… “그의 섹슈얼리티와 음악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사진: Imago/Barcroft Media



18년도 지난 일이지만 조지 마이클이 비벌리 힐즈의 화장실에서 외설행위 아우팅을 당한 일은 유명한 사건이다. 조지는 곧바로 체계적으로 혐동성애적이었던 언론으로부터 모욕을 당해야 했다. 당시는 태블로이드 신문이 중세시대 교회에서나 있을 법한 윤리학자 같은 입장을 취할 때마다 수치심에 어쩔 몰라하던 때였지만, 마이클은 이들에게 음악역사상 가장 엿을 먹였다. 신곡 Outside로 인간의 성적 욕구를 사정없이 드러내며 그들의 위선에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그는 자연에 어긋나는 성이 아니라 성에 대한 태도라며여긴 뼈와 살로 몸뚱이 말고 다른 건 없다 노래했다.


조지의 본모습을 세척하지도, 지우지도 말자. 그는 게이이자 게이 아이콘이었다. 그가 게이였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고는 그의 정체성도 음악도 논할 없다. 다른 게이들이 그렇듯, 조지 또한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받아들이기까지는 힘든 과정을 거쳤다. 처음에는 여자를 좋아하는 알았다가 20 중반이 되어서야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됐고, 부모님께 커밍아웃하기까지는 년이 걸렸다고 한다. 항간에는  중압감을 느끼며 굳이 35살까지 숨길 필요가 있었나라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커밍아웃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다. 아직도 우리를 받아들이려면 한참 먼  사회에서 커밍아웃은 게이 그리고 모든 LGBT들이 거쳐야 하는 경험이다. 하지만 90년대 슈퍼스타가 커밍아웃하는 건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다. 영국 사회시선 설문조사 따르면 조지가 커밍아웃한 영국인의 절반이 동성간의 사랑은 완전히 또는 대부분 그릇된 것이라고 답했다. (10 명중 4 명이 완전히 그릇된 것이라고 답했다.) 반면전혀 그릇되지 않았다 답한 사람은 23% 그쳤다. 제정된지 10년이 되지 않던 28[각주:1]에서 서로 다른 성관계승낙연령법에 이르기까지, 동성애금지법이 여전히 존재하던 시대이기도 했다.




슈퍼스타 조지 마이클 별세 향년 53세                         


공인들이 커밍아웃을 의무로 받아들여서는 된다. 커밍아웃이란 아주 사적인 일이고, 삶은 복잡다난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클의 커밍아웃이 게이들 뿐만 아니라 사회의 잣대에 맞서며 수치심을 삼켜야 했던 수많은  LGBT들에게 구명보트가 된 것만은 분명하. 경험이 얼마나 고독한 것인지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런데 갑자기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스타가 등장한 것이다. 여중생도 엄마들도 좋아하는 그런 스타 말이다.


물론 그가 아우팅 당한 방식이 전형적인 혐동성애적 소재가 사실이다. 편견쟁이들은 사건을 들먹이며 게이들의 부정과 타락에 혐오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혐오자는 해도 혐오할 뿐이라는 표현이 있듯이, 동성애 혐오자들은 편견에 자신의 서술을 확인해 주는 거면 뭐든지 붙잡고 늘어진. 하지만 라스트 크리스마스를 부른  가수가 자신을 괴롭히던 이들을 엿먹이는 장면은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깨닫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던 LGBT들에게 해방감을 안겨 주었다.


1980년대를 거쳐 1990년대에 이르러서도 수만 명의 게이들이 HIV/에이즈로 죽어나갔다. 이들이 사라져가는 동안 사회는 연민과 혐오, ‘자초했다 생각 사이를 오갔다. 조지도 연인 안셀모 펠레파가 병으로 고통받으며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1996년도 넘버원 히트곡 Jesus to a Child 안셀모를 잃은 슬픔을 담은 곡이자, 자신의 섹슈얼리티와 음악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강조하는 곡이기도 했다.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것도, 커밍아웃도 쉽지 않지만 고난의 원인은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에 있. 건전해 보이고 외관에서 성적인 것이 느껴지지 않아야 받아들여질  있다는 것이 무언의 전제조건이다. 매튜 패리스 지적했듯, 편견쟁이들은 동성애자들을 박해한 후에도 결코 증오를 멈추지 않았고, 지금은 이렇게 외치고 있다: “제발 그만 닥쳐! 니가 침대에서 뭔짓을 하는지 누가 알고 싶댔냐? 사생활은 니가 알아서 하고, 제발 우리한테 들이대지 마라. ㅋㅋ조지는 무언의 전제조건을 거부했다. 그는 오픈 연애를 했고, 묻지마 섹스를 사랑했다. 그는 2005 가디언지의 사이먼 해튼스톤 기자에게 이렇게 말한다:“TV 보면 영국사회가 누가 봐도 게이지만 성적인 위협감을 전혀 주지 않는 게이들로부터 위안 받 있는 것 같습니다게이들이 미디어에 나와서 하는 행동을 보면 전부 이성애자들의 심기를 편하게 주는 것들 뿐이예요. 그런 때마다 난잡한 저질 오입쟁이다. 못받아들이겠으면 받아들이지마’라 말해 주고 싶어요.” 한편 트위터에서는 좀더 화끈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 성생활에 대해 사죄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게이 섹스는 자연스럽고 좋은 거예요! 누구나 하는 아니지만하하!” 


그는 당당하게 LGBT 인권 캠페인을 벌였고, HIV 자선단체인 터렌스 히긴스 재단의 큰 후원자였. 대처주의의 트라우마가 극심했던 시절 노동당을 지지했고, 영국 광부파업을 지지하는 , 다방면에 걸쳐 정치적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죽음을 앞둔 모친을 돌봐준 간호사들을 위해 무료로 공연을 열기도 했다. 2003년에는 자신의 미스 다이나마이트와 함께 자신의 히트곡 Faith 개작해서 이라크 전쟁 반대곡으로 만들었고, 조지 W 부시와 신보수주의의 동맹에 참가하려는 토니 블레어를 규탄하기 위해 ‘Shoot the Dog’이라는 싱글을 발표했다.


마이클 조지를 정치화하지 말라!” 외침소리가 벌써부터 들리는 하다. 팬이라면서 자신의 세계관과 맞지 않는 부분만 지우고 좋아하는 부류들의 외침소리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일부 사람들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망자를 세척하기보다는  사람의 본모습 그대로를 기억할 의무가 있다. 


우리는 지금 편견쟁이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대범함을 드러내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들이 인종화합과 페미니즘, LGBT 인권 지지자들을 대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너네도 즐길 만큼 즐겼으니 이번엔 우리 차례야.” 말을 듣고 물러나고 싶은 마음이 수도 있겠지만, 필자는 1998 당시 십대의 나이로 동성애자임을 숨겨 했던 사람으로서 조지 마이클이 보여줬던 용기와 저항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재능있는 뮤지션이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게이이기도 했고, 수많은 LGBT들의 삶을 조금은 수월하게 게이 아이콘 말이다.




- Owen Jones

- 옮긴이: 이승훈




George Michael was a defiant gay icon. His life must not be sanitised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1. 교육기관에서 동성애를 긍정적으로 묘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 1988년 제정되어 2000년 폐지됐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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