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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시한 조각상의 엉덩이

유럽/이탈리아 2012. 10. 20. 03:02 Posted by mitr

Sexy, sculpted asses

Donatello’s David and vintage-vintage gay porn in Renaissance Florence


click here for the original column on FAB Magazine.


2012-10-16



도나텔로의 다비드상과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의 원조 게이 포르노



몇년전 이탈리아를 방문했을 때 한 활달한 지인이 자기 돈을 써가며 나에게 피렌체의 이곳저곳을 구경시켜 주었다.  피렌체의 도심부는 르네상스 시절에 영구동결되어 있지만 이제는 궁전마다 관광객과 오래된 건축물 사이를 가르는 보라색 밧줄이 쳐져 있다. 나는 에로틱한 나체 조각상에 완전히 매료되어버렸지만, 사진은 커녕 은밀한 곳을 바라보는 것조차 쑥스러웠다. 그러자 지인이 나에게 호통을 쳤다. "몇 달이나 걸려 저 엉덩이를 판 사람을 생각해서라도 실컷 감상해 둬!" 그 때부터 나는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고 내가 히죽거리는 소리는 조각상의 둔부와 홀 전체에 울려퍼졌다.



도나텔로는 1386 년경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도나텔로는 어린 나이에 조각을 시작하였고,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와 함께 고대 유물을 발굴하고 연구함으로써 조각가로서 한층 더 성장했다. 최초의 예술서적 중 하나인 '이태리 르네상스의 미술가 평전(Lives of the Most Eminent Painters, Sculptors and Architects)'을 남긴 조르조 바사리는 도나텔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그의 작품은 너무나도 우아하고 탁월하여 그 거장다운 설계는 그리스 로마 시절의 절정기에 비유되었다."


메디치 가문의 예술 후원은 르네상스 문화의 가장 큰 공헌 중의 하나였다. 폴 스트라던은 '메디치 가문: 르네상스의 대부들(The Medicis: Godfathers of the Renaissance)'에서 도나텔로의 작품을 후원한 코지모 데 메디치를 탐구했다. 도나텔로는 특별한 대우, 그러니까 디바 취급을 받고 싶어했고 코지모는 그의 그런 요구를 받아주었다.스트라던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비범한 재능을 가진 이러한 사람들을 가축이 아닌 천인으로 대해야 한다'고 말한 코지모는 르네상스가 배출한 새로운 부류의 예술가를 처음으로 알아본 후원가 중 한 사람인 듯 하다." 코지모는 도나텔로의 변덕을 받아주고 그가 일으킨 말썽을 수습하는 등 아주 까칠한 여배우 앞에서 쩔쩔매는 매니저처럼 행동했던 것 같다. 도나텔로는 신중함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숨기지 않은 도나텔로의 행동을 주위사람들은 받아들여야만 했다."


당시 피렌체는 욕구의 돌파구를 찾는 젊은 남성들로 들끓었던 듯 하다. 하지만 젊은 여자는 귀중한 자산으로 여겨졌고, 결혼하면 가족간의 동맹으로 이익이 생겼다. 그래서 동성애가 전반적으로 죄악시되면서도 남자들을 일에 몰두하게 하고, 여자들의 순결을 유지하는 방편으로 받아들여졌다. 스트라던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이 모든 정황이 당시 젊은 남성들 사이의 계간이 묵인되었음을 반증해 준다. 이러한 풍조는 너무나도 만연하여 당시 독일어로 '항문성교를 하다'는 속어가 'florenzer(피렌체짓을 하다)'일 정도였다."


다비드와 골리앗 이야기에 나오는 다비드는 피렌체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동상으로 제작되는 일이 빈번했다. 그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일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도 훌륭하지만 도나텔로의 다비드상만큼 조마조마하고 파격적이지는 않았다. 내가 열렬히 칭송하는 도나텔로의 다비드상은 교도소를 개장한 바르겔로 미술관에 안치되어 있다. 스트라던은 도나텔로의 다비드상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동성애적 에로티시즘의 당당한 걸작이다. 젊은 다비드의 종아리까지 오는 장식달린 장화와 축쳐진 '컨트리 스타일'의 모자, 그리고 어깨까지 느러뜨려진 곱슬머리는 그 감각적인 나체를 한층 더 돋보이게 한다. 발가락부분이 트인 장화는 골리앗의 투구 위에 가볍게 놓여 있는데, 마치 골리앗의 투구에 달린 큼지막한 날개 깃발이 다비드의 안허벅지를 애무하는 듯하다."


코지모 데 메디치가 동성애자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작품의 후원자였을 가능성이 큰 코지모는 이 조각의 밑그림을 봤을 것이고, 이 조각상이 얼마나 소년스럽고 대부분의 피렌체 시민들이 부적절하다고 느낄지 사전에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지모는 조각을 진행시켰다. 그는 어쩌면 응석받이 후원자 노릇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게이 후원자가 유난히 성적인 조각상을 주문해 춘화 삼아 자신의 정원에 두려 했을 수도 있고, 게이 조각가가 자신이 좋아하는 형상(도나텔로와 그 다비드상도 그러했을 것이다)을 조각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르네상스 시대의 수많은 위대한 조각상은 고대의 방식을 재발굴한 한편, 소년애로 몽롱해진 시선으로 제작된 것도 확실한 것 같다. 


Jeremy Will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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