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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9




속이 뒤틀린다 해도 진정한 자유주의자인 패런을 옹호하자




동성애에 대한 자민당 당수의 생각으로 드러난 신앙과 관용 사이의 균열




지난주 하원에서 LGBT 인권을 옹호해 온 자신의 전력을 피력하는 팀 패런 당수. 사진: PA



자유주의는 서양을 휩쓸고 이는 보수주의자들을 충족시켜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칭 "자유주의자들"조차 충족시켜 주지 못한다. 이데올로기 치고는 너무 강경하지만 그와 동시에 너무 부드럽기도 하다. 자유주의는 관용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천덕꾸러기 같은 대우를 받으면서까지 관용을 베풀 사람은 없다. 누구나 존중과 인정을 바라며, 비판과 모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한다. 그리고 대범할 때는 감히 사랑을 받고싶어 하기까지 한다. 


볼테르의 말을 다른 말로 바꿔 표현하자면 성적 관용에 대한 자유주의적 관점이란 " 잠자리 상대를 받아들일 없지만 네가 상대랑 함께 권리는 목숨 걸고 지켜주겠다"였. 자유주의자들은 폭력을 유발하지 않는 언론의 자유에 관용을 베풀었고, 법적 성인간의 자유로운 사랑 또한 허용해 왔. 그런데 요즘은 권리를 목숨 걸고 지키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다들 권위주의자가 되어 반대할 권리가 없다고만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 


20세기 중반의 위대한 동성애자 인권운동은 1957 월펜든이 보고서를 통해 사적인 공간에서 법적 성인간에 행해지는 성행위를 합법화시켜야 한다고 권고하면서 정점에 달했다. 하지만 보고서에는 기독교, 유태교, 무슬림계 원리주의자나 일반 동성애 혐오자들이 동성애를 죄악으로 여겨선 된다고는 하지 않았다. 사실, 이들에게도 언론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반대할 자유도 있었다. , 경찰에 신고해 남의 침실을 덮칠 권한이 사라졌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폭력을 유발하지 않는 언론의 자유를 용인해야 한다는 과거 자유주의적 주장은 청중이 무조건 발언자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아니있다. 신랄하게 쏘아붙이고, 비난하며, 풍자할 자유가 있었던 것이다. 발언이 너무 증오에 나머지 상대방에게 폭력을 유발하지 않는 , 당국에게 연설 금지를 요구하거나, 증오범죄를 운운하며 경찰에 체포를 요구할 없었다.


반동분자는 보수주의자나 기독교인이고, 극좌와 극우의 집합점은 무시


패런 자민당 당수가 동성애의 죄악 여부에 대한 답 얼버무리면서 야기된 이상한 논란을 바라보고 있노라 과거의 자유주의가 죽어버렸음을 절감하게 된다. 사실 패런 당수는 영국 국내외의 LGBT 평등권을 지지 왔지만, 그와 동시에 기독교야말로 세상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패런 당수는 동성애의 죄악여부에 관한 질문을 회피하면서 말려들었다. 이는 그가 성경을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였고,  바울이 그랬듯 동성애를 죽음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레위기위 규탄을 유해할 정도로 오랫동안 믿게 것이다. 


하지만 설령 그가 그런 생각을 가졌었고,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한들 그게 어쨌단 말인. 패런은 진정한 자유주의자다. 그는 동성애를 반대했지만,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수호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이. 필자가 종교 원리주의자들을 반대하면서도 신앙의 자유를 수호할 각오가 되어 있듯이 말이다. 21세기 문화전쟁의 저급한 수준으로 보아도 패런논란 어리석어 보인다.


그런데 어리석음에는 사악한 반전이 있다. 종교와 평등권에 관한 이야기가 있는데, 반동분자는 보수주의자나 기독교인이고, 극좌와 극우의 집합점은 무시해 버리는 전형적인 기사보도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다루지 않고 있다.


제레미 코빈은 이란 국영TV에서 일했었고, 런던의 호메이니 추종집회에서 연설하기도 했다. 그는 가는 곳마다 동성애자를 매질하고 처형하며, 여성을 2등시민으로 취급하는 한편 노조관련자들을 투옥하는 정권에 기꺼이 협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코빈에게 이와 관련된 질문이 주어진다면 (그럴 일도 없겠지만), 시아 교리를 무조건 받아들이는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시아파 정권 아래서 일했고, 보수를 받는 동안 이란 방송에서 탄압 피해자들을 용기있게 옹호하지 못했다. 하나님을 찾는 정치인이게는 규탄을 퍼부으면서도 퀴어를 탄압하고, 처형하는 정권 아래서 일한 정치인은 묵인하는 자유주의 사회라니, 너무 엇나간 나머지 어떻게 바로 잡아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하나님을 찾는 정치인이게는 규탄을 퍼부으면서도 퀴어를 탄압하고, 처형하는 정권 아래서 일한 정치인은 묵인하는 자유주의 사회는 정말 엇나간 사회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자유주의 사회가 무작정 어리석은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 동성애자들이 패런의 뒤틀림 환멸하 말란 법도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패런이 자신들을 인정하지는 않지만 지켜 거라는 것도 의아해 할지 모른다. 게다가 그것으 만족해야 한다는 법도 없고 말이. 


조금 확대시켜서 생각해 보자. 여성을 살덩어리로만 치부하는 이력이 페미니스트가 굳이 포르노와 강간 사이의 상호관계를 찾기 위해 년을 소비할 필요가 있을까? 극우들의 반이슬람 편견에 분개한 무슬림이, 또는 극좌파의 반유태주의에 분개한 유태인이 적들이 폭력을 촉발시킬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필요가 있을까? 마찬가지로 티핑포인트에 다다를 때까지 위험하리만치 모호한 증오발언 금지법을 두고만 볼 이유가 있을까?


실천하는 이들에게 있어 관용하기란 녹록치 않은 삶의 원칙이다. 자신이 환멸하는 상대의 들을 가치도 없는 주장을 들으며 토론에 임하지 않으면 되기 대문이다. 


딱딱함 속에는 부드러운 심이 숨겨져 있는데 그것은 너무 무미해서 소화해 내는 사람이 별로 없다. 감정적으로 경찰에 신고하기보다 토론에 이겨야 한다는 싱겁게 느껴질 수도 있다. 애초에 여성혐오자와 인종차별주의자, 동성애혐오자들과 토론에 임한다는 자체가 이들을 존중하는 배신행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관용의 묵살과 정치적 올바름의 관료주의로 치닫는 것이 정답인 것처럼 느껴진다 하더라 현실적으로 이런 행동은 재앙을 불어왔다. 트럼프가 당선된 데에는 수백만 미국인이 생각을 강요 강하는  싫증을 느꼈다는 것도 부분적으로나마 이유로 작용했다. 게중에는 순전히 편견으로 가득찬 이들도 있는가 하면, 소위 자유주의자들이 사고의 ()자유주의적인 감시를 내려놓을 때만 끌어들일 있는 이들도 있었다. 


자유주의자들이 어쩌다 많은 사람들을 우익의 따스한 속으로 내몰고 말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한다면 트럼프의 4 임기는 8년으로 늘어날지도 모른다. 한편 우리 영국에서도 보수 정권이 5 년은 남아있다. 우파가 검열과 제재를 가할 권력을 가지고 있을 때, 자유주의자까지 기본적인 이해타산 때문에 검열과 제재를 합리화해서는  될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 운동은 지적, 현실적으로도 실패작일 뿐만 아니라, 인간 심리의 좀더 기본적인 레벨에서부터 실패한 움직임이다. 


남들에게 존중하라고 요구할 없다. 남들이 감탄하도록 강요할 수도 없다. 그런 자신이 노력해서 얻는 것이다. 안의 좋은 것들을 봐달라고 설득해야 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강요를 통해 사랑받을 없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앞으로도 사랑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정치인이 "제가 여러분을 존중하는지 묻지 말고, 여러분의 권리를 존중하는지 물어달라" 여러분이 있는 (실제로 다른 바랄 수도 없지만) 거래를 받아들이는 뿐이다. 




- Nick Cohen

- 옮긴이: 이승훈




Defend Tim Farron, a true liberal, even if it makes us queasy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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