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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6




우간다의 사랑이야기: 케냐로 망명한 게이커플




남성 무용수가 우간다에서 사랑에 빠졌다. 무용단에서 쫓겨난 사람은 LGBT 난민이 되어 케냐로 떠나는데 

 

- 사이먼 퀘시가보



셈피갸 주마 아부바카르, 사진: 사이먼 퀘시가보

이름은 셈피갸 주마 아부바카르. 1988 11 10 우간다의 루가지에서 태어났고 부모님은 핫지 루말라 주마와 사라 켼시타이십니다. 


학교는 초등학교까지 마치고 중학교는 다니지 못했습니다. 부모님이 학비를 여유가 없으셨죠.


아버지는 수공업자셔서, 무용단에 아는 분이 많았습니다. 제가 정식으로 춤을 배워 앞가림을 있도록 무용단에 소개시켜 주셨죠. 나이가 22살로 저는 이미 성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하루하루 연습을 이어가며 춤실력을 늘려갔습니다. 


우리 팀은 전통춤을 하는 곳이었는데, 저도 단원들을 따라 공연에 나서기 시작했고, 단원들과도 가까워지게 됐습니다. 제가 좋아한 주로 남자였지만, 가끔은 여자가 좋기도 했습니다. 남자 단원들이 옷벗는 모습을 보며 흥분하곤 했죠.


그러던 어느날 친구의 은밀한 부위를 만지게 됐는데, 친구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처음엔 눈치를 챘거나, 다들 같은 단원이니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친구를 만졌죠. 친구는 부모님 집에서 불과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저를 집에 불렀습니다. 



루가지. 지도: Weather-Forecast.com

한번은 곳까지 공연을 가게 됐고, 끝나고 나니 시간이 많이 늦어 있었습니다. 친구는 비도 오고 자기 집이 가까우니 자고 가라고 했죠. 정말 고마운 제안이었습니다. 마음 속엔 많은 생각이 오갔습니다.


집에 도착하자 친구는 음식을 준비하며 제가 샤워할 물을 데워주었고,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 것도 도와줬습니다. 굉장히 상냥한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죠. 음식은 물론이고 많이 챙겨줬죠. 


저녁을 먹고나자 친구가 우리 둘의 관계에 대해 얘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입단할 때부터 좋아했다면서, 때부터 저와 사귀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더군요. 제가 친구를 만졌을 뿌리치지 않은 것도 때문이었습니다. 좋아했던 거죠.


너무 놀랐습니다. 친구가 제게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거든요. 이야기를 나누던 우리는 키스를 나누다 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도 친구가 말이 뇌리를 맴돌았고, 우리 사람에 대해 계속 생각했죠. 그러면서 우리는 댄스 리허설에 함께 가는 사이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다들 수근거렸지만 우린 별로 신경쓰지 않았어요. 서로 사랑했으니까요.


친구가 우리집에 놀러 오기도 했고, 저도 친구 집을 자주 찾았습니다. 단원들은 그런 우리 사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했는데, 특히 좋아하던 여자애들 명이 심했습니다. 여자애들한테 전혀 관심이 없었죠. 제게 다가와 심한 말을 내뱉기도 했습니다. 남자끼리 좋아하냐구요. 들은 했죠.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가 다른 단원들을 동성애 행위에 끌어들이고 있다는 얘기가 나돌았고, 우린 해고 당하고 말았습니다.


모아둔 돈이 거의 없어서 친구들에게 구걸하며 연명할 박에 없었습니다. 저나 파트너나 중학교 중퇴라 전에도 이런 생활을 보낸 적이 있었죠. 


부모님들도 가난하게 사셨기 때문에, 신세를 수는 없었습니다. 당신들도 근근히 먹고 사는데 우리까지 돌봐줄 없었죠.


사람들이 우릴 쫓거나 협박하는 일도 늘어났습니다. 끌려가지 않으려고 경찰에 뇌물을 바치기까지 했죠. 우리가 게이란 다들 알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그런 우리를 싫어한 아니지만, 해코지 당하는 두려워 우리가 다가가는 꺼려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어요.


마을에서 마을로 옮겨다녔지만, 새로 정착한 곳에서도 동성애자인 밝혀지면 쫓기듯 떠나야 했습니다.


이렇듯 우간다는 게이 커플이 살만한 곳이 됩니다. 한번은 제가 게이란 알고 있는 페이스북 친구가 제게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나이로비로 가라고 말이죠. 그곳에 가면 게이도 신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행복하게 있을 거라 했습니다.


2016 5 2, 우리 사람은 케냐로 떠났습니다. 그곳에 가면 평화롭게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도착해 보니 케냐도 우리한테 그리 안전한 곳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곳 사람들도 우리가 게이라는 이유로 못살게 굴었죠. 케냐에서도 평화롭게 자신을 숨기지 않고 살기란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다 유엔 난민 고등판무관과 HIAS라는 협력업체를 소개받게 됐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우리가 생활을 있도록 금전적인 도움을 줬어요. 케냐에서 우리 같은 우간다 게이들은 안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을 피하며 생활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HIAS에서 제공해 최소한의 도움으로 힘들게 생활하며 안전한 나라에 정착하게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곳이 어디가 될지는 모르지만요.


칼럼의 저자 사이먼 퀘시가보는 우간다 난민으로, 얼마전 케냐를 떠나 미국에 정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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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IN STEWART

- 옮긴이: 이승훈 


 


A Ugandan love story: Gay couple flees to Kenya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76 Cr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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