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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3




영국의 동성애 금지법이 50년 전에 폐지되었다는 근거 없는 주장에 빠져선




1967년 제정법의 경축을 앞두고 있는 영국, 하지만 법이 통과한 이후 국가는 반동성애법을 과격하게 적용시켰다. 




테이트의 퀴어 브리티시 아트 때 전시될 헨리 스코트 튜크(1858-1929)의 ‘비평가들(The Critics)’. 1967년 해방 이후로 수십년간 처벌받은 게이 남성은 15000명에 이른다. 사진: Warwick district council (Leamington Spa, UK)



오는 7 1967년도 성범죄법 50주년 맞아 테이트 미술관의 퀴어 브리티시 아트에서 BBC 게이 브리타니아 시즌에 이르기까지 기념 이벤트들이 기획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경축 분위기를 보고 있자면 그와는 상반된 기분이 들기도 한. 1967년은 분명 성과였지만 사실 영국에서 동성애가 합법화된 2013년이었. 1967년의 제정법은 시작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건 헨리 8 재위기간이었던 1533 항문성교가 법으로 금지 이래로 처음으로 이루어진 동성애 관련 법개정이다. 항문성교 이외에 남성간의 다른 성행위는 빅토리아 시대였던 1885 전면 금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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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필자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1967 해방 이후로도 최소한 15000 명의 게이 남성이 유죄판결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1967 법개정 때는 동성애가 부분적으로만 합법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동성애의 수용과 평등에 반대하던 국가는 다른 반동성애법을 예전보다도 과격하게 적용시켰다. 1885년부터 2013년까지 10만명에 가까운 남성들이 동성간의 성행위로 체포되었다고 한다. 


1967 제정법으로 항문성교 최고형인 종신형이 폐지되었다. 그러나 항문성교는 여전히 차별의 대상이었다. 남녀간의 성관계 승낙연령은 16세였던 데에 반해 남성간의 성관계 승낙연령은 21세로 책정되었다. 이러한 결정은 젊은이들이 연상의 남성들의 꾀임에 넘어가 더럽혀진다는 혐동성애적 개념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21 이상의 남성이 61-21세의 남성과 ()항문성교를 경우 처벌은 2년에서 5년으로 늘어났다.


동성간의 성교는 철저히 사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여전히 기소대상이었다. 철저히 사적인 공간이란 자택에서 문과 창문을 잠그고, 커튼도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어디에도 당사자 외에 다른 사람이 있어서는 된다. 이상의 남성이 성교하거나, 성교 장면을 3자가 사진이나 비디오로 담는 것도 범죄행위였다. 볼튼에서 일곱 명의 남성이 규정을 어겨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명이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이게 1998 일이다. 


1967년의 개혁은 영국과 웨일스에만 적용되었으며, 스코틀랜드는 1980, 북아일랜드는 1982년에 이르러서야 같은 조치가 이루어졌다. 여기에는 군대와 상선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 시설에서 남성간에 성행위는 여전히 불법이었다. 게이 군복무자와 상선 선원들은 민간에서는 이상 불법이 아닌 행위로 인해 1994년까지 처벌 받을 있었다. 동성애 행위로 인한 선원 해고 허용했던 법은 아직도 폐지되지 않고 있다. 


수세기나 반동성애법은 1967 이후로도자연에 어긋나는 범죄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법령집에 남아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동성애 범죄는 항문성교와 성추행이었다. 전자는 법률용어로 buggery라고 했고, 후자는 남성간의 성접촉 전반을 가리키는 것으로 만지거나 키스하는 것까지 포함되었다. 밖에 알선죄도 있었는데, 동성성교를 도모하거나 유인하는 행위가 해당되었다. 유인 간청도 법으로 금지되어 있어서, 실제로 성행위가 일어나지 않았다 해도 동성애적 의도를 가지고 공공장소에서 남성끼리 대화를 나누거나 어슬렁거리는 것만으로도 처벌대상이되었다.


1976 이전에도 이후에도 길거리에서 다른 남자를 보며 웃거나 윙크를 하는 것만으로 처벌받았다. 군경찰 조항법(1847), 교회재판소 재판권 (1860) 같은 구식법에 의한 체포도 여전히 이루어졌다. 



공원과 화장실에는 잠복경찰이 도사렸고, 일명예쁜 경찰 미끼로 이용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1967년의 비범죄화 덕분에 혐동성애적 법이 적용되지 않는 상황도 생겼지만, 게이 남성들의 대부분은 여전히 범죄로 치부되었고, 탄압은 오히려 이전보다 심해졌다.


공원과 화장실에는 잠복경찰이 도사렸고, 게이 남성들로 하여금 성범죄를 저지르게 하기 위해 일명예쁜 경찰 미끼로 이용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게이 사우나도 습격당했다. 동성커플들이 얼굴을 마주보며 춤을 있는 클럽들은매음굴이라는 이름하에 기소되었다. 이렇듯 게이, 양성애자 남성 그리고 일부 레즈비언들은 1990년대에 이르러서도 공공질서 유지라는 명목으로 공공장소에서 키스와 포옹과 같은 애정표시 행위를 하면 평화관련법을 위반했다며 연행되었다. 


부분적인 비범죄화가 이뤄지기 전인 1966 420 명의 남성이 성추행(gross indecency)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필자의 조사에 따르면 1974 해에만 유죄판결 회수가 300% 증가한 1711 건에 이르렀다. 


주택, 고용, 상품 서비스 제공 분야의 혐동성애적 차별도 2003~2007년까지 아무런 법적 보호장치 없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 사람들은 성적지향과 성별 정체성 때문에 취직을 거부당하거나 해고 당했고, 집을 빌리지 못하거나 살던 집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퍼브나 식당에서 쫓겨나는 경우도 있었고, 동성애자 부모는 이혼 소송에서 자녀 양육권을 잃었다. 이런 일을 당해도 법적 보상을 받을 길이 없었다. 


1980년대에 이르자 보수정권의가족의 가치캠페인이 히스테리에 가까운 동성애혐오를 불러일으켰고, 이러한 풍조는 도덕적 공황과 HIV/에이즈로 심화되었다. 1987 보수당 회의에서 기조연설자로 연단에 오른 마가렛 대처는 동성애자도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다는 개념을 공격했다.


이러한 비관용적인 분위기 속에서 게이 남성들의 검거도 대폭 증가했다. 합의에 의한 행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필자는 내무부에서 1989 해만 성범죄 관련 처벌 경고를 1718 건이나 찾아냈다. 기록된 성범죄 사건은 2,022 건으로, 이는 남성의 동성애가 전면 불법이었던 1954년의 2,034 건에 필적하는 수준이다. 


완벽한 개정은 1967년으로부터 36년이 지나서야 이루어졌다. 1885년에 제정된 성범죄법으로 1952 컴퓨터 천재 앨런 튜링에게 유죄가 선고되었고, 그보다 이전인 1895년에는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투옥되기도 했다. 법은 항문성교 금지법과 함께 2003년도 성범죄법 제정되면서 비로소 철폐되었다. 결과 영국과 웨일스는 470년만에 동성간의 성행위를 형법으로 금지하지 않게 되었다. 북아일랜드에서는 항문성교 금지법이 2008년에야 폐지되었고, 스코틀랜드의 반동성애법은 2009년에 철폐되었지만, 계간죄 폐지의 경우 2013년에야 비로소 시행되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영국에서 동성 성교가 범죄행위로 간주되지 않은 이제 겨우 4 밖에 되지 않았다. 




- Peter Tatchell

- 옮긴이: 이승훈




Don’t fall for the myth that it’s 50 years since we decriminalised homosexuality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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