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rss 아이콘 이미지

단수지폐(斷袖之嬖)

북미/캐나다 2012.11.28 19:55 Posted by mitr

The passion of the cut sleeves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FAB Magazine.




2012-11-27





기원전 27 년부터 서기 1 년까지 재위한 한나라의 젊은 통치자 애제(哀帝: 아이디)는 동현(董賢: 동시엔)과 사랑에 빠져 그에게 부와 무기를 주었고, 결국 그를 대사마(大司馬)=군대 최고사령관에 책봉하기에 이른다. 하루는 동현이 애제의 소매를 베고 잠든다. 황제는 먼저 일어나지만, 잠든 연인이 깨지 않도록 소매를 자른다. 이후 중국에서 '단수지폐(斷袖之嬖)=소매를 자르는 사랑'이라는 성어는 동성애를 지칭하게 되었다. 유교 교리에 바탕을 둔 중국역사에서 동성애는 커녕 이성애마저도 언급되는 일이 거의 없지만, 이 이야기는 중국에 동성관계의 전통이 얼마나 풍부했는지를 보여준다. 중국에는 대를 이어 조상을 받을어야 한다는 의무와 일정한 성별 역할이 장려되었지만 동성애자들의 죽음과 파멸을 명한 신은 없었다. 동성애는 최악의 경우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로맨틱하게 묘사되는 경우도 빈번했다.


19세기 중반 캐나다로 이야기를 돌리자. 당시 프레이저 계곡(Fraser Valley)의 골드러시를 좇아 중국 이민자들이 캘리포니아와 브리티시콜롬비아주로 몰려들었고, 이후 철도건설의 부족한 일손을 매우기 위해 중국인 남자들이 대량으로 동원되었다. 북미지역은 빈곤했던 중국보다 일거리를 찾기가 수월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돈을 모아 남자들을 해외로 보냈다. 처자식을 두고 떠난 이들은 이러한 이민을 일시적인 것으로 보았다. 이들은 현지문화에 동화할 노력을 하지 않고 고향의 전통과 사회관습을 미국과 캐나다로 가져왔다. 


이미 수세기 전부터 서양의 탐험가들은 중국을 소돔으로 묘사했다. 도미닉 페르난데스 나바레트(Dominic Fernandez Navarette)의 1665 년도 수필 'An Account of the Empire of China(역자가제: 중화제국 기술)'은 "중국에는 계간(sodomy)이 성행한다"며 [한나라 때] 수도 베이징에는 미소년들의 공창이 성행했었다"고 밝힌다. 19 세기 후반 사회순결운동이 극에 달하면서 중국의 동성애는 격렬한 인종주의와 동성애혐오증의 대상이 된다. 사회평론가 막스 노르다우(Max Nordau)는 '성적타락(degeneration)'을 도시화, 예술, 여성화에 의해 야기된 일종의 심리적 부패로 보았고, 유색인종, 비기독교신자, 창녀, 도박꾼, 동성애자, 및 빈곤층이 이러한 부패를 퍼뜨린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캐나다가 일손이 필요할 때면 이러한 '타락'의 요인들은 간과되었다. 초대수상인 맥도널드 경은 '이들 [중국인] 노동자를 들여오느냐, 아니면 철도를 건설하지 않느냐하는 선택의 문제'라고 했다. 

철도가 건설되자 정치적 정서가 이들로부터 등을 돌렸고, 이들 이민자를 면밀히 조사하기 위한 왕립 위원회가 설립되었다. 외부(중국, 인도, 퍼스트네이션)에서 도입된 것으로 간주되던 동성애는 뜨거운 주제로 부상했다. 미국 상인 토머스 킹(Thomas King)은 왕립 위원회에 "30-40 명의 소년들이 홍콩을 떠날 때는 건강상태가 양호했지만, 이곳에 당도할 때 항문이 성병에 감염되어 있어서 중국의사들에게 그 원인을 묻자 중국에서는 [계간행위가] 보편적이라고 했다"며 주장했고, 아일랜드의 상인 코넬리어스 마호니(Cornelius Mahony) 또한 이민자들 중에 여성이 부족한 현실을 원인으로 들었다. 

결국 캐나다정부의 왕립위원회는"성적타락(degeneracy)"을 원인으로 중국이민자들에게 천문학적인 요금을 부과하는 법을 제정했다. 이 부과금은 1923 년 중국인들의 이민이 금지될 때까지 천정부지로 솟았고, 이 법은 2차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시행되었다. 그 동안 이미 캐나다에 정착한 중국이민자들마저 모든 범죄에 있어서 불균형적인 형이 과해졌다. 당시 캐나다의 법원문서에는 '계간(sodomy)'이나 '성추행(gross indecenty)' 혐위를 찾아볼 수 없다. 그 예외가 있었는데, 1887 년 아호이(Ah Hoy)라는 남성이 "색정적(carnally known) 의도에 의한 폭행"으로 브리티시콜롬비아주의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빅토리아 시절의 이 법정용어는 아호이가 성인남성, 즉 단수지폐의 상대를 찾아다녔다는 것을 뜻한다. 




—Michael Ly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