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rss 아이콘 이미지

2017-06-09




흑인 논바이너리라는 이름의 정치반란





흑인 사회에는 젠더불순응이 자리가 거의 없지만, 내겐 구명줄과도 같다.





사진: belle ancell



나는 흑인이자 논바이너리다. 한편으론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지만, 다른 한편으론 정체성의 이런 조각들에 대해 이해하고 내세우게 최근에 이르러서였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보통분법으로 나뉜다. 흑인 아니면 백인, 동성애자 아니면 이성애자, 남자 아니면 여자 등등. 그리고 우린 대부분 자신과 그다지 상관이 없거나 심지어는 자신에게 해를 끼친다 해도 이런 분류 속에서 대인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도록 강요받는다. 하지만 오직 가지 선택만 주어지는 이런 분류는 혼혈이자 논바이너리 퀴어인 내가 공간을 주지 않는다. 나는 어린 시절 대부분을 혼혈이라는 사실 때문에 갈등하며 보냈다. 백인들과 어울리기엔 너무 검었고, 흑인들과 어울리기엔 검었기 때문이다. 유색인종에게 있어 인종문제는 끝없는 갈등거리지만, 나는 나름대로 나만의 방식으로 납득하고 수용하게 되었다.


반면 나의 성별 정체성은 아직도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우린 태어날 누구나 성별을 지정받는다. 그리고 순간부터 우린 성별에 따라 받아들여진다. 물론 시스젠더[각주:1]들에겐  문제가 없다. 본인의 성별 정체성이 지정 받은 성별과 일치한다는 특권을 누리며 살아가니까 말이다. 하지만 밖의 사람들에겐 보건, 교육, 대인관계 등등 일련의 불타는 링을 뛰어넘어야 한다. 


그나마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가 성별중립적인 양육을 옹호해 오던 분이라 행복한 편이었다. 엄마가 이런 표현에 동의할진 모르겠지만, 사회가 여자아이에게 거는 기대에 끼워맞추지 않는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만은 알고 계셨다.  엄마는 바비인형보다는 액션피겨를, 핑크 드레스보다는 츄리닝 바지를 좋아하는 성향을 부추겨 주셨다. 하지만 그렇듯 중학교 생활은 말도 되는 가부장주의로 꿀꺽 삼켜버렸고, 나는 12 때부터 마스카라를 하고 다리털을 밀기 시작했다. 내가 다녔던 지루한 영국 중학교는 여학생들한테 치마를 강요하면서도 다리를 어디까지만 드러내야 하는지, 구두는 닦고 다니는지, 남학생들의 주의를 끌지 않는 색깔의 브래지어를 차고 다니는지 일일이 검사하는 곳이었다. 


혼혈아로 자란다는 건 복잡한 경험이었다. 아버지 없이 자란 나는 대부분을 백인 가족들과 함께 지냈다. 나도 엄마처럼 혼혈(자메이카, 감비아, 백인 혼혈이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사실 나의 흑인 핏줄엔 크게 공감하지 않고 자랐다. 어릴 엄마한테 나도 백인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학교 선생님이 나더러 샤워할 얼굴에 진흙도 같이 씻어내라 했기 때문이다. 사소하지만 뚜렷한 인종차별적 발언 때문에 나는 내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세상은 나를 흑인계라고 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16살이 되어 국제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백인성에 둘러싸여 살아온 나는 피부색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그건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났는데, 화학제품으로 스트레이트 퍼머를 한다거나, ‘표준 영국영어 구사한다거나, 오로지영국인이라는 정체성만 가지고 산다거나, 심지어는 조별토론회 이민자 수용에 반대하는 한다는 식이었다. 때는 몰랐지만 자신을 이런 식으로 표백하는 자존감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다른 흑인이나 유색인종을 대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끼쳤다. 흑인들과 어울리며, 흑인 작가들의 글을 읽고, 흑인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흡수하며 이런 부분도 차차 바뀌어갔다. 하지만 복잡한 정체성 외에도 나는 내게 있어 성별과 퀴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두고 갈등하기 시작했다. 


나는 논바이너리로서 살아온 삶을 정치적 반란이라고 표현한다. (누구나 그런 아니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 이분법적 성별에 순응하지 않는다는 흑인여성을 억압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자신을 탐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흑인 사회에서는 젠더불순응이 자리가 별로 없다. 그건 흑인의 몸에 젠더화 또는 탈젠더화된 가능성이 없어서라기보다는 흑인성을 인지하는 방법 때문이라 있다. 이는 젠더를 스펙트럼이나 무수한 가능성으로 보기보다는 엄격한 이분법(남자 아니면 여자) 보는 데에서도 드러난다. 


역사를 통틀어 흑인의 몸은 백인우월주의를 거들기 위해 끊임없이 성별로 분류되어 왔다. 예를 들어보자. 식민주의와 노예제도를 통해 흑인여성의 몸은 정복당해 왔고 지금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노예제도 하에서 흑인은소유물이었기 때문에 인권같은 없었다. 따라서 흑인여성은 아무리 성폭행 당해도 신고할 수가 없었다. 마찬가지로 식민지 시대 때는 흑인여성의 강간과 지배가 침략과 식민지화의 도구로 이용되었다. 아프리카 여성은 물론 거북이섬[각주:2] 여성들까지 성추행은 학살의 도구로 쓰였다. 이들 여성의 용도는 육체노동 밖에 없었다. 흑인 사회를 성별로 분리시키는 것은 식민주의, 노예제도, 인종분리 정책 백인우월주의 프로젝트의성공 없어서는 안될 메카니즘이었던 것이다. 


젠더화된 ()흑인성은 역사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났다. 코이코이족 출신이었던 사라 바트만 1700년대 백인들의 구경꺼리로 이리저리 끌려다녔다. 백인들은 사라의 몸을 구경했다. 그녀의 엉덩이와 몸매는 너무 풍만해서 마르고 창백한 백인들의 미적기준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었다. 한편 2016년에는 패트리스 브라운 사진이 화제를 모았다. 4학년을 가르치는 교사 치고는 복장이 너무 부적절하다는 이유였는데, 사실 사람들이 지적하고 싶었던 그녀의 각선미였다. 사람들이 하려고 했던 말은 브라운의 ( 흑인 여성의 )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것이었다. 여성이 300년이라는 간격을 두고 똑같은 시선의 희생자가 되었다. 여성 모두 체형 때문에 과도하게 성애화되면서도 성적 주체성은 전혀 주어지지 않은 것이다. 


흑인에게 부과된 이러한 엄격한 성별역할은 해로운 선입관과 인식을 동반하게 되는데, 내가 이분법적인 성별을 거부하게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엇다. 실제로 이분법적인 성별은 여성과 여성성을 억압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흑인여성들을 극단화된 성차별이라고 하는 역설 속에 영원히 가둬놓기 위한 것이라 있다. 나는 앞으로도 흑인 여성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살아가겠지만, 정체성은 논바이너리이다. 


패트리스 브라운 때처럼 사람들은 몸과 화장, 스타일을 보자마자 추측과 판단의 잣대를 들이댈 것이다. 이러한 서사에서 결코 벗어날 없겠지만, 흑인여성에 대한 잣대를 거부함으로서 내부의 평화와 강인함을 유지할 수는 있을 것이다. 


애쉴리 섀클포드가 논바이너리 펨에 관한 유명한 에서 말이 있다. 검고 뚱뚱한 몸을 가진 탓에 연상의 남자들은 그녀를 과도하게 성애화해도 된다고 생각해 왔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흑인 여성성은 시끄럽고 강인하고 용감하며 공격적이라는 이유로 남성화되는 경우가 많다. 섀클포드는 이러한 경험 때문에 자신의 성별은 결코중성화 없을 거라고 하지만 (여성호칭을 쓰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논바이너리로 여기는 이유는이분법적 성별을 이행하는 데서 오는 엇갈린 신호와 절박함을 더이상 소화해낼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섀클포드는 결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젠더는 여정을 거쳐왔고, 깊은 트라우마를 안고 있으며, 저항의 세계를 품고 있다. 상대방이 성별을 짐작하기 전에 입으로 성별을 밝히는 행동 하나하나가 공동체의 역량인 것이다.“


섀클포드의 말은 줄곧 내게 영감의 원천이 되어 왔다. 섀클포드의 글을 읽으며 빼빼 마르고 중성적인 모습을 보이는 백인과는 다른 논바이너리의 경험을 처음 접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백인성 안에서 짜여진 것과는 다른, 논바이너리에 대한 나만의 이해를 구축할 있었다. 


사람들은 성별에 대한 구식 관점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논바이너리들의 목소리도 무시당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분법적 성별을 해체하는 것이 그러한 분류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이득이 되는 아니다. 이분법적 성별은 우리 모두, 특히 여성을 제한적이고 폭력적인 기준에 옭매기 위해 구축된 사회적 틀이라는 점에서 누구나 이러한 이분법에 맞설 있고 맞서야만 한다. 


성별 이분법( 해체) 흑인의 몸을 ()식민지화하는 있어서 근본적인 부분이다. 흑인 남자 아이들도 있고 나약할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흑인 남자 또한 과도한 범죄화와 포식성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흑인 남자아이도 낙인이나 동성애혐오 없이 여성스러울 있어야 하며, 흑인 여성 또한 무책임하거나래칫[각주:3]이라는 선입관 없이 편모가정을 꾸릴 있어야 한다. 흑인 여성도 이중잣대 하에 비난받는 없이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탐구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논바이너리는 실제로 존재하며, 우리는 다양하고 복잡한 경험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우리 흑인 논바이너리들은 자기 비식민화를 거칠 때에만 정체성을 진정 자신의 것으로 만들 있다. 사회는 기존과는 다른 흑인, 꺼벙하거나, 요상하거나, 퀴어하거나, 밖에 지금까지 우리에게 가해진 편협한 선입관에서 벗어난 흑인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흑인에게 가해지는 편협한 성별 역할은 노예제도와 식민지배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흑인 사회는 이러한 것들을 자기것으로 내면화시키기도 한다. 흑인 퀴어나 다원적 성별을 가진 이들이 다른 공동체를 이루거나 찾아나서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한편 내게 있어 Black Lives Matter 운동은 무조건적인 수용과 흑인 몸에 대한 긍정의 공간이다. Black Lives Matter 흑인 퀴어와 트랜스젠더 들에게 있어 사정없이 힘과 용기를 얻는 운동이라 있다. 웹사이트에는 운동의 최우선사항으로트랜스젠더 긍정퀴어 긍정 언급되어 있다. 나는 흑인 논바이너리로서 Black Lives Matter 밴쿠버 활동을 조직하며 정말 뿌듯한 경험을 있었다. 다른 시민권 운동과는 달리 여성, , 퀴어, 트랜스젠더 흑인들이 전면에 나설 있기 때문이다. 


21세기 흑인해방운동을 수용적이고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려면 성별 반란이 포함되어야 한다. 나는 정치의식의 살아있는 결정체다. 




- Cicely-Belle Blain

- 옮긴이: 이승훈




The political rebellion of being black and non-binary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Daily Xtra.












  1. Cisgender: 시스젠더란 트랜스젠더에 대응하는 용어로, 신체적 성과 사회적 성이 일치하는 경우를 말한다. 즉 시스 남자라고 하면 신체구조도 남자고 본인의 성별 정체성도 남자인 경우. [본문으로]
  2. Turtle Island: 북미대륙. 일부 북미 원주민들의 용어로, 원주민 인권 활동가들은 지금도 이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본문으로]
  3. ratchet: ‘저속한 빈민 흑인여성’ 또는 그런 언행, 문화를 가리키는 속어. [본문으로]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