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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8




게이라 행복하다: '데이빗은 동성애자다'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 




레이 크로슬리가 평생의 연인 윌프레드 애버리와의 사랑, 그리고 1976년 여름에 함께 제작했던 영화를 회상한다.




길거리에서: ‘데이빗은 동성애자다’ 촬영장면. 각본은 윌프레드 애버리(안경)가, 촬영은 데이브 벨튼(카메라 뒤)이 맡았다.



레이 크로슬리가 평생의 연인 윌프레드 애버리와 만난 것은 1966 소호의 유명한 술집 샐리스베리에서였다. “원나잇 스탠드로 만났는데 계획이 틀어진 거죠.” 1926년에 태어난 윌프레드는 화가였고 14 연하인 레이는 변호사였다. 사람의 관계는 1967 동성애가 부분적으로나마 비범죄화 때까지 1년 동안 불법이었다. 하지만 사람에겐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양가 가족들이 대단했죠. 문제 없이 우리를 반겨줬으니까요. 비록 밖에 있었지만, 해야 할일을 하며 일상 즐겼죠.”


사람은 현재 런던 블랙히스에 살고 있다. 윌프레드는 레이와 만난지 십년째 되던  ‘데이빗은 동성애자다(David Is Homosexual)라는 교육영상을 제작했다제목이 다소 퉁명스러우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영상물은 원래 레이의 권유로 가입한 사회정치운동 모임 동성애자 평등캠페인(CHE) 루이셤 지부를 위해 제작되었다고 한다. 동성애 금지법의 철폐가 기념비적인 사건이었지만, 인정을 받기 위한 투쟁이 태동하던 시대였다.


레이는우리 사람 모두 루이셤 활동에 굉장히 깊히 관여했었다 한다. 그가 행동주의에 뛰어들게 계기는 워버튼의 해고 케이스에 관여하면서부터였다. 런던 홀랜드 파크 종합 중등학교 교사였던 워버튼은 70년대초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해고당했다. “윌프레드는 CHE 가담할 생각이 전혀 없었을 거예요. 저는 나이도 어리고 정치에 대한 관심도 왕성한 편이었죠. CHE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곳이 점점 마음에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한테 아빠같은 존재가 됐죠.”


워버튼과 레이는 1976 하이드 파크 게이 프라이드 이벤트에서데이빗은 동성애자다 카메오로 출연한다. 플래카드 아래 누워 맥주를 마시는 두 사람은 ‘Glad To Be Gay’ 유명한 가수 로빈슨의 깜짝무대를 감상하고 있고, 뒤로는 CHE 루이셤 지국 건물이 보인다. 로빈슨의 당시 공연실황은 오직 영상에만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레이는 CHE 알파벳 그대로라고 발음한다. 마치 게바라의 이름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상징적이고 혁명적인 어감은 순전히 우연의 일치라고 한다. 



‘양가 가족들이 대단했죠.’ 레이(왼쪽)과 윌프레드, 레이의 부친. 1970년대 자택 뒷뜰에서.



데이빗은 동성애자다 1976 영국의 무더운 여름날 주말 시간을 이용해 촬영되었다. 필름도 비싸고 자금도 넉넉치 못했지만, 런던남부 동성애자 활동가들의 의욕만은 충만했다. 영화는 주인공 데이빗의 커밍아웃 경험담을 다루고 있는데, 사무직에 종사하는 데이빗은 억압된 삶을 살아왔고, 부모님은 TV 동성애자 인권행진 장면이 나올 때마다 욕설을 퍼붇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회사 파티장에서 홀로 앉아있는 데이빗은 취기가 이성커플이 화이트 와인으로 젖은 댄스플로어에서 키스를 나누는 장면을 바라보고 있다. 마침 Handbag 히트곡 When Will Things Change for the Better 흐른다. ( 곡의 저작권은 가수 사우스가 기부했다고 한다.) 데이빗은 CHE 대해 접하게 되고 용기를 내어 그곳에 전화를 걸기로 한다. 그리고 CHE 회의에서 자신의 짝을 찾으면서 시대 동화극은 해피엔딩을 맞는다. 


이 영화는 70년대 영국의 교외 풍경과 당시 동성애자들의 사고방식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실로 매력적이다. 시대가 시대다보니 영화에는 동성애자 이성애자를 막론하고 콧수염을 기른 사람들이 자주 등장한다. ‘데이빗은 동성애자다 1979년까지 전국투어를 하며 영상물로서는 보기드물게 오랜 기간 상영되었다. 기술대학교에서 가스수리공과 배관공 연수원들을 위해 상영회를 준비할 때는 견습생들이얘들아 조심하자[각주:1] 수근거리기도 했다. 영화를  보고난 견습생들은 호기심에 표정이었고 말투도 다소 부드러워졌다. 그 중 명이 “그럼 사람도 애인이에요?”하고 물었다. 정말 궁금해서 묻는 질문이었다. 영화는 <게이 뉴스> 표지에 실리기도 했다.


페크 감독도 프레드에게 영화를 보고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실제로 얼마후 이반영화의 고전 나이트 호크 무상으로 제작하기에 이르는데, 프레디 머큐리와 빌리지 피플이 이성애자라고 여겨지던 시절 동성간의 구애를 암울하게 묘사한 작품이었다. 


촬영은 31살의 런던내기로 잡지 시네월드의 아마추어 영상제작 콘테스트에 3 분량의 스케이트보드 안전수칙 영상을 출품해 1등을 차지한 데이브 벨튼이었다. 윌프레드는 어느날 CHE 회원들이 미팅장소로 쓰던 센터에서 데이브가 콘테스트에 대해 이야기하는 우연히 듣게 된다. 레이는 사람도 촬영을 맡고 싶겠지만 정식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닌데라고 했다. 하지만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게이 타임스: ‘데이빗은 동성애자다’ 촬영현장



올해로 71살인 데이브도 당시 샐리스베리를 드나들곤 했다. “ 게이신을 좋아하진 않았어요. 말튼지 5분만에 집으로 가는 분위기였. 바에 들어서는 순간 다들 달려드는 겁니다. 그냥 다른 게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 뿐인데 말이죠.” 그는 가끔 루이셤에 있는 캐슬이라는 곳을 찾곤 했다고 한다. “일반바를 지나 골목을 들어가면 안쪽에 게이바가 하나 있었죠. 친구가 필요했습니다.”


데이브는 낮에는 국방부에서 일했다. “직장을 밝힐 수가 없어서 삼중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계셨고, 어머니는 제가 게이인지 알았지만, 인정하기 싫어했죠. 입에 담지도 않았구요. 남자친구를 데려오는 건 괜찮았지만 자고 가는 됐습니다. 1976년엔 그랬어요. 직장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죠. 자칫 말했다간 해고당할테니까요.”


데이빗은 동성애자다 주인공처럼 데이브도 CHE 통해 사람들을 알아갔다. “지미 새빌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들어본 적은 있었어요. 동성애자라면 찾아가볼만 하다고 하더군요.”


CHE 여러 지부와 센터의 이성애자들이 나서준 덕분에 영화는 자선바자회를 있었지만, 실질적인 도움도 얻었다고 한다. 캐스팅은 CHE 회원들이 맡았다. 데이브는영화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은 프론트카메라에서 백카메라에 이르기까지 전부 동성애자였다 한다. “동성애 혐오자, 데이빗의 부모님을 제외하곤 퍼브의 손님들, 스텝들까지 전부 게이였죠. 유일하게 확실하지 않은 뿐이었구요.”


윌프레드와 데이브는 오프닝 시퀀스의 촬영법을 두고 고심했다. 데이빗이 알고 지내던 레즈비언으로부터 소개받은 일을 하기 위해 슬픈 표정으로 런던 거리를 걸어가는 장면이었다.


전문가들은 트래커나 돌리 같은 장비를 쓰는데 우리한텐 그런게 없었거든요. 레즈비언 친구가 자기들한테 트럭이 있으니 거기다 저와 삼각대를 묶으면 어떻겠냐더군요. 첫장면을 자세히 보면 데이빗 창문으로 제가 트럭에 묶여 촬영하는 장면이 살짝 비칩니다.”


데이브는 영화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들이 얘긴 알았거든요.” 그는 지금 돌이켜보면 실제로 스토리의 많은 부분이 자신의 경우와 일치했다고 한다. 레이도그땐 다들 비슷한 경험을 했다 고개를 끄덕거렸다.


윌프레드는 게이 영화에도 러브신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데이브는침대에서 키스하는 장면에 주의가 많이 필요했다 한다. “자칫했다간 포르노의 한 장면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싶더군요.” 모든 신은 50fm Agfa 필름 카트리지로 찍어 프로세싱에 맡겼다. “그러다 필름이 하나 없어지면 양식을 작성해야 하는데, 필름 내용이 뭔지도 적어야 했죠. 그래야 Agfa에서도 찾을 있으니까요. 러브신 첫장면을 찍고나니 저나 윌프레드나 걱정이 되더라구요. Agfa 쪽에 남자끼리 키스하는 장면이라고 했다간 성인영화가 아니라고 해도 다른 필름까지 전부 몰수해갈 뻔했거든요. 그래서 침대 장면을 다시 찍어서 편집을 하고 있는데, 마침 오리지널 필름이 다구겨진 봉투에 담겨서 도착한 겁니다. 누가 여러번 같더라구요. 그게 누군진 없지만.”


2015 데이브 벨튼은 35년만에 처음으로데이빗은 동성애자다 떠올렸다. “심장이 안좋았는데, 영화를 윗층 다락방에 보관해 기억이 나더군요. 이걸 누구한테 전해주지 하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조카한테 페이스북으로 사람들을 검색해보라고 했는데, 제작진 중에 절반은 성도 생각이 안나더라구요. 40년이나 됐으니 기억이 날만도 하죠.”


2016 90 생일을 맞은 윌프레드는 이틀 별세했다. 레이는 사람이 “50년을 함께 했다 한다. “비극이라고 생각하면, 사람들이 그래도 언제 좋은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하겠죠.”


그로부터 6개월 레이는 피터 스콧 프레스트랜드라는 CHE 역사기록 담당자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살다보면 예기치 못한 일들이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일어나는 같아요. 여전히 슬퍼하고 있었지만, 연락을 받고 무척 기뻤죠. 윌프레드와 종종 필름은 어떻게 됐을까하고 궁금해하곤 했거든요.”


스콧 프레스트랜드는 영상을 영국영화협회에 보냈고, 그곳에서 데이브의 오리지널 필름과 아웃테이크는 손질을 거치고 디지털화된 보관되었다. 그리고 일상을 담은 신나는 영화는 센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상영된다고 한다. 


얼마전 데이브 벨튼은 이스트번에서 레이 크로슬리와 몇십년만에 만나 함께 작품을 감상했다고 한다. 사람은일주일에 정도 이메일이나 전화로 연락은 주고 받았다, 당시 영화 제작에 참가했던 다른 사람들과도 연락이 닿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주인공이었던 데이빗은 건축가로 일하다가 지금은 은퇴하고 호주 멜버른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제작진은 기억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다들 연락을 하고 지냈더라면 좋았을텐데. 윌프레드도 함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이디어, 대본, 감독 전부 윌프레드가 맡았죠. 별로 일이 없었어요.”


그때 레이가 끼어들었다. “데이브, 그렇게 자신을 깎아 내리려고 ? 윌프레드가 없었다면 자네도 일을 못했겠지만, 윌프레드도 자네가 없었다면 일을 못했을 거야.”


데이빗은 동성애자다 제작에 참여하신 분들이 계시면  david.is.homosexual@outlook.com으로 연락 바랍니다.




- Paul Flynn

- 옮긴이: 이승훈




Glad to be gay: the story of the filming of David Is Homosexual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1. backs to the wall: 막다른 궁지에 몰렸다는 뜻이지만, 게이가 다가오니 조심하라는 뜻의 속어로 쓰이기도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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