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rss 아이콘 이미지

2017-06-20




LGBT: 샌프란시스코 - 사진으로 보는 카스트로의 문화





다니엘 니콜레타(Daniel Nocoletta)는 40년전 하비 밀크의 당선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던 사진작가다. 그는 밀크의 암살사건 이후에도 활기를 잃지 않은 퀴어 공동체를 계속해서 사진에 담아왔다.






다니엘 니콜레타가 샌프란시스코에 19 때였다. 젊고 동성애자였던 그는 자기혐오감으로 가득했다. 때는 1974, 카스트로는 오늘날 우리에게 친숙한 LGBT 메카로 서서히 변모하고 있었다. 다니엘은 카스트로 카메라에서 불과 블럭 떨어진 곳에 방을 얻었다. 카스트로 카메라라는 가게는 훗날 커밍아웃 동성애자로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공직에 당선됐던 하비 밀크가 캠페인 본부로 활용했던 곳이었다. 니콜레타도 이곳에서 필름을 사서 현상했고, 그러면서 동지와 정치의식 그리고 사명을 찾게 되었다.



하모디어스와 호티. 2075년 8월 카스트로 길거리 축제에서. 사진: Daniel Nicoletta


다니엘은 하비 밀크와 파트너 스콧 스미스를 회상하며정말 사람들과 어울리는 좋아해했다이었다고 한다. “다들 너무 다정해서 매료될 정도였죠.” 사실 너무 매료된 나머지 상대방이 작업을 거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웃으며그만큼 아는 아무것도 없었다 한다. “동성애자들에게 친근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죠. 카톨릭 사이에서 겪은 갈등도 많았구요. 심약한 편이었는데, 갑자기 LGBT들한테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 속에서 서로 끌어안고 키스하는 환경에 놓인 겁니다. 저도 곧바로 자기혐오감을 벗어던졌죠.”



디셈버 라이트(중앙)과 친구들. 1976년 카스트로 거리축제에서. 사진: Daniel Nicoletta



그로부터 일년 다니엘은 카스트로 카메라에 취직해 사진작가로서 기술을 연마하게 된다. 그는 밀크가 공직에 당선되기 위한 투쟁을 기록했는데, 그가 찍은 하비 사진에는 유명한 것들이 많다. 다니엘은 하비를 멘토이자 게이 아빠로 여겼다. 하비의 사진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 카스트로 카메라 앞에서 휘날리는 넥타이 차림으로 함박웃음을 지으며 찍은 것인데 이것도 다니엘의 작품이었다. 그로부터 일년후 밀크가 동료 시의원 화이트에 의해 암살당했을 때에도 다니엘은 비탄과 분노로 가득찬 카스트로 현장에 있었다. 그때부터 그는 줄곧 동성애자 공동체를 렌즈에 담아 왔다.



아난다 조노플러스와 타하라(빛의 천사들). 1977년 카스트로 거리축제에서. 사진: Daniel Nicoletta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지금 니콜레타의 사진집이 드디어 발간되었다. LGBT: San Francisco 샌프란시스코의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들을 쾌활하면서도 가슴저미며 때로는 침울한 톤으로 담아낸 뛰어난 문헌집이다. 또한 동성애자 인권의 기념이자 가시화임과 동시에 그러한 인권이 성취된지 얼마 되지 않으며 아직도 취약하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작품이며, 행동을 촉구하는 호소이기도 하다. 다니엘은 책을 통해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 희망을 표현하는 방법은 행동을 취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한다.



카스트로 거리축제. 1976년경. 사진: Daniel Nicoletta



지난 수십년 동안 카스트로에서 다니엘이 카메라로 담지 않은 이벤트, 역사적인 순간, 시위, 항쟁, 콧수염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훌륭한 르포르타쥬가 으레 그렇듯 다니엘의 작품도 밀크의 유세활동 사진 외에도 거스 샌트의 전기영화 밀크에서 쓰인 스틸컷에 이르기까지 운동 전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니엘은 영화에도 사진사, 컨설턴트, 배우로 참가했다고 한다. 그밖에도 무수한 카스트로 거리축제, 자긍심 행진, 드래그퀸과 킹들, 크루징, 아미스테드 북런치, 급진파 요정들과 퀴어코어 아티스트들, 화이트나이트 항쟁과 에이즈 추모행사, 검열반대 데모와 결혼평등 시위 사진들도 있다. 실베스터, 디바인,  그레이스 존스, 앨런 긴즈버그 등은 물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LGBT들도 이곳을 거쳐갔다.

 




그럼 다니엘 자신이 가장 아끼는 사진은 어느 작품일까? “해변가에서 밀크가 삐에로 분장을 사진이 있어요.” 하비가 살해당하기 불과 6개월전인 1978 5 찍은 모노크롬 사진이다. “정신병원 기금마련회였는데, 행글라이더들이 있길래, 나가서 친해져 보기로 했죠. 사진은 우연히 찍은 거구요. 그렇듯 사진에서도 하비는 서투른 배우 흉내를 내고 있어요. 운이 좋았죠. 하비가 제게 선물이라 생각해요.”



클럽 카오스와 클럽스티튜트 장식차량. 1989년 6월 25일 샌프란시스코 프라이드에서. 사진: Daniel Nicoletta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동안 카스트로는 얼마나 극적으로 변화했을까? “지금은 급진주의가 살아남기 힘든 환경이 같아요. 그래도 아예 없는 아니죠. 70년대 처럼 동전 푼으로 살아남을 없지만, 중심엔 LGBT들이 모이는 게토로서의 역할은 있는 같아요. 앞으로도 성지로 남겠죠. 지금도 뉴어크 같은 곳에서 당도한 게이 청소년들한테는 정말 눈부신 곳이예요. 젊은이들이 다시 샌프란시스코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죠. 도시는 죽지 않아요. 트럼프 시대에도 끄떡없죠.”



카스트로 거리축제. 1977년. 사진: Daniel Nicoletta



니콜레타도 예전같지 않다. 그는 더이상 최전선에 서서 LGBT들의 삶을 기록하지 않는다. “얼마전에 뉴욕의 머메이드 퍼레이드를 찍으러 갔다가 죽는 알았습니다. 아직도 허리가 뻐근해요.” 그는 3년전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오레건의 시골에서 오랜 연인과 함께 전원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럼 지금은 어떤 사진을 찍고 있을까? “경력은 숨기지 못하는 법이더라구요. 동네 퀴어들이 찾아냈죠. 얼마전에 친구들과 퀴어 캠프에 가서 사진을 찍었는데, 정말 생애 최고의 날을 보냈습니다.”


‘LGBT: San Francisco’(Reel Art Press, £40). bookshop.theguardian.com




- Chitra Ramaswamy

- 옮긴이: 이승훈




LGBT: San Francisco – the culture of the Castro, in pictures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