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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6




나는 1972년부터 매년 프라이드에 참가해 왔다. 오늘날의 프라이드는 해방이 필요하다. 




기업의 PR차량, 가혹한 규칙과 비용으로 한때 파티 분위기의 정치 행진이었던 프라이드의 핵심을 망치고 있다. 이젠 원점으로 돌아갈 때다.


* 피터 태첼은 인권운동가입니다.




2015년도 런던 프라이드. 사진: NurPhoto via Getty Images



LGBT 프라이드는 길을 잃은 걸까? 토요일 런던 프라이드 앞두고 이러한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1972 동성애자 인권시위 시작한 프라이드 행진은 어느덧 LGBT 공동체보다 시당국의 바람을 충실히 반영하는 상업적이고 요식적이며 규칙에 얽매인 행사가 되어버렸다.


주최측인 프라이드 런던이 엄청난 제재와 혹독한 비용을 강요당하며 행사를 운영해 생각하면 감탄스럽기까지 하다. 이러한 부담음 런던시장, 웨스트민스터 의회, 런던 경시청이 가한 것으로, 행진 참가자는 26,500명으로 제한되고 있다. 만약 프라이드 행진이 누구나 함께할 있는 행사라면 숫자는 참가자수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현재 LGBT 단체들은 석달 전에 신청을 해야 하며, 참가비를 지불하고 모든 참가자들에게 손목밴드를 배부해야 한다. 이렇듯 행진은 대오를 맞추고 상품화되어 구속당하고 있다. 또한 시당국은 도로봉쇄, 차단물, 치안 등의 명목으로 가혹한 비용을 요구하고 있다. 시는 행진의 규모가 커지면 치안상의 우려도 있고, 런던 중심부 상업가에 미칠 영향도 것이라고 한다. 결국 상업보다 중요한 없고, 프라이드가 돈벌이에 방해가 되어서는 된다는 것이다. 이들의 변명은 말이 되지 않는다. 긴축반대시위처럼 프라이드보다 훨씬 정치적 행진도 있다. 이들은 프라이드에 가해지는 어떤 비용도 청구받지 않으며, 치안문제 또한 거론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프라이드보다 배는 노팅힐 카니발에는 인원수 제한도 없다. 


2015년도 런던 프라이드. 사진: NurPhoto via Getty Images

하지만 프라이드 운영위원회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 속에서 지칠 모르고 활동하고 있다. 증원이 불가능한 아니지만 그러려면 시의회와 경찰측에 맏개한 현금을 안겨줘야 한다. 웨스트민스터 의회는 LGBT 공동체가 거리를 사용할 민주적 권리에는 금전적인 댓가가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웨스트민스터 의회는 그것도 모자라 주차공간 설치비까지 요구하고 있다. 하이드 파크의 사용을 허락하지 않는 왕립공원 측도 다를 없다. 


20 전에 비해 프라이드는 단순화해졌으며, 그냥 대형 거리축제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대형기업은 프라이드를 LGBT 소비자들에게 다가갈 PR 기회 정도로 여긴다. LGBT 평등권이 추구하는 이상은 눈에 띄지도 않는다. 작년 행진에는 LGBT 인권 관련 메시지를 들고 참가한 단체가 10 밖에 되지 않았다.


프라이드 런던은 세계에서 가장 프라이드 행사라는 얘기를 종종 듣는데 이건 사실이 아니다. 런던 프라이드는 유럽의 다른 주요도시들에 비해 소규모 행사에 지나지 않으며, 베를린, 파리, 암스테르담, 마드리드에도 뒤쳐져 있다. 상파울루 프라이드에는 3백만 명의 인파가 몰린다고 한다. 반면 런던 프라이드의 행진 참가자는 26,500 명이 고작이다. 거기에다 트라팔가 광장의 구경꾼이 2 , 소호에 몰리는 인파가 9 명이다. 그걸 합쳐도 216,500 명으로 런던시가 주장하는 백만 명에는 훨씬 미치지 못한다.


이건 초창기 런던 프라이드보다도 작은 규모다. 1997년에는 백만 이상이 행진에 참가했고, 클래펌 공원에서 열린 행진 뒷풀이 축제에는 30 명이 모였다. 물론 행진이 프라이드의 전부는 아니다. 콘서트에서, 영화제, 스포츠 이벤트, 전시회, 좌담회 , 프라이드를 전후해 2주일 동안 100 개의 행사가 치러진다. 이들 행사는 뛰어난 자원봉사자들이 보수 없이 뛰어주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이다. 기업의 후원도 필요하다. 행진과 축제는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의 입김이 너무 강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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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드가 길을 잃은 , 운영위원회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시당국에도 맞서지 않은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이젠 영국 최초의 프라이드가 지녔던 해방의 정신을 되돌릴 때가 되지 않았을까? 나는 1 때부터 매년 빠지지 않고 런던 프라이드 행진에 참가해 왔는데, 올해로 어느덧 46회째를 맞는다. 


1972년도 프라이드는 정치적이면서도 신나는 자리였다. 오늘날처럼 프라이드의 목을 옭죄는 어떠한 제재도, 비용도 관료주의도 없었다. 다시 프라이드의 중심에 해방을 두자. 원점으로 돌아가 프라이드를 사람수의 제한도, 장식차량도 없는 신나는 축제 분위기의 정치적 행진으로 되돌리자. 그렇게 해도 멋드러진 축제 분위기를 충분히 연출할 있다. 1972년에 가능했던 일이 지금이라고 불가능하란 법이 있을까?




- Peter Tatchell

- 옮긴이: 이승훈




I’ve marched in every Pride London since 1972. Today, it needs liberating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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