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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4




50년대 영국을 뒤흔들며 동성애자 인권에 변화를 초래했던 와일드블러드 스캔들



이 사건에는 귀족, 공군, 잠복근무, 면책 등, 없는 게 없었다. 그리고 피고였던 한 게이 남성이 침묵을 거부하는데... 애덤 마스-존스가 피터 와일드블러드의 대범함이 보다 관용적인 영국을 이끌어낸 과정에 대해 알아보았다.



당시 사건을 보도한 <데일리 미러> 일면기사. 사진: Daily Mirror




와일드블러드 사건은 오스카 와일드 케이스보다는 선정적이었지만, 그만큼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 사건이다. 피터 와일드블러드(Peter Wildeblood). 그의 시련(1954 볼리외 몬태규경마이클 피트-리버스와 함께 유죄판결을 받았었다)은 1895 오스카 와일드의 투옥 사건으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일어난 사건이었고, 또 그만큼 세월이 흘렀. 단, 와일드와 와일드블러드의 치욕적인 삶에 차이가 있다면 출소후 사람의 행보일 것이다. 


와일드블러드는 자신이 출소하면 오스카 와일드가 그랬던 것처럼 자취를 감추거나 외국에 가서 거라는 교도관과 다른 사람들의 악의없는 추측에 화를 내곤 했다. 그는 출소 후로도 예전 삶을 그대로 이어갈 생각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예전삶과 다른 점이 있다면 출소후 개혁주의자가 되었다는 점이다. 와일드블러드는 기자였지만 행동주의에는 관심이 거의 없었다. (체포 당시 그는 <데일리 메일>지의 외교부 특파원이었다.) 그런 그가 새로운 화두 찾았고, 그가 출소한 해인 1955 회고록 ‘Against the Law(법에 맞서다)’ 출판되었다. 제목에는 가지 의미가 숨어 있었는데, 초판 표지에서는희생양이라는 단어에 가려져 숨은 뜻이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는 하드커버를 이용한 마케팅이 후일 재판(再版) 사용되었던 페이퍼백보다 선정적인 때였다. 이중적 의미는 ‘against’라는 단어 숨어 있었는데, 감옥에 가기 그의 활동은 법에 저촉될 만한 것이 없었지만, 출소 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영국 섹스 스캔들이 계급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는 새삼 놀랄 일이 아니지만, 와일드블러드의 경우에서도 여러 측면에서 계급적인 요소가 드러났다. 이 사건의 핵심은 상류층, 그것도 몬태규 경이 단도직입적으로 박해의 표적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사건은 굉장히 선별적이었다. 에드워드 맥낼리와 레이놀즈라는 항공병은 유죄를 입증하는 증언과 함께 스무 명이 넘는 섹스 파트너의 명단을 제공한 덕분에 면책을 받을 있었는데, 명단에 오른 남성들도 기소되지 않았다. (맥낼리와 레이놀즈가 이들 남성으로부터 유혹을 받았다는 암시는 전혀 없었으며 사람도 자의에 의해 성행위에 가담했었다.) 이러한 조치에는 사회적 특권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동성애란 원래 귀족층의 변태행위 여가활동이라는 인식을 재각인시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교도소에서. 동명 회고록을 바탕으로 제작한 BBC 드라마 ‘Against the Law’에서 와일드블러드 역을 맡은 다니엘 메이스. 사진: Dean Rogers/BBC



와일드블러드는 회고록에서 저명한 동성애자를 박해한 들을 정부요직에서 배제시켜야 한다는 미국 측의 강력한 요구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맥카시의 적색공포에라벤더 공포 더해져 동성애자들이 공무원직에서 대거 해고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배경에는 버제스와 맥클린의 사건이 있었는데, 이들 스파이의 배신으로 사회적 특권과 동성애 매국은 땔래야 없는 삼위일체로 여겨지게 되었다. 재판에서는 자신과 다른 계급에서연애상대 찾는 것이 게이들의 특징이며, 맥낼리는 와일드블러드보다 출신배경이 훨씬 낮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와일드블러드는 전시에 자신이 사귄 지인들이 사회적으로 열등하다는 생각은 번도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공군에 복무했었다.) 책에도 나와 있듯, 전쟁은 배타적인 교육을 받아온 그에게 사회적 수용이 어떤 것인지 느낄 있는 기회였다. 동료들은 와일드블러드가 훈련에 소질이 없는 것을 보고 그런 그를 감싸주었다고 한다. 와일드블러드는 누구나 친구를 고를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와일드블러드는 변호인단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었는지, 아더 프로더로에 대해남자에게 있어 최상의 동무는 바로 자신의 변호사라는 말을 남겼다. 아더는 와일드블러드가 법정에서 추위에 떨다가 겁에 질린 것처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내복을 빌려줬다. 권위주의에 반대했던 아더는 결코 평범한 변호사가 아니었고, 1950년대에만 해도 그와 같은 변호사는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더는 필자의 가족과도 알고 지내던 사이(필자가 가깝게 지낸 올해 6 6 101 생일 이튿날에 별세한 그의 동생이었다)였는데, 아더의 성향은 그의 가족환경과 무관하지 않았던 하다. 부친은 런던경시청의 “5대형사 명이었지만, 아더 자신은 못된 짓만 골라 했다고 한다. 소시적 그는 외설적인 나이트클럽에 드나들곤 했는데 직원들에게 자신이 누구 아들인지 알렸고, 현관 바로 좌석에 앉아 음식과 술을 무한대로 대접받았다. 그러다 경찰이 습격해도 그를 보곤 섣불리 소동을 피우지 못했다고 한다. 


한편 부친은 자식들에게 법을 공부하도록 했고, 실제로 아들과 도로시 모두 법조계에 진출했다. 단 아더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변호사가 되었지만 법정에서 경찰이 제시한 증거에 서슴없이 의문을 제기하는   반항끼는 여전했. 피터 롤린슨이라는 변호사는예선로 살인사건 계기로 와일드 블러드의 변호인단에 가담하게 되었는데, 사건에서 허버트 해넘 강력계 형사가 제시한 증거 대부분에 강한 의심을 품고 있던 아더 프로더로는 아직 신참 변호사였던 롤린슨을 설득해 이틀동안 해넘 형사를 철저하게 반대심문하도록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이러한 반대심문은 논란의 소지가 많은 행동이었다. 사건에서는 피고인 알프레드 찰스 화이트웨이의 차에서 피묻은 도끼가 발견되었지만 증거물이 사라져버렸다. ( 경찰이 나무를 베려고 도끼를 집에 가져간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피고인은 유죄판결을 받고 교수형에 처해졌다. 당시 판결에는 오심이 없었지만 와일드블러드는 경찰의 수사과정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변호인단을 원치 않았다. 경찰이 게이들을 불성실하게 다루는 런던에서 비일비재했고, 부주의한 이들이 함정수사에 걸려들곤 했다. 실제로 경찰이 몬태규 경을 위선자로 보이게 하기 위해 그의 여권에 찍힌 날짜를 변경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남자에게 있어 최상의 동무는 바로 자신의 변호사’. (왼쪽부터) 마이클 피트-리버스, 몬태규 경, 피터 와일드블러드가 법정을 나서고 있다. 1954년. 사진: Keystone/Getty



그런데 피터 와일드블러드가 법정에서 자신의 성적지향을 밝히기로 결심한 때문에 대부분의 변호사가 꺼려하던 케이스에 아더 프로더로가 뛰어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또한 부친에 대한 반항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경감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1928 'The Well of Loneliness'[각주:1] 재판 증언대에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는 래드클리프 홀이 소설의 제목 자체가 모욕적이라고 증언했고, 재판관은 책을 모조리 파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만약 아더가 동성애에 대한 세대 인식의 변화를 부각시키고 싶었다면 신문일면감이었던 사건만큼이나 명백하고 공개적인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한편 60년대로 대변되는 또다른 인식 변화가 있었으니, 이러한 인식변화는 재판 마지막날 여실히 드러났다. 유죄판결을 받은 이들의 송치가 지연되었는데 당사자들은 이유를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오스카 와일드가 클래펌 역에서 겪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판결이 나 며칠 낮선 사람(“트위드와 중절모 차림의 점잖아 보이는 중년”) 와일드블러드에게 침을 뱉는 해프닝이 있었다. 그런데 판결 당일 군중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달려들었다. 2백여 명의 군중은 법정을 나서는 맥낼리와 레이놀즈에게 야유와 조롱을 쏟아부은 것이다. 대부분 여성으로 이루어진 이들은 죄인들을 호송하던 차량(구식 롤스로이스) 에워쌌고, 박수를 보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보이는가 하면울지마라는 플래카드를 치켜드는 , 죄수들에게 질타가 아닌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동성애자들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와일드블러드의 케이스에서 새롭게 등장한 요소였는데, 이 점은 와일드블러드의 회고록에도 본문이 시작되기  (대문자로 씌여진) TO MY MOTHER AND FATHER라는 문구에 반영되어 있다 되어 있다. 물론 동성애자라고 무조건 가족의 버림을 받는 아니었으며, 가족의 지지를 받는 이들도 있었다. 새로운 점은 이러한 지지가 대중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이었다. 이는 영국의 윤리관을 영원히 감싸고 있을 것만 같았던 불명예라는 부식성 안개가 옅어지고 있음을, 그리고 언젠가는 완전히 걷힐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시사하는 사건이었다. 


와일드블러드의 회고록Against the Law’ 동성애자 시민권 운동을 선동하는 한편, 감옥 실정을 고발한 책이기도 했다. 실제로 와일드블러드는 출소후 범죄자들의 재활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재범과 옥살이의 악순환을 끊고자 했다. 그의 재활 프로젝트 활동은 성적지향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동성애자가 별개의 인종이 아니라는 새로운 개념이 주는 특권에는 의무가 따른다는 점을 또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하드커버와 페이퍼백의 출판은 거의 별개의 프로젝트로 여겨질 만큼 순조로운 조율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펭귄에서Against the Law 출판할 때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와일드블러드가 아직 감옥에 있을 울픈든 위원회가 설립되었다. 위원회는 동성애와 매춘에 관련된 법을 검토하고 필요할 시에 개정을 권고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이었다. 사실 와일드블러드와 사회적으로 명망이 높았던 다른 피고인들이 유죄판결을 받자 이러한 위원회를 설립할 필요성이 절실해졌고, 와일드블러드도 위원회에 증거를 제시하기도 했다. 'Against the Law' 하드커버는 1957 초에 출판되었는데, 위원회가 보고서를 발표한 같은해 말이었다. 



일각에서는 회고록이 저렴한 가격에 널리 유포된다면 위험성도 높아질 거라는 견해가 끊이지 않았다. 파멜라 핸스포드 존슨의 저서 'On Iniquity(부당성에 대해)' 동성애가 부분적으로나마 인정을 받은 1967년에 출판되었는데, 책에는 "무어스 살인사건 재판을 통한 개인적인 고찰"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다.  책에는 "가디언지에 보낸 서신을 통해 크라프트-에빙(그의 저서 'Psychopathia Sexualis(성적 정신병리)' 진지한 연구서로 나온 서적이었다) 가격을 내려 영국 기차역에서 누구나 있도록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주장을 했다가 소소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대목이 나오는데, 여기서도 계급 의식을 엿볼 있다. 이러한 계급 의식은 1960년에 있었던 채털리 부인의 연인 재판(피고는 펭귄 출판사였다)에서도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배심원들 앞에서 부인이나 하인이 이런 책을 접하는 것을 "여러분" 원치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시되었는데, "여러분" 보호받을 필요가 없지만 다른 사람들은 보호받아 마땅하다는 것이. 


물론 와일드블러드는 자신의 책이 저렴한 가격에 널리 읽히기를 바랐다. 그가 형사판결을 사회적 범주로 분해해 가며 보여주고 싶었던 것도 바로 동성애는 계급간의 경계선을 뛰어넘는다는 점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남들도 자신과 다를 없다는 깨닫게 하려면 기차역에서 누구나 값에 있는 책이 필요했다. 


한편 펭귄 측에 판권을 조지 와이든펠드는 페이퍼백에 초판 발행자로 와이든펠드 & 니콜슨이라는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것을 알고 굴욕감을 느꼈다고 한다. 와이든펠드의 출판사는 1949년부터 영업해 왔지만 펭귄에게 판권을 이번이 처음이었다 때문에 굴욕감도 더했다. ( 회사 간의 서신 교환은 브리스톨 대학의 펭귄 문헌집에 보관되어 있다.) 와이든펠드는 당연히 당시 관행대로 자사의 이름이 실릴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굉장히 상했다" 한다. "명망 높은 펭귄사의 책에 이름이 실린다는 다른 재판 인쇄소들과 차별을 두는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요건입니다." 펭귄사의 평판을 찬양한 후에 등장하는 "재판 인쇄소"라는 표현에는 거만하면서도 어딘가 가시가 돋힌 듯한 어감이 있다. 마치 페이퍼백 출판사가 다른 사람이 책에 너무 과한 언급을 요구한다는 듯이 말이다. 



불명예라는 이름의 안개... 법에 맞서다. 사진: Dean Rogers / BBC



그런데 펭귄사는 책을 캠페인의 소재로 삼을 자원도 의지도 갖추고 있었다. 1958 11 파티석상에서 펭귄사의 사장이던 앨런 레인 경이 와일드블러드에게 마침 의회에서 관련 토론이 예정되어 있다며 현직 의원들 앞으로 'Against the Law' 권씩 보내자고 제안했다. 펭귄 문헌에 따르면 의원들에게 책을 보내는 것도, 그로부터 일년후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출판하기로 것도 전부 레인의 발상이었다고 한다. 와일드블러드는 책을 보낼 자신보다는 레인의 편지를 동봉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했고, 레인도 이에 동의했다. 따라서 와일드블러드는 편지 내용을 최종 승인했을 , 직접 쓰지는 않은 것이다. 클릭 하나로 대량의 메일을 보낼 있는 요즘 시대에서는 600번이나 서명하는 일이 대수롭지 않은 정치적 행동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직접 해보길 바란다. 게다가 당시는 법이 바뀌기 10년전이었다. 


레인은 ‘Against the Law’ 후속작인 ‘A Way of Life’ 예전 소설 편도 보고 싶어했지만, 판권을 얻지는 못했다. 특히 ‘A Way of Life’ 경우 사적인 내용이 전작보다 스스럼없이 공개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쉬움은 했다. 동성애자들의 다양한 삶이 묘사되어 있는 책은 저널리스트로서 와일드블러드의 재능 뿐만 아니라 그의 새로운 사회적 지위가 빛을 발하는 작품으로, 와일드블러드 본인도감옥에 갔다옴으로써 나는 소위 통계학에서 말하는사회적 이동성 지니게 되었는데, 폭은 통계학자들이 상상하는 이상이었다 밝히고 있다. 그는 돈이 목적인 흥미로운 젊은이들과 친분을 쌓았는데, 불평을 달고 다니는 레지도 명이었다: “다들 현금을 내는 대신 발레 같은 곳에 데려가곤 하는데, 결국 나이 들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구식 LP판과불새 나오는 발레리나 마고 폰테인에 대한 기억 밖에 남는 없었다.” 와일드블러드 자신은 단혼(單婚) 미덕을 강력히 옹호했는데, 그는 불공정한 때문에 남성이 집착 없이 가벼운 모험을 즐기는 것보다 함께 사는 편이 위험한 행동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했지만, 그와 상반되는 증언을 철회하지는 않았다.



가벼운 모험... 1950년대 소호의 나이트클럽 겸 바 ‘La Caverne’의 젊은이들. 사진: Joseph McKeown/Getty



와일드블러드는 이성애자 성매매에도 매료되었는데, 관련 분야를 조사하던 울픈든 위원회가 계기를 제공했던 같다. 진지한 측면에서 이성애 성매매에 대한 관심은 동성애자들에게 있어 이성애적 행위의 평범함을 와해시키는 효과가 있었지만, 와일드블러드에게 정보를 제공하던 팸이라는 여성도 굉장히 흥미로운 인물이었다. 팸은 BDSM 심취했던 행상인 소년을 밧줄로 꼼짝 못하게 묶은 하녀에게 다림질하는 동안 지켜보도록 하고 본인은 다른 흥미거리를 찾으러 퍼브에 들렀다고 한다. 그런데 바텐더는 집에서 연락이 왔다며 팸에게 이렇게 말한다: “손님께서 요리용으로 꽁꽁 묶은 닭을 마리 주셨다는데, 시퍼렇게 변해서 못쓰겠다고 하네요.”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A Way of Life에는 제삼자의 경험이 잠깐 등장하는데, 여기서 와일드블러드는 동성에 대한 욕망을 당시로서는 깜짝 놀랄만한 권한과 결부시키고 있다. “그때까지 고든은 남자의 몸을 그런 식으로 적이 없었다. 남자의 몸이 욕망과 두려움의 대상, 용도를 없는 온화함과 전멸의 도구로 보인 그때가 처음이었다.” 


기준에서 와일드블러드의 소설 ‘The Main Chance’(1957) ‘West End People’(1958) 빛을 보지 못했지만, ‘West End People’ 뮤지컬 버젼인 ‘The Crooked Mile’ 흥행에 성공했다. 이들 작품에 생기나 독창성이 부족한 아니었다: “가녀린 기계손이 안을 더듬더니 헛기침과 함께 회전하는 배꼽 위에 레코드를 올려놓았다.” 주크박스를 이런 식으로 묘사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작품들의 진가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캠프한 대화도 등장한다: “자기는 신문도 읽나봐!” “어머, 그걸 누가 읽니? 기사를 쓰는 것만으로도 고된데.” 또한 일종의 제한된 사회적 다양성도 엿볼 있다: “그는 넘어졌지만 이내 몸을 일으켜 샛길을 달려갔고, 에스프레소 바의 스키플 연주가들과 반전주의자, 소매치기, 복음전도사와 매춘부들이 뒤를 쫓아갔다.” 그런데 여기서 동성애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앵거스 윌슨 같은 작가 동성애자 인물과 동성애 소재를 다루어도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 시절이었는데도 말이다. 대신 와일드블러드는 ‘West End People’에서 데이먼 러니언 영역으로 급회전함으로써, 저그 이어스 존스, 핑거스, 비숍, 벅시, 먹시, 호스와 같은 사랑스런 악당들을 등장시켰다. 그렇게 오랫동안 타협과 잠적을 거부해 왔던 사람이 작품에 모든 쏟아부으면서 대범함만 배제했다는 정말 이상한 선택이 아닐 없다. 


*드라마 ‘Against the Law’ 7월말 BBC2에서 방영됩니다. 




- Adam Mars-Jones

- 옮긴이: 이승훈



The Wildeblood scandal: the trial that rocked 1950s Britain – and changed gay rights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1. '고독의 우물’: 래드클리프 홀(Radclyffe Hall)의 레즈비언 소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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