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넷 윈터슨은 ‘Oranges Are Not the Only Fruit’의 저자다. 사진: Murdo Macleod for the Guardian
1990년 BBC2의 "Oranges Are Not the only Fruit"는 제2화가 방영되면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18세가 안 되는 두 소녀가 키스를 나누며 섹스를 나누려는 장면이 나간 것이다.
영국에서 여성성간의 성행위가 금지된 적은 없다. 헨리 8세의 항문성교 금지법(Buggery Act: 당시는 항문성교를 buggery라 불렀다)이 1861년 인간에 대한 추행법(Offences Against the Person Act)로 대체되었을 때에도 여성간의 성교는 무시되었다.
그 이유는 여성 자체가 무시 당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1870년 기혼여성 재산법(Married Women's Propeety Act)이 제정되기 전까지 결혼과 함께 여성의 정체성은 남편에게 흡수되었으며, 여성은 자신의 신체는 물론 그 어느것도 소유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당시나 지금이나 남자들의 마음 속에는 남근이 등장하는 섹스만이 진정한 섹스라는 개념이 유치한 보루로 남아 있다.
사회가 동성성교로 받는 고통과 동성성교에 가하는 고통의 (하반신이 아니라) 중심에는 가부장적 질서의 혼란이 자리잡고 있다. 구시대적 사고방식에서는 동성 관계에서도 남자역할과 여자역할이 있는 곳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사회적 규범은 너무 유효한 나머지 퀴어들, 심지어는 가벼운 섹스를 추구하는 이들마저 그 규범에 의해 세뇌되었고 안 그래도 힘든 상황에 혼란과 죄책감을 더해갔다.
1980년대 나는 가죽 점퍼에 찢어진 청바지나 스커트에 브래지어가 드러나는 차림으로 클럽을 드나들곤 했다. 하루는 The Well of Loneliness 1에서 튀어나온 듯한 부치가 다가와 "너 빵이야? 잼이야?"라고 물었다. 나는 내가 샌드위치라는 걸 깨닫는 데 몇 년이란 세월이 더 걸렸다.
성적 다름에 대한 적대감은 곧 남성들이 자기 입맛대로 이 세상을 배치하는 이성애주의에 맞선 노골적, 함축적 도전에 대한 적대감이다. 페미니즘은 퀴어 정체성과 함께 모든 측면에서 이러한 특권과 추측에 대응해 왔다. 물론 난처한 상황도 있다. 게이들도 결국 남자고 트랜스젠더들도 문제가 전혀 없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듯 내부를 향한 질문도 지금 이 세상을 바꾸기 위한 것으로, 페미니즘처럼 퀴어 정체성도 지금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진정한 원동력이다.
세상을 바꾸는 데에는 요지부동한 역할에서 벗어나는 것도 포함된다. (페미니즘이 수십년 전부터 부르짖어 왔던 부분이기도 하다.) 남녀 아동들을 성차별 없이도 성적인 인간이 될 수 있도록 키우는 것도 그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성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인간은 자신의 솔직한 욕구나 성적 표현 방식을 거부당하면 제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성을 통한 자아발견은 고립된 것이 아니라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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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대처 정권이 지자체 정부법 28조를 가결시켜 학교내 동성애 "홍보"를 전면 금지시켰다. 조항에 나오는 "의사(擬似) 가정"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지만 학교에서 이성애 이외의 성정체성을 긍정적으로 다루면 안 된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마침 28살이었던 나는 이 조항이 증오를 법제화한 거나 다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위 합법화가 이뤄진 1967년부터 성관계 승낙연령이 평준화된 2003년까지 동성간의 성교는 범죄행위가 아니었운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동안 3만 명이 넘는 남성들이 성추행이란 명목으로 처벌받았다. 성관계 대상이 여성이었다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을 행동으로 말이다.
1967년의 비범죄화가 띈 문제점은 그곳이 경멸과 연민에서 비롯된 진보라는 점이었다. 당시 의회 보고서나 언론 보도를 보면 이성애의 정상화 및 가부장적 구조에 대한 의구심, 성적지향의 평등에 관한 언급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섹슈얼리티와 사회의 대약진이 법에 반영된 건 2000년대 이후의 일이었다. 2000년 토니 블레어 정권이 동성애자의 군복무를 허용했고 그 뒤로 성관계 승낙연령 평준화와 28조의 폐지가 잇따랐다. 2004년에는 시민결합제도가 실시되었고 2006년에는 입양아동법이 제정되어 동성커플도 공동으로 자녀를 입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2014년에는 많은 논란 속에서 결혼평등법안이 가결되었다. ("이젠 우리 멍멍이나 냉장고랑도 결혼할 수 있겠네", "종말이 다가왔도다", "이제 기후변화가 왜 일어나는지 알겠지?" 등등)
지금은 트랜스젠더 관련 법개정이 추진중인 가운데 2019년까지 교과과정에 동성간의 사랑을 의무적으로 언급하도록 하는 계획이 진행중이며, 여기에는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들에 대한 긍정적인 묘사도 포함된다. 이건 분명 좋은 소식이다. LGBTQIA라면 영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국가라는 점을 자랑스럽게 여길만도 할 것이다. 한편 늘 평등권을 지지해 온 한 윗연배의 지인은 “내가 니네 편인 건 맞는데, 도대체 알파벳 약자를 얼마나 더 갖다붙여야 되는 거냐”라고 묻곤 한다. 우리 두 사람 모두 2014년 퀸(Q를 대문자로 쓰시는 그 분)께서 40주년을 맞은 레즈비언 게이 교환대(Lesbian and Gay Switchboard)에 축하메시지를 보낸 것에 대해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캠페인 단체 스톤월의 루스 헌트 이사장이 지적한 것처럼 영국은 교역국 및 원조 대상국을 상대로 그 입장을 확실히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동성애를 법으로 금지하는 국가가 아직 72개국에 이르고 그 중 8개국에서는 사형으로 다스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학교내 집단괴롭힘 문제가 무시 또는 묵인되고 있으며, 동성애자 및 양성애자 학생들 중 절반이 집단괴롭힘과 조롱에 시달린 적이 있다고 한다. 특히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가진 아이들의 경우는 그 수치가 64%에 달한다. 동성애자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하다는 끔찍한 선입관은 자기자신(자신의 욕구 및 성)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상대방이 그 연약한 정체성을 보호하기 위해 날 해치려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어떤 건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자기성찰은 정신건강의 일부고 또 좋은 것이지만 자기혐오는 백해무익하다.
교회가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건 실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다음 목표는 교육을 통한 종교상의 편견 퇴치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새롭고 참신한 증오방식을 권장하며, 사랑을 저지하는 데 그 많은 노력이 할애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까지 우리가 이룩한 발전을 자축하고 싶다. 내가 애크링턴에서 유년기를 보내던 시절 신문가게를 운영하는 두 여성이 있었는데 거기에 가면 늘 공짜로 초콜렛을 얻어먹곤 했다. 사람들은 이 두 여성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 중 한 사람은 늘 발라클라바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는데 난 그냥 수줍음이 많아서 그렇거니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루는 우리집 여사가 그 두 사람이 “부자연스런 욕정”에 사로잡혀 있다며 그 가게에 못 가게 했다. 그때 나는 그 말이 과자에 화학약품을 섞었다는 뜻인 줄로만 알았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내가 사는 코츠월즈라는 마을에는 맨체스터에서 온 두 여성이 찻집을 운영하고 있는데 커밍아웃도 했고 아무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다. 지역주민들과도 잘 어울리고 본인들이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기쁘게 생각하기까지 한다. 이 두 사람은 아이들 그리고 가게를 찾는 손님들, 그냥 자신의 삶을 살며 이 세상에 좀더 많은 사랑을 전파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아주 좋은 영감이 되고 있다.
- 옮긴이: 이승훈
Queer politics has been a force for change; celebrate how far we've come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출처: http://mitr.tistory.com/3534 [해외 성소수자 소식 블로그 미트르]
- '고독의 우물’: 래드클리프 홀(Radclyffe Hall)의 레즈비언 소설. 1928년 재판에서 이 책을 모조리 파기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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