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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 하바나를 찾아서

중남미/쿠바 2013.05.16 01:11 Posted by mitr

2013-05-09



Finding gay Havana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Xtra.



카스트로가 동성애자 인권에 대한 태도를 완화했지만, 아직도 쿠바는 이에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세 사람이 있었다. 왼쪽은 근육질에 쿨한 헤어스타일의 마초보이였고 그와 팔짱을 끼고 있는 것은 작은 체구의 여성스러운 남자로, 양산을 들고 한껏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이 두 사람 뒤를 따라오는 것이 세번째 남자였는데 중성이었다. 이들이 바로 쿠바의 게이자유전선의 선두주자이다.


나는 게이 하바나를 찾아왔고, 내가 찾은 것은 오후께 재밋거리를 찾아 라 하바나 비에하(구하바나)에 나온 이 20대 청년들이 전부였다. 일부 현지인들은 멈춰서서 이들을 쳐다봤지만 전반적으로 혐동성애 정서와 남성우월사상이 만연한 쿠바 치고는 이 삼인조는 그다지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혁명이 일어나기 전, 쿠바는 마리코네를 수용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었다. 인구가 밀집된 지역에는 게이바가 곳곳에 있었고, 그 이름도 Dirty Dick과 같이 아주 적절했다. 동성애는 매춘 및 조직범죄와 함께 분류되었지만, 아무리 불법이라 해도 이러한 매춘과 조직범죄는 아주 활기를 띈 산업이었다.  


석양 속의 전쟁 기념물. (제프리 라운드)
멜라콘의 라 람파 지구에서 어슬렁거리는 젊은이들. 라 람파는 하바나의 '게이' 지구로 알려져 있다. (제프리 라운드)
하바나 거리에서는 복고풍 미국차를 쉽게 볼 수 있다. (제프리 라운드)
'딸기와 초콜릿'은 쿠바에서 처음으로 동성애자를 긍정적으로 그린 영화라는 평을 받고 있다. (제프리 라운드) 

1950 년대 후반 피델 카스트로와 그 게릴라군이 권력을 장악하자 동성애는 자본주의적 퇴폐로 간주되거나 심하면 반혁명적 일탈로 여겨지기도 했다. 쉽게 말해서 동성애자들은 혁명에 가담할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하긴 쿠바 혁명은 마초이즘의 산물이었고, 역시 동성애자들에게 공공연히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던 소련정권과 긴밀한 연대관계를 유지하게 되었기에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1960년대에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회고록 '해가 지기 전에'로 유명한 쿠바의 작가 레이날도 아레나스가 '쿠바의 야사'를 담은 저서 'Pentagonia'에서 동성애자 쿠바인으로 살아가는 위험함을 그렸다. 그는 뉴욕으로 망명하여 1990 년 에이즈로 사망한다. 카스트로는 1965 년도 인터뷰에서 동성애자는 결코 "진정한 공산주의 전사"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카스트로에게 있어서 동성애는 정치와 충돌되는 자연현상이었던 것이다.

같은 해에 표면적으로는 군복무를 대체하는 듯이 보이는 정부 프로그램이 발족했다. 그러나 사실 이곳은 "일탈자"로 간주된 모든 이들을 개조하기 위한 강제노동수용소였다. 일탈자의 범주에는 동성애자 뿐 아니라 여호와의 증인 신자, 히피 및 양심적 병역거부자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동성애자 남성들이 가장 심한 언어적, 신체적 학대에 시달렸다. 불과 몇 년전만 해도 수많은 동성애자 남녀들이 보다 성적으로 개방적인 이상향을 약속하는 혁명에 매료되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1990 년대에 이르자 카스트로는 동성애자 인권에 대한 태도를 완화했고, 심지어는 카스트로가 쿠바에서의 동성애자 처형은 "엄청난 부정"이었고 개개인의 책임에 맞긴다고까지 말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의 질녀인 마리엘라 카스트로도 성전환자들의 인권을 위해 열성을 기울여 왔다. 합법적인 시민들에게 성확정 수술은 무료로 제공되고 있다. 하지만 일반 쿠바인들은 아직도 이러한 변화에 귀를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것 같다. 


현재 쿠바에는 단 한 곳의 "공식" 게이바가 존재하며, 이곳은 하바나가 아닌 산타 클라라는 곳에 위치해 있다. 산타 클라라는 반세기 전 카스트로가 쿠바의 정권을 잡게 해준 전투가 일어났던 역사적인 곳이다. 그러난 어느덧 산타 클라라는 관광명소가 되어 이 게이바도 트랜스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디즈니 월드가 코파카바나풍의 스톤월쇼를 선보인다고 생각해보라. 즉, 외국인이 아닌 현지인들을 위한 쇼인 것이다.


나는 라 하바나 비에하에서 만난 게이 삼인조에게 "비밀" 게이클럽에 대해 물어봤다. 그들은 몇몇 이름을 댔지만 쿠바인 게이를 찾으려면 라 람파에 가야 한다고 했다. 라 람파는 말레콘 아래에 위치한 조그만 관광구역이다. 그 밖에 올드타운 근처 공원도 밤이 되면 동성애자들이 어슬렁거린다고 알려줬다. 내가 그곳 치안이 "peligroso", 즉 위험한지 묻자, 여성스러운 사내가 웃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했다. "Los Cubanos no son peligrosos. (쿠바 사람들은 위험하지 않아요.)"


코펠리아 근처에 있는 공원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쿠바에서 최초로 동성애자를 긍정적으로 그린 영화 "딸기와 초콜릿(Fresa y chocolate)"으로 유명해진 아이스크림 가게 이름을 댔다. 하지만 그들의 대답은 'no'였다. 'A causa de los gais' 즉, 게이들 때문에 밤에는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하긴, 이 영화가 개봉된 1993 년 이 공원은 성의 지표가 되었고, 영화가 이듬해 아카데미에 후보로 오르면서 그런 경향은 더 가속화되었다. 하지만 이곳은 여전히 하바나 매춘씬의 중심지이다. 

카스트로가 동성애자 공동체를 지지하겠다고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쿠바내에서 활동하는 동성애자 공식 인권단체는 전무한 상황이다. 인터넷 규제가 심하고, 불법적인 성관계를 벌금과 구형으로 처벌하는 나라에서는 쉽지 않을 것이다. 동성애자들과 정부간의 관계가 호전되던 1994 년 쿠바 동성애자협회가 창립되었지만 1997 년 회원들이 체포되면서 협회도 해산되었다. 프라이드 행진과 동성애 관련 출판물도 금지되는 등, '국가가 허용한'이라는 표현에 매우 자의적인 뉘앙스가 가해졌다. 

나는 남자 등장인물이 여장을 하고 나오는 쿠바의 한 시트콤을 봤다. 국영방송에서 방영되는 "La otra cara del la luna(달의 반대편)"은 공공연히 다른 남자와 사귀는 동성애자가 등장한다. 매년 12월에 열리는 하바나 영화제에는 동성애를 주제로 한 많은 영화가 상영되었으며, 그 포스터는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작년에는 쿠바에서 최초로 비야 클라라라는 곳에서 성전환자가 공직에 당선되기도 했다. 


그 밖에 잘 알려진 게이 파티도 있다. 10 페소스(입장료에서 따온 명칭)은 매주 토요일 하바나 및 인근 지역에서 개최되는데 다들 각자 알아서 찾아온다. 경찰의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 매번 장소를 옮기기 때문에 찾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스페인 영화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도 이런 파티에서 체포된 적이 있었고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도 마찬가지이다. 외국인이 현장에서 잡힐 경우 앞으로 동성애를 "과시"하고 다니면 체포될 수도 있다는 경고만 받고 풀려나지만 일부 현지인들은 구타를 당하기도 한다. 


저번에 쿠바에 왔을 때 이성애자들의 클럽을 찾았는데 한 게이 코미디언이 여장쇼를 했었다. 그는 십대 후반에서 20대에 이르는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윗세대에게 동성애자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면 인상을 찌푸린다. 싫어하는 것이다. 그들은 마리엘라 카스트로가 레즈비언이며, 쿠바의 현대통령인 그 아버지 라울도 게이라고 할 것이다. 이것이 동성애자 인권에 대해 수용적인 두 부녀에 대해 이들이 내린 결론인 것이다. 


이들에게 있어 동성애자는 구식이고 반체제('반공산주의'라고 읽는다)적 향락을 상징하며, 캐나다나 미국 같은 나라에나 어울릴 법한 것이다. 특히 쿠바 여성들이 동성애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공공연히 표현하는데, 그러면서도 기꺼이 휴대폰으로 친구사진을 보여주며 누가 진짜 여자고 누가 크로스드레서인지 맞춰보라고 한다. 


결국 이중잣대인 것이다.


라 람파에 가서 멋지고 스타일리쉬한 젊은이들을 보면 과연 그 중에 누가 게이인지 궁금해진다. 핑크색 티셔츠와 금 악세서리로 치장하고 호들갑 떨며 한심한 노래를 불러대는 킹카들은 게이가 아니다. 이들은 그냥 놀러 나온 이성애자들일 뿐이다. 


게이들은 내가 두리번거리고 있는 것을 본 후에야 접근해 온다. 이들은 주로 만약을 대비해서 짝을 지어 다가오며 우리 북미인들의 기준으로 "일반남처럼 보이고 그렇게 행동"한다. 이것도 보호막인 셈이다. 쿠바에서는 보통 자신이 동성애자인 것을 드러내지 않는다.  


"치코(남자) 찾으세요, 치카(여자) 찾으세요?"하고 옆에 다가와서 묻는다. 치코를 찾는다고 하면 이들은 미소를 띄고 서비스를 제공해 준다.  


내가 그냥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싶다고 하자, "에디"는 손님도 드문 터라 맥주 한 잔에 내 질문을 받아주었다. 에디가 관광객과 함께 다니는 모습이 눈에 띄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바를 신중히 골랐다. "경찰이 우리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어떻게 할까"하고 묻자 수갑을 차고 끌려가서 벌금을 물 것이라고 한다.  


"이야기만 해도?" 나는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이야기가 아니라 호객행위를 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것이다. 상대방이 동성애자가 아니라도 말이다. 


나는 에디가 과장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한 번은 저녁에 호세라는 이름의 한 청년과 코펠리아 공원 근처를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 친구가 갑자기 사라졌었다. 나는 그 친구가 내 말 때문에 마음이 상했으려니 생각했었다. 그러다 경찰 두 명이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 모습을 본 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걸어갔다. 다음 블록에 다다르자 호세가 풀숲에서 튀어나왔고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이야기를 이어나갔었다. 


나는 호세와 함께 걸으면서 쿠바 동성애자들의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duro 즉, 고되다는 한 마디로 답했다. '고됨' 이 어떤 것인지 잘 아는 나라 사람이 하는 말이다. 또 한 번은 호세와 그 호객 동료가 영업하는 게이바를 찾아 준다며 나를 데리고 다닌 적이 있다. 우리는 여러 곳을 찾아갔지만 모두 이성 커플들로 가득 차 있었다.   


호세와 그 친구는 "오늘은 날이 아니네"라고 했다.


동성애자 인권 투쟁을 빼고 보더라도 쿠바의 삶은 그리 부러운 것이 못 된다. 그렇기 때문에 에디나 호세와 같은 청년들이 몇 달러라도 더 벌어보고자 애를 쓰는 것이다. 일부 매춘남들은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냥 직업일 뿐이라고 하지만 주위에서는 모두가 그들이 게이라고 말해 줄 것이다. 그들은 손님에게 activo(탑)인지 pasivo(바텀)인지, 아니면 completo('올'을 뜻하는 쿠바속어)인지 물을 것이다. 


에디는 작은 아파트에서 어머니와 그 남자친구, 그리고 남동생,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에디는 혼자서 살 돈이 없다. 그는 캐나다에 오고 싶다고 한다. 영어는 그럭저럭 하는 편이지만 적어도 합법적인 범위내에서 시장성이 있는 기술도 별로 없는데다가 매춘남으로서도 어느 정도 나이가 차 버렸다. 그는 자신의 앞날을 쿠바에서 보낼 생각을 하면 비참해진다. 


물론, 동성애자들의 삶은 계속된다. 많은 청년들이 하바나의 라스베가스바는 공공연하게 운영된는 게이바라고 했다. 그곳 역시 여장쇼를 하는 곳으로 라 람파에서 몇 블록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다. 여행객들은 현지인들을 만나기 위해 그곳을 찾는다. 내가 그곳을 찾은 날 밤은 한산한 편이었다. 어쩌면 내가 너무 일찍 찾아갔을지도 모른다. 

몇몇 드래그퀸과 레즈비언들이 밖에서 서성였다. 이들은 매우 반항적이었고 언제든지 말썽을 일으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금지된 것에 대한 유혹을 느꼈다. 처음 게이바에 발을 들여놓을 때처럼 말이다. 퀴어 네이션 시절의 반항 정신이 떠올랐다. 그 때는 상황이 아무리 나빠도 얻어맏기보다는 참고 견디는 게 상책이었다. 


쿠바의 성적소수자들은 정부가 모든 것을 지배하며 그들이 가진 얼마 안 되는 자유조차도 눈 깜짝할 사이에 빼앗길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나곤 했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근처에 지지단체가 있는지, 없다면 언제 그런 단체가 생길지는 모른다.  




- 제프리 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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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글프다 2014.02.14 20: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쿠바는 미국과 일본 대한민국 그외의 서방자유국가의 사람들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