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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26



Bi-national gay couple celebrate Doma ruling's new freedom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배우자 비자가 만료되어 파트너를 영국으로 떠나보내야 했던 브랜든 펄벅, "이젠 미국인이라 뿌듯합니다."






2 년전 아이슬랜드를 찾은 브랜든 펄벅(오른쪽)과 벤 스토리(왼쪽). 사진: Brandon Perlberg



뉴욕 변호사인 브랜든 펄벅과 잉글랜드 북부출신의 신문사 디자이너 벤 스토리는 이번 대법원의 결혼보호법 판결로 미국에서 함께 살 수 있게 된 36,000여 커플 중 한 쌍이다. 


런던에서 만난 두 사람은 7년 동안 뉴욕에서 함께 살았지만, 스토리의 비자가 만료되면서 어쩔 수 없이 영국으로 이사해 2년을 살아야 했다. 미국인 여성과 영국인 남성이 결혼할 경우, 부인이 남편을 위해 시민권 신청을 할 수 있지만, 결혼을 일부일처제로 규정하는 결혼보호법 때문에 동성커플들에게는 이러한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 결과 매년 수천 쌍의 동성커플이 이별하거나, 강제출국의 두려움 속에 살아야 했으며, 법적 지위가 보장되는 배우자의 나라로 이민 가야만 했다. 


결혼보호법이 폐지되었다고 해서 이들의 이별도 자동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지만, 연방정부가 이민법 차별을 철폐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펄벅(35)은 뉴욕에 살 때 법조인 협회에서 강의하고, 법률잡지의 편집을 담당했으며, 소송건도 정기적으로 맡는 등 고수익 직업을 가졌지만, 런던으로 이사한 후로는 일 년 동안 무직으로 지내다가 겨우 한 회계사의 자문으로 취직할 수 있었다. 펄벅은 금전적인 손해를 정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일시적인 타격"을 입었으며, 영국으로 이사한 2012년만 해도 실직, 재교육 비용 및 변호료와 이사비용 때문에 10만 달러(약 1억 원)의 손해를 봤다고 한다. 


"정말 끔찍했습니다. 미국에서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겨 버렸고, 낮선 나라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제가 소유했던 아파트 문을 닫고 고등학교 동창들, 법대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나눠야 했던 것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첫 11개월 동안 아무도 저에게 일자리를 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인지 정말 몰랐습니다. 스펙이 훨씬 낮은 일자리에 이력서를 200 통 넘게 보냈지만, 런던거주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매번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약혼한 사이인 두 사람은 맨하탄 그래머시에 살던 아파트를 팔고 런던 남부 클래펌의 셋방에 정착했다. 펄벅은 현재 런던에서 개업하기 위해 영국의 어려운 사법시험을 다시 준비중이다. 


펄벅은 캘리포니아에서 자랐고 뉴욕에서 직장생활을 해 왔다. 자신이 항상 꿈꿔왔던 성공을 위해 전력질주하던 그는 다른 나라로 이주하고 나서는 "계단 아래로 내동댕이쳐진 느낌"이었다고 한다. 


"제가 가장 속이 탔던 것은 다른 소관의 입법자들이 결혼보호법을 통과시켰다는 겁니다. 결혼보호법에 찬성표를 던진 의원이 81명이었는데, 생각만 해도 화가 납니다."


한편, 펄벅은 자신이 미국인인 것이 자랑스러우며, 결혼평등을 향한 이 변화에 함께 하고 싶다고 한다. "지금이 바로 제 순간입니다. 정부와 행정부, 사법부의 모든 기관이 결혼평등을 지향하고 있고, 이민법 개혁도 고려중이라고 합니다. 늘 내 나라에서 쫓겨난 망명자 같은 심정으로 살아왔는데, 이젠 정말로 기득권을 가진 느낌입니다. 그 어느때보다도 미국인인 게 자랑스러워요."



- 캐런 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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