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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곳곳에서

북미/캐나다 2013. 7. 9. 12:23 Posted by mitr

2013-07-02


From Far & Wide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Daily Xtra.






캐나다 정부는 세계에서 제일 많은 이반난민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현지 활동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매니토바주 남부, 25 미터에 달하는 전나무와 물푸레나무로 둘러싸여 인적이 드문 이곳은 보기와는 다르게 이반 보호처이다. 이곳에는 이란 출신의 난민 하메드(28) 묵고 있다. 하메드를 가족처럼 받아들여준 호스트 백 씨는 그 파트너 마크 래브네트 씨는 중년의 보건관리사로 파트너 마크 래브네트 씨와 함께 살고 있다. 

 

몇 년 전 두 사람은 위니펙 지역의 다른 세 지인과 더불어 G5라는 단체를 결성했다. 캐나다 시민권 이민청에서는 캐나다인 다섯 명 이상이 모여서 난민 한 명을 후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섯 사람은 15000 달러(약 1600만 원)를 모아 향후 1 년 동안 동성애자 난민을 실질적으로 입양하겠다고 시민권 이민청에 약속했다. 백 씨는 처음 이 일이 얼마나 부담이 될지 걱정했지만, '결국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민청으로부터 허가를 받은 다섯 사람은 하메드를 맞기 위해 위니펙의 제임스 JAR 공항으로 나갔다. 출중한 외모의 하메드는 상냥하고 지적이기까지 했다. 영어가 서툴렀지만, 배우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위니펙의 다른 커플 집에 머물렀지만, 교외지역에 살기를 원했다. 하메드는 새로 배운 영어로 말했다. "도시보다는 숲과 나무가 우거진 곳이 더 좋아요. 여기선 혼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편안해요."


물론 이란보다는 훨씬 편안한 곳일테다. 하메드가 이란에 있을 때 남자친구의 가족이 두 사람의 관계를 알아채고 하메드를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었다. "이란에서의 마지막 한 주는 제 인생 최악의 시간이었어요." 하메드는 자신이 심장발작을 일으키는 줄 알았다고 한다. 결국 하메드는 심장발작 대신 국경을 넘어 터키로 향했고, 앙카라 주재 캐나다 대사관을 찾았다. 17 개월이나 기다린 후에 난민신청이 받아들여졌고, 하메드는 매니토바행 비행기에 올랐다. 몇 달 만에 자동차 면허증을 딴 하메드는 위니펙까지 통근하며 신체적, 정신적 장애자들을 돕는 보조원으로 일했다.

  

한편, 백 씨는 Reaching Out Winnipeg라는 독립 인권단체를 설립했고, 이반난민 문제를 널리 알리는 한편, 사람들에게 G5 결성을 장려했다. 지난 몇 년 동안 할리팩스를 비롯한 캐나다 전역에서 비슷한 단체가 생겨났고, 연방정부도 서서히 이반난민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메드처럼 무사히 캐나다에 당도하는 케이스는 드물었다. 

 

무지개난민협회(Rainbow Refugee)는 최초의 이반난민 지원단체 중 하나로, 13 년 전 밴쿠버에서 설립되었다. 처음에는 무지개난민협회도 Reaching Out Winnipeg과 마찬가지로 하메드처럼 자국을 탈출했지만 아직 캐나다 이민허가를 받지 못한 신청자들을 후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밴쿠버에서 첫회의를 열었을 때, 회의에 참가한 대부분의 이민신청자들이 이미 관광비자, 학생비자, 또는 불법으로 캐나다에 와 있었다. 이들은 캐나다에 정착할 도움(정신적인 지원, 법률상의 조언 등등)을 필요로 했고, 따라서 무지개난민협회도 이러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무지개 난민협회 공동창시자 크리스 모리시 씨. LEAH BROMLEY




무지개난민협회의 공동설립자 크리스 모리시 씨는 따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한다. "자금이 정말 부족했던 상황이었고, 인프라도 전무한 상태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지개난민협회가 지금까지 거주허가를 받도록 도와준 난민은 800여 명에 이른다고 모리시 씨는 말한다. 

 

이렇게 온갖 난관을 이겨내고 혐동성애적 국가에서 벗어나 캐나다로 오는 이들(모 손코 씨의 경우가 특히 그러했다. 아랫글 참조)이 있는 반면, 이런 비참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이 더 많다. 그 이유는 본국 자체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도망쳐온 인근국가의 상황도 크게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한다.

 

모리시 씨는 지난 몇 년 동안 적어도 일주일에 한 통씩 아프리카, 중동, 러시아 등 혐동성애적 국가에서 벗어나려는 이들로부터 애원하는 이메일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첫번째 문제는 무지개난민협회가 자원봉사자들로만 이루어졌다는 것이고, 둘째는 이 사람들을 다 도와줄 만한 재정적인 여유가 없다는 것이예요." 2 년 전 제이슨 케니 시민권-이민청 장관이 도움을 주기로 했다. 케니 장관은 박해받는 이반들이 캐나다 대사관으로 찾아오면, 무지개이반협회가 이들의 지원그룹을 조직하겠다는 조건하에 첫 3개월간의 비용을 정부에서 대겠다고 했다. 

 

케네디 장관은 10만 달러(약 1억 원)의 지원금에 온갖 조건을 붙였다. 무지개난민협회는 이 돈을 인프라 구축에 사용할 수 없었고, 광고도 할 수 없었다. 이미 캐나다에 와 있는 난민들을 지원함과 동시에 캐나다 각지의 동성애자들을 상대로 후원자를 찾는다는 것은 자원봉사단체로서는 큰 시련이었다. 시민권 이민청은 Xtra지와의 회견에서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즉, 무지개난민협회와의 제휴는 "유례없는 프로그램"으로, "풀뿌리 차원의 지원을 모델로 삼는 것"이기 때문에 "조직의 인프라구축을 지원할 의도는 없다"고 밝힌 것이다.

 

정부는 지난 2 년 동안 이 시범사업을 통해 "무지개난민협회가 다섯 명의 난민 신청을 제출했다"고 했지만, 정작 모리시 씨는 지금까지 레즈비언 커플(국가명을 공개하지 않았다)과 현재 캐나다로 향하고 있는 이라크인 남성, 이렇게 세 명의 난민 밖에 후원하지 못했다고 한다. 모리시 씨의 말 그대로 '가뭄에 콩나기'인 셈이다.

 

토론토의 이민전문 변호사 마이클 바티스타 씨에 의하면 그나마 나던 콩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연방정부가 난민수를 전반적으로 격감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바티스타 씨는 목숨을 구하려 인도로 도망친 아프가니스칸의 한 동성애자 남성을 돕기 위해 무지개철도(Rainbow Railroad)라는 단체를 세웠다. 이 남성은 현재 메트로폴리탄 커뮤니티 교회(Metropolitan Community Church)를 통해 G5의 지원을 받으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난관이 닥쳤다. 캐나다가 올해 인도에서 난민을 50 명만 받기로 한 것이다. 

 


이민전문 변호사 마이클 바티스타 씨.



"우리가 봉착한 난관이 어디서 오는 건지 아실 수 있을 겁니다. 해외난민 정착프로그램의 규모가 정말 축소되었어요. 케니 장관이 난민지원에 관심을 내비쳤지만, 그 결과는 정말 실망스럽습니다." 캐나다 시민권 난민청은 Xtra지와의 회견에서 매년 정착자를 20% 씩 늘리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캐나다 이민위원회는 2012 년 캐나다에 정착한 난민이 전년도보다 26%나 감소했으며, 이는 지난 30 년간 최저수치라고 밝혔다. 


캐나다 대사관이 난민신청을 거의 수락하고 있지 않는 가운데, 바티스타 씨의 단체는 자국에서 박해받는 동성애자들을 탈출시킬 자금(한 명당 2000 달러(약 220만 원) 정도)를 모금하고 있다. 무지개철도는 2006 년부터 약 50 명의 이반난민을 지원해 왔다. 이들 대부분이 이란 및 자마이카 출신인데, 무지개철도는 이들 국가에 믿을만한 연락망을 구축해 두고 있다. 

 

무지개철도는 모금활동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봄에 개최한 칵테일파티에는 100여 명의 모였고, 15,000 달러(1600만 원)를 모금할 수 있었다. "목표는 비상근이라도 좋으니 일단 난민신청을 담당할 스텝을 고용하는 것입니다."

 

10만 달러 상당의 시범사업이 1 년도 채 남지 않았지만, 캐나다 시민권-이민청은 Xtra지와의 인터뷰에서 "아직 본사업의 미래를 예견하기란 이른 단계"라고 밝혔다. 모리시 씨는 10만 달러의 대부분이 아직 손도 안 된 상태이고, 무지개난민협회가 아직 (자원부족 때문에) 더 많은 이반난민 후원자를 확보하지 못했지만, 앞으로도 지원이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전국각지에서 이런 일을 맡아줄 단체가 많이 나오면 나올 수록 좋습니다. 한 단체로는 너무 역부족이예요." 현재 동성애자 난민 지원에 초점을 맞춘 전국규모의 단체는 없다. Egale에서도 이 문제를 맡지 않고, 다른 이반 센터에서도 이 문제를 우선시하지 않는다. 모리시 씨는 이들 이반단체가 "해당지역에 거주하는 동성애자들의 수요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지적한다.

 

매니토바주에서는 맥 씨가 위니펙의 무지개자원센터(Rainbow Resource Centre)에서 이반난민 정착문제에 힘쓰고, 이반난민들을 위한 모금을 거두도록 설득했다. 또한 또다른 G5 그룹이 이란의 동성애자 난민을 후원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이들이 이민국에 신청을 낸지 몇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아무런 답변도 듣지 못했다. 

 

백 씨와 파트너는 1980 년대 에이즈가 유행할 때 동성애자 인권을 위해 활동했었다. 그런 두 사람은 다른 나라에서 동성애자들이 체계적으로 박해를 당하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예전과 같은 동기부여를 찾지 못했다. "캐나다의 이민제도는 사람들을 쫓아내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관대한 이민정책을 가지고 있다고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한편, Xtra지의 인터뷰에 응한 캐나다 시민권 이민청은 하메드 같은 사람들이 박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터키지역의 난민대상을 늘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캐나다 정부는 동성애자 난민을 포함하여 UN 인권위원회가 캐나다측에 요구하는 모든 이란 난민들을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혀 왔습니다." 이어 정부측은 최근 캐나다 이민위원회가 제시한 수치와는 달리 "세계에서 가장 정당하고 관대한 난민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재정착한 난민들의 10%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은 거의 세계최다수준"이라고 주장했다.

 

하메드에 대한 두 사람의 관대함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하메드가 매니토바에 도착한지 1 년이 지났고, 이제 재정적으로도 독립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돌봐줄 의무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관계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전 정말 좋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어요. 호스트와 마크를 떠나 혼자 산다는 건 아직 상상도 할 수 없어요."

 

백 씨는 캐나다의 이반인들이 하메드와 같은 난민들을 더 많이 후원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백 씨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캐나다는 세계에서 제일 혜택받은 나라 중 하나입니다. 사람들이 비참한 상황에 처한 것을 알게 되면 그들을 도울 의무가 있다는 겁니다. 우리 개개인이 나서지 않는다면 아무도 나설 사람이 없어요."

 


모의 여정

 


이반의 믿을 수 없는 생명력에 관한 일화를 하나 소개할까 한다. 서아프리카 출신의 모 손코 씨는 위조여권을 가지고 미국을 통해 캐나다로 왔다. 손코 씨는 십대 때 이 여정을 시작했다. 밴쿠버에 무사히 정착한 손코 씨(적어도 지금은)는 자신의 여정에 대해 놀라우리만치 겸손했다. "그냥 할 일을 했을 뿐이죠." 그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손코 씨는 27 년전 감비아에서 태어났다. 가족들은 그가 어렸을 때부터 이상한 아이로 취급했다다. 소년은 계집애처럼 행동했고, 아버지는 그런 그를 이상하게 여겨, 멀리 떨어진 마을의 주술사에게 소년을 보냈다고 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아버지는 제가 정신이 나간 줄 알았으니까요." 손코 씨는 여성적인 말투를 맞아가며 고쳐야 했다.


하지만 그것도 그나마 나은 상황이었다. 당시 감비아 대통령은 동성애자가 발견되는 즉시 '목을 베어버리겠다'고 선포했었다. 감비아에서 동성애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14 년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18 살이 된 손코 씨는 3개월짜리 미국관광비자를 받았고, 다시는 고국으로 돌아오지 않을 결심으로 비행기에 올라탔다.

 

뉴욕에서 새 삶을 시작한 손코 씨는 곧 시애틀로 거처를 옮겨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보조간호원 일을 했다. 그는 시애틀에서 난민자격을 신청할 결심을 했지만, 만나는 변호사들마다 "여기서는 힘드니 캐나다로 가는 게 좋을 거"라는 조언을 들었다.

 

결국 손코 씨는 변호사들의 조언을 따랐다. 친구의 여권을 들고 밴쿠버행 열차에 올라탄 그는 세관원들이 흑인의 얼굴을 구별하지 못하길 바랬다. "제 인생에서 제일 긴 3 시간이었어요. 너무 두려워서 입도 떨어지지 않았죠."

 

밴쿠버에 도착했지만, 연락할 곳이라곤 미국에 있을 때 연락했던 무지개난민협회의 한 커플 뿐이었다. 나흘 후 손코 씨는 난민신청을 냈다. 그로부터 7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공판날짜를 통보받지 못하고 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나비넥타이를 좋아하는 손코 씨는 현재 네 명의 룸메이트와 함께 보조금(매달 670 달러)에 의지하여 살고 있지만, 조만간 취업허가는 날 전망이다.

 

"전 살아남았고, 이젠 행복합니다." 하지만 앞날이 어떻게 될지(캐나다에 머물 수 있을지)만 생각하면 밤마다 잠을 못 이룬다고 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기다리는 데 지쳤어요. 긍정적인 소식이 없어서 걱정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 소식이 전해지지 않는다면, 그는 다시는 찾지 않을 거라고 맹세했던 바로 그 자리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 케이 해슬라이스

 

 

돕는 방법

 

혐동성애적 국가를 피해 캐나다로 오고 싶어하는 동성애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백 씨가 그랬던 것처럼 몇 명이 모여 후원그룹을 결성하는 것입니다. 백 씨로부터 경험담을 듣고 싶은 분들은 reachingoutwinnipeg@gmail.com로 연락 바랍니다.

 

무지개난민협회의 크리스 모리시 씨도 특히 정부지원금의 활용법에 대한 풍부한 정보와 조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sponsorship@rainbowrefugee.ca

 

그밖에, 교회단체도 난민후원에 힘써오고 있습니다. 특히, 통합교회(United Church)와 메트로폴리탄 커뮤니티 교회는 이반단체와 협력하여 캐나다 이민청과 후원협정을 체결했고, 이반난민들을 후원해 오고 있습니다.


정부를 직접적으로 통하지 않고 이들 국가의 이반들을 돕고자 한다면 무지개철도(info@rainbowrailroad.ca)로 연락 바랍니다.

 

캐나다에 막 도착한 이민신청자들도 여러모로 많은 지원이 필요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단체는 물론 그 밖에 캐나다 전역의 일부 단체들(대부분이 이반센터들과 연계되어 있음)이 여러분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단체에 들러서 도움의 손길을 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옮긴이: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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