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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7




아직도 영국사회를 좀먹고 있는 LGBTQ에 대한 증오. 축하는 이르다.



동성애의 부분적 비범죄화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동성애자 및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은 여전히 편견 속에서 고통받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적절한 반응은 감사가 아니라 분노여야 할 것이다.
*오웬 존스는 가디언지 칼럼니스트입니다.




동성애 해방 50주년  아웃!  아웃!  아웃!’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동성애가 부분적으로 비범죄화된지 50주년을 기념하는 날을 우리는 감사가 아니라 분노, 타오르는 격분으로 맞아야 것이다. 우리가 나라에서 이상 합법적인 처벌대상이 아니라는 , 그리고 예전보다는 미움받고 비판받는다는 결코 감사할 일이 아니다. 누구나 당연시하는 대우를 받는다는 특별한 선물이 아니다. 평등은 특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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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을 감사로 맞는다는 정부가 LGBTQ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인 마치 박해자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거나 다름없다. 하지만 우리의 법적 권리는 LGBTQ들이 사람들의 침세례를 받고, 언론으로부터 매도당하며, 대다수 국민들로부터 악마 취급을 받고, 법에 의해 처벌받으며, 투옥과 화학적 거세를 당하고 자살을 강요당하며 일궈낸 것이다. 


우리는 날을 맞아 어찌 감히 우리의 권리를 박탈할 있는지, 어찌 감히 아직도 우리를 온전히 평등한 인간으로 받아들이지 않는지 반문해야 한. 그리고 감사는 스스로 부정을 당하며 우리 모두의 권리와 자유를 위해 삶을 헌신한 이들에게 헌정되어 것이다. 


반세기 영국의 사법제도는 부분적인 비범죄화를 기념하면서 예전보다 많은 게이 양성애자 남성들을 체포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필자가 태어나기 4년전인 1980년에야 비범죄화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정부가 유죄선고로 삶을 망친 이들을 사면 거라고 한다. 사면이라... 사면이 아니라 고개 숙여 사죄를 해야 마땅하지 않을? 사면은 LGBTQ들이 무자비한 짓을 저지른 정부에 대해 내릴지 말지 결정해야 하는  맞 것이다. 올해로 81세인 키스 비들컴 옹의 예를 들어보자. 1950년대 그는 동성과 성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투옥되었다. 정부는 그에게 섹스 파트너들의 이름을 대면 형량을 대폭 줄여주겠다고 했고, 그렇게 발각된 사람들 중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이도 있었다. 


물론 영국 사회의 인식도 극적으로 변화했지만, 그건 모두 우리 LGBTQ 덕분이다. 이성 커플들은 길거리를 다닐 아무 생각 없이 손을 잡곤 한다. 하지만 동성커플들에게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애정표현이라 있는 이런 행동마저 정치적 반항행위가 되어야 한다. 올초 페컴에서는 청년이 남자친구와 손을 잡고 퍼브에 들어갔다가 유리잔으로 얼굴을 두들겨 맞은 사건이 있었다. 작년에는 커플이 채어링 크로스에서 손을 잡고 다니며 사람들이 퍼붇는 욕설을 동영상으로 담 공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사랑하는 이에게 애정을 표현했다는 이유로 겪어야 하는 증오를 신고하지 않고 지나간다.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는 동성애혐오와 트랜스젠더혐오는 성별규범을 규제하고 강화하기 위한 잔혹한 도구로 쓰이고 있으며, 아이들은 그로 인한 편견을 아주 어린 나이 때부터 내면화시키며 자라고 있다. 게이, 퀴어, 호모이반이든 일반이든남자답지 못한 행동 보일 때는 어김없이 이런 말들이 날라온다. 운동신경이 부족한 아이들, 치고박고 싸우지 않는 아이들, 여자애들에 대해 경멸하는 투로 말하지 않는 아이들 등등.. 아이러니한 이성애자들도 똑같이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국에서 50 이하 남성의 가장 사인은 자살인데, 이유 중에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뭐랄까.. 게이틱한 행동으로 치부된다는 것도 있다. 하지만 LGBTQ 청소년들의 경우 상황은 훨씬 심각하다. 열등감, 자신이 잘못됐다는 생각 또는 더럽다는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성장하다보니 이로 헤아릴 없는 피해가 초래되는 것이다. 


(최근에 진척이 있긴 하지만) 트랜스젠더들의 경우 위기감은 크다. 작년에는 트랜스젠더혐오에 의한 증오범죄가 폭증했지만, 처벌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스톤월 측에서 공개한 수치에 따르면, 트랜스젠더 청소년 10 8명이 자해를 적이 있고,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는 청소년도 절반에 가까운 것으로 드러났다. 모든 내면화된 수치심 때문이지만, 수치심은 우리가 아니라 그들이 느껴야 한다. , 청소년들(트랜스젠더, 동성애자, 양성애자 등등) 두려움과 자기혐오 속에서 자신이 잘못됐다는 생각, 자신은 더럽고 고장났다는 생각을 하며 자라도록 내버려둔 사회가 수치심을 느껴야 옳은 것이다. 어릴 받은 손상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다. 어릴 심어진 시한폭탄은 10, 20, 30 후에 폭발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러한 위기 앞에서 대책을 세우긴 커녕, 이론을 운운하며 프로그램을 축소시킴으로써 LGBTQ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피해를 줄일 있는 정신건강 서비스를 폐쇄시키고 있다. 


부분적인 비범죄화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영국정부에는 단도직입적으로말해 LGBTQ들의 존재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는 정당이 부상하고 있다. 끔찍하기 그지 없는 민주연합당(DUP) 북아일랜드에서 동성커플의 결혼할 권리를 부인해 왔고, 설립자는울스터를 계간죄로부터 구하자 캠페인을 이끌기도 했던 인물이다. 당수의 아내이자 하원의원 출신인 아이리스 로빈슨도 동성애는역겹고 혐오스러우며, 구역질나고 사악한 이라는 말을 내뱉었다. 이언 패슬리 주니어 민주연합당 의원게이와 레즈비언 행위는 정말 역겹다 했다. 결혼평등에 반대표를 던졌던 토리당의 마이클 팰런이우리당과 가장 공통점이 많은 정당은 바로 민주연합당이라고 발언을 LGBTQ 시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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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정부는 동성애자들을 교수형으로 다스리고, LGBTQ들을 위협하는 극단적인 이론을 퍼뜨리는 사우디 아라비아 같은 나라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해 안달이 나 있. 테레사 메이 자신도 LGBT들의 시민권에 반대표를 이끌어내기 위해 부단히 로비활동을 인물이다. 메이는 내무부 장관이던 시절, 동성애자 난민들은 돌아가면 처형, 고문, 심지어는 사형을 당할지도 모르는 나라로 강제출국 당하지 않기 위해 성교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제출해야 했다. 



이렇듯 지난 50년을 돌이켜 봤을 감사란 결코 있을 없다. 이미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우리 사회는 적어도 앞으로 이런 피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힘써야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나라를 좀먹고 있는 편견의 자취를 모두 근절해내야 것이다. 이번 50주년은 축하를 위한 날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투쟁한 이들을 기억하고, 그들이 이루려 했던 승리를 되새김하는 날이 되어야 것이다. 




- Owen Jones

- 옮긴이: 이승훈




Hatred of LGBTQ people still infects society. It's no time to celebrate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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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3



영국 동성애자들의 삶은 1967년 이후 어떻게 바뀌었을까: “우리 세대는 지금도 여전히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1967년 가결된 성추행법(Sexual Offences Act)는 하나의 전환점이었지만, 그 영향은 복합적이고 느린 것이었다. 사이먼 캘로우, 모린 더피 등의 인사들이 동성애 비범죄화를 전후로 한 삶을 회상한다.



동성애자 해방전선 시위. 1972년 런던. 사진: Clive Dixon/REX/Shutterstock



1967 6 14 11 30. BBC2에선 Late Nigh Line-Up 시작되고 있었다. 색서폰 소리와 함께 카메라가 진지한 표정의 토론 참가자들의 얼굴을 비췄다. 패널은 의사, 사회심리학자, 보수당 의원과 작가로 구성되어 있었다. 당시 가장 뜨거웠던 주제 , 동성애에 대해 토론하며 당일 저녁에 방영되었던 다큐멘터리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말하는 자리였다. 사회자 마이클 딘의 말을 빌자면 “ 어떠한 비판이나 의견 없이 동성애자들이 스스로 처한 상황을 직접 말하는 방송이었다. 


토론 참가자들 중에서 공통된상황 처해 있는 사람은 모린 더피 뿐이었다. 영국에서 가장 초창기에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이었던 더피는 레즈비언들의 삶을 다룬 소설 ‘The Microcosm’ 작가로, 책은 그보다 앞서 출판되었었다. 올해로 83세인 더피는 그날 저녁이 동성애자의 가시성에 있어 중요한 순간임은 분명하지만, 자신은 다른 동성애자들에 특권적인 위치에 있었다고 한다. “프리랜서 작가였으니까, 동성애자임이 발각되어서 직장을 잃을 염려도 없었어요. 숨길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의견을 피력하기 수월한 위치에 있었다고 있죠.” 게다가 여성이었던 더피는 사생활이 범죄로 내몰릴 우려도 없었다. 당시 법은 남성간의 동성애만을항문성교라는 용어하에 종신형으로 다스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을 드러내길 꺼려했던 남성들이 많았고, “여건이 되는 여성들이 대신 일어나 법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운동을 펼쳤다 한다. 


지금으로부터 50년전, 그러니까 Late Night Line-Up 방영된지 성추행법(Sexual Offenses Act 1967) 여왕의 승인을 받았다. 법에는사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동성애 행위는 당사자들의 나이가 21 이상이고, 합의에 의해 이루어질 경우 범법행위가 아니다 되어 있다. 영국 역사상 법이 남성간의 성행위를 대대적으로 허용 사례였다. 


성추행법의 제정은 1954 구시대적인 법제도를 현대화시키기 위한 목적하에 설립된 울픈든 위원회의 연구결과를 시행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기에 가능했다. 지그문트 프로이드, 알프레드 킨제이를 비롯한 학자들의 업적과 개인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 덕분에 동성애에 대한 인식도 서서히 변화하고 있었고, 1957 울픈든이 사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동성애 행위를 범죄화해서는 안된다는 결론 내렸을 때는 캔터버리 대주교마저일반적으로 법도 개입해서는 안되는 신성한 사생활의 영역이 있다 이에 동의하는 입장을 내비쳤다. 


리오 앱세이(Leo Abse). 1969년. 사진: Evening Standard/Getty Images

울픈든 위원회에서 결론이 공개되 동성애 법개정 협회(Homosexual Law Reform Society) 등의 압력단체들이 결성되어 기세를 더했다. 런던에서 열린 동성애 법개정 협회의 1 회의에는 저널리스트들과 정신분석학자 주교의 호소를 듣기 위해  수천여 명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의회는 계속해서 사안을 미루다가 1966년에야 해럴드 윌슨 수상의 정권이 애런 보수당 상원의원과 리오 앱세이 노동당 하원의원의 평의원 법안을 저지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법안은 101 16으로 하원을 통과하게 된다. 하지만 법안은 사적인 행위에 대한 규제 완화의 대가로 "공공질서" "품위" 중점을 두고 있는데 따라서 일부 성추행에 대한 처벌은 2년에서 5년으로 형량이 늘어났다.


이들의 노력은 자긍심과는 거리가 것이었는데, 애런 경은과거 감금된 경험이 있거나 앞으로 교도소에 입성할 이들은 차분하고 품위있게 처신하길 바란다 말을 남겼다. , 괜한 분란을 일으키지 말란 소리였다. 


당시 17살이었던 카터는 법안 가결에 관한 기억이 희미하다고 한다. 그가 법안의 의의를 깨달은 시간이 지나서였다. 70년대 커밍아웃의 계기가 되었던 대학교 동성애자 협회도 비범죄화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덕분에 자유롭게 만나 모임을 결성할 있게 되었죠.“ 그것이 중요한 이유는모일 만한 장소가 없으면 결국 크루징이나 묻지마 섹스로 치닫게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곁눈질하며 긴장하던 사람들이 섹스를 위한 목적이나 타협, 두려움 없이 적절한 방법으로 대인관계를 맺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1967 당시 18살이었던 배우 사이먼 캘로우 또한 비범죄화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다고 한다. “법안이 가결되기를 고대하며 TV 앞에 앉아 있진 않았어요. 당시 법적 상황이란 동성애자들을 감싸고 있던 전반적인 우울함의 일부분이었죠. 동성애자라고 하면 범죄자 아니면 끔찍한 변태로 받아들여지던 시대였으니까요.” 학교를 마치고 서점에 취직한 캘로우는 Old Vic 극장에서 활동하던 로렌스 올리비에에게 팬레터를 보냈다. 편지를 받아본 올리비에는 캘로우에게연기가 그렇게 좋으면 직접 와서 보라 했고 마디가 캘로우의 삶을 바꿔놓았다고 한다. “극장에 가보니 지금까지와는 수많은 게이들이 굳이 자신의 성향을 입밖에 내진 않았지만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도 완벽하지만은 않았다. “(극작가) 오튼이 케네스 할리웰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매표소 직원이 오튼과 절친한 사이였어요. 그곳에서도 게이들의 삶은 폭력, 범죄, 절박함과 무관하지 않았죠.”


동성애자들의 삶을 우울하게 하는 뿐만이 아니었다. “ 매표소 직원한테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라는 책이 있었는데, 당시만 해도 굉장히 충격적인 소설이었죠. 크로스드레서와 매춘부들의 삶이 그대로 드러난 책을 읽으며, 이렇게 되긴 싫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식으로 말하면동성애의 긍정적인 묘사 결여되어 있었죠.”


하지만 희망이 전혀 없었던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호크니 축복이나 다름없었습니다. 60년대에 등장한 그는 게이들의 삶을 위트와 재미, 가벼움과 기쁨으로 훌륭하게 그려냄으로써 정말 힘을 준 것 같아요.”



사이먼 캘로우. 1979년. 사진: Alastair Muir/Getty Images



캘로우도 법개정이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이 과대평가되고 있다는 동의한다. 연극계와 같은 서브컬쳐 밖에서 게이들의 삶은 여전히 매우 고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혼자 성욕을 해결하거나 21 세 이상인 상대와 성관계를 맺는 건 문제 없었지만, 만약 집안에 제삼자가 있다면 법에 저촉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이상한 법이 아닐 없죠.” 뿐만 아니다. “ 2~3 동안은 경찰이 마치 동성애가 더이상 불법이 아니라는 사실이 못마땅하기라도 법이 미치는 한도내에서 작정하고 사람들을 잡아들였습니다.” 실제로 동성애 행위에 대한 처벌은 예전보다 증가했다. 캘로우는 여건이 되는 사람들은 동성애자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 영국을 떠났고, 수많은 영국인들이 개방적인 분위기를 찾아 무슬림 국가 모로코의 탕헤르 같은 곳에 모여들었다고 회상한다. 


1968 런던을 떠나 벨파스트 대학교에 들어간 캘로우는 마치 타임머신을 기분이었다고 한다. (북아일랜드에서는 1967년도 제정법이 적용되지 않았으며, 동성애는 1982년까지 불법이었다.) “하지만 삶이 그리 단순하지만도 않은 , 거기서도 다들 법의 망을 피해다니며 아무 문제 없이 성생활을 누리더라구요.” 북아일랜드에서도 잘만 찾아보면 런던이나 탕헤르와 같은 자유분방한 삶을 즐길 곳은 있었다고 한다. “ 묵던 B&B 숙소에서 일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잉글랜드 출신이었고 끼가 굉장히 많았어요. 남자친구는 벨파스트 사람이었는데, 다른 남자들이 있을 자기 엄마로 분장하는 즐겼죠. 다들 서로를 무슨무슨 부인이라고 불렀어요. 번은 저녁 식사에 초대 받아 갔는데 다들 여장 차림으로 브릿지 게임을 하더라구요.”


비슷한 시기 벨파스트 서부에는 테리 스튜어트라는 청소년이 있었다. 카톨릭계 노동자 가정 출신인 스튜어트는당시 북아일랜드에선 엄격한 윤리관 때문에 동성애자는 고사하고 이성애자로 살기도 힘든 이었다고 한다. 겨우 13살이었던 그는 Late Night Line-Up 시청하거나, 데이빗 호크니의 작품을 감상하기보다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스캇 맥켄지의 San Francisco 들으며 다른 삶을 꿈꾸곤 했다고 한다. 당시 그는 자신이 학교에서 그렇게 따돌림을 당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동성애혐오였던 같다고 한다. 스튜어트는 18 자신의 섹슈얼리티에 눈을 뜨기 시작했지만, 세상에 자기 같은 사람은 없을 거라는 생각에그냥 혼자서 끙끙 앓기만 했다 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구원이 찾아왔다. 앨런 위커의 세계여행 다큐 Whicker’s World에서 미국 동성애자들의 결혼식을 다룬 것이다. “그걸 보며, 나만 이런 아니었구나싶었죠. 물론 형은 아일랜드 카톨릭 신자가 그런 보면 된다며 당장 TV 끄라고 했구요.”


스튜어트는 동성애가 불법인 곳에서는 떳떳하게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샌프란시스코는 못가지만 적어도 런던에서 자신의 삶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는 런던에서 게이바를 두어번 드나들다가 아는 얼굴과 마주치게 된다. “아일랜드 알고 지내던 친구가 거기 있더라구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이다가여기 기네스 정말 맛있네라고 하니까 친구가기네스는 무슨 지랄. 기네스 마시러 여기 오냐? 게이지?’라고 하더군요. 그래서그런가?’ 하고 얼버무렸죠.”



동성애자 해방전선 배너. 1971년. 사진: Clive Dixon/Rex/Shutterstock



70년대 중반에 이르자 법개혁에 힘입어 새로운 형태의 동성애자 모임이 대두하게 된다. 고향 친구로부터 런던 남부의 브릭스턴에 있는 불법 점거 건물에 대해 얘기를 들은 스튜어트는 그곳에 가보기로 한다. 스튜어트는 그곳에서 동안 40 명의 게이들과 함께 생활했고, 도로 청소부로 일하며 쓰레기 수거통을 뒤져 쓸만한 가구를 찾아내곤 했다. 한편 경찰은 이들을흑인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동성애자들이 원하는 삶을 살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았다 한다. 


스튜어트가 그곳에서 지낼 때도 경찰의 습격을 당한 적이 있지만, 가끔은 경찰의 무관심이 무서울 때도 있었다고 한다. “한번은 우리가 살던 건물에 누가 화염병을 던진 적이 있는데, 마침 근처에 있던 터라 건물에서 연기가 피어나는 보이더라구요. 그런데 경찰이 와서 보고는에이, 퀴어들이네라며 아무것도 하고 그냥 가버렸어요. 동성애자들을 겨냥한 폭력이 만연했지만 당국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죠.”


하지만 이렇듯 불안정한 게이들의 처지가 스튜어트의 삶에 영향을 미친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80년대였는데, 여파는 엄청났다고 한다. 1981 어느날 아침 자전거를 보험에 들고 돌아가던 길에 들른 채링크로스 로드의 공중화장실에서 경찰에 연행되고 것이다. 화장실에는 스튜어트 말고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연행되는지 전혀 없었다고 한다. 경찰은 체포사유가요구 행위라고 했다. 스튜어트는오해 마세요. 제가 무슨 도덕적인 사람도 아니고 묻지마 섹스도 하는데, 이번만은 아무것도 했다구요라며 반박했다. 그는 법원에서도 혐의를 부인했지만 결국 과반수평결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았고 벌금 20 파운드형(오늘날의 80 파운드 , 12 상당) 처해졌다. 얼마전 More4 채널의 다큐멘터리 ‘Convicted for Love’ 출연해 당시 상황을 언급한 그는 아직도 그때의 전과기록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대인관계가 넓은 편이었던 스튜어트가 체포되자 이성애자, 동성애자 없이 그를 아끼던 사람들이 돕기 위해 나섰다. 현재해크니 왕립 자치구 독립 자문기관 대표로 활동중인 그는 자신이공동체의 기둥과도 같은 존재라고 한다. (근데 진짜 왕립인지 묻자퀸들이 많으니까 왕립이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그에게 비범죄화 50주년을 맞은 소감에 대해 물어봤다. “부분적인 비범죄화죠. 완전히 비범죄화된 아니니까. “사적인 공간에서 법적성인이라는 표현에서 사적인 공간이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파트너와 여관방을 잡고 섹스할 수도 있지만 그건 공적인 장소에 해당하거든요. 침실에서 문을 걸어잠근다 해도 건물 안에 다른 사람이 있으면 안되는 거잖아요. 비범죄화되지 않은 영역이 너무 많은 거죠.” 그는 유죄판결을 받고 건강이 악화되어 원하던 직업을 구하는 데에도 지장이 컸다고 한다. “저처럼 재판을 받고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사람들의 가정도 완전히 파탄났죠정말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 싶어요.”


스튜어트는 이번 50주년을 맞아 자신과 같이 공공장소에서 요구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은 수천여 명의 남성들의 낙인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관련법은 2003년에 폐지되었지만 앨런 튜링에게 적용되었던 성추행 금지법과는 달리 사면이 적용되지는 않았다. 스튜어트는 7 27 앰버 러드 내무장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 50주년을 착찹한 심정으로 맞은 스튜어트 뿐만이 아니었다. 법안 가결 당시 21살이었던 크리스 브로클스비는 성추행법이 암흑기의 단상과도 같다고 한다. “지금 돌이켜보면 마치 지하조직의 일원 같은 분위기는 있었던 같아요. 다들 어떻게든 섹스를 즐기고 애인도 구하고 했죠. 하지만 그러면서도 불안감 같은 있었어요. 우리 세대는 지금도 그때의 불안감이라든지 빈민가의 일원이라는 느낌 같은 남아 있는 같아요.” 그는 한때 아무 거리낌 없이 게이들을 잡아넣던 이들에 대한 의심을 아직도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 전에 경찰이 소수인종과 동성애자들을 상대로 제작한 공익광고를 적이 있는데 전혀 신빙성이 가더라구요.”


브로클스비는 비교적 진지했던 동성애 법개혁 협회가 뉴욕의 스톤월 폭동에 힘입어 동성애자 해방전선의 저항운동으로 전환하던 70년대초를 회상했다. “해방전선은 하룻밤 사이에 대두했습니다. 물론 그전에 동성애자 프라이드 행진도 있었죠.” 1972 처음 개최된 동성애자 프라이드 행진에는 2천여 명의 남녀가 몰려들어 하이드 파크를 가득 메웠다. 브로클스비가 행진에 참가한 그로부터 후였다고 한다. “교편을 잡고 있던 터라 아는 사람을 보면 어쩌나 하고 내심 걱정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행진에 참가하기로 한다. “최종 목적지는 사우스뱅크에 있는 주빌레 가든스였는데, 발디딜 없이 인파가 모여서 깜짝 놀랬던 기억이 나네요.”


하지만 암흑기는 또다시 도래했다. 1988 에이즈 사태가 극에 달했던 시절 영국 정부는 안그래도 비탄에 빠져 있던 동성애자 공동체를 걷어차 버리기로 한다. 악명높은 28조로 학교내 동성애홍보 함께동성애를 의사(疑似) 가정관계의 형태로 받아들이는 금지한 것이다. “대처 수상이 동성애자들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분노가 극에 달했고, 저도 행진에 다시 참가했습니다.” 28조는 2003년에 이르러서야 폐지되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2000년에 폐지됨) 


더피도 브로클스비와 같은 생각이다. 그녀는 동성애자들 앞에서 강연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이미 승리를 거뒀다는 생각은 절대 해서는 됩니다. 언제든지 뒤집힐 있어요. 실제로 세상에는 동성애를 사형으로 다스리는 나라가 여전히 존재하구요.”


1967년으로부터 5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동안 수많은 승리가 있었지만, 동성애자들은 만큼 수치와 탄압에 맞서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스튜어트의 상황에서 있듯 성추행법의 제정으로 정부가 주도한 박해가 끝난 아니었다. 


더피는 아직도 과거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오스카 와일드 시절부터 수십년 동안 고문에 가까운 박해를 받아왔습니다. 앨런 튜링의 케이스가 그렇죠. 그런 상처가 아물려면 오랜 세월이 걸릴 겁니다.”




- David Shariatmadari

- 옮긴이: 이승훈




How 1967 changed gay life in Britain: ‘I think for my generation, we’re still a little bit uneasy’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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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6



포위당한 카메룬 LGBT 인권센터, 폐쇄키로



2015년 Camfaids는 인권옹호가들에게 지지를 표명하기 위해 야운데 시가지에서 행진을 기획했다. 사진: Camfaids



신체적 폭력과 살해협박에 시달려 카메룬 LGBTI 옹호단체 Camfaids 본부를 일시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Camfaids 본부는 LGBTI들을 위한 회합의 장소 동성애 혐오 피해자들의 피신처로 활용되어 왔다. 협회 관계자들에 따르면 본부 폐쇄는 7 17 이루어졌으며, 보안장치 개선을 위한 모금활동 기간 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다음은 이번주 본부 폐쇄를 결정한 Camfaids 측의 성명문의 대략적인 번역문이다:




폭행, 신체적 언어적 폭력, 공포, 트라우마...


센터에서 LGBTI 재소자들에게 보낼 선물을 정리하는 회원들. 사진: Camfaids

카메룬 에이즈 재단(Camfaids) 카메룬 야운데 티티 가라쥬에 위치한 저희 본부가 지난 동안 겪었던 극적인 상황에 대해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Camfaids 본부는 강의, 인권회의 LGBTI, 특히 트랜스젠더들에 초점을 맞춘 다양한 활동을 통해 ㅁ여성을 쌓아 왔습니다. 그러나 일부 이웃 주민들이 이러한 상황에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고, 저희 회원들을 겨냥해 다음과 같은 신체적, 언어적 폭행을 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IDAHOT, 5 17) 행사를 준비하던 트랜스젠더 직원 명이 현지 주민들에 의해 신체적 구타와 함께 욕설을 들었습니다. 이들은 저희 직원들에게더러운 호모”, “악마의 자식들이라는 폭언을 퍼붇기도 했습니다. 


* 같은 시기 Camfaids 본부에서 진행되던 2017년도 미스 & 미스터 IDAHOT 선발대회 리허설 때는 저희 직원 대회 참가자들을 향해 이웃주민들이 돌과 유리병을 던지고 물을 퍼부었습니. 과정에서 외부에 설치되어 있던 감시 카메라와 현관문이 파손되었습니다. 


* 사건 직후 야운데의 다른 LGBT 단체에 소속되어 있으며 Camfaids 도움을 받고 있던 회원이 이웃들에 의해 이틀 연달아 심각한 폭행을 당했습니다. 치욕적인 사건이 일어나자 이웃들은 저희 협회가 동성애를 옹호하기 때문에 동네에 악영향이 미친다며 직원 회원들이 본부에 드나들지 못하도록 입구를 막기로 했습니다. 


현재 저희는 조롱과 모욕, 차별, 추방과 살해가 언급된 익명의 협박편지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Camfaids 로고

초조함과 패닉, 두려움으로 인해 Camfaids에서는 활동을 제대로 이어갈 없는 상황이며, 자신의 신변이 얼마나 불안정한지를 깨달은 스탭들도 침울해 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2017 7 17일부터 Camfaids 센터를 무기한 폐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Camfaids 측에서는 미셸 토게 변호사의 도움에 힘입어 저희에게 협박과 폭행을 가했던 특정 인물들을 상대로 사법경찰 지역부에 고소장을 제출했으며 당국으로부터 답변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밖에 다른 개입법을 모색중인 한편, 저희 단체가 영국적으로 직면해 있는 심각한 치안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원도 물색중입니다. 지원을 통해 평등한 건강권, 개인의 권리에 대한 존중, 만인을 위한 자유 카메룬 LGBTI들을 향한 인내와 수용 증진을 위해 활동을 이어갈 있을 것입니다. 


관련기사:

카메룬: LGBT 혐의로 7 구금, 인권침해 58 (2017 5, 76crimes.com)

카메룬 LGBT 단체들 협력에 나서 (2017 1, 76crimes.com)

카메룬 경찰동성애 의혹 남성 9일간 구금 (2016 4, 76crimes.com)

카메룬경찰의 추행에 맞서는 LGBTI 인권가들 (2016 4, 76crimes.com)  

카메룬에서  인권가 폭행도움 절실 (2015 7, 76crimes.com)

카메룬: 체포, 사기 그리고 협박 (2016 2, 76crimes.com)




- COLIN STEWART

- 옮긴이: 이승훈 




Under siege, LGBT rights center closes in Cameroon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76 Cr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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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6



이태리 커플, 휴양지에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예약 거부당해



“이 나이에 마치 제가 잘못된 사람인 것마냥 취급당하는 것을 잠자코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이태리의 게이 커플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게스트하우스 예약을 거부당했다. 


나폴리 출신의 커플은 해변도시 산타마리아에서 휴가를 보내기로 하고 예약을 하기 위해 게스트하우스 주인에게 연락을 했다고 <게이 타임스>지는 전했다. 


그러나 주인으로부터예약 감사드립니다. 객실 대여는 올해가 처음인데 구시대적으로 들릴진 모르지만 동성애자와 애완동물은 사절하오니 양해바랍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사람은 이태리 LGBTI 인권옹호단체인 아르치게이 나폴리(Arcigay Napoli) 사건을 신고했다. 


나이에 마치 제가 잘못된 사람인 것마냥 취급당하는 것을 잠자코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정말 불공평한 일입니다. 우리가 겪은 일을 수만여 명의 젊은이들도 겪을 거라고 생각하면 너무나도 화가 나고 가슴이 아픕니다.”


남성은 12 전에 커밍아웃했으며 지금 파트너와는 7년간 함께 오고 있다고 한다. 


아르치게이 나폴리 측은 이번 사건이중대한 차별행위이자 동성애 혐오 행위라며, 숙박 예약 사이트들로부터 해당 업소를 삭제시키기 위해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 JESS JONES

- 옮긴이: 이승훈




COUPLE ON VACATION IN ITALY TURNED AWAY FROM GUEST HOUSE FOR BEING GAY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Star Obser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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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9



보고서: 러시아 동성애 선전금지법, 오히려 아동들에게 유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왼쪽)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오른쪽)을 게이 커플로 희화한 초상화 작품. 사진: The Washington Post



러시아는 아동을 보호하려면 동성애 선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인권감시단(HWR)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실제로 금지법은 “LGBT 아동은 물론 LGBT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정보를 차단하고 낙인을 강요하는 , 직접적인 피해를 끼치고 있다 한다. 


이번 보고서에는 외에도 러시아의 발언의 자유 제재 현황에 관한 다양한 결론 언급되어 있다.




러시아: 표현의 자유 침해 



온라인상의 표현 제재하고 비판적인 목소리 옥죄는 탄압적인



이하 보고서 내용 중에서동성애 선전관련 부문에 이해를 돕기 위해 부제를 달아서 소개한다:



법 135-FZ호, '동성애 선전' 금지법의 기본내용


러시아 대통령을 ‘게이 광대’로 분장시킨 스페인의 反푸틴 시위자들. 사진: The Telegraph

135-FZ호는 특히아동을 보호하고, 특히비전통적인 성관계 홍보를 통해전통적인 가족 가치관의 부정을 목적으로 한 선전활동을 금지하기 위한 것으로, 러시아에서 비전통적인 성관계”라고 하면 대개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LGBT)들의 성관계로 인식되고 있다. 


법에 따르면, 아동을 대상으로 비전통적인 성행위선전활동에는아동을 대상으로 비전통적인 성관계 , 그러한 성관계의 매력,  전통적인 성관계와 비전통적인 성관계에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는 왜곡된 관점을 주입하기 위한 정보 공유, 비전통적인 성관계를 흥미로운 것으로 보이기 위한 정보 배포등의 행위가 포함된다고 한다: 


또한 법에는건강과 발육 행정위반법에 유해한 정보로부터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법에 일련의 수정을 포함하고 있으며, “비전통적인 성관계 선전으로 간주되는 온라인 정보를인터넷 블랙리스트 추가하도록 하고 있다. 


커밍아웃 협회의 시위자. 체포가 시작되기 직전인 2016년 7월 12일 상크트페테르부르그 마르소보 폴례에서.

선전금지법은 언론, TV, 라디오, 인터넷을 통해 제공되는 각종 정보가 해당되며, LGBT들의 사랑을 평범하고 건전한 것으로 묘사한 모든 내용물에 적용된다. 법에 의거해 개인이 18 미만 아동를 대상으로 비전통적인 성관계 홍보 책임이 있을 경우, 행정위반으로 5000루블(95 ) 벌금을 물게 되며, 정부 관료의 경우 40,000-50,000 루블(76~95 ), 단체의 경우 백만 루블(9백만 ) 벌금과 함께 최고 90일간 활동정지 처분을 받도록 되어 있다. 인터넷 통신매체를 통해 이와 같은 선전행위를 했을 경우 벌금은 높아진다고 한다. 



동성애 혐오 vs. 동성애


비탈리 밀로노프. 사진: Wikipedia

이번 보고서의 동성애 선전금지법 항목 서두에는 동성애 혐오에 찬성하는  러시아 관료의 발언이 실려 있다. 


"누구든 동성애혐오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그들이 동성애 혐오에 반대하는 날을 제정한다면, 우리도 동성애에 반대하는 날을 제정할 있다. 동성애 혐오는 동성애보다 훨씬 유해하기 때문이다."


- 비탈리 밀로노프 러시아 연방 하원의원



법의 적용방식


비전통적인 성관계 긍정적으로 다룬 정보는 무조건 러시아 내의 공개 토론장에서 금지된다. 러시아는 연방차원에서 동성애 홍보를 금지하는 근거로 만약 동성간의 성관계를 사회적으로 수용가능한 것으로 묘사하고, 이성간의 성관계와 동등한 가치관을 부여할 경우 아동들의 지적, 윤리적, 정신적 복지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상 금지법은 아동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LGBT 아동 LGBT 가정에서 자라는 아동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차단하고 이들에게 낙인을 강요하기 위한 것이다. 


2014 9 23 러시아 헌법 재판소는 동성애 선전 금지법이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가족 아동등의 가치관을 수호하는 것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또한, 법이 사생활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며, LGBT들의 사랑에 관한 토론을 검열하지도 않는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그러나 아동들을 유해정보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2012년에 제정된 법에 의해비전통적인 성관계의 홍보내용을 담은 것으로 간주되는 정보는 무조건 금지 웹사이트 명단에 올리고 있다. 


한편 2013 6 유럽 법률 사안 자문단체인 베니스 위원회는 견해서를 통해 러시아가 채택한 LGBT 연방법 초안은 유럽 인권협약은 물론 국제 인권 기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으며, 법의 목적은전통적인 가치관과 가족 섹슈얼리티에 대한 인식을 진흥시키고 홍보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전통에 부합되지 않는 이들의 표현과 선전활동을 처벌함으로써 이들에게 제재를 가하기 위한 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유럽 평의회, 유럽 안보 협력 기구, 유엔 인권 고등판무관 사무소 등의 기구도 법을 규탄하고 있다. 


유엔 아동 권리 위원회는 2014 1 정기 검토회에서 러시아 당국은 동성애 홍보 금지법을 철폐하고,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의 평등과 비차별 인식을 제고시킴으로써 LGBT 아동 LGBT 가정에서 자라고 있는 아동들이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도록 해야 이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러한 권고에 부응하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고 있지 않으며, 본기사를 작성하는 시점에서 여섯 명이 LGBT적인 선전 금지법에 의해 처벌되었다. 



사례1 : 엘레나 클리모바 (니즈니 타길 시)


엘레나 클리모바. 사진: Amnesty International

2014 11 로스콤나조르(러시아 방송통신주관부처) 온라인 모임 Deti-404비전통적인 성관계 홍보내용 담고 있다며, 설립자 관리자인 엘레나 클리모바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로스콤나조르는 Deti-404에서 발행하는 정보는아동들로 하여금 동성애자가 용감하고 강인하며, 자신만만하고 의지가 강한 사람이자 존엄성과 자존감을 겸비한 사람이라고 믿도록 우려가 있다 주장했다. 


2015 1 23 니즈니 타길 시의 법원은 클리모바가비전통적인 성관계 홍보 내용이 담긴 정보를 유통했다며 5 루블의 벌금을 선고했다. 2015 3 25 항소법원은 재판 과정에서 절차상의 문제가 다수 있었다며 재심을 명령했지만,니즈니 타길 법원은 재심에서도 유죄를 선고하며 벌금 납부를 명령했다. 



사례 2: 세르게이 알렉세옝코 (무르만스크 시)


세르게이 알렉세옝코. 사진: TowleRoad

2016 1 18 러시아 북서부 무르만스크 시의 법원은 LGBT 인권가인 세르게이 알렉세옝코가 동성애 선전금지법을 위배했다며 벌금형을 선고했다. 


알렉세옝코는 LGBT들을 상대로 법률 심리사회적 지원을 제공해 오던 Maximum라는 현지단체의 회장으로, 법원은 단체의 웹사이트에 실린 일부 내용이 LGBT들의 사랑을 긍정적으로 다루고 있다며 벌금 10 루블을 선고했다. 지난 10 Maximum 외국 단체로 등록하라는 압력에 못이겨 문을 닫은 직후에 내려진 판결에 따르면 단체장인 알렉세옝코는 단체의 공식 브콘탁테(VK) 계정에 정보를 게시한 책임이 있으며, 알렉세옝코 본인도 아동들이 사이트에 접근할 있음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다고 했다. 4 1 무르만스크 법원도 지방법원의 원심 판결에 동의했다. 


경찰 측은 신원미상의 제보자들로부터 Maximum 브콘탁테 계정에서 이뤄지는불법행위 대한 신고가 있었다며, 경찰 측이 지난 5 의뢰한 심리언어학 감정에 따르면 일부 게시물에비전통적 성관계의 홍보 성격을 띄는 언어 심리학적 요인이 발견되었다 밝혔다. 


이에 알렉세옝코는 인권감시단 측에 소위동성애 홍보 간주된 게시물 중에는어린이 여러분! 동성애자란 용감하고 강인하며, 자신만만하고 의지가 강한 사람이자 존엄성과 자존감을 겸비한 사람입니다라는 다른 유저의 게시글을 공유한 것이며, 다른 게시물은 청년간의 성교 장면을 묘사한 19세기 러시아 작가 미하일 레르몬토프 시였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러시아 반동성애법, 유럽 재판소에서 패소 (2017 6, 76crimes.com) * 가디언지 관련기사 

체첸의 게이 인권: 모스크바에서 활동가들 서명운동 펼쳐 (2017 5 11, BBC)

용감한 러시아 단체 덕분에 체첸 게이 남성 수십 목숨 구해 (2017 5 9, PinkNews)

체첸 박해 종식 요구하는 시위 (2017 5 6, 76crimes.com)

벨라루스, 러시아식 동성애 선전금지법 도입하나 (2016 1, 76crimes.com)

러시아 법원, 동성애 선전금지법은 합헌 (2014 10, 76crimes.com)

혹독한 동성애 금지법 채택 목전에 키르기즈스탄 (2014 6, 76crimes.com) * 미트르 관련기사 

러시아 동성애 선전금지법 처벌 케이스 (2013 12, 76crimes.com)

76 Crimes 러시아 동성애 선전금지법 관련 기사 모음 





- COLIN STEWART

- 옮긴이: 이승훈 




Report: Russia’s anti-‘gay propaganda’ law hurts kids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76 Cr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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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8



말레이시아: 시위 이어지자 게이 영화 상영 취소



일부 이슬람주의 단체들이 페낭 시네마측에 베트남 영화 ‘Lost in Paradise’의 상영을 취소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말레이시아 페낭 공연예술센터가동성애 이슬람주의 단체들의 반대에 부딛혀 스토리를 다룬 베트남 영화 ‘Lost in Paradise’  상영을 취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연예술 센터 측은 화요일 페이스북을 통해예측불가능한 상황으로 인해 상영이 예정되어 있던 영화를 대체하기로 결정했다 밝혔다. 


<New Straits Times> 센터 대변인의 말을 인용해관리팀에서 영화가 민감한 주제를 담고 있기 때문에 상영에 부적절하다는 권고가 있었기 때문에 다른 작품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전했다. 


이슬람주의 단체 Jaringan Muslimin Pulau Pinang(JMPP: 페낭 무슬림 네트워크) 하피즈 노르딘 회장은 공연예술 센터가 상영작품을 선정할 신중을 기해야 것이라고 경고했다. 


진정 말레이시아인이라면 아무리 센터 내에서 상영한다 해도 국내에서 동성애 홍보의 우려가 있는 영화를 대중에게 소개해서는 안된다는 것즘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친이슬람주의 계열 포털 사이트인 IsmaWeb menara.my 항의성 기사를 내보냈다. 


부응옥당 감독이 제작한 영화는 남성간의 삼각관계와 남성 성매매를 다룬 작품으로, 토론토 국제영화제, 밴쿠버 국제영화제 부산 국제영화제 등에서 상영되었다. 




- 옮긴이: 이승훈




Screening of ‘Gay’ Film Cancelled in Malaysia After Protests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Frid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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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4




사진: 검은 암사자로 산 1년






남아프리카의 사진작가 자넬레 무홀리가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겪는 증오범죄, 동성애혐오, 부당함을 담기 위해 일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화상을 찍었다. 사진전 Somnyama Ngonyama(검은 암사자 만세)는 런던 오토그래프(Autograph)에서 10월 28일까지 개최된다.


* “두렵지만 사진 전시는 이어가야죠.” - 자넬레 무홀리의 저항사진 365점.





Phila I, 2016년 파크타운에서.

자넬레 무홀리(Zanele Muholi), "제 예술은 정치적입니다. 쇼를 위한 것도, 유희를 위한 것도 아니예요." 이하 모든 사진: Zanele Muholi /. Courtesy of Stevenson, Cape Town and Johannesburg and Yancey Richardson, New York





Ntozakhe II, 2016년 파크타운에서.

더번에서 자란 무홀리는 사진이 자신을 배운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제게 유일하게 다가온 게 사진이었으니까요. 제 나름대로의 표현방식으로 예술을 사용하는데, 그 과정에서 치유도 되는 것 같아요."





Somnyama Ngonyama II, 2015년 오슬로에서.

초창기에는 "남아프리카의 사진작가로서, 남아프리카의 여성으로서, 그리고 흑인이자 레즈비언의 정체성을 가진 남아프리카인으로서 확고한 지위를 주장하기 위해" 작품을 제작했다고 한다.





Nomalandi Wenda, 2016년 파크타운에서.

"일년 동안 수많은 사건과 경험을 거치는데, 그 소중하고 특별한 순간들을 사진으로 연결해 보고 싶었습니다."





Kwanele, 2016년 파크타운에서.

여행용 트렁크를 포장할 때 썼던 랩으로 머리를 감싸고 찍은 사진. "입국할 때 인종을 표적으로 심문이 이뤄지곤 하는데, 세관이 던지는 질문은 상대방의 정체성과 피부색와 연관된 거죠.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나면 마치 쓰레기가 된 느낌도 들고, 왜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항상 이런 일이 일어날까 싶기도 하죠."





Sebenzile, Parktown, 2016.


환경파괴와 조상들의 전통을 표현하기 위해 플라스틱 튜브를 이용했다.





Somnyama I, 2014년 파리에서.

"늘 심문받고, 침해받으며, 폄하되는 흑인의 몸 자체가 소재죠."





Zamile, 2016년 콰테마에서.

남아프리카 경찰소에서 나눠주는 담요를 쓰고 잔인함과 안락함을 동시에 표현한 작품.





Sibusiso, 2015년 이탈리아 사르디나 칼리아리에서.

레즈비언 인권가이기도 한 무홀리는 집에 강도가 드는 등, 늘 폭행의 표적이 되어 왔다고 한다. "두렵지만, 딱히 대책이 없잖아요?"




Bester I, 2015년 마요테에서.

가사 노동자였던 어머니에게 바치는 작품. 빨래집게로 우리에게 친숙한 아프리카의 이국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Thulani II, 201년 파크타운에서.

2012년 파업 광부 34명이 경찰에 의해 살해당한 마리카나 학살 사건을 추모하기 위한 작품. 






Vile, 2015년,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무홀리는 자신이 예술가가 아니라 ‘비주얼 행동주의자’라고 한다.



- 옮긴이: 이승훈




My year as a dark lioness – in pictures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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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1




체첸 살해남성 27 명단 공개돼




<Novaya Gazeta>지가 체첸에서 살해당한 남성 27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Novaya Gazeta>지가 정부의 승인하에 자행되는 게이 박해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체첸 게이 남성 스물일곱 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러시아 소식지 <Novaya Gazeta> 올초 체첸의 게이 숙청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 화제를 모았고, 국제사회는 체첸의 인권 침해 실태에 분노했다.


<Novaya Gazeta> 이번에는 체첸 수도 그로즈니에서 목숨을 잃은 게이남성 스무여 명의 명단을 공개했다고 <게이스타뉴스>지는 전했다. 


처형은 이들이 구금된 직후인 1 25일에서 26 사이에 이루어졌다고 한다. 


<Novaya Gazeta>저희 소식통에 따르면, 구금된 이들은 당일 저녁 총살당해 기독교 묘지 여러 공동묘지에 황급하게 뭍혔다'며, 체첸 지도자 람잔 카디로프의 명령 하에 지금까지 50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러시아 수사 


GCN 7월호에서는 키아라 맥그라탄이 러시아와 체첸의 격동에 관계를 소개하며 블라디미르 푸틴도 카디로프의 행동이 유발한 국제사회의 비난에 싫증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있다. 


<Novaya Gazeta> 기사가 나가자 아일랜드를 비롯한 수많은 국가들이 체첸 게이 숙청의 일환으로 자행되는 인권침해 실태에 공식적인 조사를 실시하도록 요구해 왔다. 


<Novaya Gazeta> 수사에 참여할 있도록 러시아 조사 위원회 측에 여러 차례 공개 요청을 왔다 한다. 


<Novaya Gazeta> 측은저희는 두달 전부터 협력을 요청해 왔지만, 조사위원회는 초반과는 달리 현재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그로즈니에서 재판도 없이 끔찍한 방법으로 처형당한 희생자들의 명단을 공개하기로 결정한 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섹슈얼리티 때문에 처형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체첸 남성들의 전체 또는 일부 명단이다. 




1. 압둘메지도프 아담 이사예비치(Абдулмежидов Адам Исаевич), 1987년 5월 27일생.

2. 아부무슬리모프 압티 하사노비치(Абумуслимов Апти Хасанович), 1989년 6월 2일생, 주소: Shali, Shkolnaya Street, 16

3. 압둘케리모프 사이드-람잔 람자노비치(Абдулкеримов Сайд-Рамзан Рамзанович), 1990년 3월 25일생, 주소: Kurchaloy village, Dokhtukaeva street, 18.

4. 알림하노프 이슬람 알리예비치(Алимханов Ислам Алиевич), 1998년 7월 6일생.

5. 아부바카로프 아담 자브라일로비치(Абубакаров Адам Джабраилович), 1995년 5월 5일생.

6. 베르가예프 이스마일 샤디도비치(Бергаев Исмаил Шадидович), 1998년 8월 19일생.

7. 다사예프 아담 일랴소비치(Дасаев Адам Ильясович), 1988년 6월 16일생, 거주지: Shali.

8. 자바예프 젤림한 히지로비치(Джабаев Зелимъхан Хизирович), 1993년 12월 18일생.

9. 일랴소프 아담 후세이노비치(Ильясов Адам Хусейнович), 1997년 12월 22일생.

10. 루가예프 리즈반 사이드-함자토비치(Лугаев Ризван Саид-Хамзатович), 1987년 9월 13일생. 거주지: Shali.

11. 말리코프 리즈반 악다노비치(Маликов Ризван Агданович), 1990년 6월 1일생

12. 무스키예프 모흐마 투르팔로비치(Мускиев Мохма Турпалович), 1988년 7월 19일생, 호적상 주소: Tsotsi-Yurt village, Novaya Str. 10.

13. 무사노프 테미를란 아흐마도비치(Мусханов Темирлан Ахмадович), 1986년 4월 28일생, 주소: Shali, Chicherina street, 2.

14. 오즈디예프 우스만 바하예비치(Оздиев Усман Вахаевич), 1989년 12월 24일생, 호적상 주소: Shali, 39 Groznenskaya Street.

15. 라시도프 도쿠 이브라히모비치(Рашидов Доку Ибрагимович), 1995년 5월 30일생

16. 시리예프 마고메드 무사예비치(Сириев Магомед Мусаевич), 1993년 2월 23일생

17. 솔타마노프 이스마일 에제르-알리예비치(Солтахманов Исмаил Эзер-Алиевич), 1994년 3월 30일생, 호적상 주소: Mayrtup village, Nuradilov street.

18. 술레이마노프 마고메드 아르비예비치(Сулейманов Магомед Арбиевич), 1987년 1월 3일생, 주소: Shali town, Caucasus settlement, house 8, apartment 4.

19. 투차예프 아흐메드 람자노비치(Тучаев Ахмед Рамзанович), 1987년 2월 23일생, 주소: Shali, Shkolnaya Street, 30.

20. 하부예프 함자트 슬라우디노비치(Хабуев Хамзат Слаудинович), 1993년 2월 14일생.

21. 하키모프 알비 아슬람베코비치(Хакимов Альви Асламбекович), 1992년 11월 16일생.

22. 하미도프 샤밀 아흐메도비치(Хамидов Шамиль Ахмедович), 1986년 11월 14일생.

23. 치크마예프 아윱 술타노비치(Цикмаев Аюб Султанович), 1984년 4월 2일생, 주소: Germenchuk village, Molodezhnaya street.

24. 샤피예프 무슬림 이사예비치(Шапиев Муслим Исаевич), 1989년 11월 28일생, 호적상 주소: Shali Street, Kutuzov Street, 12.

25. 에스카르비예프 사이한 바함솔토비치(Эскарбиев Сайхан Вахамсолтович), 1992년 5월 23일생

26. 유수로프 사합 이사예비치(Юсупов Сахаб Исаевич), 1990년 1월 19일생.

27. 유수로프 샴한 샤이호비치(Юсупов Шамхан Шайхович), 1988년 6월 17일생, 호적상 주소: Kurchaloy village, ul. The Soviet, 11.




-  AIDAN QUIGLEY

- 옮긴이: 이승훈




Names Of 27 Murdered Men In Chechnya Relea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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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반해방전선 2017.07.14 0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정말 이게 나라냐? 살인공화국 체첸이지 ...천벌을 받으리라..호모포비아 체첸공화국

  2. 별미소 2017.07.14 14: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지구 인류는 멸망의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아직도 한참 멀었다

2017-07-02




동성애혐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물론 국수주의와 함께




중국에서 미국의 정치계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모든 다름을 뿌리뽑으려는 현상이 대두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초남성주의적인 정서를 가지고 있다.’ 사진: Itar-Tass/Reuters




프라이드 시즌이 세계 각국의 수도를 사로잡고 있는 가운데, 중국정부는 인터넷 방송 컨텐츠 심사 통칙 마지막 손질에 나서고 있다. 예전부터 TV에서는 동성애가 규제를 받아왔지만, 온라인 컨텐츠에 대한 태도는 비교적 진보적이었다. 하지만 인터넷 드라마 '상은()' 결국 검열을 받게 되었다십대 게이 러브스토리를 다룬 상은은 트윈픽스 규모의 팬층을 보유하고 있다. 



 

 같이 읽기:

  작년 프라이드에서 프로포즈했던 경찰관이다. 

   내가 접한 증오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애들럼



잠시나마 규제가 느슨했던 현대화가 아니라 간과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에 새로 제정된 심사통칙에는 “비정상적인 성생활 방식에서가족, 연애, 금전에 대한 비정상적인 관점 언급되어 있다. 사치, 혁명영웅의 조롱, 국가분열의 언급 중국적 가치관 일탈, 모든 것이 인터넷상에서 금지된다. 어조는 고지식하고 당당하다 못해 21세기의 칙령이라기보다는 60년대 권위주의의 단면을 접하고 있다는 착각마저 정도다. 그런데 이런 일이 단순히 중국의 기행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동성애혐오는 정치인들이 악감정과 소외만 남기고 모습을 감추기엔 절묘한 토끼굴이며, 토끼굴에 대한 유혹은 동성애혐오를 특정인물이나 상황의 변덕으로 설명된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초남성우월적인 정서 가지고 있다. 가슴을 드러내 놓고 소나무숲을 산책하며, 엽총을 들고 다니는가 하면, 상어와 헤엄치는 좋아하는 푸틴은 정말 별난 인물이긴 하다. 그런 그의 과도하리만치 신경질적인 동성애혐오는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히스테릭한 사나이 기질과 어울리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구석이 있다.


한편, 미국의 부통령은 미국 특유의 종교의 자유라는 아주 구체적인 발언과 제정법으로 동성애자들을 탄압하고 있다. 현대인들의 삶에 강요되는 전환치료, 군형법 동성애금지, 성경적 선포 등이 그것이다. 공화당원들이 원래부터 계간 근절에 열성적이었고,  정치의제의 핵심에 증오가 있었다는 사실은 마이크 펜스의 비범함과 열성의 스케일, 구약성서에나 나올 법한 분노에 파묻힐 정도다.


정치계 기독교인들이 안고 있는 문제는 그들이 오로지 섹스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게이섹스, 불륜섹스, 원치않는 임신을 야기시키는 섹스 등등. 성경에 나오는 다른 것들을 티끌만큼이라도 생각한다면 (수확물, 시장, 고리대금업, 정의, 수산물 등등), 그들과 공존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진 않을 것이다. 


한편 영국 의회에서는 자만심에 빠진 민주통합당의 편견을 혐오하면서도, 그들에게 들어갈 수십억 파운드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훨씬 크다. 보수파의 무능함으로 드러난 시대착오적인 헌법정신을 보면 그들이 지금 행사하는 권력은 심각할 정도로 정당함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있다. 그들에 의해 위협받는 다원주의와 인권, 타인의 성생활에 참견하려는 정치인들에 대한 분노 등등, 모든 친숙함(웨스트민스터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아니다), 과거사 들추기(고든 브라운 수상도 2010년에 이들과 협상을 논의했었다), 복잡함(아일랜드 정계가 이렇게까지 양극화된 데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다) 그리고 농담(처음 연정 이야기가 나왔을 , 누가 선언문을 읽고는 격주 쓰레기 수거제만 빼면 성경하고 다를 바가 없다고 했다. 나는 말만으로도 위협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특정 정당을 격하게 반대하면서 그와 동시에 코믹하다고 느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으로 중화시킬 있다. 


동성애혐오도 일부 기이한 인물의 대두로만 설명하기엔 너무 많은 대륙에서 부상하고 있다. 그리고 거기엔 그렇듯 인종차별과 성차별, 난민 박해와 국수주의가 따라다닌다. 모든 국가가 영광스러웠고 특출났던 착각 속의 과거를 회상하며 위에다 미래를 건설하려는 아둔한 국수주의 말이다. 수상으로서 반대파를비영국인으로 간주하는 테레사 메이, 그리고 자신에 대한 도전을 비애국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