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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7



퀴어정치는 변화의 원동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이룩한 발전을 자축하자.



1967년 남성 동성성교의 합법화는 평등이 아니라 연민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우리의 투쟁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이룩한 성과에 자부심을 가지자.


자넷 윈터슨은 ‘Oranges Are Not the Only Fruit’의 저자다. 사진: Murdo Macleod for the Guardian

1990 BBC2 "Oranges Are Not the only Fruit" 2화가 방영되면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18세가  되는  소녀가 키스를 나누며 섹스를 나누려는 장면이 나간 것이다. 


영국에서 여성성간의 성행위가 금지된 적은 없다헨리 8세의 항문성교 금지법(Buggery Act: 당시는 항문성교를 buggery 불렀다) 1861 인간에 대한 추행법(Offences Against the Person Act) 대체되었을 때에도 여성간의 성교는 무시되었다. 


 이유는 여성 자체가 무시 당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1870 기혼여성 재산법(Married Women's Propeety Act)이 제정되기 전까지 결혼과 함께 여성의 정체성은 남편에게 흡수되었으며여성은 자신의 신체는 물론  어느것도 소유할  없었다그리고 당시나 지금이나 남자들의 마음 속에는 남근이 등장하는 섹스만이 진정한 섹스라는 개념이 유치한 보루로 남아 있다. 


사회가 동성성교로 받는 고통과 동성성교에 가하는 고통의 (하반신이 아니라중심에는 가부장적 질서의 혼란이 자리잡고 있다구시대적 사고방식에서는 동성 관계에서도 남자역할과 여자역할이 있는 곳으로 받아들여졌다이러한 사회적 규범은 너무 유효한 나머지 퀴어들심지어는 가벼운 섹스를 추구하는 이들마저  규범에 의해 세뇌되었고  그래도 힘든 상황에 혼란과 죄책감을 더해갔다. 


1980년대 나는 가죽 점퍼에 찢어진 청바지나 스커트에 브래지어가 드러나는 차림으로 클럽을 드나들곤 했다하루는 The Well of Loneliness[각주:1]에서 튀어나온 듯한 부치가 다가와 " 빵이야잼이야?"라고 물었다나는 내가 샌드위치라는  깨닫는   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성적 다름에 대한 적대감은  남성들이 자기 입맛대로  세상을 배치하는 이성애주의에 맞선 노골적함축적 도전에 대한 적대감이다페미니즘은 퀴어 정체성과 함께 모든 측면에서 이러한 특권과 추측에 대응해 왔다물론 난처한 상황도 있다게이들도 결국 남자고 트랜스젠더들도 문제가 전혀 없는  아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렇듯 내부를 향한 질문도 지금  세상을 바꾸기 위한 것으로페미니즘처럼 퀴어 정체성도 지금  세상을 바꿀  있는 진정한 원동력이다. 


세상을 바꾸는 데에는 요지부동한 역할에서 벗어나는 것도 포함된다. (페미니즘이 수십년 전부터 부르짖어 왔던 부분이기도 하다.) 남녀 아동들을 성차별 없이도 성적인 인간이   있도록 키우는 것도  예라   있을 것이다성은 결코 무시할  없다인간은 자신의 솔직한 욕구나 성적 표현 방식을 거부당하면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없다성을 통한 자아발견은 고립된 것이 아니라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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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대처 정권이 지자체 정부법 28조를 가결시켜 학교내 동성애 "홍보" 전면 금지시켰다조항에 나오는 "의사(擬似가정"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지만 학교에서 이성애 이외의 성정체성을 긍정적으로 다루면  된다는 것만은 확실했다마침 28살이었던 나는  조항이 증오를 법제화한 거나 다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위 합법화가 이뤄진 1967년부터 성관계 승낙연령이 평준화된 2003년까지 동성간의 성교는 범죄행위가 아니었운에도 불구하고  시기 동안 3 명이 넘는 남성들이 성추행이란 명목으로 처벌받았다성관계 대상이 여성이었다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을 행동으로 말이다. 


1967년의 비범죄화  문제점은 그곳이 경멸과 연민에서 비롯된 진보라는 점이었다당시 의회 보고서나 언론 보도를 보면 이성애의 정상화  가부장적 구조에 대한 의구심성적지향의 평등에 관한 언급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섹슈얼리티와 사회의 대약진이 법에 반영된  2000년대 이후의 일이었다. 2000 토니 블레어 정권이 동성애자의 군복무를 허용했고  뒤로 성관계 승낙연령 평준화와 28조의 폐지가 잇따랐다. 2004년에는 시민결합제도가 실시되었고 2006년에는 입양아동법이 제정되어 동성커플도 공동으로 자녀를 입양할  있게 되었다그리고 2014년에는 많은 논란 속에서 결혼평등법안이 가결되었다. ("이젠 우리 멍멍이나 냉장고랑도 결혼할  있겠네", "종말이 다가왔도다", "이제 기후변화가  일어나는지 알겠지?" 등등) 


지금은 트랜스젠더 관련 법개정이 추진중인 가운데 2019년까지 교과과정에 동성간의 사랑을 의무적으로 언급하도록 하는 계획이 진행중이며여기에는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들에 대한 긍정적인 묘사도 포함된다이건 분명 좋은 소식이다. LGBTQIA라면 영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국가라는 점을 자랑스럽게 여길만도  것이다한편  평등권을 지지해   윗연배의 지인은 “내가 니네 편인  맞는데도대체 알파벳 약자를 얼마나  갖다붙여야 되는 거냐라고 묻곤 한다우리  사람 모두 2014 (Q 대문자로 쓰시는  )께서 40주년을 맞은 레즈비언 게이 교환대(Lesbian and Gay Switchboard) 축하메시지를 보낸 것에 대해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캠페인 단체 스톤월의 루스 헌트 이사장이 지적한 것처럼 영국은 교역국  원조 대상국을 상대로  입장을 확실히 해야  필요성이 있다동성애를 법으로 금지하는 국가가 아직 72개국에 이르고   8개국에서는 사형으로 다스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학교내 집단괴롭힘 문제가 무시 또는 묵인되고 있으며동성애자  양성애자 학생들  절반이 집단괴롭힘과 조롱에 시달린 적이 있다고 한다특히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가진 아이들의 경우는  수치가 64% 달한다동성애자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하다는 끔찍한 선입관은 자기자신(자신의 욕구  ) 대한 두려움그리고 상대방이  연약한 정체성을 보호하기 위해  해치려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어떤 건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자기성찰은 정신건강의 일부고  좋은 것이지만 자기혐오는 백해무익하다 


교회가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실로 유감이 아닐  없다다음 목표는 교육을 통한 종교상의 편견 퇴치가 되어야  것이다하루가 멀다하고 새롭고 참신한 증오방식을 권장하며사랑을 저지하는   많은 노력이 할애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까지 우리가 이룩한 발전을 자축하고 싶다내가 애크링턴에서 유년기를 보내던 시절 신문가게를 운영하는  여성이 있었는데 거기에 가면  공짜로 초콜렛을 얻어먹곤 했다사람들은   여성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실제로    사람은  발라클라바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는데  그냥 수줍음이 많아서 그렇거니 하고 생각했다그런데 하루는 우리집 여사가   사람이 “부자연스런 욕정 사로잡혀 있다며  가게에  가게 했다. 그때 나는  말이 과자에 화학약품을 섞었다는 뜻인 줄로만 알았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내가 사는 코츠월즈라는 마을에는 맨체스터에서   여성이 찻집을 운영하고 있는데 커밍아웃도 했고 아무 문제 없이  지내고 있다지역주민들과도  어울리고 본인들이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기쁘게 생각하기까지 한다  사람은 아이들 그리고 가게를 찾는 손님들그냥 자신의 삶을 살며  세상에 좀더 많은 사랑을 전파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아주 좋은 영감이 되고 있다. 




Jeanette Winterson

옮긴이이승훈 




Queer politics has been a force for change; celebrate how far we've come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출처: http://mitr.tistory.com/3534 [해외 성소수자 소식 블로그 미트르]

  1. '고독의 우물’: 래드클리프 홀(Radclyffe Hall)의 레즈비언 소설. 1928년 재판에서 이 책을 모조리 파기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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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성과 일궈낸 패로 제도

유럽/덴마크 2017.07.27 10:34 Posted by mitr
2017-07-26



큰 성과 일궈낸 패로 제도



아이슬란드인 작가 요우니나 레오우스도우티르가 토우르스하운에서 내일부터 개최되는 패로 프라이드 축제에 참가해 낭독회를 가질 예정이다. GayIceland에서 오늘 저녁 덴마크어 낭독회를 준비중인 요우니나를 취재했다.



사진: Sigurþór Gunnlauggson.



작가 요우니나 레오우스도우티르가 전 아이슬란드 수상이자 아내인 요우한나 시귀르다르도우티르와 함께 패로 프라이드에 참가한다.

패로 프라이드에 초청받은 소감은? 너무 기뻐요. 작년에도 초청받았는데 죄송하게도 선약이 있어서 가질 했거든요. 하지만 올해는 패로에서도 동성커플이 결혼을 있게 되었으니 프라이드도 그만큼 즐거운 행사가 되리라 믿어요. 요우한나와 저도 지난달 마드리드에서 열린 월드 프라이드에서 결혼 7주년을 기념했죠.”


패로 제도를 공식방문한 요우한나 전 수상과 요우니나가 편견을 경험한지도 7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중앙당 당수였던 한 의원이 동성결혼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두 사람의 방문기념 만찬회에 출석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심정은? 개인적으로 화가 나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분의 행동에 분개한 수많은 현지 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죠. 사실 요우한나가 동반한 섹슈얼리티를 과시하는 행위라며 만찬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조금 우스꽝스럽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두 분께서는 당시 해프닝 이후로 특히 패로 제도의 퀴어 사안에 관심을 가지게 됐나요? . 현지 LGBT 단체의 페이스북 페이지 등을 통해 패로 제도의 사오항을 주시해 왔습니다. 패로 출신 남편과 결혼해 그곳에 정착한 게이 사촌도 있구요.”




2016년 4월 법안이 가결되어 올해 7월 1일부터 동성결혼이 합법화되기까지 상황이 무척 빠른 속도로 전개되었는데요, 2010년도 공식방문 때부터 지금까지 현지 상황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요우한나의 공식 방문 이후로 격동이 있었고, 수천 명의 패로인들이 페이스북 페이지에 가입해 의원 분의 행동를 규탄했습니다. 곧이어 LGBT 단체가 결성되었고, 단체가 패로 프라이드를 개최하기 시작했죠. 지금은 패로 의회에도 커밍아웃 동성애자 여성분이 의원으로 활동중이고, 얼마전에는 동성결혼이 합법화되기도 했습니다. 패로 제도는 단기간 내에 엄청난 성과를 일궈냈어요. 정말 감탄스러운 일이죠. 사회의 인식을 바꾼다는 어디나 쉬운 일이 아니지만, 특히 소규모 사회에서는 더더욱 힘든 일인 같아요.”


요우한나 시귀르다르도우티르 전 아이슬란드 수상과 아내 요우니나 레오우스도우티르의 여정을 담은 저서 “Jóhanna and I” (Við Jóhanna)”의 표지.

토우르스하운 시내의 서점에서 "Jóhanna and I" 낭독회가 열릴 예정인데요, 현지에서도 책에 대한 관심이 높은지, 그리고 패로어로도 이 책이 출간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서점에서는 아이슬란드어와 덴마크어로만 판매될 겁니다. 패로분들은 아이슬란드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지 않는 이상 덴마크어로 읽으시는 편하실 거예요. 덴마크어를 쓴지 너무 오래돼서 영어로 말할 계획이지만, 낭독은 덴마크어로 겁니다. 안그래도 지금 어느 부분을 덴마크어로 읽을지 고르고 있던 참이예요.”


분의 이야기는 어떤 의의를 담고 있는지? 요우한나와 사람의 이야기는 단순히 개인사가 아니라 20세기말 이루어진 대대적인 인식변화의 이야기기도 해요. 우리가 사귀기 시작했던 1985 때만 해도 동성애자들의 출입을 금지하는 바와 클럽이 있었고, 국립방송위원회(RÚV)에서는 레즈비언이나 게이 같은 단어의 사용을 금지하던 때였죠. 지난주에 Samtökin ´78 협회의 초대 회장이었던 그뷔드니 발뒤르손의 장례식에 참석했었는데, 발뒤르손과 동지들(그리고 뒤를 이은 사람들) 아이슬란드 사회를 완전히 바꿔놓았어요.”


요우니나의 낭독회

장소: Rit og Rák, Tinghúsvegur 60, Tórshavn.

시간: 7pm


패로 프라이드 개막식은 내일 오후 4 토우르스하운에서 개최되며, 요우한나 시귀르다르도우티르 아이슬란드 수상도 연단에 예정이라고 합니다. 


패로 제도 여러분, 해피 프라이드!




- INGIBJORG ROSA

- 옮긴이: 이승훈




FAROE ISLANDS HAVE MADE A GREAT ACHIEVEMENT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GayIce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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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9


로마 제국의 성노동과 여성 동성애, 그 자극적인 서술



루키아노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 동성애에 관한 대화는 강렬하지만, 등장인물들은 해피앤딩을 맞지 못했다.



삽화: Alexander Barattin/Xtra



루키아노스 저작 'Dialogues of the Courtesans(창녀들의 대화)에는 성스러운 창녀와 사랑에 빠진 남성 클로나리온이레아이나, 그대에 대한 이상한 소문을 들었소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레스보스 섬에서 부유한 여성 메길라가 마치 사내처럼 당신과 사랑을 나눈다고들 하잖소. 뭐라 해야 하나, 당신과 메길라가 그러니까 한 쌍의 남녀처럼...


레아이나가 무안해 하며 대답을 하지 못하자 클로나리온은 대강 짐작하고 다음과 같이 묻는다. “ 그러시오? 얼굴이 붉어졌구먼. 그럼 소문이 진짜란 말이오?”


, 맞아요 클로나리온. 부끄러워요. 너무 이상한 일이라...


그러자 연인 클로나리온은아드라스테이아에 이름을 걸고 모든 털어놓으라 울부짖는다. “ 여자가 그대에게 요구했소? 그리고 잠자리에선 무슨 짓을 하는지 정확히 말해보시오.”


서기 2세기에 활동했던 아테네 풍자가 루키아노스는 사모사타(오늘날 터키의 삼사트) 출신으로, 당시 이곳은 로마제국의 영토였다. 인류 최초의 공상과학 픽션으로 여겨지는 진실한 이야기 신화가 등장하는 구전을 마치 실제 역사 자료인냥 풍자하고 있다. 반면창녀들의 대화 스케일은 작지만 사회적 규범에 대한 비판은 어느 작품에 뒤지지 않을만큼 유머러스하고 통렬하다. ‘창녀들의 대화 창녀들 간의 대화 창녀들이 고객, 가족, 연인들과 나눈 이야기를 모은 소품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고급 매춘부로 때때로 추앙이 대상이 되기까지 했던 헤타에라의 사랑과 질투, 정치놀음을 다룬 작품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봐도 충분히 더티하다. 서문에는당시 지중해 동부에 퍼져 있던 이교도 신전들은 성스러운 창녀를 두었으며, 이들을 찾는 것은 성스런 행위로 여겨졌으니, 이들 헤타이라는 그리스 사회의 다른 여성들, 특히 억눌려 사는 아내들보다 훨씬 많은 자유를 누리고 살았다 나온다. 


ALH라는 필명으로만 알려진 역자에 의해 The Lesbians(레즈비언들)이라는 제목으로 사비출판된 책은 1928 재판이 나오면서 훌륭한 작식과 함께 초판에서 삭제되었던 창녀들 관련 대목 군데 대목이 실리게 되었다. 대목에서 레아이나의 연인 클로나리온은 그녀가 어쩌다가 레스보스의 부유한 여인 메길라와 사랑을 나누게 되었는지 소상히 알려 달라고 애원한다. 그러자 창녀 레아이나는 데모나사라는 코린트인과 함께 나타난 메길라가 가발을 벗고는젊은 선수처럼 메끄럽게 머리 보여주었다고 한다. 


모습을 보고는 너무 두려웠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메길라가 물었죠.”


레아이나, 나보다 잘생긴 청년을 적이 있소?”


저는 여기 청년이 어디 있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어이, 여자 취급하지 마시오라며, ‘ 이름은 메길로스, 데모나사는 아내요라고 하는 아니겠어요.”


흥분과 희열, 혼돈이 레아이나를 덮쳤다. 메길로스는 이야기 아킬레우스처럼 여장한 남자인 걸까? 메길라는 자신이 남자가 아니라, 마술처럼 변신한 남녀한몸이라고 밝힌다. “온전히 여자의 몸을 하고 태어났지만, 남자의 취향과 욕망을 가지고 있소.” 메길라는 레스보스에서 레즈비언이었던 것이다. 


레아이나는 여장을 했던 아킬레우 고대 그리스 예언자 테이레시아스 일화를 언급하지만, 메길라라는 캐릭터는 제우스와 가니메데스, 아폴로와 히아킨토스 등의 구전에 등장하는 젠더벤딩 여성 동성애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들 신화는 수세기에 걸쳐 동성간의 사랑에 영향을 끼쳐 왔. 


루키아노스보다 세기 앞서 출판된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에는 이피스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딸이 태어나면 짐이 것이라고 생각한 이피스의 아버지는 아내에게 딸이 태어나면 죽여버릴 것이라고 맹세한다. 하지만 이피스가 태어나자 아버지는 딸에게 할아버지의 이름을 붙이는데 이유는 할아버지의 이름이 성별중립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비디우스는 이피스가여자아이든 남자아이든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이런 이름을 붙이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고 한. 


13세가 되던 이피스는 이안테와 정혼을 맺고 그때부터 남자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사람은 나이도 같았고 외관도 비슷했으며, 삶의 지식을 쌓는 있어서 같은 스승을 사사했다. 때부터 순수한 마음에 사랑이 깃들었으니, 사람이 받은 상처도 같은 것이었지만, 서로가 기대하는 바는 달랐다. 이안테는 이피스가 남자일 줄로만 알았고 그야말로 자신의 남편감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반면, 이피스도 그런 그녀를 사랑했지만, 결코 자신의 것으로 만들 없을 거라 생각했고, 그럴수록 소녀에 대한 소녀의 열정은 더욱더 깊어만 갔다.”


이피스는 자신의이상하고도 기괴한 사랑 결코 실현될 없을 거라 생각하며 절망에 빠졌지만, 이집트 여신 이시스의 힘으로 변신을 거치며 소년으로 거듭난다. 


이피스의 경우 결국 이성애를 통해 구원되는 반면, 루키아노스의 우화는 도착과 성적흥분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물론 작품 속에는 관음증적인 요소도 있지만, 오비디우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동성간의 이끌림보다 훨씬 현실적이며, 로마시대의 여성 동성애에 대한 루키아노스의 이해를 엿볼 있다. 


역자 서문에도로마제국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관중들에게 있어 그리스의 헤타이라들이 나눈 짧은 대화는 전혀 충격적인 것이 아니었다 나와 있다. 작품 속에서 관중의 역을 맡는 클로나리온이 레아이나의 레즈비언 행각을 너무나도 궁금해 하자 레아이나는 말을 이어간다:


“메길라는 제발 가지게 달라고 애원했어요. 게다가 제게 휘황찬란한 목걸이와 최상급 리넨으로 만든 튜닉을 선물해 줬답니다. 그래서 마치 남자를 안듯 그녀를 품안에 안았지요. 그러자 그녀는 온몸에 키스를 퍼부으며 본인이 말 대로 가졌어요. 엄청난 황홀감과 욕정에 사로잡혀 숨을 헐떡거리며 말이죠.”


클로나리온은 너무나도 궁금해 하며그런데 그걸 어떻게 했단 말이오? 레이아나! 부분만은 말해줘야 하오!”라며 다그쳤다. 


바로 다음이 중요한 대목인데, 신전의 창녀 레아이나는 레스보스 출신의 레즈비언이 자신을 어떻게 유혹했는지 세세하게 설명해 놓고는 갑자기 수줍은 척을 한다. “제발 수치스러운 부분은 너무 자세하게 묻지는 말아요. 하늘의 여왕에 이름을 걸고 그것만은 절대로 절대로 말해줄 없어요!”


루키아노스의 ‘The Lesbian’ 이성애자 남성 독자들을 자극하기 위해 쓰여졌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가지 흥미로운 점은 로마제국의 전성기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성 동성애를 다룬 작품 중에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스토리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레아이나도 결국 메길라의 구애를 무시하며 남자의 품을 선택하는데, 아무도 결정을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지난 수천년 동안 몇몇 이야기가 나오긴 했지만, 필자는 얼마전 상영된 2015년도 영화 캐롤 떠올리지 않을 없다. 각본을 맡았던 필리스 나지 파트리시아 하이스미스 원작소설이사상 최초의  해피엔딩 레즈비언 스토리라고 평했었다. 해피엔딩 레즈비언 스토리를 접하기까지 2천년이란 세월이 넘게 걸린 것이다. 




- Michael Lyons

- 옮긴이: 이승훈




The titillating narrative of sex work and lesbianism in the Roman Empire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Daily X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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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4


“두렵지만 사진 전시는 이어가야죠.” 자넬레 무홀리의 저항사진 365점.



집에는 강도가 들고, 작품을 도난 당하기도 하지만, 남아프리카 출신의 사진작가 무홀리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학살과 동성애혐오, 증오범죄와 강간 사건을 사진에 담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 그녀가 1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찍은 초상화들을 선보인다.



심문, 침해, 그리고 폄하… 무홀리의 자화상. 사진: Zanele Muholi



남아프리카 출신의 사진작가 자넬레 무홀리(Zanele Muholi) 작년 뉴욕의 호텔에 체크인하려다불필요한 실랑이 벌여야 했다. 회의에 초청받았고, 호텔비도 추최측에서 이미 지했는데도, 호텔 매니저가 신용카드나 현금이 없으면 (마침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 체크인할 없다고 우겼기 때문이다. 매니저의 말투에서는뭔가 다른 의도 느껴졌다고 한다. 무홀리가 손님이 아니라 무단침입자 내지는 잘못 찾아온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의심 말이다. 이런 상황은 다른 호텔에서도 겪은 적이 있었다. 결국 실랑이 끝에 이튿날 아침에야 체크인할 있었다. 무홀리는 당시 상황을 엄청난 실을 뒤집어 자화상으로 표현해냈다. “마구 엉키고 구속당하는 느낌, 혼란과 분노를 느꼈어요.”


사진은 이번 영국 전시회에서 다른 작품 수십여 점과 함께 공개되었다. 2012 자화상을 찍은 적이 있었지만, ‘Somnyama Ngonyama’(검은 암사자 만세)라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365 점의 자화상을 찍기 시작한 2014년부터였다. “일년 365 흑인으로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건과 경험을 거치는데, 소중하고 특별한 순간들을 사진으로 연결해 보고 싶었습니다.” 게중에는 호텔 해프닝 때와 같은 자신의 경험을 다룬 작품도 있고,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증오범죄나 탄압 기사를 모티브로 작품도 있다. 



자넬레 무홀리. 최근 전시회에서. 사진: Sarah Lee for the Guardian



지난 동안 작품을 찍지 않은 무홀리는 오늘특별한 일을 담기 위해사진을 찍을 것이라고 한다. 얼마전 암스테르담 전시회를 마치고 돌아온 그녀는 자신의 팀원이자 지인인 시바흘레 은쿰비가 에어비앤비 집주인에게 떠밀려 계단을 굴러 떨어지는 충격적인 동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무홀리는 자신의 작품이 벽면에 올라가 보며 말했다. “행사를 즐기고 싶었는데, 사건 때문에 그럴 기분이 아니예요. 정말 끝이 없네요.”


이렇듯 자기 자신은 물론 남들이 겪은 일을 되돌아보며 감정을 파워풀한 사진으로 재창조해내는 작업은 극도로 고통스런 과정이라고 한다. 광부 모자와 고글을 쓰고 충격받은 표정으로 찍은 사진은 2012 발생했던 마리카나 학살 기억하기 위한 작품이다. 마리카나 학살이란 파업중이던 광부 34 명이 경찰에 의해 살해당한 사건이다. 그런가 하면 여행용 트렁크를 포장할 썼던 랩으로 머리를 감싼 사진도 있다. “입국할 인종을 표적으로 심문이 이뤄지곤 하는데, 세관이 던지는 질문은 상대방의 정체성과 피부색와 연관된 거죠.” 지난주 지인이 유럽을 찾았을 때에도 세관에서 시간이나 심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나면 마치 쓰레기가 느낌도 들고,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항상 이런 일이 일어날까 싶기도 하죠.”





자신이 겪은 일을 소재로 작품도 있다. 전신 초상화에서는 잔뜩 부풀린 비닐봉지를 껴안고 나체로 누워 있는데, 비닐봉지는 작년에 수술로 제거한 자궁 근종을 표현한 것으로, 당시 수술을 살아남을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한편 사진 속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남아프리카의 역사에 대한 지식이 필요한 작품도 있는데, 무홀리가 고무 타이어를 목에 두르고 찍은 사진은 네크레이싱 표현한 것으로, 네크레이싱이란 아파르트헤이트 동조자들을 벌하던 끔찍한 방식이었다고 한다. 담요 속에서 얼굴만 내밀고 있는 사진은 매력적이면서도 방어적인 분위기를 풍기는데, 담요가 남아프리카의 구치소에서 나눠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아늑한 느낌은 사라져 버린다. 그녀의 시선에서는 반항이 느껴지지만, 이들 작품은 하나같이 고통의 인내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 


Zamile, 2016년 콰테마에서 - 0100 자넬레 무홀리: (‘검은 암사자 만세’ 2017년 7월 14일 - 10월 28일) 사진: Zanele Muholi

사진 소재들(무홀리는 ‘material’이라는 표현을 썼다) 다중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플라스틱 튜브 조형물은 환경파괴를 상징하고, 안전핀은 연대를 표현한다. 가사노동자였던 어머니에게 바치는 초상화에서는 빨래집게로 머리장식을 연출했는데, 백여년간 이어진 (백인) 민족지 학자들의 이국적인 사진을 통해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미지다. 하지만 무홀리는 심문받고, 침해받으며, 폄하되는 흑인의 자체가 소재라고 한다. 


무홀리는 자신이 아티스트가 아니라비주얼 행동주의자라고 한다. (그녀는 여성 신장 포럼(Forum of Empowerment of Women) 공동설립자이자 퀴어 비주얼 행동주의 모임 Inkanyiso 창립자이기도 하다.) 일곱 명의 남매들과 함께 더번에서 자란 무홀리는 여러 직업을 전전한 끝에 사진을 접하게 되었고, 사진은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고 한다. “굉장히 지쳐 있었어요. 자살충동까지 느길 때였죠. 사진이 목숨을 구해준 거나 다름 없어요. 제게 유일하게 다가온 사진이었으니까요. 나름대로의 표현방식으로 예술을 사용하는데, 과정에서 치유도 되는 같아요. 상담치료가 필요한 시절이 있었는데, 의사 앞에 가만히 앉아있을 자신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그대신 사진을 시작했죠.”

 


목숨이 위태로웠던 수술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 ‘검은 암사자 만세’에서. 사진: © Zanele Muholi. Courtesy of Stevenson, Cape Town/Johannesburg and Yancey Richardson, New York



남아프리카 흑인 레즈비언들의 초상화를 담은 Faces and Phases(얼굴과 단계들)’이라는 프로젝트는 11년째 이어지고 있는 일생일대의 작품집이기도 하다. 혐동성애적 사회 속에서 동성애자로서 끔찍한 폭력으로 상처받으며 자란 그녀는 자신이 어릴 때에는 이런 프로젝트가 없었다고 한다. 남아프리카의 평등법은 세계에서도 가장 진보적인 편이지만, 그렇다고 LGBT들이 안심하고 살아가는 아니다. 폭행, 살해, 레즈비언들에게 자행되는 교정강간 , 현실은 잔혹하다. 그런 환경 속에서 무홀리의 프로젝트는 매우 소중하다. 그녀가 사진에 담은 여성들 중에는 이미 목숨을 잃은 이들도 몇몇 있는데, 프로젝트에 영감을 주었던 작가 시인 부시 시가사도 명이다. “이런 위험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어요.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과 주변 활동가들, 그리고 친구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없는 상황인 거죠.”


Bayephi I. 2017년 요하네스버그, 컨스티튜션 힐에서. 사진: © Zanele Muholi

무홀리의 삶은 노출되어 있고, 그녀의 작품도 표적이 되고 있다. 집에 강도가 적도 있고, 여성들의 초상화가 담긴 하드 디스크를 도난당한 적도 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자 신변의 위협을 느낄 때도 있다고 한다. “물론 두렵지만, 딱히 대책이 없어요. 사람들이 보고 배우며 희망을 가질 있도록 사진 전시는 이어가야 해요. 제가 속한 공동체가 보이지 않을 직접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명심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마냥 남들이 해주기만 바라며 살아갈 없으니까. 우리 존재를 부정당할 없으니까, 저항을 이어가야 합니다. 작품은 우리의 삶을 담고 있어요. 퀴어의 역사, 트랜스젠더의 역사, 흑인 정치와 자신의 가시성이 정말 중요한 거라면, 아무 기록도 하지 않고 바라기만 하고 있을 없잖아요.“  


무홀리는 자신의 작품이사람들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존중받으며 인정받을 있는 공간, 그리고 무엇보다 기억될 있는 공간이라고 한다. 


* ‘Zanele Muholi: Somnyama Ngonyama, Hail the Dark Lioness’ Autograph ABP, London EC2A에서 전시중입니다autograph-abp.co.uk.




- Emine Saner
- 옮긴이: 이승훈




‘I'm scared. But this work needs to be shown’: Zanele Muholi's 365 protest photographs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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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4




사진: 검은 암사자로 산 1년






남아프리카의 사진작가 자넬레 무홀리가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겪는 증오범죄, 동성애혐오, 부당함을 담기 위해 일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화상을 찍었다. 사진전 Somnyama Ngonyama(검은 암사자 만세)는 런던 오토그래프(Autograph)에서 10월 28일까지 개최된다.


* “두렵지만 사진 전시는 이어가야죠.” - 자넬레 무홀리의 저항사진 365점.





Phila I, 2016년 파크타운에서.

자넬레 무홀리(Zanele Muholi), "제 예술은 정치적입니다. 쇼를 위한 것도, 유희를 위한 것도 아니예요." 이하 모든 사진: Zanele Muholi /. Courtesy of Stevenson, Cape Town and Johannesburg and Yancey Richardson, New York





Ntozakhe II, 2016년 파크타운에서.

더번에서 자란 무홀리는 사진이 자신을 배운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제게 유일하게 다가온 게 사진이었으니까요. 제 나름대로의 표현방식으로 예술을 사용하는데, 그 과정에서 치유도 되는 것 같아요."





Somnyama Ngonyama II, 2015년 오슬로에서.

초창기에는 "남아프리카의 사진작가로서, 남아프리카의 여성으로서, 그리고 흑인이자 레즈비언의 정체성을 가진 남아프리카인으로서 확고한 지위를 주장하기 위해" 작품을 제작했다고 한다.





Nomalandi Wenda, 2016년 파크타운에서.

"일년 동안 수많은 사건과 경험을 거치는데, 그 소중하고 특별한 순간들을 사진으로 연결해 보고 싶었습니다."





Kwanele, 2016년 파크타운에서.

여행용 트렁크를 포장할 때 썼던 랩으로 머리를 감싸고 찍은 사진. "입국할 때 인종을 표적으로 심문이 이뤄지곤 하는데, 세관이 던지는 질문은 상대방의 정체성과 피부색와 연관된 거죠.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나면 마치 쓰레기가 된 느낌도 들고, 왜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항상 이런 일이 일어날까 싶기도 하죠."





Sebenzile, Parktown, 2016.


환경파괴와 조상들의 전통을 표현하기 위해 플라스틱 튜브를 이용했다.





Somnyama I, 2014년 파리에서.

"늘 심문받고, 침해받으며, 폄하되는 흑인의 몸 자체가 소재죠."





Zamile, 2016년 콰테마에서.

남아프리카 경찰소에서 나눠주는 담요를 쓰고 잔인함과 안락함을 동시에 표현한 작품.





Sibusiso, 2015년 이탈리아 사르디나 칼리아리에서.

레즈비언 인권가이기도 한 무홀리는 집에 강도가 드는 등, 늘 폭행의 표적이 되어 왔다고 한다. "두렵지만, 딱히 대책이 없잖아요?"




Bester I, 2015년 마요테에서.

가사 노동자였던 어머니에게 바치는 작품. 빨래집게로 우리에게 친숙한 아프리카의 이국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Thulani II, 201년 파크타운에서.

2012년 파업 광부 34명이 경찰에 의해 살해당한 마리카나 학살 사건을 추모하기 위한 작품. 






Vile, 2015년,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무홀리는 자신이 예술가가 아니라 ‘비주얼 행동주의자’라고 한다.



- 옮긴이: 이승훈




My year as a dark lioness – in pic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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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4




사선에 체첸의 레즈비언,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들 




가장 위험에 처한 이들은 게이 남성이지만, 다른 성소수자들도 표적이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체첸에서 작년말부터 게이 남성에 대한 박해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다른 성소수자들도 표적이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게이 스타 뉴스>지는 가장 위험에 처한 이들은 게이 남성이지만, 다른 성소수자들도 표적이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 LGBT 네트워크의 대변인은 체첸에서 게이 남성과 레즈비언들이 겪는 혐동성애적 폭력은 양상에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물론 체첸에도 레즈비언과 트랜스젠더들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조금 다른 종류의 박해를 받고 있다고 있습니다. 게이들의 경우 감옥에 투옥되는 , 대대적인 공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편 레즈비언들에 대한 대우는 조금 다른데, 가족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많기 때문에, 가정폭력이 만연한 편이고, 명예살인 케이스도 많이 접수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대변인은 게이남성의 박해 살해행각이 다소 느슨해진 라마단 기간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번 사태가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LGBT 네트워크는 지금도 게이 양성애자 남성들을 체첸에서 탈출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체첸에서 이들을 탈출시켜서 러시아 다른 지역에 보내고 있습니다. 과정에서 숙소, 식사, 의료지원 등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이 심리상담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상담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일단 목표는 사람들을 해외로 보내는 겁니다.”


이달초에는 체첸 당국에 의해 살해당한 게이 남성이 수십 명에 달한다는 소식 보도된 가운데, 국제사회에서 체첸의 강제수용소를 조사해야 한다는 요구도 이어지고 있다. 




- JESS JONES 

- 옮긴이: 이승훈



LESBIAN, BI, AND TRANS PEOPLE NOW IN CHECHNYA’S FIRING 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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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3



전설적인 드라마 엘 워드, 후속편 제작중



현재 제작중인 후속편은 새 등장인물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한다.




사진: Showtime.



레즈비언과 퀴어 여성들의 삶을 그려 많은 사랑을 받은 TV 시리즈 워드 후속편이 제작된다 한다. 


Showtime 통해 2004년부터 2009년까지 방영된 오리지널은 6개의 시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현재 제작중인 후속편에서는 전작과의 연결을 위해 원래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한편, 등장인물들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한다. 


전작에는 제니퍼 빌스, 케이트 모닝, 레이샤 헤일리, 미아 커쉬너, 로렐 헐로먼, 그리어 등이 출연했었다. 


후속편은 전작 제작자인 아일린 차이컨이 맡지는 않지만 프로듀서의 일환으로 참여할 계획이라고 한다. 


차이컨이 현재 맡고 있는 Empire라는 드라마도 LGBTI 등장인물과 그들의 인간관계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한편 워드의 전작은 논란을 빚기도 했었는데, 이성애 규범을 떠받들고 퀴어인들의 삶을 비현실적으로 그렸다는 비난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퀴어 여성들의 삶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신작은 부족했던 점을 보충해 원작의 성과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워드는 Netflix Stan에서 전편 시청이 가능하다. 




- LAURENCE BARBER 

- 옮긴이: 이승훈




ICONIC SERIES THE L WORD TO GET A ‘SEQUEL’ REBO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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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지원 2017.08.28 04: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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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30




군대 커플, ‘마지막날까지 키스도 나누지 않았다’



동성애 금지법은 폐지되었지만 두 사람은 군대에 있는 동안 커밍아웃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여러가지 애로사항을 겪었다고 한다.




사진: Austin Adderhol



군대 훈련소에서 사랑에 빠졌지만 퇴소날까지 키스 나누지 못했던 레즈비언 커플이 입을 열었다. 


<게이 스타 뉴스>지는 Reddit 통해 아내 힐과 만난 경위를 공개한 퇴역 미군 메그 터너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사실 처음 만난 화장실이었어요.”


화장실에서 우연히 마주쳤죠.”


그렇게 가까워진 사람은 밤에는 서로의 침대에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육체관계를 맺었다는 의혹을 받았지만 퇴소날까지 키스도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우리 사람 모두 군대와 동료애를 진지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훈련소에 있는 마지막날까지 키스도 하지 않았어요.”


애무든 키스든 신체적인 애정행위는 전혀 없었는데도 성행위를 했다는 비난을 받는 정말 아이러니했어요.”


그냥 밤마다 서로의 침대에 가서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눴을 뿐입니다."


동성애 금지법은 폐지되었지만 사람은 군대에 있는 동안 커밍아웃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여러가지 애로사항을 겪었다고 한다. 


낙인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런 대우는 다양한 곳에서 드러났는데, 병장이 레즈비언 마녀사냥을 해서, 다른 병장이 우릴 감싸준 적도 있어요. 그렇게 일은 아니었지만.”


터너와 힐은 현재 결혼해서 두살배기 딸이 있으며, 사람 모두 대학교에 재학중이다.




- JESS JONES 

- 옮긴이: 이승훈




MILITARY COUPLE COULDN’T SHARE A KISS UNTIL THEIR LAST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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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7




호주 엄마, LGBTI 동화책 출판 위해 크라우드펀딩 나서




작가겸 LGBTI 옹호가인 재키 톰린스가 동화책을 자비출판하기 위해 모금활동을 개시했다.





빅토리아주의 작가가 무지개 가족이 등장하는 동화책을 출판하기 위해 크라우드펀딩을 개시했다.


작가 LGBTI 옹호가인 재키 톰린스(Jacqui Tomlins) 원고를 자비 출판하기 위해 Pozible이라는 사이트를 통해 모금활동을 시작했다. 


톰린스는 크라우드펀딩 페이지를 통해대형출판사를 통해 책을 적도 있지만, 이번 작품은 개인적으로 의미가 각별해서 직접 출판해 보고 싶다 가족과 우리 공동체에 관련된 이야기라고 밝혔다. 


우리집처럼 무지개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엄마가 둘인 가족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톰린스가 준비중인 The Curse of Grandma Maple!(메이플 할머니의 저주!)’ 캐나다의 황무지에서 모험을 펼치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톰린스는 이야기의 주제가 엄마가 아니라 가족이라고 한다. 


마침 엄마가 등장해서 여느 엄마들과 똑같은 역할을 하는 거죠.”


삽화는 카투니스트 글로버가 맡을 예정이며, 디자이너, 편집, 출판사도 이미 정해두었다고 한다. 


부디 이번 크라우드펀딩에 도움을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 JESS JONES 

- 옮긴이: 이승훈




AUSSIE MUM LAUNCHES CAMPAIGN TO PUBLISH PRO-LGBTI CHILDREN’S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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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5




루이즈 길리건 박사를 기억하며




브라이언 피네건이  루이즈 길리건 박사를 회상한다.  루이즈 길리건 박사와 아내 캐서린 저폰은 개개인의 삶은 물론 아일랜드 전체를 위해 최상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내가 루이즈 길리건 박사를 처음 만난 2006 5월이었다. 나는 GCN 프라이드 특집호를 위해 루이즈와 아내 캐서린 저폰을 인터뷰하러 탈라에 위치한 안코산(An Cosán) 협회를 찾았었다. 현관에서 맞아준 사람을 따라 협회 시설을 견학하면서 그곳 사람들이 정말 사랑을 발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안코산은 지역사회에 기반을 프로젝트로, 루이즈와 캐서린이 1986 교육과 시민권을 통해 소외받는 이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설립했다. 원래 섄티(The Shanty)라는 이름으로 무수한 사람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다 프로젝트는 6 15 짧은 투병기간 끝에 세상을 떠난 루이즈가 남긴 수많은 업적 중의 하나였다.


안코산 협회에서 루이즈와 캐서린으로부터 느낀 애정은 서로를 향한 깊은 감정에서도 느껴졌다. 나는 2004 사람이 캐나다에서 결혼식을 올린 아일랜드 정부로부터 법적 인정을 받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을 무렵 사람을 인터뷰했다. 그때 글을 보면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말이 필요 없는 이해와 존중, 슬픔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웃을 사랑이 느껴졌다 되어 있다.


말투가 상냥한 편이었던 루이즈는 캐서린을 향한 사랑, 결혼식을 향한 여정, 여느 LGBT들처럼 자신을 받아들여야 하는 과정을 표현할 때도 단어를 신중히 선택했다.


하지만 동성애자들이 사회는 물론 카톨릭 교회로부터 겪는 불평등이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 이야기할 그녀의 어조는 또렷했고, 사람이 함께 제기한 소송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열정이 느껴졌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상냥한 모습 뒤에는 어마어마한 지닌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고, 인터뷰를 마칠 즈음에는 나도 그런 그녀에게 반해 있었던 기억난다.


결국 사람은 법정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했지만, 소송은 아일랜드 동성결혼 운동의 초석이 되었다. 루이즈의 고집과 투지, 만인을 위해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열의가 없었다면 아일랜드는 지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사람이 제기한 소송을 계기로 탄생한 KAL이라는 협회는 후일 결혼평등협회(Marriage Equality), 예스 이퀄리티(Yes Equality) 이름을 바꾸며 동성애자 평등네트워크(GLEN), 아일랜드 시민자유 위원회(ICCL) 함께 2015 동성결혼 국민투표 캠페인을 벌였다. 캠페인은 카톨릭계의 격렬한 반대에 맞서 새로운 아일랜드에서 사랑과 평등이 승리를 이루고 아일랜드 국민들이 동성애자 형제자매들에게도 사랑을 보여준 역사적인 캠페인이었다. 


결혼평등 협회의 다양한 활동에 참석하면서 캐서린과 루이즈를 만날 기회가 많았는데, 사람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는 한편, 만인을 위한 평등을 주장했다. 특히 루이즈는 회장에서만날 때면 항상 불러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따스한 용기의 말을 건네주곤 했다. 2016 사람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기념하며 더블린 시청에서 다시 결혼식을 올렸다. 자리에 참석했던 나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사랑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루이즈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었던 날도 나에게 용기의 말을 건네주었다.


오늘 우리는 위대한 여성을 잃었다. 그녀는 안코산 협회를 통해 사람들의 삶에 변화를 주었고, 초등학교, 세인트 패트릭 컬리지와,더블린 시티 대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며 수많은 학생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주변사람들의 삶에도 변화를 주었던 그녀는 1981 생애 최고의 동반자이자 평생을 함께한 캐서린 저폰의 삶도 영원히 바꿔놓았다.

 




또한 우리 모두를 위해 부당함에 맞서 싸우며 승리를 거둔 그녀는 아일랜드에도 변화를 초래했다.


하지만 기억에 가장 깊이 남아 있는 그녀는 국민투표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결혼평등이 승리를 거둔 , 더블린 캐슬 앞에서 캐서린에게 키스하던 그녀의 모습이다. 그녀의 투지 덕분에 우리 모두가 승리를 거둔 순간이었다. 루이즈를 통해 진정한 사랑을 느꼈지만 앞으로 그런 그녀의 기억을 간직한 살아가야 캐서린 저폰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 캐서린이 힘든 시기를 거치는 동안 우리 모두가 그녀 곁을 지키며, 우리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녀의 아름다운 아내 루이즈를 얼마나 사랑하고 아꼈는지를 보여줄 있었으면 좋겠다. 


루이즈, 평화와 사랑 속에서 영면하시길.






-  Brian Finnegan

- 옮긴이: 이승훈




A TRIBUTE TO DR. ANN LOUISE GILLIG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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