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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13-07-17




Many gay men enjoy bareback porn, but are concerned about its possible effects on sexual behavior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aidsmap.






수많은 동성애자 남성들이 야동을 즐겨본다. 게중에는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 야동을 선호하면서도, 베어백 야동이 본인의 성행위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걱정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지난주 파리에서 개최된 제2차 국제 HIV 사회과학 및 인류애 컨퍼런스에서 서섹스 대학교의 샤리프 몰라보커스 교수는 이들 대부분이 이러한 걱정을 다른 동성애자 남성에게 떠밀고 있다고 밝혔다. 


컨퍼런스의 두 번째 발표는 '베어백'에 대한 동성애자 남성들의 다양한 이해도를 다루었다. 


에이즈가 생기기 전 동성애자 포르노물은 콘돔없는 섹스가 일반적이었던 반면, 1980년대부터 대부분의 제작자들이 출연자에게 콘돔착용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1990년대말부터 '베어백' 영상물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고, 이들 제작자와 출연자는 종종 여론의 비난을 받기 일쑤였다. 콘돔 없는 영상물(어떤 방식으로든 관습에서 벗어난 형상화가 많았다)은 틈새산업으로 시작했지만, 이후 점점 널리 퍼져갔다. 


물론 논쟁도 따랐다. 그 중 하나가 연기자들의 건강으로, 이 문제는 직장안전 사항에 포함되었다. 또 다른 우려사항은 이러한 형상화가 콘돔 없는 성교를 정상화시킴으로써, 시청자들의 성행위에까지 영향을 미칠 거라는 점이었다. 


에이즈 보건 재단(AIDS Healthcare Foundation)의 마이클 웨인스테인 씨는 "오늘날 위험한 성교 문화에 가장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은 바로 위험한 성교를 다룬 포르노"라고 주장했다. 그는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에서 촬영되는 야동 장면에 콘돔사용을 의무화하는 법제정에 기여하기도 했다. 



포르노에 대한 시선



몰라보커스 교수의 연구는 두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그 첫 번째는 포르노 장면 125 개의 내용을 분석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영국 브리튼 지역에서 동성과 성교하는 남성 및 동성애자 남성 50 명과 일곱 가지 초점그룹을 두고 토론을 여는 것이었다. 토론회에서는 베어백 야동 문제에 초점을 맞추기 전에, 야동에 대한 이들 남성의 일반적인 느낌을 먼저 다루었다. 


참가자들은 대부분은 정기적으로 야동을 즐겨본다고 답했다. 게중에는 야동을 통해 성욕과 성에 대한 관심을 조기에 가지게 되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포르노는 뭐랄까, 좀 더 알고 싶을 때 조사도구의 기능을 해요. 내게 맞는 자세, 방법 같은 것, 그리고 상대방을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행위 같은 거 말이예요."


친구나 파트너와 함께 야동을 보는 이들도 있었다. 몰라보커스 교수는 따라서 야동이 단순한 '진짜 섹스'의 대체물이나 자위 도구 그 이상이며, 연인관계를 형성하고 유지시키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했다. 


한편 몰라보커스 교수는 '베어백 야동'이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 영상물로 단정짓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콘돔 없는 장면을 모두 '베어백'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콘돔 없는 장면을 모두 '베어백'으로 단정지을 수는 없다.


포르노에도 다양한 장르가 있다. 애인관계로 보이는 두 트윙크(소년처럼 보이는 젊은 남성)가 콘돔없이 항문성교를 하는 영상물을 보여주자, 토론 참가자들은 한사코 이 영상물은 '베어백'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콘돔이 없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사람도 있었고, 해명하는 사람도 있었다. 


'베어백'으로 여겨지는 장면들은 관습에서 벗어나는 경향이 있었고, 이는 마케팅 자료에서 종종 강조되는 측면이기도 하다. 나이차이가 현저하거나, 인종이 다르거나, 그것도 아니면 힘의 불균형(지배적인 '탑'과 순종적인 '바텀')이 '베어백'으로 분류되기 쉬웠다. 집안이 아닌 장소에서 불특정 상대와 성교하는 장면도 종종 '베어백'으로 여겨졌다. 


두 연기자가 정액을 교환하는 장면을 다룬 포르노도 '베어백'으로 여겨졌다. 


인터뷰에 응한 이들의 대부분은 베어백 야동을 즐겨보느 이유가 다른 형태의 야동보다 '더 화끈'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게중 일부는 베어백 야동이 더 '리얼'하고 '진짜같다'고 대답했고, 베어백이 '화끈한' 이유는 타부시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베어백은 하거나, 보거나, 입에 담거나, 즐겨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이번 컨퍼런스에 참가한 연구가 플로리안 보로스 씨가 이러한 매력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인터뷰 내용을 소개했다:


"모멸적이고 위험한 거라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봤습니다. 그런데 저는 바로 이 나쁜 측면에 이끌려요. 그래서 사서 보기 시작했죠."


남성들이 베어백 야동을 즐기는 것과 그 부정적인 측면은 뗄래야 뗄 수 없다.


샤리프 몰라보커스 교수는 응답자들이 베어백 야동에 대해 긍정적인 관점과 동시에 상당한 걱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본인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지 걱정하는 것이다.


그는 남성들이 베어백 야동을 즐기는 것과 그 부정적인 측면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기 때문에, 더욱더 애증이 엇갈린다고 한다. "베어백 야동의 에로틱한 경제는 위험과 도덕적 초월의 표현 위에 구축되어 있습니다."


응답자들은 이런 걱정을 다른 동성애자 남성들에게 떠넘겼다. 예컨대, 윗세대 동성애자들은 (HIV/에이즈 창궐을 겪지 않은) 젊은이들이 더 베어백 야동의 영향을 받기 쉽다고 여긴 반면, 젊은 응답자들은 윗세대들이 더 위험하다고 여겼다. 또한, HIV 음성인 사람들은 양성인 사람들이 베어백 성교에 집착할 거라고 걱정했고, 반대로 감염자들은 음성인 사람들이 안전한 성교로부터 벗어날까봐 걱정하고 있었다. 


반면, 이들 모두가 본인에 대해서는 포르노가 환상에 불과하고, 스스로 절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흥미로운 점은, 야동의 이용과 장점에 대해 토론할 때는 아무런 말이 없다가, 베어백 야동 화제가 나온 후에야 야동이 환상이라는 사고가 언급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몰라보커스 교수는 응답자들이 HIV 예방과 콘돔 사용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HIV 음성인 사람들은 감염을 피하고자 하는 바램이 강하게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들은 콘돔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콘돔을 에로틱하거나 흥미로운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베어백 야동은 아주 유용한 환상으로 개념화되어 있습니다. 한때 동성애자 남성들의 문화에 가해졌던 재제가 이제는 성애화된 거죠."


몰라보커스 교수와 터렌스 히긴스 재단(Terrence HIggins Trust)의 동료들은 덜 이론적인 차원에서 중재 도구를 개발하여, 동성애자 남성들과 일하는 보건 장려자들이 어떻게 하면 베어백 포르노와 콘돔 없는 성교의 사안과 성건강 장려책에 관한 주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제안사항을 제시했다. 


제안된 중재사항은 다음과 같다:


  • 베어백 야동을 화제로 거론해, 동성애자 남성들로 하여금 콘돔 없는 성교에 관한 걱정과 질문을 보다 일반적으로 토론할 수 있게 하는 방법

  • 동기부여적 인터뷰에 베어백 화제를 적용시켜, 콘돔 없는 성교를 고찰하게끔 장려하는 방법

  • 성행위에 대해 토론할 때 베어백 화제를 이용하여 책임전가 및 '감시'의 메카니즘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


베어백과 동성애자 공동체



한편, 몬트리올 콘코디아 대학교의 가브리엘 지라르 교수는 프랑스의 동성애자 남성 30 명이 '베어백'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결과를 발표했다. 지라르 교수의 조사는 포르노 영상이 아니라 성생활에 초점을 맞추었다. 


프랑스에서 '베어백'(영어 단어가 그대로 쓰인다)은 작가, 활동가, HIV 예방 단체들 사이에서 격한 논쟁과 분열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러한 논쟁은 '개인주의적' 행동과 '동성애자 공동체'에 대한 애착의 대립을 둘러싸고 이루어졌다. (보통 동성애자 공동체도 행동규범을 세울 수 있다고 여겨진다) 지라르 교수는 이러한 준거 틀을 통해 베어백에 대한 응답자들의 인지를 이해하고자 했다.


응답자 중에는 베어백을 하는 이들이 '동성애자 공동체'를 위협하고 있다며, 이들은 공동체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답한 이들도 있었다. 또한 베어백을 하는 이들은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답한 사람도 있었다. 고의적으로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에이즈 발병 초기 죽어갔던 동성애자 남성들에 대한 무례로 여겨졌다. 


그러나 보다 관용적인 입장을 취하는 응답자도 있었다. 심리학적 용어로 베어백을 설명하려는 이도 있었고, 맥락적 요인, 에이즈의 역사(즉, 효과적인 치료의 도래)를 언급하는 이들도 있었다. 게다가 이들은 대부분 각자 다른 동기에 의한 다양한 성생활이 종종 언론에 의해 모조리 '베어백'으로 일축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주류 언론이 이 사안을 다루는 방식이 동성애자 공동체를 위협하는 수치심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베어백'은 격렬하고 분열적인 토론의 주제


이들 응답자 중 일부는 불특정 파트너와 콘돔 없이 항문성교를 하곤 하지만, 아무도 자신을 '베어백커'로 부르지 않았다. 여론의 윤리적 비판이 너무나도 강하기 때문이다. 


일부 응답자들은 자신을 '동성애자 공동체'와 거리를 두었다. 이는 개인의 자율성을 위협할 수 있다. 한 남성은 "저는 원하는 대로 아무렇게나 하는 이 사람들과 한참 거리가 있습니다. 저는 전혀 그 부류가 아니예요"라고 했다. 


이들에게 있어 외부의 규범이 어떠하든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었다. HIV 양성인 한 응답자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감염여부를 알리지 않고, 콘돔사용 여부 또한 상대방이 정하도록 하는 자신의 선택을 옹호하기도 했다. 


마지막 부류의 응답자들도 본인을 동성애자 공동체의 일부로 여기지 않았지만, 이반명소나 소셜네트워크 등을 이용해 성교 상대를 만나곤 했다. 이들에게 있어 베어백은 이성적이고 현명한 결정을 내릴 줄 아는 쌍방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었다. 


지라드 교수는 베어백 논쟁이 개인주의와 공동체라는 양극을 초월해야 하지만, 베어백에 대한 응답자들의 각기 다른 이해를 고려할 때, 책임감과 사회 질서에 대한 인지도도 각기 다를 것이라고 했다. 


참조


Mowlabocus M & Harbottle J <Bareback Pornography And The Ambivalent Gift>. 2013 년도 파리, 제2차 국제 HIV 사회과학 및 인류애 컨퍼런스, 세션 CS69. (컨퍼런스 웹사이트에서 슬라이드 발표를 볼 수 있다. 상세정보는 The Porn Laid Bare website를 참조).


Girard G <What’s In A Word? French Gay Male Discourses On Bareback And Conception Of Risk>  2013 년도 파리, 제2차 국제 HIV 사회과학 및 인류애 컨퍼런스, 세션 CS69. (발표 텍스트는 여기를 참조. 무료등록 필수).


컨퍼런스 발췌문


- 로저 피보디


- 옮긴이: 이승훈




* 이 기사는 Aidsmap.com의 동의하에 본 블로그에 번역되었으며, Aidsmap.com 측은 번역의 질에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This article is translated and shared on this blog with permission from Aidsmap.com, who does not take any responsibility over the quality of the trans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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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06



스타트렉 배우 조지 타케이: ‘시사회는 아는 여자친구와 갔다가, 그 뒤 게이바로 향하곤 했습니다.





조지 타케이: 'JJ 에이브럼스 감독한테서 전화가 와서 조찬을 같이 하자길래 '음... 술루 카메오역이 들어오는 건가' 싶었습니다.





한때 미스터 술루였던 타케이, 그는 스타십 엔터프라이즈를 떠난 이후로 그 어느 동료배우보다도 더 큰 인기를 누려왔다. 그런 그가 JJ 에이브럼스 감독의 블록버스터 리메이크작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이유는 뭘까?




몇달 전 조지 타케이가 온 인터넷을 도배한 일이 있었다. 사실 드문 일은 아니다. 반짝이는 눈을 가진 79세의 타케이, 한 때 스타트렉의 미스터 술루로 알려졌었던 그의 존재감을 인터넷에서 찾아보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어떤 때는 온 인터넷이 그의 세상이고 우리는 그 세계에 얹혀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소셜미디어 사이트의 수치(페이스북 ‘좋아요수 천만 개, 트위터 팔로워 180만 명, 인스타그램 팔로워 88만9천 명)만 봐도 그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수치에서 나타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타케이가 이들 채널을 활용해서 수용성을 장려하고, 온정이 베인 위트로 편견과 부당함에 맞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카리스마 넘치고 장난기와 지성을 겸비한 그는 스타트렉의 다른 어떤 배우보다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페이저 권총을 내려놓고 엔터프라이즈 우주선을 떠나 지구로 돌아온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유명세를 타고 있고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인기비결 중 하나는 다양한 분야에 열정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190년대 초반에는 미일 관계개선(2차대전이 한창이던 당시 유년기를 수용소에서 보냈다고 한다)을 위해 정치활동을 폈고 그 뒤로는 LGBT 인권운동에 뛰어들면서도 결코 팬들과 멀어지는 일이 없었다. 정치이벤트에 모습을 드러내는가 싶으면 만화 페스티벌에서도 그를 볼 수 있었다. 물론 2005년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한 이후 그의 철저한 투명성도 빠뜨릴 수 없다. 그의 웹시리즈 It Takeis Two에서는 62세의 남편 브래드 타케이(2008년 결혼할 때 “I feel Takei(타케이가 되고 싶은 기분)”이라는 말과 함께 성을 바꿨다)와 함께 일상생활의 소소한 난관을 헤쳐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2014년에는 장편 다큐멘터리(To Be Takei)가 선댄스 영화제에서 상영되면서 두 사람의 이미지가 부상했다. 조지가 차분하면서도 야한 반면(그가 자신의 캐치프레이즈 “Oh My!(세상에!)를 연발할 때마다 레슬리 필립의 “딩동!”이 떠오른다), 잔걱정이 많은 브래드는 트위터에다 푸념을 늘어놓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운데, #dailygripes(오늘의 불평) 시리즈에서는 “아무개[소중한 반쪽]과 약속했다는 듯이 쌍둥이처럼 옷을 입고 나왔을 때”같은 트윗글이 올라 오곤 한다.



오리지널 스타트렉에서 레너드 니모이, 윌리엄 샤트너와 함께




다행히 오늘은 두 사람 모두 다른 복장을 하고 나왔다. 조지는 샤프한 페르시안 블루톤의 정장에 SS 엔터프라이즈 배지를 달고 나왔고, 브래드는 회색 정장에 빨간 넥타이 차림으로 나왔다. 우리가 찾은 회의실은 나와 타케이를 위한 두 의자 외에는 텅비어 있었다. 창문가에는 홍보담당자 둘(“우린 무시하세요”)이 있었고, 브래드는 따로 벽쪽에 앉았다. 


오늘 타케이를 만난 것은 스타트렉 50주년과 블루레이 박스세트 발매를 기념해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였다. 박스세트는 마치 2001년에서 온 거석과도 같았다. 포장을 뜯는 데만 5분이 걸렸고, 오리지널 에피소드 전편에 영화 여섯 편, 그리고 미공개 스토리까지 수록되어 있었다. 타케이는 스타트렉에 싫증났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정말 많은 의미에서 제 삶과 목소리를 향상시켜 주었습니다. SF라는 비유를 통해 우리 시대를 보여주려 했습니다. 시민권운동에서 흑인들의 평등투쟁, 베트남 전쟁 당시의 평화운동, 냉전 등등 말이죠. 그 때만 해도 TV가 그런 용도로 쓰인다는 건 생소했기 때문에 아주 신나는 경험이었습니다.”


하지만 다뤄지지 않은 소재도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동성애이다. 타케이는 스타트렉 제작자 진 로든베리에게 동성애 소재를 제안한 적이 있다고 한다. “아직 커밍아웃하기 전이라 그냥 진보주의자인 척 하며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 시대의 다양한 사안을 다루고 있는데 동성애는 어떻냐고 말이죠. 하지만 얼마전에 타인종간의 키스신을 내보내 물의를 일으켰던 터라, 한 번만 더 물의를 일으키면 방송을 중단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로든베리가 거절하더군요.”


안그래도 타케이는 올여름 머릿기사를 장식한 일이 있었다. 술루(스타트렉 리부트에서는 존 조가 술루역을 맡았다)가  스타트렉 비욘드에서 동성애자로 그려진다는 소식이 들리자 타케이가 이에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그는 대한 이유가 상상력의 부족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금은 성적지향을 다루는 게 큰 대수도 아니잖아요. 그옛날 진 로든베리 때처럼 창의적이어야 합니다. 차라리 전혀 새로운 게이 등장인물을 선보이든지 말이죠. 진이 굳이 이성애자로 설정했던 인물을 바꿔서는 안 됩니다.”



스타트렉 비욘드에 출연한 사이먼 페그: ‘승무원 모두가 남기를 원했을 것’



사실 나는 그의 말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왜 모든 게 로든베리 때처럼 무조건 새로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갇혀야 하는걸까? 거기서 진화하면 안 되는 건가? “올해가 50주년이잖아요! 로든베리의 비전이 있었기에 스타트렉도 탄생할 수 있었구요.”하지만 로든베리도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 맞춰 선택을 했을 뿐이고, 우리가 굳이 그의 그런 선택을 고수할 필요는 없지 않는가? 게다가 스타트렉 리부트는 평행우주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진 로든베리가 없었다면 리부트 또한 없었을 겁니다. 스타트렉의 기초를 마련한 게 바로 로든베리니까요. 올해는 50주년인만큼, 그런 스타트렉의 유산에 초점을 맞춰야 하고, 진에게 경의를 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하지만 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 스타트렉을 볼 것이다. 예컨대 2025년에 스타트렉 비욘드를 보는 시청자에게 있어 몇 십주년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전 스타트렉이 시작할 때부터 함께했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 사람들은 진을 전혀 모르지만 저는 진을 잘 압니다.”타케이는 결코 평정심을 잃는 사람이 아닌 듯 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분명 분함이 베어나오고 있었다. 일종의 맡지 못한 배역에 대한 질투심 같은 것도 있었으리라. 


만약 2008년 스타트렉 리부트의 JJ 에이브럼스 감독과의 미팅이 성공적이었다면 타케이도 조금더 수용적이었을지도 모른다. “레너드 니모이가 카메오 출연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에이브럼스한테 전화가 와서 조찬을 같이 하자길래 '술루 카메오역이 들어오는 건가’ 싶었죠.” 그런데 카메오 제안은 들어오지 않았다. 에이브럼스 감독은 새로운 술루역에 아시아계 미국인이지만 일본계가 아닌 존 조를 기용하는 것에 대해 타케이의 의견을 묻고 싶었던 것 뿐이었다. “굳이 저한테 물을 것까지 없었는데 말이죠. 술루는 (굳이 일본계가 아니더라도) 아시아를 대표하는 역할이면 되는 건데, 에이브럼스가 진 로든베리를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구나 싶더군요.” 그는 새 스타트렉에 출연하지 못한 것이 아무렇지 않다고 했다. “카메오가 너무 많이 나오면 리부트가 되지 않겠죠.” 그래도 당초에는 카메오역이 오는 게 아닌가 하고 내심 기대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술루의 커밍아웃에 복잡미묘한 반응을 보인 건 소외감 또는 분노에서 오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은 잔혹하다. 드디어 술루가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할 수 있게 됐지만, 타케이는 더 이상 술루역을 맡지 않는다. 



2015년 4월 28일 아베 신조 일본총리 방미 때 백악관 만찬회에 참석한 조지와 브래드. 사진: Andrew Harnik/AP




누구든 약이 오를 만한 상황이긴 하다.  타케이는 동성애자임을 숨기며 힘들게 배우생활을 해 왔다. “늘 들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사는 거죠. 전 일종의 게임을 했습니다. 시사회와 연회석상에는 아는 여자친구와 함께 갔고, 이벤트가 끝나면 여자를 집에 데려다 준 후 곧바로 게이바로 향했습니다. 이중생활이었죠. 우스운 건 게이바에 가면 아는 얼굴이 몇몇 있곤 했다는 겁니다. 바에서는 인사를 했지만, 밖에서는 입을 굳게 닫았죠.”


그는 1980년대 에이즈 공황이 최절정기에 달했던 시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수표를 써가며 동성애자 인권운동을 도왔습니다.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고문과고 같은 시기였어요. 친구가 죽어나가면 나 또한 죽는 거나 다름 없습니다.” 그런 타케이가 커밍아웃한 것은 2004년,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던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결혼평등법안에 서명을 거부한 직후였다. “아놀드가 법안을 거부할 때 너무 화가 났습니다. 젊은이들도 산타모니카 불러바드에 몰려서 분노를 표했죠. 그 때 저는 브래드와 함께 집에 편하게 앉아서 심야뉴스를 보고 있었습니다. 뉴스를 보면서 브래드에게 말했죠. 인기도 누릴만큼 누렸으니, 이젠 완전히 매장되도 상관이 없다구요.” 그런데 그 결과는 정반대였다. 사실 타케이는 그 누구보다도 잃어버린 시절을 효율적이고 열성적으로 매워나갔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에 오니, 아까 회의실에 있던 한 홍보담당자로부터 메일이 와 있었다. “인터뷰의 대부분이 조지 타케이의 섹슈얼리티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데, 이게 인터뷰 주제 맞나요?” 나는 잠시 이 홍보담당자가 조지 타케이를 조금이라도 알기나 하는지 의심이 들었다. 사회의 지탄을 피해 스스로를 숨겨야 하는 심정을 아는 건지, 타케이가 에이즈로 죽어나가는 친구를 보며 비탄해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나 있었던 건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 칼럼의 주제는 단연 타케이의 섹슈얼리티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엔 스타트렉보다도 중요한 것들이 있으니까 말이다. 



* 현재 스타트렉 50주년 드라마+영화 블루레이 박스세트가 발매중입니다.



- Ryan Gilbey

- 옮긴이: 이승훈




Star Trek’s George Takei: ‘I’d take a female friend to premieres. Then go out to a gay b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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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8




‘I’m a bisexual homoromantic’: why young Brits are rejecting old lab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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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자-이성애자라는 이분법적 분류가 무너지고 있다.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 사진: Guardian design




마일리 사이러스, 크리스틴 스튜어트, 카라 델레빈... 하지만 자신을 이성애자 또는 동성애자로 단정짓기를 거부하는 이들은 비단 연예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무려 절반 가까이의 영국 젊은이들이 자신을 전적으로 이성애자라고 보지 않는 현실은 매우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얼마전 럭비리그의 키건 허스트 선수는 커밍아웃하면서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오랫동안 숨겨왔다고 했다. “내가 어떻게 게이일 수가 있지? 난 배틀리 불독스 소속이라구. 배틀리 불독스에 게이는 있을 수 없어!” 하지만 허스트(27)가 몇 살만 더 젊었더라면 고향 욕셔에서도 섹슈얼리티가 유동적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최근 YouGov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18세 이상 24세 미만의 영국인들 중에 자신을 전적으로 이성애자로 보는 사람은 46%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자신을 오직 동성애자로만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도 6%에 불과했다. 섹슈얼리티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정체성은 유연해지고 유동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동성애자-이성애자라는 이분법이 무너지고 있다. 그것도 빠른 속도로. 유명인들의 성적지향이 태블로이드지를 장식하던 때는 이미 오래전에 지나가 버렸다. 물론 아직도 유명인사들의 커밍아웃과 그들의 동성연인이 언론에 의해 다뤄지곤 하지만, 이런 기사에 늘쌍 따라붙던 자극적인 표현은 사라지고, “근데 이거 아세요?”라는 식의 입소문 어조로 바뀌었다. 엄마가 전화로 옆집 줄리의 최근 근황을 알려줄 때 쓰는 그런 말투 말이다. 뿐만 아니다. 유명인들도 특정 무리로 분류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가는 곳마다 공연장을 가득 매우는 팝스타 마일리 사이러스는 얼마전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을 “젠더퀴어(genderqueer)”라 부르며  그 어떠한 것도 나를 정의내릴 수 없다! 난 원하는 대로 뭐든 될 수 있다!!!고 했다. 몇년 전부터 “여자 친구”와 함께 다니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면서 무성한 추측을 자아냈던 크리스틴 스튜어트도 얼마전 <Nylon magazine>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연애중임을 시인했다. 쿨하게 “구글 돌려보세요. 저 숨기는 거 없어요”라고 말한 그는 이번 여론조사의 응답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동성애자, 이성애자 그 어느쪽으로도 규정짓는 것을 거부했다. “3, 4년만 지나면 굳이 동성애자인지 이성애자인지 구분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사람들이 굉장히 늘어날 거예요. 남 일엔 신경 끄라는 거죠.”



크리스틴 스튜어트 “남 일엔 신경 끄세요.” 사진: Victoria Will/Invision/AP



적어도 서방에서 이런 경계선의 필요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계기가 스튜어트 같은 유명인사들인지는 한 마디로 단정하기 어렵다. 무조건 유명인사들을 보고 우리 사회의 태도를 규정지을 순 없지만 가시성도 무시할 순 없다.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여자친구와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이 충격적이거나 정서에 위배되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은 그런 행동들이 조금이나마 평범해졌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카라 델레빈이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여자친구를 사랑한다고 밝힌 것 또한 한목했다. 커밍아웃하는 사람이 많아질 수록 더 평범해지는 것이다. 시골동네에서 혼란스러워 하며 자라는 아이들이 가십 사이트나 보며 외로움을 달래는 일도 줄어들 것이고, 집에 동성애인을 데리고 오는 자식 때문에 부모가 머리를 싸매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게다가 평등권의 법제화도 더 이상 제지하기 어려운 조류가 되어가고 있다. 아일랜드와 미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자, 동성에게 감정을 느끼고 사랑에 빠지는 것이 한층 덜 “이상해졌고”, 경계선도 조금 더 허물어진 듯 하다.


서섹스 출신의 앨리스(23)는 자신을 동성낭만적인 양성애자라고 부른다.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을 해달라고 부탁하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그러니까 섹스는 남자랑 여자랑 다 하는데 사랑은 여자하고만 하는 거죠. ‘성별이 아니라 사람됨됨이을 본다’는 식의 미지근한 표현은 쓰기 싫어요. 가끔은 그냥 고추가 좋을 때가 있거든요.  앨리스는 주변에 자신과 비슷한 섹슈얼리티를 가졌거나 성에 대해 비슷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꽤 된다고 한다. “섹슈얼리티를 낙인이 아니라 일종의 행동으로 보는 친구들이 많아요. ‘난 게이다, 레즈비언이다, 양성애자다’라기보다는 ‘남자가 좋지만 여자랑도 한다’는 식이죠. ”



모델 프랭키 레이더와 키스를 나누는 마일이 사이러스의 인스타그램 사진: mileycyrus/Instagram



심지어는 동성하고만 만나는 지인들도 자신을 ‘동성애자’라는 단정적인 정체성에 거부감을 느낀다고 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자신의 인격을 단정짓는 요소라고 보지 않아요.”하지만 앨리스는 이런 경향이 현재 살고 있는 런던의 소수 진보적인 사람들 사이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자신을 규정짓지 않는 것은) 런던에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일종의 권리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고향에 살 때는 그런 권리를 느끼지 못 했던 것 같아요. 섹슈얼리티 때문에 차별을 겪은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물론 [이성애자로] 통할 수 있기 때문이지만.”




여자친구를 사랑한다고 밝힌 카라 델레빈. 사진: Rex Features




실제로 영국의 젊은이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지역차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루시(25)는 자신이 이성애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자신의 그런 욕구를 행동에 옮기는지 의심한다. “섹슈얼리티가 유동적이라는 건 특정 운동의 일부분이라는 뜻이고, 생각이 앞선 사람으로 여겨지기 마련이죠.”루시는 자신이 이성애자라고 확정짓지 않는 것은 개방적인 사람이라는 이미지와 결부되어 있다고 한다. 또한 이런 경향이 영국 전체를 대표한다기보다는 대도시에 국한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 고향 미들랜즈에서는 ‘성의 유동성’이 화제에 오르는 일은 없어요. 다이크이면 다이크이고 다이크가 아니면 아닌 거죠. 거긴 레즈비언이라고 하면 다이크 밖에 없거든요.”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같은 사람들을 만나 무리를 이루고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 지방에서 대도시로 올라온다는 건 세대를 거듭해 접해 온 친숙한 이야기다. 하지만 요즘 대도시에서는 非이성애자들이 모이던 바와 퍼브들이 부동산 시장에 의해 무자비하게 사라져 가고 있다. 이들 틈새시장은 근사한 All Bar One만큼 고객수를 유치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얼마전 The Vice 채널은 The Last Lesbian Bars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에서 여성전용 공간이 사라져 가는 이유를 탐구했다. 런던과 마찬가지도 미국에서도 데이트 어플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재정적 가시성이 그 원인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나는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 많던 “레즈비언” 이벤트가 모든 성별을 환영하는 “퀴어”이벤트로 변모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행사들은 다양한 의견을 가진 부적응자들이 모이는 즐거운 자리가 될 수도 있다. 



"이성애자도 동성애자도 아니라는 것: 상자 밖에서 생각하기" (기사읽기)



원래 동성애 비하 욕설에 저항하기 위해 쓰이던 퀴어라는 말은 어느덧 일반적으로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내가 이야기를 나눈 젊은이들은 대개 ‘양성애자’라는 말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남녀 모두와 관계를 가지지만 그들은 간편하고 자유롭게 “퀴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LGBT+ Helpline의 나타샤 워커 이사는 “전화를 걸어오는 분들이나 자원봉사자들 중에 자신을 ‘퀴어’라고 의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층일 수록 더욱더요.” LGBT+ Helpline은 원래 ‘런던 레즈비언&게이 교환대(London Lesbian & Gay Switchboard)라는 이름이었으나,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최근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예전엔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으로 규정되기 위해 투쟁을 벌였었죠. 물론 그런 투쟁은 지금도 변함 없지만, 그런 낙인과 상관 없이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도 확실합니다.”


동성간의 성애가 점점 보편시되어 가고 있는 지금, 퀴어’의 급진적인 근원이 가지는 호소력도 있다. 대중문화에 동화되면서 차별도 줄어들고 있지만, 이러한 경향은 동성애자들이 유지하고자 하는 ‘국외자’라는 정체성이 사라질 위험도 있다. 



아일랜드 동성결혼 국민투표에 앞서 더블린시내에 그려진 ‘찬성표’ 벽화. 사진: NurPhoto/Rex Shutterstock



플리머스 출신의 존(32)동성애자들이 결혼을 할 수 있게 된 것을 결정적인 계기로 많은 부분이 정상으로 여겨지게 된 것 같다”고 한다. “퀴어는 아직도 정치적인 용어입니다. 나이가 들 수록 퀴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쓰게 되는 것 같아요. 20대초반 때보다 그 말뜻을 훨씬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도 있지만, 문화적 변동도 확실히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그는 양성애자라는 표현이 다소 “모호한” 반면, “퀴어”는 광범위한 스펙트럼의 욕구를 다룰 뿐만 아니라 이분법적 성별을 거부하는 이들도 포함된다고 한다.


자신을 특정 부류로 인지하는 것으로부터 초월한다는 것은 많은 의미에서 이상향처럼 느껴질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섹슈얼리티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런 이는 개방적이고 친절한 사회라고 하는 이상적인 비전에 의지하는 것으로, 유명인들의 특권사회라면 몰라도 어디서나 적용될 수 있는 건 아니다. 가벼운 동성애혐오증은 아직도 의미론적 낙관주의에 의해 지워지지 않았다. 존은 얼마전 택시를 예약한 적이 있는데, 존이 남자친구와 키스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운전수가 예약을 취소해 버렸다고 한다. “쫓아갔지만 그냥 내달렸습니다.” 지난달에는 게이바 밖에 서 있던 한 지인에게 지나가던 차 승객이 침을 뱉은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런 해프닝은 비록 사소할지 몰라도 지방과 대도시를 막론하고 학대와 차별, 편견이 여전히 완고하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상기시켜 주고 있다. 그런 만큼 이성애규범성을 거부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하지만 정체성을 주장하는 것은 곧 힘이라는 것, 그리고 자기만족은 낙인 만큼이나 위험하다는 것은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다.




- Rebecca Nicholson


- 옮긴이: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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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8




Not straight, not gay: just thinking outside the box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18-24세 연령층에 해당하는 카라 델레바인과 톰 데일리. 두 사람 모두 동성애인과 연애중이다. 사진: David M Benett/Getty Images/Andy Hall/Observer




섹슈얼리티가 스펙트럼처럼 퍼져 있다는 주장에 여전히 눈쌀을 찌푸리는 이들이 있지만,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기존의 이분법적 규정을 거부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나의 섹슈얼리티 척도는 어디즈음일까?



러시아의 옐레나 미줄리나 의원은 2012년도 동성애 선전’ 금지법을 작성하면서 “비전통적 성관계의 형성을 목적으로 한 정보배포”를 포함시켰다. 마치 그런 성관계가 전파시키거나 단속할 수 있기라도 한 듯 말이다. ‘비전통적’(즉 천지개벽이래로, 쿨럭)이라는 모호한 표현을 차치해 두더라도, 어쩌면 미줄리나 의원의 생각은 맞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동성애자들이 미쳐 날뛰고 있기 때문이다. 


대사관을 폐쇄하고 비자발급을 중지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전세계 시청자들은 BBC에서 채널을 돌리자. 최근 발표된 YouGov 여론조사에 따르면 적어도 4분의 1에 달하는 영국 사람들(23%)이 자신을 이성애자로 보지 않는다는 결과가 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18-24세 연령층에서는 그 수치가 절반(49%)에 이른다. 



"일반도 게이도 아니다: 나의 섹슈얼리티는?" (영문기사)



이번 조사는 킨제이 척도에 의거해 1600명 이상의 성인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킨제이 척도란 40-50년대 미국의 심리학자 킨제이가 사람들에게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연속체 속에 표시하도록 한 시험이다. 당시 자료에 따르면 전적으로 이성애자이거나 동성애자인 경우는 드물며 대부분의 사람이 그 중간 어디즈음에 위치하는 것으로 드러났는데, YouGov에서 이번에 실시한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물론 킨제이 척도는 40년대에 발명된 것으로 행위 자체를 나타내는 것(쿨럭, 천지개벽 이래로)도 아니다. 게다가 인간의 특질 대부분이 그렇듯 섹슈얼리티 또한 스펙트럼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예컨대 우린 사람들을 무작정 “좋은 사람”과 “나쁜 놈”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인생(그리고 문학)은 정말 지루해질 것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번 조사는 중요성을 띈다. 편견자들 사이에는 동성애가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말도 안 되는 사고방식이 존재하는데, 이는 그 자체만으로 모순된 사고방식이며 치명적인 생물학적 오류다. 동성애혐오증에 맞서는 표어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코듀로이 스커트는 죄악이다”라는 건데, 옷을 잘못 입고 나온 한 복음주의자 옆에서 한 남자가 이 표어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그리고 막상막하로 2위를 차지하는 표어가 바로 “동성애자를 낳는 건 이성애자들이니 그들을 탓하라 ”라는 의미심장하고도 재치있는 문구다.


편견자들은 이성애자가 이성애자를 “만든다”고 주장하는데, 이들이 말하려는 것은 동성애자들의 가시성과 개방성이 더해갈수록, 동성애적 성향을 숨겨왔던 이들이 자신도 받아들여질 수 있을 거라 믿고 원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편견자들의 생각은 틀리지 않다. 이 얼마나 영광스런 일인가.


그중에서도, 28조(동성애 선전을 금지하는 러시아 현행법의 영국 버젼)가 폐지된 2003년부터 취학한 젊은 세대들의 케이스가 흥미롭다. 18-24세 연령층의 절반 가량이 자신을 “이성애자”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은 성적지향을 양자택일의 문제로 보지 않는 사고방식이 늘고 있음을 뜻한다. 이러한 경향은 동성애자 시민권 운동의 여파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섹슈얼리티가 스펙트럼처럼 퍼져 있다는 사고방식에 발끈하는 이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들은 상자 안에 갖혀 사는 것을 좋아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그 상자는 이성애라고 하는 상자이다. 하지만, LGBTQ 공동체에서도 내외적으로 양성애자 또는 양성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 대한 편견은 존재한다. 일종의 연방주의처럼 운영되고 있는 LGBTQ 공동체에선 동성애자도 이성애자도 무성애자도 아니라고 하면 으레 물음표가 남는다. 랜스 블랙과 연애중인 톰 데일리가 일전에 “아직 여자도 좋아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는지 떠올려보자. 사람들은 왜 굳이 자신을 규정하려 드는 걸까?


한편, 자신을 이성애자로 여기는 이들 중 절반가량(48%)좋은 사람이 나타난다면동성에게도 매력을 느낄 수 있다고 답했다는 것은 가슴 따뜻해지는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흥미로운 현상이다. 이번 주말 내 페이스북 타임라인에는 구여친이 남자와 결혼한 사진이 떴다. 내겐 첫 여자친구였고 그녀도 내가 처음으로 사귄 동성애인이었다. 그런 그녀가 지금은 남자와 결혼했고 나는 지금 다른 여자와 사귀고 있다. 마치 보니것의 표현처럼 말이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가 사귈 당시 그리 심각하지 않게 결혼을 고려한 적이 있지만 대답은 ‘아니다’였다. 2010년 당시만 해도 영국에선 동성결혼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젊은층은 남들이 자신의 마음과 성기를 어떻게 쓰든 상관하지 않는다. 이들의 입장이 미래를 대변한다면(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이런 경향은 동성관계를 맺고 있거나 동성애게 이끌리는 이들에게 평등한 세상을 가져다 줄 것이다. 게다가 요즘 공인들은 팡파레나 해명, 낙인 같은 것이 없이도 자성적지향을 거리낌없이 공개한다. 카라 델레빈과 애니 클락이 그렇고 톰 데일리와 랜스 블랙도 마찬가지이다.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NYLON magazine과의 인터뷰에서 ‘구글 쳐 보세요. 저 숨기는 거 없어요’라고 했다. 여성 스텝과의 연애를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음으로써 헛소리를 일축시켜 버린 것이다. 


 지금도 동성애자들이 동성애를 운운하고 다닌다며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 또한 성소수자로 살기 전에는 그 중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모든 시민권 운동이 그렇듯, 우리도 변화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입을 다물지 않을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런던은 이번 YouGov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신을 이성애자로 간주하는 사람들의 수치가 가장 낮은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런던에서도 여전히 이반바에 가려고 하면 택시 운전수가 승차를 거부하고, 난폭해 보이는 남자가 지하철에 타면 여자친구가 슬그머니 내 손을 놓곤 한다. 


얼마전 상정된 평의원법안으로 호주도 미국과 아일랜드에 이어 동성결혼을 인정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베네치아의 시장이 동성커플을 다룬 동화책을 금지시켰다는 기사가 나왔다. 엄마가 둘인 새끼늑대 이야기까지 말이다. 아직도 동성애 자체를 법으로 금지시키고 있는 국가는 70개국에 이르며, 심지어 동성애가 법집행관 또는 대중들에 의해 사형으로 다스려지는 곳도 있다.


이번 여론조사가 감동을 주는 이유는 이런 탄압 속에서도 진보는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최근 영화 미스트리스 아메리카에는 그레타 거위그가 18살짜리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항상 서로를 애무하도록 해.” 실제로 두 사람은 그렇게 하고, 또 당신이 어떤 시선으로 보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 Hannah Jane Parkinson


- 옮긴이: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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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3


Six LGBT ads that challenged traditional adland thinking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스머노프의 조깅 광고. 사진: 72andSunny






섹슈얼리티와 성별정체성의 그릇된 인식과 고정관념에 도전한 최고의 광고들을 모아봤다.



광고는 사회를 반영한다. 그리고 전통적인 섹슈얼리티, 성별정체성, 성별역할의 이미지를 반영할 때가 많다. 하지만 요즘엔 다양한 세계관을 선보이는 광고들이 많다. 다음 소개해 드리는 광고들은 광고업계에서 LGBT를 내세운 아주 좋은 예들이다. 인기를 끈 광고도 있고, 폭탄위협을 받은 광고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광고들의 공통점은 LGBT를 내세워 전통적인 사고방식에 도전한다는 점이다.







1. 이케아: 식탁광고 (1994)




이케아의 획기적인 90년대 광고. 테이블을 고르는 게이커플이 등장한다.


1994년 이케아는 국영방송에 최초로 게이커플을 선보였다. 그 자체로도 획기적인 사건이었지만, 이 광고가 진짜 돋보이는 이유는 게이커플을 아주 일상적으로 그려냈다는 것이다. 반전도 없고 (인테리어 업체가 빠지기 쉬운) 고정관념도 없이, 두 남자가 테이블을 고르는 모습을 진솔하게 묘사했다.


특히 요즘 미국 광고계에서 유행처럼 게이커플을 등장시키는 건 이 이케아 광고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LGBT 공동체가 중산계급 백인남성인 건 아니다. 다음 소개할 광고들이 의미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2. 바니즈 뉴욕: 형제자매, 아들딸들 (2014)




2014년도 바니즈 뉴욕 춘계 광고영상에서. 감독: 브루스 위버 


패션업계에서 다양한 모델을 기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고급 백화점 ‘바니즈 뉴욕’이 2014년 춘계 광고영상에 17 명의 트랜스젠더 모델을 등장시켰다. 이 광고는 트랜스젠더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고정관념에 도전할 기회를 주었고, 바니즈 뉴욕은 하루 매출의 10%를 LGBT 자선행사에 기부했다고 한다. 


 

3. 구글: 시티짐 헬스장 (2015)




제이콥과 시티짐 헬스장 이야기


트랜스젠더 주제가 다뤄지는 방식이 예전과는 전혀 달라졌다. 이 인상깊은 광고를 통해 구글은 제이콥과 그의 성전환을 도와준 헬스장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주제를 이용한다는 느낌이 전혀 없는 솔직담백한 영상.

 


4. 스머노프: 보깅 (2015)




LGBT 써브컬처, 보깅을 소재로 한 스머노프 광고 


스머노프가 다룬 LGBT 써브컬처 보깅(Voguing)은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해체시키는 것이 그 진수이다. 보거들의 흥겨움과 개방성은 이 브랜드에도 꼭 들어맞는다. 현대문화의 최첨단에 다양한 LGBT들을 내세웠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5. 아눅: 대범함은 아름답다. (2015)




인도에서 평등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아눅 광고.


동성애가 여전히 법으로 금지된 인도에서 이 광고의 중요성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물론 독창성은 의문스럽지만) 이 광고는 위에서 소개한 이케아 광고의 인도 버전, 즉 아주 중요한 발전이지만 여전히 매우 조심스런 광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광고는 공개된지 며칠만에 엄청난 화제를 불러모았고, 평등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6. 스톤월: 게이인 사람들도 있다. 받아들여! (Some people are gay. Get over it!) (2009)




스톤월의 이 광고는 현대판 고전이라 할 수 있다. 사진: Stonewall



대담하고 심플하고 상징적인 현대판 고전.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라는 점이 인기의 비결일 것이다. 동성애자는 비정상적이고 소외받는 ‘타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처럼 별볼일 없는 평범한 인간이다. 받아들여!



지금까지 고정관념을 부수고, 기존의 사고방식에 도전하며, 대중문화에 LGBT 인식을 고취시킨 여섯 편의 광고를 감상해 보았다.이들 중 절반 이상이 최근 몇 년 사이 제작된 광고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광고 주제는 보통 TV나 영화보다 뒤쳐지는 경향이 있는데, LGBT 소재 또한 예외는 아니다. 이젠 광고계도 다른 분야를 따라 잡았으니, 선두에 서서 다양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대중매체가 새로이 접어든 수용의 시대에 건배! 



* 닉 롤런드 씨는 72andSunny Amsterdam의 브랜드 매니저입니다.




- 스폰서: WOLFF OLINS


- Nick Rowland


- 옮긴이: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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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er Sexuality and Identity in the Qur'an and Hadith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Born Eunuchs








꾸란에서는 “욕정을 가지고 남성에게 접근하는 것”과 남성의 거세를 비난할 때 통상 롯의 백성이 저지른 죄를 언급한다. (꾸란 7:81, 26:165-166, 27:55, 29:28-29)


7:81 “너희는 여성을 마다하고 남성에게 성욕을 품으니…”
아랍어: اِنكُمْ لَتَاْتُوْنَ الرِّجَالَ شَهْوَةً مِّنْ دُوْنِ النِّسَآءِ


26:165-166 “너희는 우주의 피조물 가운데서 남성에게만 접근하려 하느뇨?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해 창조하신 너희 배우자들을 버려 두려 하느뇨?”
아랍어: آ تَاْتُوْنَ الذُّكْرانَ مِنَ الْعلَميْنَ \ وَتَذَرُوْنَ مَا خَلَقَ لَكُمْ رَبُّكُمْ مِّنَ اَزْوَاجِكُمْ


27:55 “너희는 여자가 아닌 남자들에게 성욕을 갖느뇨?”
아랍어:
آ ئِنكُمْ لَتَاْتُوْنَ الرِّجَالَ شَهْوَةً مِّنْ دُوْنِ النِّسَآءِ


29:28-29 "너희는 일찌기 너희 백성도 그러한 적이 없는 음란한 행위를 저지를 죄인들이라. 너희는 남성에게 성욕을 갖고 여행자의 길(즉 수정관 또는 요도)을 막아 물건을 빼앗으며 너희가 모인 곳에서조차 사악한 행위를 하느뇨?”
아랍어:
اِنكُمْ لَتَاْتُوْنَ الْفَاحِشَةَ مَا سَبَقَكُمْ بِهَا مِنْ اَحَدٍ مِّنْ الْعلَمِيْنَ \ آ ئِنكُمْ لَتَاْتُوْنَ الرِّجَالَ وَتَقْطَعُوْنَ السَّبِيْلَ وَتَاْتُوْنَ فِي نَادِيْكُمْ
 

그러나 꾸란은 당시 여성에 대한 성욕이 선천적으로 결여된 것으로 치부되던 남성을 수동적 성교 파트너로 삼는 것은 금지하지 않았다. 이들은 여성에 대해 성적흥분을 느끼지 못했으므로 ‘남성’으로 간주되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날 이들 남성은 주로 ‘게이’로 알려져 있지만, 고대에는 이들을 해부학적으로 전부 “선천적인 고자”로 간주했다. 비록 꾸란에 고자(خَصِي)라는 표현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율법학자들이 남긴 서적과 하디스에는 이런 표현이 등장한다. 게다가 꾸란에서도 “성인남성의 성욕(및 기술)을 가지지 못한(24:31: غَيْرِ اُولىِ الاِرْبَةِ مِنَ الرِّجَالِ)” 이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따라서 그런 하인들은 여성의 나체를 보는 것이 허락되었다. 이는 선천적인 고자, 즉 (무성애자 내지는) 오직 선천적인 게이남성만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안채에서 하인으로 일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몸에 무관심해야만 했다. 다음 하디스에는 한 하인이 예언자로부터 쫓겨나는 일화가 등장한다. 이 하인은 여성에 관심이 없는 “여성스런 남자(무칸나트,مُخَنَّث )”로 여겨졌지만, 다른 여성에게 음탕한 태도를 취했다가 예언자에게 들키고 만 것이다:


사히흐 알 부하리 62권 (혼인), 114장:
여자의 흉내를 내는 남성이 아내의 시중을 듦에 있어서 금지되는 것
(162) 움무 쌀라마가 말하길, 예언자(그에게 평강이 있기를)께서 집에 계실 때,
집에는 마침 여성스런 남성(مُخَنَّث)도 있었다. 그 여성스런 남성이 움무 쌀라마의 오빠 압둘라흐 빈 아비 우마이야에게 말하길, “하나님이 내일 그대에게 따이프를 점령하라 하시면, 저는 가일란의 딸을 지목하겠습니다. 가일란의 딸은[각주:1] 앞에서 보면 네 명으로 보이고 뒤에서 보면 여덟 명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예언자(그에게 평강이 있기를)께서는 “이 자는 앞으로 너희들의 시중을 들 수 없다”고 하셨다. 


사히흐 무슬림, 26권 (안부), 12장:
(5415) 움무 쌀라마가 말하길 집안에 여성스런 남성(
مُخَنَّث)이 있었다. 마침 하나님의 사자(그에게 평강이 있기를)께서 집에 계신데 그 여성스런 남성이 움무 쌀라마의 오빠 아압둘라흐 빈 아비 우마이야에게 말했다. “하나님께서 내일 그대들에게 따이프를 정복하라 하시면, 저는 가일란의 딸을 지목하겠습니다. 가일란의 딸은 앞에서 보면 네 명으로 보이고 뒤에서 보면 여덟 명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하나님의 사자(그에게 평강이 있기를)께서는 “이 자들은 앞으로 네 시중을 들 수 없다”고 하셨다. 


(5416) 아이샤가 말하길, 여성스런 남성(
مُخَنَّث)이 예언자의 부인을 시중들고 있었는데, 다들 그가 “성욕(또는 성적 기술)을 갖추지 못한 자 (فكانوا يعدونه من غيْر أولى الارة)”라고 여겼다. 하루는 그 자가 부인들과 함께 앉아 있는데 예언자(그에게 평강이 있기를)께서 오셨다. 그 자는 “그 여자는 앞에서 보면 네 명으로 보이고 뒤에서 보면 여덟 명으로 보인다”고 했고, 예언자(그에게 평강이 있기를)께서는 “이 자가 이런 것을 알다니, 앞으로 너희들의 시중을 들 수가 없다”고 하셨다. 이에 아이샤가 말하길, 모두가 그 남자 앞에서 베일로 가렸다.

 

아이샤의 이야기를 보면, 다들 이 하인에게 “성욕/기술”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를 안채에 들여보냈다고 언급하는 부분이 나온다. (여기서 ‘성욕/기술’이라고 표기한 것은 아랍어 단어에 이 두가지 뜻이 다 있으며, 여기서 기술이란 성욕에 의거한 특정 기술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아이샤는 “남자의 성욕/기술이 없는 자”와 관련된 꾸란의 구절을 인용하며, 그 자가 이러한 “성욕/기술”이 없었다면, 꾸란에 의해 안채에 머무는 것이 정당했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무하마드는 이 여성스런 남성이 (어떤 의도였든) 가일란의 딸에 대해 묘사하는 것을 듣고, 그도 성인남성의 성욕과 기술을 지녔고, 여성을 성적대상으로 여길 줄 안다고 생각했다. 이는 당시의 사회기준과 꾸란에 의거해 안채 하인으로 결격사유였다. 하인이 이성에게 무관심해야만 하는 구조 속에서 가장 큰 위험은 바로 이성에 대한 무관심이 가짜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즉, 일반남성이 안채에 들어가기 위해 동성애자인 척 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디스에는 크로스드레서를 지탄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예언자는 특히 여성의 흉내를 내는 “남성”과 남성의 흉내를 내는 여성을 힐책하고 있으며, 이들은 부정행위의 결과로 “집에서 쫓겨나게 된다”. 특히, 당시 남성으로 간주되지 않던 고자 외의 “남성”들이 이런 행동을 일삼는 것에 관해서는 매우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사히흐 알 부하리, 72권 (의복) 61장:
(773) 하나님의 사자
(그에게 평강이 있기를)께서는 남자면서 여성의 흉내를 내는 이들(남성복수형)과 여자면서 남성의 흉내를 내는 이들(여성복수형)을 꾸짖으셨다.  

아랍어: لَعَنَ رَسُولُ اللهِ صلى اللهُ عليهِ وَسلَّمَ المُتَشَبِّهِينَ مِنَ الرِّجَالِ بالنِّساءِ وَالمُتَشَبِّهاتِ مِنَ النِّساءِ بالرِّجالِ


사히흐 알 부하리, 72권 (의복) 62장:
(774)  예언자
(그에게 평강이 있기를)께서는 남자면서 여성스런 남성인 척 하는 이들(남성복수형)과 여자면서 남성인척 하는 이들(여성복수형)을 꾸짖으시며, “이들을 집에서 내보내라”고 하셨다. 이에 예언자(그에게 평강이 있기를)께서는 그러한 자(남성단수)를 내쫓으셨고 ‘우마르도 그러한 자(여성단수)를 내쫓으셨다.”

아랍어: لَعَنَ النَّبِي صلى اللهُ عليهِ وَسلَّمَ المُخَنَّثِينَ مِنَ الرِّجَالِ وَالمُتَرَجِّلاتِ مِنَ النِّساءِ وَ قَالَ: أخْرِجُوهُمْ مِنْ بُيُوتِكُمْ، قالَ: فأخْرَجَ النَّبِيُّ صلى اللهُ عليهِ وَسلَّمَ فُلانا، وأخْرَجَ عُمَرُ فُلانَةَ


여기서 “남자”와 “여자”라는 단어는 강조를 위해 쓰였다. 강조 및 해명의 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문법적으로 쓸 필요가 없는 단어들이기 때문이다. “흉내 내는 이들”과 “여성스런 남성” 뒤에는 이미 남성형 접미사가 쓰였고, 후자의 “흉내를 내는 이들”과 “남성인척 하는 이들”에도 여성 접미사가 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강조형을 썼다는 것은 이러한 지탄이 “남성”과 “여성”만을 향한 것으로, 여자 흉내를 내는 非남성(남자 흉내를 내닌 非여성이라는 개념이 있었다면 이들도 포함)에게는 적용되지 않았음을 뜻한다. 즉, 이성애자 남성이 순진한 남편의 아내 및 순진한 여성에게 접근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드래그퀸도 허용되었다는 것이다.  


꾸란은 생식력이 없는(عَقِيم) 이들도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42:49 하늘과 대지의 주권은 하나님 안에 있어 그분게서 뜻을 두시고 계획한 것을 창조하시며 그분이 뜻한 이에게 남성을 주시고, 그분이 뜻한 이에게 여성을 주시니라.
50 그분은 남성과 여성을 다같이 두시고 또한 그분이 뜻한 이를 불임으로 두시니 실로 그분은 아심과 능력으로 충만하시니라.
아랍어:
لله مُلْكُ السَّموتِ وَالْاَرْضِ يَخْلُقُ مَا يَشَآءُ يَهَبُ لِمَنْ يَّشَآءُ اِنَاثاً وَّيَهَبُ لِمَنْ يَّشَآءُ الذُّكُوْرَ \ اَوْ يُزَوَّجُهُمْ ذُكْرَاناً وَّاِنَاثاً وَيَجْعَلُ مَنْ يَّشَآءُ عَقِيْماً اِنَّهُ عَلِيْمٌ قَدِيْمٌ


마지막 두 구절(42:49-50)은 통상 영어권에서 다르게 해석되는데 즉, 하나님께서 어떤 이들에게는 딸 또는 아들을 주시고, 어떤 이들에게는 아들과 딸을 모두 주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두번째 구절에서 혼인 또는 짝짓기(زَوَّجَ)에 해당하는 표현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보통 한 가정에 아들과 딸이 있을 때, 그 아들과 딸들이 쌍을 이루지는 않는다! 두번째 문제는 꾸란에서 남성과 여성이 함께 언급될 때는 대개 남성이 먼저 언급되고 그 뒤에 여성이 언급된다는 점이다. (예: 3:195[각주:2], 4:12[각주:3], 4:124[각주:4], 6:143[각주:5]-144[각주:6], 16:97[각주:7], 40:40[각주:8], 42:50[각주:9], 49:13[각주:10], 53:21[각주:11], 53:45[각주:12], 75:39[각주:13], 92:3[각주:14]) 필자가 아는 한 꾸란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먼저 언급된 구절은 이곳 밖에 없다. 만약 이 두 구절이 정말 아들과 딸을 일컫는 것이라면, 딸보다 아들이 먼저 언급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남성우선의 원칙”에 의거해 본다면, 이들 구절에 나오는 여성과 남성은 자녀가 아니라 대상 즉,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따른” 욕망의 대상을 가리키는 것이다. 성적대상으로서 여성이 먼저 언급된 것은 이들이 통상 남성이 가지는 욕구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여성을 선사해 주시는 대상이 주로 남성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 구절 또한 남성을 먼저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하는 이는 (누구든지)(whome(ever))”라는 표현이 쓰였다는 것은 하나님이 뜻하실 경우, 여성이 다른 여성에게 욕망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남성이 여성 및 수동적인 非남성에게도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필자는 이 구절이 전지전능하신 알라께서 뜻하신대로 창조하신 성적지향과 성별의 다양성을 아주 간단명료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생식력이 없는 이들에는 금욕중인 여성은 물론 남성도 포함될 수 있다. 실제로 꾸란의 24장 60절에는 “여성 중에서 결혼을 원하지 않고 금욕을 행하는 이들(وَالْقَوَاعِدُ مِنَ النِّسآءِ الّتِي لَا يَرْجُوْنَ نِكَاحاً)”은 “옷을 벗어도 된다”고 나와 있다. 


여성의 다양한 성별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예가 바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다. 생식에 관한 고대의 개념에 따르면 오직 남성만이 씨를 생산할 능력이 있었다. 여성은 남자로부터 씨를 받지 않고는 소년은 물론 그 어떠한 아이도 나을 수 없었다. 기독교의 경우 하나님을 예수님의 남성 아버지로 책정함으로써 문제가 해결됐지만, 꾸란에서 하나님은 생식활동에 임하지 않는다. 즉 장차 예수가 될 씨앗은 마리아 자신에게서 나왔다는 것이다. 마리아가 생식 가능한 씨앗을 스스로 만들어냈다면, 당시의 정의로 볼 때 마리아는 여성의 외모를 하고 있었을지언정 남성이 되는 셈이다. 꾸란에서도 어머니가 마리아를 낳고 여아임을 선언했다고 나오지만, 하나님은 더 많은 것을 알고 계셨다.
 

(꾸란 3:36) 그녀가 분만을 하고서 말하길 주여 저는 여자 아이를 분만하였나이다 하나님은 그녀가 분만한 것을 잘 아시도다 남자가 여자와 같지 아니하니…
아랍어:
رَبِّ اِنِّي وَضَعْتُهَآ اُنْثى وَاللهُ اَعْلَمُ بِمَا وَضَعَت وَلَيْسَ الذَّكَرُ كَالاُنْثى


마리아가 가지는 젠더의 다양성은 다른 전통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필자는 일찌기 마리아의 처녀성은 단순히 남자를 아직 모르는 소녀의 순수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비스타를 섬긴 로마의 처녀들처럼 남성과의 성교를 영구적으로 거부하는 쪽에 가깝다고 주장한 적이 있었다. 이사야 7:14[각주:15]를 보면 처녀가 아들을 잉태할 것이라는 예언이 나오는데, 여기서 처녀에 해당하는 단어는 히브루어 경전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베툴라흐(
בתולה)’가 아니라 ‘알마흐(עלמה)’이다. ‘베툴라흐’가 아직 성경험이 없는 소녀를 가리키는 반면, ‘알마흐’는 소년을 뜻하는 ‘엘렘(עלמ)’의 여성형으로 매우 드물게 쓰이는 단어이다. ‘알마흐’라는 표현이 쓰인 다른 구절을 보면, 이 단어가 톰보이 내지는 남성을 거절하는 이라는 뜻으로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 잠언 30:18-19[각주:16]에서도 알마흐는 남자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로 등장한다.)



이성애자 남성들의 동성애 행위 


꾸란에는 동성애자(고자)들의 동성애 행위는 언급되어 있지 않으며, 이성애자 남성이 다른 이성애자 남성에게 가한 부당한 동성강간만이 언급되어 있다. 롯의 이야기 외에도 이성애자 남성들의 성적착취는 노예상들이 예언자 요셉을 “하찮게 간주했다”는 이야기에서도 암시되어 있다. (12:20[각주:17] 
وَكَانُوْا فِيهِ مِنَ الزَّاهِدِيْنَ


그러나 꾸란과 하디스에는 이성애자 남성들의 동성애적 욕망이 허용되었던 흔적도 보인다. 부하리에는 예언자가 아닌 아부 자파르의 의견을 인용하면서, 만약 삽입이 있었을 경우, 그 소아성애자는 소년의 어머니를 아내로 취할 수 없다고 명시한 하디스가 있다.  

 

사히흐 알 부하리 62권 (혼인), 25장: 

소년과 유희를 즐긴 이는, 만약 그 소년에게 삽입했을 경우, 그 어머니를 아내로 취해서는 아니 되리니.
아랍어:
فِيمَنْ يَلْعَبُ بالصَّبِي: إنْ أدْخَلَهُ فِيهِ فَلا يَتَزَوَّجَنَّ أُمَّهُ


(같은 장에는 남성이 모녀를 한꺼번에 아내로 취할 수 없다는 규칙도 명시되어 있다.) 이 하디스에서 볼 수 있듯이, 소년에게 성기를 삽입하는 것조차 계간죄로 간주되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그것이 계간죄로 간주되었다면, 소년의 모친을 아내로 삼을 수 있을지 여부를 운운하기 전에 불에 타 죽을지, 돌에 맞아 죽을지, 높은 탑에서 떨어져 죽을지를 두고 고심해야 했을 것이다. 이런 형벌은 “롯의 백성”과 같은 죄를 저질렀을 경우 가해지는 것이라고 하디스에는 나와 있다. (한 독자는 이 하디스가 꼭 소년삽입이 계간죄가 아님을 암시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즉, 모든 범죄가 발각되고 처벌을 받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소년에게 성기를 삽입한 자가 어떤 이유에서건 계간죄로 처벌을 받지 않았다 해도, 최소한 그 모친을 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양심적으로 알아야 한다는 뜻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 하디스가 시사하는 바는 여전히 매우 흥미롭다. 즉, 남성이 소년에게 삽입을 하지 않았을 경우, 그 모친을 아내로 취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고대를 통틀어 소년애(소년과의 성교)와 계간(“남성”에게 성기를 삽입하는 것) 사이의 구분은 일괄적이기까지는 않아도 일반적이었으며, 이러한 구분은 (일부 중세학자들의 공허한 반대가 있긴 했지만) 최소한 19세기까지 이슬람 역사 속에 건재했다. 많은 이들이 소년애를 정상으로 여겼던 것만은 확실하다. “선천적 고자”들이 그렇듯, 사춘기 소년들 또한 “성인남성의 성욕/기술(여성과 성교할 능력 및 생식능력)이 전혀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꾸란 자체도 소년성애자들의 편에서 천국을 묘사했다: 
 

52:24 진주처럼 잘 보관된 소년[غِلْمَانٌ]이 그들 주위를 돌며 시중들도다.


56:22-23 검은 눈을 한 이들 [حُوْرٌ عِيْنٌ]이 있으매, 잘 보호된 진주와 같노라.  


76:19 결코 나이들지 않는 소년들[وِلْدَانٌ مُتَخَلَّدُوْنَ]이 그들 주위를 돌리니 너희는 그들이 뿌려논 진주들처럼 생각하리라. 


2:25 [정원에서] 순결한 동반자[اَزْوَاجٌ مُّطَهَّرَةٌ]가 있어…


4:57 그곳에는 순결한 동반자[اَزْوَاجٌ مُّطَهَّرَةٌ]가 있노라…


라비아 알-아다위야 시대의 한 위대한 남성 수피 수행자는 소년애에 대해 신성한 정당화를 제시했고, 이는 위대한 수피여성들을 다룬 10세기 서적에 한치의 부정도 없이 그대로 실렸다. 
 
어느날 라비아는 라바흐(알-카이시)가 어린 소년과 키스하는 장면(
وهو يقبّل صبيا صغيرا)을 목격했다. 라비아가 '그를 사랑하냐'고 묻자, 라바흐는 '그렇다'고 답했다. 이에 라비아가 '그대의 마음 속에 영광되고 전능하신 하나님 외에 다른 사람이 들어갈 자리가 있는지 몰랐다'고 하자, 라바흐는 그 말에 압도되어 기절하고 말았다. 정신을 차린 라바흐는 '이것이야 말로 최상의 하나님께서 그 종에게 심어 주신 은총'이라고 답했다. (초기 수피여성들 앗-술라미(ذكر النّسوة المتعبّدات الصّوفيات)에서 인용. 영역: Rkia E. Cornell, Louisville, KY: Fons Vitae, 1999, pp. 78-79.)



고자들의 성적 용도 


이성애자 무슬림 남성들은 종종 소년 외에 ‘非남성’ 성인에게도 관심을 보였다. 다음 하디스에는 아내와 멀리 떨어져 있는 교우들이 (전쟁포로로 추정되는) 남자들을 고자 삼아 성욕을 충족해도 되는지 묻는 장면이 나온다.
 

사히흐 알 부하리 62권 (혼인), 6장:
(9) 이븐 마수드가 말하길: 우리는 예언자
(그에게 평강이 있기를)와 함께 싸웠었다. 우리 곁에는 여자가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자여, 이들 중 일부를 고자(ألا نَستَخْصِي)로 사용할 수 없을까요?”라고 물었으나, 예언자는 허락하지 않으셨다. 


부하리 62권 Ch. 8:13a에 나오는 바에 따르면, 예언자는 전투에 임하던 교우들에게 “[그들 중 일부를] 고자로 대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대신,
성경험이 있는 미혼여성에게 댓가로 망토를 주고(رَخَّصَ لَنا أنْ نَنكِح المَرأَة بالثَّوْبِ) 성교하는 것을 허락하면서 꾸란의 다음 구절을 읊었다: (5:87) “믿는자들이여 하나님이 너희에게 허락한 것을 금기하지 말며 범주를 벗어나지 말라.” 댓가로 망토를 주었다는 것은 사히흐 알 부하리 혼인장 13, 22, 23 하디스에 나오는 이야기다. 값을 정한 후에 여인과 성교하는 것을 허락했다는 것은 성경험이 있는 미혼여성과 관계를 맺는 것은 간음이 아니며, 기혼여성 및 혼인 적령기의 딸과 성교를 맺을 때만 강간이 성립된다고 하는 당시의 사고방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교우들이 예언자를 찾아와 고자를 지정할 수 있는지 물었다는 것은 합법적인 성욕 돌파구를 찾고 있었다는 것이고, 이들은 고자를 그 대상으로 보았다. 여기서 무하마드가 포로를 고자로 삼거나 고자로 만드는 것에 반대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물론 이성애자 남성을 고자로 삼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롯의 백성들이 저지른 죄악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고자(즉, 여성에게 영구적으로 성욕을 느끼지 못하는 자)를 고자로 삼는 것은 어떨까? 이븐 마수드가 성적 쾌감을 위해 고자를 이용하는 것에 대해 언급했고, 예언자가 그의 말뜻을 이해한 점을 고려할 때, 성적 쾌감을 위해 고자를 이용하는 관행이 아랍권 사회에는 널리 알려져 있었으며, 이는 고자들의 적절한 이용법으로 간주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자는 남성으로 간주되지 않았으므로, 꾸란조차 고자의 이용을 막지 않았다. 


데이빗 아얄론 씨의 ‘고자, 칼리프, 술탄: 역학관계 연구(예루살렘 1999)’에 따르면, 맘룩 왕조(노예왕조) 때에도 고자는 이성애자 남성들의 성적 대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 고자의 역할은 연상의 노예병사들이 어린 훈련병에게 성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막는 것만이 아니었다:
 

고자들은 그 외의 방면에서도 동성애적 성욕에 대한 방패막이 역할을 했던 듯 하다. 그들은 스스로 이러한 욕망의 대상이 됨으로서 그 욕망이 젊은이들에게 향하는 것을 막았다. 그들은 침실에서는 여성스럽고 온순했으며 전시와 같은 상황에서는 남자답고 용맹스러웠던 것으로 기록되었다. (hum nisaa' li-mutma'inn muqeem wa rijaal in kaanat al-asfaar; li-annahum bil-nahaar fawaaris wa-bil-layl 'araa'is)  [아랍어 음사: Ayalon on page 34, from Abu Mansur al-Tha'alibi, Al-Lataa'if wal-Zaraa'if, Cairo 1324/1906-7, p. 79, lines 1-7; and the same quote from Tha'alibi in his Tamtheel wal-Muhaadara, Cairo 1381/1961, p. 224.]



고자 교우(敎友)?


선천적으로 이성애가 불가능한 이들, 즉 선천적인 고자가 있다는 사실을 무하마드 자신이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는지 여부에 관해서는 이하 하디스를 통해 고려해 보길 바란다. 


사히흐 알 부하리 62권 (혼인), 2장: 

예언자(그에게 평강이 있기를)의 진술: “성교가 가능한 자는 누구나 결혼할지어다. 그렇게 함으로써 시선을 낮추고 은밀한 부위를 최상의 방법으로 이용할 수 있을지어니” 그러면 첫날밤을 치를 능력이 없는 자도 결혼을 해야 합니까?


(3) 알카마가 말하기를: ...[압둘라가] [우스만에게] 하는 말을 들었나니, 예언자
(그에게 평강이 있기를)께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젊은이 들이여! 그대들 중 성교가 가능한 자는 누구나 결혼할 지어다. 그리고 성교가 불가능한 자들은 누구든지 결혼을 삼가야 하니, 이는 결혼이 그 자에게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니라.”

마지막 문장은 아랍어로 다음과 같다: يا مَعْشَرَ الشَّبابِ مَن اسْتَطاعَ مِنْكُم الباءَةَ فَلْيَتَزَوَّجْ، وَمَنْ لَمْ يَستَطِيع فَعَلَيْهِ بالصَّوْم، فإنَّهُ لَهُ وِجاءٌ

사히흐 알 부하리 62권 (혼인), 3장:
성교가 불가능한 자들은 누구든지 결혼을 삼가야 하느니.
(4) 압둘라흐가 말하기를: 젊었을 적 우리는 예언자
(그에게 평강이 있기를)와 함께 있었는데, 당시 우리는 아무런 열정도 느끼지 못했다. 그 때 하나님의 사자(그에게 평강이 있기를)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젊은이 들이여! 그대들 중 성교가 가능한 자는 누구나 결혼할 지어다. 그리고 성교가 불가능한 자들은 누구든지 결혼을 삼가야 하니, 이는 결혼이 그 자에게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니라.”


다음 장면에서는 우스만 빈 마둔이라는 남성이 찾아와 금욕의 삶을 살아도 되는지 묻지만, 허락받지 못하는 내용이 나온다:


사히흐 알 부하리 62권 (혼인), 8장:
금욕과 고자의 삶에서 싫어해야 할 것
(11) 사드 빈 아비 와까스가 말하기를: 하나님의 사자
(그에게 평강이 있기를)께서는 우스만 빈 마둔에게 금욕의 삶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만약 예언자께서 허락하셨다면 우리는 고자로 살고 있었을 것이다.

(12) 사드 빈 아비 와까스가 말하기를: 하나님의 사자(그에게 평강이 있기를)께서는 이를 금지하셨다. 그는 우스만 빈 마둔에게 허락을 내리지 않으셨으며, 만약 허락을 하셨다면 우리는 고자로 살고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 문장은 아랍어로 다음과 같다: وَلَوْ أجازَ لَهُ التَّبَتُّلَ لإخْتَصَيْنا


하지만 다음 장면에서는 대답이 다르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사히흐 알 부하리 62권 (혼인), 8장:
(13b)아부 후라이라가 말하기를: 나는 “하나님의 사자시여, 저는 젊은 남자이옵니다. 저는
제 자신이 고통받을 것이 두렵지만, 여인들을 어떻게 아내로 취해야 할지 찾지(또는 느끼지) 못하겠습니다”라고 말씀 올렸다. (إنِّي رَجُلٌ شابٌّ وأنا أخافُ على نَفسِي العَنَتَ وَلا أجِدُ ما أتَزَوَّجُ بِهِ النِّساءَ) 예언자께서는 아무 말씀이 없으셔서 나는 다시 비슷한 말씀을 드렸고, 예언자께서는 계속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래서 다시 비슷한 말씀을 올렸지만 예언자께서는 여전히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러다 하나님의 예언자(그에게 평강이 있기를)께서는 말씀하셨다. “아부 후라이라여, 그대가 경험하는 것에 대해서는 펜이 말라버렸다. 따라서 고자가 되든 말든 알아서 하거라.” (يا أبا هُرَيْرَةَ، جَفَّ القَلَمُ بِمَا أنتَ لاق فاخْتَصِ عَلى ذَلِكَ أوْ ذَرْ)


이 하디스에는 질문거리가 가득하다: ‘젊은 남자’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아부 후라이라가 두려워하는 고통이란 무엇일까? 여성과 짝을 짓는 데 꼭 필요하지만 아부 후라이라에겐 없는 그것이 무엇일까? 그냥 단수형으로 '여인을 아내로 취한다'고 하지 않고 굳이 복수형으로 “여인들을 아내로 취한다”고 한 건 무엇 때문일까? 아부 후라이라가 같은 말을 수차례 반복했지만 예언자(그에게 평강이 있기를)께서는 왜 침묵으로 일괄한 걸까? 왜 아부 후라이라가 네 번째로 물었을 때 대답했을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자가 되든 말든 알아서 하라’는 건 무슨 뜻일까? 뭘 알아서 하라는 거고 뭘 하지 말라는 걸까?


아부 후라이라는 자신을 젊은 남성 또는 청년이라고 소개했다. 따라서 우리는 당시 그가 이제 막 성년이 되려 하거나 성년이 된지 얼마 안 된 나이였을 것이라고 추측해야 할 것이다. 즉, 남성다움이 드러나야 하는 연령이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을 고자로 분류했을 것이다. 남자다움은 바로 여성과의 성행위 가능여부로 가늠되며, 온전한 성인에게 있어 여성과의 성행위 능력은 바로 생식을 뜻한다. 그러한 기술이 없는 이들은 누구나 자동으로 고자가 되는 것이다. 


당시 아부 후라이라는 남자로서 모든 것이 변화하는 중요한 시기를 거치고 있었다. 당시 지중해 일대에서 수염이 없는 사춘기 소년은 성인남성들에게 있어서 찬미와 애정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아랍권에서도 상황이 다르지 않았다는 증거는 있다. 하지만 일단 소년이 남성으로 성장하고 나면, 찬미의 대상으로 적합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온전한 남성으로서 지위를 부여 받았기 때문이며, 여성을 보고 성적흥분을 느끼는 등의 징조를 통해 이제 여성과 생식활동을 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아부 후라이라는 바로 이 문턱을 넘어서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먼저 아부 후라이라는 자신의 나프스(نَفْس: 영혼, 자신, 자아)가 고통을 겪게 될 것이 두렵다고 한다. 여기서 고통의 의미로 쓰인 단어는 ‘아아낫(العَنَتَ)’이다. 꾸란에서 이 단어는 문맥상 성적 금욕으로 인한 고통을 뜻할 때 쓰인다. (수랏 니싸아 4:25[각주:18]) 일부 번역가들은 이 ‘아아낫’이 죄를 범한 데서 비롯되는 괴로움이라고 보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고통이란 어쩔 수 없이 금욕을 어긴 데서 오는 후회를 뜻하는 것이다. 이들 번역가는 알라께서 성적금욕을 치유가 필요한 고통으로 묘사했다고 보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고통은 청년의 성호르몬을 해소할 길 없이 살아가는 데서 오는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이 더 간단하면서도 인간의 본성에도 더 솔직할 것이다. 꾸란 4:25에서 고통을 느끼는 자들은 권력과 지위가 없어서 자유신분을 가지고 신앙심이 독실한 여성과 결혼(또는 성교)하지 못하는 남성을 가리킨다. 이들에게 있어 고통의 치유법은 바로 하녀와 결혼(또는 성교)하는 것인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하녀가 다른 남자와 교제하고 있어서는 안 되며, 하녀측 가족에게 충분한 지참금을 지불하고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아부 후라이라는 꾸란에 등장하는 이들 남성과는 다른 문제점을 안고 있는데, “여인들”과 결혼하기 위해 꼭 필요한 그 무언가가 전혀 없다고 한다. 즉, 여인들의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그 성별을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만약 아부 후라이라가 너무 궁핍한 나머지 하녀조차 아내로 들일 수 없다는 뜻으로 이런 말을 했다면 '여인을 아내로 취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 없다고 말했을 것이다. 즉, 복수의 아내를 취할 수 없다고 불평하기보다 한 명의 아내조차 취할 수가 없다고 해야 맞는 것이다. 하지만 아부 후라이라는 단수형을 쓰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여인들”과 결혼할 능력이 없다고 말한다. 여기서 복수형을 썼다는 것은 그가 일반적으로 여인들과 함께 살 능력이 없다는 선언이 된다. 즉, 아부 후라이라는 여성과의 성교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아부 후라이라가 여성과의 성교가 불가능했다면, 그가 두려워한 고통은 어떤 것일까? ‘아아낫’이라는 단어는 성적 금욕에서 비롯되는 고통을 뜻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호르몬으로 인한 성적욕구를 어떻게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것이다. 물론, 여성을 보고 성적흥분을 느끼지 못한다면, 여성과의 성교를 삼가는 것이 고통은 커녕 문제조차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남성과의 섹스는 어떨까?


아부 후라이라는 자신을 남성이라고 일컬음으로써, 자신을 다른 남성들의 수동적인 파트너 무리와 차별을 두었다. 동시에 여성과의 성교가 불가능하다고 시인함으로써, 자신을 남성 무리로부터 배제시키고 있다. 그의 말이 이렇게 혼란스러운 데에는 이유가 있다. 아부 후라이라가 젊은 남성이었던 만큼, 앞으로 여성에 대한 성적 관심이 생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언자가 곧바로 대답을 내놓지 않고 침묵을 유지한 것도 당연할 것이다. 즉, 정보가 충분하지 않아 정확한 대답을 제시해 주지 못했고, 그의 고민을 해결해 주지 못했던 것이다. 


아부 후라이라가 같은 말을 네 번 반복했을 때 비로소 답을 제시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네 번은 사계절을 뜻한다. 하나피 율법에는 이혼사유로 불능이 언급되어 있는데, 아내가 성관계 부재를 이유로 이혼을 하려면 남편에게 1년의 기한을 주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남편이 일년 내내 최상의 컨디션이 아닐 수도 있고, 따라서 최상의 컨디션을 발휘할 수 있는 계절을 기다려야 하는데 그게 여름이 될 수도, 가을이 될 수도, 겨울 또는 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설령 남편이 고자라 하더라도 아내는 남편이 성관계가 가능한지 판단하기 위해 1년을 기다려야 하지만, 남편이 거세되었을 경우 곧바로 이혼할 수 있다.(알-마르기나니, 히디야, 이혼권, 불능에 관한 장 참조) 


아부 후라이라가 예언자를 찾아와 같은 말을 네 번 반복한 것은, 일년중 어느 계절이라도 자신의 상태는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예언자는 아부 후라이라의 확정된 운명을 다음과 같이 비유하면서 그의 상황이 영구적이라고 말한다: “그대가 경험하는 것에 대해서는 펜이 말라버렸다.” 여기서 예언자는 고자(현대 용어로 말하면 게이남성)가 성적지향을 바꿀 수 없음을 긍정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고자가 되든 말든 알아서 하라”는 대답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예언자가 제시하는 두 선택 즉, (ㄱ) 고자가 되는 것과 (ㄴ) 그렇지 않는 것의 차이는 극명하다. 이제 막 성인이 되려 하는 남성이 고자가 아닌 이상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일까? 성년기를 앞둔 청년이 하는 것 중에 성인 남성이 해서는 안 되지만 고자는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필자의 머리속에 떠오르는 대답은 다음과 같다: 청년은 남성에게 있어 사랑의 대상이며, 특히 수동적 역할 즉, “사랑받는 쪽”의 역할을 맡는다. 그러다가 청년이 성년기에 다다르면 그때까지 연상의 남성연인과 가져온 수동-능동의 성관계는 끝나야 한다. 아부 후라이라가 고자가 아니었을 경우, 그가 그만두어야 하는 것도 바로 이런 관계였을 것이다. 하지만 고자일 경우, 그는 결코 성년기에 다다르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수동적인 역할로서 다른 남성과 관계를 맺는 것을 멈출 이유도 없다. 여기서 “고자가 된다”는 것은 지금까지 해 오던 것을 “멈추는 것”에 상반되는 대안이라는 것에 주목하자. 즉, 고자라면 멈출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답을 얻었다. 


요컨대, 아부 후라이라(‘새끼 고양이의 아버지’라는 뜻)는 성년기를 앞둔 어린 청년으로 예언자를 찾아 왔고, 여인들과 성관계를 맺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털어놨다. 예언자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전에 1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렸지만, 1년 후에도 아부 후라이라의 말은 그대로였다. 거기서 예언자는 아부 후라이라가 겪고 있는 것이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거라며, 두 가지 대안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라고 한다. 두 대안 사이를 왔다갔다 할 수는 없다. 첫번째 대안은 고자가 되어 지금까지 해 오던 것을 계속 하면서 성적 욕구를 충족하는 것인데, 아부 후라이라가 원하는 답도 이쪽이었던 것 같다. 두 번째 대안은 그가 고자가 되고 싶지 않다면, 여태껏 해 오던 것을 그만두고 성인남성의 규칙에 순응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부 후라이라가 결혼도 하지 않고 후사도 없던 것을 볼 때, 그는 고자가 되어 일년에 걸친 증언에 부합되는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설명이 그를 둘러싼 논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공개적 성행위의 금지


마지막으로 성별을 막론하고 간음행위(فَاحِشَة)에 대한 처벌이 언급된 구절이 둘 있다(4:15-16)[각주:19]. 이 두 구절은 종종 동성애 금지의 근거로 언급되는데, 그 첫구절에 (남성이 연루되었다는 암시가 없으므로) 여인들이 범한 간음이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두 구절은 여인들이 저지른 행위를 개별적으로 언급함으로써 모든 경우를 포함시키고 있을 뿐이다. 모든 경우를 포함시키려면 문법적으로 여인들이 저지른 범죄만을 따로 다루어야 했던 것이다. 여기서 어떤 행동을 간음이라 하는지는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간음죄가 확정되려면 네 명의 증인을 세워야 한다고 나와 있다. 따라서 여기서 간음은 일종의 공개적 성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성행위가 사적인 장소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플라톤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쨌든 여기서 ‘간음’은 동성애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며, 이성간의 두 사람도 4:16 구절에 적용될 수 있다. 




수정: 2015년 8월 9일



- Mark Brustman(Faris Malik)



* 이 글의 번역 및 본블로그 게재를 허락해 주신 마크 버스트먼 씨께 감사 드립니다.

(MITR would like to appreciate Mr. Mark Brustman for kindly allowing us to translate and share this article in Korean on this blog.)

 


- 옮긴이: 이승훈







  1. 너무 뚱뚱해서 [본문으로]
  2. 3:195 주님께서 그들에게 응하사 나는 남녀를 불문하고 그들이 행한 어떠한 일도 헛되지 않게 할 것이라 [본문으로]
  3. 4:12 한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상속받을 자손과 부모가 없어 먼 친척이 상속자이거나 또는 여자가 상속자일 때... [본문으로]
  4. 4:12 믿음을 갖고 선을 행하는 남녀가 천국에 들어가나니 그들이 받을 보상은 조금도 부정함이 없노라. [본문으로]
  5. 6:143 불신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금기하심이 두 마리의 수컷인가 아니면 두 마리의 암컷인가... [본문으로]
  6. 6:144 너희에게 금기 하심이 두 마리의 수컷인가 아니면 두 마리의 암컷인가... [본문으로]
  7. 믿음으로 선을 행하는 모든 남녀에게 하나님은 행복한 삶을 부여할 것이며... [본문으로]
  8. 40:40 선을 실천한 남녀는 천국으로 들어가리니... [본문으로]
  9. 42:50 그분은 남성과 여성을 다같이 두시고 또한 그분의 뜻과 계획에 따라 불임으로 두시니 실로 그분은 아심과 능력으로 충만하시니라. [본문으로]
  10. 49:13 사람들이여 하나님이 너희를 창조하사 남성과 여성을 두고 종족과 부족을 두었으되... [본문으로]
  11. 53:21 너희에게는 남자가 있고 하나님에게는 여자가 있단 말이뇨. [본문으로]
  12. 53:45 자웅으로 나성과 여성을 창조하사, [본문으로]
  13. 75:39 남성과 여성으로 자웅을 두셨으매 [본문으로]
  14. 92:3 남녀를 창조하신 주님을 두고 맹세하나니, [본문으로]
  15.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본문으로]
  16. 30:18-19 내가 심히 기이히 여기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공중에 날아 다니는 독수리의 자취와 반석 위로 기어다니는 뱀의 자취와 바다로 지나다니는 배의 자취와 남자가 여자와 함께 한 자취며 [본문으로]
  17. 12:20 그들은 그를 소액의 은전 몇 푼으로 팔아버리니 그를 하찮게 간주하였더라. [본문으로]
  18. 4:25 너희 가운데 부유하고 신앙이 두터운 여성과 결혼할 수 없는 자는 너희들의 오른손이 소유한 자들 가운데서 신앙심이 두터운 하녀들과 결혼함이 나으니라 하나님은 너희들의 믿음을 잘 아시고 계시며 또한 너희는 아담의 한 자손이라 그럼으로 그녀 보호자의 허락을 얻어 결혼하되 적절한 지참금을 지불할 것이라 그들은 순결하니 간음하지 말것이며 정부를 두어서도 아니되거늘 만일 그녀들이 결혼해서 간음을 한다면 그녀들에게는 자유 신분을 가진 여성이 받은 벌의 절반이라 이것은 너희들 가운데 간음을 두려워하는 자를 위함이라 그러니 인내하라 그것이 너희에게 나으리라 하나님은 관용과 자비로 충만하심이라. [본문으로]
  19. 4:15-16 너희 연인들 가운데 간음한 자 있다면 네명의 증인을 세우고 만일 여인들이 인정할 경우 그 여인들은 죽을 때까지 집안에 감금되거나 아니면 하나님께서 다른 방법으로 그 여인들에게 명할 것이라. 너희 가운데 두명이 간음했다면 그 둘을 함께 벌할 것이되 그들이 회개하고 개선한다면 그대로 두라 실로 하나님은 관용과 자비로 충만하시니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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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7



AN OPEN LETTER TO AMERICAN MUSLIMS ON SAME-SEX MARRIAGE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Religion Dispatches




* 다음 공개서한은 Religion Dispatches측의 허가로 본블로그에 번역, 게재되었습니다. Religion Dispatches의 기사는 공식페이스북 및 트위터 계정을 통해 읽으실 수 있습니다. 

* The following is reprinted with permission from Religion DispatchesFollow RD on Facebook or Twitter for daily updates.









무슬림계 미국인 형제자매 여러분께


안녕하세요. 저희는 두 무슬림 형제입니다. 최근 미국 50개주에서 동성결혼을 전면 합법화한 대법원 판결에 대해 말씀 드릴까 합니다. 좋은 소식부터 말씀 드리자면, 여러분의 42%가 결혼평등을 찬성한다는 것, 그리고 미국 의회의 두 무슬림 의원도 결혼평등을 찬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중 한 분은 LGBT 평등 간부회의에서 부회장을 맡고 계신다고 합니다! 미국에는 독실한 동성애자 무슬림 신도가 많이 있습니다. 저희는 여러분 모두를 사랑하고 응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이번 판결에 분개하고 계시다는 것도 (여러분이 자꾸 트윗을 올리니까) 알고 있습니다. 한편, 혼란스럽지만 속내를 굳이 드러내지 않는 분도 많이 계실 겁니다. 온나라가 무지개 깃발로 넘실거리고, 자축 분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미움살 일을 하나 더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요.


릭 샌토럼 씨와 마이크 허커비 씨도 대법원의 판결을 종말의 시작이자 아마겟돈의 마지막 전투라고 했었죠. 그런데 우리같은 사람이 TV에서 같은 말을 하면 관타나모 수용소로 보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대법원의 판결이 내키지 않아도 침묵을 유지하고 인내할 수 밖에요.


저희도 여러분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미국에서 무슬림 신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린 주류문화에 속할 때도 있습니다. 드라마 Warriors를 보고, 카니예의 음악을 듣습니다. 왕좌의 게임을 보고, 회사 성탄절 파티에 참가해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열창하기도 하죠.


동시에 우리는 무슬림의 신앙과 전통을 지켜야 합니다. 모스크에 참배 가고, 아이들을 무슬림계 학교에 보내죠. 라마단 때는 단식을 하고, 非무슬림 국가에서 무슬림인의 정체성을 굳건히 지키기 위해 바베큐 파티 때는 칠면조 고기를 고수합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동성결혼이 허용된 지금, 우리의 신앙은 동요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일이 두렵고, 아이들이 어떤 세상에서 살게 될지 걱정스럽습니다. 동성애자 인권이 점점 더 신장하고 있는 게 느껴지지만, 변화를 받아들이기란 어렵죠. 친구나 직장동료가 동성애자라 해도 큰 문제는 없고, 동성애자도 무슬림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심, LGBT 공동체가 우리의 신앙에 반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뿌리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무시받는 소수자(무슬림, 흑인계 미국인, 여성 등등)일 때, 민주주의는 결국 전부가 아니면 제로입니다. 만인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지만, 내 자신의 권리는 하나도 얻지 못하죠. (여기서 ‘투쟁’이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민주주의는 부페식당이 아닙니다. 즉, 마음에 드는 시민권만 골라서 사람들에게 적용시킬 수는 없다는 거죠. 우리 모두가 평등하지 않다면 결국 모든 게 사기라는 겁니다. 


우리 무슬림인은 주류 미국문화에서 매우 소외된 존재입니다. 미국인의 과반수가 우리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까요. 또, 미국인의 3분의 1(즉, 1억명 이상)이 우리가 무슬림이라는 걸 바로 알아볼 수 있도록 별도의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타인을 소외시킴으로써 자신이 겪는 소외를 영구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동성결혼의 권리를 부정하면서, 우리 공동체의 투쟁에 공감을 기대하는 건 위선입니다.


쇼핑몰에서 히잡을 쓴 우리 자매나 수염을 기른 형제들이 어떤 시선을 받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공항에서 접하는 불평과 시선은 또 어떻습니까? 내가 뽑은 정치인이 나에게 내뱉는 독설은 어떻구요. 우리 LGBT 형제자매들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것도 똑같습니다.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요?


저희는 여러분을 모르지만, 우리의 종교는 약자와 소외받는 이들을 보살피고, 가난하고 약탈당한 자, 타인에게 짓밟히고 박해받는 이들을 거둬들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누구든, 어떤 종교를 믿든, 누구를 사랑하든 말입니다. 


"믿는자들이여 정의에 의하여 입증할 것이며 하나님을 위하여 공정한 증인이 되라 타인에 대한 증오로 공정을 잃어서는 아니되나니 정의로서 행동하라." (꾸란 5:8)


이보다 명확한 메시지가 또 있을까요?


LGBT 인권이 새로운 개념이고, 최근에야 이슬람 사상과 접목되었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신을 가지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현상황에 맞서는 것이야말로 이슬람이 세워진 기반인 것입니다.


신앙심을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동성애를 하람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해석에 동의할 수 없지만, 누구나 나름대로의 생각은 가질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미국은 정말 웅장한 나라죠?


동성애자들을 어떤 원칙으로 받아들여야할지 모르시겠다면, 여러분이 살고자 하는 이 나라에 대해 생각해 보세요. 최근 LGBT 공동체의 권리를 명시한 헌법은 우리 모스크와 문화회관을 보호하고, 이슬람 학교의 운영을 허용하며, 여타 미국인들의 주체하기 힘든 증오와 편견에 맞서 우리의 평등권과 특권을 보호해 주는 바로 그 헌법이기도 합니다. 과연 이 중 하나만 인정하고 다른 건 부정해도 될까요.


대법원의 판결을 단순히 인내”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다른 공동체를 인내하는 것은 소외계층에 대한 숨은 두려움과 정치적 절차에 대한 무관심을 유발할 뿐입니다. 인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타인도 우리만큼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그들의 권리를 위해 투쟁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소외계층을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그들을 위해 맞서는 것은 단순히 옳은 일이 아니라, 무슬림이기에 응당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자애로우시고 우리를 동정하신다고 했던가요? 그건 비이성애자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부디 인내하지 마세요. 축하하세요. 사랑은 반드시 승리합니다.



레자 아슬란, 하산 민하지

올림 



- 번역: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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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6



When some people win more civil rights than others, everybody loses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자신이 소중히 여기던 가치관이 도전을 받게 되면, 본인이 깊이 간직하던 신념과 정체성을 통해 그 도전을 해쳐나가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사진: Dibyangshu Sarkar/AFP/Getty Images




정체성의 정치로 인해 새로운 사회적 위계질서가 생겨나서는 안 된다.

우리는 자신의 신념이 불평등을 조장하는 건 아닌지 반문해 봐야 할 것이다.



평등을 향해 나아갈 땐 으레 이 사회에서 내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야 할 때가 있다. 여성에게 투표권을 인정할 때 남성들은 자신이 우월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했고, 노예제를 폐지할 때는 흑인계 미국인도 소유물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관점이 필요했다.


하지만 가끔은 좋은 의도를 가진 이들조차 새로운 정의(定義)로 인해 자신의 특권을 잃게 되면 갈등을 하곤 한다. 특히 그 특권이 투쟁을 통해 스스로 쟁취한 것일 때는 더더욱. 결혼 평등권이 가부장제의 조장과 강화에 기여한다는 주장에 맞서는 동성애자들이든, 살해당하는 흑인들보다 사자 한 마리를 더 신경 쓴다는 비난에 화를 내는 동물 권리 옹호가들이든, 자신이 소중히 여기던 가치관이 도전을 받게 되면, 본인이 집착하던 신념과 정체성을 통해 그 도전을 헤쳐나가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얼마전 <The New Inquiry>지에 토니상 수상작 뮤지컬 ‘펀홈’에 대한 글을 실은 적이 있다. 나는 그 글을 통해 작품내의 성별역할이 좀더 유연했더라면 지금 우리 사회가 확실하게 갈라놓은 섹슈얼리티와 젠더가 좀더 얽히고 섥힐 수 있었을 거라고 주장했다. 섹슈얼리티는 성별이라는 전반적인 체계 속의 일부분으로 볼 수 있고, 그렇게 하면, 트랜스젠더들은 물론, 이분법적인 성별에 순응하지 못하는 이들도 더 널리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내 기사는 <The Toast>라는 사이트에 요약되어 소개되었다. <The Toast>는 일반적으로 지적이고 문명적인 페미니즘 사이트인데, 수많은 사람들이 내 기사에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 캣위즐이라는 네티즌은 “펀홈 기사 때문에 다들 기분이 상한 것 같다”며 비판적인 어조의 댓글을 달았다. “사실 고민되네요. 모든 형태의 성별 정체성과 성별표현이 수용되어야 한다는 필자의 궁극적인 의도는 100% 찬성하지만, 필자의 접근방식 대로라면 성욕과 성별정체성을 철저히 별개로 여기고 있는 수많은 이반인들의 정체성과 경험이 무효화되고 말겠죠.”


선량한 의도를 가진 수많은 이반인들은 내가 본인들의 경험이 가지는 타당성에 도전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사회가 들이미는 성별규범과 굳이 씨름하지 않아도 된다. 성적지향 때문에 편견을 경험한 적은 있을진 몰라도, 자신의 성별 때문에 벌을 받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점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내 고국 필리핀에서는 최근까지 그와 반대된 주장, 즉 동성애자는 성별표현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주장을 하면 오히려 맹렬한 반대에 부딛혔었다. 필리핀에서는 동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남성이 제3의 성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성별과 섹슈얼리티를 구분해서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 두 상황을 비교해 본다면, 선천적으로 우리 몸에 깊이 베어 있을 것만 같은 정체성이 사실은 복합적인 사회적 영향력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회에서 성별표현과 섹슈얼리티의 연관성을 인식한다면, 트랜스젠더 및 이분법적인 성별에 부합되지 않는 이들도 지금 동성애자들이 누리는 수많은 이익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직장 및 교내차별로부터 보호받는 것은 물론이고, 훨씬 더 큰 관용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반인들에게는 자신의 섹슈얼리티와 젠더 사이의 관계에 대해 고찰하고 말고를 결정할 특권이 있다. 즉, 그런 고찰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사회적 법적 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신념과 정체성이 전부 동등한 게 아니라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소수자라 해도 다른 소수자들에 비해 내가 상대적으로 누리고 있는 이익을 돌아보고, 설령 자신의 깊은 신념에 반하는 일이 생긴다 할지라도 만인의 평등을 향해 나아갈 줄 알아야 한다.


얼마전 조금 다른 분야에서 같은 문제점을 경험한 적이 있다. 한 필리핀계 트랜스젠더 여성이 자신은 ‘유색인종 여성’이라고 하자, 내 친구가 그 말에 반대한 것이다. 내 친구의 의견은 이랬다. 그 필리핀계 여성은 자신이 폭력에 노출되기 쉬운 트랜스젠더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의도로 그런 말을 했겠지만, 사실 상황은 흑인계 트랜스젠더 여성들에게 있어 훨씬 더 심각하다는 것이다. 나는 “유색인종 여성”이 의미상 흑인이 아닌 모든 여성을 가리킨다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결국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유색인종 여성”이라는 의미가 어느덧 변화해 버렸고, “흑인여성”의 동의어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주 예민한 사안이다. 트랜스젠더를 겨냥한 폭행의 피해자는 대부분 유색인종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흑인계 트랜스젠더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폭행은 극단적으로 많다. 게다가 “흑인 여성”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상황에 “유색인종 여성”이라는 표현을 씀으로써 상황은 더 복잡해지고 있다. 



필리핀은 내가 15살 때까지 미국 식민지였고, 나는 백인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열등감을 내재화시키며 자랐다. 그 갈등 때문에, 비록 피부색이 하얀 탓에 백인으로 오해받는 일도 있지만, 유색인종 여성이라고 하는 내 내면의 인종 정체성은 깊고도 강인하다. 하지만 내가 내 자신을 인지하는 것처럼 남들도 나를 인지한다면, 지금 트랜스젠더 여성으로서 내가 겪는 추행과 폭행 위협은 아마 더 심해졌을 것이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가지 알게 된 것은 내가 흑인 트랜스젠더 여성들과 같은 수위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상황에서 내 자신을 유색인종 트랜스젠더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겪어보지도 않은 입장에서 말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게 될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실제로 그런 경험을 한 이들이 자신의 관점을 피력하려 할 때 그 노력을 폄하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 중요한 구분을 짓기 위해 나는 내 정체성으로부터 도망치기보다는 내 정체성에 대한 도전과 대면하기로 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박해받는 이들을 위해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었다. 즉, (고의든 아니든) 내가 흑인 트랜스젠더 여성들의 절실한 입장에 설 수 있다는 인상을 주기보다는 그들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정체성의 정치로 인해 일부만 권리를 쟁취하고 나머지는 패배하는 식의 새로운 사회적 위계질서가 생겨나서는 안 될 것이다. 소외계층의 권리 투쟁에 동참할지 여부를 고려할 때 가장 큰 시련은 그 사안이 특정 부류의 사회적, 물질적 이익과 연관되어 있지는 않는지, 내가 그토록 지켜왔던 신념이 불평등을 조장하는 건 아닌지 반문하는 것이다. 이런 반문을 거부하는 것은 흑인과 백인간의 문제처럼 극명한 불평등을 부정하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더 공정한 세상을 위해 애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런 문제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고 진지하게 대면하는 것은 중요하다. 설령 그것이 내가 지켜온 정체성과 신념에 반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 Meredith Talusan


- 옮긴이: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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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5




Uganda's LGBT community celebrates Pride – discreet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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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도 우간다 프라이드 참가자. 사진: Iain Statham/SIPA/REX Shutterstock




폭행, 가족과의 절연, 언론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활동가들은 역대 최대 규모의 프라이드를 기획하고 있다. 



오늘 캄팔라에서 우간다의 연간 프라이드 축제가 시작되었다. 주최측은 우간다 LGBT 공동체들을 위해 일주일에 걸친 축제를 선보일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간다 프라이드는 시내중심가를 당당히 행진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눈을 피해 비밀장소에서 개최되고 있다. 


4회 우간다 프라이드의 운영위원장 리처드 루심보 씨는 이번 활동이 “시위가 아니라 축제의 장”이라며, 영화 상영회, 칵테일파티, (비공개) 행진 및 미스/미스터 프라이드 대회 등이 준비되어 있다고 밝혔다. 


우간다에서는 동성애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고, 동성애 혐오증이 만연하기 때문에 보안상 이번 행사는 초대 받은 이들만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행사장도 비공개이며, 관련정보도 비공개 인터넷 네트워크를 통해 전달되고 있다. 


우간다 프라이드 대변인 리처드 루심보 씨. 사진: Richard Lusimbo

루심보 씨는 우간다에서 모든 섹슈얼리티가 수용되려면 “아직도 먼 길을 가야 한다”며, 행사의 대변인으로서 얼굴이 알려진 만큼 자신의 신변도 우려된다고 밝혔다. “가끔은 등 뒤를 돌아보곤 합니다. 하지만 평생 도망만 다니며 살 수는 없으니까, 평범한 우간다인으로서 살아가려고 합니다.”


작년 프라이드는 동성애자들에게 종신형을 선고했던 동성애 금지법의 철폐와 시기적으로 맞아떨어졌었다. 하지만 식민지 시대의 법은 여전히 남아 있으며, 유죄판결을 받을 경우 장기간 징역을 살아야만 한다. 


게다가, 보다 강력한 금지법이 제정될 가능성은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 지난 1월 일부 하원의원들은 동성애자들을 제재하기 위해 새 제정법을 준비중이며, 이 법에는 동성애 선전’ 금지조항도 포함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작년 합헌성을 문제로 폐지되었던 법이 되살아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루심보 씨는 경찰에 의해 자행되는 폭행사건은 줄어들었지만, 지난 몇 달 사이 가족 및 공동체로부터 쫓겨나는 동성애자들이 늘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법도 원인의 하나로 작용하죠. 내 곁에 아무도 없다면 아무런 의믜도 없어요. 가장 어려운 건 바로 이웃과 옆집 가게, 동네 미용사 같은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얻는 겁니다.”


루심보 씨는 우간다 LGBT 운동권에서 가시성이 가장 높은 대변인 중 한 명이지만 자신이 특별히 용감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용감한 사람은 아주 많이 있습니다. 전 그런 분들에게 힘이 될 수 있어서 기쁠 뿐이죠.”



제 성적지향을 숨길 때마다 허물어졌습니다. 마치 제 자신을 배신하는 것만 같아서요.”- 존 압달라 왐베레 



망명지의 게이 프라이드


이번 행사에 함께 하지 못하는 이들 중에는 압달라 왐베레 씨가 있다. 왐베레 씨는 2014년 11월 미국에서 난민지위를 인정받았다. 그는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들에게 있어 우간다는 제한된 자유와 은둔, 고립과 망상의“지옥이자 파멸의 장소”라고 했다. 메사추세츠주 캠브리지에 새 거처를 마련한 그는 “동성애자로 위장하고 접근하니까, 누가 날 감시하고 내 공간에 숨어드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또한 우간다에서는 섹슈얼리티를 이유로 “거절과 차별”을 당하기 일쑤며, 살던 집에서 쫓겨나고 직장을 구할 수 없기 때문에, “LGBTI들의 대탈출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다들 다른 곳으로 떠나야만 자유를 찾을 수가 있어요.”


그는 2005년 언론에 의해 아우팅을 당했다. 당시 그는 가족과 지인들에게 계속해서 거짓말을 해야 했다고 한다. “제 성적지향을 숨길 때마다 허물어졌습니다. 마치 제 자신을 배신하는 것만 같아서요.”


그는 지난 6월 동료들과 재회하여 뉴욕프라이드에서 우간다 깃발을 들고 행진에 참가했다. 게중에는 프랭크 무기샤 씨와 루심보 씨, 그리고 우간다 최초의 LGBT 소식지 Bombastic의 창시자 재클린 카샤 씨, 2014년 스톤월로부터 올해의 영웅상을 수상한 페페 줄리안 온지에마 씨 등이 활동가들이 있었다. “내 나라에서 깃발을 높이 들고 행진해야 한다는 생각에 침울했습니다.” 


“아마도 한 15년 정도 지나면 달라지겠죠.”



동성애혐오증은 우간다의 전통이 아니라 서방의 극단적인 교회들이 들여온 것이다” - 프랭크 무기샤 Q&A (영문) 



언론의 아우팅 실태


왐베레 씨 외에도 언론으로부터 아우팅을 당한 사람들은 많다. 루심보 씨도 두 번이나 아우팅을 당했고 한다. 2013년 처음으로 아우팅을 당했을 땐 한 달 간 숨어지내야 했고, 2014년에는 한 타블로이드지가 ‘우간다 대표 게이들, 입열다’라는 제목과 함께 자신의 사진을 실었다고 한다. 


정말 힘든 시기였습니다. 타격도 정말 컸고, 엄청난 공포와 패닉에 빠져 지냈습니다.” 루심보 씨는 그로 인해 가족과의 관계도 서먹해졌지만, 언젠가는 다시 예전처럼 지낼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참고로 가족에게도 이번 프라이드 행사의 초대장을 보냈다고 한다. 


우간다 성소수자 협회의 무기샤 씨도 <Red Pepper>지의 ‘대표 동성애자 인사 200명 리스트에 올라갔었다. 그보다 몇 년 전에는 동료 데이빗 케이토 씨가 지금은 폐간된 <롤링스톤>지에 의해 아우팅 당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몇주후 케이토 씨는 자택에서 고문당해 살해된 채로 발견되었다.


자신도 폭행 위협에 시달렸던 무기샤 씨는 지난 일년 동안 발생했던 사건 중 가장 부정적이었던 것은 언론매체들의 탄압이었으며, 사람들은 언론에 의해 자신의 신분이 폭로될까봐 두려워 하고 있다고 전했다.



숨은 목소리들 


아프리카의 반LGBT 정서를 연구하고 있는 싱크탱크, 정치연구협회(Political Research Associates)의 원로 연구가인 카피아 카오마 씨는 우간다의 자긍심 행사에 대해 “혼란스럽다”고 밝혔다. “가시성이 높아지겠지만, 아프리카의 성소수자가 서양의 성소수자를 베낀 판박이라는 잘못된 인상을 양산시킬 수 있습니다.”


“우간다의 LGBQ 공동체는 눈에 보이는 활동가들보다도 더 거대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이들은 신분도 없이 빈곤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죠. 이 사람들의 목소리는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간다는 아프리카에서 이런 행사를 치룰 수 있는 몇 안되는 국가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현재 아프리카에서는 55개국 중에서 36개국이 동성애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프라이드 행사가 열린 적이 없다. 



- Maeve Shearlaw


- 옮긴이: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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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4



There’s a silver lining in the religious right’s onslaught of discrimi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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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BT와 여성들에게 건강과 결혼의 권리를 제공하느니 만인에게 이 권리를 부정하려 하는 이들이 있다. 사진: ROBYN BECK/AFP/Getty Images




종교단체들이 LGBT와 여성들을 거부하기 위해 무리한 행동을 취할 수록, 우리는 그들이 겪는 고통과 부당함을 더 깨닫게 된다. 




미국의 우익 종교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차별을 감행하기 위해 벼르고 있다. 그런데 어쩌면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 이젠 특권층도 더 이상 편견의 여파를 간과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특권층도 더 이상 편견을 간과하거나 단순히 남의 일로 치부할 사치를 누릴 수 없게 되었다.


휘튼 컬리지는 일리노이주에 위치한 복음주의계 기독교 대학이다. 지난주 휘튼 컬리지는 오바마케어의 피임의무를 따르느니 모든 학생들의 건강보험을 취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바마 행정은 타협안을 제시하여 종교계 고용주가 피임에 반대할 경우 보험회사측에 입장을 통보할 수 있으며, 보험회사측은 피임을 보험적용 대상에서 제외시킬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휘튼 대학교측은 피임반대 입장을 밝히는 것조차 종교적 양심에 대한 관용에 위배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약 이런 주장이 널리 수용될 경우 큰 혼란이 야기될 것이 분명하다.


마찬가지로 미연방 대법원이 오버거펠 대 호지스 케이스에서 동성결혼을 전국적으로 합법화시키자, 켄터키, 앨라배마 등 보수지역의 일부 군청 직원과 유언검인 판사들이 동성애자 이성애자를 불문하고 혼인증명서를 일체 발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동성커플만 돌려보내면 차별죄로 기소당해 패소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대법원의 획기적인 판결 이전에도 종교단체들은 대규모 저항작전을 펴 왔다. 입양 및 위탁 서비스를 제공해 오던 미국과 영국의 천주교계 자선단체들은 직원의 동성 파트너에게 혜택을 제공하고 동성커플을 잠재적인 부모로 고려하는 것이 싫어서 아예 문을 닫아버렸다. 천주교계 학교도 학생들의 반발에 맞서 인기 있던 동성애자 교직원을 해고시키는 것으로 악명높고, 일부학교에서는 더 혹독한 윤리조항을 제정하기도 했다.

 

이런 전략은 시민권 운동 시절을 연상케 한다. 당시 일부 지자체에서는 인종통합 정책을 받아들이기보다는 공립학교와 수영장 등의 시설을 통째로 폐지시켰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종교계 보수주의자들은 LGBT와 여성들에 대한 차별을 이어가기 위해 결의를 다지고 있으며, 자신들이 보기에 평등을 누릴 자격이 없는 이들까지 동등히 대하기보다는 차라리 모든 이들의 권리와 특권을 박탈하려 하고 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 또한 일종의 진보라 할 수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물질적으로 박탈될 것이지만, 이런 차별의 댓가를 정치적으로 약소한 계층만 짊어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으로 번져 만인이 동등하게 부담하게 되기 때문이다. 정의와 공감에 기반을 둔 정치에 있어서는 좋은 소식일런지도 모른다.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이 없는 부당함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혼인등록소에서 동성커플만 거부당한다면, 이성애자들은 그들의 역경을 쉽게 무시해 버릴지도 모른다. 여성만이 기본적이고 꼭 필요한 생식 건강관리를 거부당한다면, 남성들은 이들이 겪는 문제를 쉽게 기각해 버릴 것이다. 하지만 사회의 대다수가 부당한 박탈로 인해 고통을 느낀다면, 편견이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직접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사회의 대다수가 차별 철폐를 위한 민주적인 방법을 지지하고 만인에게 좀더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데 동의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도 있다. 본인이 직접 경험하지 않더라도 타인의 부당한 대우를 접하고 상황을 개선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자각은 부족하다.


종교는 순수하게 자애롭고 긍정적인 단체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지만, 해악한 편견과 평등권의 부정을 정당화시켜 온 것도 사실이다. 부수적인 댓가를 치르고서라도 의지를 관철하려는 이들의 완강한 고집과 대대적인 전략 때문에, 사람들은 종교윤리의 비인간적인 측면으로 서로 대치하고 있으며, 이는 점점 더 간과하기 어려운 문제가 되고 있다. 무신론자들은 예전부터 이런 비판을 해왔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런 비판에 큰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은 바로 종교계 보수주의자들 자신이다. 



- Adam Lee


- 옮긴이: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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