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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4




홍콩 유명 패션 디자이너 윌리엄 , 동성 파트너와 약혼






홍콩의 저명 패션 디자이너 TV 프로그램 사회자 작가인 윌리엄 (William Tang, 鄧達智) 7 3 커밍아웃과 함께 1년간 교제해 의사 애인 찬지잔(陳梓欣)과의 약혼 소식을 공표했다. 탕은 약혼날이 찬지잔의 생일이었다며, 예식은 간소했지만 수많은 지인들이 증인으로 참가한 가운데 반지를 교환하는 , 로맨틱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고 한다.





올해로 59살인 탕은 사생활을 거의 밝히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번에 동성과의 교제 사실을 알린 이유는적절 시기에 좋은 인연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예전엔 믿지 않았지만, 이번에 정말 확신이 서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명을 만나도 이런 사람은 찾을 겁니다.”




- 옮긴이: 이승훈 




香港时装设计师邓达智与同性伴侣订婚

如愿愿意阅读淡蓝的原件,请按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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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7




성소수자들,  꼴로 직장에서 괴롭힘 당해 




응답자 5천 명 중 절반만이 직장에서 커밍아웃했으며, 젊은층의 경우 커밍아웃한 사람이 36%에 그쳤다.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LGBT들이 꼴로 직장에서 괴롭힘 추행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이스타뉴스> 노동조합회의(TUC) 보고서를 인용해 젊은층,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들이 가장 타격을 많이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응답자 5 절반만이 직장에서 커밍아웃했으며, 젊은층의 경우 커밍아웃한 사람이 36% 그쳤다.


시스젠더 동성애자 양성애자들 직장에서 괴롭힘과 추행을 겪는 이들은 35%였던 반면, 트랜스젠더의 경우 거의 절반에 달했다.


노조연합회의의 프랜시스 오그레이디 서기는직장내 동성애혐오와 트랜스젠더혐오는 아주 굴욕감을 있지만, 줄곧 과소평가되어 왔다정신건강에도 영향을 미칠 있다 지적했다. 


고용주들은 LGBT 스탭들을 겨냥한 추행을 일체 용납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확고히 하는 한편, 관련 불평들을 진지하게 다룰 태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노동조합회의는 학교에서 포용적인 성교육 연애교육을 실시하면성소수자 혐오를 조기에 다룰 있을 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보고서에는 양성애자들의 상황이 다른 성소수자들보다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동성애자의 경우 직장에서 전혀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다고 답한 이들은 13%였던 반면, 양성애자들은 25% 되었다.


젊은층도 직장에서 전혀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다고 답한 이들이 20%, 커밍아웃율이 저조한 편이었다.




- JESS JONES 

- 옮긴이: 이승훈



 

ONE IN THREE LGBTI PEOPLE BULLIED AT WORK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Star Obser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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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6




LGBT 지자체의원연맹 발족식에서 도쿄 분쿄구 마에다 쿠니히로 의원 커밍아웃




7 6 도쿄 도청 기자클럽에서 LGBT 지자체 의원연맹 발족 기자회견이 열린 가운데, 세타가야구의 카미카와 아야 의원, 토시마구의 이시카와 타이가 의원, 나카노구의 이시자카 와타루 의원, 이리마시의 호소다 토모야 의원에 이어 다섯 차례나 분쿄구 의원직을 역임한 마에다 쿠니히로 의원이 등장해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했습니다. 


LGBT 지자체 의원연맹은 1.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에 관한 인권옹호 조례 제정과 정책 추진, 2. 동성파트너제도의 창설과 LGBT 당사자의 자기긍정감 공장을 위한 정책 추진 등을 통해 집단괴롭힘, 자살, 빈곤, 질병감염, 의존증 등의 예방을 각지역 실정에 맞춰 추진하는 한편 3. 회원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정보를 교환하기 위한 목적으로 발족했습니다. 사무직은 LGBT 의원 다섯 명이 맡고, 연맹의 취지에 동의하는 전국(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각지의 지자체 의원 78 (현의회 의원 8 , , , 정의원 70)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국가 차원의 LGBT 차별금지 법제정이 정체되고 있는 가운데, 시부야구, 세타가야구에서 동성파트너십 증명제도가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산되는 , 지방 단위로도 변화를 일궈낼 있다는 , 이미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국가에서도 처음엔 지자체 차원에서 변화가 시작되어 국가차원으로 확산되었다는 점을 고려해 지자체의 LGBT의원들이 주축이 되어 변화를 이뤄내기 위한 모임이라고 합니다. 


아직 공식 홈페이지는 없지만 (이름을 올린 의원 여러분의 명단도 공개된다고 하니, 전국의 당사자들이 의회에 건의를 하고 싶을 누구와 상담하면 될지 지표가 것으로 예상됩니다.) 첫번째 활동으로 2017 7 27일부터 28일까지 이틀간 토시마구 구청에서하기 연수회 개최할 예정이며, 삿포로의 파트너십 제도 성립에도 공헌한 스즈키 교수도 강사로 참가한다고 합니다. 


LGBT 지자체 의원연맹 2017 하기 연수회

일시: 2017 7 27() ~ 28()

회장: 토시마구 구청 8

회비: 5천엔

강사: 스즈키 메이지대학 교수 홋카이도 대학 명예교수, 스즈키 히데히로 니혼대학 위기관리학부 준교수 분쿄구 구청 남녀공동 담당과장, 하세베 시부야 구청장

내용: 강연, 지자체 의원들의 보고, akta 시찰, 시부야 다이버시티 센터아이리스시찰, 친목회



연맹의 취지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의원 여러분이 각자의 경험을 공유한 가운데, 마에다 의원은 커밍아웃을 결심한 경위에 대해 (눈물을 글썽이며) 파트너를 잃은 경험부터 들려주었는데, 정말 남일 같지 않은 가슴아픈 사연이었습니다. 


저는 8년간 동거한 파트너와 사별한 경험이 있습니다. 집에 쓰러져 있던 파트너는 병원으로 긴급후송했지만, 저는 법적 친족으로 인정받지 못해 중환자실에도 들어가지 못한 안부 조차 제대로 접하지 못했습니다. 다행히도 파트너 부모님이 사람도 가족입니다라고 말씀해 주신 덕분에 병실ㅔ는 들어갈 있었지만, 동거인은 면회를 없다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직접 겪은 경험이었습니다. 장례식 때도 조부모님이 받아들이지 못하실 거라며 상주를 맡기는 커녕 가족석에 앉지도 못했습니다. , 부모님의 배려 그의 유품을 물려받을 수는 있었습니다. 같이 살던 집도 파트너의 명의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쫓겨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평소에 파트너의 부모님과 가깝게 지내는 ) 아무리 노력을 해도, 관계없는 3자로부터당신은 가족이 아니다 소리를 들으면 저항을 수가 없게 됩니다. 사회적 제도도 없고, 법으로 보호를 받을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당시는 삼십대였지만 어느덧 어머니가 알츠하이머를 앓기 시작했을 때와 똑같은 52세가 되어, 노후, 죽음 등의 문제를 점점 실감하고 있습니다. 위장결혼을 하지 않고 동성애자로 살아가기를 선택한 첫세대가 고령에 접어들어 질병과 병수발 등의 문제에 직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금 이대로라면 자살과 병수발로 인한 퇴직 등의 위험을 겪는 이들도 앞으로 늘어갈 것입니다. 국가가 제시하는 지역포괄시스템에는 LGBT 포함되지만, 차별과 편견이 있다면, 상호지원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한 , 고립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지금 바꾸지 않으면 앞으로 점점 심각해질 거라는 위기감마저 느끼고 있습니다.


당사자가 목소리를 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공표하지 못했던 것도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분쿄구 의회에 처음 당선되었을 , 의회사무국에 동성애 관련 항의서한이 배달된 적이 있습니다. 믿고 커밍아웃한 사람이 주변에 소문을 적도 있었습니다. 의원이기 때문에 그만큼 위험성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저는 사회에 일정의 영향력을 가진 입장으로, 여러분이 목소리를 내면 제도를 만들 책임이 있습니다. 또한, 소외받는 이들을 지원하려면, 소수자로서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편이 지원도 힘을 얻게 되지 않을까, 남몰래 고민하는 사람들도 목소리를 내기 쉬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커밍아웃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LGBT 지원하는 시스템 제도가 생기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다양성과 상호협동이 실현되는 사회를 구축해 가고 싶습니다. 누구나 자신을 숨기지 않고, 소중한 이와 함께 살아갈 있는 사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LGBT 젊은층에만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어느 세대에나 존재합니다. 50대에 다다른 저의 커밍아웃이 향후 용기 있는 발걸음으로 이어지길 기대해 봅니다.


마에다 의원과 파트너는 90년대 후반 도쿄 국제 레즈비언&게이 영화제에도 관여했었고, 퍼레이드에도 참가하는 외에도 일본에서 처음으로 PSG라는 부모들의 모임을 통해귀가길(家路)이라는 부모용 책자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필자가 집에서 커밍아웃할 있었던 것도 책자 덕분이었습니다.) 이렇듯 분은 성소수자 공동체를 위해 정말 소중하고 멋진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2002 마에다 의원의 파트너가 돌연사한 말로 표현할 없는 슬픈 사건이었습니다. (장례식에는 동성애자들도 다수 참가했었습니다.) 하지만 마에다 의원은 슬픔을 극복하고 구의원으로서 분쿄구에서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에 기인한 차별금지 조례의 제정 , 일전에 기사 소개해 드렸듯 직원들을 위한 대응지침 작성에도 공헌해 왔습니다. 2007년에는 오츠지 카나코 씨의 선거에도 힘이 되었고, 굿에이징옐스에도 참가해 왔습니다. 남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공동체를 위해 힘쓰면서도, 결코 허세를 부리는 없이 온화하고 자연스러우며 호감도가 높은 분입니다. 


그런 마에다 의원이 이번에 드디어 커밍아웃을 결정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급하게 회장에 달려갔는데, 지금까지 주변지인에게조차 별로 밝히지 않았던 속내를 털어놓는 것을 보고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천국에 파트너분도 그런 마에다 의원을 지켜보고 있었으리라 믿습니다.)


마에다 의원의 커밍아웃에 박수를 보내며, 그의 바람이 실현될 있도록 (LGBT 지자체 의원연맹 등의 활동을 통해 차별금지법 동성파트너법의 제정이 실현되어 LGBT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살아갈 있도록) 많은 응원 부탁 드립니다. 
 



- 後藤純一

- 옮긴이: 이승훈




文京区の前田邦博区議がカミングアウト、LGBT自治体議連発足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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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30




군대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해고했지만, 지금 나는 떳떳한 커밍아웃 경찰관이다. 




이중생활을 살았던 나는 지금 다른 이들의 롤모델이 되기 위해 노력중이다. 프라이드란 우리가 얼마나 길을 걸어왔는지,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되새김하는 것이다. 




필자 수 맥스웰은 우리가 얼마나 먼 길을 걸어왔는지, 또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기억하기 위해 이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사진: 트위터



나는 어릴 때부터 군인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래서 19살이 되던 1986 헌병대에 입대했을 땐 무척 기뻤다. 


그때 이미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아직 갈등을 하고 있던 때라 가족은 물론 직장에서도 커밍아웃하지 않았다. 헌병대에는 동성애 금지법이 있었기 때문에 섹슈얼리티를 밝힐 의도는 없었고, 3년후 제대할 때까지 없이 숨겼다. 


 

 


같이
 읽기:


난 작년 프라이드에서 프로포즈했던 경찰관이다. 

그때 내가 접한 증오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 Phil Adlem



 


치체스터 훈련소를 나온 나는 런던 쪽에 배치되었는데, 각종 식전행사를 주로 맡았다. 중에서도 보안요원으로 마가렛 대처 수상의 호주방문을 수행한 것과 내가 다이애나 왕태자비를 비롯한 다른 왕족의 차문을 여는 모습이 뉴스에 여러차례 나갔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1989 상등병이 나는 약물 정보팀에 파견되었다. 약물 정보팀은 통제약물을 오용하는 대원을 찾아내는 치안부대였다.  


그해 내가 편지가 어쩌다가 특별수사부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 편지를 열어 읽어본 수사부에서는 내가 동성애자라는 의심을 하게 되었다. 숙소를 뒤진 그들은 나를 가족과 지인들에게 아우팅시켰고, 나는 결국외설죄 해고되었다. 방의 어마어마하면서도 아마도 불법이었을 사생활 침해로 나는 직장도 집도 잃게 것이다. 


그후로 생활은 비참해졌다. 헌병대를 떠나며 앞날이 막막했지만 한편으론 경찰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 헌병대 생활이 너무 좋았고, 동지애와 규율 그리고 분위기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나는 공익근무에 끌렸고, 소질도 있었다. 


나는 영국교통경찰에 응모했다. 자신감이 크게 떨어져 있던 때라 붙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1990 나는 순경으로 임명되었다. 


불과 얼마전 경험으로 인해 잔뜩 긴장해 있던 나는 동성애자임을 밝히지 않기로 했고, 직장 안팎에서 이중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결국 비밀은 새어나갔고, 수년후 커밍아웃했을 때는 동료들은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동안 들키면 큰일나는 알았던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바뀌었고, 예전보다 정체성을 편하게 받아들일 있었으며, 두려움도 없어졌다. 그건 정말 해방감이었다.


하지만 자신감은 여전히 되찾지 못했다. 헌병대에 있을 때는 야망이 크다는 소리를 듣곤 했지만, 교통경찰에서는 10 동안 어떠한 승진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경정 코치를 받게 되엇고, 그때 얻은 자신감으로 승진을 시도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후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군대내 동성애 금지법 철폐 운동단체인 랭크 아웃사이더스(Rank Outsiders)라는 모임에 가입했고, 집단소송에 참가해 유럽 인권재판소까지 가서 승리를 이끌어냈다.


그때부터 나는 기회만 되면 LGBTI 공동체를 지지해 왔다. 처음 랭크 아웃사이더스에 가입할 때만 해도 프라이드 행진에 참가한다는 꿈도 꾸지 못했는데 지금은 프라이드 행사에 참가하는 것이 너무 좋고 다른 동료들에게도 적극 권장하고 있다. 


나는 다른 LGBTI 경찰들이 판단의 잣대나 차별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신의 모습을 숨기지 않고 살아가도록 귀감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지역사회 구성원의 모습을 보고, 우리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신뢰를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교통경찰국에 몸담아 지난 27 동안 시련도 없진 않았다. 익명의 내부보고서에 이름이 수차례 오른 적이 있는데, 동성애혐오행위로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Link(런던 경찰국내 LGBT 네트워크) 엄청난 지지를 받았고, 사건도 혐동성애적 사건으로 기록될 만큼 심각하게 다뤄졌다.


나는 정말 민중의 힘을 믿는다. 그리고 지난 30 동안규범 의구심을 품고 도전해온 이들을 목격해 왔으며 그들의 덕을 보기도 했다. 아이를 가지긴커녕 결혼을 있을 거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두가지를 이뤘고, 우리 네살배기 딸내미는 내가 이룩한 가장 자랑스런 성취물이기도 하다. 


프라이드란 우리가 얼마나 길을 걸어왔는지,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되새김하고 기념하는 것이다. 헌병대에는 아무런 여한도 없다. 그땐 그냥 그런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세월 동안 헌병대와 다른 기관이 이룩한 발전에 박수를 보낼 . 


* 맥스웰은 영국교통국 스코틀랜드 동부 북부 사령부 경감입니다. 




- Sue Maxwell

- 옮긴이: 이승훈



The army dismissed me for being gay – now I'm an out and proud police officer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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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0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라인맨 라이언 오캘러핸, 동성애자로 커밍아웃 




NFL 현역당시 캔자스시티 치프스에서 활동했던 오캘러핸, '자살 생각하다가 예전 팀원들 도움 받게 돼'





2011년 NFL에서 은퇴한 라이언 오캘러핸. 사진: Al Messerschmidt/Getty Images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캔자스시티 치프스에서 공격라인맨으로 활동했던 라이언 오캘러핸(Ryan O’Callaghan)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했다. 


2011 은퇴했으며 올해로 33살인 오캘러핸은 지난 화요일 공개된 아웃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했다. 오캘러핸은 보수적인 지방에서 자랐고, 십대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NFL 거치는 동안 사징의 섹슈얼리티를 숨기기 위해 운동선수라는 신분을 이용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거구의 풋볼 선수가 게이일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 못하니까요.” NFL에서 현역으로 활동할 당시 그는 201m 몸무게는 150kg 달했다. “풋볼이 숨기 쉬운 공간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죠.”


부상으로 은퇴했던 오캘러한은 지금도 당시 부상으로 힘들어 한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도 봤다고 털어놓았다. “진통제를 남용했습니다. 상처 때문에 느끼는 고통도 덜어줬지만, 동성애자라는 사실 때문에 느끼는 고통도 덜어줬죠. 비코딘을 먹을 내가 게이라는 사실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습니다. 정말 거짓말처럼요. 그렇게 있는 돈을 써가며 점점 자살 외에는 다른 출구가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됐죠.”


그런 그를 심리상담가 수잔 윌슨과 매니저 스콧 피올리 , 캔자스시티 치프스의 스텝들이 나서서 돕기 시작했다. “커밍아웃을 하면 반응이 얼마나 끔찍할까 하는 생각 밖에 하고 살았습니다. 자신에게 솔직해지려면 거짓말을 때보다 훨씬 강인해야 하더라구요. 강인함을 길러서 윌슨에게 털어놓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먼저 상대방과 신뢰를 쌓아야 했죠. 털어놓고 나니 어깨에 육중한 짐을 내려어놓은 같더군요.”


오캘러핸은 대학교 함께 선수생활을 했던 그린베이 패커스 쿼터백 아론 로저스에게도 커밍아웃한 적이 있는데, 당시 로저스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고 한다. 




- 가디언 스포츠

- 옮긴이: 이승훈




Ryan O'Callaghan, former New England Patriots lineman, comes out as gay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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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6




아랍계 퀴어남성인 나는 페이스북을 통해 섹슈얼리티를 받아들이게 됐다.




동안 SNS에서 섹슈얼리티를 밝히지 않은 나, 더이상은 숨기고 싶지 않았다.




사진: Christian Horz/iStock/Thinkstock



엄마가 페이스북 게시글에좋아요 누른 보니 미소가 저절로 나왔다. 


몇달전 런던 프라이드 게이 이프타르가 제공되었다는 기사를 올렸었다. 이프타르란 무슬림들이 라마단 기간 동안 단식을 끝내고 드는 식사를 말한다. 나는 17 이후로 단식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분 좋은 기사였다.


삶에서 이슬람과 동성애는 결코 함께 없을 거라 생각했다. 마치 물과 기름처럼 말이다. 불가지론자, 아니 무신론자에 가깝지만, 그래도 이런 기사를 보면 정체성 사이의 틈이 매워지는 같다. 그런데 엄마도 같은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2007 처음 페이스북에 가입했을 때부터 가족은 물론 친척들까지 친구로 등록되어 있다. 언제 누가 누구한테 친구신청을 보냈는지 일일이 기억나지도 않을 뿐더러, 대수롭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적어도 처음엔 말이다. 


중동계 대가족은 말이 많다. 레바논 사람들 중엔 남얘기 하는 유일한 낙인 경우가 많은데, 우리집처럼 친척이 많으면 그만큼 소문도 멀리 퍼진다. 나는 18 때부터 섹슈얼리티 때문에 수많은 소문의 표적이 되었다.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한 것도 그렇고, 나보다 나이가 배나 많은 사람과 사귄 것도 그랬다. 그런데 페이스북에서까지 섹슈얼리티를 드러내면 말이 많아질 같았다. 


그래서 SNS에서는 굳이  섹슈얼리티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감시하기 시작했고, 종교와 섹슈얼리티가 연관된 부분에 대해서는 더욱더 조심하게 됐다. 그러면서 프라이버시를 중시여긴다는 변명하에 이런 나를 정당화시켰다.


프라이드 관련 기사는 올렸지만, ‘게이 프라이드라고 하지 않는 이상 친척들은 그게 뭔지 몰랐다. 사진도 일반적인 것만 올렸는데, 친척들은 디스코볼이나 비어가든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면만 보고는 그곳이 퀴어 공간이라는 없었다. 물론 무지개 깃발 사진은 피했다.


아무리 커밍아웃을 하려 해도 커밍아웃이 완전하지 않을 신경에 정말 거슬리곤 한다. 나는 아끼는 사람들(친한 가족들)한테는 커밍아웃했지만, 페이스북에서는 18 때처럼 자신을 당당하게 밝히지 못한채 벽장 속에 숨어 있었다. 


2015 프라이드 시즌 친구들의 프로필 사진에 무지개 필터가 씌워져 있는 봤다. 나는 프로필 사진을 그대로 두면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게이라는 사실에 떳떳하다고 생각했는데, 필터 하나 쓰는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부정 때문에 심각하게 고민한 때가 처음이었다. 지금처럼 페이스북에서 계속 자신을 숨기는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주말 나도 프로필 사진에 무지개 필터를 추가했다. 


조그만 행동은 내가 섹슈얼리티와 관련해 SNS에서 취한 가장 공공연한 선언이 되었고, 엄마와 성건강이나 다른 LGBT 주제에 대해 대화를 하게 계기가 되었. 그건 내가 절실히 바라던 해방감이었다. 나는 이반 관련 기사와 함께 의견도 올리기 시작했고, 퀴어나 다른 논란의 소지가 있는 이슈에 대한 나만의 생각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는 와중에 일부 친척들은 차단했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이프타르 기사에 엄마가 좋아요를 누르자, 형들도, 사촌도 그리고 형수까지 좋아요를 누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오픈된 공간에서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받아들여준다는 개인적으로 혁명에 가까운 경험이었다. 가족들의 지지는 내가 속한 문화와 섹슈얼리티 사이에서 느끼던 간격을 좁혀주기도 했다.


지난주 CNN 베이루트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프라이드 행사 관해 보도했다. 우리 가족은 레바논 출신이었기 때문에, 이프타르 기사보다 훨씬 친근감을 느끼는 소식이었다. 나는 기사도 공유했다. 이번엔 엄마는 물론 누나도 좋아요를 누르며 이런 댓글까지 달아줬다. 


대박!!!!! 이젠 프라이드할 때도 됐지!”




- Mike Miksche

- 옮긴이: 이승훈




How Facebook helped me reconcile my sexuality as a queer Arab man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Daily X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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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7




사랑스런 사진 공개한 프로 축구선수, 열애설 확산




"케이타가 게이라면, 커밍아웃은 정정당당한 것이다. 정말 용기있다. 다른 동성애자 선수들도 커밍아웃을 있다는 긍정적인 메시지가 것."






이태리 축구클럽 라치오 선수 케이타 발데와 파트리시오 가바론 길이 지난주말 수영장에서 손을 잡고 있는 사진을 SNS 공개했다.


팬들은 사진 캡션에 있는 남자와 하트 모양의 이모티콘이 의미하는 바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의미가 무엇이든, 대부분의 팬들은 사진에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팬은케이타가 게이라면 축구계를 영영 바꿔 놓을 이라며친구, 가족 그리고 팬들이 그를 아낌 없이 응원할 이라고 했다. 


케이타가 게이라면, 커밍아웃은 정정당당한 것이다. 정말 용기있다. 다른 동성애자 선수들도 커밍아웃을 있다는 긍정적인 메시지가 .”


한편 호주에서는 시드니 대학교 호주 풋볼 클럽이 스포츠 동성애혐오증에 맞서기 위해 프라이드 게임 개최할 예정이다.







- MATTHEW WADE

- 옮긴이: 이승훈




PRO FOOTBALLERS SPARK RELATIONSHIP RUMOUR WITH CUTE PHOTO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Star Obser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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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31




나이 들어 커밍아웃하기 ' 이상 벽장 속에선 살겠더라구요.'




"커밍아웃 과정은 살면서 가장 획기적인 경험이었던 같아요. 그걸 해낼 용기를 냈다는 지금은 너무 다행스럽죠."





커밍아웃은 원래 쉽지 않은 것이지만, 만약 수십년 동안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숨기고 살아왔다면 어떨까? 매튜 웨이드 게이 남성들과 나이 들어 커밍아웃한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


45살에 커밍아웃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유부남이었던 스티븐 블룸도  십년 동안 스스로를 억눌러 왔다. 하루는 아내와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를 악물고 고백하기로 했다. 


현재 게이 유부남 협회(GAMMA)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젊을 때부터 자신이 남자에게 관심이 있다는 알고 있었지만, 욕구는 안으로 숨어들었다. 


“70년대만 해도 동성애혐오가 만연했고, 가족들도 굉장히 내성인데다가 보수적이었죠.”


집에서는 제가 조만간 여자를 만나 결혼하기를 바랬습니다.”


삼촌 중에 게이가 있었는데, 시내 반대편에 살고 계셔서 연락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다짜고짜 전화하는 것도 그랬구요. 그냥 계속 부인하고 싶었어요.”


동성애혐오가 만연했던 시절 어린시절을 보낸다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블룸은 특히 지인들과 함께 탈의실 같은 곳에 들어갈 발기를 조절하지 못해 힘들었던 때가 많았다고 한다. 


학창시절 때는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 뿐만 아니라 동성애 대한 이끌림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갈등을 많이 겪었다고 한다. 


그러던 와중에 70년대가 지나가고 에이즈 사태가 발발한다. 


십대의 눈에 동성애는 HIV 에이즈로 밖에 안보였어요. 정말 끔찍했고, 제가 그렇게 된다는 것도 정말 싫었죠.”


게이와 연관된 무조건 피했습니다. 당시 수난을 겪었던 드래그퀸들, 에이즈 그리고 엄청난 동성애혐오증 등등.”


그땐 동성애혐오라는 말이 있는지도 몰랐을 때였죠.”


호주 문화에 내재돼 있던 동성애혐오와 동성애자들에 대한 폭력과 증오발언이 뒤범벅되어 에이즈 사태 발발과 함께 폭발했고, 그걸 보며 블룸은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기고 부정할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 그는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고, 상담을 받으며 항우울제도 복용했다. 


우울증을 퇴치하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명상을 시작하게 되었고, 명상을 통해 자신을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3 동안 섹슈얼리티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며, 우울증이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건지 찾아내려 했죠.”


자신에 대해 사정없이 솔직해지다보니, 나는 남자를 정말 좋아하는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내에겐 번에 털어놓진 않았다고 한다. 


계속 암시를 줬죠. 우리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기면 인생에 결혼은 다시 없다고 하면서, 섹슈얼리티 이야기를 자꾸 꺼냈습니다.”


그날밤도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아내가 묻더라구요, 혹시 게이냐고. 10 동안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지나갔고, 결심했죠. 솔직해야겠다고, 남은 생은 솔직하자고.”


저는 맞다고 하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IVE 그룹의 제프 셀리그 이사도 어릴 자신의 섹슈얼리티에 눈을 뜨면서 혼란스럽고 힘든 시기를 거쳤다고 한다. 


원래 성장한다는 혼란스런 시기지만, 특히 섹슈얼리티에 관해서는 그런 같아요.”


때만 해도 제가 게이라는 자각이 있진 않았는데, 그때는 게이가 뭔지도 몰랐을 때였죠.”


경우는 고등학교 처음으로 자신에게 커밍아웃했습니다. 나는 게이구나, 하고 깨닫고 나니 두렵더라구요.”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숨기고 25 결혼한 셀리그는 흠잡을 없는 아내 제인과 아름다운 딸을 키우며 살아왔다.


제인에게 커밍아웃한 15 전이지만, 다른 가족들과 주변사람들에게 완전히 커밍아웃한 2014년이 되어서였다. 


이상 벽장 속에서는 못살겠더라구요.”


영혼이 파괴되고, 그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까지 파멸을 안겨주는 심정이랄까.”


커밍아웃 과정은 살면서 가장 획기적인 경험이었던 같아요. 그걸 해낼 용기를 냈다는 지금은 너무 다행스럽죠.”


셀리그는 드디어 주변사람들에게 커밍아웃해서 너무 기쁘다면서도 십대 일찌감치 커밍아웃하는 것과는 너무나도 차이가 있다고 한다. 


오랜 세월 동안 벽장 속에서 살면서 피속을 흐르던 자기부정과 자기혐오로부터 해방되는 느낌이었죠.”


그래서 건전한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가려면 자아가 형성되는 사춘기 커밍아웃하는 정말 중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호주 퀴어 젊은이들의 문화와 생활방식이 수십년 전과는 너무나도 달라졌지만, LGBTI 청소년들이 안심하고 살아가려면 아직도 과제가 남아있다는 데에는 블룸과 셀리그 사람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성정체성, 섹슈얼리티 같은 것들로 오랜 시간동안 갈등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누구든 젊을 안심하고 커밍아웃할 있으려면 아직도 길이 멀죠.”


게이유부남협회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www.gamma.org.au 참조바랍니다.




- MATTHEW WADE

- 옮긴이: 이승훈




COMING OUT LATER IN LIFE: “I COULDN’T GO ON LIVING IN THE CLOSET”

Click here for the orignaila article on Star Obser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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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 근위대, 팔레스타인, 노이쾰른 헤르만 광장 그리고 최트랜스 의원




퀴어한 토막기사 








유엔, '인도네시아는 성소수자들 석방하라'


루퍼트 콜빌 인권고등판무관실 대변인. 사진: 플리커.

지난 금요일 루퍼트 콜빌 유엔 인권담당관이 인도네시아에서 진행 중인 성소수자 탄압에 우려를 표명하며, 성적지향을 이유로 감금된 이들을 석방하도록 요구했습니다. 무슬림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도네시아에서는 동성애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지는 않지만, 아체주에서는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얼마전 아체주에서는 동성커플이 공개태형에 처해져 국제사회의 규탄이 이어졌고, 자카르타에서는 게이사우나가 경찰의 습격을 당해 141명이 연행되기도 했습니다. 


: lgbtqnation






혐동성애발언 때문에 사직서 낸 학생 대표


러시아 모스크바 고등경제대학(НИУ ВШЭ) 학생 권리 옴부즈맨 안드레이 부한초프가 자신의 SNS에서 동성애 혐오 발언을 지속하자 같은 학교 학생들이 그의 파면을 요구하는 캠페인에 나섰습니다. 온라인 서명 운동에 2 이상이 동참했다고 하자 결국 부한초프는 자진 사퇴했습니다.


출처: ZNAK




푸틴 근위대, 체첸에서 살해당했나?


로스그바르디야. 사진: 위키백과

체첸의 동성애자 탄압 사태를 보도한 <노바야 가제타> 지에 따르면, 국가근위대(로스그바르디야) 대원이 체첸 공화국 동성애자 탄압 과정에서 동성애자로 의심받아 살해당했다고 합니다. 국가근위대(로스그바르디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작년 창설을 발표한 푸틴 대통령 직속의 준군사조직으로, 국가근위대 측은 대원이 체첸에서 동성애 의심으로 살해당했다는 <노바야 가제타> 보도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출처: РБК




뉴욕 '리틀 오데사'에서 첫 프라이드 행진 개최


리틀 오데사. 사진: 플리커

러시아, 우크라이나 출신 이민자(특히 유대계) 모여 사는 곳으로, '리틀 오데사'라고도 불리는 뉴욕의 브라이튼 비치. 여기서 지난 5 20 처음으로 러시아어 사용 성소수자 프라이드 행진이 열렸습니다. 주최는 미국 러시아어 사용 LGBTIQ 단체인 RUSA LGBT.


출처: mic 




러시아: 퀴어코드와 이성애규범성


사진: Wonderzine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러시아 대중음악의 퀴어 코드 뮤직비디오를 모아 놓은 러시아 온라인 여성 저널 <Wonderzine> 글이 러시아 SNS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소련 해체 직후인 90년대에 러시아 대중음악은 섹스, 젠더, 사랑을 재해석하며 새로운 실험에 몰두했으나, 2000년대 중반 이후 이성애 규범성이 강화됐다는 평가입니다.


출처: wonderzine 




카자흐스탄에서 동성애자 커밍아웃


소련 말기에 태어나 현대 카자흐스탄에서 살고 있는 동성애자 아미르 샤이케자노프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커밍아웃했습니다. 자신의 커밍아웃, 연애, 인권 활동 등에 대해 털어놓았습니다. 샤이케자노프는 최근 kok.team이라는 카자흐스탄 성소수자 웹사이트를 개설했습니다.


출처: vmedia 




텔아비브 프라이드 퍼레이드와 팔레스타인 퀴어들


2014년도 텔아비브 프라이드. 사진: 위키백과.

오는 6 9 열리는 2017 이스라엘 텔아비브 프라이드 퍼레이드의 주제는 양성애자 가시화. 한편 팔레스타인 퀴어 활동가들은 세계 성소수자들에게 이스라엘 텔아비브 프라이드 보이콧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이스라엘 독립 69주년이지만, 팔레스타인 퀴어들에게는 점령, 식민주의, 분리·차별 정책의 69년이라고.


원문 관련기사: alQaws




독일 사민당 대표, '동성결혼 추진은 무리'


마르틴 슐츠. 사진: 플리커

오는 가을 총선을 앞두고 있는 독일에서 사민당의 총리 후보이자 대표인 마르틴 슐츠가 이번 의회 회기내에 더이상의 동성결혼 합법화 추진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우회적으로 표명하였습니다. 슐츠는 연립정권의 연정 파트너인 기민당과 기사당이 계속해서 동성결혼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기 때문에 더이상의 추진은 불가능하지만, 사민당은 계속해서 동성결혼의 합법화를 지지하고 추진할 것이라고 잡지 지게스조일레와의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사민당은 2013 총선에서 동성결혼 합법화를 공약으로 내세웠으나 기민당과의 연정협약서에 것이 누락되는 , 독일 성소수자 단체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출처: queer.de




베를린에서 혐동성애적 증오범죄 발생


5 27 14 반경 베를린의 노이쾰른 헤르만 광장에서 시리아 출신의 35 남성이 가족으로 보이는 무리로부터 혐동성에적 욕설과 함께 신체적 공격을 당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피해자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으며, 해당 남성은 구급차로 병원에 실려갔습니다.


출처: queer.de




독일: 성소수자 난민 상대로 설문조사 실시 


시리아출신 33명과 이라크출신 18, 러시아출신 12 , 성소수자 난민 1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조사를 실시한 결과 다수가 독일에서도 안전함과 보호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답변했습니다. 응답자 55% 증오언설을 경험했으며, 신체적 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한 사람도 24% 이르렀습니다. 대부분은 자신의 출신국이나 난민이란 이유만로 차별과 언어적 신체적 피해를 받았습니다.


출처: queer.de




에콰도르에서 첫 트랜스젠더 의원 탄생 


Diane Rodríguez 의원. 사진: 위키백과.

에콰도르 의회최초의 성소수자 의원이 탄생했습니다다. LGBTI 인권 증진을 위해 투쟁해 트랜스젠더 활동가 Diane Rodríguez 바로 주인공. 에콰도르 집권 여당인 파이스 연립당 소속 의원으로서 에콰도르의 평화, 안전, 진보를 위해 활동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출처: andes 








- 종원, dmthoth,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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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7




나같은 게이 스포츠선수들은 이상 숨어선 된다. 방법은 있다..




나는 레이서 중에서 처음으로 커밍아웃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하지만 스포츠계에는 LGBT평등 이슈를 두려워 다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대니 왓츠: ‘모터 스포츠계에서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밝히는 데에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다.’ 사진: Danny Watts



팀의 일원이 된다는 정말 최고로 기쁜 일이다. 반면 스포츠계의 분위기 때문에 자신을 숨겨야 한다면, 엄청난 고립감을 느끼게 된다. 으레 스포츠계의 동성애혐오 논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축구다. 관중석의 구호와 선수들 사이에 오가는 야유 등등... 하지만 축구만 그런 아니다. 내가 몸담고 있는 모터 스포츠도 마초경향이 매우 심하다. 그래서 또한 올초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하기 전까지 오랜 시간 동안 침묵을 유지해야 했다.



같이 읽기: 그레그 클락 영국 축구연맹 회장, '축구계는 LGBT 수용에 심각한 문제 안고 있다'



그래서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아 진정한 자신을 숨기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알리기로 했다. 사실 내겐 숨는 이상이었다. 사람들에게 내가 행복하고 활달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줘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으로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 했다. 사람들이 알아차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말이다. 커밍아웃을 고려하기 시작할 즈음 (올해초 커밍아웃했다), 정신은 온통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남들이 내게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원치 않았던 나는  행복한 척만 , 실제로 행복할 겨를따윈 없었다. 


다들 말로는 게이든 일반이든 상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모터 스포츠계에는 나처럼 커밍아웃한 선수가 거의 없다.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공개하는 데에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다. 사회의 다른 분야에서는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모든 분야가  그런 아니고 특히 스포츠계는 심하다. 


동료들한테는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동료들한테 일찌감치 털어놓았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스포츠계의 LGBT들은 여전히 눈에 띄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 그건 사람들이 선택한 아니다. 접하는 욕설과 야유를 통해너같은 사람은 환영 못받는다 메시지를 접하는 것이다. 나는 모터 스포츠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오랫동안 다른 사람인 척하며 살아야 했다.


커밍아웃하지 못한 선수들은 일상적으로 이런 비하발언을 접하며나는 남들과 다르다 생각을 굳히게 되고, 결국엔이런 사람은 밖에 없을 라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또한 들키기 싫었고, 그렇게 남들이 내게 부과한 이미지에 맞추며 살아갔다.



"아무말도  하는 것보다 차라리 틀린 말이라도 하는 낫다. 사람을 정말 미치게 만드는 다름아닌 침묵이기 때문이다."



LGBT 평등권에 지지의 뜻을 보이는 것이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큰힘이 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편에 서주는 사람도 있다는 , 누구나 스포츠계의 증오와 상처를 퇴치할 있다는 , 그리고 누구나 스포츠를 관전하고 즐길 있다는 알리기 위해 우리 모두가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스포츠의 수용성을 늘리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쉬운 해결책은 없다. 하지만 후원업체와 관리부는 지금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들의 관할범위와 영향력이 매치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사가정체성을 불문하고 누구나 받아들인다 말하는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가 몸담고 있는 스포츠계도 그렇게 생각할까? 라커룸은 과연 누구나 환영하는 분위기일까? 그리고 팬들은? 이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사 사람의 의견은 의미가 없다. 


이번주 스포츠계 이사들이 모여 레인보우 레이스 회담 열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하지만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진지한 토론이 필요하다. 모든 것을 선수 혼자서만 짊어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미 선수로서 많은 책임감을 이고 있는데, 평등권까지 지지하라는 너무 불공평한 일이다. 


스포츠계 인사들 중에는 사안을 다루기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아예 손을 대지 않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경험을 공개하는 두려움을 타파시키고, 침묵이야 말로 해를 가져다 준다는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아무말도  하는 것보다 차라리 틀린 말이라도 하는 낫다. 사람을 정말 미치게 만드는 다름아닌 침묵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접하고 다른 프로 선수들도 자신 또한 도움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모든 LGBT들이 혼자가 아니란 알아줬으면 좋겠다. 


LGBT들이 온전히 스포츠에 참여하기까지는 아직도 길이 멀다. 하지만 더이상 레이서들이 나와 같은 경험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스포츠가 자신을 숨겨야 하는 곳이 아니라, 최상의 모습을 보여줄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 Danny Watts

- 옮긴이: 이승훈




Gay sportsmen like me shouldn’t have to hide. There is another way

Click here for the original article on the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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